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항상 그렇듯이 겨우 일어났다.
부시시 눈을 뜨고 물을 마시러 나갔는데,
엄청난 해일로 다 떠내려간 태국 해안을 보고
아직 꿈을 꾸고 있나 싶었다.

엄청난 지진과 해일,그렇다...대재앙이 일어났다.
갑자기 Dina가 생각났다.
Dina가 무사할까?

어제 이스라엘 거래선인 Dina가 미팅을 하러 오기로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막바로 오는게 아니라 푸켓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어제 아침에 도착하는 거였다.
Dina는 2주일간 크리스마스 휴가를 푸켓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데,
하루 시간을 내어 한국에 와서 미팅을 하고 당일 저녁에 푸켓向 대한한공 직항을 타고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즉, 무박 출장(밤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도착해서 일을 하고,당일 밤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 빡센 출장), 보통 체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 싱가폴에 무박 출장 갔다가 몸이 망가진 적이 있다.)
Dina 아줌마(49년생이다) 참 억척스럽다.
그렇게까지 해서 올 필요 없다고 말렸는데 꼭 오겠다고 했다.

어제 아침,
TV에서 그 괴물 같은 파도를 보았을 때,
Dina가 생각났다. 무사할까?

출근했는데 Dina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었다.
대한항공에 전화해보니 비행기는 떴다고 한다.
약속시간은 11시 30분.
만나기로 한 플라자 호텔까지 걸어가면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로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두리번 거렸다.
곧 Dina가 큰 소리로 날 불렀다.
" Susan ! "
우리는 hug를 하며 인사를 했다.
Dina는 걱정했던 바와 전혀 다르게 아주 유쾌한 표정이었다.
가족들은 무사하냐고 물어봤다.
자기 가족들은 다행히 해변 바로 앞 호텔이 아니라
해변에서 상당히 떨어진 호텔에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은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고 한다.

Dina는 "No Problem!"을 연발했다.
그런데.....Dina의 " No Problem!" 을 듣고 있자니 참....기가 막혔다.
사실 화가 났다. Dina가 Buyer만 아니었으면 화를 냈을 꺼다.

No Problem이라니....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수천명이 실종되고
수백만 명이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날렸는데,
가족들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폐허가 된 해안에서
가족들의 시체를 찾고 있는데....

자기랑 자기 가족이 무사하다고 그렇게 "No Problem!"을 연발할 수 있을까....


사무실에 오고 나서 상무님한테 인사를 할 때도,
팀장님하고 식사를 할 때도,
무사하냐고 물어보면,
오늘 푸켓에 다시 가도 되냐고 물어보면,
계속 " No Problem!"이라고 대답했다.

1월 2일까지 계속 푸켓에 있으면서 휴가를 "즐긴다"고 했다.
그 엄청난 재앙의 한 복판에서 휴가를 즐기겠다니.....
가서 봉사활동이라도 하던지....
그 너무 멀쩡한 표정에 화가 났다.

어제 미팅이 끝나고 Dina는 다시 대한항공 직항편으로 푸켓에 갔다.
실종된 가족들을 찾으러 가는 망연한 사람들 외에 텅 빈 비행기를 타고.....

뉴스를 봐도 화가 난다.
2만명이 넘게 죽었다.
수천명의 실종자들에,
스리랑카나 인도 같은 못사는 나라에서
침수지역에 콜레라나 말라리아가 돌 수 있는걸 생각하면
실제로 사망자는 3만명이 넘을 꺼다.
이 판에 한국인 관광객 소식만 계속 전하는,
일본 관광객은 몇 명 죽었는데 한국은 피해가 덜하다고 말하는 태도.

나만 무사하면,
내 가족만 무사하면,
내 나라만 무사하면 No Problem인가?

정말 화가 난다.

Dina 아줌마!
그렇게 말하면 안돼요.
아줌마 가족이 무사하다고 해서 "No Problem"이 아니예요.
아줌마의 휴가도 중요하겠지만,
수 많은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휴가를 "즐기지" 마세요!

이 엄청난 재앙.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말레이지아, 방글라데시....
못사는 나라에서 일어난 남의 일이 아니예요.
수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를 잃고 울고 있어요.
수 많은 부모들이 자식의 시체를 못 찾아 눈물을 삼키고 있어요.
한 순간에 삶의 기반을 모두 날려 버린 가난한 아시아 여자들이 울고 있다구요.

Dina 아줌마,
"No Problem!" 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파도가 집어 삼킨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서 같이 기도해요.
Dina,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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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4-12-2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읽고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 왈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만남이 없는 세계다. 당구공처럼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접촉만이 있을 뿐....

"No Problem"까진 많이 생각해서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준다해도 다시 그곳에서 휴가를 즐기겠다니 이건 정말 아니네요

님 말대로 그곳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작은 일이라도 뭘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네요

kleinsusun 2004-12-2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어제 다시 푸켓으로 가는 Dina를 보고 씁쓸했어요.

나만 무사하면, 내 가족만 무사하면, 내 국가만 무사하면 된다는 생각들...

Dina와 그 가족들이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길 바래요.

No Problem!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야클 2004-12-2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네요. 점심 먹으면서도 그들의 고통을 같이 아파해주기 보다는 파도의 높이나 해일의 속도 같은 것만 화제에 올린걸 보면요. 저도 또다른 Dina였나 봅니다.

kleinsusun 2004-12-2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은 항상 저를 부끄럽게 하시는군요.

지난번엔 전갈인지 개구리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니, 오늘은 또 다른 Dina라 반성하시고.....

저도 "No Problem"에 발끈해서 Dina를 비난만 했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네요. 부.끄.러.움.

로드무비 2004-12-2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나를 만나는 장면에서 박수를 짝짝짝 쳤는데......

그런데 수선님, 세상의 참혹한 일들은 도무지 종류가 끝이 없는 것 같지 않아요?

이런 종류의 참사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말여요.

kleinsusun 2004-12-2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도대체 왜 이런 참혹한 일들이 끝 없이 일어나는건지....

그것도 그 가난한 나라들을 그렇게 풍지박살 내면 어떻하라는건지...

스리랑카에 가 본 적이 있어요. 그 아름다운 나라가 지금쯤 얼마나 멍들었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을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파요.

icaru 2004-12-28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말은 그렇지만.... 참.... 이상하지요~ 희귀병은 가난한 집 치료비를 댈 수 없는 사람이나 아이들에게 잘 생기고... 수해나 물난리도 해마다 겪는 사람들이 또 겪고....이런 자연 재해도...꼭 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자주 많이 닥치는 것만 같아서요...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도...답답하고..슬프네요...

2004-12-28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4-12-2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미국인 관광객이 몇명 죽었다, 일본인 관광객이 몇명 죽었다 하며 자기나라 사망자 수만 챙기고 있기에, 스리랑카,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10개국 이상에서 당한 "재앙"은 너무도 커요. 콜레라나 말라리아 까지 돌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