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수학, 고등수학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초등수학과 초등수학이 아닌 것, 즉 고등수학(이런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다.)이라고 명명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초등수학 (初等數學) <수학> 기본 법칙과 개념만을 다루는 수학. 일반적으로 계산에서 이차 방정식까지의 대수학, 유클리드 기하학, 평면 삼각법 따위를 이르지만, 명확한 규정은 없다. - 네이버 사전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초등수학은 초등학교 수학, 고등수학은 고등학교 수학에 대한 이야기가 검색되어 정확한 것을 확인할 수 없다.)

 

초등수학과 고등수학을 나누는 명확한 규정(과학적 정의)는 없지만, 공학 계열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친구의 말을 빌리면 실제적으로는 복소해석학의 적용 여부가 초등수학인지 아닌지를 나누는 기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마추어인 입장에서 초등수학은 구상화와 연결된 것을 초등수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면 (<X의 즐거움>에서 언급했던 것 같이) 1, 2, 3, ... 의 자연수는 돌맹이 한 개, 두 개, 세 개로 연관 지울 수 있다. x^2 +y^2 =r^2는 원을 연상할 수 있다. x^2 +y^2 +z^2= r^2은 구를 연상할 수 있다. x^2 +y^2 +z^2 +t^2= r^2는 시간 t가 삽입되었지만, 우리는 4차원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연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x^2 +y^2 +z^2 +t^2 +a^2 =r^25차원이 되면 연상이 곤란하다.

 

<X의 즐거움>에서는 구상具象적인 것에서 수학을 유추하여 수학의 부담을 덜라고 한다. <회사에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수학>에서 수학의 적용, 유용성을 이야기한다. (수학 자체가 추상적이고 은유적이지만) 군론에 접어들면서 주위에서 비유한 구상을 찾기가 더 힘들다. 내게는 이 시점부터 고등수학으로 느껴진다. 반대로 고등수학이라고 불리는 수학을 접하기 위해서는 초등수학을 공부하면서 구상적인 것을 떼어 놓고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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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2019-07-15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돌아와 들여다보고 싶은 곳이 있어 반갑네요. 초등수학에 대한..책 잘 보고 갑니다. 개념..보이는것보다 훨씬 중요한데 전달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네요
 

 

* 수학 그리고 06

- 수학 그리고 소설

 

내가 소설과 친하지 않은 이유로 상대적으로 시와 친하다. 그리고 수학은 시에 비유된다고 생각하는 한편 소설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와 소설의 우열을 가늠하려 한다면 어느 한쪽이 우열이 있다고 생각에는 반대를 한다. 비록 내가 소설과 친하지 않더라도 소설의 위대함은 직관에 의해 느끼고 있다. 시에 깊은 맛이 있다면, 소설은 넓은 맛이 있다. (실제 나의 100대 책에는 소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작년 가을에 수학 그리고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후 수학에서 소설에 은유될 만한 성질이 없을까 생각해왔다. 그런데 <수학악마>의 문제 풀이는 시와 같고, <수학귀신>의 이야기는 소설과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수학적 발견의 논리>를 보면서 수학의 소설적 측면을 발견하였다.

 

수학의 증명은 소설에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 수학의 공식은 시, 증명은 소설小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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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과 그리고 05

- 다락방 님께

 

보통의 수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수학에 관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저는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권합니다. 그러나 다락방 님에게 수학 도서에 관한 조언을 하면, 책으로 <용의자 X의 헌신>,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권합니다. 이 두 권의 책은 소설이지만, 이들(수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글을 쓸까?라는 궁금증에 비교적 답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수학에 관한 직접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책으로 <나머지 반은 어떻게 생각할까>을 추천합니다. 내용이 얕지 않지만, 수식 없이 ‘추론’의 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수학의 핵심은 추론입니다. 추론에 더해 일반인들에게는 이해가 필요하고, 수학자에게 창의성이 필요하지만요.

 

왜 내게는 수학을 잘할 수 있는 직관이 없고 그리하여 추론과 이해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하고 말이지요.’에 답변에 앞서 다락방 님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고, 알라딘 마을에서 인기 서재가 되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제가 수학에 강점이 있다면 글짓기에 약점이 있습니다. 제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제 약점의 해소, 즉 글짓기를 잘 하는 방법으로 ‘다독多讀/多聞, 다색多索/多商量, 다작多作’을 이야기합니다. 마찬가지로 수학을 잘 하려면, 수학을 자주 접하고, 수학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많이 풀어보는 것입니다.

