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군대에 있었을 때, 중대장실을 청소했다. 중대장실 안에 훈련 교본과 국군 관련 잡지 등이 잔뜩 꽂힌 책장이 있었다. 청소를 하면서 중대장의 책장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거기에 특별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군대에 역사교과서를 보게 될 줄이야. 처음에는 신기했다. 이 책으로 오랜만에 역사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책을 보려면 중대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중대장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남은 군 생활이 피곤해진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단번에 접었다.

 

 

 

 

 

 

 

 

 

 

 

 

 

 

 

 

 

 

 

 

 

 

 

 

 

 

 

 

 

 

 

 

 

 

 

 

전역 후 학교를 다시 다녔다. 한국 현대사를 주제로 한 과제를 준비했다. 한국 현대사 관련 자료를 찾던 중에 드디어 군대에 만났던 교과서를 입수했다. 책이 학교 도서관에 있었다. 《대안교과서 한국 현대사》도 있었다. 난 처음에 대안교과서가 엄청 대단한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 내용을 검토하면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교과서 편찬을 주도한 ‘뉴라이트’의 실체도 알게 되었다.

 

오늘 같은 뜻 깊은 날에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고 우길 것이다. 그들은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8월 15일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더 중요한 기념일로 여긴다.  

 

해방의 진정한 의미는 1948년 자유, 인권, 시장 등의 인류 보편의 가치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이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확보될 수 있었다. 광복절의 역사적 의미를 미래지향적으로 고쳐 생각해야 한다. 종래 광복절을 해방절로만 기억해 온 것을 지양하고, 보다 중요하게 건국절로 경축해야 한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44쪽)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헌법)

 

 

뉴라이트의 건국절 집착은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 운동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깎아내린다. 이승만 정부 출범부터 대한민국 역사를 다시 쓰려는 뉴라이트의 숙원은 극단적인 역사 왜곡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은 그것을 '건국'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잔치'지만, 그것을 '분단'으로 간주하는 부류에게는 일제의 한국 지배는 한국인의 정치적 권리를 부정한 폭력적 억압 체제였다.

 

국내외의 한국인들은 불굴의 투쟁으로 독립의 권리를 끝내 쟁취하였다. 그 시기는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78쪽)

 

식민지 한국의 경제통계가 1980년대 말부터 한국과 일본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정비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10~1940년에 한국에서 일본과 동일한 속도로 연간 3.6%의 경제성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오늘날 국내외 대부분 학자는 식민지 한국을 비정상적 형태이기는 하나 근대화된 자본주의사회로 이해하고 있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96쪽)

 

 

식민지근대화론과 수탈론의 논쟁은 치열하고도 질기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뉴라이트 경제학자들은 일제 식민지를 암흑기가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뿌리로 본다. 그들의 주장을 반대한다고 해서 경제성장이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분명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기준으로 역사를 본다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 기준이 모호해진다.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 촉진을 옹호하는 논리는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 논리와 닮았다.

 

이승만의 정치이념과 정책은 자유민주주의, 반공주의, 반일정책, 북진통일로 요약된다. 이승만의 정치이념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였다. 자유민주주의에 철저했던 만큼,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그의 비타협적 반공주의는 신생 대한민국을 정치적으로 통합하고 동질적 국민의식을 배양하는 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반공의 이름으로 반대파가 탄압되거나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인권이 부정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산주의 국제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올바로 잡는 데 동시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58쪽)

 

그(박정희)는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소수 엘리트의 지도적 역할을 중시하였다. 그는 민주주의에 관해 개인의 이기심에 기초한 서양식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족과 국가에 대한 헌신에 기초한 민주주의로서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민족적 또는 행정적 민주주의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사회에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성장의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86쪽)

 

뉴라이트의 우상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 각각 ‘시장경제의 토대를 마련한 건국의 공로자’, ‘근대화의 주역’으로 규정한다. 해방 직후 친일파 처단을 위한 반민족특위가 조직됐지만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건 이승만 정권에 의해 와해했다. 해방 뒤에 친일파를 처벌하고 민족정기를 세워야 할 일이 지배 우파세력의 이익 때문에 당장 정쟁이 되어버렸다.

