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자전거를 타는 것은 삶의 방식이다. 언제까지나 계속되며 안전하고 자동차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이다. ... 자전거타기는 교통사고로부터 진정 해방됨을, 소비적인 사회와 전쟁으로부터 해방됨을 뜻한다. 석유와 비만을 해결하는 길이기도 하다. 문제는 시간이다. 자전거타기가 정착된 사회는 속도와 경쟁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다. 자전거타기가 왜 위협적인 일인지 이제 눈치챘을 것이다. 그것은 사치스럽고 빨리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대안이다........(14쪽)


그래. 시작은 그렇다. 조금 익숙하지 않은 거창한 말을 써 보자면 '자전거의 혁명'을 떠올려보게 했다. 사치스럽고 빨리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대안인 '삶의 방식으로서의 자전거 타기'가 그냥 말로만 떠들어대는 구호가 아니라 미국을 횡단하는 이야기로 현실이 된 것이다. 혁명의 한걸음을 내딛게 되는 순간, 인 것인지도. 굳이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그렇다는것이지... 그렇다고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앞머리에서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한 여행이라고 툭 털어놓고 시작하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느긋해진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여행 이야기니 조금은 맘 편히 들을 자세를 갖추기 시작한다...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한다고? 왜 사서 고생해요? 이유가 뭔가요? 라는 물음에 홍동지 - 저자는 자신을 '홍동지'라고 표현하더라. 홍동지. 조금은 낯설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이름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 는 그저 '좋아서'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 이라는 문구 하나만 달고 가도 온갖 지원공세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가고 싶다고 거절한다. 나는 그의 그런 결정이 아쉽지 않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길을 가고, 그 길에서 만난 삶을 풀어놓아준 것이 내게는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온다. 물론 내가 경험한 것이라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처음 이 책에 관심을 가졌을 때, 왜 하필이면 '아메리카'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침략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이국의 국토를 횡단한 이야기가 괜찮은 이야기일까, 라는 생각.
여전히 '아메리카' - 엄밀히 말해 아메리카 대륙의 일부인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는걸 새삼 떠올려보면서 홍동지께서 보여주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하며 슬쩍 삐딱한 기대를 갖고 홍동지님의 자전거 여행에 무료 탑승을 했다. 편하게 다리를 쭈욱 뻗어올리고.

진도가 빨리 나가지는 않았다. 그가 자전거에 적응하는 시간만큼 나 역시 적응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었나보다. 생각보다 긴 여행이었다. 물론 나의 책읽기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숨에 후욱~! 하고 지나가버리면 안되는 것임을 무의식중에 깨달아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 자전거로 힘들이며 횡단여행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결국은 '즐거움을 위해' For fun 이라는 짧은 답 말고는 할말이 없었다는 그 말이 머리속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순간 내 마음으로 그냥 이해되어버렸을 때, 나는 책을 탁, 덮어버리고 당장 떠나고 싶었다. 나를 위한 나의 삶이, 나를 위한 나의 존재가 느끼고 싶은 나의 즐거움이 나를 살살 긁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용기없는 나는 다시 주저앉아 책을 펴들었다. 내가 지금 경험할 수 없다면 홍동지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봐야지. 안그래? 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을 느끼고, 온갖 어려움과 뜻밖의 행운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으며 그 안에 담겨 있는 뜻을 되새김질하며 읽기 시작했다. 여행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네가 정말 부럽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부럽지 않다는 마음이기 때문이 아니다. 자전거로 바라 본 세상 이야기, 자전거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들 모두가 자기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꿈을 갖고 있고 행복해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내 안에서도 타인에 대한 부러움이라는 마음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네가 부러워'가 이제는 '네 모습이 참 좋구나'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아, 자전거를 통해 본 세상은 이런거였구나. 내가 괜히 더 행복해진다.

자전거는 세상을 보는 눈이다. 안장 위에서 보는 세상은 차 안에서 보는 네모 속 세상과 다르다. 미국을 횡단하는 동반자로 자전거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전거가 지향하는 가치로 미국을, 그리고 내 자신을 보고자 한다.(15쪽)

그는 이 책에서 뭔가 의식적으로 가르침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세상 어느 곳을 가도 다 있게 마련인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왜곡된 역사가 굳이 잘못됐다고 열변을 토하지도 않는다. 그저 짧게 역사적 사실을 한두마디만 언급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좀 더 알수록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잘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자전거 여행'이었지만 단순히 자전거를 타고 여행한 것, 이 아닌 그 이상이다. 자전거를 통해 본 세상, 자전거가 지향하는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 자신을 돌아본다.
홍동지는 그 여행을 하였고, 나는 그의 여행에 박수갈채를 보내며 그 여정을 따라 걸어왔다.
이제는 내가 꿈을 꾸고 여행을 떠날 차례인가...나지막하게 내뱉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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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춘 2006-07-01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 자전거여행만 봤는데 이 책도 봐야겄어요. 감사감사

딸기 2006-07-0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치카언니 상탔다. 추카추카합니다~

chika 2006-07-0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딱! 고마워요~! 우하하핫~ ^^

하루(春) 2006-07-07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몰랐어요. 요즘 제가 변방에서 지내다 보니.. ^^;
아직 읽진 않았는데요. 길이로 봐선 상 받을만 했을 것 같다는... 헤헤~

하루(春) 2006-07-07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드네요. 호호호

chika 2006-07-0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니까요.. 저도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보고 까암딱 놀랐다니까요. 뭔넘의 서평을 이리 길게도 썼는지;;;;;;;
암튼 요즘 떠나고 싶어 죽어요~ ㅠ.ㅠ

해리포터7 2006-07-09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축하드려요.^^
저두 우리나라 대학생이 국토를 종단한책은 읽어봤는데 이책은 또 어떨지 궁금하네요.

비연 2006-07-09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

실비 2006-07-0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봤어요. 치카님 정말정말 축하드려요^^

프레이야 2006-07-10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처음이죠?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자전거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자전거가 끌고 가는 풍경을 더 좋아하지요..

반딧불,, 2006-07-10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넘넘 축하드립니다!

기다림으로 2006-07-10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리뷰도 즐겁게 읽고 가요.

chika 2006-07-1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모두... 감사합니다. ^^

마늘빵 2006-07-1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치카님 축하해요. ^^

chika 2006-07-1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슴다~ ^^,,

날개 2006-07-11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서야 알았어요.. 축하드려요~~!!!^^*

chika 2006-07-12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 ^^

세실 2006-07-15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머 축하드립니다. 흐미....도대체 몇번 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