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슈얼리티(sexuality)의 해방은 멀고도 험하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규제를 통해 남성이 도달한 자기 만족적 섹슈얼리티 해방은 진보적인 의의를 지니지 못한다. 개인의 섹슈얼리티를 억누르는 사회적 제약을 해체하는 것이 섹슈얼리티 해방을 실천하는 ‘성 정치학(sexual politics)의 목표이다. 지금까지 성 해방론자들은 섹슈얼리티를 억압하는 기존의 질서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나남출판, 2010)

 

 

 

그렇지만 섹슈얼리티를 억압하는 기존의 질서에 반기를 들고, 여성의 성적 욕망을 긍정적으로 추구한 페미니스트들의 성 해방 담론조차 ‘섹스(섹슈얼리티)에 대해서 말하기’라는 성에 대한 근대적 담론의 개념 틀 안에 있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에 따르면 근대사회는 섹슈얼리티의 각축장이었다. 부르주아는 (sex)에 대해 고백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을 만들어내면서 ‘어느 성이 합법적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은밀하게 숨겨진 섹슈얼리티는 담론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섹슈얼리티는 권리 박탈과 금지를 통해서 규제만 되는 게 아니라 고백을 통해 재생산된다. 그가 규명한 문제는 성의 억압이 아니라 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게 만드는 권력이다. 다시 말해 근대사회의 섹슈얼리티 담론은 인구를 관리 및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식 권력(savoir-pouvoir)’의 산물인 것이다. 푸코는 근대사회에 시작된 이 지식 권력을 ‘교활한 속임수’라고 비판한다. 섹슈얼리티는 자유와 ‘자기 결정’의 보루인 것 같아 보여도 그것은 시대의 맥락에 따라 또는 권력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008)

* 조형준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 임옥희 《주디스 버틀러 읽기》 (여이연, 2006)

 

 

 

이러한 푸코의 논의는 성 해방 자체를 문제 삼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입장과 궤를 같이 한다. 그녀는 섹스(생물학적 성), 젠더(사회적 성, gender), 섹슈얼리티 모두를 이성애적 지배 담론 중심의 문화와 사회가 반복적으로 주입해서 만들어진 구성물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말했듯이, 섹슈얼리티와 마찬가지로 젠더도 역사적 맥락에 의해서 달라지는 가변적인 것이다. 이성애적 지배 담론은 전통적인 성(생물학적 성) 역할에 기반을 둔 이성애적 관계를 사회의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운 섹슈얼리티로 정당화하게 만든다. 이성애적 지배 담론을 지지하는 사회 속에서 말하게 되는 성은 이성애 관계에서 고려되는 ‘연애법’ 또는 ‘성애술’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성애와 동성애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요청되는 성 역할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만들어 간다. 이 반복적인 수행으로 인해 ‘이성애적 성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이성애적 지배 담론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성별 이분법에 벗어난 성(sex)과 섹슈얼리티를 비정상 혹은 변태로 규정한다.

 

