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의 사생활 - 블랙홀을 둘러싼 사소하고 논쟁적인 역사
마샤 바투시액 지음, 이충호 옮김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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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주는 과연 무한히 넓을까. 또 우주는 영원히 계속될까, 아니면 시작과 끝이 있을까. 이러한 의문 속에 수많은 세월 동안 우주를 이해하는 데 많은 발전이 있었다. 가장 분명한 것은, 우주는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우주에는 다양한 모양과 크기를 가진 무수히 많은 은하계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은하는 우주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다.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은 모든 은하가 각자의 은하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허블은 ‘팽창하는 우주’를 제시하여 오랫동안 지배해온 ‘고정된 상태의 우주’ 관념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발생과 진화를 연구하는 데 매달렸고, 그 결과 빅뱅(big bang) 이론 등이 정립됐으며 지금은 우주의 신비를 한 가지 이론으로 설명하기 위한 통일이론 연구가 진행 중이다. 빅뱅은 우주가 팽창하기 직전의 상태, 즉 시작점이다. 태초의 우주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에너지는 지금도 우주를 끊임없이 팽창시키고 있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일반 상대성 이론을 이용하여 블랙홀(black hole)의 실체를 알아내려고 했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초의 우주는 큰 폭발과 함께 풍선처럼 팽창해가고 있는 상태다. 블랙홀의 폭발은 또 하나의 작은 우주의 시작, 즉 ‘미니 빅뱅’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호킹의 연구는 우주의 시작인 빅뱅과 별의 종말인 블랙홀이 같은 현상임을 밝혀낸 것이다.

 

강한 중력은 공간을 변형시킨다. 엄청난 중력의 블랙홀은 공간에 깊은 구멍을 만들고, 빛조차도 깊이 파인 공간으로 빨아들인다. 상대성 이론이 증명된 것도 빛이 강한 중력의 태양을 지나가면서 휘는 현상을 목격한 덕분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Einstein)은 생전에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부르던 블랙홀의 실체를 부정했다. 상대성 이론은 양자역학, 우주론 등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 이론이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이 본격적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한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상대성이론은 양자역학에 밀려나 찬밥 신세가 되었다. 블랙홀의 실체가 규명되기 전까지 물리학자들은 상대성 이론과 우주를 연관시키는 연구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도대체 블랙홀이 뭔가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블랙홀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며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입에도 오르내리는 블랙홀은 그 인지도에 비교해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 우선 블랙홀이라고 하면 ‘우주에 뚫려 있는 거대한 구멍’ 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또 블랙홀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상상이나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상공간으로 여기기도 한다. 블랙홀 자체를 볼 수 없어도 블랙홀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블랙홀은 사람들의 과학 상식에 휑하게 뚫려 있는 구멍 같은 이름으로 남아 있다. 《블랙홀의 사생활》은 과학 상식의 큰 구멍 하나를 메워주는 아주 좋은 책이다.

 

블랙홀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주의 본질을 한 자락쯤은 볼 수 있을 것이다. 《블랙홀의 사생활》은 바로 이 점에서 출발한다. 너무나 흔해서 대충 알고만 있었던 블랙홀의 의미를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로 들려준다. 그래서 저자는 이름만 그럴싸한 개념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상식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역사를 끌어들인다. 저자를 따라 사소한 과학사의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블랙홀을 밝혀내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친 과학자들의 노력과 고통에 공감하게 된다.

 

블랙홀은 1783년 존 미첼(John Mitchell)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중력장을 가진 별을 상상하면서 탄생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별이 죽고 사라지는 ‘부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별이 죽어 블랙홀이 탄생한다는 기초적인 상식은 찬드라세카르(Chandrasekhar)오펜하이머(Oppenheimer) 덕분에 밝혀졌다. 그러나 물리학계와 천문학계에 ‘짬밥’이 높은 아인슈타인과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 일식을 관측하여 일반 상대성이론을 증명한 영국의 천문학자)은 각각 오펜하이머, 찬드라세카르의 주장을 무시하거나 반박했다. 일반 상대성이론이 재평가 받고 나서야 블랙홀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은 거기까지 내다보지 못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블랙홀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 수많은 과학자를 만나고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된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질투하고, 상대방을 배신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과학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최신 과학 문헌을 참고하지 않는 보수적인 학자였고, 양자역학의 등장에 자신의 상대성이론이 ‘구닥다리’로 취급받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천문학계의 대사제’로 군림한 에딩턴은 백색왜성의 붕괴(블랙홀의 발생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현상)를 설명한 찬드라세카르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에딩턴은 찬드라세카르의 연구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줬지만, 찬드라세카르의 연구논문이 공개되자마자 맹렬히 그를 공격했다. 에딩턴의 ‘우디르급 태세 전환’은 젊은 과학자의 마음에 상처를 준 ‘최악의 배신’이었다.

