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낫지 않는 질병에 걸리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건강이 나빠진 상태를 보여 주기 싫어서 병에 걸린 사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이런 사람에게 충언할 때 쓸 수 있는 속담이 있다.







병 자랑은 하여라.’ 병에 걸린 사실에 혼자 불안해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는 증상을 알려서 치료법을 찾으라는 뜻이다.


몸과 정신이 아픈 경험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러나 질병을 터놓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아픔이 동등하게 관심받는 것은 아니다누군가의 아픔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동정심을 일지만, 다른 누군가의 아픔은 외면받거나 의도적으로 지워진다어떤 아픔은 마땅히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 되지만, 또 어떤 아픔은 질병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찔린다아픈 사람의 목소리는 소거된다. 결국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침묵당한 아픔은 불평등과 차별을 유발한다. 정확하게 진단하는 의료 기기가 갖춰진 병원이 많이 생겨도 아픔을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5년 12월의 세계 문학]

* 비키 바움, 박광자 옮김 크리스마스 잉어(휴머니스트, 2023)




오스트리아에 태어나 독일과 미국에 활동한 비키 바움(Vicki Baum)의 단편 소설 <>아픔을 말하지 못한 여성이 느끼는 소외감이 잘 묘사되어 있다1924년에 발표된 <>토마스 만(Thomas Mann)이 극찬한 작품으로, 국내에 유일하게 출간된 바움의 단편 선집 크리스마스 잉어에 실려 있다.


<>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픔을 참는 주부의 이야기다주인공은 새 옷장을 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집안일하는 주부는 경제적 자유가 없다. 그녀는 옷장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돈을 쓰려면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답답한 일상은 주부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결국 그녀는 알 수 없는 몸의 통증에 시달린다몸에 이상을 느낀 주부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아파서 쉬게 되면 해야 할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자기 대신에 식사를 차려 줄 사람이 없다참다못한 주부는 남편에게 자신의 증상을 밝힌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가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주부는 자신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는 남편에 실망한다도통 낫지 않아서 병원에 가보지만, 의사는 그녀의 병을 감기로 진단을 내린다. 주부는 의사의 진단을 믿는다.









   











* 베티 프리단, 김현우 옮김 여성성의 신화: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갈라파고스, 2018)

 

* 김선희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 베티 프리단과 <여성의 신비>의 사회사 (푸른역사, 2018)




<>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삶에 만족하는 가정주부이미지가 허상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나온 지 40여 년 후에 가정주부의 아픔을 본격적으로 주목한 책이 나온다이 책이 바로 미국의 페미니스트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여성성의 신화(The Feminine Mistique). 바움이 미국 할리우드에서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에 출간되었다주부에게 집은 일터다. 집안일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성으로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일로 여긴다. 주부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스스로 묻지 못한 채 살아왔다. 가정에 헌신하는 여성은 의사도 명확히 진단 내리기 어려운 신체적 증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거나 정신적인 공허감을 느낀다프리단은 주부들의 속앓이를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problem that has no name)로 명명한다.


















* 아서 프랭크, 최은경 · 윤자형 함께 옮김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 육체, 질병, 윤리(갈무리, 2024)

 

* 아서 프랭크, 메이 옮김 아픈 몸을 살다(봄날의책, 2017)




한 사람의 아픔에도 이야기(narrative)가 있다. 아픈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 속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말하지 못한 아픈 이야기는 약을 먹거나 치료해서 금방 사라지는 가벼운 증상이 아니다병을 자랑하는 이야기는 병을 치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에 아픈 이야기는 질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 이야기가 아니라 질병이 삶의 일부가 된 이야기. 아픔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픈 몸의 취약함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비하로 빠지지 않는다질병, 장애 등이 포개진 아픈 이야기를 듣는 일은 지금 아프기 시작했거나 과거에 아팠던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을 읽는 방식이다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도 언젠가는 아플 수 있다아픈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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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에 반하여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 윌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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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탁의 탁월한 문장을 볼 때마다 감탄해서
손으로 머리를
‘탁’ 칠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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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12-22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혹시 아재 개그인가요? ㅎㅎㅎㅎ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 삶과 문학, 읽고 쓰기에 관한 네 번의 강의
제임스 우드 지음, 노지양 옮김, 신형철 해제 / 아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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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에 박힌 문학은 고루한 학문이다. 잘난 체하는 문학은 지루하다. 독자는 거꾸로 학문이 된 문학에 다가서지 못한다. 뻣뻣하게 경직된 문학과 친해질 수 없다. 