 

다락방 님이 하신 말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로드맵을 제시하면 (6년 후쯤 딸아이의 로드맵이 되겠지요.), 1) 먼저 초등학교 5~6학년 수학 문제집을 풀어보십시오. (만약 풀지 못한다면 수학의 기초부터 이해가 없는 것이겠지만, 댓글로 미뤄보아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 그 다음에는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푸는 것입니다. 중학교 문제집은 잘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때 핵심은 초등학교 수학에서 중학교 수학문제로 어떻게 확대 되었는가를 추론하는 것입니다. 3) 중학교 문제를 쉽게 푼 다음에 고등학교 수학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고, 중학생이 특목고를 위해 준비하는 수학 문제집을 푸는 것입니다. 이들 문제는 좀 어려운데, 그 이유가 한 문제에서 다양한 능력을 요구합니다. 문제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이해가 필요하고 제시된 자료를 통해 추론이 필요하고, 여기에서 내려진 결론으로 암기된 공식을 연상해야 하고, 계산에서 틀리지 말아야 하고 제한된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므로 숙달이 필요합니다. 영재고나 과학고를 위한 수학문제는 여기에 창의력까지 요구하는 문제가 있어 더 어렵고, 민사고 정도를 준비하는 문제들이 적당합니다. 이들 문제를 푸는 것을 제안하는 것은 수학 지식의 습득이 아니고 집중력과 지구력의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집중력이 유지된 상태의 지구력입니다. 어떤 문제는 (참고 자료를 찾아가면 푸셔도 됩니다.) 문제를 푸는데 하루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만약 성공하신다면 저와 같은 수학 선호자가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면, 창의성인데, 이것을 기르는 방법으로 이미 푼 문제에 대해 또 다른 해법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올 댓 피타고라스>라는 책에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대한 증명 394가지 언급되었는데, 수학 지식만 놓고 본다면 단 한 가지 증명만 있어도 됩니다. 실례로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수학에 대해 아버지에게 질문을 하였는데,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 문제를 고등학교 지식으로 풀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고등학교의 수학지식이 없으니, 대화가 진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아버지에게는 그 문제에 관해 유연성이 없고 창의성도 없던 것이죠.

 

- 마지막 글

 

자녀의 수학 시험공부를 수학 공부로 전환을 시도하거나 혹시 자신이 수학 공부를 새로 시작한 분에게 조언을 드리면 ; <몰입>이나 <공부하는 힘>에서 언급된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 deliberate practice’에 해당하는 수학을 먼저 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수학 공부가 잘 안 될 때, 비만과 달리기와 관계를 떠올리시기를 바란다. (달리기는 시작이 어렵고 무리하게 운동하면 부상만 입는다.)

 

누구나 재능을 다르게 가지고 태어난다. 자신이 수학에 대해 어려워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수학을 쉽게, 쉽게 해결해 나가면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가지를 깊게 생각하는 습관 때문에 주위를 잘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오죽하면 수학자(하디였나?)가 일반 대중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을 했다. 수학자들의 눈치 없음과 생활 Q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 이해해 달라고. 우리나라에서 (실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사회적 성공을 하려면 수학에 대한 이해보다, 무리짓기/줄서기에 노력하는 것이 맞다. 수학에 조예를 갖게 된다는 것은 갈매기 조다단이 되는 것이다. 여우보다 고슴도치가 되는 것이다.

 

어느 알라디너는 스스로 (내 판단에) 수학적 사고를 함에도 그것이 수학적 사고인지 잘 인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계속해서 지적질을 했었다. 나의 다섯 편의 글을 통해 수학에 대한 오해를 풀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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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10-2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학공부 개념있게`는 읽지 못한 책이나 목차나 글쓴이로 미뤄볼 때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다락방 2014-10-2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신 소설책 [용의자 x의 헌신]과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제가 오래전에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들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초등 5-6년 문제집을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긴 하지만, 오와- 지금 현재로서는 두렵기만 하네요. `풀어보자`에 앞서 일단 서점에 가서 살짝 들춰봐야겠네요. 풀 수 있는 것들인가, 없는 것들인가...
마립간님의 로드맵은 분명 훌륭한 방법이 될 것 같긴하지만, 저는..제가..저걸 할 수 있을까요? 흐음.
어쩌면 제 역할은 수학을 잘하는 이들에 대해 마냥 부러워만 하는것으로 끝나야 하는건 아닐까요?

