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상상력이 만들어 낸 기괴물 물고기

 

 

 

 

 

르네 마그리트  『집합적 발명』 1953년

 

 

우리나라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1960년대 초 어느 일간지가 상반신은 물고기, 하반신은 여자의 하체로 이루어진 괴상한 사진을 실었다. 사진은 '기어(奇魚) 발견!'이라는 제목과 함께 해외토픽난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신문에 웃지 못할 정정기사를 났다. '괴상한 물고기가 아니고 사진작업을 통해 조작한 포토 몽타주였다' 1960년대 신문의 인쇄 상태를 감안한다면 그 당시로서는 마그리트의 그림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괴상한 사진을 접한 신문 독자들 그리고 마그리트의 그림을 한 순간에 괴물 물고기로 만들어버린 신문기자까지도. 마그리트의 미술이 소개되지 않은 그 당시로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대중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마그리트는 서로 다른 개념의 사물이나 풍경을 나란히 놓으면 또 하나의 다른 개념의 기이한 풍경으로 바뀐다는 변증법적 방법론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마그리트의 미술은 상식의 세계를 뒤집는 '기상천외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는 예술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익숙한 감각과 관습을 거부하며 끊임없이 존재의 평범함에 대항하는 '생각하는' 화가이자 철학자였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이성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무능한 지식인들을 '초현실적'으로 비꼰다. 프랑스 지식층을 통칭해 '카르테지앙(cartésien)'이라고 한다. 이성과 합리성의 표상인 데카르트의 자손이라는 긍지도 되고 꽉 막힌 답답한 친구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마그리트는 답답한 이성의 아성을 훨훨 넘나드는 '초현실주의의 곡예'를 선보임으로써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평범함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도 통쾌한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엉뚱하고, 이상한 철학하기

 

 

 

 

 

튜바를 쓴 마그리트

(1960년 촬영, 사진출처: 수지 개블릭  『르네 마그리트』 p 16)

 

 

 

마그리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그림을 처음 본 순간, '이상하다', '낯설다', '엉뚱하다' 등의 반응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마그리트 특유의 그림 속 이미지들은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심오한 철학적인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난해한 그림으로도 볼 수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일반적인 화가들과는 달리 관객들에게 일방적으로 이미지를 보는 행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불친절하게(?) 이미지를 통해 생각하고 사유할 것을 제안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그리트의 미술을 '철학'처럼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철학'이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철학자들의 사상으로 이루어진 총합적 학문이다. 그림으로 표현한 마그리트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을 해보자.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철학의 사상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부한다고 해서 마그리트의 낯선 이미지들 속에 숨겨진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철학을 공부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게 되고 깊은 사유와 통찰력을 배양할 수 있다. 하지만 마그리트의 미술에서 요구하는 '철학'은 깊은 사유를 통해 이미지를 해석하기 위한 '돋보기'일 뿐이다. 돋보기를 통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미세한 대상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듯이 '철학' 돋보기는 마그리트 미술의 반을 이루고 있는 사유의 영역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기 위한 부수적인 도구이다. 안 그래도 마그리트의 그림을 이해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판에 철학까지 공부한다면 머리만 아파질 수 있다. 오히려 철학과 마그리트, 둘 다 싫어하는 역효과만 생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마그리트의 미술은 기존의 상식과 평범함을 거부하는 실제와 같은 '낯선 세계'를 지향한다. 마그리트가 구축한 이 '낯선 세계' 속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가끔은 제 정신이 아닐 정도로 엉뚱한 생각도 해봐야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 위에 중절모 대신 커다란 튜바를 쓴 마그리트처럼 직접 엉뚱한 생각과 행동을 실천해봄으로써 그림 속에 숨겨진 그의 의중을 좀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낯설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는 것. 마음만으로는 쉬운 일이지만 몸소 행동으로 실천한다는 게 어렵다. 일탈적인 사고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정상'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게끔 조언을 해주는 책이 프랑스의 칼럼니스트 로제 폴 드르와가 쓴 『일상에서 철학하기』다. 이 책에는 총 101가지의 철학 체험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저자는 '체험'이라기보다는 '놀이'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철학 고유의 딱딱하고 진지함이 없을 정도로 '철학 도서' 같지 않는 '철학 도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자의 이름이나 사상에 대해서 단 한 줄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위대한 사상을 익히거나 철학자들이 지나온 생각의 길을 가보는 대신에 오로지 일상 속에서 '나'만의 철학을 해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오줌 누면서 물 마시기', '공원묘지에서 달려보기', '방 안에서 동물이 되어보기', '소리를 줄인 채 TV 화면 보기', '상상으로 사람 죽이기'(!) 등 얼핏 제목만 보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정말 엉뚱한 철학 체험들이다.

 

그러나 로제 폴 드르와가 제안하고 있는 이 101가지의 철학 놀이들은 마그리트의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창의적인 체험들이다. 이 책은 마그리트의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낯설게 하기'를 이해하고 직접 실천할 수 있는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엉뚱하지만 깊이 있는 철학 체험을 통해 뇌 속에 갇힌 생각을 해방시키고 단조로운 일상을 탈출하여 마그리트의 세계로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다.

