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레이 - 먼 과거에서 대지가 들려주는 메시지와 현대미술에 대한 단상
루시 R. 리파드 지음, 윤형민 옮김 / 현실문화A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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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서부에 있는 다트무어(Dartmoor)코난 도일(Conan Doyle)의 소설 바스커빌 가의 개에 나오는 지역이다. 예로부터 다트무어에 전혀 내려오는 유령 개의 전설을 셜록 홈스(Sherlock Holmes)가 명쾌한 추리로 해결해버린다. 바스커빌 가의 개는 홈스의 동료 왓슨 박사(Dr. Watson)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왓슨은 혼자 다트무어에 가서 사건의 단서들을 수집한다. 홈스가 아주 복잡한 사건을 맡은 상태라 런던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트무어에서 지내는 동안 자신이 직접 전설의 유령 개가 나타났다는 곳을 관찰하고, 지역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다. 그런 다음에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은 편지로 써서 런던에 있는 홈스에게 보고한다. 홈스에게 보내는 왓슨의 편지를 보면 다트무어의 자연경관을 묘사하는 내용이 나온다. 왓슨은 다트무어에 거주했던 고대인들이 남긴 고인돌과 거석들을 언급한다. 실제로 영국의 남서부 지역에 가면 고대 거석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영국 남서부 지역에 있는 고대 거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스톤헨지(Stonehenge).

 

1977년 영국의 미술비평가 루시 리파드(Lucy Lippard)는 다트무어에서 산책하다가 땅바닥에 있는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리파드는 자신을 넘어지게 만든 물체가 열석(列石)의 한 일부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녀는 돌을 만졌다. 그 순간 현현(顯現: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 속에서 갑자기 경험하는 새로운 감각 혹은 통찰)와도 비슷한 체험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 특별한 체험을 매개로 고대 미술을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현현의 소산이 바로 오버레이(overlay)라는 제목이 붙여진 한 권의 책이다.

 

오버레이는 덮어씌우다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시간에 따라 관습과 문화는 조금씩 변한다. 그러나 리파드는 매일 변화하는 것들을 오버레이로 규정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대의 문화와 관념 위에 이전과 다른 새로운 문화와 관념들이 하나하나씩 덮어씌워지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현대미술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술의 역사를 거대한 지층의 형태와 같다고 보면 된다. 리파드는 이 오버레이라는 개념을 통해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지층처럼 역사를 이어온 미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현대인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선사시대의 미술과 그 문화에 주목한다. 선사시대 미술은 미술사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는 머나먼 과거의 미술과 문화를 낯설어하며 그것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어떤 이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선사시대의 돌덩어리를 이해하는 일은 고고학자들의 몫인데 왜 미술 연구가들이 그것을 주목하는지 알 수 없다고. 또 고대 거석문화가 현대미술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말이다.

 

알게 모르게 현대 미술가들은 고대 유적지와 유물에 매료되었고, 여기에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다. 그래서 리파드는 고대 문화에 영감을 얻은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고대미술과 현대미술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주목한다. 그 연결고리는 일상과 예술이 한 겹으로 포개져 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nostalgia)이다. 과거의 예술은 화려하지 않다. 고대인들은 주변에 구할 수 있는 친숙한 소재들을 재료로 삼아 공예품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렸다. 예를 들면 고대인들은 돌을 강렬한 기운을 지닌 것으로 여겼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기 위해 거석을 세우거나 인형을 만들었다. 고대인의 일상 속에는 예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미술사가들은 미술의 기원이 선사시대에서 찾는다.

 

오버레이1983년에 출간된 책이다. 책 속에는 과거가 되어버린 그때 당시의 예술 경향이 소개되어 있다. 이때는 대지 미술과 퍼포먼스 미술이 유행하고 있었다. 저자는 자연을 소재로 거대한 작품을 만드는 대지 미술 예술가들의 창작 의도는 태초의 자연 상태나 선사시대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대지미술은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미술이라기보다는 지나간 시간과 문화가 오버레이 되면서 만들어진 원시적 지층에 남아있는 고대미술의 흔적이다.

