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모처럼 유쾌,통쾌,상쾌하게 수다를 떨었다. 6시간 동안!!!
시간만 넉넉했다면, 24시간 논스톱도 가능했을 것 같다. 말하고, 듣는 내내 넘 신났으니까...

사실 난 '특기'라고 할만한 게 별로 없다.
요즘 신입사원들을 보면 누구나 개인기가 있다.
보드나 인라인 같은 건 너무 흔해서 특기라고 하기에 뻘쭘할 정도다.
밸리 댄스도 추고, 스쿠버나 사격도 하고, 스쿼시 지도자 자격증이 있는 애들도 있다.
노래는 또 어찌나 잘하는지 노래방을 가면 마이크 잡기가 민망하다. 옛날 노래 부르기도 미안하고...

신입사원이 아니기에 이력서에 특기를 써내야 하는 곤란함은 당하지 않지만,
누가 특기를 물어 본다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런게 특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건,
술 마시며 밤새 떠드는 거다.
아무리 피곤해도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분출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어제 선배 P랑 7시 30분에 만나서 1시 30분까지 논스톱으로 수다를 떨었다.
둘이서 '6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한 사람이 3시간은 쉬지 않고 떠든 셈이다.

6시간 동안 정말 많은 맥주를 마셨다. 도대체 몇잔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에너지 소모가 커서 그런지 취하지도 않았다.
오늘 아침 속이 쓰렸던 걸로 보아, 주량에 거의 꽉 차게 마셨나 보다.

난 참 말하는 걸 좋아한다. 말도 잘하는 편이다.
대학 다닐 때, 개그맨을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 2학년 때, <청춘스케치>라는 대학생 장기자랑 프로 개그코너에 나간 적이 있다.
후배랑 둘이 나갔었는데, PD가 개그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다.

요즘은 탈랜트 수준의 예쁜 개그우먼들도 많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이영자, 조혜련 같은 거대한 여자들이 대세였다.
그 때(93년 5월)는 서경석, 이윤석이 데뷔하기 전이었고,
개그하면 온몸을 흔들어 웃기는 '오버'가 떠오르는 시기였다.

만약 지금이었다면,
개그를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신입사원 때는 모 라디오 방송에서 리포터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은 적도 있다.
그때 리포터를 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끊임 없이 바껴간다. 영화 <슬라이딩 도어스>처럼.

어제 만난 선배 P가 신나서 떠드는 나를 보며
라디오 패널 같은 거 하면 잘하겠다...고 말했다.
술 먹다가 한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가슴이 막 설레였다. 촌스럽게.

난 사실....라디오 책소개 프로 패널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누구한테 말해 본 적은 없지만.

내가 무슨 문학평론가도 아니고,
이주향처럼 교수는 아니더라도 시간강사도 아니고,
하루하루 헉헉거리는 회사원 주제에 그런 기회가 있겠어? 하며
혼자 생각하고 혼자 꼬리를 내렸다.

그런데 어제 선배의 지나가는 말을 듣고서
그 '꿈'이 떠올라 가슴이 쿵쿵 뛰었다.
알콜의 효과? 잊고 있던 꿈과의 재회?

언젠가 울 팀장이 술 마시다가 거래선 사람들한테 말했다.
" 얘는 연예인해도 되요.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별 것 아닌 얘기를 해도, 얘가 하면 웃기다니까...허허."

집에 오는 길에 이 기억, 저 기억 들추어 내면서
혹시...정말...라디오 패널이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가끔 말 통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술자리는
일상을 새콤달콤하게 만든다.
일상의 피곤함과 무력함을 날려 버린다.
그래서...술이 좋다. ㅎㅎㅎ

어제 소중한 6시간을 함께 해준,
잊고 있던 꿈 한조각을 선물해준,
수억 나온 술값을 대범하게 카드를 긁은 선배 P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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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6-06-1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정말 좋은 사람과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셨군요. 나이들수록 유쾌한 시간을 보내기가 더욱 힘든 것 같은데 잊고 있던 꿈까지 떠올리게 해주는 근사한 만남이라니! 정말 부럽습니다. 행복하게 지내세요, 수선님!

kleinsusun 2006-06-1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비만 오면 다락방님이 생각나요.ㅎㅎㅎ
비오는 토욜, 어떻게 보내셨어요?
어젠 정말 즐거웠답니다. 다락방님도 행복한 주말!^^

DJ뽀스 2006-06-10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6시간인가 7시간동안 "전화"로 수다떤 적 있습니다. ㅋㅋ

kleinsusun 2006-06-10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J뽀스님, 집 전화로요? 핸펀이면 밧데리 바꿔 가면서? ㅎㅎ
말 통하는 사람과의 수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요.^^

마늘빵 2006-06-1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 좋습니다.

2006-06-11 0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06-11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즐건 주말 보내고 계세요? 전 오늘 회사가요. ㅠㅠ

속삭이신님, 감사합니다. 근처에 오시면 꼭 한번 전화주세요.^^

2006-06-11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06-1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마시며 밤새 떠드는 특기! 이게 최곱니다!

kleinsusun 2006-06-1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감사합니다.^^ 근데...이력서 특기란에 쓸 수는 없쟎아요. ㅎㅎㅎ

릴케 현상 2006-06-14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부러운 특기네염... 제 특기는 밤새 술먹으며 떠드는 거 들어주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