 

 

 

 

 철학 체험 #1 : 그림 속으로 빠져들기

 

 

 

 

 

『끝없는 정찰』 1963년

 

 

일반적으로 미술관에 오는 관객들의 역할은 액자 속에 고정된 이미지만 보는 게 전부다. 미술관에 전시된 수많은 그림들 모두 다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저 도슨트(Dosent)의 설명대로 그림을 이해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와 비슷하게 그림으로 구현된 상상의 세계로 다가갈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림들은 늘 당신과 같은 공간 속에 있다. 그리고 운이 좋을 경우, 당신은 갑자기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당신을 둘러싼 일상의 공간에 일종의 균열일 발생하면서 당신을 그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로제 폴 드르와 『일상에서 철학하기』p 228)

 

 

 

아무래도 일상의 공간에 균열을 만들어줄 수 있는 화가라면 단언 마그리트라고 말하고 싶다. 마그리트가 관객을 위해 열어주는 이 '균열'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이다. 마그리트의 그림『끝없는 정찰』을 주목해보자.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친숙하게 등장하는 중절모 신사 두 명이 서 있다. 그런데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땅이 아니라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는 하늘 위에 서 있다!  일반적인 관객이라면 그저 재미있는 발상이 돋보이는 그림으로만 볼 것이다. 하지만 마그리트는 이 그림에서 관객들을 위해 은연중에 일상의 현실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균열'을 만들었다. 그림 속 두 명의 중절모 신사들처럼 하얀 구름이 펼쳐진 높고 푸른 하늘 한가운데에 한 번 들어가보자. 동시에 여러 개의 공간 속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일상적인 사고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마그리트가 만들어 낸 낯선 세계로 가기 위한 균열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철학 체험 #2 : 풍경을 그림처럼 접어보기

 

 

 

 

 

 

『들판으로의 열쇠』 1936년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한 지점의 풍경을 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상상해보라. 그리고 그 풍경의 '그림'을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대로 접어본다. 아니면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풍경의 장면을 '유리창'으로 생각하고, 과감하게 망치로 그 그림을 깨뜨려보자. 풍경은 산산히 부셔져 파편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풍경의 상은 그대로 남아 있다. 풍경을 종이와 유리창으로 만들 수 있는 주관적인 의식과 풍경 그대로의 모습으로 구성된 객관적이면서도 실제인 세계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철학 체험 #3 : 낱말의 의미에 구멍 내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1929년

 

 

'낱말의 의미에 구멍을 낸다?', 언뜻 문장만 보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방법은 간단하다. 손에 쥐고 있는 익숙한 사물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그 사물의 이름을 몇 번 반복해서 불러본다. 시간이 지나면 실체적 대상인 사물과 그것을 뜻했던 낱말이 분리된다. 분리되는 순간, 사물의 본질적인 의미를 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부르고 있는 사물의 이름은 진정한 실체를 가리고 있는 '낱말'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명제를 구성할 때 그에 상응하는 '그림'을 산출한다. 건축가가 떠올리는 청사진처럼, 언어를 사용하면서 어떤 '대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이름이 뜻을 갖는 것은 이름들 간의 논리적 관계라는 맥락 안에서다. 그래서 사물에 향한 시선과 인식은 본질적인 실체 그대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그리트는 캔버스에 하나의 파이프를 단순하게 그리고 바로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적음으로써 이미지의 묘사 혹은 재현의 모든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사고의 혼란이 시작된다. 그림 속 파이프가 단순한 오브제를 나타낼 수도 있고, 잘못된 언어와 결합하면 이미지가 오히려 사물 그 자체로 여겨질 수도 있다. 마그리트는 회화를 통해 이미지와 단어를 별개로 봤으며 단어는 그 자체를 지칭하는 데만 소용된다고 생각했다. 낱말과 사물의 분리를 통해 일상에서 볼 수 없었던 대상의 진정한 본질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마그리트처럼 삐딱하게 세상 보기

 

 

 

 

 

 

(왼쪽)『강간』 1934년 

(오른쪽)『빛의 제국』1954년

 

 

잘 짜인 기획들을 망쳐버리고, 예상치 못한 사태를 조장하고, 사람들의 기대를 빗나가게 하라. 순응하지 말고 악착같이 이 사회를 역주행하라. (『일상에서 철학하기』p 96)

 

 

 

『일상에서 철학하기』에 소개된 철학 제험 중에 '광대처럼 삐닥하게 세상 보기'라는 것이 있다. 저자는 아예 대놓고 '미친 놈'처럼 행동하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정도 '미친 놈'이 되라는 건 아니다. 반복된 일상이 만들어 낸 고정관념에 벗어나는 일상을 경험해보자는 것이다. 마그리트는 보통 화가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그림에 전통적으로 부여하는 회화의 덕목 즉, 원근법과 명암법, 구도, 색채, 질감 그리고 표현의 테크닉 같은 일반 회화의 범주를 거부했다. 덕분에 사실 같은 초현실적인 그림들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었다. 마그리트의 절친한 친구이자 프랑스의 사상가인 조르주 바타유는 『강간』이라는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흥분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여성의 얼굴에서 여성의 토르소가 있는 마그리트의 발상은 삐딱하게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지 않는 이상 쉽게 나오지 않는다. 여성의 나체를 바라보는 남성 화가와 관람자들의 은근한 욕망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얼굴의 진실을 몸으로 대체해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이미지의 구현으로 완성했다. 마그리트의 대표작 『빛의 제국』에서 나타난 낯과 밤의 동시성은 밝은 낮과 어두운 밤으로 구분짓는 이분법적 허상을 깨뜨리고 있다. 마그리트의 아이코노클라즘(Iconoclasm, 상식 파괴)은 철저히 초현실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장치만으로 이렇게 경이롭고 낯선 이미지를 구성했다.