문학의 정석(定石) 비평가와 문학 교수들이 정교하게 깎아 만든 비석이다. 학생들은 거대한 비석에 새겨진 이론과 비평 방식을 받아 적으면서 수련(修鍊)한다



문학을 학문으로 받아들인 학생들은 비석을 윤이 나게 열심히 닦는다(). 


학생들의 오랜 반복 훈련으로 단련된() 문학의 정석은 

절대로 깨질 리 없다


학생들은 문학의 정석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정답을 찾는다. 




상아탑이 편한 문학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펑퍼짐한 문학은 상아탑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뚱한 문학은 독자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독자의 눈빛을 받지 못한 문학은 쓸쓸하다. 아무리 잘 썼다고 해도 쓸모가 없다문학이 있어야 할 곳은 상아탑이 아니다문학은 반드시 독자를 만나야 한다. 독자의 곁에 있어야 한다.








영국의 비평가 제임스 우드(James Wood)는 유년 시절에 문학의 숲(wood)을 심기 시작했다한 권의 책이 문학 숲의 씨앗이다. 이 책은 시, 소설, 수필, 희곡도 아니다. 독자들에게 소설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것 같은 소설과 소설가들이라는 입문서다. 어린 우드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좋아했고, 그 부분만 열심히 읽었다. 전 세계 작가들의 이름을 알파벳순으로 나열하여 그들의 작품 세계를 요약한 장이었다그는 작가들의 이름과 소설 제목을 기억했고 틈틈이 그들의 작품을 읽었다. 이때부터 문학 소년의 마음속에 문학 새싹들이 모도록 돋아났다문학 소년과 함께 자란 문학의 숲은 비평가로 성장하기 위한 영양분이 되었다책을 읽고 글을 쓰는 비평가가 심어 가꾼 문학의 숲은 싱그럽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은 자신만의 문학의 숲을 가꾸고 싶은 독자, 작가들이 꾸민 문학의 숲을 거닐고 싶은 독자를 위한 안내서다. 책 제목은 영국의 소설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이 말한 예술은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서 따왔다. 우드는 상아탑에 박힌 문학만 보는 비평을 선호하지 않는다. 상아탑에 박힌 문학은 보면 볼수록 따분하다. 상아탑을 지키는 일에 몰두한 비평가와 문학 교수는 문학을 학문으로 취급한다학구적 문학 비평은 독자와 문학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독자는 재미없는 상아탑을 보러 가지 않는다문학을 즐기기 위해 문학의 숲을 산책한다









문학의 숲에 문학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널려 있다문학의 숲을 모험하는 우리는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이름을 붙일 수 있다사용할 수 있는 것’의 이름과 형태는 무수하다. 그것은 우리가 쓰고 있는 평범한 물건이 될 수 있고, 과거에 만났던 사람일 수도 있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인생 가까이에 있다. 그래서 금방 찾을 수 있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문학과 밀접하다. 우리는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도 문학을 마음껏 감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상아탑에 달라붙은 비평가는 독자의 비평에 관심 없다. 오히려 자신이 배운 비평 방식을 가르치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우드가 강조한 문학 비평 방식은 비평가가 아닌 독자들도 따라 할 수 있다. 독자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사용하면 된다그리하여 독자는 소설의 여백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거나 문학 작품의 매력을 볼 줄 아는 비평가가 된다. 우드는 문학에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독자가 되라고 권한다. 문학과 친분이 두터운 독자 문학 작품을 읽다가 발견한 것을 이야기하고(retelling), 목소리를 낸다(re-voicing). 우드는 자신의 비평 방식을 비평적 다시 이야기하기또는 책을 통과하는 글쓰기라고 표현한다.


독자가 책을 통과하려면 우선 진지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진지한 관찰자는 다른 독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아주 사소한 세부 사항(detail)’을 좋아한다. 진지한 관찰자 유형에 속한 독자는 세부 사항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소설 속 등장인물이 말로 표현하지 못한 숨은 감정까지 포착한다.


문학의 정석은 무겁다. 우리가 만나야 할 문학은 가벼워야 한다. 우리가 가져야 할 문학은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소박한 조각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소중한 문학 조각을 쓰다듬는다

문학 조각 위에 글을 쓰(고) 다듬는다







우리가 정답게 어루만지는 문학 조각은 문학의 정석(貞石)이다.









