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지수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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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직업과 나이에 상관없이 어느 정도 경력만 쌓이면 ‘꼰대’가 된다. ‘꼰대’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특징은 이렇다. 첫 번째, 자신이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내가 해봐서 아는데‥…”). 두 번째, 자신보다 어리거나 직위가 낮은 사람에게 반말한다. 세 번째, ‘내가 틀렸다’는 말보다 ‘네가 틀렸다’는 말을 자주 한다.

 

꼰대는 반민주적인 태도다. 권위주의에 기대서 세상을 보는 꼰대의 태도, 그것이야말로 서열에서 우위를 차지한 사람이 당연히 권력을 가지는 걸 합리화하는 태도다. 우리는 ‘나는 꼰대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생각하지만) 실제로 꼰대 노릇을 즐겨 하고 있다. 나이가 들었어도 열정과 패기를 잃지 않는, 노익장의 정신을 유지하여 꼰대가 되는 것을 피해갈 수만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될까 싶다.

 

세상엔 참으로 수많은 형태의 꼰대가 있다. 그중에 나는 ‘생각 있는 꼰대’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생각 있는 꼰대’는 우리가 흔히 아는 꼰대(융통성 없이 꽉 막힌 늙은이)와 다르다. ‘생각 있는 꼰대’는 누구나 공감하는 ‘맞는 말’을 잘한다. ‘생각 있는 꼰대’도 ‘꼰대’가 되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말에 수긍하고, 일말의 의심을 하지 않는다. ‘생각 있는 꼰대’는 몸소 모범을 보이고, 늘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참 어른’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런데 ‘생각 있는 꼰대’가 너무 많아도 문제다. 그들이 하는 말은 100% 옳다. 하지만 ‘100% 옳은 말’이 많아지면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정작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아예 듣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100% 옳은 말’은 ‘수신자(청자)가 없는 메시지’가 되어 떠돈다. 옳은 말만 하는 꼰대의 문제점은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거나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는 것이다. ‘생각 있는 꼰대’는 앵무새와 같다. 앵무새는 올바른 말만 골라 듣고 그것을 똑같이 따라 한다.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는 내가 앞서 말한 ‘생각 있는 꼰대’의 특징과 문제점을 짚어낸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內田樹)는 ‘옳은 말만 하는 어른’의 말하기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생각 있는 꼰대’는 말 그대로 머릿속에 생각만 가득 차 있는 어른이다. 그들은 자신의 머리 밖에 있는 생각이나 말을 하지 않는다. ‘옳은 말’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생각 있는 꼰대’는 옳은 말만 하면서 얻은 덕망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반대 의견이 나올 법한 사회 문제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는 주제에 침묵한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말하기 힘든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정론이 틀릴 수 있다는 말’과 ‘무지를 인정하는 말’이다. 저자는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무엇이 옳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깨달음은 훌륭한 어른이 되는 과정의 일부이다. 훌륭한 어른은 자신의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기 힘든 문제에 대해선 모른다고 말한다. 반면에 꼰대는 자신의 과거 고생담 얘기하는 걸 큰 자랑으로 여기고, 스스로 대접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꼰대의 ‘무식함’을 참 어른의 ‘무지함’과 똑같은 의미로 봐서는 안 된다.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내 주장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태도이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언제든지 수정한다.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는 우리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는 ‘참 어른’, ‘훌륭한 어른’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또는 되고 싶은 ‘참 어른’은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가 언급한 ‘무지한 스승’에 가깝다. 무지한 스승은 아는 것만을 가르치지 않고 모르는 것도 가르친다. 그들도 그렇고, 우리 또한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지하다. 따라서 가르치는 스승도, 가르침을 받는 제자 모두 지적으로 평등하다. 항상 ‘옳은 말’만 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의 말에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보가 되기 때문이다. 지적 능력의 차이는 위계의 차이로 변질되고, 우리가 ‘참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듣는 사람을 편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말만 하는 ‘생각 있는 꼰대’가 된다. ‘참 어른’이 많아진다고 해서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질까? 그들은 우리를 위해서 늘 명쾌한 해답만 주는 구세주가 될 수 없다. 아니, 그렇게 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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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Colette)프랑스적인 작가가 아니라 파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 파리는 센강(Seine R.)을 기준으로 북쪽의 우안(右岸, right bank) 지역, 남쪽의 좌안(左岸, left bank) 지역으로 나뉜다. 좌안은 보헤미안적 낭만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곳에 값싼 주거지를 찾아 외지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 많았다. 이곳의 개방적인 분위기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 기질의 예술가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 [품절] 안드레아 와이스 파리는 여자였다(에디션더블유, 2008)