 

 

 

 

 

 

 

 

 

 

 

 

 

 

 

 

J. 호이징가는 인간의 삶을 유희, 즉 놀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호이징가는 놀이의 조건을 제시했다. 호이징가가 말하는 '놀이

란 자발적 행위, 비일상적인 것, 장소의 격리성과 시간의 한계성에 규정되지 않은 공정한 것이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일상에서의 일탈이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나해

 

(중략)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선보기 하루전에 홀딱 삭발을
비오는 겨울밤에 벗고 조깅을
야이야이야이야이야


할일이 쌓였을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신도림 역안에서 스트립쇼를
야이야이야이야이야

 

모두 원해 어딘가 도망칠 곳을 모두 원해
무언가 색다른 것을 모두 원해 모두 원해

 

 

 - 자우림 '일탈' 중에서 -

 

 

'일탈' 노랫말에 담긴 발산 욕구는 낯설고도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표출 행위다. 굳이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서 돈이 들 필요가 없다. 시간과 비용을 최대한 절약할 수 있는 '철학 놀이'를 통해 일상 속에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의 족쇄를 풀어 삶을 즐기고 유연하게 볼 수 있는 여유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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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산책 - 소설보다 재미있는 진화의 역사
션 B. 캐럴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Biz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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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창조론자 요구에 항복하다

 

지금은 시들었지만 올해 최근에 과학교과서를 둘러싼 창조론과 진화론이 격돌한 적이 있었다. 기독교계 단체인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교진추)는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종(種)이 아니고 말의 진화 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라며 교육과학기술부를 대상으로 현행 과학 검인정교과서 내 관련 자료 삭제를 요청했다. 이에 해당 교과서를 펴낸 출판사 일곱 곳 중 여섯 곳은 시조새 부분을, 세 곳은 말 진화 부분을 각각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교과서에서 진화론이 삭제된 것을 놓고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네이처> 온라인판은 '한국,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항복했다'(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독교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항복하는 한국 과학계에 대해서 학문적 차원의 우려와 조롱을 표명하는 기사였다. 창조론의 공격 앞에서 적극적인 반론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과학계의 태도는 특정 종교의 교리가 교과서에 반영되는데 일조하고 있다. 진화론이 과학교과서에서 퇴출된다는 사실은 교육적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진화론에 대한 공격은 다윈이 처음으로 진화론을 주장할 때부터 유래되었던 보수적인 기독교 복음주의의 산물이다. 아직까지 완벽하지 못한 진화론의 틈새를 파고들어 교묘하게 음지의 창조론을 대중들의 관심사로 끌고 들어오고 있다.

 

 

 

 진화론으로 향하는 산책로에서 만난 과학자들

 

 

  

 

 

찰스 다윈에게 큰 영감을 준 독일의 박물학자 알렉산더 훔볼트 (왼쪽)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의 창시자가 될 수 있었던 영국의 박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윌레스 (중간)

인류 조상의 화석 발굴에 주력하여 진화론을 증명한 네덜란드의 의사 프랑수아 토머스 뒤부아 (오른쪽)

 

 

 

진화론은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 아닌, 반드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핵심적 이론이다. 진화론은 갑자기 하늘에서 한 사람의 머리로 뚝 떨어져서 나온 게 아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각자의 연구를 통해서 얻은 결론들을 종합해서 하나의 전체적인 이론으로 정립되어진 집합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진화론'이라고 하면 대중들은 한번쯤은 이러한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진화론을 연구하고 증명하고자 했던 과학자들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생물학 논문을 읽는 사람들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화론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게 된 결정적 원인이 다윈을 포함한 박물학자들의 수많은 모험과 탐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션 B. 캐럴이 쓴 『진화론 산책』을 읽어본다면 진화론이 왜 교과서에서 삭제되어서는 안 되는 과학적 이론인지 확인할 수 있다. 제목만 본다면 대중들에게 진화론을 소개하기 위해서 쓴 개론서로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과학 선생님처럼 지루하게 진화론을 강의하듯이 설명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인류의 진화 과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과학자들의 탐험의 여정을 들려줌으로써 진화론이 증명되는 과정을 보다 쉽고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진화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초보 독자들은 제목대로 '산책'하듯이 가볍게 과학자들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원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1  첫 번째 지점, 찰스 다윈

 

진화론으로 향하는 산책로 중에서 아무래도 익숙한 지점은 바로 '찰스 다윈'일 것이다. 다윈이 본격적으로 진화의 수수께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는 22세 때 비글 호 항해에 나서기 시작할 때부터다. 다윈이 평생 진화론을 탐구하게 되는 지적 여정의 반은 비글 호 항해 시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가 애초에 진화를 밝혀내기 위한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배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탐험에 동승할 젊은 과학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자마자 모험심을 주체하지 못해 비글 호 탐험을 결심했던 것이다. 영국을 출발해 남아메리카, 남태평양의 무인도와 호주를 거치는 긴 항해의 여정이었다. 몸이 약한 다윈은 줄곧 배멀미에 시달리다 잠잠할 때를 틈타 해양 무척추 동물을 연구했다. 배가 상륙하면 열심히 화석과 동식물 표본을 수집했다. 파타고니아 섬에서 운좋게 멸종한 거대 매머드 화석을 발견했고, 안데스 산맥에서는 다른 연대의 화석들이 나란히 놓여 있는 지층을 발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큰 성과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핀치의 부리에 주목한 것이었다. 섬마다 조금씩 모양이 다른 핀치의 부리는 훗날 진화론의 토대가 된다. 다윈은 탐험길에서 발굴, 수집한 화석 표본들을 본국에 있는 학자나 생물학회에 보냈다. 이러한 수많은 화석 표본 덕분에 다윈은 진화의 원리를 하나하나씩 증명해나갈 수 있었다.

