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군대에 있었을 때, 중대장실을 청소했다. 중대장실 안에 훈련 교본과 국군 관련 잡지 등이 잔뜩 꽂힌 책장이 있었다. 청소를 하면서 중대장의 책장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거기에 특별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군대에 역사교과서를 보게 될 줄이야. 처음에는 신기했다. 이 책으로 오랜만에 역사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책을 보려면 중대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중대장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남은 군 생활이 피곤해진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단번에 접었다.

 

 

 

 

 

 

 

 

 

 

 

 

 

 

 

 

 

 

 

 

 

 

 

 

 

 

 

 

 

 

 

 

 

 

 

 

전역 후 학교를 다시 다녔다. 한국 현대사를 주제로 한 과제를 준비했다. 한국 현대사 관련 자료를 찾던 중에 드디어 군대에 만났던 교과서를 입수했다. 책이 학교 도서관에 있었다. 《대안교과서 한국 현대사》도 있었다. 난 처음에 대안교과서가 엄청 대단한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 내용을 검토하면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교과서 편찬을 주도한 ‘뉴라이트’의 실체도 알게 되었다.

 

오늘 같은 뜻 깊은 날에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고 우길 것이다. 그들은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8월 15일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더 중요한 기념일로 여긴다.  

 

해방의 진정한 의미는 1948년 자유, 인권, 시장 등의 인류 보편의 가치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이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확보될 수 있었다. 광복절의 역사적 의미를 미래지향적으로 고쳐 생각해야 한다. 종래 광복절을 해방절로만 기억해 온 것을 지양하고, 보다 중요하게 건국절로 경축해야 한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44쪽)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헌법)

 

 

뉴라이트의 건국절 집착은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 운동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깎아내린다. 이승만 정부 출범부터 대한민국 역사를 다시 쓰려는 뉴라이트의 숙원은 극단적인 역사 왜곡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은 그것을 '건국'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잔치'지만, 그것을 '분단'으로 간주하는 부류에게는 일제의 한국 지배는 한국인의 정치적 권리를 부정한 폭력적 억압 체제였다.

 

국내외의 한국인들은 불굴의 투쟁으로 독립의 권리를 끝내 쟁취하였다. 그 시기는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78쪽)

 

식민지 한국의 경제통계가 1980년대 말부터 한국과 일본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정비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10~1940년에 한국에서 일본과 동일한 속도로 연간 3.6%의 경제성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오늘날 국내외 대부분 학자는 식민지 한국을 비정상적 형태이기는 하나 근대화된 자본주의사회로 이해하고 있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96쪽)

 

 

식민지근대화론과 수탈론의 논쟁은 치열하고도 질기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뉴라이트 경제학자들은 일제 식민지를 암흑기가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뿌리로 본다. 그들의 주장을 반대한다고 해서 경제성장이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분명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기준으로 역사를 본다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 기준이 모호해진다.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 촉진을 옹호하는 논리는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 논리와 닮았다.

 

이승만의 정치이념과 정책은 자유민주주의, 반공주의, 반일정책, 북진통일로 요약된다. 이승만의 정치이념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였다. 자유민주주의에 철저했던 만큼,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그의 비타협적 반공주의는 신생 대한민국을 정치적으로 통합하고 동질적 국민의식을 배양하는 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반공의 이름으로 반대파가 탄압되거나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인권이 부정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산주의 국제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올바로 잡는 데 동시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58쪽)

 

그(박정희)는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소수 엘리트의 지도적 역할을 중시하였다. 그는 민주주의에 관해 개인의 이기심에 기초한 서양식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족과 국가에 대한 헌신에 기초한 민주주의로서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민족적 또는 행정적 민주주의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사회에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성장의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86쪽)

 

뉴라이트의 우상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 각각 ‘시장경제의 토대를 마련한 건국의 공로자’, ‘근대화의 주역’으로 규정한다. 해방 직후 친일파 처단을 위한 반민족특위가 조직됐지만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건 이승만 정권에 의해 와해했다. 해방 뒤에 친일파를 처벌하고 민족정기를 세워야 할 일이 지배 우파세력의 이익 때문에 당장 정쟁이 되어버렸다.