 

《블랙홀의 사생활》은 간단한 상상력 하나가 가장 복잡한 우주 현상으로 설명되는 과정을 기나긴 발견의 역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주과학 역사 200년을 아우르는 블랙홀의 전기(傳記)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블랙홀의 ‘무(無)’가 비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우주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블랙홀의 발견은 ‘무’에 대한 인식 전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블랙홀은 우주의 비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窓)이다. 우리는 지금 확실히 우주의 창을 열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또다시 우주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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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5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5 14:30   좋아요 1 | URL
공상과학영화 속 블랙홀은 별과 빛을 빨아들이는 ‘우주의 무덤’으로 나옵니다. 이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블랙홀의 모습이죠. ‘있음’을 ‘없음’으로 만들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기묘한 현상. 그래서 우주의 비밀에 접근하려는 과학자들은 블랙홀의 존재에 경외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

sslmo 2018-01-1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관심있어서 누군가의 리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cyrus님의 리뷰로 만나보게 되네요.^^
새해 첫 댓글인것 같습니다.
올 한해도 좋은 글들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열심히 쫒아 읽겠습니다.
꾸벅~(__)

cyrus 2018-01-15 14:36   좋아요 0 | URL
새해에 양철나무꾼님의 글을 봤는데, 글이 리뷰라서 새해 인사말을 남기지 않았어요. 양철나무꾼님이 페이퍼 형식의 글을 쓰신다면 그때 새해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엔 나무꾼님이 먼저 하셨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변함없이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제 글은 열심히 읽지 않아도 됩니다. 제 글보다는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으셔야 합니다. ^^
 
지식의 표정 -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길을 탐색하는 열두 걸음
전병근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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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missive’순종적인’, ‘고분고분한을 뜻하는 단어다. 그렇다면 마그리트(Magritte)의 그림 제목을 직역하면 순종적인 독자(The Submissive Reader)’로 풀이할 수 있겠다. 마그리트의 그림에는 상식이 무너지고, 이성을 혼란에 빠뜨리는 모순이 있다. 마그리트는 그림을 통해 일상적으로 익숙한 인식의 틀을 바꾸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당연한 현상이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아주 가변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그림 속의 사물들을 엉뚱하게 배치하면서 관람객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마주한 관람객들은 순종적인 독자처럼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순종적인 독자는 도대체 무얼 봤기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아마도 저 책 속에 독자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세계가 펼쳐져 있으리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독자는 책에 헤어 나오지 못한다. ‘순종적인 독자는 마치 자석처럼 책에 이끌려 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진다전병근의 지식의 표정(마음산책, 2017)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지시하는 책이다. 이 책 속에 있는 열두 명의 인터뷰를 눈으로 읽노라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그들의 다양한 모습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열두 명의 지식인들은 문학, 과학, 정치, 역사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 그들이 긴 세월을 내다보면서 뚜벅뚜벅 걷고 있는 지식의 길과 인간의 의미가 달라질 인공지능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지만 읽고 쓰는 삶을 실천하는 모습은 다 똑같다.