 

 

 #2  두 번째 지점, 알프레드 러셀 월레스

 

재미있게도 다윈이 비글 호 탐험을 통해 화석을 수집하고 있을 때 또 하나의 젊은 영국인도 말레이 제도를 중심으로 여행하면서 동물들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발견한 알프레드 러셀 월레스다. 그 역사 다윈처럼 진화의 기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무데나 여행을 하면서 동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8년동안 말레이 제도의 수많은 섬들을 여행하면서 표본 수집과 자연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탐사를 통해 월레스도 다윈과는 다른 접근 방법으로 자연선택과 진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3  찰스 다윈과 월레스, 우연히 만나는 교점

 

비글 호 항해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온 다윈은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본격적으로 진화론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탐구의 매듭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윈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세상 앞에서 공표하기를 꺼려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창조론을 단 한 번에 뒤집힐 수 있다는 이단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중과 학회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연구 발표를 망설였던 것이다. 그러자 다윈이 주저하고 있던 사이에 월레스는 말레이 제도 여행을 통해서 얻은 진화에 대한 결론을 한 편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놀랍게도 월레스가 쓴 논문의 내용은 다윈이 연구했던 내용과 일치한 내용이 많았다. 이에 다급해진 다윈은 독자적으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라는 동일한 개념을 착안한 월레스가 진화론을 자신보다 먼저 발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와 함께 공동 저자로 학회에 발표할 것을 제안했다. 이미 전부터 다윈과 교류를 맺고 있으며 순진하고 착한 품성을 지닌 월레스는 다윈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할 획기적인 이론의 발견이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명예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을 못했으며 오히려 관심조차 없었다. 무명의 학자에 불과했던 월레스는 이미 학계로부터 인정받은 다윈으로부터 진화 연구에 대해서 조언을 얻는다거나 그 주제를 중심으로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월레스에게 다윈이라는 존재는 음지에 가려질뻔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양지로 나오게 해준 '지적 동료'이자 '은인'이었다. 지금은 진화론이라고 하면 월레스보다는 다윈이라는 이 익숙한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의 일부는 월레스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4  생소하지만 꼭 가봐야 할 지점, 훔볼트와 뒤부아

 

요즘 진화론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다윈과 월레스의 관계가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오랜 세대 걸쳐 이루어진 진화론 탐구의 전체 역사를 감안한다면 일부에 불과하다. 다윈과 월레스가 연구를 위해서 위험한 탐험길에 용기 있게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알렉산더 훔볼트의 존재가 있기에 가능했다. 독일 출신의 알렉산더 훔볼트는 지리학과 천문학, 생물학, 광물학, 화학, 해양학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 여러 분야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또한 탐험가였다. 남미와 중앙아시아 곳곳을 누비며 지질과 식생 등을 탐사하고 연구했다. 그 이름은 세계 곳곳의 지명으로 남아있다. 훔볼트는 진화론 탐구에 있어서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지 않았지만 훗날 다윈이 박물학자가 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다윈이 비글 호에 탑승하며 배멀미를 잊기 위해서 읽은 책이 바로 훔볼트가 쓴 여행기였다. 젊은 다윈은 선배 과학자의 책을 읽으면서 자신 또한 훔볼트에 비견할만한 위대한 성과를 발견하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훔볼트는 젊은 후배 과학자들이 생명의 근원을 찾기 위한 모험의 길에 뛰어들 수 있도록 기폭제 역할을 했다.

 

 

 

 

 

 아프리카 현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 사진

 

 

 

훔볼트가 남긴 위대한 과학의 발자취는 다윈과 월레스에 이어 네덜란드의 의사까지도 따르게 할 정도로 그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젊고 전도유망한 의사가 될 수 있었던 29세의 프랑수아 토머스 뒤부아는 자신의 직업을 과감하게 버리고 동인도 제도로 떠났다. 뒤부아 역시 다윈과 월레스의 진화론에 깊은 관심을 가져 다윈이 예견한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 화석을 발견하려고 결심했다. 그야말로 인류의 기원에서 '읽어버린 고리'를 찾고자 하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는 과감하게 가족과 함께 수마트라로 건너가게 되면서 그 곳 일대를 조사하여 화석 발굴에 주력했다. 그러나 열대 지방 특유의 습한 기후와 질병은 엘리트 생활에 익숙한 뒤부아를 괴롭혔다. 그러나 탐구 열정만큼 꺾을 수는 없었다. 수마트라, 자바 일대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탐사한 끝에 뒤부아는 오래된 인류의 화석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을 뒤부아는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Pithecanthropus erectus)라는 학명을 붙였다. 훗날 자바 원인(Java 猿人) 발견의 단서가 되었는데, 동시대의 다른 화석 인류와 함께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라고 불리게 된다.

