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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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임금님이 벌거벗은 이유

 

 

 

 

빌헬름 페더슨이 그린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삽화 (1849년)

 

 

 

벌거벗은 임금님은 어쩌다 벌거벗게 되었을까. 단순히 재봉사가 임금님의 재물을 노리고 일으킨 사기행각에 넘어갈 정도로 순진했던 것일까. 임금님은 매일 거울을 바라보며 착한 사람만 볼 수 있는, 세상에거 가장 멋진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자만심이 크면 클수록 그 자만심에 의해 판단력은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임금님이 벌거벗게 된 것 또한 주변에 바른 말을 하는 인물이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사기꾼 재봉사는 임금님의 자만심을 역이용해 그를 홀라당 벗김으로써 임금님의 자아도취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군중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나오는 '로얄 포르노'를 볼 수 있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모습은 ‘투명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타인에게 온전히 보여주려는 성향. 오늘날 ‘투명성’은 중요한 화두다. 정치나 경제 영역에서는 물론이고,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투명성을 강조한다.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 등의 발달로 정보가 모두 동등하게 공개되고 무제한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는 믿음이 생겼다.

 

 

 

 Scene #2  지금도 일기를 쓰고 있습니까?

 

우리는 스마트폰, 페이스북을 보면서 타인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고, 하루에 있었던 일상까지 공개된다. 한 사람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시킨 글과 사진을 모은다면 한 권의 그림일기로 만들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우리는 일기장을 많이 썼다. 기본적으로 여섯, 일곱 줄 정도까지 쓰기 위해서 지금으로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 내용을 채우곤 했다. 아침에 먹은 음식 메뉴를 쓰면서 일기는 시작되고 매일 등교하면 만나게 되는 옆집 친구와 놀이터에서 놀았던 것을 쓴다. 가끔 평소에 일어날 수 없는 특별한 경험담을 쓸 때도 있다. 2박 3일 가족과 함께 멋진 곳으로 여행하는 날에는 평소보다 일기 분량보다 많아진다.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많다면 일기장 한 장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이렇게 일기를 공들여 썼는데도 이상하게 일기장이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공개되면 무척 부끄러워했다. 일기장은 단순히 경험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동안 느꼈던 자신의 감정도 기록하는 은밀한 사색 노트이기도 하다. 부모님, 친구 때문에 감정이 상한 일이 있으면 말로 직접 표현하지 못하고, 일기장에 쓴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순간, 부끄럽고 얼굴이 붉어지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어떤가. 당신은 어린 시절처럼 일기를 매일 쓰는가. 부지런한 성격이 아니라면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을 부담스럽게 여길 것이다. 아니면 바빠서 여유롭게 일기 쓸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도 일기를 쓰고 있다. 단지 일기장에 쓰지 않을 뿐이다. 트위터, 페이스북에 날마다 일기를 쓰고 있다. 그것도 24시간 내내. 어렸을 때 일기장에 썼던 내용과 비교하면 별반 다르지 않다. 친구와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은 점심 메뉴를 소개하고, 음식의 맛을 언급한다. 그림일기였더라면 음식을 직접 그림으로 그렸지만, 이제는 간편하게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으로 촬영할 수 있다. 그 다음 내가 있는 지역이나 장소도 언급한다. 그곳에 간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장소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필수다. 매일 기분 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이 일하는 회사직원 때문에 감정 상하는 일을 겪었다. 자신을 화나게 만든 회사직원을 향한 분노는 페이스북으로 표출한다. 이런 다양한 사진과 글이 업데이트되면 페이스북 친구(줄여서 ‘페친)들은 ’좋아요‘ 버튼을 꾹 눌러 주거나 댓글을 달아준다. 페이스북에 쓰는 일기가 친구들에게 공개되는 것이다.   

 

 

 

 Scene #3  디지털 판옵티콘에 사는 벌거벗은 빅 브라더

 

일기 비슷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글과 사진이 타인에게 공개되는 페이스북의 기능. 우리는 자신에 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인맥을 형성해서 자신의 존재를 널리 홍보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타자와 이질적인 것이 제거된 투명사회에서 발생하는 환영이다. 긍정적인 요소만 부각된 채 부정성이 제거된다.

 

“긍정사회에서 일반화된 판정의 형식은 ‘좋아요’이다. 페이스북이 ‘싫어요’ 버튼을 도입하는 데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긍정사회는 모든 종류의 부정성을 피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부정성은 커뮤니케이션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가치는 오직 정보 교환의 양과 속도로만 측정된다.” (26쪽)

 

정보가 많이 공개되면 민주주의가 발전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사회는 암울하다. 특정 정보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공유될수록 사회 내 갈등과 불평등이 심화된다. 정보를 가진 자와 없는 자 간의 비대칭적 관계는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기괴한 세상과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빅 브라더(big brother)를 태어나게 했다. 판옵티콘은 정보를 가진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정보가 없는 자를 감시 할 수 있는 형태. 정보가 없는 자는 감시자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다. 자신이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규칙을 더 잘 지키게 되고, 결국은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빅 브라더는 감시 체제를 통해 권력을 강화시킨다. 이러한 감시사회는 표현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소셜 네크워크의 장점은 민주주의 발전에 요긴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너나 할 것 없이 정보를 공개하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판옵티콘 감옥은 허물어지고,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빅 브라더가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판옵티콘에 살고 있다. ‘감시하는 괴물’ 빅 브라더를 무서워했던 우리는 어느새 그 괴물이 되어버렸다. 남이 나를 감시하지 않아도 내가 나에 대한 정보를 매체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판옵티콘 감시자보다 더 효과적으로 자기를 감시하는 것이다. 즉, 권력에 의해 감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을 노출하고 전시하고 있다. 이 거대한 전시장이 바로 ‘디지털 판옵티콘’이다. 디지털 시대에 맞아 새롭게 개장한 거대 감옥이다.