 

대만의 문화비평가 탕누어(唐諾)는 독서를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는 지속적인 경험이라고 말한다. 독자는 미지의 세계에 곤혹스러워한다. 그러나 훌륭한 독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색을 좋아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것이다. 독서를 즐기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새로운 책을 접할 때 생기는 곤혹감을 잊게 해준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서로 상충하는 지식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는 데 필요한 덕목으로 중용과 겸허를 꼽는다. 스웨덴 복지정책을 국내에 소개한 최연혁 교수는 정치교육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정치인을 육성하는 정치 전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새로운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독서, 논쟁이 불가피한 지식의 세계 속에 균형을 놓치지 않는 것 그리고 사회 발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치적 역량 강화는 성장하는 인간이라면 갖추어 할 기본적 자세들이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가 피부에 와 닿지 않은 사람들은 낙관적으로 장담하기 어려운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막역한 걱정에 매달린 채 살아간다면 기술 발전을 통한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역사가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인류학자 이상희, 진화생물학자 장대익은 공통으로 시대적 변화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역량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변화는 역사의 흐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자신들도 시대 흐름에 맞는 변화를 보여야 함은 물론이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태도를 지속해서 유지해야 한다. 과거를 넘어서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김명남은 번역, 이기호는 소설, 이충렬은 전기 문학에 투신하는 읽고 쓰는 인간이다. 이기호는 소설 읽기가 나 이외의 다른 사람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드는 정신적 훈련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몰입하는 인간이다. 한문학자 강명관, 문학평론가 유종호, 신경과학자 이대열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상이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류가 원해서 변화되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변화를 익숙한 것의 상실이라는 부정적 선입견을 품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 곤혹을 느끼지 않으려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신의 가치관을 열어두고 외부의 자극과 여러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두려움보다는 변화를 당당히 받아들이고 인식과 시각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을 때 변화를 수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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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3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5 12:43   좋아요 0 | URL
사람들은 돈벌이가 되는 신종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어요. 비트 코인 열풍만 봐도 알 수 있어요. ^^;;

페크pek0501 2018-01-13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1인이에요. 시대를 따라가기가 버겁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예전에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도 그랬고 스마트폰을 처음 샀을 때도 그랬어요.
두려움보다는 변화를 당당히 받아들여야 할 텐데...

cyrus 2018-01-15 12:48   좋아요 0 | URL
솔직히 저는 뉴스를 보고서야 비트 코인 열풍을 알았어요. 새로운 유행을 빨리 알아내기가 쉽지 않아요. ^^;;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메리 커샛(Mary Cassatt)은 인상주의 미술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여성화가다. 모리조는 마네(Manet)의 제자였다. 그녀는 최초의 인상주의 회화 전시회에 참여한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커샛은 미국 출신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로 건너온 커샛은 드가(De Gas)와 친하게 지내면서 인상주의 미술을 수용했다. 드가와의 만남을 계기로 커샛은 다섯 차례나 인상주의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다. 두 사람의 작품 대부분은 여성의 개인적 일상생활을 담고 있으며 모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다.

 

 

 

 

 

 

 

 

 

 

 

 

 

 

 

 

 

 

* 제프리 마이어스 《인상주의자 연인들》 (마음산책, 2007)

*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이라 디아나 마초니 《여성예술가》 (해냄, 2003)

 

 

 

 

모리조와 커셋은 남성 중심의 화단 속에서 전업 화가로 살아 왔다. 그 당시에는 공립 미술학교에 여성들이 입학할 수도 없었을 만큼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했다. 그렇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평론가와 동료 화가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모리조는 아버지의 격려 속에서 그림을 배울 수 있었지만, 커샛은 자신을 에워싸는 비웃음과 편견 속에서 어렵사리 미술의 세계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커샛도 모리조처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가족들은 그녀가 화가의 길을 걷는 것을 반대했다. 커샛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미술 공부를 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누드 드로잉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교수들은 여학생들의 모사 작업에만 관심을 가졌다. 미국 미술학교의 제한적인 수업에 불만을 품은 커샛은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파리로 이주했다.

 

모리조와 커샛은 페미니즘 미술사가들이 재조명한 화가들이다. 그녀들은 생전에 화가로서의 인정을 받았지만, 사후에 잊히고 말았다.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한 여성 화가였음에도 그녀들은 오랫동안 비주류 화가로 분류되었다. 남성 중심의 화단은 두 사람의 작품을 ‘과소평가’했고, 기록의 권력을 가진 남성 미술사가들은 그녀들을 화단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주변적 인물’ 정도로 간주했다.

 

그런데 19, 20세기 여성 미술가의 업적을 연구한 시모나 바르톨레나는 모리조와 커샛을 ‘남성화가 및 평론가들에게 외면당한 피해자’로 바라보는 관점에 이견을 드러냈다.

