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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그리다 - 세계 지성들의 빛나는 삶과 죽음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주영 옮김 / 아고라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책을 읽으면서 책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이 점점 심해져 책 읽다 말고 심각해져버리기도 했다. 죽음을 그려낸 이 책, 부제에 나온 것 처럼 세계 지성들의 빛.나.는. '삶'과 죽음이 담겨 있는거 맞나? 라는 생각이라도 들기 시작하면 책에 손가락 끼워놓고 이미 마음은 삼천포로 빠져들어버리고 만다.
나는 이 책을 쓴 작가가 '죽음'에 대해 지독히 냉소적이다, 라고 생각을 했다. 아니, 좀 더 내 느낌을 얘기하자면 '죽음'이라는 것 까지 가지 않고 이 책에 언급된 수많은 작가들의 '삶'에 대해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왜 난 그정도로밖에 느끼지 못하고 있는걸까? 무슨 상도 받았다는데 말야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거 아냐? 라는 생각을 할때쯤엔 이미 책의 주제와는 상관없이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는가만을 헤아리며 책장만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밑바닥에 깔려있는 '죽음의 공포'가 서서히 올라와 내 심장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책과 마주하기 싫은거야. 아니,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거울을 통해서 보는 진실같지만 거짓인 그런 모습으로라도 마주하기 싫었던거야.
이렇게 뒤늦게 서서히 올라온 죽음에 대한 생각이 이 책을 '죽음'에서 '삶'으로, 박제화되고 미화된 삶의 모습이 아니라 투명하게 바라보이는 삶과 죽음을 그려낸 책으로 읽을 수 있게 해줬다.
'자기 존재, 자기 말의 극한에 있는 존재, 자신의 군더더기를 삭제하다가 자신이 삭제되는 존재인 작가의 죽음은 평범한 인간의 죽음과 무엇이 다른가? 이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에 대해 말하는가? 작가들의 죽음은 흥미를 일으키거나 우울한 비밀, 이들이 일으키는 혐오감, 또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현실, 의미없는 글 이면에 존재하는 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언어가 죽음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일이다. 그런데 죽음은 언어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330)
수많은 소설 속 삶과 죽음은 그 글을 쓴 작가의 삶과 죽음이 아니며, 삶의 모습과 죽음의 모습이 같을수도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의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될까?
"난 이 책에서 작가들의 죽음을 사실 그대로만 전달하지는 않았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에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것이다. 내 글은 간접적으로 나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죽음을 샅샅이 파헤치면서도 죽은 이들이 남긴 말을 비스듬한 거울처럼 삽입하며 글을 쓴다..."(342-343)
결국 죽음이라는 것은 죽은이들의 몫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살아있는 자들에게 남겨진 몫이라는 생각이다. 죽음의 의미는 죽음을 그려내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죽음의 의미를 내 삶에 새겨넣는 것 아닐까?
책을 읽어가는 동안 '죽음'이라는 것은 내게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었다. 음악이 천재라 불리웠던 모짜르트가 죽고 난 후 쏟아지는 빗속에서 관도 없이 그대로 구덩이 속으로 던져지던 장면.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였을 것이다. 그런 무미건조하다 못해 죽음이라는 것이 차갑게 식어버린 시체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장까지 다 읽고 난 지금 내게 떠오른 것은 한 베트남 주교님의 글이다.
"나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현재의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며 살아가리라". (지금 이 순간을 살며, 구엔 반 투안, 바오로 딸)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남겨진 의미이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의 의미일 것이다. 그 이후의 의미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을 살며 죽음의 의미를 삶에 새겨넣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