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속물들
오현종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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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단 이름에 대한 편견부터 시작하자... '오현종'이란 이름을 봤을 때, 남성이라 생각했다. 아무런 이유없이 남자라고 생각했던 저자는 어여쁜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위악적일 수 밖에 없는 20대 여성의 속물적(?)인 기록이다. 물론 속물적일 수 밖에 없는 배경은 맘몬이 다스리는 이 사회이고 그 속에서 바둥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그렇기에 속물들 앞에 "거룩한"이란 단어를 사용했을게다.  

88만원세대라는 새로운 세대론이 사회에 퍼지면서 20대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소설을 통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물론 '88만원 세대'에 대해 많은 검토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고, 20대가 사회를 뚫고 나오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들에 대한 고민이 늘어난 것도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김예슬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가 20대가 선택한 이 사회에 대한 선전포고 였다면, 엄기호의 '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보다 20대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사회를 포용하고 거꾸로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20대에 대한 시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기성세대나 20대나 속물로 살아가고 있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 사회의 구조 속에서 속물로 살아가지 않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소설속에서 나타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간 속물성의 차이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이다.  

구조적 총체성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각 개인들의 인물과 상황을 보면, 계급적 분화에 따른 연대의 상실이 가장 눈에 보이는 듯하다. 더불어 과거에는 계급적 격차가 사회현실에 대한 개선과 타파로 이데올로기적인 동질감으로 승화되던가 확고하게 나뉘어져 버렸다면, 이 소설 속에서는 모두가 하나로 흐물흐물 녹아들어간다. 그곳에는 계급적 적대감이 아닌 그저 고단한 일상이 있을 뿐이다.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어가기 위한 욕망과 허영의 간극만이 맴돌고 있다. 거대한 사회에 대한 구원은 꿈도 꾸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주관마저도 갖기 힘든 상황의 연속이다.  

이렇게 말하면 엄기호씨가 비판한 486의 시선 그대로인 듯하다. 엘리트 의식도 없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는 20대의 상황을 위악적으로 그리면서도 밉지가 않은 것은 그들 자신도 그것을 탈출해야 할 어떤 것으로 의식하고 있다는 점일테다. 그럼에도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건 청춘이 가진 특권이라 생각해야 할 듯하다. 그런 방황 속에서 자신을 찾는다면 어쩌면 기성세대부터 내려오는 속물성을 탈피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그 방황의 결과물이 개인의 자기 인식으로만 고착되어버린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진행될 지 알 수 없을 뿐이다.  

세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간접경험으론 힘들다. 초반에 작가의 이름부터 선입관을 가지고 봤듯이 아직도 이 세대에 대한 이해는 선입관 투성인듯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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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1-15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잘 다니는 서재 중 하나가 20대 아가씨인데,
생각하는 자체가 맘에 들어요. 저보다 더 주관이 뚜렷한거 같아서 그것도 맘에 들고.

안 그런 분도 많겠지만, 저의 20대 초반은 혼란덩어리였죠.
홍대부여고를 나왔기 때문에, 매일 대학생들 데모하는 한가운데 있고,
토론 시간도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참 무지했던 시기인거 같아요.
거기다 강성으로 외치면서 강요하는 몇몇 선배들 때문에 왜그리 진실이
진실이 아닌듯 들리는지... 조금 더 귀를 열고 제 의견을 피력할 환경이었다면
진실을 진실로 알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젠.

그나저나.. 현 20대는 참 어려운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머큐리 2010-11-16 08:06   좋아요 0 | URL
제가 볼때는 마고님이야 말로 생활에서 주관이 뚜렸해 보이던데요..ㅎㅎ

[해이] 2010-11-15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 정말 힘들다는 말밖에는... 브로콜리너마저 2집 타이틀곡 "졸업"은 이미 들으셨죠?ㅋ

머큐리 2010-11-16 08:06   좋아요 0 | URL
출퇴근길에 열심히 듣고 있지요...^^

비로그인 2010-11-15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읽다 잤는데.. 머큘님 서재글에도 그 이름이 보이네요 ^^ 어제 책을 읽으며 때론 가까이, 때론 멀리감치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저는 20대를 지나온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그 시기가 아득히 멀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어쩌면 아득히 멀게 느끼고 싶은지도 모르겠고요..