 

 

 

 

 

 

 

 

 

 

 

 

 

 

 

 

 

지금 와서도, 마땅한 역사적 과제인 ‘친일 잔재 청산’이 공론화되는 순간 바로 특정 정파 편들기 또는 죽이기가 되어버린다. 뉴라이트는 이승만 정권이 체제를 위협하는 좌파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을 막고, 내부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친일파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승만 정권의 과오를 알면서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치이념을 ‘반일정책’이라고 강조한다. 친일파를 권력의 기반으로 삼았음에도 강한 반일을 견지했던 이승만 정권의 타협 흔적마저 나 몰라라 한다.

 

대안교과서에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자유민주주의에 철저했던 만큼,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대척점이 공산주의라는 잘못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고 믿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를 의미하는 단어이고, 공산주의는 경제 체제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권력이 소수에게만 있는 독재 전체주의다. 유신체제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전체주의’에 유사한 체제였다. 전체주의는 세상의 모든 구성원은 하나(국가)가 되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데올로기다. 그런데 뉴라이트는 박정희 정권의 전체주의를 ‘민족과 국가에 대한 헌신으로 기초한 민주주의’로 미화했다.

 

대안교과서 집필진은 한쪽 전체를 할애하면서까지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을 찬양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기여한 기업 및 기업인에 대한 설명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안창호, 김구, 윤봉길 등 독립운동에 기여한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작게 배치된 것과 비교된다. 이승만과 박정희 우상화 작업에 몰두하는 뉴라이트의 모습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는 북한 따라 하기와 다름없다.

 

 

이승만 정부는 야당과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의도로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1958년 12월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승만에 대한 개인숭배도 강화되었다. 초등학생들은 조회 시간에 대통령 찬가를 불렀다.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는 편지쓰기 같은 행사가 강요되었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63쪽)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뉴라이트 성향의 단체 자유경제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찬양하기 위해 ‘이승만 시 공모전’을 주최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세로 드립’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판한 내용의 시 두 편이 수상작에 선정됐다가 취소되는 일이 일어났다. 뉴라이트는 권력에 기생하여 역사의 진실을 무시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입지 기반을 다지려고 하는 세력이다. 이런 세력은 ‘진짜 보수’라고 말할 수 없다. 뉴라이트는 자신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의견을 좌파의 공격적인 태도로 매도한다. 그들은 대안교과서 서문에서 비판을 관대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 책은 모든 종류의 모든 수준의 비판에 열려 있다. 사실이 잘못 소개된 곳이 있으면 기꺼이 고치겠다. 역사관이 편향되었다면 바로잡음에 망설이지 않겠다. 이 책이 열려 있음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결국 좀 더 정확하고, 좀 더 유익하고, 좀 더 성찰적인 역사로 가득 찬 교과서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큰 뜻에서, 너의 내가 따로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 2008년 3월, 교과서포럼 일동 (책을 내면서, 7쪽)

 

 

뉴라이트 역사관은 퇴행적인 역사 인식이다. 5·16 세력이 산업화·근대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해서 헌정 질서를 뒤엎은 쿠데타마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역사도 공과 과를 함께 안고 있기 마련이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와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편견을, 그것도 교과서에 기술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대안교과서에 향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교과서를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역사를 지우고, 권력을 그리려는 사람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다. 교과서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책이 버젓이 서점에 팔리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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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08-17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가 필요합니다. 쓰레기 청소가...극단적이지만 맘 같아서는 싹 긁어모아서 어디 외딴 무인도에 떨어뜨려놓고 배틀로얄이라도 시키고 싶어요...그러면 안되겠지만...(되려나??)ㅎㅎ

cyrus 2016-08-17 12:07   좋아요 0 | URL
한 곳에 모이면 자신들만의 구역을 만들어 활동할 사람들입니다. ㅎㅎㅎ

그레이스 2025-09-1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라이트가 아닌 오리지날 레프트가 공격적으로 편향성을 드러낸 소감으로 보면서 대안교과서 근현대사 기술은 실증적으로 잘 기술된 역사교과서임을 확증해 주었다.
 

