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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 박수밀 / 돌베개

 

요즘 여름방학을 맞아 천천히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인문고전을 번역, 출간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올재 클래식스 일곱 번째 시리즈로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퇴계 이황의 14대손이자 한국학 분야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한문학자 故 이가원 선생이 번역했다. 올재 클래식스에만 볼 수 있는 저렴한 가격(한 권당 2900원) 덕분에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여름방학에 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연암을 쫓아 18세기의 청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중이다.

 

올해 독서계 전반기를 보면 연암에 대한 평가가 다시 한 번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에서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과 연암을 엮었다. 같으면서 다를듯한 두 사람의 사유 세계를 비교하고 이들이 살았던 18세기 조선의 지성사를 조명하고 있다. 신작에 힘입어 출간 10주년을 맞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도 개정판의 옷으로 단장한 채 나왔다.

 

연암은 다산과 더불어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 정신을 대표하는 학자지만 자신의 진가를 더욱 부각시켜주는 것이 바로 문체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조선 최고의 문장가이기도 하다. 기행문 <열하일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속에 수록된 <허생전><호질> 그리고 <양반전>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한문소설들이다. 몇 년 전에 다산의 방대한 학문적 업적을 통해 그의 공부법이 집중 조명되었다면 올해의 연암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이 공개된다.

 

연암은 멋있는 표현에 있지 않고, 작가의 내면세계가 저절로 드러나는 글, 대상의 평소 자연스런 모습을 잡아내는 글이 좋다고 말한다. 지금도 글 쓰는데 있어서 곱씹어 볼만한 중요한 내용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글을 쓰기 위해서 이해하면서 읽는 게 중요하다. 연암이 글을 쓰면서 취하는 사유적인 접근 방법과 태도야말로 이 책의 핵심적인 고갱이다.

 

 

 

 

 

 

 

 

 

 

 

 

 

 

 

 

 

 

 *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 존 카치오포 외 / 민음사

 

존 카치오포 박사는 ‘사회신경과학’을 창시한 학자 중 한 명으로, 주로 인간관계가 감정과 건강, 그리고 사회적 인지 능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연구해 왔다. 특히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를 통해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뇌과학, 신경과학, 심리학 등을 활용하셔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과학의 정밀한 눈으로 깊은 내면에 숨어있는 외로움의 근원을 들춰내고 있다. 과학으로 증명된 지식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잊을만 하면 우리를 괴롭히는 외로움의 망령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 안토니오 알타리바 / 이미지프레임

 

2010년 스페인 국립 만화대상, 제28회 바르셀로나 살롱 델 코믹 3관왕, 제33회 디아리오 드 아비소스 리얼리즘 만화대상 최고각본상, 조르나다스 드 아빌레스 비평가상 최고 작가상과 최우수 작품상, 2009년 깔라모 엑스트라오디너리 프라이즈, 2011년 프랑스 ACBD 비평대상 최종후보작, 2012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본선 경쟁작.

 

단 한 권의 만화책은 권위 있는 만화 관련 시상식에 화려한 이력을 남겼다. 그런데 이 책이 한국에서 청소년 유해매체 도서로 결정받게 될 예정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최근 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는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에 남녀 간의 성행위 장면 묘사를 음란성의 사유를 들어 19세 미만 미성년자들이 읽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만화 단행본에 야한 장면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음란성’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 측에서는 성행위 장면 묘사는 이야기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전체 맥락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간행의 결정에 정면 반박했다.

 

아직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책표지에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빨간 색 표시가 붙어있지 않다. 만화책 한 권을 둘러싼 출판사와 간윤 간의 대립을 끝까지 지켜봐야 할 듯하다. 네이버로 만화책을 검색하면 성인인증을 거쳐야 책의 내용에 관한 정보가 있는 검색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19세 미만’의 독자가 봐서는 안 될, 정말 그렇게 ‘음란한’ 만화라면 포르노의 세계를 마음껏 드나든 성인이라면 읽어보고 싶은 게 당연지사. 과연 이 만화가 청소년들의 정신에 해로운지 한 번 읽어보고 직접 판단하겠다. 아, 혹시나 해서 강조하지만 이 만화는 ‘교양만화’다. 알라딘 [인문/사회/과학/예술] 신간평가단이 선정할 수 있는 도서 분야에 교양만화가 포함되어 있다. 만화는 스페인의 역사적 상처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 내전 속에 살아가는 인간 군상과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데도 이 책이 청소년 유해매체 도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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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만화 교양지 Sync 공식 페이스북에서 공유한 사진과 글이다.