머큐리 2010-11-16 08:07   좋아요 0 | URL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읽고 리뷰를 쓰고 싶은데...뭔가 가닥이 잡히지 않고 막막해 하고 있어요..
바람결님의 정갈한 페이퍼들은 항상 잘보고 있어요...^^

L.SHIN 2010-11-1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20대에 너무 생각없이 살았어요.
분명,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갈피를 못 찾고 방황만 하고
아까운 시간을 흘려버린 것 같습니다. 죽도록 후회하고 있지요.-_-

머큐리 2010-11-17 12:17   좋아요 0 | URL
지금 재밌게 잘 살면 되지요...^^

도란도란 2010-11-18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머큐리님!^^ 알찬 서재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머큐리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리플 남기고가네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우행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어떻게 규정될까? 

어떤 사람을 규정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그 사람과 같이 지낸 사람들을 통하여 조명해 보는 것이다. 여러가지 면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단선적이고 획일적인 시선보다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면을 살핀다해도 살피고자 하는 대상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인가는 별도의 문제이다. 여러사람들의 기억이라는 것은 결국 그 사람들 만큼의 욕망을 깔고 들어가는 것이고 그 개별적인 욕망을 걷어 낸다고 해서 본질적인 사실이 과연 드러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일가족이 참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의 내면을 파헤치는 인터뷰 속에 피해자들의 과거 행위가 하나 하나 밝혀진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과거행위와 살인사건과의 직접적 연관이 드러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현상적으로 보이는 피해자의 일상과 성격이 사회적으로 그저 그런 평범함에서 개별적 성향의 확대로 이어지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살해당할 만큼의 연관성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시선에 있다. 자신의 독특한 성향과 감정과 상황에 따라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자신의 욕망이 스며있다. 그 욕망의 진술에 따라 사실과 진실의 경계는 모호해져 버린다. 일어난 사실로 말하면 객관적이지만, 그 속의 진실에 대한 것들은 주관적이다. 여기에 소설의 묘미가 있다. 사실과 진실의 경계에선 사람들의 욕망과 기억의 틀어짐을 주제로 했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는 탁월함이 보여진다.  

'통곡'에서도 느꼈지만, 이야기의 전개와 더불어 들어가는 독백의 장치는 구성의 긴장감과 서술의 의아함을 자아내지만, 결론에 이르는 두 이야기의 합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더구나 이 소설의 광고처럼 충격적 반전이라는 말은.... 단순하게 선전용은 아니다. 정말 의외였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마지막이 인상깊은 책이다.  

더구나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욕망, 선망, 질투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 사람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만든다. 일상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인간적인 요소들의 혼합이라고 할 때, 인간은 얼마나 비루하며, 또 얼마나 연악한 존재인지... 그럼에도 그것이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이 그저 연민으로 바라봐야 할 한계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계를 가졌기에 위대해 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위대함의 저변에는 언제든 자신을 삼켜버리는 어두움을 가졌다. 그걸 망각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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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14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적'이라는 것과 연민 사이에서 망설이시다니...알흠다우시거나 여리신 듯~^^

머큐리 2010-11-16 08:05   좋아요 0 | URL
음..글과 사람은 자주 어긋나요..그게 문제인거요..^^;

라이너스 2010-11-15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로긴안하고 돌아다니다가 들어오게 되니 되게 신기하네요 ㅋ

머큐리 2010-11-16 08:05   좋아요 0 | URL
잘 지내고 있을거지? ㅎㅎ
 
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1996년 12월
평점 :
절판


권정생 선생을 처음 으로 알게 된 것은 '강아지 똥'이란 그림책을 통해서였다.
평범한 똥이야기로 자연의 순환과 자기 희생을 통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이야기 했던 그림 동화가 어떤 철학책보다 심오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었고 다른 동화책은 별로 읽어주지 않았어도 이 책 만큼은 애들에게 몇번씩 읽어 주곤 했다.  

