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깊은 이성 친구 (작은책)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예전 부터 이 책을 한번 읽어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왜? 제목이 맘에 들어서...

속 깊은 이성 친구.
얼마나 매력적인가?
속 깊은 이성 친구가 있다는건, 정말 든든한 일이다.
그 친구 앞에서는 걱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 욕도 할 수 있고,
그 친구 앞에서는 긴장하지 않고 술마시고 가끔씩 취하기도 하고...
그런 친구... 그 어떤 보험 보다 사람을 든든하게 하는 최고의 빽이다.

장 자끄 상뻬의 책은 참 이쁘다.
파스텔톤의 일러스트레이션들이 참 편하고 정겹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기 전(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다)
하나의 짧은 이야기인지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38개의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레이션과 38개의 짧은 이야기가 있는 그림과 이야기 모음이다.

상뻬가 하나의 소재를 떠올려 짧은 이야기를 먼저 쓰고 그림을 그렸는지,
그림을 먼저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짧은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실제로 어떤 작업을 먼저 했는지는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으로는,
그림을 먼저 그린 것 같다.
(사실 글이 없어도 그림만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파스텔 톤의 잔잔한 그림들이지만, 생각할 거리들을 툭툭 던져주는
위력적인 그림들이다.)

38편의 일러스트레이션과 짧은 글들은
모두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침대나 회사 책상에 두고
가끔 펼쳐 보면 좋을 그런 책이다.

펼쳐 볼 때 마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그날 그날의 날씨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지식 축적과 체계적 독서에 목이 마른 사람이 읽는다면 돈 아까울 책이다. 글자 많은 걸 좋아하는 사람은 실망할 수도...)

내 마음을 살짝 건드린,
잔잔한 호수를 통통 튕겨가는 작은 돌멩이 처럼 와닿은 말이 있다.
초록색 파스텔톤의 오솔길을 한 남자가 급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 삽화와 함께...

"전화 한 통 받고도 이렇게 난리를 치는데,
나중엔 그녀 때문에 내 삶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p58)


두.려.움.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이 커진다.

기다리던 전화를 받고
첫눈 오는 날 어린 아이 처럼 그저 좋아했던 때와는 다르다.

사랑을 하는 것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마음을 여는 것이,
두.렵.다.

사랑을 하는 것이 가슴 벅차고 기쁜 만큼이나 두렵다.
좋을 땐 그저 좋기만 해도 되는데...

<속 깊은 이성 친구>에 실린 상뻬의 글과 그림은
상뻬의 연애의 산물이 아닐까?

2년전인가?
이소라 콘서트에 갔을 때, 이소라가 말했다.
자기의 노래들은 모두 연애의 산물이라고...
사랑할 땐 그 행복함과 즐거움을 노래하고,
헤어질 땐 그 마음 아픔을 노래하고,
헤어지고 나서 그 사람이 보고 싶거나 외로울 땐
그 절절한 마음을 노래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설레일 땐
다시 찾아온 설레임과 짜릿함을 노래한다고....

쌍뻬도 그런 경험으로 38편의 사랑 이야기를 쓴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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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후 네시>(아멜리 노통 지음/김남주 옮김/열린 책들)를 읽다.

<오후 네시>, <적의 화장법> 두 소설에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경악에 빠진다는 것...
자신이 이해해 왔던 자신의 모습은 "실체"가 아니었다는 것.
자신의 억압된 또는 숨겨져 왔던 모습을 보고 주인공은 파멸로 치닫는다.

이 소설을 매사에 딱딱 부러지는 사람이 읽는다면,
누구의 어떤 부탁에도 미안해하지 않고 "No"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읽는다면,
아주 아주 분명하고 논리적인 사람이 읽는다면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일 가지고 고민을 하지? 도대체 이게 고민할 거리가 된단 말이야? 거 참 프랑스 소설이란게 프랑스 영화 처럼 늘어지고 말도 안되네." 할지도 모른다.

무슨 내용인데 그러냐고?

한평생 라틴어 교사를 하다 정년퇴직을 한 에밀과 동갑내기 부인 쥘리에트는 평생 소원이었던 시골마을에 정착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한평생 꿈꾸어왔던 둘만의 한가한 생활 속에서 완벽한 행복함을 느낀다.

그런데....
어느날 앞집 남자가 불쑥 찾아온다.
그 남자는 이사한 이웃에게 인사를 하러 온게 아니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매일매일 오후 4시가 되면 노크를 한다.
불쑥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없이 두시간 동안 그들의 거실에 앉아 있다가 간다.