잊힐 만하면 나오는 간윤의 ‘이현령 비현령’식 결정에 또 한 번 실소하게 된다.

간윤의 논리대로 남녀 간의 성행위 장면을 문제 삼아 음란성이 있다고 본다면 최근에 영화 흥행에 맞춰 복간한 <설국열차>도 청소년 유해매체 도서로 선정되어야 한다. <설국열차>에서도 성행위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청소년 유해매체'라니요.

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에서 보내온 공문에 따르면 그러하답니다.

 

작품의 맥락을 보고 하는 얘긴지 의심스럽습니다. 노출 장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주인공 안토니오의 날것 그대로의 역사입니다. 이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고 독자가 안토니오를 더 깊이 이해하게끔 배치된 장면들이, 음란하다는 게 '간윤'의 결정입니다.

 

스페인에서 상 많이 받은 문학성 있는 작품이란 건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국의 눈밝은 독자분들이 저희의 증인입니다. 독자분들이 지금껏 약 30건 이상의 리뷰를 써주셨지만, 이 작품이 야하다거나 음란해서 걱정된다고 단 한 줄이라도 언급하신 분은 없었습니다.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가면 그런 생각이 들 수가 없지 않나요?

 

* 저희는 '간윤'의 결정에 반대하며 재심의를 청구할 계획입니다. 보도자료도 준비하고 만화계 및 표현의 자유 관련 전문가의 자문과 지원도 얻을 겁니다.

 

* 그리고 '청소년유해매체'에는 19금 스티커를 붙여야 하는데, 저희는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재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시품절 시킬 것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재심의 결과가 여전히 '청소년 유해매체'라면 절판까지도 감안하고 있습니다.

 

* 아직 효력 발생일(공식적으로 '청소년유해매체'로 유통되어야 하는 시점)을 명기한 관보 고시는 올라오지 않았는데요, 보통 고시일로부터 효력발생일 사이의 기간은 2주입니다. 따라서 8월 9일 경이 효력발생일이 될 예정입니다. 아마 일시품절은 그때부터가 될 것 같습니다.

 

* '좋아요'는 응원이고 '공유'는 연대입니다. 좋아요와 공유로 이 상황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미 읽으신 분은 다 아실 거예요. 지금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당한 일이 얼마나 부당한지.. 작가 알타리바 씨가 요양원으로부터 당한 그 무자비한 관료주의를, 한국에서 다시 당하게 되는 이 일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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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8-03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에 또 생각이 나는군요...때론 간윤이 세상의 모든 것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cyrus 2013-08-05 14:47   좋아요 0 | URL
쿠르베 논란.. 잊고 있었네요. 그 때도 어이가 없던지.. 그래도 간윤 덕분에 쿠르베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었죠 ㅎㅎㅎ

수이 2013-08-03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뭐가 유해하고 유익한지 아무것도 모르나봐- 간윤은 -_-

cyrus 2013-08-05 14:48   좋아요 0 | URL
전체는 안 보고 일부만 보려고하는거 같아요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슈퍼 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의 제언
샘 피지개티 지음, 이경남 옮김 / 알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진보 잡지 '먼슬리 리뷰'를 창간한 사회주의자 리오 휴버먼가 쓴 『The Truth about Socialism』(우리나라는 2011년에 '휴버먼의 자본론'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는 원래 '사회주의의 ABC'라고 지으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거창하고 어려운 담론이 아니라 쉬운 말과 사례로 풀어낸 '자본주의의 사회주의에 관한 입문서'란 뜻이었다. 결국 책의 제목은 '사회주의에 관한 진실'로 결정되었는데 사회주의의 참뜻을 알리면서 내용의 큰 줄기는 자본주의 비판이다.