 

 

 

어젯밤 유성우가 쏟아져 내리던 하늘을 보지 않았다. 옥상에 올라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집 주변에 가로등과 건물 사이로 흐르는 빛의 세기가 강했다. 하늘 위로 뻗은 도시의 빛 때문에 유성우를 맨눈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는 밖에 나가지 않고 오랜만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펼쳤다. 그 책에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세이건이 천문대에 일했을 때 겪은 일이다. 야간 근무 중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가 전화를 봤자 술 취한 아재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천문학자 바꿔 봐!” 세이건이 자신이 천문학자라고 대답하자, 아재는 하늘에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세이건은 그 시간에 혜성이 지나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재가 본 것은 혜성이라고 알려줬다. 아재가 혜성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세이건은 지름이 1km 넘는 눈 덩어리라고 설명했다. 한참 동안 수화기에 침묵이 흘렀다. 아재가 말했다. “진짜 천문학자 좀 바꿔 봐!”

 

혜성은 먼지와 얼음덩어리로 되어 있다. 혜성이 태양에 근접해서 오면 먼지와 얼음덩어리가 태양의 열에 녹기 시작한다. 그래서 혜성이 지나간 자리에 혜성에서 나온 물질이 남는다. 그 물질이 대기권으로 들어오면 유성이 된다. 요즘 혜성과 유성우 관측 시간을 언론으로 접할 수 있다. 천문대에 직접 전화를 걸지 않아도 된다. 언론이 알려준 관측 시간에 맞춰 밤하늘에 바라보면서 기다리면 된다. 언론이 유성우 쇼가 펼쳐진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바람에 화려한 밤하늘을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유성우가 잘 보이는 천문대로 찾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만큼 유성우가 보이지 않아서 실망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천문대 관계자는 시골이 관측하기 좋은 장소라고 말하자 허탈감에 빠진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천문대가 유성우를 관측하기 좋은 장소라고 믿고 찾아온 사람들이 시골에 가서 보라고 말하는 천문대 관계자의 태도에 화가 난 것이다. 이에 대해 천문대 관계자는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몰려들어서 안전을 위해 가로등을 끌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링크]

 

유성우를 맨눈으로 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몇 분에 하나씩 스쳐 가는 유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내린 유성우는 시간당 수백 개까지 내리는데, 엄청 많이 내리면 수십만 개 정도에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대기권으로 향하는 유성우의 수가 많으면 유성우 쇼라고 빗대어 표현한다. 그들은 유성우를 간절하게 보고 싶은 사람들을 낚으려고 거짓말하지 않는다. 사실 유성우가 어느 정도 내리는지 정확히 예측하기도 어렵다. 낙하하는 우주 물질은 태양과 주변 행성의 중력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 어느 위치에 떨어지게 되는지를 정확히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혜성이나 소행성도 마찬가지다.

 

유성우 쇼를 보지 못한 실망감에 천문대에 전화 걸어 화를 내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천문대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서 천문대 관계자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워서 비난하는 의견을 남기는 사람들도 없었으면 좋겠다. 부끄러운 행동이다. 새벽까지 인공 불빛이 번져있는 도시에서 유성우를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언론은 유성우 관측의 어려움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마치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보도한다. 그들이 천문학자에게 자문한다고 해도, 결국은 대중이 이해하기 쉬우면서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린다. ‘화려한 유성우 쇼라는 과장된 표현을 써가면서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인다.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은 유성우의 등장에 사람들은 크게 실망한다. 사람들은 유성우를 보지 못한 이유가 가까이에 있는데도 잘 모른다. 도심의 등잔 밑이 어둡기 때문이다.