버틀러는 ‘남성 이성애자’, ‘여성 이성애자’만이 주체라고 보는 지식 권력인 가부장적 이성애주의의 문제점을 폭로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이 바라던 성 해방은 ‘이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60년대에 불어 닥친 성 해방의 열기는 성별 이분법과 그것의 근원인 이성애적 지배 담론 둘 다 전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성(성)과 여성(성), 그리고 이성애와 동성애를 구분하는 것은 지식 권력이 만들어낸 섹슈얼리티 담론이며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이런 내부에 작용되는 지식 권력을 전복시키는 것 역시도 사회 내부의 실천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이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포괄하는 급진적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일상에 맞닿아 있는 다양한 양상의 지식 권력을 분석하면서 균열을 일으켜야 한다.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 속에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지만, 꼭 그것을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할 필요가 없다. 서로 다른 입장의 차이를 반목과 혐오로 치환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차이를 무시하거나 덮어버려선 안 된다. 차이가 갈등과 분열이 되지 않으려면, 그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것마저 어렵다면,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배제와 폭력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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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사회
줄리언 바지니 지음, 오수원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post-truth’이었다. 원어의 의미를 그대로 살린 채 우리말로 번역하면 ‘탈(脫)진실’이 될 수 있겠다.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의 감정이나 주관적 확신에 호소하는 정치 캠페인을 묘사할 때 많이 사용됐던 말이다. 특히 선동가들이 때론 진실과 다른 내용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도 널리 사용됐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 연이은 충격적인 사건 여파로 이 단어가 큰 관심을 모았다. 진실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탈진실의 시대 속에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의사결정은 머뭇거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의사결정에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다원화된 사회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민주사회이기에 가능한 상황이다. 권위주의적 권력이 지배하던 시절 공동묘지의 고요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다. 자유 민주 질서는 다원화를 촉진하고 생산적으로 살리는 데서 건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하지만 탈진실의 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가 생산적인 시끄러움이 아니라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시끄러움에 휩싸이고 있다. 이 시끄러움은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뉴스’에서 나오는 시각적 소음이다. 검증되지 않은 거짓 정보들이 넘쳐흐르고, 그것이 진실인 양 둔갑하여 또다시 거짓 정보를 재생산해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가짜 뉴스는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탈진실보다 더 무서운 건 아예 진실 자체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상황이다. “오늘날 진실은 이렇게 훨씬 더 복잡하고 안개 자욱한 모호한 것이 되어버렸다(《진실 사회》 12쪽).”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Julian Baggini)의 말처럼 ‘안개’가 된 진실은 좀처럼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손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은 점점 외면받는다. 반면 거짓은 진실의 가면을 쓰고 활개 치며 우리를 유혹한다. 하지만 바지니는 진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진실은 살아있다고 믿는다. 과거에는 ‘보이는 것’이 진실이었다. 이때 진실은 아주 단순했다. 그렇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진실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보이는 것만 전부(진실)가 아니다. 오늘날의 진실은 복잡성을 띠고 있으며 우리 눈앞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진실을 누가 말하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분간할 능력이 없다.

 

《진실 사회》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지니는 진실의 존재를 위협하는 거짓의 유해성을 밝힐 뿐만 아니라, 진실의 복잡성이 어떻게 거짓을 양산하는지 살핀다. 바지니는 진실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위해, 진실을 열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1. 종교적 진실

2. 권위적 진실

3. 은폐적 진실

4. 이성적 진실

5. 경험적 진실

6. 창조적 진실

7. 상대적 진실

8. 권력적 진실

9. 도덕적 진실

10. 총체적 진실

 

 

종교적 진실은 사유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거의 몸으로 느끼면서 발견하는 진리에 가깝다. 그러므로 종교적 진실은 개인의 자아의식과 정체성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전문가의 인식론이 반영된 권위적 진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해서 권위나 권위자 자체를 무조건 거부해선 안 된다. 비록 정확하지 않더라도 그 권위가 강조하는 ‘주제’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작용하는지 우리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진실은 은폐될수록 음모론이 계속 나오며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순수 이성을 통해 확실한 진리에 도달한다고 보는 이성적 진실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권력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실을 만들고 싶어 한다. 권력적 진실은 권력자의 ‘통제’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가 살면서 쭉 믿어왔던 단 하나의 진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진실과 관련된 가치관과 세계관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진실은 개인의 가치와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을 정도로 ‘총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인의 진실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부정하는 반응은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가장 합리적인 수단은 명백한 근거와 진실이다. 바지니는 탈진실 시대일수록 진실을 바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으로 ‘진정성’과 ‘정확성’을 언급한다. 탈진실 시대의 도래는 그동안 믿어왔던 많은 것들을 바꿀 것이다. 이는 진실을 믿으려는 이들의 가치관을 흔들 만큼 엄청난 혼란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가올 미래의 혼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그에 앞서 왜 우리가 눈앞에 있는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피하게 됐는지 자성이 필요한 때이다.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무관심과 냉소주의 뒤에서 숨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진실과 정의를 확보할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살아갈 의미 없는 인생이 되고 만다. 그러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가짜 뉴스의 노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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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0-02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증편향을 원하는 이들에게 진짜 진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필요할 따름이죠.