그럼에도 그 분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떤 시절을 보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 책은 그러한 권정생선생의 내면을 알게 해 준 책이다. 평생을 쓸모없은 욕심을 줄이고 살았던 선생의 생활과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책이다. 내가 읽은 책은 구판이고 신판이 더 있다. 어쩌면 신판에는 더 많은 글들이 실려 있을 지 모르겠다. 확인되는대로 신판까지 구입해야 겠다.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신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으로 우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들어앉을 집이 있어야 하고 적어도 한달치 살아갈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갈 돈이 얼마면 될까요?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알맞게 살아갈 하루치 생활비 외에 넘치게 쓰는 것은 모두 부당한 일입니다. 내 몫의 이상을 쓰는 것은 벌써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니까요  [서문 4쪽]

 선생의 가진 신앙에는 굳건한 중심이 있다. 기독교인으로 선생은 예수의 실천적 삶을 모범으로 삼은 듯하다. 예수가 가진 혁명성은 낮은 데로 내려가는 것이었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모든 만물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생태적인 사랑에서 부터 인류애까지 선생에게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교회 역시 예수를 따르는 삶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하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볼 수 있다. 평생 남 앞에 서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글 조차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선생은 온전한 삶 자체로 모범을 보이셨다.  

이 땅에서 예수는 철저하게 왜곡되어 왔다. 그리고 교회는 그러한 왜곡의 선봉장이었다.

지금 교회는 어떤가? 선교를 한답시고 온 세계에 떠돌고 다니며 하느님을 욕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온갖 공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교회도 하나의 공해물로 인식된다면 빛과 소금은커녕 쓰레기만 배출해내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한번 반성할 틈도 없이 그냥 발가 벗은 임금님처럼 앞으로 앞으로 가고만 있다.  

기독교 2천년 역사 가운데서 예수님은 많이도 시달려 왔다. 한때는 십자군 군대의 앞장에 서서 전쟁과 학살에 이용당하기도 하고, 천국 가는 입장료를 어마어마하게 받아내는 그야말로 뚜쟁이 노릇도 했고, 대한민국 기독교 백년사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선봉장이 되어 무찌르자 오랑캐를 외쳤고, 더러는 땅투기꾼에게 더러는 출세주의자에게, 얼마나 이용당하면 살아왔던가?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회개를 부르짖고, 정의를 부르짖고, 온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해도, 수십만명이 모이는 교회를 만들어도, 인간에게 따뜻한 정(사랑)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닐 것이다. 어쩌면 추악한 욕심을 가리기 위해 우리는 다른 삶을 선택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일게다. 아니면 편리함에 중독되어버려 조금의 불편을 감수할 용기가 전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불편함에 대해 소유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교회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생존의 조건이 개별화되고 파편화되면서 근대 초에 나타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나타나고 있다. 교인들만 욕할 필요도 없다. 교회도 이 사회구성원의 하나일 텐데 그들만이 이러한 흐름을 거스리지 못한다고 욕한다면 그것도 불합리한 일인 듯하다. 어쩌면 지금의 교회도 이 시대의 자식들이 뿐이다. 이 시대가 그렇다는 것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 행동하는 위선이 역겨운 것일테다.  

말로야 무엇인들 못할까. 글을 읽으면서도 계속 얼굴을 들 수 없는 것은 선생이 비판이 따까운 만큼 그렇게 실천하고 사는 것이 어려울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평범하지 않는 사람을 따라가기에는 난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질서을 빠져나와서 외치는 광야의 예언자같은 사람이 선생이 아닐까?  예수가 광야에서 돌아왔을때 그를 진심으로 따른 것은 제자들 뿐이었다. 그 제자들 마저도 죽음앞에서는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희망을 잃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지금 이모양 요꼴이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잠재성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

석가나 예수는 하느님을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본래의 하느님의 모습을 찾으려 애쓴 분들이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인간 모두에게 하느님늬 모습을 발견했고 각자의 가려진 눈을 뜨게 하여 자기 모습을 보게 했다.


인간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쩌면 우리안에 숨죽여 살고 있는 신성을 찾는 것과 다름아닐 것이다. 물질과 욕망에 눌려 있는 본연의 모습에 대한 신뢰없이 어떻게 아름다운 동화를 지어낼 수 있었을까? 매서운 채찍질의 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깃들여 있다 더불어 사람과 같이 지내는 자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었던 것이다.  

가장 사람다운 삶과 모습이 바로 하느님의 모습니다.
인간을 사랑함이 곧 하느님을 사랑함이며 인간을 사랑하는 길은 이웃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길이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자연을 자연답게 보호하는 길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개는 개의 모습대로 닭은 닭의 모습대로 모든 동물과 식물이 그들대로의 섭생에 따라 보호 되어야 한다.


