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30923

 

스피노자의 이름을 언제 처음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철학자라는 이름으로는 (쇼펜하우어와 함께) 처음 들었던 학자였다. 거의 동시에 라이프니츠를 소개 받았다. 철학의 내용을 듣기 전에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를 비교를 먼저 알게 되었다. 그 비교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아니면 직관적으로) 나와 스피노자의 공통점을 느꼈고, 그 공통점들은 스스로 나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다. 이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스피노자를 피해왔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철학적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나와 반대된다는 느낌으로 회피해왔다.) 열패감에 스피노자보다 라이프니츠를 택했다. 20년 넘게 그 상황은 유지되었다.

 

곰곰생각하는발님께서 나와 스피노자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서 <스피노자의 뇌>, <에티카>를 읽었다. 이제는 스피노자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적인 이야기를 하면 스피노자는 여행을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나 역시 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런 공통점이 싫었다. 하지만 사춘기를 때 만난 여행을 하지 않은 칸트는 쉽게 받아들였다.

 

<스피노자의 뇌> 서평 별점 ; ★★★★☆

 이 책은 제목에 스피노자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선택했지만, 나의 궁금증 퍼즐의 하나를 맞춰주는 책이었다. 바로 감정이다.

 

나는 알라딘에 게재한 다른 글에서 내가 기본적으로 희락감정맹자喜樂感情盲者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느끼는 기분을 머리로 판단한다. 희락의 감정을 느낄 때, 그 상황이 내 노력에 관련된 것이라면, 개인적인 것이라면 기쁨이고, 우연된 상황이나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상황이라면 ‘즐거움’으로 판단한다.

 

감정에 몇 가지가 있는지도 판단이 안 되었다. 동양에는 칠정七情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일곱 가지는 상징적이다. 유교에서는 희노우사비경공喜怒憂思悲驚恐, 불교에서는 희노우구애오욕喜怒憂懼愛惡慾라고 한다. 일관성을 찾기 힘들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감정의 종류를 검색하면 역시 일관성 있는 답변을 얻을 수가 없다.) 칠정에 없는 행복이나 허무는 감정인가?

 

이 책에 따라 감정이란 것이 신체의 반응으로 해석/정의된다면 감정이 애매모호한 것이 이해되었다. 감정의 유용성이 이해되었고, 사고/이성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된 감정이 사고와 동등한 가치로 격상되었다.

 

또한 우울의 기능에 대해 진화론적으로 무슨 유익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계속 가져왔다.

 

p162 광의 및 협의의 슬픔과 관련된 지도는 기능적 불균형 상태와 관련 되어 있다. 이 상태는 활동의 용이성이 감소한 상태이다.

 

슬픔은 불균형에 대한 표시이다. (슬픔 자체의 기능은 없고 표시로의 기능만 있는 것) 그렇다면 가능한 한 빨리 슬픔/불균형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은 것이겠다.

 

이 책을 읽고 2013년 남은 3개월 동안 지켜야 할 새해의 결심을 했다. 이전의 감정 상태는 (과거 후회/우울-현재 분노-미래 공포)였는데, 출근하면서 (과거 추억/감사-현재 행복-미래 희망)을 되뇐다.

 

* 밑줄긋기

p162 기쁨과 관련된 지도는 생명체가 균형을 우린 상태임을 보여 준다. 그와 같은 상태는 실제로 일어나는 상태일 수도 있고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일 수도 있다.

p163 중독성 약물은 처음에는 행복한 도취감을 생성하지만 그 반동으로 슬픔이나 우울한 상태를 만들어 낸다.

p163 슬픔이나 공포, 분노 등을 따로따로 떼어 놓고 불 때 이러한 상태들이 우울증 같은 질병으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각각의 부정적인 정서와 그에 따른 부정적인 느낌이 우리를 정상적인 운영 범위의 바깥으로 밀어 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164 정당한 공포는 훌륭한 안전 장치이다./적절한 목표를 향한 분노는 모든 종류의 학대를 방지하고 야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훌륭한 방어 무기가 될 수 있다./위안과 지지를 찾아서 눈물을 흘리는 슬픔이라면 적절한 상황에서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

p164 느낌은 생물의 내부를 탐색하는 심적 감지기이자 진행 중인 생명 활동을 증거하는 목격자라고 할 수 있다./느낌은 덧없고 제한된 우리의 의식적 자아로 하여금 짧은 기간 동안의 우리 생명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도록 해 준다. 느낌은 균형과 조화, 또는 불균형과 부조화의 심적 현시이다.

