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가은 결코 이럭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연이 어떻건 그윈플렌은 경탄할 만한 성공작이었다. 그는 인간의 슬픔에 대한 신의 가호가 내린 하늘의 선물과 같았다. 어턴 가호일까? 신의 가호가 있듯 악마의 가호도 있던가? 질문만 제기하고 답은 하지 않겠다. 452








사람들의 인상은 의식과 일상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인상은 신비하게 깎아낸 무수한 삶의 결과이다.그윈플렌이 본 얼굴 주름 중 고통, 노여움, 모욕감, 절망감으로 파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 어떤 아이들의 입은 한동안 먹지 못한 흔적이 역력했다. 어떤 남자는 아버지였고, 어떤 여자는 어머니였으며, 그들 뒤에는 파멸해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얼굴은 못된 습관에서 나와서 범죄로 들어서고 있는 얼굴이었다. 굳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알아야 한다면 그것은 무지와 가난 때문이었다. 그들은 얼굴에는 사회적 압박에 의해 삭제되어 증오로 변해 버린 선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노파의 이마에서는 굶주림이 선명하고, 어느 처녀의 이마 위에서는 매춘이 음산하게 드러났다. 어린 시절의 얼굴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소녀에게도 역시 음울함 뿐이었다. 이 무리들 속에는 무수한 팔만 있을뿐 연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꾼들은 더 나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일거리가 없었다. 가끔은 군인 하나가 노동자 곁에 와 앉았다. 가끔은 부상당한 병사였다. 그리하여 그윈플렌은이 광경, 전쟁이라는 유령을 보았다. 한쪽에서는 실업, 다른 쪽에서는 착취,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노예를 보았다. 몇몇 얼굴에서는 무엇인지 형언하기 어려운 인간이 짐승으로 돌아가는 퇴행 현상을 보았다. 인간이 짐승으로 퇴행하는 것은 높은사람들의 행복이 만들어 내는 막연한 무게의 압박으로 인해 아래에서 생겨나는 것이었다. 이 암흑 속에서, 그윈플렌에게는 빛이 들어오는 환기창 하나가 있었다. 그와 데아 두 사람은 고통의 날 속에서도 얼마간의 행복을 누렸다.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이 저주였다. 그윈플렌은 자신의 위에서 권력자와, 부자들과,
멋있고, 위대한 사람들, 우연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짓밟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진 것 없는 불우한 사람들의 창백한 얼굴 한 무더기를 구별해냈다. 520-521

만약 당신의 치료를 받은 환자가 죽는다면 당신은 사형을 당할 것이오.
만약 병이 치유되면요?
그 경우, 당신을 사형에 처할 것이오.
사람이 죽으면 당신의 어리석음을 처벌하고, 사람이 치유되면 당신의 오만함을 처벌하는 것이오. 두 경우 모두 교수형이 마땅하오. 593


운명은 간혹 우리에게 광기 한 잔을 주며 마실 것을 권한다. 손 하나가 구름 속에서 나와서 알 수 없는 취기로 가득 찬 잔을 우리에게 불쑥 건네는 것이다.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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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나간 후
상드린 콜레트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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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는 소설로 읽는 철학의 문제일까 싶었다. 쓰나미같은 파도가 밀려오고 점점 물에 잠기는 집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 탈출을 해야하는 가족이 있다. 11명의 가족이 타기에는 배가 작아 8명은 배를 타고 떠날 수 있지만 나머지 3명은 남아있어야 한다. 과연 가족에게 강요된 선택은 무엇일까?

어떤 결정이 되었든 또 다른 여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 상황에서 소설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고 이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 책을 손에서 놓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긴장감과 긴박함, 스릴이 넘쳐나는 가족의 앞날은, 지금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한 불안감과 겹쳐서 그런지 지구의 미래에 닥쳐올지 모르는 쓰나미 이후의 세계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듯 해 더 마음 졸이며 읽었다.