존재의 상실감을 자신이 원하는 가짜 진실로 채
우려는 욕망이 문제라고 하네요.

cyrus 2018-10-03 13:48   좋아요 0 | URL
자신의 모습을 거짓 진실로 꾸며서 과대 포장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SNS이에요. 북플도 인스타, 페북처럼 유사해져서 지적 허영심을 드러내기 딱 좋은 곳이에요. 요즘 독서모임을 통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니까 제가 그동안 글을 쓰면서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켰다는 걸 깨달았어요.

2018-10-03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03 13:48   좋아요 0 | URL
가짜 뉴스를 믿는 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
 

 

 

러시아 문학은 약 천 년의 역사를 가졌다.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 논하면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를 가장 많이 떠올릴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제목으로 잔잔한 어조로 우리의 마음에 위로를 주는 푸시킨은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푸시킨과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로 맥을 이어가면서 그 황금기를 구가한다. 특히 이 시기의 러시아 문학은 사회 현실을 농도 짙게 반영하는 사실주의 문학으로서 세계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이정식 《시베리아 문학기행》 (서울문화사, 2017)

* 김진영 《시베리아의 향수 : 근대 한국과 러시아 문학, 1896-1946》 (이숲, 2017)

* 이광수 《유정》 (애플북스, 2014)

 

 

 

민중성이 짙고, 사상성이 강했던 러시아 문학은 일제 강점기 조선의 민중과 지식인들의 마음을 울렸다. 조선 지식인들이 바라본 러시아는 근대화될 조선의 미래가 그려진 ‘유토피아’였다. 생경한 서양문화를 접한 조선 지식인들은 러시아를 ‘제1세계’로 받아들였다. 특히 조선 지식인들은 시베리아를 방랑과 자유의 공간으로 인식했다. 조선인의 러시아행은 피식민지인의 위치로서 겪는 좌절감을 ‘자유와 해방’에 대한 희망으로 바꾸려는 식민지 조선 탈출의 여정이었다.

 

춘원 이광수는 1914년 6개월 동안 바이칼 호수 근처에 생활한 적이 있으며 시베리아와 바이칼 호수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유정》을 썼다. 소설은 양부, 양녀 관계로 살아온 최석과 남정임, 두 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  최석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의 친딸 남정임을 맡아 기르는 교사이다. 그러나 정임은 석을 좋아하게 되고, 석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정임과의 애정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 조선을 떠나 시베리아로 향한다. 석이 홀로 향하는 시베리아는 세속의 혼잡한 일,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정신적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안전지대이다. 그는 그곳에서 자살을 감행한다.

 

 

 

 

 

방대하면서도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에 가려진 작가를 꼽자면, 프세볼로트 미하일로비치 가르신(Vsevolod Mikhailovich Garshin)이다. 가르신은 1880년대 중후반에 활동했던 작가였고, 생전에 20여 편의 소설을 썼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 [e-Book] 가르신 《나흘 동안》 (이북코리아, 2013)

* [e-Book] 가르신 《시그널》 (이북코리아, 2017)

* [e-Book] 가르신 《붉은 꽃》 (위즈덤커넥트, 2018)

 

 

 

1877년에 러시아와 터키 간의 전쟁이 일어나자 가르신은 의용군으로 입대한다. 그러나 그는 전장에서 다리에 상처를 입었는데,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쓴 첫 작품이 바로 단편소설 《나흘 동안》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다. 전쟁 중에 크게 다쳐 대열에서 이탈한 병사가 나흘 동안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병사는 나흘 동안 전사한 터키 병사의 시체 옆에서 지내게 된다. 병사는 시체가 썩어가는 장면을 눈앞에 보면서 전쟁의 참상을 깨닫는다.

