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낙타와 성자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조원규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품절


낯선 도시에 익숙해지려면 새롭고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들로 혼란스러워질 때 혼자 있을 수 있는 은밀한 장소가 필요하다. (사람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 장소는 조용해야 한다. 그 장소로 피신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때까지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어야 한다. 막다른 골목으로 사라질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열쇠를 갖고 문 앞에 서서 지상의 어느 누구도 듣지 못하도록 그 문을 열 수만 있다면 가장 고마운 일이 될 것이다.
서늘한 집 안으로 들어가 잠근 문을 등진다. 실내는 어두워 한순간 눈 앞이 캄캄해진다. 마치 공터와 골목에서 버림받은 맹인처럼. 하지만 시력은 순식간에 회복된다. -53쪽

위층으로 가는 돌계단이 있고 위로 올라가면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고양이는 정적의 화신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어 왔다. 사람들은 고양이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낀다. 그토록 소리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니. 사람들은 고양이가 하루에 천 번씩 '알라'를 외치지 않아도 밥을 준다. 고양이는 사지를 절단당하지 않고 잔인한 운명에 자신을 바칠 필요도 없다. 고양이는 냉혹할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그렇다고 말하는 일이 없다.-54쪽

집을 오르내리며 정적을 들이마신다. 넌덜머리 나는 소동은 어디로 갔는지? 현란한 색깔과 날카로운 소리들은? 수백 수천의 얼굴들은? 이곳 집들은 길거리를 향해 창을 여는 일이 별로 혹은 전혀 없다. 창문들은 하나같이 안뜰을 향해 열리고 안뜰은 하늘로 열려 있다. 안뜰을 통해서만 주변 세계와 원만하고 적당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혹은 지붕 위에 올라 도시의 납작한 지붕들을 한눈에 볼 수도 있다. 균일함의 광경, 전체가 커다란 계단들처럼 지어져 있다. 그렇게 위에 올라서서 보면 도시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좁은 골목들은 장애물이 아니고 오히려 더는 보이지 않아 그런 게 있다는 사실까지 잊고 만다. 아틀라스 산맥의 산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번쩍여 알프스의 산들을 본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을 터이다. 만일 그 산의 광채가 지나치게 강렬하지 않다면, 그리고 도시 곳곳의 야자수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면 말이다.-54쪽

여기저기 솟은 이슬람 사원의 '미나레트'라고 불리는 첨탑들은 교회의 그것과는 다르다. 미나레트는 더 홀쭉한 모양이되 뾰족하지는 않고 위쪽이나 아래쪽이나 폭은 같은데, 중요한 건 높은 곳을 받치는 대(臺)로서 그곳에 기도하러 오라고 사람들을 부르게 된다느 ㄴ것이다. 미나레트는 빛이 밝은 등대와도 같지만 차이가 있다면 미나레트에서는 빛 대신 목소리들이 울려 퍼진다는 점이다.-56쪽

집들의 지붕 위로는 제비 떼가 이리저리 날고 있다. 그 모양이 마치 제2의 도시를 이룬 듯하다. 다만 골목길의 사람들이 느린 데 비해 새 떼는 빠르게 이동한다. 제비들은 결코 한자리에 머물지 않아 사람들은 그 새들이 대체 잠은 자는지 궁금해한다. 제비들은 게으름이 결여되어 있고 미리 재어 보는 사려와 신중함이 부족하달까. 새들은 날면서 먹이를 훔친다. 속이 빈 지붕을 저 새들은 자기들이 정복한 나라쯤으로 여길 것이다.-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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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옛날에 주위의 어느 누구도 폴 오스터,를 알아주지 않을 때 - 그때 내 주위엔 책 읽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기도 했겠지만 ㅡㅡ;;
나는 문 팰리스를 읽고 난 후 주구장창 폴 오스터의 책을 사들였다.

 

 

 



 폴 오스터의 글은 끔찍하게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구십년대, 처음 읽었던 책이 아마 '달의 궁전' , 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폴 오스터,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고.... 왜 나는 그 후 그의 글을 주춤거리며 읽는것이 느려졌을까?
그런데 더 궁금해지는 건, 내가 확실히 전작주의로 갈꺼야, 라는 생각을 하게끔 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은 아직 구입하지 않았을까..라는거다.
그의 책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에 살꺼야~!를 외쳐대놓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던거다. 으흑~

 

 

 

 



 확실히 '향수'가 제일 인상적이었겠지?

