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회사의 출근시간은 8시.
아침잠이 많은 나는 힘들게 일어나 칼출근을 한다.

<아침형 인간>을 읽고 2주 정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산책도 해보고 그랬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쌍코피를 쏟으며 포기.
다 타고난 생체리듬이란게 있는거지....

집에서 7시에 나와 버스를 탄다.
출근길 버스에서 사람들 틈에 치이는 것 보다 힘든건,
원하지 않는 라디오 방송을 들어야 한다는 거다.

버스나 택시를 타면 기사 아저씨의 취향에 따라
라디오를 듣는 인내를 감수해야 한다.

출근길에 난 항상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어야 한다.
주로 책을 읽거나 딴 생각을 하기 때문에 거의 들리지 않는데,
요즘 나를 자극하는 노래가 있으니.....

"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오늘 아침 남편에게 힘이 되는 노래를 불러 주세요! 손도 한번 잡아주시구요!

마음의 힘 캠페인, 교보생명


마음의 힘을 얻으라고 이런 캠페인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캔디 주제가를 들으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지 모르지만,

난.... 짜증이 난다.

난 캔디 주제가가 싫다.
"울면 안돼!"
"참고 참고 또 참아!"
"끝까지 견디자! 오직 인내하는 자만이..."

난 이런 말이 싫다.

힘들 때 좀 울면 어떠냐?
지치도록 울고 나면 속이 얼마나 시원한데....

캔디 주제가에서 희미한 군국주의의 냄새를 맡는다면 내가 너무 삐딱한걸까?

특히 남자들은
어렸을 때 부터 처절하게 감정표출을 억제할 것을 강요 받는다.

남자애들이 울면 부모님, 선생님들이 한 목소리를 내어 혼낸다.

" 사내 자식이 울긴 왜 울어? 창피하지도 않아? "
" 계집애들도 이런 일로는 안 울겠다."
" 사내 자식이 이렇게 약해 빠져서 뭐가 되려고 그래?"

남자들은 어렸을 때 부터
'남자는 강해야 한다'라고 세뇌교육을 받는다. 그래서....어른이 된 후 누구 앞에서 울면 큰 일 나는지 안다.

불쌍하다.
좀 울면 어떠냐?
우는 것도 웃는 것 처럼 자연스런 감정의 표출이다.

뭐하려고 힘든데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하는지...
그냥 시원하게 좀 울어 버리면 뭐 어때서....
아무리 힘들어도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진정 현명한 아내라면
출근한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캔디 주제가를 부르는 대신,
이렇게 말하는게 어떨까?

" 여보! 오늘 회사 하루 쉬어! 그 놈의 회사 다니기 싫으면 때려 쳐 버려. 당신 이제 좀 쉬어도 돼. 공부도 더 하고 싶다면서? "

말이라도 한번 이렇게 하는게 더 힘이 되지 않을까?

남자 혼자 짐을 다 지게 하지 말자.
회사 다니는거....진짜 장난 아니게 힘들다.
더러운 일, 치사한 일,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오는 일....허다하다.

출근하는 남편의 손을 잡고
참고 참고 또 참으라고 노래를 불러주는 대신,
" 당신 쉬고 싶으면 좀 쉬어!"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한 아내가 많다면
이 세상이 보다 평등하고 평화롭지 않을까?

작년인가, 어떤 또라이랑 선을 본 적이 있다.
그 남자는 무슨 면접관 처럼
여러가지 허접한 질문을 잔뜩 준비해 와서 끊임 없이 질문을 했다.

" 남편에게 아침밥을 차려 줄 수 있어요? "
" 시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나요? "

무슨 종신제 파출부 면접왔는지 아나....

예의상 대충대충 성의 없는 대답을 하고 넘겼는데,
그 남자가 결정적인 질문을 했다.

"내조를 잘 할 수 있어요?"

아..... 그 심오한 질문의 세계.
난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내조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 남자....당황했다.
할 말을 잃고 나를 쳐다 봤다.

난 대답했다.

"반찬 잘 하고, 집 이쁘게 꾸미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따뜻한 국을 준비하고
와이셔츠를 날서게 다리는게 내조라면 남들 보다 잘 할 자신 없어요.

그런데....
전 내조란 서로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거라 생각해요.

남자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가족들한테 얽매여서 포기한다면 슬프쟎아요?
전 남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할 자신은 있어요."


그 남자는 나의 일장연설에 질려버렸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힘들어 한다면,
축 쳐진 뒷모습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애써 웃는 모습을 보이려 한다면,
난 슬플 것 같다.

참고 참고 또 참으라고 노래를 부르는 대신,
같이 실컷 울고 싶다.
속이 시원해 질 때 까지....

남자가 내 앞에서 실컷 울 수 있도록
그런 편한 상대가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제발...
남자에게건, 여자에게건, 이 세상 그 누구에게건,
참고 참고 또 참으라고 하지 말자.

참으면....병 된다.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나눠야지.

힘들 땐,
실컷 울어요! 속이 시원해 질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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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벌식자판 2004-11-1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야클 2004-11-11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하지만....그래도..... 울때 울더라도 참을만큼은 참아보고 견딜만큼은 견뎌보고 울렵니다. ^^~

릴케 현상 2004-11-18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때는 울어야죠^^ 저는 어릴 때 울면 아버지가 좀 우렁차게 울라고 하던데...무슨 아긴가^^

kleinsusun 2004-11-1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울 때 울어야 해요. 속이 후련하게...

글쿠...중요한건....울고나서 후회하면 안되요.ㅋㅋ

marine 2004-12-16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저도 출근길에 손석희의 "시선집중" 듣는데, 요즘 카풀하면서 어쩔 수 없이 김성주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거 들어요 시선집중 들으면 뉴스 안 봐도 되고 시사문제에 밝아질텐데, 참 아쉽죠

글샘 2004-12-18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결혼은 당분간 힘들겠군요. ^^ 우리나라에서 클라인수선님처럼 행복한 내조를 받을 수 있는 남편은 드물거든요. 하긴, 남자들이 좀 그런 면이 있답니다. 역사가 만들어낸 디엔에이 같은 거요. 에쿠니 가오리의 '이쿠츠모노슈마츠' 읽으면서, 아, 여성들이 바라보는 남성은 이런 거구나. 했습니다.

글이 시원시원해요. 성격도 그럴 것 같네요. 시원시원하고 재미있고... 혼자 있으면 좀 멜랑콜리해 지면서 게으름을 즐기는, 뒹굴뒹굴족.^^ 틀리면 그만이고요.^^

icaru 2005-01-0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외로우면 울고...힘들면 힘든티도 내는거죠...

저는 그래서.... 극기훈련 같은 게 젤 싫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