 

     

 

 진화론은 탐구의 열정을 지닌 과학자들의 노고

 

다윈의 등장 이후로 지금까지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 속에서 가려졌던 진화의 비밀이 한꺼풀씩 세상 앞에서 드러내고 있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절대적인 논리를 앞세워 세계를 지배하던 종교계의 거센 반발은 채 10년을 가지 못했다. 신학자들의 논리는 30여년에 걸쳐 자연을 관찰하며 얻어낸 과학자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모든 생물에서 진화가 진행 중이라는 대전제는 아직도 유효하다. 아직까지 미국과 유럽내 일각에서는 진화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거나 창조론을 교과서에 추가해야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종교계마저 진화론에 맞춰 사상을 재무장하고 있다. 진화론이 위대한 것은 하나의 이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최종 이론'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 탄생의 과정은 생명의 기원을 발견하고자 위험이 도사리는 탐험을 마다하지 않은 과학자들의 노고이다.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이들의 수많은 탐구의 열정들을 생각한다면 진화론이 창조론에 밀려 교과서에서 퇴출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허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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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9-20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찰스와 엠마'라는 다윈의 러브 스토리 쟁여놓고 있는데...
이 리뷰를 보니, 혹~하는 걸요.
날 잡아 트라이투 해봐야겠어요, ㅋ~.
잘 지내시죠?^^

cyrus 2012-09-21 17:1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나무꾼님.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 학교 다니고 있어요. ^^
이 책 어렵지 않습니다. 진화론이 발견되는 과정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소개하고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꼭 한 번 읽어보세요. 태풍이 지나고 난 뒤부터 어느 새 가을 날씨가
찾아왔네요. 아침 저녁이 쌀쌀하니 감기 조심하세요 ^^

노이에자이트 2012-09-21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훔볼트를 소개하니 반갑습니다.제가 좋아하는 남자입니다.탐험가와 과학자와 문필가의 소질을 모두 가지고 있죠.훔볼트 이름을 딴 해류와 펭귄도 있죠.

cyrus 2012-09-24 16:26   좋아요 0 | URL
저도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옛날에 나온 것 중에
<훔볼트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된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자주 다니던 동네 도서관에
인적 드문 지리학 분야 서가에 꽂혀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 책이 나온지 오래되서 그런지
요즘에는 잘 보이지 않더군요.
 

 

 

 

 

 

 

 

 

 

 

 

 

 

 

 

 

 

 

2주 전 주말에 자원봉사활동 차 자살예방 전문 상담기관인 한국 생명의 전화가 주최하는 '생명사랑 밤길 걷기' 행사에 참가했다. 오후 6시에 대구 스타디움을 출발하여 수성못을 거쳐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를 해 뜨는 새벽까지 걷는 것이다. 이 때 걸었던 코스의 길이는 총 34km이다. 군대 시절 때 했던 유격행군에 비하면 34km 걷는다는 게 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34km의 거리가 꽤 길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긴 거리를 완주했다는 기쁨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만 장기간 걷기에서 비롯되는 육체적 고통과 피로감 또한 감당해야 한다.

 

아마도 인간의 삶 절반은 걷기가 많이 차지할 것이다. 살다보면 가끔 정처 없이 걷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정처 없음은 목적지가 없다는 뜻이므로 또한 쓸쓸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왕 걷는 것이라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쓸쓸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벅찬 가슴을 안고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
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
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
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는 길 힘겨워 우리 허파 헉헉거려도
가쁜 숨 몰아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
서럽도록 푸른 자유
마음이 먼저 날아가서 산 넘어 축지법!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이제부터가 큰 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
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
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
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저번 밤길 걷기를 했던 것도 있었지만 이성부 시인의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사실은 결국 걷는다는 행위는 경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빨리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면 승리하는 경보를 제외하고 태초에 인류가 처음으로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했던 오랜 역사를 통틀어 걷기의 행위는 남들과의 겨룸도 아니고 자신을 이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빨리 가고자 하면 걷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목표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달리는 것뿐이다. 오를 때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 걸으면 보인다. 미세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이, 걷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걸음으로써 볼 수 있다. 그래서 걷는 것이 행복하다.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는 것, 고단한 마음을 잠시만 잊고 작은 것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그것이 걷는 자의 행복이다. 걷기의 행복을 느끼게 된다면 길게만 느껴지는 거리도 어느새 축지법 쓰듯이 완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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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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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닝 행위를 하는 이유

 

 

 

 

 

 

 

자신이 공부한 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이시험의 올바른 목적이다. 그러나 학생이면 누구나 이왕이면 자신의 실력보다 조금은 좋은 성과를 얻기를 바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학의 학점이 다음 학기 장학금과 취업에서의 점수 등 자신의 미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운이라도 따랐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시험기간에 빠지기 쉬운 유혹이 있으니 바로 컨닝이다. 시험이라는 제도를 인류가 시행하면서부터 시작되었을 컨닝은 적은 노력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나 또한 컨닝이 보내는 유혹의 손짓을 여러 번 느낄 때가 있었다) 또한 예전부터 대학가에는 컨닝이 너무나도 만연해있어서 컨닝을 하는 학생을 구경하는 것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컨닝이 대학문화의 일종이며 젊은 시절 한번씩은 해보는 낭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컨닝은 분명히 불법행위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고 남보다 쉽게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옳지 않은 행위다. 그러나 컨닝을 하는 학생도, 또는 하지 않는 학생도 컨닝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부당함에 대해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왜 컨닝 행위가 부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시험을 보면서 기회가 있으면 남의 답을 훔쳐보는 이유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실험 참여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컴퓨터로 수학 시험을 보게 했다. 그리고 첫 번째 A 그룹에게는 스페이스 바를 눌러야 답이 모니터에 나오게 했고 두 번째 B 그룹에게는 엔터키를 누르지 않아도 5초 내에 답이 저절로 모니터에 뜨게 했다. 과연 어느 그룹에서 컨닝 행위가 발생했을까? 연구결과 두 번째 B 그룹 참여자들이 컨닝을 더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B 그룹은 별도로 키 조작을 안 해도 답이 모니터에 나오기 때문에 자기는 부정 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더 쉽게 답을 볼 수 있었다. 즉, 이런 부도덕한 행동이 자신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 때 더 많이 답을 베꼈던 것이다.