 

    

1920~1930년대 파리 좌안에 터전으로 삼은 여성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자유와 해방을 만끽했고, 당시 문화와 유행의 흐름을 이끌기도 했다. 미국의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안드레아 와이스(Andrea Weiss)파리는 여자였다는 멋 좀 부릴 줄 알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던 파리 좌안의 여자들(레프트뱅크의 여자들)을 소개한 책이다.

    

 

 

 

 

 

레프트뱅크의 여자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창작 활동을 펼친 콜레트, 레즈비언 커플 래드클리프 홀(Radclyffe Hall)우나 트루브리지(Una Troubridge), 르네 비비엔(Renée Vivien)나탈리 클리포드 바니(Natalie Clifford Barney) 등은 서로를 알아봤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 [품절] 래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 주디스 잭 핼버스탬 여성의 남성성(이매진, 2015)

    

 

 

래드클리프 홀은 남성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소설 고독의 우물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책에 묘사된 레즈비언의 사랑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됐다. 우나는 트루브리지라는 칭호를 가진 남작의 아내였으나 1919년에 이혼한 후에 홀의 연인이 되었다.

 

 

 

 

 

퀴어 페미니스트 주디스 잭 핼버스탬(Judith Jack Halberstam)여성의 남성성에서 홀이 활동하던 시대의 성 담론을 분석한다. 홀과 우나는 어디든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레즈비언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도덕주의자들의 비난을 조금은 피할 수 있었다. 홀과 우나는 레즈비언들만 모일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 게일 루빈 일탈(현실문화, 2015)

*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큐큐, 2017)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 역시 풍족한 삶을 살았던 레즈비언이다. 그녀의 집에서 열리는 살롱은 당대의 예술가들이 모여 들었고, 콜레트도 바니 살롱에 드나든 인물 중 한 명이다. 60년 동안 이어진 바니 살롱에 한 번쯤 다녀간 인물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거물급문학계 및 예술계 인사들이다. 앙드레 지드(Andre Gide),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등이 있다. 간첩으로 발각되기 전에 관능적인 댄서로 명성을 떨친 마타 하리(Mata Hari)도 바니 살롱의 단골이었다. 바니 살롱에 다녀간 남성 작가들은 세계 모더니즘 문학의 흐름을 주도한 인물이었고, 파리 좌안은 시대를 앞서간 문화의 근거지였다.

 

 

 

 

              

 

 

 

 

바니와 르네 비비엔의 연인 관계는 당대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품에 간접적으로 묘사될 정도로 유명했다. 두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Sappho)의 레즈비언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고, 사포가 태어난 곳인 레스보스 섬(Lesbos I.)에 레즈비언 학교를 세우려고 했었다. 비록 이 계획은 실패했지만, 바니는 파리에 여성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 레즈비언 문화를 전파했으며 르네 비비엔은 바나의 후원을 받으면서 시와 소설을 발표했다.

    

 

 

 

 

 

 

 

 

 

 

 

 

 

 

* [No Image, 절판] 레미 드 구르몽 색 색 색(문지사, 1993)

* [절판] 루 알버트 라사르트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하늘연못, 1998)

 

    

 

바니는 낙엽을 쓴 시인 레미 드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연인으로도 알려졌는데, 구르몽은 그녀를 아마조네스(amazones)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문학 및 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거나 편지로 주고받았다.[1] 릴케도 바니와 편지를 주고받은 문인이다. 바니는 릴케에게 받은 편지를 수록한 정신의 모험(Aventures de l’Esprit)을 발표했다.

