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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나뉘어라 - 2006년 제3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정미경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평점 :
<나의 피투성이 연인>,<장밋빛 인생> 등 정미경 소설에 대한 주변의 호평을 여러번 들었지만, 정미경 소설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이번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으며 처음 만난 정미경의 소설.
아쉬웠다.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
정미경의 소설은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그러니까..."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라는 말이 아니라,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라는 말이다.
가볍게 슬슬 읽히면서도, 잠복하고 있던 몇몇 독한 문장들이 펀치를 날린다.
잠시도 긴장을 풀수 없는 스릴러...가 아니라,
긴장을 조였다 풀었다 리듬을 타게 한다.
허구한 날 주인공은 출판사 직원이나 잡지 기자, 그것도 아니면 방송 작가나 소설가,
소재는 불륜, 배경은 지방 소도시....
이런 여자 작가들의 고만고만한 소설에 언젠가부터 시큰둥했다.
그런데....정미경의 소설은 삶은 계란 세개를 연거푸 먹고 마시는
차가운 "칠성 사이다" 같았다. 그 통쾌함과 후련함이란!
정미경이 옆에 있다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소설을 읽으면서 "고맙다"라는 생각이 든건 처음이다!)
대상수상작인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
정미경의 자선 대표작인 <나의 피투성이 연인>,
우수상 수상작인 김영하의 <아이스크림>,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를 읽고 독서의 "양극화" 또는 "빈익빈 부익부"를 생각했다.
<개그콘서트>를 50~60대가 보면 별 재미가 없다.
왜? 패러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그맨들이 <친절한 금자씨>를 꼬아서 웃기고 있는데,
<친절한 금자씨>를 보지 못한 사람은 웃기지가 않는다.
김경욱의 소설 <위험한 독서>도 마찬가지다.
<위험한 독서>에 나오는 소설들을 읽었거나,
최소한 그 소설들을 쓴 작가의 스타일을 아는 사람에게만 웃기다.
인간의 성적 욕망을 대담하게 표현했던 D.H.로렌스였다면 어땠을까.....
하드보일드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적 방식은 어떤가...
인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제임스 조이스의 방식은 어떨까...
-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中 -
이런 식이니 읽는 이에 따라서 유머가 될수도 있고,
한 없는 지루함이 될 수도 있다.
(후자라면 다시는 김경욱의 소설을 읽지 않을 것이다!)
심사평에서 은희경은 김경욱의 소설을 평하며
"유머도 강해져서 소설을 잘 받쳐준다." 라고 했는데,
김경욱의 유머는 제목 <위험한 독서>만큼이나 "위험한" 유머다.
나머지 우수상 수상작인
구광본의 <긴 하루>, 함정임의 <자두>, 전경린의 <야상록>,
윤성희의 <무릎>도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 주었다.
구광본의 <긴 하루>는 몇장 안되는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제목 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새로운 형식, 새로운 시도도 좋지만 내겐 상당히 읽기 힘든 소설이었다.
정미경, 김경욱의 단편집을 읽어볼 계획이다.
살짝꿍....설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