 

 

 

 

 인간은 편익을 위해서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조르주 드 라 투르  『속임수 (사기 도박꾼)』 16세기경

 

 

 

사람들은 옳은 일 또는 그른 일과 마주쳤을 때 감정적인 갈등을 경험한다. 이 때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도덕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런데 종종 우리 사회에서는 정직하고 도덕적인 이미지를 지닌 사람이 과거에 저지른 부정행위에 들통이 나버리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만큼 이성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인간도 도덕과 부정행위 사이의 갈등 앞에서 쉽게 굴복하고마는 나약한 존재다. 이러한 뉴스를 접하면서도 사람들은 부정행위가 어떠한 행위에 들어가는 비용과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편익을 고려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합리적 범죄의 단순 모델'(Simple Model of Rational Crime, SMORC)라고 한다. 즉,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쉽게 저지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SMORC 모델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반박하는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시각장애인과 일반인을 태운 택시기사 실험을 주목해보자.

 

일부 비양심적인 택시기사들 중에는 손님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운전할 때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먼 길로 운전하는 일명 '뺑뺑 돌기'라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먼 길을 일부러 운행함으로써 손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요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비용편익 효과에 기반하는 부정적 행위에 대한 일반적인 요인이다. 그렇다면 만약에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손님이 택시를 탔다면 비양심적인 택시 기사는 일반인 고객보다 쉽게 '뺑뺑 돌기' 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SMORC 모델에 상반된 실험 결과가 나왔다. 택시기사들은 시각장애인보다 일반인을 태웠을 때 길을 우회하는 부정을 더 많이 저질렀던 것이다. 길을 돌아가도 인지하기 어려운 시각장애인 손님을 속였을 때 부정행위가 발각될 우려가 없고 일반인보다 속이기 편하다. 이러한 실혐 결과를 통해서 인간의 부정행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요인이 작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만 부정행위를 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정직을 추구한다던 당신도 거짓말이야~"

 

아빠는 8살짜리 딸이 짝꿍의 연필 한 자루를 훔쳤다는 내용의 편지를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다. 아빠는 불같이 화를 내며 2주 동안 학교에 갈 때 외에는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벌을 준다. 너무 화가 난 아빠는 벌을 주면서 아이에게 이렇게 묻는다.  "연필이 필요하면 얘기를 하지 그랬어? 아빠한테 말하면 되잖아. 그러면 아빠가 회사에서 연필 한 자루가 아니라 몇 다스는 가져다줄텐데 말이야."   (p 51)

 

 

같은 반 친구의 연필 한 자루를 훔치는 행위가 나쁜 짓이라는 건 알면서 회사 사무실에 있는 연필 한 다스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집으로 가져가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댄 애리얼리는 인간은 이득을 얻기 위해 사소한 부정을 저지르지만 자신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합리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능력은 도덕적인 이미지와 이기적인 욕망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발현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정직하고 올바른 인간으로 봐주길 바란다. (자아 동기부여, Ego motivation) 반대로 다른 사람을 속여서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재정적 동기부여, Financial motivation)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도덕 갈등의 경험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상반된 동기부여의 충돌로부터 비롯된다. 부정행위에 대한 죄의식의 결과를 두려워한다면 '도덕'이 승리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꼭 좋은 행위의 결과를 선택하는 건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사람들은 부정행위에 쉽게 끌리고 저지르게 된다. 부정행위로부터 얻게 되는 결과적 이익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가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자기합리화하게 된다. 즉, 자신은 부정행위를 하면서도 스스로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사소한 부정행위 앞에서 어떠한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아무리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도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

 

 

 

 

 착한 사람이 부정행위자로 돌변하는 것을 막는 게 어려운 일인가?

 아니면 부정행위자를 착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어려울까?

 