 

 

 사내에게는 이미 얼굴이 없었다. 뼈에서 밀려 내린 것이다. 나도 몇 번이나 두개골을 손에 잡아본 일이 있고, 머리의 표본을 여러 개 만든 일이 있지만, 이 무서운 해골의 웃음은, 영원한 웃음은, 여태까지 느끼지 못한, 기분이 나쁘고 추악한 것으로 느껴졌다. 반짝이는 단추가 달린 군복 차림의 이 해골은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이것이 전쟁이다. 이것이 전쟁의 모습이다.’

  나는 생각했다.

 

(가르신, 《나흘 동안》 24쪽)

 

 

소설은 전사자의 시체가 썩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민중이 희생당하는 전쟁의 참상을 극대화한다. 가르신은 이 데뷔작 한 편으로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는 정신 발작에 시달렸고,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붉은 꽃》은 작가의 정신병원 입원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정신병원 내부의 음울한 풍경과 분위기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군인인데, 그는 자신을 병원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차르(Tsar, 러시아 황제)의 감독관이라고 주장한다. 병원 관계자는 이 군인을 정신병자로 규정하고, 그를 독방과 비슷한 병실에 강제로 보낸다. 군인은 의사와 면담하면서 자신과 같이 불행한 사람을 고문하고, 가둬 두기만 하는 감시 보호 체제의 기능에 의문을 드러낸다. 그러나 의사는 그의 말을 ‘정선이 불안정한 환자’의 헛소리로 치부하고, 대충 흘려 넘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군인은 범상치 않은 언행을 한다. 자신은 ‘보이지 않는 공’의 형태 속에 있고, 자신이 그 공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공이 부여하는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군인은 정신병원 내부 안에 있는 정원에 핀 ‘붉은 꽃’에 집착한다. 그는 이 붉은 꽃에서 ‘신비하고 강한 힘의 흐름’을 느꼈다면서, 언젠가는 꽃이 세상을 파괴할 것으로 생각한다. 군인이 보기에 붉은 꽃에는 신에게 대항하는 사악함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은 붉은 꽃에 사로잡혀 망상과 환상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결국, 그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꽃을 제 손으로 파괴하기로 결심한다. 군인은 기어이 꽃을 꺾는 데 성공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숨을 거둔다. 그토록 파괴하고 싶었던 꽃을 손에 꼭 쥔 채. 그의 얼굴은 무척 평화로워 보인다. 군인에게는 꽃을 파괴하는 일이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을 찾기 위한 ‘의무’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상’의 위치에 있는 의사들, 그리고 작품 밖에 있는 독자의 시선에는 그의 행동은 ‘비정상’으로만 보일 뿐이다. 정상과 비정상으로만 나누는 이분법적 판단은 개인이 자유와 해방을 찾는 방식을 일차원적으로 보게 만든다. 소설은 인간의 사소한 행위마저 일차원적으로 보는 ‘정상-비정상’으로 선을 그은 경계를 허물고 비웃는다. 이러한 도발적 글쓰기는 주류의 경계에 벗어난 ‘광인’이라면 할 수 있는 방식이다.

