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트(Colette)의 소설 《파리의 클로딘》(민음사) 번역본 뒤표지에 보면 <뉴욕 타임스>의 추천 평이 있다. 그 추천 평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파리의 클로딘》 (민음사, 2019)

 

 

 사랑은 여성의 자유를 앗아가기도 하고, 또 여성을 아름답게 만들고 성장하게도 한다. 가장 프랑스적인 작가 콜레트가 그 사랑을 직조한다.

 

 

 

나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가장 프랑스적인 작가’라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내 그 뜻을 찾는 것을 포기했고,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콜레트는 ‘가장 프랑스적인 작가’가 아니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Liberte, Egalite, Fraternite)를 상징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를 구성하는 청색, 백색, 적색은 각각 자유, 평등, 박애를 뜻한다. 일단 여기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삼색기의 의미다.

 

 

 

 

 

 

 

 

 

 

 

 

 

 

 

 

 

 

* 김응종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 (푸른역사, 2010)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 혁명과 직집적인 연관이 없다. 프랑스 혁명 시대에 나온 구호가 아니라 1848년 제2공화국 헌법에 있는 문구였다. 삼색기가 프랑스 혁명 시대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맞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사흘 뒤인 1789년 7월 17일에 삼색기가 등장했다. 하지만 세 가지 색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파리를 상징하는 깃발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파리 시민들은 이 깃발을 들고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감옥을 점령한 이후에 혁명을 주도한 라파예트(Lafayette) 장군은 파리국민군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라파예트 장군은 파리를 상징하는 깃발에 왕실을 상징하는 흰색을 추가한 삼색기를 국기로 제안했다. 이것이 바로 삼색기의 시초이다.

 

삼색기의 의미가 ‘자유, 평등, 박애’로 와전된 것도 문제지만, ‘fraternite’를 오역한 점도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fraternite’는 ‘형제애’, ‘연대감’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이 단어는 ‘박애’의 의미와 거리가 멀다. 혁명에 동참하는 자를 ‘형제(동지)’로, 그렇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 제랄드 게를레 그림 《여성 권리 선언》 (문학동네, 2019)

* 올랭프 드 구주 《여성의 권리 선언》 (동글디자인, 2019)

* 브누아트 그루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마음산책, 2014)

 

 

 

 

 

 

 

 

 

 

 

 

 

 

 

 

 

 

 

 

 

 

 

 

 

 

 

 

 

 

 

 

 

 

 

 

 

 

 

 

* 케르스틴 뤼커, 우테 댄셸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어크로스, 2018)

* 피에르 부르디외 외 《페미니즘과 섹시즘》 (르몽드코리아, 2018)

* 조앤 월라치 스콧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앨피, 2017)

* 안체 슈룹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 (숨취는책공장, 2016)

* 주명철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 (소나무, 2013)

* 이세희 《프랑스대혁명과 여성. 여성운동》 (탑북스, 2012)

* [품절] 최재인 외 《서양 여성들, 근대를 달리다》 (푸른역사, 2011)

 

 

 

 

‘fraternite’는 동지와 적을 구분하는 단어일 뿐만 아니라 혁명에 참여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여성들도 혁명에 참여한 ‘시민’이었고 ‘동지’였으나 혁명이 성공한 이후 ‘fraternite’ 정신에 투철한 남성들은 여성 동지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나 인권 선언에 있는 내용과는 달리 여성들은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민주주의를 이끈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프랑스 혁명의 인권 선언문은 ‘남성 인권을 강화한 남성 역사적인(historical) 선언문’이었다. 이를 날카롭게 지적한 사람이 프랑스 혁명에 뛰어든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 1748~1793)였다. 그녀는 혁명이 진행되던 시기에 여성에게 참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명에 참여하거나 열렬히 지지한 남성 지식인 및 정치인들은 그녀의 주장을 반기지 않았고, 평등의 권리가 여성까지 확대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구주는 1791년에 ‘여성 권리 선언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Woman and of the Female Citizen)을 썼다. ‘여성 권리 선언문’은 프랑스 혁명 인권 선언문에 반기를 든 글이다. 여성의 이혼 권리를 옹호하고, 결혼을 거부한 구주는 1793년에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의 공포 정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단두대에 오르기 전 그녀는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구주는 한동안 잊힌 인물이었으나 여성사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면서 그녀를 재평가하는 연구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는 ‘여성 권리 선언문’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됐다. 《여성 권리 선언》 (문학동네)《여성의 권리 선언》 (동글디자인)은 ‘여성 권리 선언문’ 전문을 실은 책이다.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마음산책)는 ‘여성 권리 선언문’을 포함한 그녀의 정치적인 글들을 선별하여 수록한 책이다.

 

《페미니즘과 섹시즘》 (르몽드코리아) 2부에 구주의 삶과 업적을 정리한 글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다섯 명의 프랑스 여성 참정권론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앨피)는 구주에 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프랑스대혁명과 여성. 여성운동》 (탑북스)은 구체제(ancien régime)부터 프랑스 혁명 시대까지의 여성관과 여성운동의 궤적을 상세하게 정리한 책이다. 프랑스 혁명 시대에 구주 이외에도 ‘남성 구체제’에 맞선 여성이 있으니 ‘자유의 아마존(Amazone de la Liberté)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테르외뉴 드 메리쿠르(Théroigné de Méricour, 1762~1817)이다. 그녀는 혁명 투사로 이름을 날렸으나 구주와 마찬가지로 남성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서양 여성들, 근대를 달리다》 (푸른역사)는 메리쿠르의 삶을 유일하게 소개한 책이다.

 

글을 쓰다 보니 콜레트를 잊고 있었다. 지금까지 콜레트를 ‘프랑스적인 작가’로 보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분들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어쨌든 참을성이 있는 그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뉴욕 타임스>의 추천 평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남성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은 콜레트의 자유로운 삶은 남성들만 누릴 수 있는 자유, 공허한 구호에 불과한 평등, ‘박애’로 잘못 알려진 형제애로 시작된 프랑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콜레트에게 잘 어울리는 찬사는 뭐가 있을까? 나는 콜레트가 ‘파리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파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가였다. 무슨 말인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글에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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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5-1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1인입니다. ㅋ
여성을 배제한 박애는 정말 모순이네요.
여성을 제외하고 남성들이 쓴 역사가 대부분이기에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지요.

cyrus 2019-05-20 11:42   좋아요 0 | URL
“우리”라는 말이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에 배제되거나 포함되지 못한 존재가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모두를 위한”이라고 시작되는 말을 신뢰하지 않아요. 그 말 속에 있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느껴지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