 

 

 

 

 

 

 

 

 

 

 

 

 

 

 

* 시모나 바르톨레나 《인상주의 화가의 삶과 그림》 (마로니에북스, 2009)

 

 

아마도 여성에 대한 예의 때문인지도 몰라도 인상주의자들에게 냉혹했던 비평가들조차 여류화가들에게 신랄하게 혹평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여류화가들이 피해자였다는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벗어난다. (72쪽)

 

 

 

이 문장의 원문을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번역문이 페미니즘 미술사가의 작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생전에 과소평가를 받았거나 사후에 잊힌 여성화가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것이 페미니즘 미술사가들의 일차적인 활동 목표이다. 남성 미술가들에게 차별받고 외면당한 여성 미술가의 피해의식을 보상받기 위해 여성 미술가들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 평론가들이 ‘여성에 대한 예의’ 때문에 모리조와 카셋에게 혹평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것 또한 여성 화가를 과소평가하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여성 화가는 혹독한 비난을 감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남성 평론가들의 생각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이다. 모리조와 커셋의 작품을 칭찬한 남성 평론가들(살롱 심사위원)은 그녀들의 실력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들은 모리조와 커셋을 ‘여성화가’가 아닌 ‘남성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여성’으로 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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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1-1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특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cyrus 2018-01-12 13:09   좋아요 1 | URL
그들이 웃고, 싸우고, 질투하면서 지내는 모습을 살펴보면 마치 드라마 한 편 보는 것 같습니다. ^^
 

 

 

지난달부터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의 삶과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인상주의 미술을 다시 공부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의 큰 흐름을 톺아보면서 ‘주제 서평’을 쓸 계획을 세웠다.

 

 

 

 

 

 

 

 

 

 

 

 

 

 

 

 

 

 

* 아르망 푸로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 (글항아리, 2009)

 

 

 

이 글이 서양미술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주제 서평이 되지 싶다. 이 글의 주제이자 주인공은 베르트 모리조다. 오늘날 인상주의는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미술사조 중 하나가 되었다.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태동과 흐름을 친절하게 설명한 책들이 많다. 또 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한 책들도 있다. 그런데 이 책 중에 베르트 모리조를 비중 있게 다룬 것이 별로 없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출간된 모든 인상주의 미술 관련 책 중에 베르트 모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선별했다.

 

 

 

 

 

 

 

 

 

 

 

 

 

 

 

 

 

 

 

 

 

 

 

 

 

 

 

 

 

 

 

* 김광우 《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미술문화, 2017)

* 루이 피에라르 《이해받지 못한 사람, 마네》 (글항아리, 2009)

* 스테파노 추피 《마네 : 전통에 반기를 든 근대의 화가》 (마로니에북스, 2009)

* 자비에르 질 네레 《에두아르 마네》 (마로니에북스, 2006)

* 프랑수아즈 카생 《마네 : 이미지가 그리는 진실》 (시공사, 1998)

 

 

 

마네(Manet)와 모리조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인상주의 미술을 소개하는 책이나 글을 보게 되면 마네의 이름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비록 마네는 인상주의 화가 그룹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모리조 역시 마네의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 화가 중 한 명이다. 마네를 빼놓고 인상주의 미술에 접근한다는 것은 근대미술의 시작점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리조를 만나기 전에 인상주의 화가들이 왜 자신들과 거리를 둔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치켜세우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 [절판] 줄리 마네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 (다빈치, 2002)

 

 

 

모리조는 마네의 친동생 외젠 마네(Eugene Manet)와 결혼하여 외동딸 줄리 마네(Julie-Manet)를 낳았다. 줄리 마네는 어렸을 때부터 인상주의 화가와 문인들 사이에서 자랐다. 그녀를 따뜻하게 보살펴준 사람들이 드가(Edgar De Gas), 르누아르(Renoir),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Mallarme) 등이다. 특히 말라르메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리의 대부(代父)가 되어 그녀를 친자식같이 보살폈다.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은 1893년부터 1899년까지 기록된 줄리의 일기를 선별하여 편집한 책이다. 아버지 외젠이 세상을 떠난 지 일 년 후에 줄리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삼촌인 마네는 줄리가 일기를 쓰기 시작하기 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열다섯 살의 줄리가 쓴 일기를 보면 어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심리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모리조 역시 1895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줄리는 어머니의 부재에서 느껴지는 슬픈 감정들을 일기에 꾹꾹 담았다.

