* 인仁과 예禮

 

 중학교 3학년 도덕시간이었습니다. 겨울 방학을 앞두었거나 아니면 연합고사(고등학교 입학시험)이 끝났을 때라서 수업, 공부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 때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평소 질문하고 싶었던 것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평소에 정말 궁금했던 것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어떤 의견을 갖고 있으실까?

 

 질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학생들이선생님들께 인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의다. 이런 정도의 예의를 지키는 것은 옳은 것이다. 그런 행동이 없다는 것은 나쁜 것이다. 2) 그러나 형식적인 인사도 나쁜 것이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데, 싫은 티를 내면서 얼굴을 찌푸리고 인사를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인사는 옳지 않다. 공경의 마음을 담아서 인사를 하자.

 결론적으로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것은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났을 때, 마음을 담아서 인사를 정중하게 한다. ; 여기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그런데 존경하는 마음은 없는 선생님을 만났을 때, 마음을 담지 않은 “형식적인 인사는 해야 되는 것인가?” 하지 않는다면 1)을 거스른 것이고 해도 2)을 거스른 것입니다.

 

 (일단 그런 질문을 선생님께 했다는 것을 놀라워 하시면서) 선생님께서 다음과 같은 답변을 주셨습니다.

 우선 동양과 서양의 문화/전통이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서양의 경우는 학생들이 교내에서는 선생님께 인사를 하지만 학교 밖을 나서면 학생이 스스로 존경하는 선생님께만 인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 밖에서 선생님이 학생으로부터 인사를 받으면서 당황해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핵심은 형식보다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에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허례허식이라는 용어와 1970년대의 가정의례 준칙이라고 결혼과 같은 개인사에도 국가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했을 정도로 형식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죠.

 제가 그런 질문을 하였다는 것이 사고방식, 가치관이 서구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설명은 여기까지였습니다.

 

 같은 고민을 성경을 읽으면서도 느꼈는데,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28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7

 

 도대체 행위가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야, 안되다는 것이야?

 

* 제 나름대로의 가치판단을 위한 비유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하였습니다.

 예禮(형식)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이고, 인仁(내용)은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입니다.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면서 최대의 컴퓨터 성능을 가지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라고 해도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못하면, 아예 작동을 하지 않고, 그 반대의 경우는 (작동은 하겠지만) 컴퓨터의 기능을 제대로 사용한다고 할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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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5-0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임 선생님은 아니셨지만, LOS 도덕선생님,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카스피 2012-05-0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우리의 가치관이 서구화되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 지네요.

마립간 2012-05-04 08:50   좋아요 0 | URL
저는 그 당시에 서구적 사고 방식보다 합리, 논리적이라는 가치관으로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는 서양 사람이 쓴 (번역)책에서 동양적 사고 방식이나 가치관이 많다고 느끼는 데, 이것이 일반적이 흐름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에 번역책에 의한 bias인지 모르겠습니다.
 

* 공부는 왜 하는 것일까?

 

 딸아이가 저에게 ‘공부는 왜 해야 돼요?’라고 묻는다면? 몇 가지 할 이야기가 있겠지만,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인혜의 꿈이 무엇이든 공부가 기본이다!>를 읽는 것으로 정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내용이 빈약했습니다. 나름대로 정리해 봅니다.

 

 제가 마*****님 댓글에 공부는 인생에 대한 공부, 실력을 쌓기 위한 공부, 그리고 시험 성적을 위한 공부가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인생 공부로 삶 자체를 들고 싶습니다. 조남철씨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바둑 실력이 늘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탐욕불승과 같은 바둑의 승리의 원리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삶을 통해 몸에 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삶을 살고 있고 범죄자도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하신다면 ; 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이고 위인은 어떻게 살았고 나의 주위 사람들의 인생은 어떻게 돌아보며 고민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물만두님의 삶을 보면서 많은 인생 공부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인생을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직장 일이 지치고 힘들 때, 악기를 연주한다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음악을 예로 든다면, 음악에 소질이 없는 학생이 학창 시절 ‘내신만 끝나면 음악은 절대로 안 하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음악 점수가 잘 나오지 않더라도 성인이 되어 여가 시간에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아니면 음악 감상을 하더라도 학생 시절의 공부는 이후 어떻게 생각하느냐,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자체로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제가 미혼 시절 이성을 만났을 때, 상대편에서 여가를 어떻게 보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저것도 하고 독서를 한다고 하니, 독서로 말미암아 ‘공부를 좋아하시는군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그것이 공부인가 생각했습니다. 저는 직업과 관련 없는 책을 주로 읽고 이것은 재미를 위한 것인데. ; 저의 책읽기는 (그냥) 공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으로써의 공부입니다.