왜 갑자기 '좀머씨 이야기'가 떴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는 녀석이 이 책의 원서를 보면 한 문장이 한페이지를 넘어가는 끔찍한 책,이라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자길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얘기한 '사랑'이야기는 잊지말고 사서 읽어야겠다.


아, 원래 이 페이퍼에 쓰려고 한 건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고보니 또다시 일본작가들의 이야기로 가겠는걸. 이거, 내 소설 읽기의 편향일까 아니면 출판사들이 저마다 일본소설을 올해 유난히 많이 출판해서 그러는걸까?
어쨌거나 전작주의자가 아닌 것 같은 내가 서서히 작가의 이름만 보고 책을 구입해야지,라는 마음을 먹게 해버린 작가들이 있다.

우선 미야베 미유키.










처음 읽게 된 책은 '이유'이다. 두툼한 책이 결코 두툼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책.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늪에 빠져든 것처럼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어가게 되어버린 책이다.
그런데 웃긴건 내가 아직 모방범을 읽지 않았다는거다. 그녀의 책을 진중하게 읽고 싶어 한참 정신없을 때,를 피하자며 잠시 미뤄둔 것이 오늘까지 읽지 못한 채 쌓아두기만 하고 있다. 쯥~

 

 

 


하지만 머... 모방범에 비하면 새발의 피처럼 짧은 (?) 그녀의 다른 책은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스텝파더스텝은 이어지는 이야기로 계속 나왔으면 하는 책이고, 그녀의 유명세는 이렇게 그녀의 책을 끊임없이 계속 출판하게 해 주고 있으니 큰 불만은 없다. (미야베 미유키,의 책이어서 불만은 없지만, 아니 오히려 내게는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독서편향으로 볼 때, 좀 더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어야 하는데 일부 보장되는 유명 작가들의 책만 출판되는 거 아닌가라는 걱정도 슬며시 치밀어 올라오기는 하네...;;)
아무튼 야금야금 읽어갈거다.

그리고 올해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그, 오쿠다 히데오. (아니, 작년부터 그에대한 열광은 시작되었었던가? ^^;;)

 

 

 


웃음 없이 그의 책을 읽는 것은 힘들것이다.
아마 그래서 더 그의 책에 열광하게 되는거 아닐까?
사실 오쿠다 히데오의 책에 푹 빠져들어 열광할만큼은 아니다, 싶기도 하지만 공중그네의 느낌과 라라피포의 느낌과 남쪽으로 튀어의 느낌은 아주 다르다. 아, 물론 걸 역시. 작품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생각하면 같은 작가의 책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웃음이 어디 가겠는가. 오쿠다 히데오, 그는 정말 이야기꾼이다.

그리고 이 사람, 가네시로 카즈키 (아아, 맨날 헷갈려하던 이름이었는데 이제야 겨우 익숙해지려한다)









좀 챙피한 고백인데, 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 시간이 많이 남아 조카녀석 손을 잡고 서점을 찾아갔다. 조카는 신나서 도라에몽을 열심히 보고 있었고, 나는 일어도 모르는 주제에 기념이 될 만한 책 없을까 하며 글자를 그림구경하듯 보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직원에게 이 작가에 대해 물어봐야지, 하고 갔는데 작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거다. 가네시로 어쩌구,,, 하긴 했는데 그 여자애, 멀뚱멀뚱 쳐다보길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외쳐댔다. 고우나 스피드까지 외쳤지만 완전히 정신나간 사람 취급이다.
그렇게 괜한 짓을 하고 돌아와서 열심히 가네시로 카즈키,를 외우기 시작했다. ㅡ,.ㅡ

머, 별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놨는데, 이 사람의 작품이 아~ 주 유명하지는 않지만 일본에서는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고 예약판매까지 될 만큼 인기도 꽤 있다고 한다.
괜히 영화때문에 뜬 작가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단지 영화때문에 뜨는 작가는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볼때 이 사람의 작품은 오쿠다 히데오의 웃음을 능가하는 것 같다. 왠지 모를 설레임과 청춘이 있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사람의 작품만큼은 전작주의로 갈 생각이다.
아, 그러고보니 아직 연애소설은 사지못했다.
사야하는 책이 늘어나고 있군.