 

이전 세대의 예술을 거부한다고 해서 새로운 예술이 나오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예술작품을 만들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 세계 미술사를 바꾼 창의적인 작품들은 단순히 과거를 뛰어넘은 예술가 한 사람의 천재성에서 나왔다기보다는 과거에 접속하려는 예술가들이 고대미술의 장점에 영감을 얻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오버레이 된 미술은 역사’로 남은 인류의 문화적 유산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넘나드는 곳이며 지금도 과거의 예술적 아이디어가 살아 숨쉬고 있는 역동적 현장이다.

 

 

 

 

Trivia

    

 

 

  

* 34쪽에 있는 도판(데니스 오펜하임(Dennis Oppenheim)의 대지 미술 작품 <별의 활주(Star skid)>, 위의 사진이 오펜하임의 작품)18쪽에 있는 도판(영국 다트무어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열석)으로 잘못 실려 있다.

    

 

 

* 천문고고학의 기원은 1740윌리엄 스튜켈리가 스톤헨지가 북서 방향, “낮이 가장 긴 날 태양이 떠오르는 곳 부근을 향한다고 지적한 데서 시작된다. 그 시절에 스톤헨지는 로마인들이 세운 것으로 여겨졌지만, 스튜클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고대의 고분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154)

 

스튜클리스튜켈리의 오식이다.

 

    

 

* 우리가 민주주의의 올가미에 걸리면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쾌할하면서도 절망 섞인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226)

 

쾌할하면서도쾌활하면서도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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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Chekhov)의 단편소설에 신 스틸러(scene stealer)가 한 명쯤은 꼭 있다. 비록 그들은 소설에서 잠깐 나오는 인물에 불과하지만, 주인공 못지않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민음사, 2002)

공포-한 친구의 이야기, 우수수록

    

 

 

공포-한 친구의 이야기는 체호프가 사할린 섬을 여행하고 돌아온 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친구다. 드미트리 페트로비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공포라고 생각한다. 그는 현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삶에 대한 공포라고 말한다. 체호프는 이 소설을 통해 삶 그 자체가 무서운 이유를 보여준다. 인간은 현실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아낼 능력이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불안감과 혼란이 가중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는 친구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에 서 있지만, 그도 예외가 아니다. ‘는 친구의 심정을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삶에 대한 공포를 피부로 느낀다.

    

 

 

 

 

 

 

 

 

 

 

 

 

 

 

 

 

*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9)

애수수록, 민음사의 체호프 단편선에 있는 우수와 같은 작품임.

 

* [품절] 체호프 개와 인간의 대화(범우사, 2005)

개와 인간의 대화수록

 

    

 

이 소설의 신 스틸러는 가브릴라 세베로프라는 인물이다. 그는 지독한 술꾼이다. ‘의 하인으로 일했으나 고약한 술버릇 때문에 쫓겨났다. 그는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하인이 되어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똑같은 사유로 해고되었다. 가브릴라 세베로프는 원래 풍족한 집안 출신이다. 그러나 술과 방탕에 빠지는 바람에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했다. 술에 취한 가브릴라 세베로프는 자신을 번듯한 가문 출신이며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술주정을 받아주는 유일한 상대는 말()이다. (체호프의 단편소설에는 동물에게 말을 거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개와 인간의 대화에 나오는 술 취한 관리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개에게 다가가 술주정을 부린다. 우수(憂愁)의 마부는 아들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있는데, 일하면서 꾹 참아왔던 슬픈 감정을 마구간에 있는 말에게 토로한다)

 

    

 

 

 

 

 

 

 

 

 

 

 

 

 

 

 

* 아폴리네르 알코올(열린책들, 2010)

* [품절] 아폴리네르 알코올(문학과지성사, 2001)

* 아폴리네르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민음사, 2016)

    

 

 

가브릴라 세베로프의 별명은 ‘40명의 순교자. 특이한 별명이다. 민음사의 체호프 단편선에는 이 별명의 의미를 설명한 역주가 없다. 내가 추측하건데 ‘40명의 순교자는 실제로 순교한 40명의 기독교 성인을 가리킨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는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시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는 제사(題詞)를 합쳐 총 3백행에 이른다. 시의 구성도 독특한데 제목이 각각 다른 세 편의 독립된 시(‘어느 해 사순절에 부른 새벽찬가’, ‘콘스탄티노플의 술탄에게 보내는 코사크 자포로그들의 답장’, ‘일곱 자루의 칼’)가 삽입되어 있다. 시의 48행에 세바스트의 40이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지난 세월 속에서 겨우살이를 했다