 

 세 번째로 실력을 향상시키고, 직업에서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공부는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를 들면 ; 수학교수가 수학에 관한 논문을 읽고 있다. 전자공학 전문가가 반도체 칩에 관한 잡지를 읽고 있다. 이런 경우가 해당됩니다. 언뜻 학생 때의 공부 일부는 직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보지만 거의 모든 것이 관련이 있습니다. 수학자 푸앵카레는 어렸을 적 수학자의 자질을 보였을 때, (수학적 능력을 파악한 어느 분이) 수학 공부보다는 언어공부를 시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수학 공부는 그 자질로 미뤄 볼 때, 당연히 성취되는 것이지만 수학적 지식을 잘 표현하려면 언어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학자의 언어 능력은 수학에 관한 보조 실력이자 직업에서의 우위를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칼 세이건과 리처드 파이만은 훌륭한 과학자임이 분명하지만 인지도가 높은 것은 글을 잘 쓰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학생이라면 성적을 올리기 위한) 시험공부입니다. 일반적으로 시험공부에 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만 모순되게도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전적으로 몰입하는 것입니다. 공부라고 하면 위의 3가지 특히 세 번째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를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력을 정확히 평가할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나마 (그 형편에서) 시험을 통해 실력을 평가합니다. 실력과 시험점수와는 함수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가 있는 정도입니다. 그것도 시험 종류에 따라 강한 관계, 약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성적을 너무 강조하면 세 번째 목적( 실력)을 망각하고 네 번째에 목적( 점수)에 매달리게 됩니다. 목적 전치가 일어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실력을 쌓는 공부와 점수를 올리는 공부는 따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TOEIC 듣기 시험에는 어떤 단어가 문제에 명확히 들리면 그 단어가 포함된 답가지는 답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런 요령은 요령대로 습득하고 영어 실력을 높이는 공부는 따로 하여 청취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는 것은 목적 전치의 유혹을 견뎌야 하고,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스스로도 판단하고 결정하기도 힘든데, 자녀의 공부를 적용하면 더욱 어렵습니다. 자녀의 실력을 향상시킬 것인가 아니면 자녀의 점수를 올릴 것인가. (실력을 올려 점수가 올라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리고 몇 개의 직업은 (예를 들어 의사나 변호사의 경우) 자격 조건으로 학위와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험공부를 무시할 이유도 없습니다. 선행학습과 예습의 구분도 점수를 올리기 위한 미리공부는 선행학습으로 실력을 올리기 위한 미리공부는 예습으로 정의하는 것이 손쉬울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왜 학업 성적을 따지는가에 이야기 하면 ; 이우곤씨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적이 좋다는 것은 갖추어진 실력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도 나타내지만 대개의 경우 실력보다는 싫은 것(대개의 경우 공부는 싫은 것이 아닌가.)을 참고 견디는 성품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약 싫은 것을 인내하고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면 회사에서 필요한 실력은 입사 후에 키워나가도 되니 말입니다.