요즘같이 거짓이 판을 치는 시대에 가슴에 새겨두고 음미해야 할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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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0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겠는 책이 있는데...제겐 이 책이 그랬었습니다.
오늘은,
"인간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쩌면 우리안에 숨죽여 살고 있는 신성을 찾는 것과 다름아닐 것이다."
이 문장 되뇌고 갑니다~^^

같은하늘 2010-11-02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큐리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바빴던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서재 나들이 중에 인사남깁니다.
이제는 좀더 자주 뵐 수 있겠지요? ㅎㅎ

2010-11-04 0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8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0-11-0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날씨가 많이 춥다고 하던데 감기조심하세요.^^
권정생 작가님의 작품 중에서 제가 읽은 건 <몽실 언니>밖에 없네요.ㅎㅎ
 
유골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8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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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넬리의 소설 중 세번째 소설이고 헤리 보슈 시리즈 중에는 첫번째 읽은 작품이다.  

헤리보슈의 이름이 원래 히에로니무스 보스에서 유래되었다고 했을때 처음 들은 느낌은 엽기와
환타지였다. 그의 그림이 원래 그러했으므로... 그 그림을 보다보면 두려움과 끔찍함과 엽기적이면서도 무언가 끌리는 환상이 보였기 때문에 헤리 보슈시리즈를 읽으면서 기대했던건 그런것이 아닌가 했다.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이라곤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와 '시인' 뿐이었지만. 두 작품 모두 두려움과 끔찍함과 엽기스러움이 고루 갖춰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연하게 발견된 소년의 유골... 유골이 밝히는 일상적 학대와 소년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려는 헤리 보슈의 끈질긴 수사... 드러나는 진실과 거짓말...그리고 사건의 진상.
솔직히 뻔한 스토리에 뻔한 내용이다. 불우한 가정의 소년, 외로운 죽음과 그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는 정의로운 형사.  

이 뻔한 내용의 소설을 정신없이 읽은건 헤리보슈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외롭과 쓸쓸하면서도 조직내에서 원칙적인 자기 소신을 잃지 않는 형사. 자신의 불우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인간미를 잃지않는 캐릭터때문에 이 소설이 지루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미국이 그리 주창하는 가치관 중에 가정에 대한 가치관은 그만큼 가정이 많이 피폐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틀어진 가정속에 범죄나 사건이 일어나기 마련이겠지만. 그건 단순하게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인 경우도 허다하다. 복합적인 메커니즘이 드러나지 않고 그저 가정폭력이나 결손가정의 문제로 회귀시켜 버린다면 그것이야 말로 다른 진실을 회피하는 경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든다.  ( 이게 뭔소린지 나도 모르고 쓰고 있다....--;)

솔직히 캐릭터 말고는 별 재미가 없는 작품인데.... 다른 작품들은 다르다고 한다. 좀더 뒤져보면 나아지려나.... 아직 헤리보슈가 나오는 소설들이 많이 남았다는게 위안이라면 위안인 소설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내가 상상한 헤리보슈와 틀려서 그런가... 좀 심심했다는 생각이...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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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1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ㅠ.ㅠ
그래도 마이클 코넬리인데,별 세개면 너무 박한 거 아녜요?
(실은 별 세개 미만이면 리뷰를 안 쓰는 저도 두어달 리뷰를 미뤘습니다여.'속닥')

머큐리 2010-10-22 00:01   좋아요 0 | URL
박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심했어요..^^;

마녀고양이 2010-10-21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둥이 해리 보슈.
여기서는 로맨스 없나봐요? ^^

머큐리 2010-10-22 00:00   좋아요 0 | URL
왜 없겠어요...있어요..좀 허무해서 그렇지..ㅎㅎ

Forgettable. 2010-10-2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해리보슈 좀 별로던데. 언제나 뭔가 꿍꿍이속이 있잖아요. ㅋㅋㅋ 일전에 하이드님이 동료애느느 없고 동료연애만 있다고 -_- 그래서 완전 공감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읽은건 overlook이었는데 내용도 좀 심심했어요. 심지어 끝까지 읽지도 못했다능ㅋ

쟈니 2010-10-2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좀 썰렁하지만 제목을 읽은 느낌을 쓴다면...