부활절의 태양이여 돌아오라

세바스트의 40인보다

더 얼어붙은 내 가슴을 덥혀다오

그 순교의 고통도 내 삶보다는 나았으리

     

(아폴리네르의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46~50, 황현산 옮김)

 

 

세바스트(Sébaste)는 고대 그리스어로 성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진 세바스토스(Sebastos)에서 파생된 말이다. ‘세바스트의 40에 대한 황현산의 역주에 따르면 320년 아르메니아의 세바스토스에 주둔했던 로마 병사 40인은 로마의 신을 부정하고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들이 순교하기 전인 313년에 서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와 동로마의 황제 리키니우스(Licinius)는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밀라노 칙령이 선포한 이후에도 동서로 분열된 로마 제국의 분쟁은 멈추지 않았다. 리키니우스는 밀라노 칙령을 어기고 기독교인들을 탄압했다. 그러나 세바스토스에 있는 40인의 로마 병사들은 리키니우스의 명령을 거부했고 얼어붙은 호수에 몸을 담그는 고문을 받다가 순교했다.

 

시 선집 형태로 출간된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민음사)도 아폴리네르의 시집 알코올(열린책들)을 번역한 적이 있는 황현산 교수가 맡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표제작에 대한 해설과 주석이 나오지 않는다. 분명 시는 있는데 이 시가 무슨 뜻인지 알려주는 역자 해설이 없다는 것이다. 해설과 주석을 설명하는 내용이 너무 길어서 생략된 것일까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에 나오는 생소한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선집보다는 시집을 완역한 번역본을 참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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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2-0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럼프 아웃, 웰컴 백 ~

cyrus 2020-02-07 23:41   좋아요 0 | URL
한 번 푹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

stella.K 2020-02-07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체호프에 꽂혔구나.^^

cyrus 2020-02-07 23:42   좋아요 0 | URL
체호프의 단편, 정말 매력적이에요. 체호프는 진정한 이야기꾼이에요. ^^

페넬로페 2020-02-07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아폴리네르 시집으로 토론한 적이 있는데 어렵더라구요~~
체홉도 읽어야하는데 ㅠㅠ

cyrus 2020-02-07 23:44   좋아요 1 | URL
시집을 읽으면서 독서 토론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정말 어려운 시집을 읽었군요. 체호프의 소설은 독서 토론을 위한 책으로 읽기에 좋아요. ^^

Angela 2020-02-07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미트리는 정말 꺄~악! 이죠 ㅎㅎ 근데 드미트리를 제치고 신 스틸러를 찾으셨군요~^^

cyrus 2020-02-08 00:06   좋아요 0 | URL
별명과 행동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았어요... ^^
 
화학이란 무엇인가 - 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과학의 핵심
피터 앳킨스 지음, 전병옥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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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크게 분류하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나눈다. 화학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학창 시절에 외웠던 주기율표의 수많은 원소 기호와 화학식 등이다. 대부분 사람은 실생활과 관련 없는 가장 어려운 분야로 화학을 지목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화학은 훨씬 많은 부분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함께 생활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제품 중에 화학과 무관한 제품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화학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은 질병과 공해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인식이다. 우리 주변의 화학물질은 벌써 수만 종에 이르고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이제 화학물질은 누구도 피할 수 없을 만큼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화학물질들의 광범위한 사용과 인체 노출은 케모포비아(chemophobia)라는 화학물질 공포증을 탄생시켰다. 케모포비아는 인공 화학물질들에 대한 선입견 혹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막연한 불안감으로부터 오는 공포증을 말한다.