 

 <이인혜의 꿈이 무엇이든 공부가 기본이다!>을 읽을 때, 위 네 가지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 밑줄긋기

p 208 첫째, 나는 공부를 통해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p 209 둘째, 나는 공부를 통해 나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p 211 셋째, 나는 엄청난 운을 꿈꾸는 대신 꾸준히 노력하는 삶의 가치를 공부를 통해 배웠다.

p 211 넷째, 나는 공부를 통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갈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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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22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나온 회사에서 학업 성적을 따지는 이유는,
납득이 가면서도 참 한숨 나오는 대목이었습니다. 즉, 회사란
그렇게 하기 싫은 것을 할지 모른다는 가정을 들고 들어가는 거네요. 또한
학교의 학업 성적 역시 같구요. 우리 생애 많은 부분을 학교와 회사에서 보내야함을 고려할 때 이런 시스템이 맞는걸까 한번 생각해봅니다.

공부, 사실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
세상의 많은 존재를 배우는 것, 저는 참 기쁘고 행복하던데, 마립간님도 그러시지요?

마립간 2011-12-22 15:56   좋아요 0 | URL
저는 좋아하는 일이 있고, 그것을 잘하고, 또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을 행복이라고 칭하고요. 하기 싫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 칭합니다. 저는 제가 생각해도 호기심이 많은데, 스스로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유아적이라는 판단도 합니다.

페크pek0501 2011-12-2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님이 흔적 남기셔서 이곳이 친근하게 느껴지네요.

밑줄긋기의 글은 내게 있어 독서도 해당되는 것 같아요. 특히 나의 성향을 파악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삶의 가치를 배운다는 점이...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은 최소한 성실성은 확보하는 것 같아요. 성실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공부를 하는 게 쉽지 않을 테니까요. 세상엔 공부보다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요. 저는 회사에서 그 성실성을 보기 위해 성적을 보는 줄 알았어요. ㅋ

공부는 왜 하는 것일까, 잘 정리된 유익한 글을 잘 보고 갑니다.

마립간 2011-12-23 07:5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pek0501님. 다른 서재에서 뵙기는 했는데, 인사는 처음 나누네요. 자주 방문해 주셔서 의견 남겨 주세요.

마립간 2013-02-0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0130134739§ion=03
 

* 마녀고양이님께서 이번 '페이퍼를 뉴스레터'로 발송한 것에 대해
저의 평가를 물어오셨기에 답변으로 이 글을 씁니다.

* 주제 1 알라딘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알라딘 비정규직 채용과 관련 알라딘 불매운동이 있었고 그 당시 치열하게 논의되었기 때문에 재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주제 2 알라딘 약관과 이에 대한 동의

 자유의사에 의한 선택은 옳은 것, 수용해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의 덕목의 하나로 설명되지만 완전하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국내법에서도 근로기준법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계약이나 장기매매의 경우 자유의사에 의한 것이라도 불법입니다. ; <가짜논리> 46. 선택의 함정 선택은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알라딘은 약관에 의해 기업 활동을 했으니 불법적 행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대개의 포털 사이트가 그러하듯이) 약관의 내용은 불공정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공정한 정도가 2011년 한국 사회의 상식에 비춰 볼 때, 허용되는 정도입니다. 이를 공정하게 교정하는 것은 대중의 인식의 변화입니다.

* 주제 3 (마녀고양이님께 댓글을 남긴 분을 포함하여) 알라디너

 저는 알라디너가 통계적으로 유의할 정도로 일반 대중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라딘 충성파 고객 구매기 2’에서 ; ‘저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알라디너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는 법입니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3254554

* 주제 4 <가짜논리> 32. 걱정도 팔자 미끄러운 내리막 - 아랫 글에서 설명

* 질문) 마녀고양님이 잘못한 부분과 잘한 부분?

 마녀고양이님께서 잘못하신 부분은 알라딘에 공개된 글만 놓고 판단할 때, 감정의 섬세함(날카로운 부분)이 본인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칼로 과일을 깎다가 손을 베인 꼴입니다. 저는 이 감정의 섬세함을 고치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처럼 냉정한 사람을 주위 사람을 잘 살펴보지 않습니다. 마녀고양이님께서 ‘이것을 제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이시는 분이 많은데, 저는 글쓰는 알라디너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하실 수 있는 것은 감정의 섬세함에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마녀고양님께서 잘 하신 부분입니다.