 

동성애자 시인 및 작가들의 시 선집인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에 비비엔이 쓴 시 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물론, 사포의 시와 래드클리프 홀이 쓴 시도 있다). 퀴어 페미니스트 게일 루빈(Gayle Rubin)은 비비엔이 쓴 유일한 소설의 서문을 썼다. 이 서문은 일탈에 수록되어 있다.

    

 

 

 

 

 

 

 

 

 

 

 

 

 

 

 

* [번역 예정작] 콜레트 Le Pur et lImpur(Distribooks Inc, 2003) [2]

* [e-Book] 김인환 외 프랑스 문학과 여성(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8)

[3]

*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 출구(동문선, 2004)

    

 

 

한편 콜레트는 파리의 동성애자(게이, 레즈비언)들의 일상을 기록한 순수와 불순(Le Pur et lImpur)을 신문에 연재했다. 이 책에 바니와 비비엔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동성애를 성적 일탈로 보는 독자들은 콜레트의 글을 비난했고, 결국 연재 4회 만에 중단되었다. 순수와 불순20세기 초 파리의 퀴어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콜레트 본인이 이 책을 높게 평가했을 정도면 순수와 불순 콜레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프랑스의 페미니즘 연구가 엘렌 식수(Helene Cixous)가 정의한 여성적 글쓰기를 충실히 따른 작품으로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콜레트의 순수와 불순을 분석한 논문이 실린 프랑스 문학과 여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리 좌안은 여성의 삶을 구속하는 전통적 인습에서 벗어난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혼이나 인공 임신 중절(낙태)을 경험한 여성 예술가가 있었고, 예술에 향한 열정이 가득한 그녀들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파리 좌안의 여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이 파리 좌안에 모여 산다고 해서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적, 계급, 정치적 견해, 섹슈얼리티의 차이에 의해 대립하는 양상이 전개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에 일절 간섭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에 정착한 미국 출신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파리 좌안은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이었다. 파리 좌안의 여자들은 남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삶을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살아왔다. 예술에 향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파리 좌안 여자들의 우정은 파리를 예술의 도시로 성장하게 만든 중요한 힘이었다.

 

 

      

    

[1] 2015년에 구르몽의 색 색 색리뷰를 쓴 적이 있다. 색 색 색의 역자 해설에 구르몽과 바니의 연인 관계를 언급한 내용이 있다.

 

 

[2] 큐큐읻다출판사가 만든 퀴어 문학 출판 브랜드다. 이 출판사가 언급한 출간 예정 작품들에 순수와 불순이 포함되어 있다.

출처: https://www.jungle.co.kr/magazine/27177

 

 

[3] 2003년에 이미 종이책으로 나온 적이 있다. 알라딘에 검색하면 종이책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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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Colette)의 소설 《파리의 클로딘》(민음사) 번역본 뒤표지에 보면 <뉴욕 타임스>의 추천 평이 있다. 그 추천 평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파리의 클로딘》 (민음사, 2019)

 

 

 사랑은 여성의 자유를 앗아가기도 하고, 또 여성을 아름답게 만들고 성장하게도 한다. 가장 프랑스적인 작가 콜레트가 그 사랑을 직조한다.

 

 

 

나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가장 프랑스적인 작가’라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내 그 뜻을 찾는 것을 포기했고,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콜레트는 ‘가장 프랑스적인 작가’가 아니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Liberte, Egalite, Fraternite)를 상징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를 구성하는 청색, 백색, 적색은 각각 자유, 평등, 박애를 뜻한다. 일단 여기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삼색기의 의미다.

 

 

 

 

 

 

 

 

 

 

 

 

 

 

 

 

 

 

* 김응종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 (푸른역사, 2010)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 혁명과 직집적인 연관이 없다. 프랑스 혁명 시대에 나온 구호가 아니라 1848년 제2공화국 헌법에 있는 문구였다. 삼색기가 프랑스 혁명 시대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맞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사흘 뒤인 1789년 7월 17일에 삼색기가 등장했다. 하지만 세 가지 색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파리를 상징하는 깃발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파리 시민들은 이 깃발을 들고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감옥을 점령한 이후에 혁명을 주도한 라파예트(Lafayette) 장군은 파리국민군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라파예트 장군은 파리를 상징하는 깃발에 왕실을 상징하는 흰색을 추가한 삼색기를 국기로 제안했다. 이것이 바로 삼색기의 시초이다.