 

 

 

[링크] [“별똥별 보러 천문대 오라더니, 다시 시골로 가라고?”] 연합뉴스, 2016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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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13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예 볼 생각을 안 했씁니다. 빛 공해를 피해서 빛이 없는 공간을 찾아야 하는데 도시에서 그게 가능한가요... 어디..서울시 쌍문동에서 유성우 보겠다고 하늘 쳐다보는 거는 좀.... ㅎㅎ

cyrus 2016-08-14 06:26   좋아요 1 | URL
영화나 드라마에는 도시 밤하늘에 별이나 유성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나오잖아요. 그 장면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
 

 

 

여성혐오 셀프테스트 - 혹시 내 안에도 여혐의 씨앗이? (뉴스타파, 2016년 6월 30일)

http://newstapa.org/misogyny

 

 

※ 이 링크는 ‘친구 공개’ 설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도 됩니다. 악플 청정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알라딘/북플에도 페미니즘이나 여성혐오를 인정하지 않은 회원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은 페미니즘 관련 도서에 별점 테러를 한다든가 악평 같지 않은 악평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페미니즘 관련 글에 시비조로 남기는 댓글을 남기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 꼴 보기 싫어서 전체 공개 설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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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3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8-17 0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건강씨앗이라네요..ㅎ

cyrus 2016-08-17 12:08   좋아요 0 | URL
제가 친하게 지내는 서재 이웃님들 모두 건강씨앗일 겁니다. ^^

rhkrdudgns12345 2018-08-0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혐 떡잎 입니다 하핫
 

 

 

어제 펼쳐진 여자 펜싱 에페 단체전 8강에서 에스토니아에 한 점 차로 아쉽게 졌다. 우리나라는 초반부터 밀리는 모습이었지만 신아람, 최은숙 선수의 활약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최인정 선수가 막판에 점수를 허용하면서 경기는 에스토니아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포털사이트의 올림픽 응원 게시판에 최인정 선수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네티즌들은 실점을 쉽게 내준 최 선수의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비난했다. 그리고 경기 후 최 선수 혼자 웃는 표정이 카메라에 잡힌 것도 비난의 화근이 됐다.  

 

 

 

 

 

그런데 한 선수에게 향한 비난의 강도가 너무 심하다. 상스러운 언어로 무자비하게 폭력을 가하는 수준이다. ‘년’이 들어간 욕설을 퍼붓는 것은 약과다. 성차별적인 내용의 댓글이 많았다. 남자들은 일 못 하는 여자를 보면 자식 뒷바라지나 하라고 말한다. 여성의 무능력함을 조롱하는 발언이다. 자동차 접촉사고가 일어날 때 여성 운전자는 비하의 대상이 된다. 운전 못 하는 여자를 ‘김여사’로 취급한다. 덩치가 있고, 목소리 큰 남자들은 운전하는 여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한다. “여자가 집구석에 들어가서 밥이나 하지, 무슨 운전이야!”

 

남자들은 스포츠 중계방송을 볼 때 여자 선수들이 화장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성형을 했는지 안 했는지 판단한다. 만약 패색이 짙은 경기가 나오면 옅은 화장을 한 선수들을 비난한다. “이 중요한 경기에 화장하고 나오다니. 이길 의지가 전혀 없어 보여.”, “화장할 시간에 연습이나 더 해라.”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오랜 시간동안 화장에 공들인 선수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과하지 않을 정도로 연하게 화장을 하는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화장하는 시간은 경기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화장한 선수를 경기를 망치는 문제 선수로 매도하는 것은 몰상식한 여성비하다.

 

 

 

 

 