* 주제 5 서재에 공개된 글과 뉴스 레터 보내는 것은 동일한 개방성을 갖는가?

 저는 동일하지 않다고 봅니다. 제가 2011년 7월에 쓴 페이퍼에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주택 공간에도 공적 공간(마당, 거실)과 사적 공간(부부 침실)이 있듯이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참조) 서재에도 비교적 공적인 영역과 비교적 사적인 공간이 있습니다. 가장 공적인 부분은 방명록이고, 그 다음은 마이리뷰, 그 다음은 주제가 공적인 마이페이퍼, 그 다음은 주제가 사적인 마이페이퍼, 가장 사적인 글은 비공개 글로 되어 있는 글입니다. 정치적 주제가 공적인가 사적인가는 문화마다 다르고 개인적인 면도 고려해야겠지만 서양에서는 정치와 종교를 사적인 것으로 여기고 우리나라에서 연애나 결혼까지 공적 공간으로 끌어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보는 논란의 핵심은 주제 4에 있습니다.
* 예외에 대한 단상 http://blog.aladin.co.kr/maripkahn/450085

 이번 서재 뉴스 레터의 발송이 마녀고양이님이 우려하신 ;
 첫째는 실제 서재 활동이 없이 등재만 된 다수의 사람에게 개인사가 노출되어 악용될 수 있다는 점, 두번째는 양철나무꾼님이 말씀하신대로 제 의도와 다르게 알라딘의 주제 선정으로 인해 페이퍼가 활용되어 주제 논쟁의 중심점에 서서 비난 및 호응의 총알받이가 되거나 잘못 된 경우 법적 공방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것과 어느 정도 상관관계, 타당성을 갖느냐 것이죠.

 첫 번째 우려는 트위터, 페이스북을 포함하여 블로그의 모든 글에 해당하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조심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두 번째 우려에 대해서는 이미 서재의 마이페이퍼의 글이 서재 뉴스 레터로 발송한 사건으로 마녀고양이님께서 불편한 댓글을 받았고 한번 일어난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에 대한 우려입니다.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번 일은 개인적인 일에 해당할 뿐입니다. 정답은 두 가지 의견의 어느 중간에 있겠지만 저는 두 번째 우려에 대해 저는 최소한 광우병이나 유전자 조작 음식물의 위험성보다 큰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빈약한 근거는 사이버 테러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 자살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유전자 조작 피해 사례는 제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마녀고양이님 스스로가 ‘***님의 의견 역시 일부 공감은 하지만 수긍을 할 수 없다 하였고, 변함없는 알라딘 정책도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제가 글쓰기를 포기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셨으니 (본질적) 사실판단과 가치판단만 놓고 볼 때, 제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직업상 보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발생할 확률이 낮다고 하더라고 미리 예방할 수 있는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면 방지하는 것이 옳습니다.

* 문의드립니다. http://blog.aladin.co.kr/zigi/5063983

 저는 임시직 채용과 달리 알라딘에서 충분히 수용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상황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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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9-0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지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분도 많았지만
마찬가지로 '왜 저렇게 호들갑일까 본인의 책임인데' 라는 관점도 많아서
제가 올바르다고 생각했지만, 저만의 이기적 (또는 왜곡된) 시각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마립간님을 알게되어, 너무 기쁩니다.

마립간 2011-09-09 11:31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께서 기뻐하시니 저도 기쁩니다. 다른 분의 '호들갑'이란 느낌은 '감정적으로 불안정했다.'로 해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9-09 11:4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마립간님은 정말 저를 웃기는 재능이 있으세요.
블랙 유머의 극치시라니까요.

마립간 2011-09-09 14:39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께 했던 질문입니다. 마녀고양이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랑 한번 못 해본 사람과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 중, 누가 더 불행할까요?