그가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실험 사례들은 아무리 정직한 인간이라도 부정행위의 욕망 앞에서 무너지게 되고 어떻게 작용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빈번이 저지르게 되는 부정행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댄 애리얼리는 도덕적 행위의 규범을 기준으로 삼아 공과 사적 행위를 스스로 규정지을 수 있는 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다만, 저자는 사람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바꾸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실토한다. 그렇지만 도덕적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기간의 훈련과 연습이 아니라 장기적인 측면으로 문화적 변화를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된 인간의 부정행위에 관한 재미난 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학교 내 화장실에서 주말마다 새 두루마리 휴지를 두고 가면 다음 주 월요일만 되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화장실 휴지는 공유물이므로 개인적인 용도로 가져가지 말라는 쪽지를 화장실 문에 붙여놨다. 이 쪽지를 붙이고 난 뒤부터 도난당한 화장실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정작 경고 문구가 담긴 쪽지를 붙이지 않은 다른 화장실에는 휴지가 사라지는 일이 여전했다. 저자는 '사라지는 두루마리 휴지 사건' 사례를 통해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 도덕적 규범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방안의 필요성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사례만 가지고는 거짓말, 부정행위를 쉽게 저지르면서도 그걸 또 쉽게 죄의식에 빠져 도덕적 인간이 되어버리는 인간의 단순한 면모를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다.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인간의 복잡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이 사회규범을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되면 스스로 도덕성 기준을 바꿔버리고 그의 행동을 자신의 모델로 삼게 된다. 모델이 저지른 부정행위 수위를 본인에게 허용되는 기준 범위로 생각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앞에서 소개한 컨닝 사례처럼 상대방이 저지른 부정행위를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묵인해버리고 자신도 똑같이 부정행위를 모방하게 된다. 이것이 부정행위의 전염성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최근에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 사건 현상과 결부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제안한 도덕적 규범 기준의 필요성이 꼭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행위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화장실 휴지 사건이 주는 교훈만으로도 현실적으로 부정행위의 수준을 줄이고, 도덕성을 개선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와 비슷한 일례로 동물원을 가 보 사람들이라면 겪어 보거나 목격하게 되는 사소한 부정행위로 들 수 있다.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쇠창살에 보면 '동물이 있는 곳으로 돌이나 이물질을 던지지 마세요, 동물이 다칠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다. 일부 동물원에서는 관람객이 먹는 스낵을 주지 말라는 경고도 종종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동물에게 돌을 던지게 되면 그것을 음식물로 착각하게 되어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게 된다. 심지어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돌덩어리는 동물들에게 상처를 입힐 우려가 있다. 그리고 동물들의 심리를 자극하여 공격 성향을 드러날 수도 있다. 동물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동물원을 구경하는 관람객 전체에게 크게 해를 입힐 수 있는 부정행위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간결한 문구도 뭉용지물이다. 동물들에게 돌을 던지는 철이 들지 못한 관람객들(특히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을 동물원에서 볼 수 있다. 이렇듯, 제 아무리 도덕 규범을 강조해도 인간의 부정행위를 자발적으로 또한 제도적으로 억제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 부정을 쉽게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기합리화'라는 눈가리개를 씌운 이상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부정행위를 조금씩 저지르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착한 사람들이 사소한 부정행위 하나라도 행하지 못하게 막는 것도 어려우며 부정행위에 익숙한 비양심적인 사람을 도덕적으로 교화시키는 것 또한 어렵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착한 독자'들에게는 댄 애리얼리의 주장이 여간 수긍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자신이 몰래 저지른 부정행위의 원인들을 증명하고 있는 진실 앞에서 부끄러워할지도. 우리 사회에 발생하고 있는 부정행위들을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지만 댄 애리얼리가 주장하는 도덕적 규범의 중요성은 온갖 부정으로 판치며 그것을 묵인하는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언론에 난 정치인 등의 부정, 경제인들의 비리를 보면서 분노한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은 이런 저런 작은 부정과 작은 비리를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글의 마무리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격언으로 맺을려고 한다. 부정행위를 가볍게 생각하는 독자라면 대문호가 남긴 격언을 자신만의 '도덕적 규범'의 기준으로 삼아 되새겨볼 것을 권한다.  

 

 

 선을 행함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악을 억제하려면 보다 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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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9-18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책감을 못느끼고 저지르는 부정이 있고, 죄인줄 알기 때문에 합리화하려는 심리도 있을 겁니다.이래저래 보통 사람들이 저지르는 조그만 죄가 많지요.그래서 자기는 자기를 냉정하게 심판할 수 없어요.이런 책을 읽으면 왠지 도둑질하다 들킨 기분이죠.

cyrus 2012-09-19 23:12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저도 읽으면서 느낌이 이상했어요. 내용을 읽다보면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찝찝하더라고요 ^^;;

감은빛 2012-10-19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밀히 따지고 들면 죄를 안 짓고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러니 기독교의 '원죄론'이 먹히는 것이겠죠.
그렇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인간은 실수 할 수 밖에 없는 동물이 아닌가 싶어요.
사소한 잘못들은 순간의 실수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cyrus 2012-10-20 14: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리고 잘못을 저질러 놓고선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지도 잘 모르기도 하죠 ^^
 
멀티플라이어 - 전 세계 글로벌 리더 150명을 20년간 탐구한 연구 보고서 멀티플라이어
리즈 와이즈먼 외 지음, 최정인 옮김, 고영건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작년에 국내에 개봉한 영화 『Money Ball』의 주인공 빌리 빈의 대사다. 『Money Ball』은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의 만년 꼴찌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돌풍과 최악의 구단을 최고의 구단으로 변신시킨 빌리 빈 단장에 대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매 시즌마다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야만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재정 악화로 인해서 팀의 주축을 양키스나 보스턴 등 부자구단에 내주게 되는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오클랜드의 단장 빌리 빈은 경제학을 전공한 분석관을 부단장으로 영입하며 구단의 체질개선에 나서지만 "야구는 직관과 경험"이라고 주장하는 스카우터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하지만 빌리 빈은 자신의 확신에 따라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데이터 야구'를 펼쳤다. 그것이 바로 훗날 '머니볼 이론'(Money Ball Theory)이라고 불리게 되는 전략이었다. '머니볼 이론'은 경기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해 오직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재적소에 선수들을 배치해 승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볼넷을 하도 잘 골라 볼넷의 영웅이라 불리는 선수, 수비를 두려워하는 1루수지만 출루율은 높은 선수, 지구력은 떨어지지만 한방은 있는 노장 선수들을 활용해 출루율을 최대한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는 등 오로지 선수들의 성적 데이터를 분석해 선수들의 장점을 찾아냈고 팀을 꾸렸다. 착실하게 팀을 재정비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메이저리그 최초로 20연승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빌리 빈이 꼴찌 구단을 최고의 구단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각 선수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와 이를 분석해내는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러한 각 선수들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알아야 하고 장점과 단점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선수의 진짜 가치를 발견한다는 것은 선수들에 대한 애정과 지대한 관심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빌리 빈은 라커룸을 돌아다니며 선수들을 격려하지만, 자신의 뜻에 따라주지 못하는 선수는 가차 없이 잘라낸다. 빌리 빈의 리더십은 문제 있는 학생을 모두 퇴학시키고 뜻에 공감하는 교사들과 학교를 뜯어고치는 '고독한 스승'에 가깝다. 결국 머니볼 이론의 핵심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저비용 고효율'에 있으며, '반드시 이기자'가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최대치를 만들게끔 하는 것이다.  

