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슈퍼 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의 제언
샘 피지개티 지음, 이경남 옮김 / 알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진보 잡지 '먼슬리 리뷰'를 창간한 사회주의자 리오 휴버먼가 쓴 『The Truth about Socialism』(우리나라는 2011년에 '휴버먼의 자본론'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는 원래 '사회주의의 ABC'라고 지으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거창하고 어려운 담론이 아니라 쉬운 말과 사례로 풀어낸 '자본주의의 사회주의에 관한 입문서'란 뜻이었다. 결국 책의 제목은 '사회주의에 관한 진실'로 결정되었는데 사회주의의 참뜻을 알리면서 내용의 큰 줄기는 자본주의 비판이다.

 

노동자에게는 악순환일 수밖에 없는 자본가의 생산수단 소유와 더 많은 이윤 추구, 더 많은 자본축적의 과정을 여러 문헌과 증언으로 분석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해인 1929년 일반 대중은 매우 가난했다. 브루킹스 연구소가 그해 펴낸 <미국의 소비역량> 중 '1929년 미국의 소득분포' 표를 보면, 미국 전체 가구의 42%인 1200만 가구가 국민소득의 13%를 차지했다. 전체 가구의 0.1%인 상위 3만 6000가구의 소득도 13%였다. 휴버먼은 기계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노동자의 참상을 전하면서 "노동자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비용을 구성하는 한 항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 등에 글을 기고하는 언론인이자 노동전문기자로 유명한 저자 샘 피지개티가 쓴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읽으면서 2년 전에 읽은 휴버먼의 책이 떠올렸다. 두 사람 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글을 썼다는 점 그리고 부의 독점을 막기 위한 사회적인 제도의 도입을 찬성하는데 기영한 사회주의의 활동 모습을 소개하는 점이 비슷하다. 샘 피지개티는 부자들이 많은 돈을 벌어야 이른바 '낙수효과'로 인해 경제 전체가 좋아진다고 말하는 신자유주의자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나 여기서 샘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휴버먼처럼 자본주의의 속성을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부자들의 탐욕과 이에 따른 금권정치가 만들어 낸 지배논리를 문제 삼고 있다.

 

미국은 암울했던 1928년 대공황 시기를 극복하고 1950년대부터 경제 사정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 시기야말로 미국 중산층의 황금기였다고 말한다. 돈 때문에 맞벌이를 해도 안 할 정도로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중산층이 많았던 것이다. 1928년 대공황 이전 최상위 1%의 슈퍼리치들은 전체 국민소득의 4분의 1을 거머쥐고 있었지만 1950년대에는 이들의 몫이 10분의 1로 줄어들 정도였다. 미국이 대공황의 터널을 탈출하여 중산층의 등장과 함께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제도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부자들에게 적용하는 누진 소득세 제도였다. 전쟁과 대공황을 겪으며 여론이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이를 제도화시켰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인 중 어느 누구도 세금을 내고 난 후 한 해 2만5000달러 이상의 순소득을 가져선 안 된다"고 못 박을 정도였다. 게다가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었던 시절 세금 최고구간의 소득세율은 90%를 넘어갔다. 오늘날 부자들에게 90% 세율을 적용하면 당장이라도 경제가 무너질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중산층은 그 어느 시기보다 안락한 삶을 누렸다.

 

중산층 황금기는 지금으로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진보적인 대안이 등장했다. 부자증세의 도입뿐만 아니라 강한 노조가 기업의 부를 소유주와 노동자가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었다. '디트로이트 조약' 체결은 노동자의 힘이 중산층의 범위를 빠르게 확대시킨다는 것을 보여줬다. 요즘 정가에서 회자되는 독일식 사민주의 역시 강한 노조-강한 경영진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렇듯 반세기 전에 미국 국민은 서로 부를 공유했고 그런 분배 속에서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행복했던 번영의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가 부과한 소득세의 짐을 떠안고 있었던 부자들의 반란이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소득세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오랜 진통과 갈등이 있었는데 그 반대편에는 금권정치에 익숙한 소위 1%의 부자들이 항상 서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정계에 자신들의 입지를 넓혀줄 수 있는 정치인들과 결탁해서 자신들에게 부과하는 소득세율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움츠려들었던 부자들의 어깨가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한때 90%였던 소득세율은 점점 떨어지게 되고 보수당이 집권하게 되면서 그 사이 부는 특권을 누리는 계층의 주머니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에 미국 중산층 가족은 더욱 비틀거리게 됐다. 가난한 가정도 계속 늘어나게 되었다. 불평등 체제는 21세기를 들어선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 9·11 테러, 전쟁, 글로벌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굳어졌다.

 

책은 좋은 사회가 되려면 가난한 사람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고 부자들의 생활수준은 낮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양식 있는 부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의식있는 엘리트들이 고소득에 부과되는 높은 세금이 국가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해주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공감대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부자들의 저항을 누그러뜨릴 수 있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누진세 도입을 주장한다. 재개 리더들이 생산과 번영을 위해 원만한 노사관계를 원하는 시대가 다시 돌아올 것을 그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현실에 타협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의식있는 엘리트들'이 나올 수 있을지 의구심이 앞선다. 사실 샘이 말하고 있는 '연대와 공유의 경제'는 2년 전에 우리나라 사회에 화두가 된 적이 있었던 '자본주의 4.0'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가 깊이 새겨볼 점이 있다면 부의 독점을 무너뜨려 평등하고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어 낸 역사적 과정이다. 부자증세와 강한 노조는 그러나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부의 독점이 만들어 낸 불평등한 경제 구조에 대한 문제 인식 및 공감이 없다면 지금의 미국처럼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슈퍼 리치'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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