 

노동자에게는 악순환일 수밖에 없는 자본가의 생산수단 소유와 더 많은 이윤 추구, 더 많은 자본축적의 과정을 여러 문헌과 증언으로 분석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해인 1929년 일반 대중은 매우 가난했다. 브루킹스 연구소가 그해 펴낸 <미국의 소비역량> 중 '1929년 미국의 소득분포' 표를 보면, 미국 전체 가구의 42%인 1200만 가구가 국민소득의 13%를 차지했다. 전체 가구의 0.1%인 상위 3만 6000가구의 소득도 13%였다. 휴버먼은 기계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노동자의 참상을 전하면서 "노동자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비용을 구성하는 한 항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 등에 글을 기고하는 언론인이자 노동전문기자로 유명한 저자 샘 피지개티가 쓴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읽으면서 2년 전에 읽은 휴버먼의 책이 떠올렸다. 두 사람 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글을 썼다는 점 그리고 부의 독점을 막기 위한 사회적인 제도의 도입을 찬성하는데 기영한 사회주의의 활동 모습을 소개하는 점이 비슷하다. 샘 피지개티는 부자들이 많은 돈을 벌어야 이른바 '낙수효과'로 인해 경제 전체가 좋아진다고 말하는 신자유주의자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나 여기서 샘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휴버먼처럼 자본주의의 속성을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부자들의 탐욕과 이에 따른 금권정치가 만들어 낸 지배논리를 문제 삼고 있다.

 

미국은 암울했던 1928년 대공황 시기를 극복하고 1950년대부터 경제 사정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 시기야말로 미국 중산층의 황금기였다고 말한다. 돈 때문에 맞벌이를 해도 안 할 정도로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중산층이 많았던 것이다. 1928년 대공황 이전 최상위 1%의 슈퍼리치들은 전체 국민소득의 4분의 1을 거머쥐고 있었지만 1950년대에는 이들의 몫이 10분의 1로 줄어들 정도였다. 미국이 대공황의 터널을 탈출하여 중산층의 등장과 함께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제도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부자들에게 적용하는 누진 소득세 제도였다. 전쟁과 대공황을 겪으며 여론이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이를 제도화시켰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인 중 어느 누구도 세금을 내고 난 후 한 해 2만5000달러 이상의 순소득을 가져선 안 된다"고 못 박을 정도였다. 게다가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었던 시절 세금 최고구간의 소득세율은 90%를 넘어갔다. 오늘날 부자들에게 90% 세율을 적용하면 당장이라도 경제가 무너질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중산층은 그 어느 시기보다 안락한 삶을 누렸다.

 

중산층 황금기는 지금으로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진보적인 대안이 등장했다. 부자증세의 도입뿐만 아니라 강한 노조가 기업의 부를 소유주와 노동자가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었다. '디트로이트 조약' 체결은 노동자의 힘이 중산층의 범위를 빠르게 확대시킨다는 것을 보여줬다. 요즘 정가에서 회자되는 독일식 사민주의 역시 강한 노조-강한 경영진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렇듯 반세기 전에 미국 국민은 서로 부를 공유했고 그런 분배 속에서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행복했던 번영의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가 부과한 소득세의 짐을 떠안고 있었던 부자들의 반란이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소득세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오랜 진통과 갈등이 있었는데 그 반대편에는 금권정치에 익숙한 소위 1%의 부자들이 항상 서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정계에 자신들의 입지를 넓혀줄 수 있는 정치인들과 결탁해서 자신들에게 부과하는 소득세율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움츠려들었던 부자들의 어깨가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한때 90%였던 소득세율은 점점 떨어지게 되고 보수당이 집권하게 되면서 그 사이 부는 특권을 누리는 계층의 주머니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에 미국 중산층 가족은 더욱 비틀거리게 됐다. 가난한 가정도 계속 늘어나게 되었다. 불평등 체제는 21세기를 들어선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 9·11 테러, 전쟁, 글로벌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굳어졌다.

