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책 선물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가장 자주 선물하는 사람은 울 아빠다.
책을 선물 받는 사람이 모두 우리 아빠 같다면,
책 선물하는 사람은 진짜 "억수로" 행복할꺼다.

읽고 읽고 또 읽고...
책에 가득한 밑줄들...
또 고맙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3년 전 선물한 남회근의 <금강경 강의>는 하도 낡아서 이제 하드커버 겉장에 테이프를 붙였다.
울 아빠...아무리 울 아빠지만 객관적으로 멋있다.

회사에 정말로 내게 잘해주는, 아주아주 고마운 선배가 있다.
작년 10월의 어느 늦은 밤,
혼자 남아서 시스템에 경영계획을 입력하고 있었다.

9월말에 울팀 과장이 회사를 그만 두는 바람에
난 2인분의 일을 하게 되었다.
새로 맡은 제품들이라 "감"이 없었다.
숫자가 머릿 속에서 마구마구 헝클어졌다.
마음이 급해서 자꾸 틀리고, 또 맞게 넣으면 컴이 다운되기도 하고(원래 안될라 그러면 별 일이 다 일어난다.) 나는 혼자 악을 쓰면서 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야근 끝에 체력은 바닥 상태에 있었고,
손 대면 툭하고 터질 것 같은 봉숭화 연정처럼 내 신경은 예민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 종일 숫자랑 씨름하다가
난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때, 구원 투수가 등장했다.
그 선배는 내 옆에 앉아서 자기가 입력을 했다.
나는 미안함도 잊어 버리고
한참 힘에 부치는 덩치 큰 애랑 싸우고 있을 때 엄마가 나타난 것 처럼 편암함을 되찾았다.

내 대신 입력을 다한 선배는,
내가 담당하는 제품들을 시스템에서 전부 다 다운 받아 검토까지 해 주었다. 그 때....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정말...감동했다.

술이라도 한잔 하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못난 나는 울었다는게 창피해서 그런 말도 못하고
고맙다고 흐지부지 말하고 먼저 나갔다.

그 다음 날, 난 고마운 마음에 책을 한권 선물했다.
가네시로 카즈키의 <연애소설>.
<연애소설>에 있는 세편의 단편 중 <꽃>을 읽고 감동했던 차에, 연애를 하고 있는 그 선배에게 이쁜 사랑하라는 뜻에서 그 책을 골랐다.

초콜렛 하나랑 같이 선물했는데,
사람 좋은 선배는 말했다.

" 책 선물 정말 오랜만에 받아보는데...잘 읽을께요."

오늘 오랜만에 그 선배랑 점심을 같이 먹었다.
( 팀도 다르고 사업부도 달라서 자주 말할 기회가 없다.)

난 갑자기 생각이 나서 물었다.

" <연애소설>...그 때 그 책...읽으셨어요? "
" 네...잘 읽었어요. 아주 잘 넘어가던데요. 재미있었어요."

이럴 때 나는 행복하다.
그 선배가 이쁜 사랑을 하길 바라며...

p.s) 요즘 주위 사람들이 온통 핑크빛이다.
내게도 좀 그 핑크빛이 나눠졌으면 좋겠다.

참 소박한 바람인데(사람에 따라서는 어려울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일요일 새벽에 도서관에 가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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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2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클 2005-01-13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은 이루어진다!! 수선님 화이티잉~~ ↖^^↗

로드무비 2005-01-13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그 선배랑 잘 됐으면 좋겠는데. 아참 그치 애인이 있다고 했지?^^;;;

좋은 사람이랑 일요일 새벽 도서관에서 자판기 커피 마시기.

조만간 꼭 이뤄질 거예요.^^

(저도 지금 일이 밀려 울고 싶은데 어디 그런 구원투수 없을까요?

