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9단
양순자 지음 / 명진출판사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주 전, 토요일.
12시 조금 넘어서 반가운 전화가 왔다.
마드리드에 있는 사랑하는 L언니.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친구이자,
또 나를 제일 잘 알고 이해하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명이다.

수선 : 언니, 근데 지금 몇시야?
L 언니 : 새벽 4시야...잠이 안와.
계속 뒤척이다가 아예 자는거 포기하고 책 읽고 있었어.
수선 : 우째...피곤하겠당. 근데 무슨 책 읽어?
L 언니 : 인생 9단.
수선 : 뭐? 인생 9단? 음하하. 그런 책도 있어? 누가 쓴건데?
L 언니 : 양순자. 할머니가 쓴 에세인데, 읽을만해.
배울만한 점이 많아.너도 한번 읽어봐.

이렇게 해서....
나는 <인생 9단>이라는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제목의 책을 알게 되었고,
온라인 서점에서 저자 설명도 기사도 읽지 않고 덜컥 주문을 했다.

사실...책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그저 사랑하는 L언니와 공감대 하나, 이야기 거리 하나 더 만든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책을 주문했다.

언제나처럼 사무실에 택배가 도착하고,
살짝꿍 설레이는 마음으로 상자를 뜯고,
책의 첫장을 폈을 때,
난 좀...당황했다.

책이....반말로 써있었다.
" 곰곰히 생각해 보라구."
" 이 할머니한테 얘기 한번 들어 볼테야?"
" 잘 듣고 그대로 해봐."
뭐 이런 식으로....

이 책의 concept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인생 9단이 들려주는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인생 공식".

저자는 스스로를 "할머니"라 칭한다.
" 얼마나 좋아? 이 할머니가 미리 겪어 보고 말해주쟎아....."

내 머릿속에 "할머니"라는 개념은 적어도 여든은 된,
영화 <집으로>의 그런 연로한 할머니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포근하게 "할머니!" 라 부를 수 있는 그런 이미지였다.

스스로 "할머니"라 자칭하는 저자 양순자 할머니.
잠시 저자 소개를 보자.

1940년생. 서울구치소 교화위원으로 29년 동안 사형수 상담을 담당했다. 법무부 교정대상(박애상), 국무총리 인권옹호상, 법무부 장관상 등 수상한 바 있으며, 2005년 현재는 안양교도소 정신교육 강사, 양순자심리상담소 소장으로 있다.

40년생이 꼭 할머니로 불려야 하나?
그것도 스스로를 "할머니"라 불러야 하나?

책의 내용을 떠나
계속 되풀이 되는 " 이 할머니가 하는 말 잘 들어봐." 가
무진장 불편하고 거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40년생은 절대 할머니가 아니다.

새로운 사랑에 빠져 설레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일에서 그 빛을 발휘하며,
여자로도 여전히 매력적인 그런 나이다.

훌륭한 연기자로도 모자라 재테크 강사로 이름을 떨치는
전원주 - 1939년생

그녀의 연기를 보고 도대체 몇번을 울었던가?
여전히...너무도...아름다운,
또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의 저자
김혜자 - 1941년생

에너지가 넘치는, 그러면서도 절제된 연기를 하는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의 주인공, 최고의 연극배우
박정자 - 1942년생

여전히 아름다운, 늘 새로운 여행을 꿈꾸는,
여행 다큐멘터리에 열광하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 - 1947년생

나이가 들수록 중후한 매력이 넘치는 신사복 모델들 처럼,
여자도 나이가 들수록 매력적일 수 있다는걸 증명한,
너무도 아름답고 세련된,
우리 이모 - 1948년생.

누가 전원주나 김혜자, 박정자를 "할머니"라고 부를까?
몇년 후, 우리 엄마나 이모가 스스로를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훈화 말씀"을 하시려 할까?

어제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면서 이 책을 다 읽었다.
( 워낙 행간 간격이 크고, 거기에 삽화도 아닌 소도구 사진컷 까지 대량 들어가 있어서
금~방 읽는다.)

어시스트 언니가(어려 보이는데, 아들이 고등학생이라고 함)
책에 관심을 보이기에, 다 읽은 책을 그 언니께 드렸다.