p177 환기된 정서 신호가 그 자체로서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신호는 합리적으로 도출된 것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도록 촉진한다. 스테판 헥이 제시한 바와 같이 ‘합리적rational’이라는 용어보다는 ‘합당한reasonable’이라는 용어가 정서의 이러한 측면을 적확하게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p178 최근 연구에서 협력 행동이 도파민 분비하고 쾌락 행동에 관여하는 뇌 영역의 활성화를 이끌어 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것은 “덕행은 그 자체가 보상이다.”라는 말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p204 그러나 사람이 어느 정도 자연적 권리에 따라 만들어 내야 하고 만들 수 밖에 없으며, 특정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사람들을 구속하는 법칙은 인간의 섭리에 의존한다./스피노자가 인간의 법칙이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인간 뇌의 설계가 그 실행을 촉진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면 기뻐했을 것이다./수 많은 부정적인 사회적 정서가 현대 문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러한 정서의 오용과 더불어 인간의 법칙을 실행하고 개선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p206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의 자기 보존 경향을 따르는 데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스피노자의 행복은 부정적 정서의 전횡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은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행복은 덕의 대가가 아니라 더 그 자체이다.

p207 생명의 조절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신경 지도들은 우리가 느낌이라고 부르는 심적 상태의 필수적인 기반인 것으로 드러났다.

p208 느낌은 우리가 창의력, 판단, 광대한 양의 지식의 동원과 조작을 필요로 하는 의사 결정 등과 관련된 비전형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돕는다.

p212 의식과 마음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의식은 우리가 자신self이라고 부른 것이 스며드는 절차이며, 의식은 자신의 존재와 자신을 둘러싼 객체의 존재를 인식한다.

p230 우리의 뇌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에 대한 뇌의 신경 패턴과 그에 대응하는 심적 이미지는 현실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거울상이라기보다는 현실에서 촉발된 자극으로 인해 생성된 뇌의 창조물이라고 볼 수 있다.

p239 “몸에 자리 잡고 있고 몸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우리의 마음은 몸 전체의 하인이다.” ; 계속 그래야 하는가

p248 이것은 다시 말해서 만일 당신이 어떤 사물에 대한 관념을 형성한다면 이 관념에 대한 관념 역시 형성될 수 있고, 또한 그 관념에 대한 관념 역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p251 마음과 몸이 비록 같은 발판을 딛고 있지만 자각하는 사람에게 표상되는 한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하는 메커니즘에는 비대칭적인 면이 있다.

p253 이제 추측이 사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다.

p314 스피노자,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에서 전혀 성공하지 못했던 삶/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최선의 삶에 도달하기 위한 스피노자의 권고는 윤리적 행동과 민주적 국가를 위한 시스템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p315 우리의 삶이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존재보다 더 커다란 어떤 목적을 지닐 수 있을까? - p316 스피노자가 우리 존재의 정수라고 명확하게 밝힌 자기 보존에 대한 자연스러운 갈망, 코나투스가 작용한다. 고통과 죽음에 대한 예상은 항동성 작용을 붕괴시킨다.

p317 나의 숙고의 결과 그와 같은 현상의 첫째로 느낌 - 단순히 정서가 아니라 느낌 -, 특히 감정 이입, 우리가 완전히 인정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서적 공감의 결과이다. ... 둘째, 인간이 가진 두 가지 생물학적 재능, 즉 의식과 기억이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엄격한 의미에서 의식은 자아를 가진 마음의 존재를 암시하지만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의미로는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자전적 기억의 도움을 받아 의식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개인적 경험의 기록으로 가득한 자아를 제공해 준다.