 

책은 좋은 사회가 되려면 가난한 사람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고 부자들의 생활수준은 낮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양식 있는 부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의식있는 엘리트들이 고소득에 부과되는 높은 세금이 국가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해주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공감대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부자들의 저항을 누그러뜨릴 수 있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누진세 도입을 주장한다. 재개 리더들이 생산과 번영을 위해 원만한 노사관계를 원하는 시대가 다시 돌아올 것을 그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현실에 타협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의식있는 엘리트들'이 나올 수 있을지 의구심이 앞선다. 사실 샘이 말하고 있는 '연대와 공유의 경제'는 2년 전에 우리나라 사회에 화두가 된 적이 있었던 '자본주의 4.0'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가 깊이 새겨볼 점이 있다면 부의 독점을 무너뜨려 평등하고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어 낸 역사적 과정이다. 부자증세와 강한 노조는 그러나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부의 독점이 만들어 낸 불평등한 경제 구조에 대한 문제 인식 및 공감이 없다면 지금의 미국처럼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슈퍼 리치'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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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 - 열화당미술문고 210
김진송 / 열화당 / 1996년 3월
평점 :
절판


 

 

 ♣ '이O대'라는 글자로만 남은 화가

 

 

 

 

 

 

이쾌대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1948~1949년

 

 

혹시 이쾌대라는 이름의 화가를 아는가. 올해가 이쾌대 탄생 100주년이다. 이쾌대는 이인성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힌다. ‘월북작가’로 낙인찍혀 이름 없는 화가로 남아 있었다. ‘쾌’(快) 자가 빠진 채 ‘이O대’로만 알려졌다. 1991년 서울 신세계미술관에서 ‘월북작가 이쾌대’전이 열리면서 그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보기 드문 대작, 그리고 근대미술에서 찾아보기 힘든 군상으로 당시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의 고향인 대구, 그 어디에서도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없었고 올해 문화계 계획에도 그와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같은 지역 출신의 또 다른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이 작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구시에서 이를 기념한 전시, 학술대회를 대대적으로 연 것에 비하면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도 위안을 삼아본다면 지난 달 27일에 대구미술관에서 이쾌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끝이다. 하지만 대구시 그리고 시민들은 화가 이쾌대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다. 타 시도들이 저마다 연관 있는 예술가들을 문화 브랜드로 발굴하고, 스토리텔링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태도다. 한마디로 대구의 작가를 스타로 만드는 붐 조성에 실패한 것이다. 이쾌대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한 어느 미술 관계자는 “수창초교를 함께 다닌 이인성, 이쾌대를 잘 엮으면 대구의 훌륭한 브랜드가 될 텐데 아쉽다”고 했다.

 

 

 

 ♣ 혼돈의 시대에 낀 천재 화가

 

이쾌대는 1913년 1월 16일 칠곡군 지천면에서 태어났다. 대지주였던 아버지 이경옥은 창원 군수를 지냈던 인물로, 일찍이 신식문물을 받아들였다. 이쾌대는 1928년 수창보통학교를 졸업했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면서 서울 유학길에 올랐다. 담임선생으로 화가 장발을 만나면서 미술을 권유받았다. 당시 장발은 “이쾌대만큼 데생력이 뛰어난 학생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함께 서울 생활을 했던 12세 위의 형 이여성은 당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던 진보적 지식인으로, 미술에 남달리 조예가 깊었다. 그리고 대구에서 사회주의 관련 활동을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독립운동에도 관여했다. 독립군 군자금을 마련하려다 체포돼 3년간 복역하기도 했고 언론과 미술 분야에 몸담는 등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이쾌대와 그의 아내 유갑봉 여사

 

 

 

이쾌대는 1932년 한동네에 살던 유갑봉과 연애 끝에 결혼했는데, 특히 아내를 모델로 해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아내 유갑봉은 그가 북으로 간 후 소중하게 그림을 보관해왔다. 유갑봉은 포목점을 하면서 네 자녀를 키웠고, 198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회의 반공 분위기 아래서 그림들을 벽장 속에 감춰두고 지켜왔다. 물론 물질적 유혹도 잘 이겨냈다. 이런 유갑봉 여사 덕분에 오늘날 이쾌대의 작품을 고스란히 우리가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쾌대는 1934년 일본 제국미술학교에서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했는데, 특히 인물화에 관심이 많았다. 다양한 활동을 하던 이쾌대는 1941년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결성했다. 모든 미술 단체가 일제의 침략 전쟁에 참여하기를 독려하고 있었으나 이쾌대가 중심이 된 신미술가협회는 지식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치열하게 자신의 새로운 양식을 개척하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던 이쾌대는 후학을 양성하는 데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48년 성북회화연구소를 열고 미술학도들을 가르쳤다.