<세부 사항을 관찰하면서 읽는 cyrus가 만든 주석>




[1] 정석(貞石): 단단하고 아름다운 돌





* 43, 역자의 각주





라스콜리니코프: 톨스토이죄와 벌의 주인공 [주2]


 


[주2죄와 벌》을 쓴 작가는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






* 117


 



리디아 데이비스의 단편소설 <문법 질문>(Grammar Questions) [주3]

 



[주3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의 작품집 불안의 변이(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2023)에 수록되어 있다. 번역된 제목은 문법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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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에 쓴 영화 리뷰







영화관에 가면 우리를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때문에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없다. 방해꾼은 우리의 머리를 툭툭 건드린다. 이 귀찮은 녀석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아까 봤던 영화 장면 A, 절대로 잊지 마. 잘 생각해 보라고. 영화 장면 A는 분명 B를 의미할 거야. B는 잠깐 지나간 장면 C와 분명 연관이 있을 거야.”




방해꾼은 우리에게 자꾸 생각하라고 부추긴다. 생각이 많아지니까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피곤하다. 졸음이 쏟아진다. 꾸벅꾸벅 존다. 


영화관에 출몰하는 방해꾼의 정체는 해석자. 해석자는 책 속에도 살고 있으며 미술관에도 나타난다. 해석자는 영화뿐만 아니라 소설, 예술 작품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다관객은 해석자를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해석자의 유혹을 완강히 거부하지 못한다. 관객은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영화를 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관객은 이제야 바로 옆에 해석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관객은 해석자의 반응에 순순히 따른다. 영화를 해석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쳐서 영화에 흥미를 잃는다잘 만든 영화인데도 관객은 거부감을 느낀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Sergei Parajanov)<석류의 빛깔>(The Color of Pomegranates, 1969) 해석자들이 좋아하는 영화. 이 영화가 개봉되면 영화관 좌석에 관객보다 해석자들이 더 많이 앉아 있다. 해석자들이 너무 많으면 영화를 재미있게 본 관객은 줄어든다. 대부분 관객은 비몽사몽 중에 영화를 본다잠들어 버린 관객은 영화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인상 깊은 영화 장면 한 개도 건지지 못한다. 그들은 십중팔구 영화가 수면제라고 말한다해석자의 시선을 유지하면서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해석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 허승철 코카서스 3국 문학 산책: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대표 시와 러시아 문학(문예림, 2018)


사야트 노바의 시 두 편이 실려 있다.




<석류의 빛깔>의 원제는 사야트 노바(Sayat-Nova)’. 사야트 노바(1772~1795)아르메니아의 음유시인이다. 영화감독 세르게이 파라자노프가 태어난 곳은 현재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Tbilisi, 러시아식 지명은 티플리스). 그가 태어났을 때 트빌리시는 소련의 일부였다. 사야트 노바의 출신지도 트빌리시다<석류의 빛깔>사야트 노바의 삶을 다룬 영화. 하지만 영화는 친절하지 않다. 대사가 거의 없다. 영화 속 인물들은 표정과 몸짓, 춤과 같은 시각 언어를 통해 사야트 노바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준다.









노바는 궁정 악사로 활동하다가 왕의 여동생을 사랑한 죄로 추방당했다. 마르마르(Marmar)라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지만, 노바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실의에 빠진 노바는 하흐파트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다. 1795년에 이란이 아르메니아를 침공했고, 이란 군은 아르메니아 포로들에게 이슬람으로 개종할 것을 강요한다. 개종을 거부한 노바는 이란 군에게 살해당했다. 노바는 수도사의 삶을 살면서도 세속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을 주제로 시를 썼다.


파라자노프는 악기를 연주하는 음유시인 노바의 모습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인생에 깊은 고뇌를 느끼는 수도승 노바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종교적 색깔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로 인해 <석류의 빛깔>은 소련 검열관의 무자비한 가위질을 피하지 못했고, 소련 정부의 탄압을 받은 파라자노프는 십 년 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영화의 매력은 종교적 상징을 표현한 중세의 이콘(icon, 성화)과 초현실주의적 예술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몽환적인 이미지의 조화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장면 뒤에 감독이 표현하고 싶은 의미가 숨어 있다. 영화는 관객의 해석을 유도한다. 하지만 영화를 해석하는 일은 수월하지 않다.


















* 윌 곰퍼츠, 주은정 옮김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31가지 방식(RHK, 2025)




관객이 <석류의 빛깔>스크린에 흐르는 예술 작품으로 바라본다면, 해석이 아닌 감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감상 행위는 영화를 생각하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해석자는 영화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감상자는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들을 채운다.









