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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얼마 전, 찜질방 탈의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네살 쯤 되었을까? 아니면 다섯살? 볼이 통통한 귀여운 여자애가 울고 있었다.
" 나 이 옷 입기 싫어. 나 이 옷 싫어.앙~ "
그 여자애는 커다란 찜질방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찜질방에는 어린이용 옷 싸이즈가 하나 밖에 없었다. 덩치 작은 여자애가 그 옷을 입으니까 반바지는 흘러 내릴 것 같았고, 길이는 8부 바지였다. 티셔츠는 하도 커서 풍선을 두개 넣어도 될 것 같았다. 당연히 그 옷을 입기 싫을 수 밖에...
놀라운건 그 할머니의 반응이었다.
"버르장머리 없이 왜이래? 조용히 안해? 싸가지가 없어,싸가지가. 애 옷은 이거 밖에 없다는데 이 옷을 입어야지. 그럼 어른 옷 입을래? 벗어줄까 입을래? 싸가지가 없어,싸가지가."
듣는 내가 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여자애는 놀라고 또 무서워서 울음을 뚝 그쳤다. 난 그 여자애를 안고 도망가고 싶었다.그 상황에서 그 할머니로 부터 탈출시켜 주고 싶었다.
그 할머니는 그 폭언이 폭력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도저히 어린 손녀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닌데도, 그 어린 손녀는 혼날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 할머니는 악을 쓰며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폭력에 노출된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애들의 정서는 얼마나 망가질까? 하루에도 몇번씩 공포에 떨겠지?
몽둥이로 때리고 상처 입히고 굶기고 가두고 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그 어린 것이 매일 매일 할머니에게 그런 폭언들을 들어야 하는걸까? 어렸을 때 부터 그런 폭언을 듣고서 자기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자기자신을 사랑 받을 가치가 없는 인간으로 비하하면 어쩌지?그래서 사랑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랑 덜컥 사랑에 빠져 버리면 어쩌지?
온갖 생각이 머리를 빙빙 도는 동안 그 할머니가 애 손목을 끌고 나가 버렸다. 아마 칠보석방 같은데서 뜨겁다고 울어도 똑같이 소리를 지를꺼다.
이야기 둘.
지난 주 소래포구의 한 횟집에서 있었던 일.
옆옆옆 테이블에 두 가족이 들어왔다. 누나 가족과 남동생 가족(정황으로 봐서 그렇게 추측된다). 신년회겸 두 가족이 모인 것 같았다.
기분 좋게 술 한잔 하며 회를 먹고 있는데, 그 테이블에서 큰 소리가 났다. 돌아 보니 한 뚱뚱한 아저씨가 자기 마누라를 잡아 먹을 듯이 야려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여자가 말이야.신년초 부터 재수없게.여자가 그러니까 될 일도 안 되는거지. 그런 말을 뭐하려고 해? 어쩌구 저쩌구..."
그 테이블에 어른들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딸에, 누나의 딸들로 보이는 고등학생~대학생 2명이 있었다. 애들까지 있는데서 "공개망신"을 주고 있었다. 아주 당당하게.
남편의 폭력 앞에서 한마디 대항도 못하고 당하고 있던 아줌마는 눈물이 났던지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테이블 잠시 침묵. 곧 초등학생 딸이 크리넥스를 들고 쪼르륵 엄마를 따라 갔다.
뚱뚱한 남자의 누나로 추정되는 뚱뚱한 아줌마가 동생을 탓하며 뭐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뚱뚱한 남자는 "여자가 년초부터 재수없게 하니까 그렇지" 하면서 상추쌈까지 싸서 회를 우직우직 씹어 먹었다.
그 테이블에는 불편한 침묵이 계속 되었고, 말 안하고 가만히 있는게 불편해서 그런지 회가 맛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할일이 먹는거 밖에 없어서 그런지 누나 가족들과 뚱뚱이 아저씨는 경쟁하듯이 부지런하게 회를 먹었다.
화장실에서 마음을 가라앉힌 아줌마가 딸의 손을 잡고 컴백. 모성본능을 발휘하여 얼마 남지 않은 회를 어린 딸에게 먹이고 있었다.
여기까지 봤을 때, 우리 테이블은 매운탕에 후식까지 다 먹었기에 나왔다.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그 아저씨는 아내에게 사과를 할까?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면 그 사람 많은데서 그 난리도 안쳤겠지... 씁쓸했다.
남의 일인데...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들인데도 그냥 지나쳐 지지가 않는다. 그냥 스쳐가지 않고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조각난 상처가 날아서 나한테 꽂히는 것 같다.
예전에- 신입사원 때 였던 것 같다 -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 넌 참 측은지심이 발달했구나.그럼 살기 힘든데..."
그렇다. 살기 힘들 때가 많다. 하루에도 몇번씩 울컥할 때가 많다.
하지만...이게 내 타고난 성품이다. 우리 아빠도 그렇고 우리 엄마도 그렇다. 착하고 예민하고 여리고...
"드라이"해지려고 억지로 노력하던 때가 있었다. 사우나 하고 나와서 젖은 머리를 말리듯이 윙~소리를 내며 그냥 사정없이 감정을 말려 버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그게 더 힘들었다. 성격을 바꾸는게 더 힘든 일인가 보다.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고 싶다.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