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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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닝 행위를 하는 이유

 

 

 

 

 

 

 

자신이 공부한 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이시험의 올바른 목적이다. 그러나 학생이면 누구나 이왕이면 자신의 실력보다 조금은 좋은 성과를 얻기를 바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학의 학점이 다음 학기 장학금과 취업에서의 점수 등 자신의 미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운이라도 따랐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시험기간에 빠지기 쉬운 유혹이 있으니 바로 컨닝이다. 시험이라는 제도를 인류가 시행하면서부터 시작되었을 컨닝은 적은 노력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나 또한 컨닝이 보내는 유혹의 손짓을 여러 번 느낄 때가 있었다) 또한 예전부터 대학가에는 컨닝이 너무나도 만연해있어서 컨닝을 하는 학생을 구경하는 것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컨닝이 대학문화의 일종이며 젊은 시절 한번씩은 해보는 낭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컨닝은 분명히 불법행위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고 남보다 쉽게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옳지 않은 행위다. 그러나 컨닝을 하는 학생도, 또는 하지 않는 학생도 컨닝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부당함에 대해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왜 컨닝 행위가 부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시험을 보면서 기회가 있으면 남의 답을 훔쳐보는 이유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실험 참여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컴퓨터로 수학 시험을 보게 했다. 그리고 첫 번째 A 그룹에게는 스페이스 바를 눌러야 답이 모니터에 나오게 했고 두 번째 B 그룹에게는 엔터키를 누르지 않아도 5초 내에 답이 저절로 모니터에 뜨게 했다. 과연 어느 그룹에서 컨닝 행위가 발생했을까? 연구결과 두 번째 B 그룹 참여자들이 컨닝을 더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B 그룹은 별도로 키 조작을 안 해도 답이 모니터에 나오기 때문에 자기는 부정 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더 쉽게 답을 볼 수 있었다. 즉, 이런 부도덕한 행동이 자신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 때 더 많이 답을 베꼈던 것이다.

 

 

 

 

 인간은 편익을 위해서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조르주 드 라 투르  『속임수 (사기 도박꾼)』 16세기경

 

 

 

사람들은 옳은 일 또는 그른 일과 마주쳤을 때 감정적인 갈등을 경험한다. 이 때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도덕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런데 종종 우리 사회에서는 정직하고 도덕적인 이미지를 지닌 사람이 과거에 저지른 부정행위에 들통이 나버리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만큼 이성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인간도 도덕과 부정행위 사이의 갈등 앞에서 쉽게 굴복하고마는 나약한 존재다. 이러한 뉴스를 접하면서도 사람들은 부정행위가 어떠한 행위에 들어가는 비용과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편익을 고려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합리적 범죄의 단순 모델'(Simple Model of Rational Crime, SMORC)라고 한다. 즉,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쉽게 저지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SMORC 모델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반박하는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시각장애인과 일반인을 태운 택시기사 실험을 주목해보자.

 

일부 비양심적인 택시기사들 중에는 손님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운전할 때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먼 길로 운전하는 일명 '뺑뺑 돌기'라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먼 길을 일부러 운행함으로써 손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요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비용편익 효과에 기반하는 부정적 행위에 대한 일반적인 요인이다. 그렇다면 만약에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손님이 택시를 탔다면 비양심적인 택시 기사는 일반인 고객보다 쉽게 '뺑뺑 돌기' 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SMORC 모델에 상반된 실험 결과가 나왔다. 택시기사들은 시각장애인보다 일반인을 태웠을 때 길을 우회하는 부정을 더 많이 저질렀던 것이다. 길을 돌아가도 인지하기 어려운 시각장애인 손님을 속였을 때 부정행위가 발각될 우려가 없고 일반인보다 속이기 편하다. 이러한 실혐 결과를 통해서 인간의 부정행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요인이 작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만 부정행위를 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정직을 추구한다던 당신도 거짓말이야~"

 

아빠는 8살짜리 딸이 짝꿍의 연필 한 자루를 훔쳤다는 내용의 편지를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다. 아빠는 불같이 화를 내며 2주 동안 학교에 갈 때 외에는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벌을 준다. 너무 화가 난 아빠는 벌을 주면서 아이에게 이렇게 묻는다.  "연필이 필요하면 얘기를 하지 그랬어? 아빠한테 말하면 되잖아. 그러면 아빠가 회사에서 연필 한 자루가 아니라 몇 다스는 가져다줄텐데 말이야."   (p 51)

 

 

같은 반 친구의 연필 한 자루를 훔치는 행위가 나쁜 짓이라는 건 알면서 회사 사무실에 있는 연필 한 다스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집으로 가져가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댄 애리얼리는 인간은 이득을 얻기 위해 사소한 부정을 저지르지만 자신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합리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능력은 도덕적인 이미지와 이기적인 욕망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발현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정직하고 올바른 인간으로 봐주길 바란다. (자아 동기부여, Ego motivation) 반대로 다른 사람을 속여서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재정적 동기부여, Financial motivation)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도덕 갈등의 경험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상반된 동기부여의 충돌로부터 비롯된다. 부정행위에 대한 죄의식의 결과를 두려워한다면 '도덕'이 승리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꼭 좋은 행위의 결과를 선택하는 건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사람들은 부정행위에 쉽게 끌리고 저지르게 된다. 부정행위로부터 얻게 되는 결과적 이익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가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자기합리화하게 된다. 즉, 자신은 부정행위를 하면서도 스스로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사소한 부정행위 앞에서 어떠한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아무리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도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

 

 

 

 

 착한 사람이 부정행위자로 돌변하는 것을 막는 게 어려운 일인가?

