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30830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서평 별점 ; ★★★
번역 제목이 마음에 안 든 책. 원제는 moral landscape, ‘도덕의 풍경’이다.
내가 <모럴 아포리아>를 읽고 ‘윤리학은 영원히 철학에 남을 줄 알았다. 이제 윤리학도 과학에 넘겨줘야 할 듯.’이란 글을 남긴 것은 책 전체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직관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윤리의 바탕을 과학으로 삼으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서평의 내용을 책에서 표절/컨닝한 것이 아님^^)
글쓴이의 의도는 이해가 간다. 이성과 감정, 직관의 기반을 잃어버린 도덕이 기반으로 과학을 삼으려는 것인데, 나는 과학이라는 용어보다 객관성이나 과학의 객관성이라는 용어의 설명이 있었다면 더 이해가 쉬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수학적 증명이 필요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은 천체 물리학적 증명이 필요하고 진화론은 진화론적 증명이 주어진다. 이 세 가지 증명은 각각의 객관성이 다르다. 그렇다면 도덕의 객관성은? 도덕의 필요만큼만.
p19 도덕은 체스와 상당히 유사하다. 분명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원칙들이 있지만 중요한 예외들도 인정하기 때문이다.
p28 ‘물은 두 개의 수소와 한 개의 산소로 구성된다’는 사실적 믿음이나, ‘학대는 나쁘다’라는 윤리적 믿음 둘 다 단순한 선호의 표현이 아니다. 어느 쪽이든 ‘실제로’ 믿는다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그 명제를 수용했다고 믿는 것이다.
나는 이 주장에 언뜻 동의를 못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선의로 거지 두 사람에게 각각 백만 원을 주었다. 한 거지는 백만 원으로 장사를 시작하여 자립하고 다른 거지는 백만 원으로 마약을 하여 사망을 하였다. 선의를 베푼 사람의 백만 원을 준 두 번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다르게 평가해야 하는가. 미리 그것을 판별할 수 없었음에도.
아마 나의 질문에 저자는 아래와 같은 답을 줄 것 같다.
p12 과학이 모든 도덕적 논란의 해결을 보장해준다는 말이 아니다. 의견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이 사실의 범위 내에 있을 거라는 말이다.
p25 우리는 실질적으로 그 쾌락보다 복잡한 형태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해가 되는지를 묻고 있은 것이다. 이 물음 자체는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합당하며 답도 분명히 존재한다./좋음을 이런 식으로 정의한다고 해서 가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실제적 가치로 주의를 돌리게 해줄 뿐이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없지만, 종교와 과학은 담당한 분야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것을 부인한다. 도덕은 과학이다. 과학과 종교가 전쟁 중의 휴전인지, 종전인지 분간이 안 갔으나, 결과적으로 휴전이었다. 과학이 말하기를 종교는 과학과 양립할 수 없다. 이전에는 종교에서 과학에 대한 선포했던 말이다.
p11 인간의 행복은 전적으로 세상의 사건과 인간 뇌의 상태에 의존한다.
p21 뇌는 틀림없이 사회적 정서적 상호작용, 도덕, 문화, 이 세 가지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관찰의 힘 e-Book> 서평 별점 ; ★★★★
<사물의 역습>에서 기대했던 내용을 이 책에서 읽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미래를 보다’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미래를 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기업에는 간혹 미래를 볼 것이다.) 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통찰이 있은 것은 분명하다.
꽤 마음에 드는 구절이 많아 밑줄긋기를 위한 초서 대신 크레마의 하이라이트를 치며 읽었는데, 얼마 읽다보면 하이라이트가 사라졌다. 크레마 에러인가? 몇 문제에 내 의견을 달려 했는데, 총평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