글샘 2011-09-09 16:49   좋아요 0 | URL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의 고통이 더 크겠지요. 고통스러우니까요. 그렇지만 그게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라는 아련한 이름의 마약으로 변할 수 있으니까, 불행한 건 아닐 겁니다.
반면에 사랑 한 번 못해본 사람은... 고통은 없으나, 불행한 거 아닐까요?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지만,
도전하지 않은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란 말처럼 말예요. ㅋㅋ

잊혀진 여자 - 마리 로랑생

권태로운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슬픈 여자

슬픈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불행한 여자

불행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버려진 여자

버려진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떠도는 여자

떠도는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쫓겨난 여자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죽은 여자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

잊혀진다는건
가장 슬픈 일

2011-09-14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1-09-10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오랫만에 댓글을 남겨주셨네요. 추석명절 잘 보네셔요.
순오기님도 명절 잘 보네셔요. 아프락사스님의 글과 호들갑에 대한 평가를 더하면 조금 더 엄밀한 글이 되겠지만 조금 부족한 글로 남겨두렵니다.

2011-09-10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1-09-10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in.co.kr/abraxas/5066436
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것 ; 아프락사스

마녀고양이 2011-09-10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경험으로는 역시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입니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저는 제 경험들 중에 삭제하라고 한다면
어떤 것을 삭제해야할지 꽤나 고민할거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몇살로 돌아가고 싶어요 라는 질문도 그렇습니다.

경험과 고민과 깨달음이 쌓여 현재의 제가 된거고,
저는 현재의 저를 나름 사랑합니다..............

마립간 2011-09-10 15:35   좋아요 0 | URL
알고 계시겠지만, 글샘님의 가치관에서는 저보다 마녀고양이님이 더 행복하신 것이고 마녀고양이님 가치관에서는 마녀고양이님 보다 제가 더 행복한 것이죠.

마녀고양이 2011-09-10 16:08   좋아요 0 | URL
정답이 반대예요,
아우, 질문위 확 위에 있어서,, 어디가 더 불행할까요 이시죠?
네..... 사랑 한번 못 해본 사람이요.
이유는 두번째 줄부터 열거한 것과 동일하구요.

고로 제가 마립간님보다 행복하네요! ㅋㅋ
제 행복을 나눠드리겠습니다. 즐거운 추석되셔요~~~

반딧불,, 2011-09-10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넷이라는 것이 아니 글을 쓴다는 것이 아니 무언가를 개방한다는 것이 가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경험한 사람은 알 겁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개방하는 사람이 나으냐, 어느 정도 감추는 사람이 나으냐는
논의의 방향이 아닌거겠죠. 개인의 성향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음..저는 마녀고양이님의 반응이 과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다 다르고,
생각하는 것과 중요도가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그리고, 그건 노출을 즐기느냐 관음증의 성향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도 아닌거죠.

생각이 다른 것일 뿐입니다.
상처란 사람마다 다릅니다. 개방도도 다 다르고요.
그리고, 전적으로 넷에 대한 것은 아직도 많은 것을 만들어가는 중이니 그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서재뉴스레터를 안받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 기능을 몰랐을 겁니다.
헌데 처음 든 생각은 결국은 글이. 블로그의 글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곳에 속한 것이냐, 나의 글이니 나의 것이냐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동의한 상황에서 그 글이 쓰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다른 거죠.

어찌되었든 마립간님의 의견과 거의 같습니다.
의문을 가지고 본인이 그것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겁니다.

비가 그쳤네요. 따님과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마립간 2011-09-12 09:16   좋아요 0 | URL
반딧불님도 명절 잘 보내고 계시죠. 주부에게는 명절 잘 보내시라고 하는 인사가 조금 찔립니다. 가끔 반딧불님의 댓글을 받지만 알라딘에서 가장 저와 비슷한 기준을 갖고 계신 것 같아 반딧불님의 댓글을 받을 때 마다 격려가 됩니다.
 

* 공부 그리고 수학

 제가 지난 7월에 육아 및 교육 가치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했는데요.

 저의 잠정적 결론은 ; 공부는 사회성공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인생성공의 과정일 수 있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은 옳다.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공부가 옳은 것임에도 아이로 부터 공부를 멀게 할 (즉 역효과의) 가능성이 있다. 공부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 시험성적으로 위한 공부, 실력을 쌓기 위한 공부, 인생을 위한 공부. 시험성적을 위한 공부의 치중은 나머지 공부를 위한 기회 박탈이 될 수 있으니, 주의를 해야겠지만 무시할 이유도 없다.