 

화학의 세계는 어렵고 위험하기만 할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화학이란 무엇인가일반인들이 화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무게를 뺀 책이다. 이 책을 쓴 피터 앳킨스(Peter Atkins)는 지금도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는 화학 교과서를 쓴 화학자이다. 앳킨스의 화학 교과서는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다. 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교과서를 통해 이론으로만 접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 이론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화학이란 무엇인가는 낯선 용어와 복잡한 화학식 대신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화학의 핵심 개념을 알려준다. 저자가 언급한 화학의 핵심 개념은 원자와 분자, 에너지와 엔트로피(entropy), 네 가지 화학 반응 등이다. 이 책 속에 담긴 중고등학교 화학에서 기본적으로 다루는 내용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화학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학생,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과 어른들의 교양서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화학의 핵심 개념을 친숙한 소재들로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 저자는 화학자가 하는 일을 커플 매니저로 비유한다.

 

 

 화학의 핵심 주제는 하나의 물질이 (형태와 속성이) 다른 물질로 변화하는 과정인데, 원자는 그 자체로는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물질이 변한다는 것은 기초 재료인 원자들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되어 있던 원자들이 그 짝을 바꾼다는 것이다. 화학자는 이런 원자들의 만남과 이별을 연구하는 일종의 커플 매니저이다. (21)

 

 

원자는 모든 물질의 원료이다. 원자와 원자들이 결합하면 분자라는 물질 형태가 생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화학이란 무엇인가는 화학 교과서를 축약한 책이 아니다. 저자는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화학의 세계가 일상 속에 숨겨진 마술처럼 흥미로운 것임을 알리기 위해 두 팔을 걷고 책을 쓴 것이다. 그는 화학이 없었다면, 인류는 석기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물건하나라도 없이 살게 되면 불편함을 느낀다. ‘어떤 물건에 여러분이 생각한 것들을 넣어 보라. 스마트폰, , 플라스틱. 이 세 가지가 없다고 상상해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화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이 물건들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화학의 장점을 무조건 옹호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화학이 인류를 살상하는 무기가 되고, 화학물질이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준 사례를 언급하면서 화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원론적인 입장이지만, 저자는 화학 기술 발전을 위해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규제도 시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친환경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화학은 우리 곁에 늘 함께하고 있다. 앞으로도 화학은 일상생활과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화학자들도 변해야 한다. 화학자들은 화학물질의 부작용에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쉬운 말로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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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2-05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과 화학까지 넘나 드는 다채로운
독서라니 역시나 대단하시네요.

cyrus 2020-02-07 13:02   좋아요 1 | URL
이번 달에 들어서면서 다시 독서와 글쓰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
 

 

 

체호프(Chekhov)의 단편소설을 알아보려고 검색하다가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다. 그 책은 전자책이며 제목은 안톤 체호프 단편선이다. 이 책의 앞표지가 재미있다. 표지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 [e-Book] 체호프 안톤 체호프 단편선(안북, 2012)

 

 

러시아 객관주의 문학의 거장이 말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전자책의 정가는 3,000원이다. 번역자가 누군지 나와 있지 않다. 이 책에 무슨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네이버에 이 책을 검색하면 수록작을 알 수 있다. 수록작은 총 여덟 편이다. 작품명은 다락방이 있는 집, 어느 화가의 이야기, 상자 속의 사나이, 골짜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입맞춤, 위험한 손님, 약혼녀이다. 체호프의 대표작이 수록되어 있지만, 이런 책은 사지 않는 것이 좋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의 번역자는 체호프의 문학을 잘못 소개했다.

    

 

 

 

 

 

 

 

 

 

 

 

 

 

 

 

 

*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 무엇을 할 것인가(열린책들, 2009)

* 블라디미르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운동의 절박한 문제들(박종철출판사, 2014)

 

 

내가 방금 재미있다고 언급한 부분은 바로 앞표지에 있는 문구를 말한 것이다. 문제가 되는 문구는 체호프의 작품에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러시아의 소설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Nikolai Chernyshevsky)의 소설 제목이자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의 논문 제목인 ‘무엇을 할 것인가?’를 떠올리게 한다. 전자의 책이 먼저 나왔다. 체르니셰프스키는 19세기 중반 러시아를 대표하는 사회주의 혁명가였다. 그는 사회주의가 농민 공동체를 통하여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사회주의 이론을 민중 해방을 위한 무기로 삼았다. 그의 글들이 사회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체르니셰프스키는 인생의 반을 감옥에서 보냈다. 수감 생활 중에 쓴 유명한 소설이 바로 무엇을 할 것인가?(Chto delat’?)이다. 이 소설에 사회계급 평등, 여성해방 등 새로운 사회상을 제시하는 등 급진주의적 생각들이 반영되어 있어서 구세대에 지친 젊은 독자들은 이 책을 탐독했다. 레닌도 이 책을 열심히 읽은 독자 중의 한 사람이다.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이 나온 지 40년 뒤에 레닌은 똑같은 제목의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레닌의 혁명 노선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문학동네, 2016)

