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사회
줄리언 바지니 지음, 오수원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post-truth’이었다. 원어의 의미를 그대로 살린 채 우리말로 번역하면 ‘탈(脫)진실’이 될 수 있겠다.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의 감정이나 주관적 확신에 호소하는 정치 캠페인을 묘사할 때 많이 사용됐던 말이다. 특히 선동가들이 때론 진실과 다른 내용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도 널리 사용됐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 연이은 충격적인 사건 여파로 이 단어가 큰 관심을 모았다. 진실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탈진실의 시대 속에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의사결정은 머뭇거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의사결정에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다원화된 사회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민주사회이기에 가능한 상황이다. 권위주의적 권력이 지배하던 시절 공동묘지의 고요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다. 자유 민주 질서는 다원화를 촉진하고 생산적으로 살리는 데서 건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하지만 탈진실의 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가 생산적인 시끄러움이 아니라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시끄러움에 휩싸이고 있다. 이 시끄러움은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뉴스’에서 나오는 시각적 소음이다. 검증되지 않은 거짓 정보들이 넘쳐흐르고, 그것이 진실인 양 둔갑하여 또다시 거짓 정보를 재생산해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가짜 뉴스는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탈진실보다 더 무서운 건 아예 진실 자체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상황이다. “오늘날 진실은 이렇게 훨씬 더 복잡하고 안개 자욱한 모호한 것이 되어버렸다(《진실 사회》 12쪽).”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Julian Baggini)의 말처럼 ‘안개’가 된 진실은 좀처럼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손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은 점점 외면받는다. 반면 거짓은 진실의 가면을 쓰고 활개 치며 우리를 유혹한다. 하지만 바지니는 진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진실은 살아있다고 믿는다. 과거에는 ‘보이는 것’이 진실이었다. 이때 진실은 아주 단순했다. 그렇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진실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보이는 것만 전부(진실)가 아니다. 오늘날의 진실은 복잡성을 띠고 있으며 우리 눈앞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진실을 누가 말하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분간할 능력이 없다.

 

《진실 사회》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지니는 진실의 존재를 위협하는 거짓의 유해성을 밝힐 뿐만 아니라, 진실의 복잡성이 어떻게 거짓을 양산하는지 살핀다. 바지니는 진실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위해, 진실을 열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1. 종교적 진실

2. 권위적 진실

3. 은폐적 진실

4. 이성적 진실

5. 경험적 진실

6. 창조적 진실

7. 상대적 진실

8. 권력적 진실

9. 도덕적 진실

10. 총체적 진실

 

 

종교적 진실은 사유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거의 몸으로 느끼면서 발견하는 진리에 가깝다. 그러므로 종교적 진실은 개인의 자아의식과 정체성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전문가의 인식론이 반영된 권위적 진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해서 권위나 권위자 자체를 무조건 거부해선 안 된다. 비록 정확하지 않더라도 그 권위가 강조하는 ‘주제’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작용하는지 우리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진실은 은폐될수록 음모론이 계속 나오며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순수 이성을 통해 확실한 진리에 도달한다고 보는 이성적 진실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권력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실을 만들고 싶어 한다. 권력적 진실은 권력자의 ‘통제’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가 살면서 쭉 믿어왔던 단 하나의 진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진실과 관련된 가치관과 세계관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진실은 개인의 가치와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을 정도로 ‘총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인의 진실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부정하는 반응은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가장 합리적인 수단은 명백한 근거와 진실이다. 바지니는 탈진실 시대일수록 진실을 바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으로 ‘진정성’과 ‘정확성’을 언급한다. 탈진실 시대의 도래는 그동안 믿어왔던 많은 것들을 바꿀 것이다. 이는 진실을 믿으려는 이들의 가치관을 흔들 만큼 엄청난 혼란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가올 미래의 혼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그에 앞서 왜 우리가 눈앞에 있는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피하게 됐는지 자성이 필요한 때이다.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무관심과 냉소주의 뒤에서 숨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진실과 정의를 확보할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살아갈 의미 없는 인생이 되고 만다. 그러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가짜 뉴스의 노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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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0-02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증편향을 원하는 이들에게 진짜 진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필요할 따름이죠.

존재의 상실감을 자신이 원하는 가짜 진실로 채
우려는 욕망이 문제라고 하네요.

cyrus 2018-10-03 13:48   좋아요 0 | URL
자신의 모습을 거짓 진실로 꾸며서 과대 포장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SNS이에요. 북플도 인스타, 페북처럼 유사해져서 지적 허영심을 드러내기 딱 좋은 곳이에요. 요즘 독서모임을 통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니까 제가 그동안 글을 쓰면서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켰다는 걸 깨달았어요.

2018-10-03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03 13:48   좋아요 0 | URL
가짜 뉴스를 믿는 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