 아니면 부정행위자를 착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어려울까?

 

그가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실험 사례들은 아무리 정직한 인간이라도 부정행위의 욕망 앞에서 무너지게 되고 어떻게 작용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빈번이 저지르게 되는 부정행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댄 애리얼리는 도덕적 행위의 규범을 기준으로 삼아 공과 사적 행위를 스스로 규정지을 수 있는 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다만, 저자는 사람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바꾸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실토한다. 그렇지만 도덕적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기간의 훈련과 연습이 아니라 장기적인 측면으로 문화적 변화를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된 인간의 부정행위에 관한 재미난 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학교 내 화장실에서 주말마다 새 두루마리 휴지를 두고 가면 다음 주 월요일만 되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화장실 휴지는 공유물이므로 개인적인 용도로 가져가지 말라는 쪽지를 화장실 문에 붙여놨다. 이 쪽지를 붙이고 난 뒤부터 도난당한 화장실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정작 경고 문구가 담긴 쪽지를 붙이지 않은 다른 화장실에는 휴지가 사라지는 일이 여전했다. 저자는 '사라지는 두루마리 휴지 사건' 사례를 통해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 도덕적 규범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방안의 필요성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사례만 가지고는 거짓말, 부정행위를 쉽게 저지르면서도 그걸 또 쉽게 죄의식에 빠져 도덕적 인간이 되어버리는 인간의 단순한 면모를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다.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인간의 복잡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이 사회규범을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되면 스스로 도덕성 기준을 바꿔버리고 그의 행동을 자신의 모델로 삼게 된다. 모델이 저지른 부정행위 수위를 본인에게 허용되는 기준 범위로 생각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앞에서 소개한 컨닝 사례처럼 상대방이 저지른 부정행위를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묵인해버리고 자신도 똑같이 부정행위를 모방하게 된다. 이것이 부정행위의 전염성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최근에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 사건 현상과 결부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제안한 도덕적 규범 기준의 필요성이 꼭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행위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화장실 휴지 사건이 주는 교훈만으로도 현실적으로 부정행위의 수준을 줄이고, 도덕성을 개선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와 비슷한 일례로 동물원을 가 보 사람들이라면 겪어 보거나 목격하게 되는 사소한 부정행위로 들 수 있다.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쇠창살에 보면 '동물이 있는 곳으로 돌이나 이물질을 던지지 마세요, 동물이 다칠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다. 일부 동물원에서는 관람객이 먹는 스낵을 주지 말라는 경고도 종종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동물에게 돌을 던지게 되면 그것을 음식물로 착각하게 되어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게 된다. 심지어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돌덩어리는 동물들에게 상처를 입힐 우려가 있다. 그리고 동물들의 심리를 자극하여 공격 성향을 드러날 수도 있다. 동물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동물원을 구경하는 관람객 전체에게 크게 해를 입힐 수 있는 부정행위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간결한 문구도 뭉용지물이다. 동물들에게 돌을 던지는 철이 들지 못한 관람객들(특히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을 동물원에서 볼 수 있다. 이렇듯, 제 아무리 도덕 규범을 강조해도 인간의 부정행위를 자발적으로 또한 제도적으로 억제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 부정을 쉽게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기합리화'라는 눈가리개를 씌운 이상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부정행위를 조금씩 저지르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착한 사람들이 사소한 부정행위 하나라도 행하지 못하게 막는 것도 어려우며 부정행위에 익숙한 비양심적인 사람을 도덕적으로 교화시키는 것 또한 어렵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착한 독자'들에게는 댄 애리얼리의 주장이 여간 수긍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자신이 몰래 저지른 부정행위의 원인들을 증명하고 있는 진실 앞에서 부끄러워할지도. 우리 사회에 발생하고 있는 부정행위들을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지만 댄 애리얼리가 주장하는 도덕적 규범의 중요성은 온갖 부정으로 판치며 그것을 묵인하는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언론에 난 정치인 등의 부정, 경제인들의 비리를 보면서 분노한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은 이런 저런 작은 부정과 작은 비리를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글의 마무리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격언으로 맺을려고 한다. 부정행위를 가볍게 생각하는 독자라면 대문호가 남긴 격언을 자신만의 '도덕적 규범'의 기준으로 삼아 되새겨볼 것을 권한다.  

 

 

 선을 행함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악을 억제하려면 보다 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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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9-18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책감을 못느끼고 저지르는 부정이 있고, 죄인줄 알기 때문에 합리화하려는 심리도 있을 겁니다.이래저래 보통 사람들이 저지르는 조그만 죄가 많지요.그래서 자기는 자기를 냉정하게 심판할 수 없어요.이런 책을 읽으면 왠지 도둑질하다 들킨 기분이죠.

cyrus 2012-09-19 23:12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저도 읽으면서 느낌이 이상했어요. 내용을 읽다보면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찝찝하더라고요 ^^;;

감은빛 2012-10-19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밀히 따지고 들면 죄를 안 짓고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러니 기독교의 '원죄론'이 먹히는 것이겠죠.
그렇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인간은 실수 할 수 밖에 없는 동물이 아닌가 싶어요.
사소한 잘못들은 순간의 실수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cyrus 2012-10-20 14: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리고 잘못을 저질러 놓고선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지도 잘 모르기도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