영국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자신만의 예술을 표현하려면 이웃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의를 기울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호크니의 무심한 반응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에 적용할 수 있다.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주의를 기울이지 말라.”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사물을 정확히 보기 위해 소거의 과정을 거쳤다. 소거의 과정이란 사물의 핵심(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일이다. <석류의 빛깔>을 감상할 때도 소거의 과정이 필요하다. 해석자와 비평가들은 사야트 노바의 삶을 상징하는 장면을 찾아서 영화를 설명하고 싶어 한다. 동성애자인 파라자노프는 소련 정부의 동성애 탄압을 피하지 못했고, 동성애 혐의를 받아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해석자와 비평가들은 이 사실을 단서로 삼아 영화 속 동성애 코드로 보일 만한 장면을 찾는다. 하지만 감상자는 사야트 노바의 삶과 파라자노프의 영화 미학을 소거한다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되는 그들의 존재감을 모른 척하거나 말끔히 지워야 한다.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 해석은 영화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한다. 사야트 노바와 파라자노프를 아는 해석자를 외면한 채 영화를 본다면 아르메니아 전통 악기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릴 것이다. 아니면 기쁨, 사랑, 슬픔 등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아르메니아 민속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악기 연주가 좋았다거나 춤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면 영화를 제대로 감상했다고 볼 수 있다.

















* 수전 손택, 홍한별 옮김 해석에 반하여(윌북, 2025)

 

* [절판] 수전 손택, 이민아 옮김 해석에 반대한다(이후, 2002)




예술을 해석하는 일에 반대한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우리 감상자에게 중요한 임무를 부여한다. 예술 작품에서 내용을 찾지 말 것, 그 대신 내용을 제거해서 예술 작품의 실체를 바라볼 것. 예술 작품과 영화를 잘 감상하려면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느낄 줄 아는 법이다. 그것이야말로 예술을 사랑하는 태도, 손택이 강조한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다.









영화의 본질은 영화감독의 마음속에만 있는 건 아니다. 영화의 매력은 영화를 해석하고 비평하는 사람들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영화의 본질과 매력은 끝이 없으며 한 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관객인 우리의 마음속에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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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12-09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안의 해석자, 저도 이 분이 시시때때로 개입을 하시기 때문에 좀 속이 시끄러운 편입니다. ㅎㅎ 이건 뭐 억지로 못 들어오게 막아도 들어오는 분이라...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ㅎㅎ

cyrus 2025-12-14 13:55   좋아요 0 | URL
글 한 편 쓰기 시작하면 내 안의 해석자와 숨바꼭질합니다. 그래서 글이 완성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겨울 에디션)
이언 보스트리지 지음, 장호연 옮김 / 바다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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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시집을 펼친 음악가가 슬픈 시를 고른다. 

음악가의 눈물을 먹은 시는 녹아서 잉크로 변한다.

잉크가 오선지에 번지면

시는 노랫말로 다시 태어난다.










슈베르트(Franz Schubert)음률(音律) 시인이다. 그가 고른 시는 음표를 만나면 가곡이 된다슈베르트는 눈물이 많다. 그의 서글픈 곡(, 울음)이 그치면 애절한 가곡이 나온다그가 흘린 수많은 눈물방울은 가곡이 싹트는 씨앗이다슈베르트는 가곡의 왕, 눈물의 왕이다.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가 죽기 일 년 전에 만든 가곡이다.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의 시에 음률을 입힌 연가곡(連歌曲)이다. <겨울 나그네>는 24개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노래의 주인공은 사랑에 실패한 남자. 깊은 절망에 빠진 그는 정처 없이 겨울 여행(Winter Journey, <겨울 나그네>의 원제)을 한다실연의 아픔을 잊지 못한 슈베르트는 쓰라린 눈물들을 모아 자신과 비슷한 겨울 나그네를 만들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 곡을 여러 번 고쳤다고 한다. <겨울 나그네>를 만드는 데 슈베르트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삼켰을까


<겨울 나그네>는 슬픔을 머금은 가곡이다. 가곡을 듣는 청중도, 가곡을 부르는 성악가들은 노래에 취하면 슈베르트의 눈물 자국과 겨울 나그네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그들도 슈베르트와 겨울 나그네의 비애감과 닮아간다그러나 <겨울 나그네>의 선율에 눈물 자국만 있는 건 아니다.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의 날씨, 유행했던 문화, 유럽의 정세까지 과거의 흔적들이 묻어 있다독일의 성악가 이언 보스트리지(Ian Bostridge)<겨울 나그네>의 선율을 해부하여 귀로 들을 수 없는 과거의 흔적들을 들추어낸다. 그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슈베르트의 삶과 참모습까지 복원한다그가 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어둡고 암울한 노래로만 알려진 <겨울 나그네>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준다. 책의 부제는 집념의 해부(Anatomy of an Obsession)’.