 

해방 후 안정을 찾는 듯했지만 사회는 그와 상관없이 혼란스럽게 흘러갔다. 그의 형 이여성은 근로인민당 대표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면서 월북했고, 그때 남한은 정부수립 이후 좌익 소탕에 나서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1949년 초 이승만 정부는 이쾌대를 국민보도연맹에 강제로 가입시켰다. 미술가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반공 포스터전에 참가시켜 사상 전향을 강요했다. 6.25전쟁은 다시 이쾌대를 혼란에 빠뜨렸다.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미처 피란하지 못했던 이쾌대는 북한군의 점령하에서 다시 정치적 전향을 강요받았다.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실 때문에 자수를 강요당하고 조선미술동맹에 재가입해야 했던 것. 이들은 스탈린과 김일성 초상을 그려야 했다. 얼마 후,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다시 유엔군의 수중에 들어갈 무렵, 이들은 다시 혹독한 정치 보복이 닥쳐올 것을 직감했다. 미술동맹원들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북으로 갔다. 저자 김진송의 표현을 빌리자면 둘 다 신념에 의한 선택으로 보기에는 역사의 격량이 너무 거세었다.

 

서울이 탈환되기 일주일 전 이쾌대는 서울을 빠져나왔고, 국군에게 체포됐다. 그는 수용소에 수감됐고, 그 이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가 좌익으로 몰렸다는 사실과 1953년 휴전이 되자 북을 선택해 갔다는 사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북으로 올라간 이쾌대의 소식은 몇몇 자료에 등장하지만 그다지 활발하게 활동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1987년 북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몇 몇 연구가들은 지금도 북한에 남아 있는 이쾌대의 흔적을 발굴하가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사료가 여전히 부족한 상태인데다 북한 미술계에서도 이쾌대에 관한 언급을 쉬쉬하는 편이다. 그야말로 남북 양쪽에서 잊혀지고 있었던 것이다.

 

 

 

 ♣ 구체적인 의미가 드러나지 않은 독특함, 이쾌대만의 독창성

 

 

 

 

 

이쾌대 「무희의 휴식」1938년

 

 

이쾌대의 작품은 대개 인물풍속화다. 후기로 갈수록 당대 현실 속의 인물 즉 특정 상황 속의 인물을 묘사했지만 등단 초기만 해도 전통 속의 인물을 선호했다.「무희의 휴식」은 화사하기 그지없는 전통 복장의 젊은 무희의 좌상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그러나 그는 전통에만 한정 짓는 제작에만 머무르지 않고 진일보한 표현방식을 위해 실험했다.

 

 

 

 

 

이쾌대  「운명」 1938년

 

 

애매한 상황 속의 인물의 배치는 점차적으로 뚜렷한 시공간을 알리면서 존재의 이유를 확실하게 들어내든데 중점을 맞추고 있다. 그 같은 연장선상에서 30년대의 야심작으로 「운명」과 「상황」을 꼽게 한다. 「운명」은 좁은 방안에 누워 있는 남성 주위로 슬픔에 젖어 있는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작품 「운명」은 구체적 사건이나 장소 혹은 인물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화면에 나타난 사항만 가지고 볼 때, 가장과 같은 남성의 절망적 순간과 이를 슬픈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특정 상황을 묘사했다는 점이다. 비극의 현장, 하지만 작품 속에는 그 구체성을 알리지 않고 있다.

 

 

 

 

이쾌대  「상황」 1938년

 

 

 

다만 제작년도인 1938년은 한 해 앞서 중일전쟁의 발발로 일제에 의해 본격적으로 전쟁에 돌입한 시기라는 점이다. 「상황」은 「운명」보다 적극적인 스토리텔링의 경우에 속하는 작품이다. 여타의 작품과 달리 서사적 구도는 무엇인가 엄청난 격동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으나 그것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화면의 중앙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무희가 춤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바닥에 주저앉아 슬픔을 표하고 있는 젊은 여성은 상반신이 벗겨져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방바닥에는 깨진 그릇 파편이 뒹굴고 있어 뭔가 격렬한 상황이 금방 지나간 것 같다. 어떤 상황, 분명히 어떤 구체적 사건을 도해화한 것 같으나 현재로서는 자세히 알 수 없는 이색 형식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현대미술에서 가장 난해한 그림 중 하나일 것이다.