"처음만난/ 해리/ 보슈...."처음 만난, 해리씨 이것 좀 보슈 " 이렇게 제목을 읽었습니다.
(후다닥)
 
[블루레이] 아이언맨2 (2disc) : 스틸북 케이스
존 파브로 감독, 기네스 팰트로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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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간이 남아 돈다고 해도 굳이 봐야 할 이유가 없는 영화도 있다. 아마 이 영화가 그런 영화가 아닌가 한다. 최첨단 강철 슈트와 무기를 겸비한 아이언 맨의 활약은 전 지구를 커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활약으로 지구에 평화가 왔단다.... 오 이런~  고마운 일이.... 

미국이 탄생시킨 영웅이 한 둘이 아니지만 아이언 맨처럼 단순하고 철저하게 미국의 한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영웅은 없다. 아니 태생부터 군산복합기업의 CEO이자 손에 피를 묻히고 타인의 죽음을 담보로 돈을 버는 죽음의 상인이 이 시대의 영웅으로 추앙 받는 그 태생적 한계는 그대로 영화의 스토리의 한계로 규정되어 버린다. 더구나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군산복합의 밀애는 보기조차 역겹다. 열광하는 대중은 그냥 그대로 바보들의 함성일 뿐이다.  

이 영화를 그냥 스트레스 해소용 오락으로 봐도 좋다. 하지만 영화속에 드러나는 이미지들은 그저 그냥 오락영화로 치부하기에 많이 불편하다. 어떤 점에선 역겹기까지 하다.  

장면하나
국회 청문회에서 아이언 맨을 국가로 귀속할 것을 정부에서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통제하에 두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최근에 아주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기업의 재산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무력화시키는 시도는 이제 영화에서도 당연시 되고 있다. 정부의 통제를 요구하는 정치인들을 바보로 만들면서 말이다.  

장면 둘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밝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란 과학기술 만능주의가 영화의 바닥에 흐르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 아닌가? 과학과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과학과 기술은 지구 환경의 파괴와 오염의 주역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이 있다. 그들에겐 아직 지구는 무한하게 약탈할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하다. 그런 메시지를 영화 내내 흘려주고 있다.  

장면 셋
악당이 나온다 (사실 언놈이 악당인지는 잘 구별이 되지 않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악당을 처단하는 주역은 아이언 맨 수트를 착용한 주인공과 그 친구다. 주인공은 군산복합기업의 오너이고 그 친구는 미군 장교다. 그림이 확실하지 않은가? 미국의 무기생산 기업과 미국의 군인이 악당을 물리치고 평화를 가져온다는 이야기... 그러니 군산복합체에 대한 비판을 멈추라는 메시지... 

영화에서 볼거리는 풍부하다. 화려한 비쥬얼에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영화는 끝나고 만다. 마지막까지 영화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선전을 멈추지 않는다. 처음 청문회에서 아이언 맨을 국가로 귀속하기를 주장하던 정치인이 악당을 물리친 공로로 주인공에게 공로 훈장을 수여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국가의 전면적 항복....브라보~~~  

어찌하여 내 눈에는 악당을 물리치고 시민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는 영웅이 사라지고 그저 미국의 거대한 군산복합체를 응원하고 그 존재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이야기들로만 보이는지...역설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잘 보여주는 영화가 또 어디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양 날의 칼이 아닌가 한다. 생각없이 즐기면 베이고, 잘 살펴보면 경계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기 위해 비쥬얼이 그리도 거창했나 보다. 영화가 선전하는 그 내용에 비해 포장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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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9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0-10-19 15:4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좋은 생각이에요..ㅎㅎ

마녀고양이 2010-10-19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별 하나 주기도 쉽지 않은데, 제가 그만 폭소를 터뜨리지 않았겠습니까!

과감하게 별 하나도 주실 수 있는 머큐리님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머큐리 2010-10-19 22:37   좋아요 0 | URL
저도 별 한개는 처음인 듯...--;

카스피 2010-10-20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이언맨 자체가 머큐리님 말하신 그런 배경에서 태어난 만화인데요^^

머큐리 2010-10-20 14:0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영화였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