 

가르신도 《유정》의 최석, 그리고 《붉은 꽃》의 병사처럼 죽음을 숨 막히는 세상에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최후의 탈출구로 여겼던 것일까. 가르신은 계단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고,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 심현정, 이은희 옮김 《세계 단편소설 베스트 37》 (혜문서관, 2012)

 

 

 

《시그널》은 가르신 사후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의 결말은 《나흘 동안》 《붉은 꽃》과는 다르게 감동적인 여운이 있다. 《세계 단편소설 베스트 37》에 ‘신호’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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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0-0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르신이 종이책으로 나온 건 없나보구나.
세계 단편소설 베스트 한 번 읽어봐야겠네.
우리 땐 저런 책이 없었는데. 기껏해야
손바닥만한 삼중당이 고작일까?
그나마 난 그걸 보지도 않았다.
내가 모르는 단편들이 많이 있네.^^

cyrus 2018-10-02 17:50   좋아요 0 | URL
우리 집에 ‘세로쓰기’로 된 세계 단편소설 전집이 있어요. 그 책에는 요즘 잘 번역되지 않은 작가들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어요. 그 중 한 편이 가르신의 소설이었어요. 전집이 창고에 있어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 책에 <붉은 꽃>이 수록되어 있었어요. ^^
 
가족과 통치 -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
조은주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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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문제로 심각한 우리나라는 불과 4, 50여 년 전만 해도 다산국가였다. 과다한 인구를 중진국 도약의 최대 걸림돌로 인식한 박정희 정권은 ‘가족계획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높은 출산율이 국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판단한 박정희 정권은 1961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가족계획까지 포함했다. 이후 본격적인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됐다. 70년대 구호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으며 80년대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 이 무렵에는 남자들이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가면 관할 보건소에서 나온 의사들이 무료 정관수술을 해 주고 콘돔을 나누어 줬다. 인위적으로 출산을 제한시켰다.

 

격세지감이랄까. 산아제한이 국가적 과제였던 옛 시절을 흥미로운 추억거리로 회상하기에는 오늘의 우리나라 상황은 너무 심각해졌다.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생산인구와 노동력의 감소를 의미한다. 여기에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고령화까지 겹쳐 우리나라 경제는 심각한 정체와 퇴보의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정부는 여러 가지 유인책으로 출산을 장려하지만 별 효과가 없다.

 

인구는 많든 적든 늘 문제다. 많을 땐 줄이도록, 적을 땐 늘리도록 국가적 압력이 커진다. 그래서 인구 문제는 ‘정치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란 부제가 달린 《가족과 통치》는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저자 조은주 교수국가의 통치(박정희 정권의 가족계획사업)가 임신과 출산 등의 국민 생식 영역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자세히 살핀다.

 

근대 이전까지 국가 권력은 ‘가부장제’에 그 뿌리가 있다. 군주는 ‘가부장’에 속한다. 국가는 왕이 정점에 있는, 가족보다 더 커다란 조직 형태이다. 국가의 신하는 가족 구성원이 아버지에게 대하듯이 왕에게 충성해야 한다. 이때 가족은 ‘통치의 모델’이었다. 1960년대부터 가족계획사업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면서 가족은 ‘통치의 도구’로 전락한다. 박정희 정권 시대에 가족은 ‘노동 인구’이면서도 ‘통치되어야 할 인구’이다. 국가가 출산과 육아, 그리고 가족 구성에 개입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가족계획사업은 국만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통치를 극대화한 근대화 프로젝트였다.

 