 

어느날 갑자기, 아니 실상은 언제나 그렇듯 세상경험 많은 이들의 눈에는 보였던 자연의 징조들은 무시되었고 괜찮다는 말만 믿고 있던 상태에서 갑자기 쓰나미가 밀려왔고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마디와 파타네 집만 남기고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물이 빠지기 시작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기다리며 생활에 적응해보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물이 빠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수위가 높아져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집마저 침수될 위기에 처해있다.

마디의 가족 11명이 집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자그마한 배 한 척, 그러나 배에는 8명 이상 탈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물의 수위는 점차 차올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들에게 결단은 강요되고... 결국 세 아이를 남겨두고 부모는 배를 타고 떠나버린다. 집에 남겨진 세 아이는 ... 우연찮게도 한 방에서 잠을 자는 중간의 아이들이다. 의외로 부모의 결정은 쉬워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아이들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를 했을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자식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미가 도대체 뭔가. 그녀는 지금까지 파타의 무모함을, 어리석은 희망을, 말이 안되는 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로테를 잃어버린 사람은 다름아닌 자신이었다. 그녀의 실책이었고, 그녀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왜 하필 로테일까? 언덕 위 집에 남겨진 아이들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이유 따위는 없었다. 우연을 어쩌겠는가. 사무치는 슬픔을 어쩌겠는가.(178)

 

이야기는 남겨진 아이들의 생활과 떠난 가족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집에 남겨진 아이들에게도, 떠난 이들에게도 첫날은 견딜 수 있을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각자의 고통과 위험이 시시각각 다가오게 되고...

그 나날들의 묘사가 세세하고 긴장감 넘치는 공포감을 주고 있어서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소설은 끝을 향해가고 있는데 도무지 이 이야기의 끝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이들 이야기의 끝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라거나 그들앞에 망망대해만 펼쳐졌다, 라는 것일까봐 더 두려웠다는 것이 맞을것이다.

 

독자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한박자 쉬어가지만 이야기는 끝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짐승과 다를 바 없어"라는 탄식이 과연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긴장감 넘치는 가족의 고통과 시련에 공포감이 더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기 급한 독서였는데 다시 곱씹어볼수록 생각해볼거리가 너무 많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 옳다, 그르다 라는 판단이 아니라 우리에게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일까,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되는 가치는 무엇일까 ... 정말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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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가 남부와 싸워 승리한 것과 관련
ㅡ이 문장은 북부의 승리를 말하는 거라 읽었는데, 바로뒤이은 문장은.

북부는 패자임을 인정했다.

줄창 책을 읽으면서 오타와 그에 준하는 문장의 독해가 쉽지않아지는게 이상해. 이럴 여유없이 책을 쭈욱 읽어나가야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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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인간으로 퇴화하지는 마라."
친구는 늑대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호모는 절대 누구도 물지 않았지만, 우르수스는 가끔 물곤했다. 적어도 무는 것이 우르수스의 특권이었다. 우르수스는 인간 혐오자였으며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곡예사가 되었다. 생계탓이기도 했다. 먹고사는 일이 사람의 신분을 결정짓기도 하는법이다. 게다가 인간 혐오자인 곡예사는 자신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혹은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해 의사 노릇도 했다.
15



 우르수스는 카리브 지역 인디언이 되는 것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는 혼자 사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 사는 사람은 문명 세계가 인정한 야만인의 축소판이다. 사람이란 떠돌면 떠돌수록 그만큼 더 외로워지며 그것에서 끊임없는 이동이 시작된다. 그는어디에 정착한다는 것을 길들여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길을 계속 가면서 인생을 보냈다. 도시들을 볼 때마다 그의 안에서는 잡목림과 빽빽한 나무들, 가시덤불, 바위굴등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진해졌다. 그의 진정한 고향 집은 숲이었다. 광장의 소음은 나무들의 함성과 비슷해 타향에 왔다는느낌이 크게 들지 않았다. 군중이 사막에 대한 욕구를 어느 정도까지는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그는 문과 창문이 있어서 일반 주택을 닮은 오두막이 불만이었다. 동굴 하나를 네 바퀴 위에 올려놓고 유랑했다면 만족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그는 미소 짓지 않았지만 웃었다. 가끔, 아니 상당히 자주, 씁쓸하게 웃었다. 미소는 동의의 표시이지만웃음은 대개 거부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인간을 증오하는 것이었다. 그의 그러한 증오는 집요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데려오는 환자들에게 그는 인간의 삶이 끔찍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혀주고 백성을 짓누르는것은 군주, 군주를 억누르는것은 전쟁, 전쟁을 짓누르는 것은 흑사병, 흑사병을 덮치는 것은 기근이다 등 모든 재앙은 어리석음으로 초래된다는 것을 말해준 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벌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죽음이 해방이라는 것을 인정한 다음에야 치료를 했다. 45-46