정작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도 않고 책만 늘어놓은 셈인가.

- 그보다도 왜 이 늦은 시간에 페이퍼를 쓰기 시작해 괜히 어중간하게 글을 끊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잘 쓰지도 못하고.... 으으~ 빨리 뒤집어 쓰러져 자야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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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12-11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도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이군요. 그럼 우린 취향이 비슷한 건가요? ^^(다만 미야베 미유키는 모방범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다른 책들은 이제 봐야지 하고 있어요. ) 밤이 많이 늦었죠. 푹 주무시고 내일도 힘내서 열심히.... ^^

balmas 2006-12-11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쿠다 히데오,
ㅎㅎㅎ 나도 빨리 읽어봐야 할 텐데 ;;;;;;;;;;;;;

chika 2006-12-1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새벽별님! 님은 모~든 책의 전작주의자,이신것같다구요~! (엄청난 독서량,,존경스럽사옵~ ^^)
발마스님/ 오쿠다 히데오, 재밌어요. 울적할 땐 최고죠. 특히 남쪽으로 튀어,는 압권일걸요? ㅎㅎ
바람돌이님/ 엄머! 그러게요!! 전번에도 한번 비슷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말예요. 미야베 미유키 책은 반대네요? 모방범만 안읽었는데. ㅋㅋㅋ

부리 2006-12-1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달의궁전 이후 오스터 전작주의자가 되었는데요 요즘은 사놓고 안읽은 책도 있다지요. 그리고 쥐스킨트 역시, 향수 읽고 감동해서 다 읽었는데 역시 향수만한 책이 없더군요 좀머씨 류는 다 양장본에 얇고 비싸고...

chika 2006-12-1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의 궁전과 향수는 정말!!
- 근데 저는 좀머 씨 이야기와 그 부류(^^;;)는 아주 한 옛날에 사서...양장본도 아니고 엄청 비싸지도 않았슴다. ^^;;

얄라리랄라 2006-12-22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다리쿠 도 좋죠.

쎌론~ 2009-03-06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즐겨읽는 작가들과 똑같네요. 반가움에 인사드리고갑니다. ^^
윗분처럼 온다 리쿠도 이사카 고타로도 혹시 좋아하지 않으실까요? ^^
 
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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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과거에 사로잡히지 마. 앞으로의 네게는, 아직 열리지 않은 멋진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382)

뜬금없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연결된 부분은 그런것들이다.
차별은 어른들에게서 먼저 나오는 것이며 그에 대항할 힘이 없는 아이들은 쉽게 감염되고 재미로 차별을 전파시키기도 한다(98), 세상 사람들이무책임하게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하는 것(106).
그에 대해 이와모토 선생님은 그렇게 외친다.
'구사카, 난 유전은 믿지 않는다'라고. '개구리의 자식이 전부 개구리가된다면, 주위는 온통 개구리 투성이라 시끄러워서 견딜 수 없을거야. 난 평범한 체육 교사라서 어려운건 잘 모른다. 잘 모르는데도, 교육이라는 귀찮은 짓을 질리지도 않고 하고 있는 건 개구리의 자식이 개가 되거나 말이 되는 걸 보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야'(205-206)

이 책의 중심은 이런것이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내게 '마술'의 의미는 세상의 모든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잘못에 얽매여 살아가는 모두가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마술사가 꿈꾼것은 그런것이 아닐까? 이것이 '마술사의 환상'이라면 최고의 마술쇼가 될지도.

** 책의 내용과 전혀 엉뚱한 글,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말한 내용 역시 이 책의 일부이며 개인적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글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며 무작정 책을 펼치는 것이 좋기때문에 좀 더 친절하게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싶은 마음은 없다. 물론 리뷰를 정성껏 쓰기 귀찮아하는 게으름때문인거 아냐? 라고 한다면 절대로 아니라는 얘기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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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12-11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구리의 자식이 개가 되거나 말이 되는거? 어머 저도 보고싶어요. 근데 요즘은 그게 영 어렵다는게 씁쓸하죠. 당분간은 도서관도 책 구입도 자제하고 집에 있는 책을 먼저 보기로 했기 땜에 이 책 땡기지만 조금 참을래요. ^^

chika 2006-12-1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조금 참으시고 혹시 나중에 도서관에 들어가면 그때 빌려읽으심 되죠. ^^
 
죽음을 그리다 - 세계 지성들의 빛나는 삶과 죽음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주영 옮김 / 아고라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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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으면서 책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이 점점 심해져 책 읽다 말고 심각해져버리기도 했다. 죽음을 그려낸 이 책, 부제에 나온 것 처럼 세계 지성들의 빛.나.는. '삶'과 죽음이 담겨 있는거 맞나? 라는 생각이라도 들기 시작하면 책에 손가락 끼워놓고 이미 마음은 삼천포로 빠져들어버리고 만다.