 

의외로 이 책의 독자 평점이 낮다. 물론, 나도 이 책에 ‘별 세 개’를 주었다. 수수하고 담백한 문체가 이 책의 특징이다. 자질구레한 일상을 기록한 내용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리조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전여전(母傳女傳)’이라고 줄리도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했고, 모리조와 르누아르에게 그림을 배운 적이 있다. 줄리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어머니가 남긴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느낀 감정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이 책에 모리조의 그림 도판이 많아서 좋다. 모리조의 그림 대부분은 외젠 마네와 줄리를 묘사한 것들이 많다. 줄리의 모습을 담은 모리조의 그림들을 보면 가슴 뭉클하다. 유일한 혈육인 딸을 향한 어머니의 애틋한 시선이 느껴진다.

 

 

 

 

 

 

 

 

 

 

 

 

 

 

 

 

 

* 제프리 마이어스 《인상주의자 연인들》 (마음산책, 2007)

 

 

 

《인상주의 연인들》 ‘마네-모리조’, ‘드가-메리 커샛’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은 마네와 모리조를 단순히 ‘스승과 제자’ 관계로 보지 않는다. 저자의 주장이 과감하다. 제프리 마이어스(Jeffrey Meyers)는 모리조가 언니 에드마에게 보낸 편지와 마네가 그린 초상화를 근거로 모리조가 마네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랑했다고 주장한다.

 

 

 

 

 

 

마네의 화실에 드나들었던 두 명의 여성이 있었는데 모리조와 에바 곤살레스(Eva Gonzalez)다. 마네는 두 사람에게 미술을 가르쳤는데 모리조는 그림 그리는 에바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그뿐만 아니라 마네의 부인을 험담하기도 했다. 저자는 모리조가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마네로부터 인정받길 원했으며 그의 영향력 안에서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모리조는 마네와 더욱 가까이 지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네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그 ‘충고’가 바로 마네의 동생과 결혼한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제프리 마이어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모리조의 편지 구절을 근거로 마네에 대한 그녀의 감정을 분석한 주장들이 과대 해석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점은 모리조의 그림에 대한 저자의 품평이다.

 

 

섬세하고 난해한 모리조의 작품은 페미니즘 평론가들에 의해서만 과대평가되었고, 나머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과소평가되었다. 역사적인 맥락이나 극적 긴장, 서사적 의미 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그녀의 작품이 마네의 작품보다 더 심했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그림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게끔 보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다.

 

 

제프리 마이어스가 모리조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 모리조는 부르주아 계급의 일상생활, 특히 가족을 주제로 많은 그림들을 그렸다. 화가의 가족 또는 지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에서 ‘역사적 맥락’, ‘극적 긴장’, ‘서사적 의미’를 왜 찾아야하는가? 제프리 마이어스의 심미안은 인상주의 미술과 동떨어져 있다. 그가 역사적 맥락, 서사적 의미가 결여되지 않은 그림을 보고 싶어 한다면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그린 고전주의 역사화를 추천하겠다.

 

 

 

 

 

 

 

 

 

 

 

 

 

 

 

 

 

 

 

* 프랜시스 보르젤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아트북스, 2017)

* [절판] 주디 시카고,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여성과 미술(아트북스, 2006)

*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이리 디아나 마초니 여성예술가(해냄, 2003)

 

 

 

페미니즘 평론가들이 모리조를 과대평가를 한다는 의견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페미니즘 미술은 미술관에서 여성의 지위가 미약한 원인과 여성 미술가가 남성 미술가에 비해 경력을 쌓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남성 미술가들만 주목하고 여성 미술가들을 소외하는 미술 평론계에 반발하기 위해 나선 것이 페미니즘 미술이다. 모리조는 인상주의 회화 그룹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당당히 지킨 화가이다. 그런 그녀를 과소평가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남성 중심 사회 속에 권위를 떨친 미술 평론가들 아닌가?

