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친절은 맹장염만큼이나 고통스럽다.
나는 아무것도 해주는 게 없는데, 아이들은 너무 친절하고 그 와중에 또 자신들의 친절을 계속해서 되살리고 재충전해서 베풀고있으므로, 나는 몸을 앞으로 구부린 채 잠시 가만히 멈춰 있어야한다.
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 - 정원과 화분을 가꾸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식물 이야기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전 아는 분이 수선화와 튤립 뿌리 몇개와 꽃피는 허브 몇 종류를 갖다 주셨다. 집에 작은 마당이 있는데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셔서 수선화 구근을 좀 달라 말씀드렸더니 꽃피는 것들을 눈에 보이는대로 갖다주신 것이다. 향이 좋은 제주 수선은 이미 철이 지나 꽃이 다 져버렸지만 샛노란 왕관모양의 노란 수선은 꽃망울이 올라올 때 받았는데 오늘 출근하면서 보니 벌써 꽃이 대여섯개나 피어나고 있었다. 꽃이 지고난 후에 그대로 잘 두면 내년에도 꽃을 볼 수 있을까?

사실 히야신스가 너무 이쁘게 피어서 구입을 하고 꽃이 지고난 후 혹시나 하는 맘에 마당의 화분에 버리듯 심어 뒀더니 그 후로 해마다 꽃이 피어나서 좋기는한데 처음 화원에서 사 왔을때의 그 화려하고 탐스러운 꽃은 더이상 피어오르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튤립이 정말 심기 힘든 식물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이 정보만으로는 튤립이 꽃을 피우고 난 후 튤립의 구근을 그대로 뒀을 때 다음 해 또 꽃을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다른 책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본 기억이 있는데...그래도 야생 튤립의 꽃을 내년에도 볼 수 있을지 조금은 기대가 된다.

아무튼 큰 기대는 없었는데 중반을 넘어 읽다보니 농작물도 파종시기가 있듯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마당에 심는 시기와 정원 일을 위한 시기별 할 일이 정리되어 있기도 하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경험치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주듯이 지금 시기에 튤립 구근을 심는 것이 맞다고 적혀있어 내심 감탄하고 있다.

 

처음 식물의 특성, 재배환경, 종류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식물에 대한 전반적인 상식 이야기들이어서 다른 식물 이야기 책과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식물 자체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식물을 키우는 정원에서 마주칠 수 있는 벌레, 곤충, 흙.. 같은 환경적인 것과 식물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읽다보니 역시 정원사의 글이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상식처럼 알고 있었던 달걀껍질이나 차 찌꺼기를 흙에 뿌려도 좋다는 것은 뭔가 특별함보다는 차를 마실때 뜨거운 물을 부었을 뿐 사람이 차로 마시는 것이어서 식물에게도 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에 앞으로 마당에 슬며시 던져넣어도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것같다.

식물에 대한 것도, 정원가꾸기에 대한 것도 알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었는데 지금 당장 가장 유용한 정보는 '잘 관리해도 식물이 꽃을 피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내용이었다. 물만 충분히 주면 된다는 스파티필룸을 키우고 있는데 집 마루에서 꽃이 피지 않아 왜 그런가 싶었는데 어쩌면 너무 따뜻한 환경이 오히려 꽃을 못보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잠시 화분의 위치를 바꿔 현관에 놓아둬봐야겠다.

 

그리고 관상용 식물의 대부분이 외래종이라고 하는데 - 이것은 단지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이런 외래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토박이로 살아온 품종들을 몰아내는 것이다. "생태계를 훼방 놓지 않으려면 모든 의식 있는 정원사가 나서서 이런 외래종 식물들의 씨앗이 성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진 꽃은 지체하지 말고 잘라주어야 한다/ '제대로 된' 정원사는 이런 식으로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111)

 

이렇게 여러 측면에서 유익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는데 무엇보다 책에 실려있는 수많은 식물, 꽃 그림을 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다. 식물 세밀화가 너무 멋지게 그려져 있어서 누구의 그림일까 궁금했는데 출처가 슈투트가르트의 뷔르텔베르크 주립도서관 소장 도서, 라고만 되어 있다. 다른 식물관련 도서에서 본 개양귀비꽃 그림이 똑같은 느낌인데 고서의 그림이 똑같이 인용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름다운 꽃그림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책을 읽는 즐거움이 배가되어 좋았다. 식물을 좋아한다면 당연히, 식물에 관심이 있다면 또 당연히, 식물의 광합성으로 인해 뿜어져 나오는 산소를 들이마시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튤립을 제대로 키우려면,