 

 

 

 

 

 

 

 

 

 

 

 

 

 

 

 

 

지금 와서도, 마땅한 역사적 과제인 ‘친일 잔재 청산’이 공론화되는 순간 바로 특정 정파 편들기 또는 죽이기가 되어버린다. 뉴라이트는 이승만 정권이 체제를 위협하는 좌파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을 막고, 내부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친일파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승만 정권의 과오를 알면서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치이념을 ‘반일정책’이라고 강조한다. 친일파를 권력의 기반으로 삼았음에도 강한 반일을 견지했던 이승만 정권의 타협 흔적마저 나 몰라라 한다.

 

대안교과서에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자유민주주의에 철저했던 만큼,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대척점이 공산주의라는 잘못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고 믿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를 의미하는 단어이고, 공산주의는 경제 체제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권력이 소수에게만 있는 독재 전체주의다. 유신체제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전체주의’에 유사한 체제였다. 전체주의는 세상의 모든 구성원은 하나(국가)가 되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데올로기다. 그런데 뉴라이트는 박정희 정권의 전체주의를 ‘민족과 국가에 대한 헌신으로 기초한 민주주의’로 미화했다.

 

대안교과서 집필진은 한쪽 전체를 할애하면서까지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을 찬양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기여한 기업 및 기업인에 대한 설명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안창호, 김구, 윤봉길 등 독립운동에 기여한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작게 배치된 것과 비교된다. 이승만과 박정희 우상화 작업에 몰두하는 뉴라이트의 모습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는 북한 따라 하기와 다름없다.

 

 

이승만 정부는 야당과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의도로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1958년 12월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승만에 대한 개인숭배도 강화되었다. 초등학생들은 조회 시간에 대통령 찬가를 불렀다.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는 편지쓰기 같은 행사가 강요되었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63쪽)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뉴라이트 성향의 단체 자유경제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찬양하기 위해 ‘이승만 시 공모전’을 주최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세로 드립’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판한 내용의 시 두 편이 수상작에 선정됐다가 취소되는 일이 일어났다. 뉴라이트는 권력에 기생하여 역사의 진실을 무시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입지 기반을 다지려고 하는 세력이다. 이런 세력은 ‘진짜 보수’라고 말할 수 없다. 뉴라이트는 자신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의견을 좌파의 공격적인 태도로 매도한다. 그들은 대안교과서 서문에서 비판을 관대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 책은 모든 종류의 모든 수준의 비판에 열려 있다. 사실이 잘못 소개된 곳이 있으면 기꺼이 고치겠다. 역사관이 편향되었다면 바로잡음에 망설이지 않겠다. 이 책이 열려 있음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결국 좀 더 정확하고, 좀 더 유익하고, 좀 더 성찰적인 역사로 가득 찬 교과서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큰 뜻에서, 너의 내가 따로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 2008년 3월, 교과서포럼 일동 (책을 내면서, 7쪽)

 

 

뉴라이트 역사관은 퇴행적인 역사 인식이다. 5·16 세력이 산업화·근대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해서 헌정 질서를 뒤엎은 쿠데타마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역사도 공과 과를 함께 안고 있기 마련이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와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편견을, 그것도 교과서에 기술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대안교과서에 향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교과서를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역사를 지우고, 권력을 그리려는 사람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다. 교과서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책이 버젓이 서점에 팔리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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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08-17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가 필요합니다. 쓰레기 청소가...극단적이지만 맘 같아서는 싹 긁어모아서 어디 외딴 무인도에 떨어뜨려놓고 배틀로얄이라도 시키고 싶어요...그러면 안되겠지만...(되려나??)ㅎㅎ

cyrus 2016-08-17 12:07   좋아요 0 | URL
한 곳에 모이면 자신들만의 구역을 만들어 활동할 사람들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