 

 

 

 

 

이쾌대  「2인 초상」 1939년

 

 

다만 「상황」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화면 중앙의 젊은 여성이다. 그의 자세는 춤추는 모습으로 ‘특정 상황’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선식 전통복장, 암흑기 일제시대에 이러한 옷차림의 당당한 제시는 작가 의식의 단면을 확인하게 한다. 이쾌대는 화필을 들고 자신이 화가임을 천명한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같은 자화상도 더러 그렸지만 인상적인 작품은 「2인 초상」이다. 이 작품은 부부초상으로 부인을 전면으로 내세워 강건한 존재로 부각시킨 반면 화가 자신은 부인 뒤에서 하나의 실루엣으로 약화돼 있다. 부인의 그림자, 이색적인 부부초상화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페미니즘 측면에서 부상시킬 수 있다. 여성 강조의 부부초상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부부초상 작품도 사례가 없어 의미부여를 각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쾌대 최고의 대작, '군상' 시리즈

 

 

 

 

 

이쾌대  「군상 Ⅳ」 1948년

 

 

이쾌대의 그림은 잔잔한 감동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시선을 압도하는 벅찬 감동은 강렬하다. 예컨대 해방공간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스펙터클한 ‘군상’ 시리즈(‘군상-1 해방고지’, ‘군상 Ⅱ’, ‘군상 Ⅲ’, ‘군상 Ⅳ’)가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도 35명의 남녀가 나체로 한 덩어리가 된 ‘군상 Ⅳ’는 광복의 기쁨과 건국의 열기로 달아오른 격동기를 조형한 절창이다.

 

무엇보다도 해부학에 근거한 근육질의 인물들이 압권이다. 웅장하다. 그런데 이들은 비현실적인 관념 속의 인물이다. 단적인 예가 있다. 각 인물들의 포즈가 작위적이란 점이다.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처럼 포즈가 과장되어 있다. ‘칼레의 시민’의 작위적인 포즈가, 칼레를 구하기 위해 나선 시민들의 결연한 비장미를 극대화 해주듯이, ‘군상 Ⅳ’의 포즈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해방공간의 낙관적인 전망과 열정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비탄에 잠겼다가 서서히 일어서는 인간군상은 마치 빛을 향해 자라는 ‘향일성 식물’ 같다. 이 식물의 ‘머리’는 그림의 왼쪽에 놓여 있는 셈인데, 이 지점에 선 인물들의 눈동자가 유난히 빛난다. 이는 좌절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희망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은 구성이 독특하다. 보편적인 시선의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보통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볼 때, 사람들의 시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 위에서 아래로 이동한다. 그런데 ‘군상Ⅳ’는 이와 반대다. 인물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서서히 일어서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불편을 감수하며 그림을 ‘읽는’ 수고를 치러야 한다. 그림의 무게중심은 왼쪽에 있다.

 

김진송은 이런 동세를 좌절에서 희망으로, 무질서에서 질서로, 혼란에서 안정으로 향해 가는 과정으로 읽었다. 역사의식을 지닌 작가가 해방 후의 혼란한 현실을 극복해야 하며 또 극복 가능하다는 의지를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만약에 이런 동세를 고려하지 않고 보면 어떻게 될까? 감상이 불편해진다. 일반적인 시선의 방향을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마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힘겹다. 인물들의 시선과 마주치며 오른쪽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보면 물살의 흐름을 타듯이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서양화에 전통적인 조형방식을 접목한 것이다.