고정관념에 동요하지 않고 무능해보이는 선수들에게 숨어 있는 능력을 끌어올려 과감하게 경기에 출전시킨 빌리 빈의 경우, '멀티플라이어'(Mltiplier)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멀티플라이어'란 리더십 전문가 리즈 와이즈먼과 그렉 맥커운이 공동으로 저술한 동명의 책에서 나온 용어로 상대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팀과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는 리더를 뜻한다. 스포츠계에서도 또 다른 멀티플라이어를 꼽으라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돌풍을 이끈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들 수도 있다. 히딩크의 리더십은 월드컵이 폐막되고 난 뒤부터 이미 조명받기 시작했는데 스타 플레이어의 천재성에 의지하지 않고, 집단의 천재성을 만드는 그의 리더십은 노력하는 멀티플라이어 리더의 전형이다.

 

멀티플라이어는 재능자석, 해방자, 도전자, 토론 주최자, 투자자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재능 있는 사람을 모아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재능자석) 그러기 위해서는 재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해방자) 자유롭게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도전자)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일하는 사람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게 만들어(투자자) 토론을 통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다.(토론 주최자)

 

멀티플라이어가 되기 위한 원칙과 비결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다 '멀티플라이어'가 될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양한 성격과 재능을 조직원들로 구성된 하나의 집단 속에서 리더는 그 무리 속에서 자신이 똑똑하다는 인식을 쉽게 느낄 수 있겠지만 조직원 전체 모두 똑똑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실 이 지구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 내 모든 조직의 리더들은 멀티플라이어의 반대인 디미셔너(Diminisher)에 가깝다. 디미셔너는 직원들의 재능을 사용하고 직원들에게 명령하며 스스로 결정하고 직원들을 통제한다. 멀티플라이어와 마찬가지로 분명 뛰어난 역량을 지니고 있다. 다만 조직 내부로부터 훌륭한 성과를 나오게 만드는 원동력인 조화로운 집단 지성을 끄집어내고 확산시키는 일에는 어려워한다. 이들은 조직원의 지성과 재능이 고정된 것이라서 바뀌지 않는다고 믿으며(착화된 의식구조)에는 개인의 잠재된 능력과 가치를 낭비하도록 만듦으로써 그들의 업무수행 능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게 만든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리더 대다수는 자신이 조직을 나쁘게 만드는 디미셔너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직원들에게 명령하고 통제하는 상부하달 유형의 리더십이 여전히 조직 사회에서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만큼 멀티플라이어 리더가 된다는 게 책 속 내용처럼 쉬운 게 아니다. 특히나 상부하달식 관계 구조의 조직이 많은 우리나라만큼은.   

 

그러나 빌리 빈과 히딩크가 디미셔너의 리더쉽에 익숙한 팀을 조직원들이 함께 업무에 참여하여 성과를 얻는 멀티플레이(Multiplayer)가 가능한 팀으로 만들었듯이 디미셔너도 멀티플라이어로 변신할 수 있다. 일단 독불장군식으로 조직원을 몰아 붙여서는 안 되며 조직원들에게 성과를 창출할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그 성과 창출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기대 이익을 강조하여 지혜와 능력을 자발적으로 배양시킬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위주의적 자세를 멀리하고 각 조직원들 간의 긴밀한 의사소통을 자주함으로써 경청과 공감의 자세 또한 필요하다. 『멀티플라이어』의 저자 리즈 와이즈먼은 디미셔너가 멀티플라이어로 변신하여 성공한다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디 멀티플라이어가 갑자기 하늘 아래 뚝 떨어졌는가?  이 책에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멀티플라이어 리더들의 사례를 본다면 조직을 이끄는 데 있어서 겪은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노하우로 만들었다. 키스는 글로 배울 수 있다지만 '리더십의 역량'은 글로만 배운다해서 갑자기 얻어지는 건 아니다. 운동선수들은 오직 승리라는 성과의 증거를 경험하기 위해서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듯이 디미셔너 리더가 멀리플라이어 리더가 되기 위한 자발적인 참여와 적용을 무시한다면 영영 제대로 된 성과 하나 얻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이 이끌고 있는 조직을 부진의 늪으로 빠뜨리게 만드는 'X맨'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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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2-09-05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언제나 와도 좋은 글 많이 쓰고 계시는군요 ^^ 이런 책이 저에게도 필요한데 흠..내용 좋네요 ㅋ 후후 저도 얼렁 글이나 하나 올려야 되는데 이러고 있네요 가을입니다. 시루스님 학교 잘 다니고 계시죠 ㅋ ^^

cyrus 2012-09-10 08:50   좋아요 0 | URL
진짜 오랜만이네요, 루쉰님~~!! 잘 지내고계시죠? 요즘 저도 개강인지라 잠수타기 일부 직전인데
먼저 반가운 인사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씩 근황이라도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루쉰님도
행복하고 좋은 일 있기를 바라요 ^^

2012-09-05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0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