    

 

 

체호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체르니셰프스키와 같은 급진주의자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또 세상을 갈아 엎어버리겠다는 그런 의지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체호프의 대표작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번역한 로쟈이현우의 작품 해설은 체호프 문학의 특징을 간략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러시아 문학의 대단한 주인공들이 시대와 세상을 향해 던진 당당한 물음이 있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진보적 비평가 체르니솁스키의 소설 제목이었고, 레닌도 자신의 정치 팸플릿에 같은 제목을 붙었다. 하지만 체호프의 작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의 반향을 읽어내기가 어렵다. 그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어떻게?”를 중얼거릴 따름이다 (이현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옮긴이의 말, 69)

 

 

체호프의 단편소설들을 자주 읽어보면 그 속에 있는 인물들의 성격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전자책의 번역자는 체호프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듯하다. 이 번역자가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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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2-05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 사람들도 체호프를 대단하게
평가하던데...

정작 체호프를 읽어본 기억은 나지
않네요.

cyrus 2020-02-07 13:05   좋아요 0 | URL
아마도 체호프는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공연 작품이 많은 극작가일 거예요. ^^
 
스타 토크 - 천체 물리학자 닐 타이슨의 과학 토크 쇼
닐 디그래스 타이슨.찰스 리우.제프리 리 시몬스 지음, 김다히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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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토크>는 천체 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이 진행하는 과학 토크쇼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되었으며 2015년부터 작년까지 팟캐스트(podcast) 형식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채널에 방영되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닐은 작고한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칼 세이건(Carl Sagan)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과학적 이론을 설명하는 방식은 위트가 넘친다.

 

<스타 토크>에 출연한 초대 손님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면 과학 마니아를 위한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역대 초대 손님들을 살펴보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제인 구달(Jane Goodall), 과학저술가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 우주 비행사 버즈 올드린(Buzz Aldrin)등이 있다. 과학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명사들도 <스타 토크>에 출연했다.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Nolan), 영화배우 수잔 서랜던(Susan Sarandon), 가수 케이티 페리(Katy Perry), 소설가 조지 R. R. 마틴(George R.R. Martin), 전 농구 선수 카림 압둘 자바(Kareem Abdul-Jabbar) 등이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 방송에 전임 미국 대통령 두 명이 출연했다. 지미 카터(Jimmy Carter)빌 클린턴(Bill Clinton)이다.

 

책으로 만들어진 <스타 토크>는 라디오 방송과 팟캐스트 방송 중 최고의 내용을 선별한 것들로 구성되었다. 제목에 있는 ‘스타’ 때문에 이 책이 우주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주 광범위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책의 1부는 우주이고, 2부는 지구, 3부는 인류에 관한 것, 4부는 미래를 주제로 한다. 네 가지 주제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살면서 한번쯤은 궁금할 법한 내용을 진행자인 닐과 방송에 손님으로 출연한 전문가들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예를 들면 책에 이런 질문들이 나온다.

 

 

* 화성에 갈 때 무엇을 가져갈 수 있는가?

* 만약 우주 개척 시대가 온다면 소행성을 사고 팔 수 있을까?

* 지구에 있는 물은 어디에서 왔을까?

* 과학이 진정한 사랑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는가?

* 슈퍼맨은 블랙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왜 아직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없는 것일까?

* 빅풋(Bigfoot)은 외계에서 온 생명체인가?