"이거 정말 저 가져요?"
뜻밖에도....그 언니는 너무도 좋아라하며
책을 안고 다니며 디자이너들과 다른 스텝들한테
" 저 책 선물 받았어요!" 하며 자랑을 했다.

그 순간 난...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안볼 책이라 드린건데....양심에 찔렸다.
언젠가 내 책이 나온다면 꼭 한권 선물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삐딱한걸까?
인생 지혜롭게 살라고 인생 9단 할머니가
구구절절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데,
감동을 하기는 커녕 불편하고 거북해 하다니....

인생 9단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식모나 머슴 될 자신 없으면 결혼하지 마"
"당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부터 시작해"
"팔자 바꾸고 싶다고? 생각부터 바꿔" 등등....

처세술 책은 기본적으로 모두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이 책을 읽으면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와 같은 잔잔한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삐딱한 나는 불편했지만,
기쁘게 책을 선물 받은 그 언니가 행복하게 읽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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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1-26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마를 사드리나 어쩌나 나왔을 때 잠시 고민했던 책인데.
자신을 할머니라 칭하면서 말끝마다 한 수 가르쳐 주려는
책이라고요?
좀 거시기하네.ㅎㅎ
그리고 40년생이 할머니가 아니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는 수선님,
덕분에 저도 할머니가 되려면 엄청난 세월을 벌었군요.ㅎㅎㅎ

2005-11-26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클 2005-11-26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36년생인 우리 어무이도 아직 할머니가 아닌가베??? ^^
그나저나 수선낭자, 책 언제 나와요? 진행은 하고 있는건가요?

바람돌이 2005-11-26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정 어머니가 40년생인데 우리집 아이들은 할머니라는데....^^
근데 진짜 수선님 책은 작업하고 있는건가요. 기대돼요. ^^

kleinsusun 2005-11-26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엄마께 선물하기는....좀 아닌 책 같아요.
로드무비님 어머님은 인생 10단이 아니실까요?^^
참고로, 이 책은 인생 9단 할머니가 젊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얘기랍니당.

야클님, 그럼요.할머니가 아니죠!!! 누가 만약 할머니라고 부르면 제게 일러 주세요.ㅎㅎ 참....책은.....내년으로 연기했어요.ㅠㅠ

바람돌이님, 아...바람돌이님 어머님이 인생 9단 할머니와 동갑이시군요.
바람돌이님 아이들은 할머니라고 부를 수 밖에 없죠.ㅎㅎ
근데...책은요....내년으로 넘어갔어요.ㅠㅠ

글샘 2005-11-27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저 책 한번 딱 펴보고 도서관에서 쳐다도 안보고 있습니다만...
음... 내년에 살 책이 한 권 생겼군요. ㅎㅎㅎ 집필중이신가요?
저도 태어나서 첨이자 마지막으로 책을 남긴 적이 있었죠.(이러면 속을 듯... 제 이름 석자가 떡하니 박힌... 석사학위 논문이라고..ㅠ.ㅠ)
리뷰를 읽어 보니 안읽긴 잘 한 거 같네요.
우리도 슬슬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요? 절대적 시간으로...

kleinsusun 2005-11-27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헉...."우리도" 란 우리 모두, 알라디너 모두를 말씀하시는거죠? ㅎㅎ
저 아직...아줌마도 안 되었는데 벌써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으면 우째요??? 흑흑.

moonnight 2005-11-2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40년생은 저얼대 할머니가 아니죠. 이십년생이신 환자분께서 치료받으러 오시는데 분명 할아버님인 그 분도 얼마나 멋쟁이에 젊게 사시는데요 ^^ 처세술에 관한 책은 왠지 읽기가 싫어요. -_-; 호호. 저도 수선님 책 기다리고 있답니다. 열심히 써주세요!! ^^

kleinsusun 2005-11-2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onnight님, 좋은 아침입니당. 어제 푸~욱 잤더니 과음 후 쓰린 속을 잡고 맞이했던 지난주 월욜 대비 컨디션 최상입니당.ㅎㅎ
그죠? 40년생은 할머니가 아니죠? 계속 "이 할머니가..." 하는데 상당히 거북하더라구요. ^^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