올림픽 기간에 언론들은 외모가 특출한 운동 선수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특히 여성 선수들이 카메라에 잡히면 외모를 칭찬하기 시작한다. 4년 동안 묵묵히 운동만 했던 선수가 한순간에 연예인 외모 뺨치는 특별한 선수로 알려진다. 언론은 이런 선수들의 등장을 고대한다. 그리고 대중은 언론이 연예인급으로 포장한 운동 선수에 열광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시드니 올림픽 공기소총 종목 은메달리스트 강초현 선수다. 그녀는 ‘초롱이’라는 별명으로 하루아침에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 이후로 언론과 방송은 외모가 뛰어난 여성 선수가 등장하면 ‘미녀’, ‘얼짱’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만약 최인정 선수가 8강전 승리의 주역이 되었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극적인 승리에 흥분한 아나운서의 입에 “새로운 미녀 검객이 나타났다!”라는 멘트가 자연스럽게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미녀 검객’은 성차별 단어이다. 베이징 올림픽에 은메달을 목에 걸어 주목받은 남현희 선수도 한때 ‘미녀 검객’이라는 별명이 따라왔다. 언론은 운동 선수 별명 짓기에 재미 들렸나 보다. 이제는 남현희 선수를 ‘엄마 검객’으로 소개했다. 여성을 육아와 모성애와 관련된 성(性)으로 보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으로 스포츠 경기 중계를 마음껏 볼 수 있다. 중계방송을 보면서 운동장에 땀 흘리는 선수들에게 응원 메시지도 보낼 수 있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인터넷 생중계도 문제점이 많다. 선수들에게 악의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경기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긴 분노를 표출한다. 더 심각한 것은 표출 대상이 여성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여성 선수들을 비하하는 악성 댓글이 필터링 없이 노출되고 있다. 댓글을 다는 사람이나 그걸 보는 사람들은 여성혐오, 성차별 발언의 심각성을 모른다. 특히 인터넷 중계를 시청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악영향을 준다. 여성혐오, 성차별 발언을 정당한 비판이라고 착각한다. 내가 그들의 발언을 대놓고 비판하면? ‘메갈충’이라고 욕먹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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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2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8-12 19:4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

2016-08-12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8-12 19:50   좋아요 0 | URL
저도 대화를 나누다보면 성차별적 발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려주지 못하면 모르고 지나치기 쉬워요.

낭자 2016-08-12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가 지나친 여성비하˝가 있다면 ˝적절한 수준의 여성비하˝도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는 제목이네요.

cyrus 2016-08-12 19:59   좋아요 0 | URL
`적절한 수준의 여성비하`가 있겠습니까? `적절한 김대기`라는 말은 있습니다만...

stella.K 2016-08-12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치 않아도 강초현 드라마에 예전 경기장면이 잠깐 나왔는데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더군. 정말 풋풋했는데 귀엽기도 하고.

그런데 이 나라가 어쩔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평소 땐 관심도 없다가 올림픽에 나간 게 죄냐?
저런 말까지 듣게?
저런 손모가지들은 재봉틀로 드르르 박아줘야 하는데...ㅉ

cyrus 2016-08-12 20:04   좋아요 0 | URL
강초현이 조성모랑 의자매 맺었던 것 기억나요. 그것도 큰 화제였죠. 2000년은 조성모의 해였으니까요. 근황을 알아보니까 결혼했더군요.

도쿄 올림픽 때 최인정 선수가 금메달 따면 욕하던 사람들 태세전환하면서 칭찬했을 거예요. 인터넷 스포츠 생중계 채팅창도 진짜 성희롱, 지역비하, 여혐발언 많이 나옵니다.

yureka01 2016-08-12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디디어 영상시대대라서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앞으로도 심해질듯....

cyrus 2016-08-13 07:48   좋아요 1 | URL
네. 외모차별 비하 표현이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도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추억에 관한 모든 것 - 향수의 심리적 효능과 경제적 가치에 대하여
다니엘 레티히 지음, 김종인 옮김 / 황소자리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조용한 밤이면 홀로 깨어 있던 그리움의 눈빛들. 가슴 속에 접혀있던 추억의 장면이 펼쳐진다. 몸은 고향을 기억한다. 어머니는 생명의 모태로 모든 것을 포근하게 감싸는 이미지를 동반하고, 고향은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하게 각인된 유년의 기억과 맞물린다. 향수병은 생의 궤적에서 고향을 떠난 후 그리워하는 인지상정의 연장이다. 그러나 추억의 향수병에 너무 취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 갈 수 없는 고향은 그립고 아련한 공간이다. 진한 향수병은 추억의 상실에 대한 몸부림이다.