 

삼색기의 의미가 ‘자유, 평등, 박애’로 와전된 것도 문제지만, ‘fraternite’를 오역한 점도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fraternite’는 ‘형제애’, ‘연대감’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이 단어는 ‘박애’의 의미와 거리가 멀다. 혁명에 동참하는 자를 ‘형제(동지)’로, 그렇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 제랄드 게를레 그림 《여성 권리 선언》 (문학동네, 2019)

* 올랭프 드 구주 《여성의 권리 선언》 (동글디자인, 2019)

* 브누아트 그루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마음산책, 2014)

 

 

 

 

 

 

 

 

 

 

 

 

 

 

 

 

 

 

 

 

 

 

 

 

 

 

 

 

 

 

 

 

 

 

 

 

 

 

 

 

* 케르스틴 뤼커, 우테 댄셸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어크로스, 2018)

* 피에르 부르디외 외 《페미니즘과 섹시즘》 (르몽드코리아, 2018)

* 조앤 월라치 스콧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앨피, 2017)

* 안체 슈룹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 (숨취는책공장, 2016)

* 주명철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 (소나무, 2013)

* 이세희 《프랑스대혁명과 여성. 여성운동》 (탑북스, 2012)

* [품절] 최재인 외 《서양 여성들, 근대를 달리다》 (푸른역사, 2011)

 

 

 

 

‘fraternite’는 동지와 적을 구분하는 단어일 뿐만 아니라 혁명에 참여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여성들도 혁명에 참여한 ‘시민’이었고 ‘동지’였으나 혁명이 성공한 이후 ‘fraternite’ 정신에 투철한 남성들은 여성 동지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나 인권 선언에 있는 내용과는 달리 여성들은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민주주의를 이끈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프랑스 혁명의 인권 선언문은 ‘남성 인권을 강화한 남성 역사적인(historical) 선언문’이었다. 이를 날카롭게 지적한 사람이 프랑스 혁명에 뛰어든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 1748~1793)였다. 그녀는 혁명이 진행되던 시기에 여성에게 참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명에 참여하거나 열렬히 지지한 남성 지식인 및 정치인들은 그녀의 주장을 반기지 않았고, 평등의 권리가 여성까지 확대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구주는 1791년에 ‘여성 권리 선언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Woman and of the Female Citizen)을 썼다. ‘여성 권리 선언문’은 프랑스 혁명 인권 선언문에 반기를 든 글이다. 여성의 이혼 권리를 옹호하고, 결혼을 거부한 구주는 1793년에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의 공포 정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단두대에 오르기 전 그녀는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구주는 한동안 잊힌 인물이었으나 여성사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면서 그녀를 재평가하는 연구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는 ‘여성 권리 선언문’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됐다. 《여성 권리 선언》 (문학동네)《여성의 권리 선언》 (동글디자인)은 ‘여성 권리 선언문’ 전문을 실은 책이다.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마음산책)는 ‘여성 권리 선언문’을 포함한 그녀의 정치적인 글들을 선별하여 수록한 책이다.

 

《페미니즘과 섹시즘》 (르몽드코리아) 2부에 구주의 삶과 업적을 정리한 글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다섯 명의 프랑스 여성 참정권론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앨피)는 구주에 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프랑스대혁명과 여성. 여성운동》 (탑북스)은 구체제(ancien régime)부터 프랑스 혁명 시대까지의 여성관과 여성운동의 궤적을 상세하게 정리한 책이다. 프랑스 혁명 시대에 구주 이외에도 ‘남성 구체제’에 맞선 여성이 있으니 ‘자유의 아마존(Amazone de la Liberté)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테르외뉴 드 메리쿠르(Théroigné de Méricour, 1762~1817)이다. 그녀는 혁명 투사로 이름을 날렸으나 구주와 마찬가지로 남성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서양 여성들, 근대를 달리다》 (푸른역사)는 메리쿠르의 삶을 유일하게 소개한 책이다.