찾아 온 사람이 말도 꺼내지 않고,
애써 묻는 질문에도 "예","아니오"라는 단답형 질문만 한다.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어김 없이 찾아오는 이 불청객 때문에 에밀과 쥘리에트의 행복은 깨진다. 오후 네시가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
말도 하지 않으면서 매일매일 찾아오는 이 불청객에게 에밀과 쥘리에트는 "오지 마세요!" 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짜증이 나는 사람도 있겠지....
" 한번만 더 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을 하던지,
다신 오지 말라고 확실하게 말을 하던지,
그것 때문에 고민을 해? 거참..."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에밀은 평생 "예의"를 지키며 살아온 소시민이었다.
누구에게도 기분 나쁜 얘기를 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기분 나쁜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는
너무도 조용하고 질서있는 삶을 살아왔다.

에밀은 주위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이러한 소시민적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에밀은
정작 자신의 행복을 해치면서도
매일 매일 찾아오는 이웃에게 "오지 마세요!"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한다.

착하디 착한 에밀과 쥘리에트.
그들은 불청객을 피해 오후 네시가 되기 전 산책을 간다.
불청객의 방문을 피했음에 기뻐하면서 들어온 선량한 부부.
하지만 긴 산책 덕분에 쥘리에트는 감기에 걸린다.
( 이 부분은 거의 코미디에 가깝다.)

그런데 난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지 마세요!"라는 말 한마디를 못하는,
그렇게 괴롭고 싫으면서도
"이웃하고 잘 지내야 한다"는 어렸을 때 부터 교육받은 규율과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소시민들의 모습.
산소가 부족해 죽을 것 같은데도 "예의"라는 굴레 속에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건 내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그러기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도 앞집 사람에게 말을 못하고 끙끙 거리고 있었을꺼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안올까? 온갖 궁리를 하면서...

착한 사람들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온갖 핑계를 궁리하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기어 들어가는 모기 목소리로 "No"라고 말한다.

"싫다"라는 한마디면 단방에 끝나는 수많은 상황들에서...

<오후 네시>로 좀 더 확실해 진다.
곧 아멜리의 전작주의자가 될 나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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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적의 화장법>(아멜리 노통 지음/성귀수 옮김/문학세계사)를 읽다.

명상 초심자에게 있어서 제일 괴로운 순간은,
졸리는 것도 아니고 허리가 아픈 것도 아니다.

가장 괴로운 순간은,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영상"을 보는 거다.

도대체 내 모습이라고 고개 끄덕일 수 없는,
나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거다.

그럴 때 명상에서 깨어나고 만다.
그 순간을 견뎌야 하는데 그냥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만다.

나 아니라고 부정했던 어색한 내 모습을 보는 것,
유령 처럼 나타난 꽁꽁 숨어있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은 "두려움"이다.

<적의 화장법>을 읽으면서,
명상의 순간에서 깨어날 때의 "두려움"을 느꼈다.

끝까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논리"로 무장한,
그러다가 스스로 파멸해 버리는 주인공 앙귀스트를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꼈다.

난 <적의 화장법>을 읽으면서 아멜리에게 반해 버렸다.

아멜리는 밤마다 찾아오는 자살의 유혹에 대한 "대결(confrontement)" 수단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치.열.한걸까?

아멜리의 글쓰기에는 "느슨함"이 없다.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치고, 박고, 빠지고 다시 치고....
날렵하고 영리하다.
긴장 속에서도 유머를 놓지 않는다.
웃을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아무래도 나는 아멜리의 전작주의자가 될 것 같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아멜리.
하지만 <적과의 화장법>을 읽는 내내....
힘들었다.
피하고 싶은 내 모습을 봐야 하는 낯설음과 두려움.
이 소설을 읽는 기쁨과 함께 부록으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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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벨기에 출신 아멜리 노통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소설이다.읽으면서 때때로 통쾌하고,때때로 부끄럽고, 책을 덮을 때 까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멜리 노통이 그 수직적이고 위계질서가 군대 보다 더 철저한 일본 대기업에서 도대체 어떻게 버텼을까?
(작가에게 모든 체험은 글쓰기의 소재가 된다.일본 회사에서 화장실 청소를 한 그 굴욕과 수치심은 이런 훌륭한 소설을 탄생시켰다.)

일본 대기업에 비하면 한국 대기업은 대단히 유연한 편이다.
(한국 대기업이 유연하고 자유롭다는 말이 아니라, 일본에 비해
그나마 낫다는 말이다.)

일본에 출장을 가서 일본 회사의 회의실에 들어가면, 그 무거운 공기에 일단 주눅이 든다.아직도 여직원들은 유니폼을 입은 경우가 많다. 손님에게 음료수를 갖다 주는 여직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거의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그럴 때 나는 곤란함을 느낀다.

아멜리 노통은 외교관인 아버지와 덕분에 일본,중국,보르네오,라오스 등 아시아에서 자라났다.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을 고향 같이 느낀 아멜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대기업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때의 체험으로 이 소설 <두려움과 떨림>이 세상에 나왔다.