나는 이 책을 쓴 작가가 '죽음'에 대해 지독히 냉소적이다, 라고 생각을 했다. 아니, 좀 더 내 느낌을 얘기하자면 '죽음'이라는 것 까지 가지 않고 이 책에 언급된 수많은 작가들의 '삶'에 대해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왜 난 그정도로밖에 느끼지 못하고 있는걸까? 무슨 상도 받았다는데 말야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거 아냐? 라는 생각을 할때쯤엔 이미 책의 주제와는 상관없이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는가만을 헤아리며 책장만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밑바닥에 깔려있는 '죽음의 공포'가 서서히 올라와 내 심장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책과 마주하기 싫은거야. 아니,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거울을 통해서 보는 진실같지만 거짓인 그런 모습으로라도 마주하기 싫었던거야.
이렇게 뒤늦게 서서히 올라온 죽음에 대한 생각이 이 책을 '죽음'에서 '삶'으로, 박제화되고 미화된 삶의 모습이 아니라 투명하게 바라보이는 삶과 죽음을 그려낸 책으로 읽을 수 있게 해줬다.

'자기 존재, 자기 말의 극한에 있는 존재, 자신의 군더더기를 삭제하다가 자신이 삭제되는 존재인 작가의 죽음은 평범한 인간의 죽음과 무엇이 다른가? 이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에 대해 말하는가? 작가들의 죽음은 흥미를 일으키거나 우울한 비밀, 이들이 일으키는 혐오감, 또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현실, 의미없는 글 이면에 존재하는 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언어가 죽음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일이다. 그런데 죽음은 언어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330)
수많은 소설 속 삶과 죽음은 그 글을 쓴 작가의 삶과 죽음이 아니며, 삶의 모습과 죽음의 모습이 같을수도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의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될까?

"난 이 책에서 작가들의 죽음을 사실 그대로만 전달하지는 않았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에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것이다. 내 글은 간접적으로 나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죽음을 샅샅이 파헤치면서도 죽은 이들이 남긴 말을 비스듬한 거울처럼 삽입하며 글을 쓴다..."(342-343)

결국 죽음이라는 것은 죽은이들의 몫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살아있는 자들에게 남겨진 몫이라는 생각이다. 죽음의 의미는 죽음을 그려내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죽음의 의미를 내 삶에 새겨넣는 것 아닐까?

책을 읽어가는 동안 '죽음'이라는 것은 내게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었다. 음악이 천재라 불리웠던 모짜르트가 죽고 난 후 쏟아지는 빗속에서 관도 없이 그대로 구덩이 속으로 던져지던 장면.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였을 것이다. 그런 무미건조하다 못해 죽음이라는 것이 차갑게 식어버린 시체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장까지 다 읽고 난 지금 내게 떠오른 것은 한 베트남 주교님의 글이다.
"나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현재의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며 살아가리라". (지금 이 순간을 살며, 구엔 반 투안, 바오로 딸)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남겨진 의미이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의 의미일 것이다. 그 이후의 의미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을 살며 죽음의 의미를 삶에 새겨넣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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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11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의 독서는 장르를 종잡을 수가 없이 다양해요. 감탄하고 있어요. ^^

chika 2006-12-1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니, 머. 그냥 닥치는 대로 읽어요. 조금 깊이가 없어 문제일지도 모르지요. ㅋ
- 글고 다양함속에서도 일단은 재밌는 책은 무조건 골라보는 편향이 있어요. ^^
 

한때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문고판 서적을 읽었다. 그때쯤 나는 아가다 크리스티,라는 이름을 알았고, 많은 아이들이 홈즈를 읽으며 클 때 나는 크리스티를 읽으며 컸다. ㅡㅡ;;;
그때는 그냥 생각없이 읽었던 추리소설,이라는 것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읽기 시작하니 또 다른 느낌으로 묘하게 빠져들게 된다.