눈물이 많은 슈베르트는 감성의 시대에 살았다. 감성의 시대는 18세기 중후반에 눈물이 유행했던 시기를 가리킨다. 작가와 예술가들은 실패한 사랑을 경험한 후에 흘린 눈물에 매혹을 느꼈다대중은 실연당한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읽고 울었다<겨울 나그네>감성의 시대가 끝날 무렵, 대중의 눈물이 말라버린 시기에 나온 노래<겨울 나그네>에 묘사된 겨울 풍경은 유럽 전역을 덮친 혹한기에 볼 수 있었던 일상적인 장면이다. 날씨는 우리의 감정을 지배한다. 눈물마저 얼어붙는 말쌀한 날씨는 슈베르트와 나그네를 더욱 처량하게 만든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음악 비평서도, 음악 해설서도 아니다. 음악 감상론에 가깝다. 저자는 비평하듯이 음악을 분석하지 않는다. 음악에 자신의 감정과 관심사들을 채워 넣는다. 노래를 들으면서 느낀 여러 가지 감정과 예술적 취향을 곁들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다시 만든다. 저자의 음악 감상은 원작자를 무시하거나 원곡을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다. 음악은 죽지 않는다. 음악은 청자와 연주자들의 반응을 먹으면서 자란다. 세월이 지날수록 연주 방식과 선율은 조금씩 달라진다. 음악은 느리게 변신한다. 청자와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음악의 변신은 무죄다.







<책을 해부하면서 읽는 cyrus가 만든 주석>

 






[1] 서평 제목은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1969년) 노랫말(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을 패러디했다.





* 255





 생기론(생명체는 그것을 무생물과 구별 짓는 생명의 약동을 갖고 있다는 주장)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겠지만, 1858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주2]에서 제시된 진화론이 힘을 얻으면서 생물 형태들 사이의 장벽, 궁극적으로는 유기체와 비유기체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다.



[원문]


 Vitalismthe doctrine that living stuff has some sort of spark or elan vital which distinguishes it from brute mattermay have lingered on to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but the impact and tendency of evolutionary theory from Darwin’s Origin of Species in 1858 on was to break down the barriers between life forms and ultimately between life forms and ultimately between the living, the organic and the inorganic.

 






[주2]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초판이 처음 나온 해는 1859년이다. 저자가 출판 연도를 착각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펴낸 바다출판사다윈과 진화론을 소개한 책을 많이 출간했다2016년에 나온 초록색 표지의 양장본 구판에도 연도 오류가 남아 있다.





* 292





 최근에 나는 작곡가 토머스 아데스와 카네기홀에서 이 작품을 연주했다. 프로그램에는 리스트가 편곡한 바그너의 <사랑의 죽음>[주3]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3] <사랑의 죽음>(Mild und leise)은 곡명이 아니다. 바그너(Richard Wagner)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33장 제목이다.





* 305~306

 

 토머스 드 퀸시의 열정적인 산문은 1849년에 영국 우편 마차의 잃어버린 영광을 이렇게 회상했다.[주4] 당시로서는 전례 없던 속도를 통해‥… 움직임의 영광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주4] 영국 우편 마차를 주제로 한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의 산문은 <영국의 우편 마차>. 번역본: 유나영 옮김, 심연에서의 탄식/영국의 우편 마차(워크룸프레스, 2019).





* 452




 

 그는 1827년에 친구 에두아르트 바우에른펠트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자네야 궁정의 고문관이자 유명한 희극작가가 아닌가! 그런데 나는! 나처럼 가난한 음악가는 어떻게 되지? 나이가 들면 괴테의 하프 타는 노인[주5]처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빵을 달라고 구걸해야 할지도 몰라!”

 






[5] 괴테(Goethe)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안삼환 옮김, 민음사, 1999)에 나오는 인물이다. 소설 제411 마지막에 하프 타는 노인과 미뇽(Mignon)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노랫말이 소설보다 유명해서 괴테 시 선집에 수록되기도 한다.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나의 이 괴로움 알리라!

혼자, 그리고 모든 즐거움과 담 쌓은

곳에 앉아

저 멀리 창공을

바라본다.

, 날 사랑하고 알아주는 사람은

먼 곳에 있다!

이 내 눈은 어지럽고

이 내 가슴 타누나.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나의 이 괴로움 알리라!


 

(안삼환 옮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1중에서,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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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05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패러디가 멋집니다. 덕분에 겨울 나그네를 다시 감상하려 합니다.

cyrus 2025-12-08 06:11   좋아요 0 | URL
글 제목을 뽑느라 나름대로 생각 많이 했어요.. ㅎㅎㅎ

북프리쿠키 2025-12-06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cyrus 2025-12-08 06: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님도 서재의 달인에 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