아멜리는 통렬하게 일본 사회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 일본 여자들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 아멜리의 동정심과 연민은 조소와 빈정거림과 뒤섞여 있다.)

아니, 일본 여성에게 찬사를 보내야-그래야 한다-하는 이유는 그녀가 자살하지 않기 때문이다.코흘리개 유년 시절부터 그녀의 꿈과 이상을 가로막는 음모가 시작된다.그녀의 뇌 속에 석고 반죽이 부어진다.<스물다섯 살에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할거야>,<웃으면 너는 품위를 잃게 돼>,<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면 저속한 거야>.<몸에 털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네 입으로 말하면 천박한 거야>,<남자애가 사람들 앞에서 뺨에 뽀뽀를 하면 너는 창녀야>,<음식을 먹는 게 즐겁다면 넌 돼지야>,<잠자는 게 좋으면 넌 굼벵이야>.만약 이런 원칙 때문에 사람이 주눅들지 않는다면,그것은 본질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p73)

일본 여성에게 찬사를 보내야 한다.
왜? 자살하니 않으니까.

이 페이지를 읽으면서 아멜리에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은 일본 여자에게만 찬사를 보내면 안된다고....
수많은 아시아 여자들이 더 심한 음모 속에서 자라난다고...

아멜리는 정말 예리하다.아멜리는 일본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제약"을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최고 성능의 카메라 처럼 모두 포착해 냈다.

 

내가 결코 너의 의무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열거할 수는 없을 거야,왜냐하면,넌 인생에서 단 한 순간도 이런 의무로 부터 자유로운 때가 없을 테니까.예를 들어,방광의 압박을 덜어 줘야 하는 보잘것없는 필요 때문에 화장실에 혼자 있을 때조차 네 시냇물에서 졸졸졸 나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의무가 있어.그러니 넌 쉴새없이 물을 내려야 할 거야.(p75)

화장실에서 쉴새 없이 물을 내리는 것 만큼 일본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조신함의 제약"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예가 또 있을까?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
일본여자애들하고 어울려 다닌 적이 있었다.
(난 일본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참 많았다. 영어,독일어를 잘하고 유럽애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나를 부러워 했다. 내가 멋있어 보인다나? 일본 애들이랑 마녀의 도시 Salem에 여행도 갔었다.마녀사냥을 당한 불쌍한 여자들의 혼이 떠도는 곳...)

그 여자애들하고 쇼핑을 하다가 백화점 화장실에 다함께 간 적이 있었다. 바로 옆 화장실에 들어간 일본애가 쉴새 없이 물을 내렸다.
자기가 내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나는 그 때 혼란스러웠다.
일본애들이 오버를 하며 아까운 물을 낭비하는 걸까,
아니명 한국 애들이 교양 없고 무식한걸까?

공항이나 글래스 타워 같은 빌딩 화장실에 가면
"에티켓 벨"이 있는 데가 있다.
에티켓 벨을 누르면, 뭐 새소리, 시냇물 소리 이런게 난다.
그런데 있어도 이거 누르는 사람 거의 없고,
누르면 전원이 연결 안되었는지 밧데리가 없는지
기능이 안되는 경우도 많다.

일본에서 수많은 빌딩에 가보았지만,
"에티켓 벨"은 보지 못했다.
그러면 아직도 일본 여자들은 쉴새 없이 물을 내리는 모양이다.

아멜리는 물을 쉴새 없이 내리는 일본 여자들의 행동을 하나의 단적인 예로 들어, 그들에게 가해진 제약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이제 하려고 하는 얘기를 네가 이해했으면 해서 그런 예를 드는 거야.네 존재에서 그만큼 은밀하고 별것 아닌 부분까지 지시에 따르게 된다면, 네 삶의 핵심적인 순간들에 가해질 제약은 당연히 얼마나 클지 한번 상상해 봐.
배가 고프다고?먹는 둥 마는 둥 해.길에서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네 몸매를 쳐다보는 - 그들은 그러지 않을거야-모습을 보고 흐뭇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집이 있는게 수치스러우니까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야.(p75)

그렇다. 하나 하나, 그 모든 은밀한 순간에서 까지 제약을 무의식중에 따르다 보면, 삶의 핵심적인 순간에서 자유의지로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다.아멜리는 일본에서 이런 모순을 읽었다.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소설 제목만 보면,언뜻 연애소설 같다.
이 소설의 제목 <두려움과 떨림>은 과거 일본 황실의 의전에, 천황을 알현할 때는 <두려움과 떨림>의 심정을 느껴야 한다는 규정에서 빌려온거다.

이 소설을 프랑스나 벨기에 사람들이 읽으면 참 통렬하면서 시원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너무도 비슷한 일본의 상황을 읽어내는 나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얄밉도록 예리한 아밀리 노통.
대단한 작가다. 언젠가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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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을 읽다.(웬디 베케트 지음/이주헌 감수/김현우 옮김/예담>

웬디 수녀는 우리의 자매다.
웬디 수녀는 페미니스트다.