그러면서 30분째 서재활동;;)

마냐 2005-01-13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이 밀려서, 졸다졸다 날밤 새구...아침이네요. ^^;; 수선님은 '인복'이 많은 모양임다. 아버님두 그렇구, 그런 구원투수도 아무에게나 오지는 않슴다....암튼, 홧팅이구요...갑자기 8년전 도서관에서 같이 커피 마시던 남자 생각이 남다. 지금 서재질에 미친 마눌 땜시 혼자 침대에서 코골고 있는디...(우헤헤)

marine 2005-01-13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빠에게 책 선물을 자주 받는 편이예요 그러고 보니 한번도 아빠에게 선물할 생각은 안 해 봤네요 저희 아빠는 대단한 독서가인데, 아빠가 제 취향을 다 파악한 반면, 전 아직도 아빠가 좋아할 만한 책이 뭔지 모르겠어요

드팀전 2005-01-1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동안 책 선물하기를 좋아했는데...얼마전부터 안하기로 했습니다.누가 지나가다 "뭐 읽을만한거 없어." 이래도..."많긴한데 취향따라 다르니까 내가 알 순 없군." 해버립니다.첫번재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상대에게도 좋을 지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지금 당장 만나지 않고 나중에 만나면 더 좋을 수도 있음에도 제가 불쑥 제 맘에 든다고 선물하고 그 사람이 그 책에 흥미를 못느낀다면 큰 일이죠.제가 몇년전 한동안 "눈먼자들의 도시"를 사줬는데 반응이 반반이에요.어떤 사람은 너무 좋아서 책읽는 즐거움을 찾았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뭐 황당한 SF소설 같잖아..이럽니다.^^

주고도 답답하고 읽는 사람도 답답하고....^^ 이러면 안되잖아요.그래서 책선물 자제합니다.내가 상대의 취향에 자신이 있을때만 주려구요.그리구 가끔 책을 받으면 부담도 됩니다.제가 보려고 미리 리스트가 나와 있는데 새로 큰 관심 없는책이 들어오면...잘 안보게 되더라구요.제가 준 책이 상대에게도 그런 부담으로 작용하여 책장 어느 구석을 헤메고 있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거든요....혹시 수선 님께서 제게 책을 주시려면..도서상품권.^^ 으로..^^ 얼마든지 대환영..환영..으싸 으싸 대환영.^^ 즐거운 하루!!!!

세벌식자판 2005-01-1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 간만에 제가 알고 있는 소설 책이 보이네요. ^^; 소설 쪽은 거의 까막눈이라 눈만 깜빡이다가 그냥 지나쳤는데. . . . " 가네시로 카즈키 "가 쓴 GO 보셨어요? 전 참 재밌게 봤거든요. 나중에 사정이 되면 그 사람이 쓴 소설을 다 사 읽으려 합니다.

kleinsusun 2005-01-14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전 <플라이, 대디 플라이>랑 <연애소설>을 읽었거든요."GO"는 아직이구요.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재미있긴 했는데 좀 가볍단 느낌을 받았거든요, <연애소설>은 카즈키의 감성이 묻어나는 따뜻한 단편들이예요.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kleinsusun 2005-01-14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로드무비님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네....정말 간.절.히 도서관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싶어요.

kleinsusun 2005-01-14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넘 부러워요. 자랑하시는거죠? ㅋㅋ

네...전 "인복" 이 많아요. 그래서 마냐님도 이렇게 들러주시고.항상 서툴고 어설프다 보니 주변에서 도와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당.

kleinsusun 2005-01-14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 좋으시겠당. 아빠가 책 선물 많이 해 주셔서....

전 가끔 서점에서 아빠가 좋아하실 만한 책을 발견하고 냉큼 사서 달려갔는데,

아빠한테 그 책이 있어서 허탈한 경우가 있어요.ㅋㅋ

그래서 집에 2권 있는 책도 있답니다.

kleinsusun 2005-01-14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네...저도 가끔 실수를 한답니다. 책을 선물하고 뜨악한 반응에 당황할 때가 있어요.ㅋㅋ 드팀전님께는 꼭 상품권을 선물할께요. 취향을 알려 주셔서 감사감사.

kleinsusun 2005-01-1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벌식 자판님 오랜만이네요. "Go"는 집에 있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플라이, 대디 플라이>랑 <연애소설> 읽었는데, 전 <연애소설>이 참 마음에 들어요. 감성적이고 따뜻한 글들이예요. 그러면서 "아차"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한번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호랑녀 2005-01-20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과 일요일 새벽에 도서관에 가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싶다.

한 번도 못해본 생각인데, 참 이쁘네요.
이제 난... 우리 아이들과 해볼 수 있을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