 

글을 쓰다 보니 콜레트를 잊고 있었다. 지금까지 콜레트를 ‘프랑스적인 작가’로 보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분들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어쨌든 참을성이 있는 그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뉴욕 타임스>의 추천 평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남성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은 콜레트의 자유로운 삶은 남성들만 누릴 수 있는 자유, 공허한 구호에 불과한 평등, ‘박애’로 잘못 알려진 형제애로 시작된 프랑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콜레트에게 잘 어울리는 찬사는 뭐가 있을까? 나는 콜레트가 ‘파리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파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가였다. 무슨 말인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글에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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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5-1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1인입니다. ㅋ
여성을 배제한 박애는 정말 모순이네요.
여성을 제외하고 남성들이 쓴 역사가 대부분이기에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지요.

cyrus 2019-05-20 11:42   좋아요 0 | URL
“우리”라는 말이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에 배제되거나 포함되지 못한 존재가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모두를 위한”이라고 시작되는 말을 신뢰하지 않아요. 그 말 속에 있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느껴지지 않거든요.
 
글쓰기의 태도 - 꾸준히 잘 쓰기 위해 다져야 할 몸과 마음의 기본기
에릭 메이젤 지음, 노지양 옮김 / 심플라이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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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없는지 조언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글을 쓰면 된다. 시간을 탓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글쓰기 습관을 들인다면 시간은 되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써 시간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홀로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능력에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어느덧 좌절의 감정으로 옮겨가고 글쓰기가 문득 두렵고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이 공포를 극복하려는 이들에게 에릭 메이젤(Eric Maisel)글쓰기의 태도는 좋은 길라잡이다.

 

이 책은 글을 잘 쓰기 위한 사람을 위한 책이 절대로 아니다. 가끔 글을 쓰는 사람 또는 직접 글을 써보려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은 문장 표현력을 높이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글을 쓸 때 갖춰야 할 태도를 알려준다. 작가는 글 쓰는 일에 집중한 만큼 작품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특히 글 쓰는 태도를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서 글쓰기 활동의 질과 양이 달라진다.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는 성공하는 습관 제1 법칙으로 자기 주도성을 꼽았다. 주도적 인간은 오랫동안 깊이 생각한 가치를 토대로 선택하고 행동한다. 주변 여건이나 분위기 탓을 하지 않는다. 이 원리는 글쓰기 행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글을 쓰기 위해서도 능동적인 태도는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습관은 단기간에 기르기 어렵다. 평소에 꾸준히 자신의 생활 습관과 글 쓰는 태도를 점검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규칙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일단 글을 쓰려면 제일 먼저 창작에 적합한 내면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내면의 공간이란 자아, 즉 나 자신을 말한다. 일상인의 자아를 훌훌 털어버리고 창작자의 자아를 찾아야 한다. ‘일상인의 자아는 글을 쓸 겨를 없이 일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온갖 핑계를 대며 글쓰기를 거부한다. 창작자의 자아를 갖춰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작가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목적의식을 가지라는 뜻이다. ‘창작자가 되기로 한다면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 된다.

 

글을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있으면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다. 글이 잘 써지는 공간이 많을수록 좋다. 집은 혼자 사는 창작자에게 꼭 맞는 글쓰기 공간이다. 그러나 가족과 같이 사는 창작자에게 개인 공간은 그림의 떡이다. 개인 공간이 없으면 밖으로 나가 찾아야 하거나 아니면 만들어야 한다. 글쓰기 공간은 외부인이 들어와서는 안 될 창작자의 자아의 은신처다.

 

이 책은 작가라면 한 번쯤 겪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작가의 삶을 알 수 있고, 무엇보다 창작자로서의 고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묘한 공통점과 함께 자기 자신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글을 많이 써본 작가들도 자신감에서 좌절의 단계를 끊임없이 반복 순환하는 과정을 가진다. 어느 날은 창작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찼다가 또 그 다음 날은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면서 자괴감을 느낀다. 좌절감이 오래가면 슬럼프를 겪게 되는데 그럴 때 글쓰기의 태도를 읽으면 된다.

 

잡념과 게으름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글쓰기를 미루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축 처진 창작자의 자아가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글쓰기는 잠시 멈추고 자신의 감정을 먼저 관찰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글을 쓰는 데 방해하는 불필요한 감정들을 버린다. 마음을 싹 비우고 나면 어떤 글을 써야할지 스스로 질문해보자. 글쓰기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알면, 그것들에 잘 대처하면서 글을 쓸 수 있다.