정원을 가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튤립을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로 통한다. 묵직한 튤립 알뿌리를 가을에 심으면 멋지게 꽃이 피지만, 그 이듬해에는 이파리 몇개만 형성되는 것을 너무나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걸까?
이 식물들이 여름철에 너무 습한 상태로 지냈던 데 이유가 있다. 중유럽 토양이 다 물이 잘 빠지는 것은 아닌 데다 유럽의 기후 여건이 지중해나 스텝기후인 소아시아 지역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튤립에게 필요한 건 여름철의 건조한 토양과 높은 기온이다. 이걸 가장 잘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튤림을 화분에 심은 다음 꽃이 핀 뒤에 구석지지만 가능한 한 햇빛이 잘 드는 장소에 두는 것이다. 그리고 잎은 완전히 말라 거의 저절로 알뿌리에서 떨어져나올 때에 비로소 제거해주어야 한다. 튤립은 중노동을 하는 꽃이다. 매년 이식물은 제 알뿌리를 다 먹어치우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양분 저장고를 만들어야 한다. 그 밖에도 이 식물은 이미 봄에 그 이듬해 봄에 필 꽃과 잎을 만들어놓는다. 수많은 왕성한 튤립 품종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듯 추가로 작은알뿌리들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런 알뿌리들은 아직 꽃을 피우지는 못한다.
하지만 잘 돌보아줄 경우 한 해 뒤에는 우리에게 꽃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제 튤립을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면서 봄철 성장기에 적어도 두 번, 그러니까 한 번은 꽃봉오리가 맺힐 때, 또 한 번은 꽃이 막 시들 때 적정량의 액체비료를주기 바란다. 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
김윤성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1년에 한번쯤은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사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는 직장생활의 비애같은 건 내게는 해당되지 않았고 십년쯤 전에는 좀 무리가 되는 계획이었는데도 강행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은 그때였다고 기억을 한다.

 

"여행은 기대만큼 아름답거나 근사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보다 훨씬 비루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가끔 오늘처럼 말도 안되는 풍경을 여행에서 만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한다. 이 한 풍경을 목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풍경을"(133)

 

사실 혼자 자유롭게 떠나는 여행을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여행이 기대만큼 아름답거나 근사하지 않다는 말에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남은 일정을 어색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함께 간 일행과 일정을 맞추고 힘들어도 참고 패키지 여행을 갔을 때는 함께 하는 일행과 마음이 맞지 않으면 여행 일정 내내 불편함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면 설레임이 인다. 일상보다 비루한 여행이 된다 하더라도 분명 어느 한순간은 잊지 못할 풍경, 내 삶의 한 순간을 행복하게 기억할 추억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삶에 대한 사유가 더해지는 여행의 시간을 보낸다면 기꺼이 여행생활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은 여행에서 경험한 에피소드들을 잔잔하게 풀어놓고 있다. 그냥 그런 이야기였다면 금세 잊혀가게 될 여행에세이중 하나가 되었을 것인데 사유의 시간들이 담겨있어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가봤던 곳에서의 이야기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풍경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따라가고 그렇지 않은 곳은 - 물론 가보지 못한 곳이 훨씬 더 많지만 - 그녀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녀가 찍은 멋진 사진들을 감상하며 책을 읽었다.

뭔가 딱히 꼬집어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은 그녀의 이야기와 오버랩되는 나의 이야기기 있고, 추억이 있고 또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의 설레임이 있어서 좋았다.

일상의 삶이 여행이고 여행이 곧 삶이 되는 시간들의 기록,은 지금 여기에서 또 언젠가 그곳에서 이뤄지고 있게 될 것이다. 나도 나만의 은유하는 순간들을 경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에서 만나는 예기치 못한 색깔은 작은 팔레트에 머물고 있는 내가 가진 색깔이 한계를 자주 넘어서곤 했다. 그때마다 왜 여행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여행을 통해 색깔의 한계뿐만 아니라, 스스로 알지 못했던 한계들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1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세상 어떤 물감으로도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파란빛을 띠고 레이크 루이스가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는 색깔의 한계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색이었다.
여행에서 만나는 예기치 못한 색깔은 작은 팔레트에 머물고 있는 내가 가진 색깔의 한계를 자주 넘어서곤 했다. 그때마다 왜 여행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여행을 통해 색깔의 한계뿐만 아니라, 스스로 알지 못했던 한계들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나는 레이크 루이스에서 또 하나의 파란색 물감을 내 작은팔레트에 채워 넣었다.
1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