수다가 밤의 침묵보다 덜 음산하지는 않다. 밤의 수다에서는 잊힌자의 노여움이 느껴진다.
밤은 하나의 존재이며 밤과 암흑은구별해야 한다.
밤 속에는 절대가 있으나 암흑속에는 다양성이 있다.문법 논리는 암흑에게 단수(數)를 인정하지 않는다. 밤은 하나이며 암혹은 여럿이다.
밤의 신비를 간직한 안개는 그 자체가 산만하고 덧없으며 무너짐과 불길함을 가진다. 그 속에서는 더는 육지를 느끼지 못하고 다른 현실만을 느낀다. 무한하고 규정할 수 없는 어둠 속에는 살아 있는 무엇, 혹은 누군가가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것은 우리 죽음의 일부이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삶의 여정이 끝날 때, 그러한 어둠이 우리에게 빛이 될 때, 우리의 삶 저 너머에 있는 생명이 우리를 가져갈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생명은 우리를 더듬는 것 같다. 어둠은 압박이다. 밤은 우리의 영혼에 대한 일종의 지배다. 어떨 때는 묘석 뒤에 있는 무언가가 우리를 잠식하는 것을 느낀다.
그런 미지의 존재가 우리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생생하게느껴지는 때는 바로 바다의 폭풍 속에 있을 때이다. 그 속에서는 공포가 기이함을 먹이로 삼아 더욱 커진다. 인간 활동을 중단시킬 수 있는 제우스는 자신의 마음에 들도록 사건을 만들기위해 변화무쌍한 질료, 일관성 없는 사건, 그지없는 무질서, 편견 없는 확산력 같은 것을 마음대로 사용한다. 폭풍이라는 신비는 매 순간 우리가 알 수 없는 의지의 변화를 표면적이건 혹은 실질적이건 간에 받아들이고 실행한다.
 시인들은 그것을 파도의 변덕이라 불렀지만 그러나 변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에서 뜻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때 그것을 변덕이라 부르고, 운명에서 일어날 때는 우연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모두 우리가 희미하게 포착할 수 있는 법칙의 일부이다. 168-169


바킬페드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가장 보잘것없으나 가장 무서운 자였다. 바로 질투하는 자였던 것이다.
질투는 왕궁에서 언제나 할 일이 있다.
궁정은, 질투하는 자와의 대화가 필요한, 건방지고 무례한 자들, 할 일 없는 자들, 쑥덕공론에 굶주린 부오한 게으름뱅이, 건초 다발 속에서 바늘 찾는 자들, 재난을 만드는 자들, 조롱당한 조롱꾼들, 멍청이들로 넘쳐난다.
사람들이 또 다른 이에게 이야기하는 악이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란 말인가!
질투는 남의 일을 정탐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아주 좋은재료이다.
질투라는 자연스러운 열정과, 염탐질이라는 사회적 기능 사이에는, 매우 깊은 유사성이 있다. 정탐꾼은 마치 사냥개와 같이 다른 이를 위해 사냥을 하고, 질투꾼은 고양이처럼 스스로를 위해 사냥을 한다.
하나의 강렬한 자아, 그것이 질투꾼의 진면목이다.
39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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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미가 도대체 뭔가. 그녀는 지금까지 파타의 무모함을, 어리석은 희망을, 말이 안되는 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로테를 잃어버린 사람은 다름아닌 자신이었다. 그녀의 실책이었고, 그녀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왜 하필 로테일까? 언덕 위 집에 남겨진 아이들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이유 따위는 없었다. 우연을 어쩌겠는가. 사무치는 슬픔을 어쩌겠는가.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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