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에 가면 자전거를 타면서 TV를 본다.
70개 넘는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가 맘에 드는게 있으면 정지한다.

오늘 SBS의 <돈이 보인다>는 프로를 봤다.
<러브 하우스>가 낡고 초라한 집을 최신 인테리어로 확 바꿔준다면,
<돈이 보인다>는 집이 아니라 생업의 공간인 가게를 바꿔준다.업종까지...

오늘의 의뢰인은 6평도 안되는 분식가게를 하는 부부였다.
하루 매출이 2만원도 안된다고 했다.
가게세를 몇달 내지 못해서 건물주인한테 가게를 빼라는 통지를 받았고, 초등학생인 딸 둘은 급식비를 못 내서 교무실에 불려 갔다가 둘이 마주쳤다고 한다. 전교에 급식비를 못낸 학생이 3명인데, 그 3명중 2명이 자매였단다.그 날 큰딸은 집에 와서 대성통곡을 했단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까....
( 이 부분에서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분식집은 낡고 좁고 지저분했다.
메뉴는 김밥부터 동태찌개까지 이것 저것 많고
뭐 하나 딱 맛있는게 없는 집.

<돈이 보인다>에서는 이 부부를 "대박집" (동태찌개 하나로 대박을 터뜨린 집)에서 실습을 시키고, 몇가지 테스트를 거친 후 분식집 자리에 최신 인테리어를 갖춘 동태찌개집을 차려준다.

개업한 날, 손님들이 넘쳐나고 동태찌개를 먹는 손님들은 하나 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장사가 잘되면 중학생이 되는 큰딸 교복을 사주고 싶다고 말했던 부부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애들 엄마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러브 하우스>,<체인징 유>,<꼭 한번 만나고 싶다>,<돈이 보인다>,<아시아 아시아> 이런 프로들.....이 프로들의 분명한 "순기능"을 인정한다.
분식집을 하던 가난한 부부처럼 가망 없던 가난에서 탈출할 구원을 만나기도 하고,
36년 전에 헤어졌던 오빠를 찾기도 하고,
이 추운 겨울에 불도 제대로 안들어 오는 침침한 방에 살던 할머니는 최신 주방에 뜨끈뜨끈한 방에 덤으로 전동식 휠체어를 선물 받기도 한다.
이 험난한 땅에 와서 온갖 설움을 겪던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10년만에 꿈에 그리던 엄마를 만나기도 한다.

이런 프로가 없다면,
이런 프로가 있다해도 주인공으로 선택되지 않았다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엄청난 행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발 너무 심한 오버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프로들을 보면서 감동할 때도 있지만 화가 날 때가 많다.
진행자들이 출연자들의 눈을 가리고,
커튼을 내리는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몇번씩 반복하고,
36년 전에 헤어진 오빠를 만나는 애가 타는 동생에게
"오빠가 왔을까요? 불러 보세요! "
비트 강한 음악이 나오고 시청자들까지 조마조마하게 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오빠가 나오고,
저 방글라데시에서 온 노모가 커튼 뒤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10년 만에 만나는 아들을 기다려야 하고...

TV 프로는 재미있어야 한다.
시청률도 높아야 한다.
시청률 낮으면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프로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어찌 보면 엄청난 행운을 "꽁짜"로 얻는 것 같지만,
결코 그 행운은 꽁짜가 아니다.
그 행운은 "정당한 출연료"다.

자신의 사생활을 완전히 드러내야 하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진행자가 커튼을 내릴 때 PD를 만족시켜 줄 엄청 놀라는 표정을 지어야 하고,
수도 없이 스스로 자신의 볼을 꼬집으며 "꿈 아니죠?" 말해야 한다.

이런 프로들이 없는거 보다는 있는게 좋다고 본다.

하지만....
"고맙지?고맙지? 눈물 나지?"
이런 식의 오버는 제발 좀 자제했으면 좋겠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샘 2005-02-24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가 아는 어느 훌륭한 어머니는,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 갔는데 많이 아픈 아이가 있었고, 케이 모 방송국에서 이천만원인가 장학금 준다고 인터뷰 하재도 아이에게 상처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지요... 그놈의 돈이 방송국을 기고만장하게 하는가 봅니다. 오버를 계속 하는 거 보면...

kleinsusun 2005-02-24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 오버 좀 살살했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좋으세요?" "기분이 어떠세요?" 앵무새처럼 계속 물어보는 진행자들,
마치 자신이 선심을 쓴것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MC,
감동의 "절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출연자 발가 벗기기.
이런 프로들의 "순기능"을 분명히 인정하지만, 출연자들을 좀 존중해줬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개학하셨겠네요. 즐거운 새학기 시작하세요!

icaru 2005-02-24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이에요... 순기능은 인정하지만... 그들에게 엄청난 시혜를 베푸는양 하는 제작진들의 태도는 참말로 꼴셔요... !
언젠가 저도 <돈이 보인다>라는 프로를 늦은 저녁에 본 적이 있었던 거 같네요...
그때 눈쌀을 찌푸렸던 기억이 있는데....왜 였더라...아... 여러 지원자들 중에 경쟁을 시켜서... 한 가족만 선출시키더라고요... 텔레비전 프로라 그랬겠지만..... 경쟁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한껏 초라하고 주먹구구인양 부각시키고요...에휴..! 좀 잔인한 방식이다 싶었어요..

코마개 2005-02-24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싫은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의 정신 상태가 어떻다는 둥 그럼서 극기 훈련 시키고 그러면서 할 수 있다는 정신을 불어 넣어 준다 뭐 그러는데 정말 맘 불편 합니다.

암리타 2005-02-24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라는 매체가 어떤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줄 수 있는 만능 기계인처럼 보여 뒷맛이 씁쓸합니다. 그들 스스로 방송에 나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에 우린 얼마나 그들을 알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이지 않게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마음과 자세가 안되는 것인지? 스스로 자문하게 되는 프로죠. 그들에게 이나마 행운을 줄 수 있는 프로라고 생각이 들지만, 웬지 상업적인 논리에 이끌려 흥미꺼리가 되어버린 배우처럼 그냥 좋게만 보이지 않네요ㅜㅜ

moonnight 2005-02-2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송은 자선사업이 아니다! 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듯 하지요. -_-
맞아요. 저도 처음엔 저 사람들 봉 잡았네 -_-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수선님 말씀처럼 공짜행운을 얻은 게 절대 아니더라구요.
가끔은 시청자가 방송 당사자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드는. ㅠㅠ

kleinsusun 2005-02-24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의 정신상태를 지적하면서 극기훈련을 시키는 장면.정말이지 마음이 불편해요. 어제 제가 본 프로에서도 분식집 부부 가게를 "쪽박집"이라고 표현하고, 잘되는 대형 식당을 "대박집"이라고 부르면서 비교하고, 분식집 부부에게 4만원을 주고 하루만에 12만원을 벌어 오라고 "특명"을 내리고,
어쩔 줄 몰라하는 부부에게 "안타깝다"하면서 왜 그동안 장사를 못했는지 "안되는 정신상태"를 지적하고.... 10일 안에 그들을 "개조"시킨다는 TV라는 권력의 오만한 발상. moonlight님 표현대로, TV를 보는 시청자가 출연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저런 모습까지 보여주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보면서 미안하고... 무엇보다도 출연자들에게 "고맙지?고맙지? 이래도 안 울어?" 하는 제작진의 태도는 영 마음이 불편합니다. 출연자들을 선택하는 제작진에겐 "권력"도 있겠지요.
TV는 인생을 바꾸어 줄 수 있다? 씁쓸한 기분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