 수학은 ; 우리나라에서는 시험으로서 과목으로만 주목받기 때문에 발생한 부작용이나 실력을 쌓기 위한, 인생을 위한 도구로서 수학을 생각할 수만 있다면 수학은 철학의 한 분야일 뿐이다. (저의 독후감이나 페이퍼는 고등학교 수준 정도의 수학에 기초한 글입니다.) 고등학교까지의 수학은 수학의 입문으로서의 정도 깊이이다.

 만약 고등학교 정도의 수학이 (시험을 제외한) 사회생활에 무슨 필요가 있냐고 묻는 분이 계신다면 한국 고전을 읽지 않아도 사회생활이 가능하고 ‘소크라테스’나 ‘데리다’같은 사람을 몰라도 사회생활이 가능하지 않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책 한권도 구입하지 않아도, 읽지 않아도 사는데 문제없지 않냐고 묻습니다. - (이글은 마녀고양이님께 드리는 글이 아니고 아주 오랜 전, 어느 알라디너가 다른 서재에 남긴 댓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마녀고양이님은 물리와 철학이 독서분야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수학에 관한 것은 시작만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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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28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마지막 구절에서 제가
까무라치게 웃고 있습니다. 머랄까, 너무 위안이 되는 말씀이시라서요.
다른 분들의 글 역시 그랬습니다만, 아무래도 제 지식이 짧아서 그런가봐요.
다른 댓글의 yamoo님께서 언급하신 <수학 콘서트>는 가지고 있는데 아직 못 읽었고
제가 읽은 수학 관련 책이라고는 <어느 수학자의 변명> 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공부에 관해서는 마립간님 의견을 들으니 정리가 됩니다.
아마 제가 자꾸 딜레마에 처하는 이유는, 사회적 이유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가 공부는 성공과 직결되는 구조라 교육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공부 열풍에 동참하는데 주저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공부가 아니라, 시험 성적을 위한거겠지요. 공부의 방향에 대해서 좀 더 고민을 해야겠습니다.

글 너무 감사합니다.


마립간 2011-08-29 18:31   좋아요 0 | URL
위안이 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한번 시작해 보세요. 제가 더 기뻐할 것 같습니다.
 
혹시 다음번에 답변 주실 때는

* 답변에 대한 답변, 인사를 겸하여

-  두 페이퍼에 답을 겸하면서
* 질문에 대한 대해서만 먼저 답변
* 혹시 다음번에 답변 주실 때는

 그러니 <뜻이 통하지도 않는 단답형 대답>은 사양하겠습니다. () 한 마디만으로도 쉽게 반론이나 해명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음... '작가'를 완전히 이해시키려 하지 마시고, 그냥 독자의 '질문'에 적절하게 답변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두 문장 사이의 적절한 균형 잡힌 글쓰기가 어렵습니다. 참고적으로 저는 이공계 전공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자폐증, 대인기피증적인 면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기본적으로 소통에 장애가 있지요.)

 
제 원했던 질문에 신지님께서 답변한 것도 있고 제가 신지님의 글에 관해서 이해 못 해 답변들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만약 대답을 하시려면, (반박당하지 않도록) 남의 글을 여러번 꼼꼼히 읽고 하십시오. ; 게다가 반박당하지 않는 글쓰기를 염두한 글쓰기란 너무 벅찹니다.

 
그리고 신지님에 제게 요구하신 답변이 ‘입장 밝힘’과 ‘비약적 의사 표시’가 핵심적인 주제라면 저 역시 제 의견 표시를 충분히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소하고 지협적인 문구에 대한 질문은 많지만 우리가 대화하고자 하는 것은 핵심적인 사항에 대한 이해와 이견의 확인 정도가 좋을 듯합니다.