 

 

 

 ♣ 분단 대립의 희생양, 이쾌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이쾌대는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며 “서구적인 지성과 동양적인 감성을 융화”(김용준)시킨 역동적인 작품세계를 일궈갔다. 그 중에서도 ‘군상 Ⅳ’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해방공간에서 발견한 우리 민족의 희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하나의 ‘조형적 사상’이다. 서로 뒤엉킨 인물들의 역동적인 포즈와 풍부한 표정은 가슴 벅찬 ‘볼거리’를 제공하며, 노루꼬리만큼이나 짧았던 해방공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역사적인 문맥에서 이탈하여, 작품 자체만 감상해도 심심하지는 않다. 그만큼 볼거리가 쏠쏠하다. 이러한 훌륭한 대작을 대구 시민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알지 못했고 그림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점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남한에서는 월북화가라 해서 금기인물이었고, 북한에서는 김일성파가 아니라서 역시 금기인물이었던 이쾌대, 그는 분단시대의 대표적 희생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20세기 전반부 한국미술사에서 가장 뚜렷한 예술세계를 이룩했다는 점은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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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3-07-3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분야에서 이런 이유로 잊혀져버린 이름들이 제법 있을 것 같아요.
남에서는 월북했다고, 북에서는 숙청당했다고 양쪽 모두에서 금기가 되어버린 사람들이요.

문외한이지만, 딱 보기에도 그림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특히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은 참 독특한 느낌이네요.
덕분에 좋은 그림 잘 보았습니다.

cyrus 2013-08-02 00:03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은빛님이 선물한 <현대사 아리랑>이 생각났어요. 최근에 납북 문학가들이 재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하지만 여전히 남북한 양쪽에서 외면받거나 아직까지 빛을 보지 못한 예술가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이쾌대는 우리나라 현대미술에서 가장 독창적인 재능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외면받았죠.
 
기생충 제국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의 세계를 탐험하다
칼 짐머 지음, 이석인 옮김 / 궁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 우리 곁에 있는 기생충

 

그리스에서 기생(parasitos)이란 단어는 '음식의 곁'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인들은 이 단어를 처음엔 사원의 제사를 돕는 제관'을 지칭할 때 사용했다. 나중에는 귀족들에게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 주거나 자잘한 일을 하면서 밥을 얻어먹는 '식객'을 부를 때도 썼다. 하지만 당시 그리스인들은 생물학적인 기생 현상을 알고 있었다. 돼지의 혓바닥에 살면서 우박처럼 딱딱한 포낭을 만드는 생명체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사전적 의미의 기생충은 다른 동물(숙주)의 몸에서 영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벌레이다. 그래서 일하지 않고 남에게 빌붙어 사는 사람을 '인간 기생충'이라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 학교에서 단체로 회충약을 먹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때 그 시절을 TV 영상으로만 본 나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니다. 그들이 기억하는 기생충은 작년에 영화로 개봉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던 ‘연가시’일 것이다. 물론 영화처럼 사람 잡는 변종 연가시는 존재하지 않지만. 하지만 기생충은 점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굳이 숫자로 따져보자면, 14억 명 이상이 장 속에 뱀처럼 생긴 회충을 지니고 있고, 13억 명 정도가 피를 빠는 구충을, 그리고 10억 명이 편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출간한 서민 교수의 <서민의 기생충 열전> 덕분에 다시 한 번 기생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작년에 영화 때문에 기생충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부터 비롯된 호기심의 시작으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면 이번에는 확실히 다르다. 기생충의 생태 과정을 제대로 알고 싶어 하는 반응이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생충이 대중 과학의 관심 대상으로 등장하고 부각받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다. 그 때 나는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예비 수험생이었다. 마침 나온 기생충 관련 책이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이언스’ 등에 기고하는 과학 칼럼니스트인 칼 짐머가 쓴 <기생충 제국>이었다. 당시 이 책을 완독하지는 못했는데 마침 서민 교수가 쓴 책을 읽어보기 전에 잠시 세월의 흐름 속에 잊고 있었던 짐머의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 은밀하게 신비하게, 기생충이 살아가는 법

 

