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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강석경 외 지음 / 열화당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2002년 3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 71명의 글을 엮은 책이다.
가나다 순으로 '강석경'부터 '황석영'까지 71명의 작가들이 쓴 4페이지씩의 산문이 촘촘히 담겨있다.
71명의 작가들이 똑같은 질문에 대해서 똑같은 분량으로 쓴 글이라... 쓰면서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71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한 신문사의 원고청탁에 응하다니...
한국일보 참 대단하다!
또는 작가들 참 말 잘 듣는다! 라는 생각도 든다.
71명의 작가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글은
안정효 선생의 <글을 써야 하는 이유>라는 글이다.
문학작품이란 쓰는 사람에게나 읽는 사람에게나 다 같이 하나의 배설작용이다. 영화 또는 연극을 보거나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프로이트의 설명을 따르면 작중인물과 동일시를 통해 가슴에 맺힌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 버리는 작용이 되겠다.
하지만 배설작용은 일차적으로 쓰는 사람의 몫이요 특혜라고 믿는다. 글쓰기는 어차피 일종의 고백행위요, 궁극적으로는 자아 표현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쓰지 않으면 벌써 자살했을 것"이라고 했던 솔 벨로의 말처럼 작가의 응어리를 풀어 주는 기능이 먼저이고, 읽는 사람은 공감을 통해 모방 배설을 하는 셈이다.
생리적으로 인간은 배설을 못 하면 죽게 되고 정신적으로도 그런 현상은 비슷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끊임없이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을 정리하고, 정화하고, 그래서 삶을 계속하게 된다.
"응어리를 풀어 주는 기능".
끄적끄적 허접한 잡문을 쓰는 주제에
"응어리를 풀어 주는 기능"이라는 문학의 기능에 공감한다고 하면
참으로 건방진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접한 잡문이건 일기건 뭐건 글을 쓸때면(보고서, 품의서 빼고!)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것 까진 아니지만 후련해 지는 그런 느낌,
카타르시스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정화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기를 쓰는, 써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느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쓰린 속을 부여 잡고 후회한다.
왜 그렇게 마셨을까?
그런 쓸데 없는 말은 왜 했을까?
술김에 털어 놓은 치기 어린 고백들이 옮겨지지는 않을까?
글쓰기는 이런 역효과 없이 자기고백을 할 수 있는,
마음 속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가장 가깝고도 고마운 친구였다.
빡세고 드라이한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상당 부분 글쓰기를 통한 "배설"에 의존한 것 같다.
서른세 살에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전경린의
<작가에 대한 일곱 가지 기대에 관한 추억>이라는 글도 마음에 와 닿았다.
그때 작가에 대한 나의 기대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첫째, 몇 시간이든, 몇 날이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나의 방, 나의 집에 틀어박힐 명분을 가질 수 있다.
.......
넷째, 현실을 벗어나 버린 듯한,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듯한 사색의 시간과 책 읽을
시간에 대한 직업적인 권리를 확보하고 싶다.
.......
여섯째, 모든 성가신 의무를 글쓰기로 대신하고, 그로써 삶에 대한 면죄부를 얻을 수 있다.
제목 그대로 작가가 되기 전에 작가에 대해 품었던 "기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가끔 상상하는 작가에 대한 기대와 너무 비슷해 읽으면서 혼자 껄껄 웃었다.
사람들은 항상 남의 직업을 훔쳐볼 때, 좋은 점만 쏙쏙 골라 본다.
배수아 또한 <엄격에 사로잡힌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것이 혼자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조직에 속해 있을 이유가 전혀 없으며 단어 그대로,
원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상대해야 할 일도 없다." 는 말로 작가가 된 이유를 말했다.
나 또한 "혼자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강한 로망을 갖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은 없다.
71편의 글을 다 읽지는 않았다.
잠들기 전 한편씩 읽어보려 한다.
왜 그들은 글쟁이가 되었는지
한명 한명의 사연들을 읽으면서 당분간 잠들어야 겠다.
사족 1) 이 책의 편집은 정말....엉망이다.
표지 디자인도 정말....성의 없다.
별도로 기획한 책도 아니고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묶어서 펴 내면서 어쩜 이렇게 성의 없을 수가 있을까?
열화당의 "무임승차"를 의심하게 된다.
사족 2) 심상대의 <문학이 나를 탐낸다>는 읽다가 짜증나서 그만 뒀다.
4페이지 밖에 안되는 분량이라 왠만하면 참고 읽으려 했으나...
진짜...양아(양아치)스럽다. 어찌 그리 겉멋 들고 껄렁껄렁한지...
만나본 적은 없지만 징~하게 끈적거리는 남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