다섯 편에 걸친 글, 잘 읽었습니다 마립간님.

마립간 2014-10-29 08:39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잘 읽으셨다니, 저도 감사합니다. 다락방 님이 소설을 좋아하시니 아마 두편의 소설을 읽으셨을 것으로 추정했으니, 알수가 없어서요. `어느 수학자의 변명`도 수학자들의 사고 방식이 잘 드러납니다.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을 수 있듯이 수학도 용기 있는 자가 얻을 수 있습니다.

나의 애인 수학은 ; 아름답고, 인간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매력이 있고, 잘 변심하지도 않고, 쓸모 있고, 놀라운 보편성을 갖고 있습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339991

2014-10-29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9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9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9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4-10-3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도 추천이요

마립간 2014-10-30 12:22   좋아요 0 | URL
조선인 님, 반갑습니다.^^ 읽어보지 못한 책인데, 지금 읽는 책 마치면 바로 읽어야겠군요.
 

 

* 수학 그리고 04

- 시詩

 

수학과 시에 관한 책은 수학과 음악에 관한 책보다 많다는 느낌을 주나 이 책들은 내가 생각하는 관련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선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수학과 시의 연관성은 과학과 예술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원인적인 면에서 보자. 수학/과학과 시/예술은 양쪽 모두 통찰에서 나온다. 이 통찰의 대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혹자는 수학이 점點과 선線 등 보이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점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은 위치이고, 선 역시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 길이만 존재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에는 이에 꼭 맞는 것이 없다. 관념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현실을 이데아의 모방, 예술을 현실의 모방으로 이데아와 더 멀어진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예술에 대한 판단은 세계와 사람에 대한 통찰을 글, 그림, 선율을 통해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 통찰은 현실보다는 이데아에 더 가깝다.

 

결과적인 면에서 볼 때, 수학/과학과 시/예술을 양쪽 모두 이성과 감정에 영향을 준다. 나와 같은 사람은 수학 공식이나 물리학 공식을 보고 이해의 수준을 높이기도 하지만 감동도 함께 받는다. 어떤 사람은 시를 읽고 감동을 받지만, 그 시의 주제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차이점은 첫 번째 작용점이 다르다. 수학/과학은 좌뇌/이성에 먼저 호소하고, 시/예술은 우뇌/감정에 먼저 호소한다.

 

그럼 수학과 시의 관계가 수학과 소설의 관계와 같나? 나는 좀 차이가 나게 느낀다. 시에는 방법론적으로 은유가 사용된다. 수학은 그 자체가 은유라고 생각한다. 1, 2, 3이라는 숫자나 점, 선 등은 실생활에서 볼 수가 없다. ‘나무’를 본 적이 있나? 소나무, 배나무, 감나무가 아닌 ‘나무’를 보았나? 소나무를 본 적이 있나? 옆집 마당에 심어있는 소나무가 아닌, 앞산에 있는 소나무가 아닌 소나무를 보았나? 우리는 관념에 있는 은유에 대해 익숙해 있기 때문에 그 은유를 잊는다. 그러다가 수학이나 시에서 익숙하지 않은 은유를 만나면 어려워한다. 다른 분들이 시와 소설을 문학으로 한 묶음, 수학을 따로 나눌 때, 나는 은유 강도가 강한 수학과 시를 한 묶음, 소설을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주절주절 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 수학의 시ㄱ式(정리)도 짧고 문학의 시도 짧다. 짧지만 그 의미를 파악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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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 그리고 03

- 음악

 

수학과 음악의 이야기 중에 빠지지 않은 것이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는 현의 길이와 음의 높이, 옥타브의 관련을 밝혀냈다. 이 사실은 수학과 음악의 관련성을 나타낸다기보다 수학과 물리학의 관계를 밝은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니까 피타고라스는 음악가라기보다 음향학자다. 12평균율과 화음도 마찬가지다. 라이프니츠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Music is the pleasure the human mind experiences from counting without being aware that it is counting