 

우리는 지나간 시절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창시절의 추억은 쉽게 버리지 못한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러한 복고심리에 편승한 상품이나 문화 콘텐츠 등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추억이 깃든 상품을 소비하면서 찌든 생활의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한편으로는 재미와 유쾌함을 즐긴다.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은 평생의 자산이 된다. 한마디로 어린 시절은 심리적 텃밭을 가꾸는 일이다. 즐거운 향수는 병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하도록 돕는다. 옛 시절 분위기에 한껏 젖어 현실을 잠깐 잊어보는 것도 나름대로 효과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향수를 양면성이 있는 감정으로 본다. 행복했던 추억을 잊지 못한 사람은 어려운 일에 맞닥뜨리더라도 이에 맞설 힘을 얻게 된다. 반면에 그리움이 눈물이 되어 흘리는 사람은 쉽게 슬픔에 빠지고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추억은 종종 우리에게 장난을 걸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과거가 현재보다 더 좋게 느껴진다. 옛 추억을 들춰보면서, ‘그래, 그땐 그랬지’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이 달콤한 기분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살다 보면 어려운 시기에 여러 번 봉착하게 되는데, 이때 과거가 현재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지금 현실이 살기 팍팍하게 느껴져도 수십 년 지나고 나면 ‘그때가 좋았는데’라는 식으로 왜곡된 추억이 환기된다. 이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경험을 기억한다고 믿거나 안 좋았던 경험을 억지로 긍정적으로 미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이 상대방을 속이는 거짓 증언으로 보이지만, 일반적으로 뇌가 가끔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생기는 오류 기억이다. 뇌는 끊임없이 감각으로 느낀 경험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기억해두는 학습을 한다. 그 과정에 부정적 경험은 더 빨리 잊게 되고, 긍정적 경험만 저장된다.

 

추억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모두에게 같은 시대였지만 기억하는 주체에 따라 추억의 내용이 달라진다. 그렇지만 누구나 공유하는 기억과 감정은 정서적 연대감을 만들어주고, 인생을 훈훈하고 풍요롭게 해준다. 물론 모든 지나간 일들이 전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될 수 없다. 나쁜 것은 나빴다고 말할 수 있는 게 기억이라면 나쁜 것조차 그립고 아름다웠던 것으로 각색하는 것이 우리의 추억이다. 향수(鄕愁)는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씩 품고 있는 향수(香水)다. 숱한 기억 속에서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추억을 찾고 싶을 때 향수(鄕愁)를 향수(香水)처럼 살짝 뿌려본다. 향긋한 추억의 냄새가 정신을 맑게 해준다. 하지만 과도한 향수(香水) 냄새는 시큼털털한 냄새의 여운을 더욱 짙게 만든다. 이렇듯 강렬한 향수(鄕愁)에 벗어나지 못하면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거나 때로 과거를 왜곡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과거를 미화하는 일이다. 향수(鄕愁)는 안 좋은 추억을 가리기 위한 향수(香水)로 사용해선 안 된다. 정신 건강에 이로운 향수(鄕愁)는 진하게 오래가는 것이 아닌 가볍고 은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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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8-11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하니, 기억이 생각나고, 동시에 <물질과 기억>의 내용이 마구 떠오르네요...

사이러스 님에게 <물질과 기억>도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지만, 번역이 워낙 좋지 않아. 좀 거시기 하네요..

향수 냄새가 어떻게 추억을 환기하는지, <물질과 기억>에서 다루어 지거든요~

저도<추억에 관한 모든 것>을 소장해서 봐야 할 듯합니다~^^

cyrus 2016-08-11 20:28   좋아요 0 | URL
그 어려운 책을 안 주셔서 다행입니다. 받기만 하고 안 읽었을 겁니다... ㅎㅎㅎ

그런데 야무님이 책 내용을 언급하시니까 그 부분만 따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추억에 관한 모든 것》은 도서관에 빌려서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추억의 긍정적 심리효과에 관한 내용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yureka01 2016-08-11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의 추억이 미화되는 경우..
현재의 불안의 반작용은 아닐까 싶어요.
역시 향수를 돋구는데는 맛의 향기가 제일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때 먹던 맛은 평생이 입맛을 좌우하는 역항이더군요..

cyrus 2016-08-11 20:30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향수가 현실의 불안을 잊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요. 현재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점점 많아질수록 추억 마케팅이 성행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