 

 

이 책은 방송에 출연한 초대 손님들의 주옥같은 말들도 소개한다. 이 항목의 제목은 ㅋㅋㅋㅋㅋ. 우리나라에서만 쓸 수 있는 초성체이기 때문에 옮긴이가 이렇게 썼을 것이다. 신박한(참신한) 번역이다. 방송 중에 닐이 바텐더들과 함께 칵테일 레시피를 개발하는 코너가 있는데, 책에는 저녁의 한 잔이라는 제목으로 나온다. 닐은 트위터리안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가장 인상 깊은 트윗만을 골라 공개했다. 이러한 책의 구성 방식은 라이브 방송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곁가지가 너무 많아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닐과 초대 손님들이 쏟아내는 미국식 유머가 낯선 독자들은 이 책에 반영된 토크쇼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마치 잔뜩 기대하면서 미국의 화려한 파티에 참석했는데 막상 와보니 맛있는 음식이 많지 않은 느낌이랄까. 소문난 미국식 과학 잔치의 음식이 생각보다 별로다. 이 책은 분명 흥미롭고 유익한 과학 상식들이 나오지만, 산만한 구성과 들고 다니기 힘든 책의 크기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최악인 건 가름끈이 없다는 점이다. 가름끈 없이 어떻게 이 커다란 책을 읽으란 말인가. 이 책의 오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책의 글씨 크기가 작아서 자세히 보지 못하면 오식을 발견할 수 없다.

 

 

 만일 여러분이 태양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구와 충돌하러 날아오고 있다고 혜성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78)

 

 

지구와 충돌하러 날아오고 있는으로 고쳐야 한다.

 

 

왜 보름달이 뜨는 동안 동안에는 파도가 더 높을까요 (100)

 

 

한 문장에 동안이라는 표현이 중복되어 나온다.

 

 

 인체는 잘 설계되어 있는 것이 맞나요? 사실 인체 중 일부는 디자인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지만은 많다고 닐은 주장하네요.”  (170)

 

 

많다고않다고로 고쳐야 한다.

 

 

 SF 소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SF 소설은 사고방식, 사는 장소, 유러 코드, 심지어 입는 의복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260)

 

 

유머 코드의 오식이다.

    

 

책의 만듦새는 전체적으로 실망스럽다. <스타 토크> 번역본은 과학교양서의 스테디셀러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Cosmos)>의 아성을 뛰어넘기 힘들어 보인다. 두 권 모두 같은 출판사(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온 책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번역자와 편집자님. 당신들 때문에 독서의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까 책임지세요.

 

 

 

 

Trivia

    

 

만일 1980년에 레이건이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저의 동료인 미합중국 국민 여러분, 정말로 걸리기에 어려운 병이 있는데, 이 병에 걸리면 정말 괴롭습니다. 그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한 열 가지 비결을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 AIDS는 의학 학술지에서 겨우 한 문단을 차지하는 정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안내문만 갖고도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을 퇴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이렇게만 했다면 AIDS를 멈출 수 있지 않았을까요?” (240)

 

 

이 문장을 얼핏 보면 그저 평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여기에 미국을 잘 아는 사람 아니면 알 수 없는 유머가 들어있다. 내가 밑줄 친 문장에 유머가 숨어 있다. 그 문장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전 미국 대통령이 에이즈에 대한 방송 연설을 하는 모습을 가정한 내용이다. 실제로 레이건은 질병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국민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행동을 한 적이 있다. 1994년에 레이건은 자필 편지를 통해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치매) 진단받은 사실을 미국 국민에게 고백했. 이 편지 한 통이 미국 전역에 공개된 직후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내가 인용한 문장은 레이건의 편지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문장에 숨어 있는 유머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만약 대통령이 에이즈의 심각성에 대해 일찍 언급했다면 에이즈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을 줄일 수 있고, 에이즈 퇴치를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빨리 시작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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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2-06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건의 선견지명인가요?

cyrus 2020-02-07 13:10   좋아요 0 | URL
선견지명이라기 보다는 가정법이죠.. ^^

파찌니 2020-02-1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건이 암살당할뻔 했을때 사람들의 엄청난 동정(?)표 지지를 얻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레이건이 신자유주의를 제창하면서도 서민들의 지지를 얻은 아이러니를 이용한 풍자라고 생각하네요 윗댓글에 대한 제 의견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