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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주아주 유명한 우화가 있지. 전갈과 개구리 이야기.
전갈이 개구리한테 업어서 강을 건너 달라고 했다.
전갈 : 업어서 강을 건너줘.난 헤엄을 못치쟎아. 개구리 : 싫어. 니가 나를 물면 난 죽어. 전갈 : 내가 너를 물면 나도 물에 빠져 죽는데 내가 왜 널 물겠니? 개구리 : ( 잠시 망설이다 끄덕인다) 그렇긴 한데..... 전갈 : 절대 너를 물지 않아.
이렇게 해서 개구리는 전갈을 업고 헤엄을 친다. 그 때, 개구리는 죽을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 독이 온 몸에 퍼진다.
개구리 : (죽어가며) 너 왜 이러는거야? 이제 너도 죽는거야. 전갈 : 어쩔 수 없어. 난 전갈이니까.
이런 유명한 옛날 이야기. 근데..... 이런 우화의 "진실" 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한국이건 아프리카건, 칠레 어떤 산골 마을에서도, 심지어 토성에서도 변함 없이 존재한다.
존재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전갈을 탓할 수 없다. 전갈은 전갈이니까....
존재의 속성을 간과하고, "설마 나를 물지는 않겠지.그럼 자기도 죽는데..." 하고 "상식"에 근거해서 생명을 건 개구리가 바보다.
그렇다. 멍청한건 존재의 속성을 간과한 개구리다. 개구리는 바보다.
전갈은 자기의 본성에 저항할 수 없다. 자기를 파멸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의 본성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
세상에는 전갈들이 있다. 전갈한테 물리고 "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하는건 바보 짓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말한다. 사람 보는 눈을 기르라고.... 왜 나는 보이는데 너한테는 안 보이냐고....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 전갈 감식기" 이런건 나오지 않는다. "인간 전갈 감식기" 보다는 AIDS 백신이 먼저 나오고, 암 치료제가 먼저 나오고, 차라리 타임머신이 먼저 나올꺼다.
그러니.... "전갈" 을 알아보는 눈을 기를 수 밖에. 자기자신을 방어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공간에 전갈이 들어오게 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한번쯤은 전갈한테 물린다. 개구리처럼 치명적인 독성에 한방에 죽어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항체"가 형성된다. 이럴 땐 나중에 한방에 당하지 않도록 자신에게 "항체"를 만들어준 전갈에게 감사해야 한다.
절대 하면 안되는 실수는, 전갈을 용서하는 거다.
전갈에게 물리는 실수야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갈에게 물리고서도 죽지 않았다고 해서 전갈을 용서하면 안된다. 그러면 전갈은 슬슬 강도를 높혀가며 당신을 문다. 죽을 때 까지.... 그것이 전갈의 본성이다.
전갈은 개구리를 물 수 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