 

나는 수학과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도 직관에 의해 관련성이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책에서 수학과 음악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여기서부터의 글은 Reference를 확인하지 않고 기억에 의존해 글을 쓰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그러던 중 뇌과학 책을 읽던 중 공통점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사실 그 이상의 청소년과 어른을 포함해서) 학생의 건강한 생활 습관에 TV를 너무 많이 보지 말라고 하거나 컴퓨터, 인터넷, 전자기기를 이용한 게임을 자제하라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그 이유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두뇌사용에 있다. 컴퓨터 게임은 측두엽만 한정해서 사용한다. 제한된 두뇌사용은 에너지 사용이 적기 때문에 편안하게 느낀다. 여기에 적응이 되면 두뇌 전체를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 비유해서 설명하면 건강에 운동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달리기를 하려니 귀찮다. 침대에 누워 양팔을 휘두르는 것을 운동으로 하는 것이다.

 

몇 부모님이 ‘우리 아이는 스마트 폰, 컴퓨터 게임을 하라고 해도 안 한다’고 이야기하신 분이 있었다. 그럼 뭐하냐고 되물었더니, 책을 읽는다고 답하셨다. 독서는 컴퓨터 게임보다 훨씬 많은 두뇌를 사용한다. 비유해서 설명하면 달리기를 한 것이다. 달리기에 희열을 느낀 사람은 침대에 누워 팔을 휘두르는 것을 운동으로 보지 않는 것과 같다.

 

어떤 일을 수행할 때, 가장 많은 두뇌를 사용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 눈치를 채셨나요?) 바로 수학공부이다. 수학은 전뇌前腦에서 시작해서 (거의) 전뇌全腦를 사용한다. (오류를 최소하면 가장 많은 부위의 두뇌를 사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이유는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를 해야 됨에도, 하지 않은 이유와 같다. 시작이 어렵다. 그러나 희열을 한 번 느끼면 그 희열을 잊기도 힘들다. 그래서 한번 수학 mania가 되면 대개 수학 mania로 남는다. 역사에 남은 천재적인 수학자가 사춘기 이전에 수학적 재능을 보여도 수학에 몰입하지 않는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수학에 빠지게 된다. 이것도 ‘사춘기를 지나면서 뇌사용 범위가 확대된 상황’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여기서 음악은 주로 클래식 음악을 말한다. 클래식 음악이 락 음악이나 포크송과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음악은 선사시대에 주술적이고 원시종합예술의 한 형태였고 이것은 인간 사회를 통한 진화적 압력을 즉 문화-유전 공진화를 통해 음악을 발전시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애초에 왜 음악이 발생하였는지 아직 설명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진화론에 의거한 자연 환경에 적응의 산물로는 설명이 안 된다. 현재까지의 설명은 (언어기능인지, 사회인지 기능인지 알 수 없지만) 뇌기능 발달에 따른 부수적 작용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음악에 따른 뇌사용을 보면 시작은 측두엽에서 시작하는데, 음악 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뇌의 범위는 (거의) 전뇌whole brain를 사용한다. 일단 이런 cycle이 형성되면, 음악은 뇌발달을 촉진시키고, 뇌발달은 음악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은 아이가 왜 클래식 음악을 듣자마자 좋아하지 않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아이들은 전뇌whole brain를 사용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전뇌 뇌사용의 전환은 사춘기에서 시작해서 27세 전후로 완결된다고 한다.

 

친구의 잡담에 의하면 일반인들이 음악을 감상할 때는 우뇌가 활동한다고 한다. 그러나 (천재적인) 작곡가가 작곡을 할 때는 좌뇌가 활동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나의 서재 소개에서 수학은 애인으로 음악은 애인의 이복동생으로 표현되어 있다. 수학은 전뇌forebrain에서 시작하고 음악은 측두엽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다르다. 그러나 전뇌whoe brain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아버지가 같다. (써 놓고 보니 어머니가 다른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다른 자매가 더 어울리나?)

 

(‘수학과 음악’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대칭, 비율 등에 관한 이야기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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