박정희 정권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적절한 인구 유지가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그리하여 가족을 통치하는 강력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임술을 보급하기 위해 보건소 관할 하에 가족계획상담소를 설치했다. 전국 보건소에 2, 3명의 ‘가족계획 계몽원’을 파견하여 가족계획 캠페인을 하고 경구피임약을 보급했다. 1968년에 조직되기 시작한 가족계획어머니회는 새마을부녀회의 전신이지만, 사실은 경구피임약을 전국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단체였다. 1973년에 통과된, 임신 중절(낙태)을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은 ‘성공한 산아제한’의 그림자이다. 정부 차원에서 광범위한 낙태가 조장되기 시작하면서 의사들은 국가의 가족계획 정책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간파했듯 지식은 권력에 봉사한다. 출산과 피임에 관련된 의학 및 과학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은 국민의 생식 영역을 통제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푸코는 말년의 저작 《성의 역사》 1권에서 국가 권력이 성, 즉 섹슈얼리티(sexuality)를 구조적으로 억압해 왔다는 가설을 거부한다. 오히려 섹슈얼리티에 대한 지식과 담론은 확산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섹슈얼리티를 말하게 만드는(담론화) 배경과 그 전략을 분석해 섹슈얼리티 억압 가설이 가진 허구성을 폭로한다. 《가족과 통치》는 섹슈얼리티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푸코의 분석을 바탕으로 가족계획사업의 통치술을 재평가한다. 기존의 연구에 의하면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가족계획 정책의 통제 대상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사회악과 퇴폐풍조를 일소한다며 미니스커트 단속을 명령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경찰에게 붙들려 뭇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무릎에서부터 치마 끝단까지의 길이를 자로 재는 수모를 당하기가 예사였다. 또 박정희 정권은 트랜스젠더를 경범죄로 경찰에 연행하고 단속하는 일을 중요 과제로 삼았다. 이러한 사례만 보더라도 60~70년대 우리나라의 섹슈얼리티는 사회에서 등한시되거나 단속과 검열을 피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는다. 저자는 가족계획사업의 등장으로 섹슈얼리티와 인구 재생산(출산)은 따로 분리되기 시작했고, 쾌락적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성 담론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가족계획을 홍보하기 위한 만들어진 각종 책과 잡지에는 부부가 만족할 수 있는 성생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여성의 성적 욕망을 긍정하는 내용의 글들이 실려 있었다. 국가가 원하는 정상적인 가족 모델은 이성애적 사랑에 기초한 부부 중심의 가족이었다.

 

《가족과 통치》는 국가가 어떻게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면서 통치하는지 보여준다. 피임 도구 사용법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고, 여성의 성적 욕망을 긍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의 주체성을 고취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들은 경제 성장 담론과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에 포획된 ‘국민’을 통치하기 위한 국가의 이해가 반영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불편한 진실’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다. 섹슈얼리티가 남성의 본질적인 욕망이라고 인식한 남성들은 성적 주도권을 마음대로 쥐지만, 성관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여성이 혼자 떠안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는 여성을 국가를 위해 ‘출산하는 도구’로 여기고 있다.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여기는 몇몇 사람 중에는 산아제한의 시대를 살아왔거나 간접적으로 그 시대가 드리운 그림자 속에 살아온 이들이 있을 것이다. 박정희 시대를 추억하는 분위기는 예전보다 많이 사라지긴 한 것 같은데, 국민을 통치하는 구시대적 방식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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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0-01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료들의 의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인구문제의 해결은 요원해 보입니다.

섬김이 아니라 통치의 대상으로 보는 시
선이 문제입니다.

cyrus 2018-10-02 07:24   좋아요 0 | URL
공개되자마자 논란이 된 ‘가임기 지도‘는 국가가 여성 (국민)을 어떻게 보는지 드러낸 정책이었죠.

2018-10-01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02 07:25   좋아요 0 | URL
독재 정권의 권력자들은 국민의 성을 통제하면서도 자신들은 즐길 수 있는 건 다 하죠.. ^^;;

2018-10-02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02 07:28   좋아요 0 | URL
저도 추석에 놀기만 했어요. 책은 안 읽고, 만화를 봤습니다.. ㅎㅎㅎ

추석 때 실컷 놀고 나니 책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네요. ^^
 

 

 

 

10월 9일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이 만들어진지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역사적인 첫 모임 선정도서가 바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성의 변증법》이었습니다. 모임 장소는 경상감영공원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 ‘스몰토크’였습니다. 이 날 모임에 총 8명이 참석했습니다. 이 중 5명은 이미 페미니즘 독서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용된 모임명은 ‘아마추어 불편러’였습니다. 《성의 변증법》을 읽기 시작했을 때도 모임명은 레드스타킹이 아니라 ‘아마추어 불편러’였습니다. 매주 월요일 카페 ‘스몰토크’에 모여 오후 7시 30분부터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 [레드스타킹 첫 번째 선정도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꾸리에, 2016)

모임 기간 : 2017년 10월 9일, 16일, 23일, 30일,

11월 6일, 13일 (총 6주)

 

 

 

 

 

 

 

모임명이 ‘레드스타킹’으로 변경된 날은 2017년 11월 13일입니다.