<유럽 미술 산책> 읽고, 무슨 얘기냐고?
웬디 수녀는 기존 평론가들의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
남성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자도 않다.

웬디 수녀는 그림을 "왜곡" 없이, "편견" 없이 받아들인다.

이 책을 감수했다는 미술평론가 이주헌.
"감수의 말"(그것도 책 끝에 있는게 아니라 앞에 있다."감수의 말"이 앞에 있을 필요가 있나? 이 책에 "역자 후기"는 아예 없다.)에 이주헌은 이렇게 웬디수녀를 칭찬(?) 했다.
글을 읽을 때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그 글은 좋은 글이다.<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을 읽으면서 나는 웬디수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마치 할머니의 부드러운 옛날 이야기처럼 자상하고 따뜻하게 울려나오는 그 목소리는 미술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깝고 다정한 것인지를 마음 깊이 느끼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앞에 있는 "감수의 말"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주헌에게 화가 난다.
뭐? 할머니의 부.드.러.운 옛날 이야기???

이주헌에게 말해주고 싶다.

"선생님! 웬디 수녀의 그림 읽기는 너.무.도 예리합니다.
할머니,부드러운,자상한 이런 단어들....칭찬일지도 모르지만,
웬디 수녀를 폄하하는 것 처럼 들립니다.웬디 수녀는 그림을 감성과 지성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른 평론가들과 웬디 수녀의 차이점은 웬디 수녀가 아름다운 "영성"의 소유자라는 겁니다.

웬디 수녀는 이 세상 어떤 평론가 보다도 정확하고 예리합니다.
만약 이 책을 저명한 60대 노교수(물론 남자)가 썼다면,
할아버지, 자상한, 너그러운 이런 단어 쓰셨을까요?"


웬디 수녀의 그림 이야기는 예리하다.
몇개의 예를 들어 볼까?

한스 부르크마이어 Hans Burgkmair(1473~1531)의
성 울리히 St Ulrich와 성 바르바라 St Barbara에 대한 웬디수녀의 시각.
울리히는 약간 멍청해 보이긴 하지만 친절한 성자이고,바르바라는 매우 용감한 순교자라는 것이 이 이야기들이 전하는 바이다.그런데,부르크마이어가 그린 그림을 한번 보자,울리히는 틀림없는 성인처럼 묘사되어 있다.성의를 입고 있는 그는 아주 고상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데,그의 눈은 기도와 간청으로 차분히 가라앉아 있고,시선은 뭔가 희구하는 듯 하늘을 향하고 있다.참 그럴듯한 성인의 모습이다.
그러면 여자 성인 바르바라를 다루는 부르크마이어의 방식은 어떤가?그녀는 한껏 치장을 하고 있는데, 가슴은 풍만하고 입고 있는 옷의 무늬도 화려하다.거만한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은 왈가닥 중에도 왈가닥이고, 얼굴에는 상류 계층의 오만함이 가득하다.이런 여성을 성인이라고 생각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울리히는 성인이고 바르바라는 몹쓸 여자다.왜? 왜 남자가 성인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여자는 그렇지 않단 말인가? 부르크마이어가 성차별주의자였던 것은 아닐까?그렇게 끔찍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그냥 웃고 넘길 수밖에."(p167)
이렇게 웬디 수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소품 하나하나에 숨어 있는 "편견"도 놓치지 않는다.

이 책에 있는 수많은 그림 중, 내가 가장 감동 받은 그림은 바로
루벤스의 <추운 비너스>(Venus Frigida)다.
사랑은 분명 인생의 중심이 되는 빛이지만,그런 정신적인 빛이 있으려면 먼저 두 사람 사이의 물질적인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야 한다.내가 루벤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인간 전체를 존중해주기 때문이다.그는 솔직하게 육체를 찬미한다.그것을 함부로 다루거나 천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고,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강조하지도 않는다.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만 유머와 서정성을 잃어버리지도 않는,현명하고 균형 잡힌 사람이다.사랑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지원을(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임을 루벤스는 이해하고 있었다.(p205)

이래도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같아?

이 외에도 웬디수녀가 전하는 소중한 메세지, 따뜻한 울림, 가차 없는 충고가 많다.
웬디 수녀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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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10-10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습니다. 오래전부터 눈여겨 보았던 책이긴 한데, 선뜻 살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님의 글을 보니 결심이 서네요. ^^ 추천 꾹 누르고 갑니다.

수퍼겜보이 2005-05-02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 리뷰 쓰러 왔는데, 님 리뷰를 보니 비슷한 주제가 될 거 같아 추천하고 갑니다 :) 퍼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