 
“더 이상 답변이 없는 것은 저로서는 좀 쌀쌀맞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변이 없는 것도 의사 표시로 볼 수 있지요. (마립간) 에 대해 동의를 하셨으므로 ; 신지님께서 저의 답변이 강요하지 않는다면 이쯤에 전격적인 대화는 그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단지 신지님께 묻고 싶은 것은 신지님의 질문에 추가적인 답변의 기회는 많을 것 같습니다. 그 때 신지님의 답변을 할 겸해서 인용 및 링크를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전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 문장의 보편적인 의미만 인용하게 될 것입니다. - 따라서 현재 제 생각으로는 구체적 출처를 밝히지 않을 생각입니다.)

 
수양이 부족한 사람과의 대화였다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문서답’,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논리적 오류가 있다’, ‘논점이탈’의 지적은 이번 대화와 관련하여 그냥 받아들이겠습니다. 제가 신지님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면 사과드리고 신지님께서 제게 명예 훼손한 일은 없습니다.

 이탤릭체 ; 포스팅 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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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멘트]맘대로 하셈~
    from 태어남에 대한 망설임 2011-07-26 03:00 
    # 1. 신지님께서 저의 답변이 강요하지 않는다면 이쯤에 전격적인 대화는 그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립간)ㅡ> 그건 저를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답은 하든 안 하든 마음대로 하셔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marine님이 마립간님 댓글에 아무런 대답을 안 했지만, 저는 마립간님이 더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이렇게 말씀 드렸구요.ㅡ 그러니까, 발언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ㅡ
 
 
신지 2011-07-26 0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지님께서 저의 답변이 강요하지 않는다면 이쯤에 전격적인 대화는 그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립간)

ㅡ> 그건 저를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답은 하든 안 하든 마음대로 하셔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marine님이 마립간님 댓글에 아무런 대답을 안 했지만, 저는 마립간님이 더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이렇게 말씀드렸구요.

ㅡ 그러니까, 발언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ㅡ 의사소통은, 우리가 찡그리는 것, (...)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 상대가 있는 모든 '표현',이겠죠.
ㅡ 독자는 자신의 소감을 말할 자유가 있고, 글쓴이는 해명하거나 반박할 자유가 있습니다. . (신지)

(혹시 '자유'를 '의무'로 읽으셨는지요? 소통을 강요하는 것 같다고 하시기에ㅎ)
제가 여러번 말씀드렸다시피 ^^ (남이 대답을 하든 말든) 온라인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하는 것이어서, 저는 할 말이 있으면 좀 더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지 2011-07-26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지 신지님께 묻고 싶은 것은 신지님의 질문에 추가적인 답변의 기회는 많을 것 같습니다. 그 때 신지님의 답변을 할 겸해서 인용 및 링크를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전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 문장의 보편적인 의미만 인용하게 될 것입니다. - 따라서 현재 제 생각으로는 구체적 출처를 밝히지 않을 생각입니다.) (마립간)

ㅡ>
" 알라딘에서 몇 분과 논쟁적 대화가 있었습니다. 가을산님, 드팀전님, 따우님, 강쥐님, 파란여우님 등. 이 분들과 대화의 시작은 제가 먼저 말을 걸었다기 보다 그쪽에서 말을 걸어오셨어요. 제가 보수적인 관점에서의 글을 쓴 것이 계기였습니다......"ㅡ 마립간님이 마녀고양이님에게 하신 답글에서

마립간님 글에서 이런 설명 자주 보는데요. 예컨대 저런 간단한 말에도 마립간님에 의해 왜곡된 해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립간님이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그다지 좋게 보이지는 않아요.

가령, 저라면, 과거의 논쟁, 다른 분들의 '말'을, '언급'하지 않는 편이어서요.(그래서 제가 인용한 과거 글에는 항상 제가 한 말만 들어 있답니다.)