 

보통 사람이 글을 쓸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문장력보다 추진력이다. 글쓰기에 몰입하게 되면 쾌락과 고통 사이의 경계도 없어지게 된다. 마라톤 선수들이 느끼는 러닝 하이(running high)의 순간을 맞이한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거리를 조금씩 늘려 가며 훈련하면 누구나 1km는 거뜬히 달릴 수 있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려면 일단 글을 꾸준히 써봐야 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를 어렵게 느낀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 글을 쓰는 습관으로 극복될 수 있다. 글쓰기의 태도는 슬럼프 단계에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무언가 쓰려고 했다면 정말 하고자 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쓸 시간에 차라리 내가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쓰는 게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남들이 뭐라 하건 상관없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글로 표현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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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5-15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닝 하이라. 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 꼭 그런 지점이 있긴 하지.
처음 얼마간은 정말 잘 써져. 그러다 어느 정도가면
조금 느슨해지지. 그러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대부분 그 지점에서 포기하는 것 같아.
그걸 돌파하면 또 완만하게 써질 텐데 말이야.
나도 그래서 엎은 글도 많지.

글쓰기 방법을 찾아 가는 건 중요한 것 같은데
알라딘에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
잘 쓰면 보상을 받기도 하잖아.
하지만 긴 글은 쓸 수 없다는 것. 책에 관한 글만
쓴다는 건 단점이긴 하지.
어쨌든 글 쓰기의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가는 건
중요하다고 봐.

cyrus 2019-05-15 18:16   좋아요 0 | URL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이라면 슬럼프는 반드시 찾아오는 것 같아요. 저도 크고 작은 슬럼프가 찾아와요. 책만 읽고 싶어지거나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

알라딘이 망하거나 제가 글쓰기를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아마도 제가 죽어야 글쓰기 행위가 중단될 것 같습니다) 책에 관한 글만 쓰려고 해요. 여기 알라딘에 맨 처음 글 쓸 때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생각은 없어요. 그냥 제 글쓰기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해요. ‘꾸준함의 대명사’인 야구 선수 박한이처럼 글을 쓰고 싶어요. 꾸준하게 책에 관한 글을 쓰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

stella.K 2019-05-15 19:15   좋아요 0 | URL
ㅎㅎ 좋은 생각인데 난 왠지 니가 그러느라 장가는 안 가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좋은 사람 있으면 열심히 연애도 하고 그래라.
책은 평생 읽을 수 있지만 연애는 안 그럴 수도 있어.ㅋㅋ

그런데 박한이란 야구 선수가 있었냐?
첨 들어보네. 하긴 내가 그쪽으론 문외한이라...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 환원주의의 매혹과 두 문화의 만남
에릭 캔델 지음, 이한음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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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을 주제로 한 책을 넘기다 보면 손이 갑자기 멈춰지는 곳이 있다. ‘도대체 뭘 그린 거지?’라는 의문을 품게 하는 바로 추상미술이다. 추상(抽象)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이는 칸딘스키(Kandinsky), 몬드리안(Mondrian), 폴록(Pollock), 로스코(Rothko) 등 현대미술사의 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그림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 그렇지만 현대미술은 도통 무얼 그렸는지 알 수 없고 어렵게 느껴진다. 추상화는 색이나 선과 같은 순수 조형 요소만으로 이뤄져 있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형태나 색채가 한눈에 드러나는 구상화와 달리, 추상화는 ‘추상’이란 단어에서 드러나듯 ‘모양이나 모습을 없앤 그림’이라 작가와 시대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선뜻 다가서기란 쉽지 않다.