 

 

 

 

 

 

 

 

 

 

 

 

 

 

 

 

 

 

* [레드스타킹 두 번째 선정도서]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황금가지, 2002)

모임 기간 : 2017년 11월 27일, 12월 4일, 11일 (총 3주)

 

 

 

한 권의 책을 다 읽으면 한 주 쉬고, 다음 주부터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독서모임 선정도서는 작년에 리커버 특별판이 나와서 화제가 되었던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시녀 이야기》였습니다.

 

 

 

 

 

12월 초에 ‘레드스타킹’ 공식 로고와 홍보용 명함이 만들어졌습니다. 모임 멤버 중에 디자인, 포토샵에 능한 분들이 있어서 독서모임 관련 공지 게시물이나 행사 홍보용 포스터를 직접 만듭니다.

 

 

 

 

 

 

2017년 12월 18일에 송년 모임 ‘페미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이 날 모임 멤버들이 각자 가지고 온 페미니즘 책들은 책방에 채워졌는데, 지금도 카페에 가면 페미니즘 책으로 채워진 책장이 있습니다. 레드스타킹 회원이 되면 책장에 있는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습니다. 올해도 두 번째 ‘페미 부흥회’가 열립니다.

 

 

 

 

 

 

 

* [레드스타킹 세 번째 선정도서]

실비아 페데리치 《혁명의 영점》 (갈무리, 2013)

모임 기간 : 2018년 1월 1일, 8일, 15일, 22일 (총 4주)

 

 

 

 

 

 

 

2018년 1월 1일 신정인데도 독서 모임을 한 적이 있었네요. 무서운 사람들…‥.

 

 

 

 

 

레드스타킹은 《혁명의 영점》 완독 기념으로 첫 번째 영화상영회(1월 29일)를 열었습니다. 이 날은 ‘전설의 시작’이었죠. 그동안 레드스타킹은 독서 모임 멤버 위주로 활동했습니다. 영화 상영회는 독서 모임 정식 멤버가 아닌 외부인도 참석할 수 있는 행사였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레드스타킹은 독서 모임을 넘어서서 영화 상영회를 직접 준비하고 홍보하기 시작했습니다. 레드스타킹 입장에서 보면 이 날은 아주 뜻 깊은 날입니다. 왜냐하면, 영화 상영회 이후로 레드스타킹이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신입 멤버들이 많았습니다. 그 멤버 중 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저는 영화상영회에 참석해서 처음으로 멤버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 [레드스타킹 네 번째 선정도서]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바다출판사, 2015)

모임 기간 : 2018년 2월 12일, 19일, 26일 (총 3주)

 

 

 

 

 

 

 

제가 정식으로 독서 모임에 참석한 날은 2018년 2월 12일입니다. 그 날 분위기를 술회하자면, 오랜만에 독서 모임에 참석했던 터라 조금은 긴장했습니다.

 

 

 

 

 

 

 

 

* [레드스타킹 다섯 번째 선정도서]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갈무리, 2014)

모임 기간 : 2018년 3월 12일, 19일, 26일, 4월 2일

(총 4주)

 

 

 

 

3월 11일에 두 번째 영화상영회가 열렸고, 3월 31일에 월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눠보는 ‘본경 월경 토크’를 진행했습니다.