책 표지는 확대한 기생충의 얼굴 사진이 박혀 있다. 표지와 어울리는 부제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의 세계를 탐험하다’ 떡 하니 자신을 바라보는듯한 기생충의 모습에 이 책을 선뜻 고르기가 쉽지 않은 독자가 있을 거라 본다. 곤충 사진을 싫어하거나 일종의 공포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생충을 둘러싼 ‘미지의 세계’는 위험하다기보다 오히려 신비하고 경이롭다. 괴기스러운 생김새와 달리 그들은 섬세하다. 기생충은 숙주의 생식능력을 없애기도 하고, 정신세계를 조절할 수도 있다. 2~3㎝짜리 흡충은 우리의 복잡한 면역계를 조롱하여 자신을 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최종 숙주를 위해 중간 숙주를 조종하는 것은 기본이다. 촌충에 감염된 물고기는 두려움이 없어져 수면 가까이 올라가 물새에게 ‘날 잡 수슈’하고 다닌다. 물론 촌충의 목적은 물새다. 기생충에게 몸을 빌려준 송사리는 멀쩡한 송사리에 비해 새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이 30배나 높다. 물새가 ‘병든 송사리’를 선호하도록 하는데도 어떤 강력한 힘이 발휘된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가지고 있다는 톡소포자충은 가장 성공한 기생충이다. 임산부나 에이즈환자가 아니라면, 대개 해롭지 않다. 이 유능한 기생충은 원래 고양이가 최종 숙주인데 쥐의 몸 안에서 뇌를 조작, 쥐를 고양이 쫓는 ‘자살특공대’로 만든다. 심리학자들은 톡소포자충으로 인해 인간 숙주의 인격도 바뀌는 것으로 본단다. 남자는 사회의 도덕적 규범을 지키려는 의지가 약해지고 여자는 밖으로 나돌기 좋아하고 인정이 넘친다는 거다. 하기야 촌충의 경우, 4억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동안 지구는 공룡의 소멸 등 4차례의 대량멸종을 겪었지만 촌충은 살아남았다. 바퀴벌레의 영원한 동지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끈끈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 ‘생태계의 파수꾼’ 기생충

 

칼 짐머의 주장은 기생충이 생명의 진화에 '절대적 기여'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생태계의 엑스트라 기생충에게 ‘생태계의 파수꾼’이라는 새 역할을 부여한다. 기생충이 숙주와 경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숙주와 기생충 모두 진화한다는 것. 그 사이 먹이 사슬은 정교해지고 지구 생태계는 탄력을 유지한다.

 

따지고 보면 둘의 관계가 빼앗기고 착취하는 일방통행만은 아니다. 상생과 보완의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몇몇 기생충은 숙주의 면역체계를 보호한다. 아프리카 빅토리아 호수의 세차원들은 주혈흡충증에 자주 감염되는데 흡충은 흡충과 에이즈에 동시에 감염된 사람들보다 흡충에만 감염된 깨끗한 숙주에 더 많이 알을 낳는 것으로 조사됐다. 숙주가 면역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흡충이 나서 도와야 하는 이유다. 한번 주혈흡충에 감염된 사람은 새로 흡충에 감염되기 어렵다는 연구도 있다. 선배 흡충이 숙주의 면역계를 도와 나중에 도착하는 흡충을 공격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숙주 내 흡충의 숫자를 조절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만 생존에 유리한 한도 내에서이긴 하지만 기생충은 다양한 방식으로 숙주를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 기생충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

 

징그러워 얌체 같아서 외면해오던 기생충. 하지만 태양과 물만으로 자생하는 식물이 아닌 다음에야 지구 위 어느 생물이 기생충의 혐의를 벗을 수 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거대한 기생충인지 모른다. 저자는 인간이야말로 지구라는 숙주에 붙어사는 고등 기생충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목적에 맞춰 생명체의 생리를 전혀 새롭게 바꿨고, 마침내 자제력을 잃고 스스로 파멸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경고와 함께. '자제할 줄 모르는 기생충은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자신의 숙주마저도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만다'는 기생충 사회의 평범한 진리를 인간은 곧잘 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기생충보다 나은 존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인간이 제대로 된 기생충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훌륭한 선배들에게 한참 더 배워야 한다.

 

그는 “우리가 기생충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위로한다. “인류는 처음부터 기생충이었지만 지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명체로 자리해 모든 변화를 이끌 역량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먹이 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앉은 기생충을 아는 건 그래서 지구를 알고 우리를 아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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