p321 스피노자는 구원에 이르는 두 가지 길을 제시했다. 좀 더 접근하기 쉬운 길은 덕망 있는 국가에서 덕망 있는 사람을 사는 것이다./두 번째 길은 첫 번째 길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에 더하여 지성understanding에 대한 직관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이러한 직관 자체는 풍부한 지식과 지속적인 숙고reflection에 기초한 것이다.

p323 스피노자의 해법은 정서적 절차를 관장하는 마음의 힘에 달려 있다./마지막으로 스피노자의 해법은 개인으로 하여금 지식과 이성의 안내에 따라 개인의 불멸이 아니라 신 또는 자연의 연속성이라는 전망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에티카> 서평 별점 ; ★★★☆

 스피노자에 관한 이야기는 <스피노자의 뇌>의 후반부에 설명되어있다. 스피노자의 생각을 좀더 알기 위해 그의 글을 읽기로 했다. 별 생각 없이 알라딘에서 검색된 <에티카>를 주문해서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은 <에티카>의 요약본/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 밑줄긋기

p98 그 자신이 다른 개념을 모두 포함하지만 다른 어떤 개념에도 포함되지 않는 가장 일반적인 개념에 이를 수 있다. 포르피리우스Porphyrius 같은 사람은 이런 가장 일반적인 개념을 가장 높은 수준의 유개념이라고 부르고 다시 이에 해당하는 것이 ‘실체substantia’라고 주장하지만, 어째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학설의 주창자들이 존재의 영역과 개념의 영역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가장 일반적인 개념을 정점으로 일반 개념 간의 포함 관계를 통해 존재의 위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p98 그러나 스피노자가 보기에 이런 학설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구체적인 실제의 본질과 추상적인 특징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플라톤이나 이순신 같은 개개의 인간이 존재할 뿐 ‘인간’이란 일반 개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개개의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것은 ‘이성성’이나 ‘웃을 수 있음’과 같은, 개체의 대한 추상이고 자의적인 규정이 아니라 어떤 결과를 생산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으로서의 욕망cupiditas이다.

p99 존재의 서열화 혹은 위계화에 기반을 둔 완전성과 불완전성 개념이 이처럼 허구적인 것임에도 왜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 것일까?

p100 여기서 인간 본성의 전형이란 인간이 스스로 부과한 어떤 인간의 이상적인 도덕의 경지를 가리키며, 그런 점에서 그것에서 가까울수록 더 완전하고 선한 인간으로 여겨지는 반면 그것에서 멀어질수록 덜 완전하고 악한 사람으로 여겨진다./p101 앞의 주장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이런 개념들을 ‘실천적’ 맥락에서 복권시킨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p102 적합 관념에 따라 사유하는다는 것은 지성의 능동성을 반영하며 이는 외부 환경에 대한 능동성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적합 원인의 정서를 능동적 정서라고 부르고 그렇지 못한 정서를 수동적 정서 내지 정념passio이라고 부른다.

p105 스토아 ; 이들이 윤리적으로 목표로 제시한 ‘아파테이아apatheia’, 즉 문자 그대로 ‘정념이 없는 상태’는 스피노자 보기에 외부 원인의 영향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인간의 조건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욕구에 대한 의지의 절대적 지배라는 잘못된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p109 스피노자에 따르면 정신과 신체는 동일한 사물의 두 측면이다.

p117 헤겔은 모든 철학이 실체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스피노자주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 마립간은 실체를 포함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상태에서 긍정을 향해 출발한다.

p117 쇼펜하우어는 이론적으로 스피노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특히 ‘원인’과 ‘이유’를 동일시했다는 것과 ‘형이상학적 낙관론’을 피력했다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p119 ‘비환원적 유물론’

p121 스피노자가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의 양자택일을 넘어서는 제3의 윤리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p122 자연권 jus naturale과 시민권 jus civitatis이 분리 불가능하다는 스피노자의 주장은 중요한 정치[철]학적 함축을 지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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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09-2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다짐 (2000년도의)
http://blog.aladin.co.kr/maripkahn/188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