 

 

 

 

 

 

Trivia

 

 

 

 

 

 

 

 

 

 

 

 

 

 

 

 

존 리월드(John Rewald)인상주의의 역사(까치, 2006)는 인상주의 미술에 관한 책의 고전이다. 줄리 마네는 이 책에 있는 모리조에 관한 잘못된 내용을 알려주었으며 존 리월드는 개정판에 줄리의 의견을 반영했다. 그런데 이 책을 번역한 정진국 씨는 베르트 모리조의 둘째 언니 에드마를 동생이라고 잘못 썼다. 베르트 모리조는 모리조 집안의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정진국 씨는 2009년에 나온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를 번역했다. 이 책에서는 에드마를 언니라고 올바르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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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2 10:05   좋아요 0 | URL
책마다 이름 표기명이 달라요. 어떤 책은 ‘모리소’라고 하거든요. ^^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 예술가의 삶과 진실 6
아르망 푸로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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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마네는 이 그림을 죽을 때까지 자기 화실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그림 왼쪽에 있는 여인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이 이름을 꼭 기억해두시라. 그녀는 인상주의 화가 그룹의 당당한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아르망 푸로(Armand Fourreau)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글항아리, 2009)는 남성 중심의 19세기에 여성이란 장벽을 이겨내고 예술혼을 불태워 인상파 최초의 여류화가로 거듭난 베르트 모리조의 인생과 예술을 정리한 평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모리조의 가족들을 만나 육성 증언을 채집했고, 공개된 적이 없는 모리조의 습작을 발굴하여 소개했다.

     

모리조는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의 증손녀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았으며 음악과 미술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그녀의 둘째 언니 에드마 모리조(Edma Morisot)도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했다. 자매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옛 거장의 작품을 모사하며 그림 공부를 했다. 자매는 화가가 지녀야 할 자질을 충분히 갖추었다. 특히 베르트의 마음에는 화가가 되겠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자매는 조제프 기샤르(Joseph Guichard),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의 제자가 되었으나 베르트는 스승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낭만주의 회화를 선호한 기샤르는 자연을 묘사하는 그림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코로는 정확한 묘사를 강조했다. 베르트는 스승의 그림을 모사하거나 화실에서 그림 그리는 일이 자신의 열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리조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작을 모사하던 중 마네를 만나 그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녀는 마네의 동생과 결혼하면서 자주 마네의 작품 모델이 되기도 했다. 마네는 인상주의 회화 그룹의 전시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화가들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모리조는 마네 주변에 모이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자연스럽게 친분을 맺을 수 있었다. 그녀는 1874년 제1회부터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까지 그림을 출품했다. 인상주의 전시회보다 살롱 전에 더 관심이 있었던 마네는 모리조가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는 것을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모리조는 마네의 충고를 거절했고 오히려 그에게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도록 권유했다. 만약 그녀가 마네의 설득을 받아들였다면 인상주의 회화 그룹은 남성 화가들의 모임이 되었을 것이다.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의 부록은 인상주의 회화 그룹을 열렬히 지지한 미술평론가 테오도르 뒤레(Theodore Duret)의 글이다. 이 글은 <인상주의 화가의 역사>에 수록된 베르트 모리조편을 완역한 것이다. 뒤레는 모리조, 모네(Monet), 시슬레(Sisley), 르누아르(Renoir), 피사로(Pissarro)충분한 독창성을 발전시킨 인상주의자의 정회원이라고 평가했다. 모리조는 자신의 딸 리 마네(Julie-Manet)의 성장 과정을 그림에 담았다. 그녀가 즐겨 그린 그림의 주제는 가족이다. 모리조의 그림들은 남녀 역할이 비교적 엄격했던 시대 속에 살아간 여성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모리조는 살롱 전에 여섯 번이나 입선할 정도로 쟁쟁한 실력을 갖춘 화가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그녀의 존재감은 잊혔다. ‘인상주의자의 정회원에 그녀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모리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엉뚱하게도 마네가 있다. 마네는 인상주의 회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선구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는 인상주의 전시회에 단 한 번도 그림을 출품한 적이 없었으므로 인상주의자의 정회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남성 중심의 평가는 모리조의 실력을 외면했다. 모리조는 주도적으로 새로운 시대 미술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동참했으나 여성화가라는 이유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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