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문고판 서적을 읽었다. 그때쯤 나는 아가다 크리스티,라는 이름을 알았고, 많은 아이들이 홈즈를 읽으며 클 때 나는 크리스티를 읽으며 컸다. ㅡㅡ;;;
그때는 그냥 생각없이 읽었던 추리소설,이라는 것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읽기 시작하니 또 다른 느낌으로 묘하게 빠져들게 된다.
일본 드라마 '소년 탐정 김전일'을 보면 김전일이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사건을 해결해내고야 말겠다고 외쳐대곤 한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누군가의 명예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죄를 지은 범인은 반드시 밝혀내야한다는 각오로 들렸다.
그리고 그와는 다른 느낌으로, 반드시 '범인'을 밝혀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 범인의 행적을 따라가고 범죄를 쫓아가다보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일면을 보게 되는 '추리소설'을 읽게 되었다. 이건 소년 탐정 김전일의 역할을 한 일본배우 마츠모토 준이 폼나게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라 외쳐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의 울림이 있는 외침이다.

굳이 설교하려 하지 않는다. 사형대의 계단을 걸어가라고 등떠밀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추리소설도 아니고, 이 책은 아직 읽지 못한 책이다. 한달 전에 구입만 해놓고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는 책.
선뜻 책을 펴들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아직 이 책을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련다.
13계단이 뜻밖에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줬었던 것처럼 이 책 역시 깊이있게 다가올 듯 하다.
아, 머 어쨌든 다시 '추리소설'로 돌아가서. (사실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추리소설 어쩌구 하면서 페이퍼를 쓸라니 좀 머쓱,한 기분이다. ㅡ,.ㅡ)

사실 페이퍼 하나 써봐야지, 라고 마음먹게 만든 건 엊그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이 생기면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 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왜' 죽였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을까?






추리소설,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이런식이라면 너무 편향적이지 않은가. 이것 말고도 내가 읽은 책은 몇 권 더 되지만 언뜻 생각나는 책들. 내용은 아주 제각각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들이다.
사람이 살고 있고, 삶이 있고,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사건들이 있다.
그리고.
나를 아주 우울하게 만들었었던 백야행.



똑같은 질문에 대한 기리하라의 대답은, 한낮에 걷고 싶어, 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같아, 라며 히로에는 기리하라의 대답에 웃었다.
"기리하라 씨, 그렇게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요?"
"내 인생은 백야(白夜) 속을 걷는 것 같으니까"(둘째권 141쪽)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세째권 2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