사실 이번에 마립간님의 선입견과 착각에는 좀 질렸기 때문에, 마립간님이 저에게 하는 말이라면 괜찮지만, 저는 저와 저의 '말'을 자신의 글에 일체 언급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마립간님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지 않나요? ^^ )



신지 2011-07-26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령, 이번 글에서도 이렇게 남의 말을 함부로 '자기식'으로 해석해서 인용하는 것을 보십시오 :

“더 이상 답변이 없는 것은 저로서는 좀 쌀쌀맞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변이 없는 것도 의사 표시로 볼 수 있지요. (마립간)- 에 대해 동의를 하셨으므로 (마립간)

님은 지난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더 이상 답변이 없는 것은 저로서는 좀 쌀쌀맞아 보입니다.”
( 이 말을) 제 글과 관계된 글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마립간)

그럼에도, 자신이 편리하게, 남들이 보면 오해할 수도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인용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한 말인지도 사람들은 모르는데' 자기도 잘 모르는 남의 말을 막 떼어다가 자기 글에서 자기 편한대로 사용하신다니까요. ( 하여튼 차아암 특이하세요.. 말해도 소용 없는 거 말이에요. -_- )


신지 2011-07-26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양이 부족한 사람과의 대화였다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문서답’,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논리적 오류가 있다’, ‘논점이탈’의 지적은 그냥 받아들이겠습니다. 제가 신지님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면 사과드리고 신지님께서 제게 명예 훼손한 일은 없습니다. (마립간)

ㅡ> 동정심을 사고 싶고, 자신을 항상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제가 보기에 이런 말 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인 것 같아요.^^ 가식적이어서(제가 싫어하는), 저는 참 책임감 없어 보여요. ㅎ


신지 2011-07-26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대답을 하시려면, (반박당하지 않도록) 남의 글을 여러번 꼼꼼히 읽고 하십시오.(신지) ; 게다가 반박당하지 않는 글쓰기를 염두한 글쓰기란 너무 벅찹니다.(마립간)

ㅡ>
"마립간님도 책임을 가지시고 대답을 하시기를 저는 바라는 것입니다"라고 했잖아요. 당연한 말인 것 같은데요. 역시 자기 자신과 자기의 발언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감이 없으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 자기 발언에 책임감이 있다면 아마 그동안 그처럼 무책임하게 말하지 않으셨겠지요. 거기에 대해서는 지금도 별 생각이 없으시겠지요. 제가 보기에는, 논점일탈과 동문서답으로 일관하신 것은, 상대방의 말에 딱히 할 말이 없어서이지 다른 이유는 아닌 것 같아요. 왜냐면, 이번 글과 마녀고양이님에게 쓰신 글은 뜻이 잘 통하잖아요. 저에게도 그처럼 대답하면 되는 것 아니었나요? ㅎ

마립간님은 자신이 말하면, 한 마디만으로도 상대방이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간단한 코멘트를 달아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하려면, 어느정도는 제대로 설명을 해야 서로 뜻이 통하고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왜 그러셨을까 싶어요.

아마 다음과 같은 생각은 누구나 아는 일반적인 사실일 거에요 : 논점일탈을 하면 말의 진위를 가릴 수 없게 된다.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 아무렇게나 말해도, 아무 말이나 해도, 될 것이다. 책임없이 말하는 것은 쉽지만, 남의 잘못된 말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여러번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논점에 집중하지 않고, 계속 이말 저말에 말이 되든 안 되든 마구 20자평을 대책없이 뿌려대신 것, 자신과 상관도 없는 남의 말에 하나 하나 의견을 표명하신 것은 제 생각에는 대답이 궁해서이지, 몰라서 한 실수라고 생각하기가 어려워요. 몰라서 그랬다면 한 번이면 족하지요. 그러나 경고를 했음에도 마립간님은 계속 그러셨거든요.

논의가 흔히 감정싸움이 되는 이유는, 대개는 상대방의 말이 뜻이 통하지 않아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억지대답은 하실 필요가 없는 거에요. 제가 보기에는 마립간님 같은 경우에는 대화를 통해서 사실 자기 검열도 많이 어려우실 듯해요. 대표적인 이유는 인정하지 않는 버릇(자기 합리화), 무슨 말이든 남의 말을 자기식으로 왜곡해서 듣는 버릇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