 

추상미술은 표현 방식에서 크게 두 가지 사조로 나뉘었다.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와 신조형주의가 그것이다. 칸딘스키는 감정을 음악적인 선과 색으로 격렬하게 표현하여 ‘뜨거운 추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몬드리안은 최소한의 형태 질서를 선과 색의 비례로 표현해 ‘차가운 추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추상미술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사물의 형태를 재구성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방식에서 주관적으로 보는 방식으로 옮겨간 것이다. 결국 관람자들은 화가의 주관적인 보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품에 접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추상미술은 어려운 것인가?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현대미술과 친해질 방법은 없을까? 있다.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난해한 현대미술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학문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뇌과학이다. 이 책은 뇌과학적인 접근으로 현대미술을 다룬다. 저자인 에릭 캔델(Eric Kandel)은 기억이 저장되는 신경학적인 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2000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생물학자이다. 그는 미술과 뇌과학의 통섭을 시도한다. 감성 중심의 예술, 그리고 냉철한 이성 중심의 과학. 아무래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분야다. 그렇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의식과 무의식, 기억, 감정, 감각 등 뇌가 활동하면서 나오는 마음의 문제는 과학자와 예술가 모두의 관심 대상이었다.

 

저자는 미술과 뇌과학을 이어주는 연결고리‘환원주의’를 주목한다. 환원주의는 복잡한 현상을 기본적인 관점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저자는 환원주의가 현대미술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는 데 유용한 새로운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보기에 추상미술을 시도한 화가들은 직관적으로 환원주의적 방식을 선택하여 무의식적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그림에 반응하는 뇌가 관람객의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이해한다면 추상미술 그림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가령, ‘색채 추상화’로 유명한 로스코(Rothko)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명상의 세계로 이끌린다. 그래서 로스코의 그림을 실제로 보게 되면, 그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요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로스코의 그림은 일체의 형상을 거부하고 ‘색으로만 침묵하는 그림’이다. 관람자들은 형태가 없는 그림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림을 보고 인식한 뇌가 ‘하향 처리(top-down processing)를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향 처리는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감각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하향 처리가 일어나게 되면 뇌는 자꾸 무언가를 생각한다. 관람자는 형태가 있는 구상화를 보면 그것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단번에 알아낸다(이때 뇌에 상향 처리가 이뤄진다). 그러나 추상화를 본 관람자의 머릿속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뇌는 하향 처리를 더욱 열심히 한다. 관람자는 그림을 보면서 과거에 있었던 경험이나 여러 가지 감정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을 그림에 투영하여 감상한다. 이때 관람자는 추상화를 보면서 감동한다.

 

현대미술은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촉각과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에 의존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미술의 영역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이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 동시대 미술의 작품 대부분은 ‘뇌를 즐겁게’ 해준다. 따라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능동적으로 작품에 개입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개입은 작품이 아름다움을 잘 구현해냈는지 평가하거나 작품의 우수성을 따지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에 우리의 감정이나 상상력을 ‘투입’하자는 의미다. 그러려면 뇌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추상미술 감상은 나름대로 관람자 본인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해석해보는 개입으로 충분하다. 현대미술은 관람자에게 열려 있고, 관람자는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상상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 Trivia

 

* 캐츠는 두 번째 전통인 ‘팝아트 예견했고, 특히 로이 릭턴스타인, 재스퍼 존스, 앤디 워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4쪽)

 

→ ‘을’을 ‘를’로 고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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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0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15 11:44   좋아요 0 | URL
폴록의 그림에 영감을 받은 사진이라니, 어떻게 나올지 정말 기대됩니다.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9-05-18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현대 추상 미술은 관람자의 상상력을 요구하죠. 전 어렸을 때는 추상 미술이 너무 싫었거든요. 답이 없어서요.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지금은 좋네요. 나이가 들어가며 상상력과 자유를 배워 갑니다~^^
오랜만이죠? 건강히 잘 지내셨나요? 성실히, 꾸준히, 늘 독서와 리뷰 하시는 cyrus님이 계시니 오랜만의 서재가 낯설지 않네요!
(앗! 제가 아이디를 ‘책을 사랑하는 현맘‘에서 ‘숲속도서관‘으로 바꿨네요)

cyrus 2019-05-20 11:47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고 계셨죠? ^^ 
시간이 지날수록 알라딘 서재에 처음 알게 된 분들의 닉네임이 하나씩 잊혀요. 그래도 ‘책을 사랑하는 현맘’이라는 닉네임은 기억하고 있어요. 이 닉네임이 정감이 가서 이걸로 계속 부르고 싶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