 

 

 

 

 

 

 

 

* [레드스타킹 여섯 번째 선정도서]

권김현영 엮음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교양인, 2018)

모임 기간 : 2018년 4월 23일, 30일 (총 2주)

 

 

 

 

 

 

 

4월은 잔인할 정도로 바쁜 달이었습니다. 세 번째 영화상영회(4월 9일), 권김현영 강연(4월 16일), 독서 모임(4월 23일), 나영 강연(4월 28일)이 있었거든요.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첫 번째 모임 날에 영남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레드스타킹이 처음으로 언론에 언급되었습니다.

 

 

 

 

 

 

* [레드스타킹 일곱 번째 선정도서]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여이연, 2009)

모임 기간 : 2018년 5월 14일, 21일, 28일,

6월 4일, 11, 18일 (총 6주)

 

 

 

 

 

 

 

 

 

 

* [레드스타킹 여덟 번째 선정도서]

게일 루빈 《일탈》 (현실문화, 2015)

모임 기간 : 2018년 7월 9일, 16일, 23일, 30일,

8월 6일, 13일 (총 6주)

 

 

 

 

 

 

 

5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는 혼자서 읽지 못할 ‘벽돌 책들’을 연속으로 만났습니다. 7~8월도 4월 못지않게 무척 바빴던 시기였습니다. ‘정희진 강연(8월 25일)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레드스타킹은 정말 열심히 행사를 준비했고, 홍보했습니다.

 

 

 

 

 

 

* [레드스타킹 아홉 번째 선정도서]

미셸 푸코《성의 역사 1》 (나남출판, 2010)

모임 기간 : 9월 3일, 10일, 17일 (총 3주)

 

 

 

 

 

 

 

추석 연휴가 있는 주가 오기 전에 《성의 역사》 1권을 다 읽었습니다. 지금도 ‘푸코 앓이’를 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푸코의 책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푸코를 읽어야 할 명분이 하나 생겼어요.

 

 

 

 

 

 

왜냐하면, 푸코의 이론이 이번 달에 읽어야 할 책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레드스타킹 열 번째 선정도서는 실비아 페데리치《캘리번과 마녀》입니다.

 

 

 

 

 

 

‘레드스타킹 1주년’ 기념으로 ‘씨네 토크’ 행사오오극장에서 열립니다. 이 날, 영화감독님도 오십니다. 영화 상영 후에 영화를 주제로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2년 동안 남긴 레드스타킹의 발자취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링크: https://www.instagram.com/feminism_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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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0-01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제가 강연장에서 명함을 받았던 시점에는 ‘레드스타킹‘으로 바뀐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겠군요. ㅎㅎ

cyrus 2018-10-01 17:53   좋아요 0 | URL
레드스타킹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syo님이 가셨던 강연에 참석했던 멤버들의 사진이 있을 거예요. 아마도 syo님이 받았던 명함은 첫 번째 버전일 것입니다. 잘 보관해두세요. 지금은 첫 번째 버전 명함이 남아 있는 않거든요. ^^

어제 서부도서관에 왔었죠? 타도서관 반납 기록부에 syo님 이름이 있던데요. ㅎㅎㅎ

syo 2018-10-01 18:07   좋아요 0 | URL
우리는 맨날 그런 식으로 서로의 자취만 확인하곤 하지요 ㅋㅋㅋㅋㅋㅋ 아 재밌다..

stella.K 2018-10-01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이면 아직 역사라고 할까지야...
그런데도 괜찮은 강연회도 있었고 나름 활발한 활동을 하는 거 보면
가히 폭풍적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좋은 일이지^^

cyrus 2018-10-01 18:12   좋아요 0 | URL
제가 레드스타킹 이전의 과거를 잘 몰라서 그렇지 페미니즘 독서 모임이 운영된지 2년 넘었을 거예요. ‘레드스타킹’으로 변경하기 전의 활동을 포함하면 모임이 오래 유지되었어요. ^^

2018-10-02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02 17:51   좋아요 1 | URL
저는 1년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모임 활동을 했던 터라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한 분들과는 달리 감회가 새롭다는 식의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