일본 드라마 '소년 탐정 김전일'을 보면 김전일이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사건을 해결해내고야 말겠다고 외쳐대곤 한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누군가의 명예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죄를 지은 범인은 반드시 밝혀내야한다는 각오로 들렸다.

그리고 그와는 다른 느낌으로, 반드시 '범인'을 밝혀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 범인의 행적을 따라가고 범죄를 쫓아가다보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일면을 보게 되는 '추리소설'을 읽게 되었다. 이건 소년 탐정 김전일의 역할을 한 일본배우 마츠모토 준이 폼나게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라 외쳐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의 울림이 있는 외침이다.

 

 

 

 

굳이 설교하려 하지 않는다. 사형대의 계단을 걸어가라고 등떠밀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추리소설도 아니고, 이 책은 아직 읽지 못한 책이다. 한달 전에 구입만 해놓고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는 책.
선뜻 책을 펴들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아직 이 책을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련다.
13계단이 뜻밖에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줬었던 것처럼 이 책 역시 깊이있게 다가올 듯 하다.


아, 머 어쨌든 다시 '추리소설'로 돌아가서. (사실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추리소설 어쩌구 하면서 페이퍼를 쓸라니 좀 머쓱,한 기분이다. ㅡ,.ㅡ)

 

사실 페이퍼 하나 써봐야지, 라고 마음먹게 만든 건 엊그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이 생기면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 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왜' 죽였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을까?

 

 

 

 

 

추리소설,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이런식이라면 너무 편향적이지 않은가. 이것 말고도 내가 읽은 책은 몇 권 더 되지만 언뜻 생각나는 책들. 내용은 아주 제각각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들이다.
사람이 살고 있고, 삶이 있고,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사건들이 있다.

그리고.
나를 아주 우울하게 만들었었던 백야행.

 

 

 

 

똑같은 질문에 대한 기리하라의 대답은, 한낮에 걷고 싶어, 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같아, 라며 히로에는 기리하라의 대답에 웃었다.
"기리하라 씨, 그렇게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요?"
"내 인생은 백야(白夜) 속을 걷는 것 같으니까"(둘째권 141쪽)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세째권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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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6-12-09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원래 쓰려던 건 이런 페이퍼가 아니었는데... 역시 집중이 안되어 있다. ㅜㅡ

반딧불,, 2006-12-09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870003

윽..잠깐 사이에 70000이 넘어갔군요..ㅠㅠ; 축하드려요.


chika 2006-12-09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네. 이 페이퍼 쓰다보니. ㅜㅡ

반딧불,, 2006-12-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야행 재밌어요?? 저는 히라시고 게이고 책 세 권 읽고는 손을 대기가 싫거든요.
근데 생각해보니 다 그리 평이 좋지 않은 책만 읽은거든요.베스트가 아니라.

chika 2006-12-0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야행... 암울해요. 아주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환야를 읽으면서 백야행이 떠올랐는데. 글쎄 그 뭐랄까, '아주 좋아요!'하며 권하기보다는 '읽어보세요'라고 권해주고픈 책이예요.

물만두 2006-12-0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 사랑한데이~
반디님 백야행, 환야 읽으세요!!!

반딧불,, 2006-12-09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만두언냐가 나타나셨다..==33====333

chika 2006-12-0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만두언냐~ (와락!)
반딧불님, 잘 들으셨죠? 읽으시옵~ ^^

바람돌이 2006-12-10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라시노 게이고 책은 항상 읽고나면 찜짐 암울하던데요. 그래서 저는 그만 손을 싹.... 모방범 이후로 저기 있는 미유키 책들은 읽고싶어요. ^^

chika 2006-12-1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히라시노 게이고 책은 뭔가 암울하긴 해요. 그 중에 (지금까지 제가 읽은 책 중에는) 백야행이 최고로 암울해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ㅜㅡ
미야베 미유키 역시 암울한 이야기를 주제로 하긴 하지만 어딘가 조금은 희망적이기도 하고, 스텝 파더 스텝 같은 경우는 경쾌하게 통통 튀어서 너무 좋았어요.
북스피어에서 미야베 미유키 시리즈가 나오니까.... 계속 관심갖고 읽어줘야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