 

이곳에서는 빅브라더와 판옵티콘 수감자의 구분이 사라진다. 서로 격리된 상태로 유지되는 판옵티콘 감옥과 반대로 디지털 판옵티콘 속에 사는 현대인은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다. 나와 타자 간에 형성되는 이질감은 제거된다. 그 대신 인맥 네트워크가 구축되면서 친밀성은 높아진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가면(persona)을 벗는다. ‘프라이버시’라는 이름의 가면을 벗어 던져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정보’로 전환시켜 공개한다. ‘나’를 드러낼수록 ‘나’를 향한 타인의 관심은 높아진다.

 

디지털 판옵티콘에 살고 있는 우리는 벌거벗은 빅 브라더이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빅 브라더. 완전히 발가벗겨진 투명한 '유리 인간'이다.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가 같아지는 획일적 인간형이다.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투명의 강요 아래에서는 개인이 스스로 자신에 대한 정보를 노출하기를 원한다.

 

 

 

 Scene #4  강요되는 투명성을 거부할 수 있는 반항 정신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취약해졌다는 것, 진실성이나 정직성과 같은 도덕적 가치가 점점 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도덕적 심급이 허물어지면서 그 자리를 투명성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명령이 대신한다.” (98~99쪽)

 

지금 우리는 벌거벗은 빅 브라더가 되어 모두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디지털 판옵티콘에 거주하는 벌거벗은 빅브라더는 유난히 긍정성을 강조한다. 서로 간의 관계를 이질적으로 만드는 부정성을 사라졌기 때문에 괴로움과 고통의 감정을 느낄 줄 모른다. 아니, 애써 외면한다. 자신이 벌거벗은 상태임을 알면서도 멋진 옷을 입었다고 자아도취에 빠지는 임금님처럼 벌거벗은 빅 브라더는 부정성을 외면하고, 긍정성을 더욱 강조한다.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성만 보는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디지털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민낯이나 다름없는 부정성을 전혀 보지 못한다. 심지어 타인의 부정성마저도. 긍정성만 쫓는 투명성의 시스템에 길들여지면 진실과 정직과 같은 도덕적 가치가 상실될 우려가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과연 진정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민주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성숙한 민주사회는 타인의 부정성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진실과 정직이 상실된 사회는 신뢰를 잃어버린 것과 같다. 신뢰가 퇴색된, 서로 감시하려는 투명사회. 이러한 사회에 공감의 소통보다는 갈등과 불신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자기를 괴롭게 만드는 타인의 부정적 감정에 쉽게 대응하지 못하고 꺼려한다. 결국 투명한 유리로 된 벌거벗은 빅 브라더는 부정성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채 산산조각 부서질 것이다.

 

긍정성이 증식되는 투명사회에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한 아이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착한 사람만 보인다는 멋진 투명 망토를 걸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의 눈은 그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을 드러낸 임금님이 보였다. 어린 꼬마가 벌거벗은 임금님을 곧이곧대로 말한 용기는 가상하지만,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절대 권력의 무서움을 알 턱이 없다. 그래서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것을 용기라고 말하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어쨌든 어린아이의 용기 있는 한 마디로 온 나라 사람들이 임금님이 벌거벗고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 해도 어딘가. “반항은 인간과 그 자신의 어둠과의 끊임없는 대면이다”라고 말한 카뮈의 반항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투명성의 강요와 명령을 거부하고 대면할 수 있는 반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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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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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1762년 윤5월 13일. 창경궁에서는 조선왕조사의 가장 처참한 비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조선의 사백 년 종사가 다 망하겠지만, 네가 죽으면 종사는 보존할 수 있으니, 네가 죽는 것이 옳느니라.” 노기등등한 영조는 세자에게 뒤주에 들어갈 것을 명했다.

 

의연하던 세자는 끝내 무너진다. 혈육의 정에 호소하며 매달렸다. “아버님, 어머님, 잘못하였느니, 이제는 하라 하시는 대로 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들을 것이니, 이리 마소서.” 그러나 영조는 매몰찼다. 세자가 뒤주에 들어가자 직접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자물쇠를 잠근 뒤 대못을 박았다.

 

그 여드레 뒤 세자는 숨진다. 복날이 낀 여름이었다. 세자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컴컴한 절망 속에서 죽어 갔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사도세자. 그는 영조가 마흔 넘어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유일한 혈손이었다. 7월의 여름 무더위에 사방팔방으로 꽉 막힌 뒤주 안에서 그가 겪었을 마음과 몸의 고통이 마치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어떤 사람의 행적이나 역사나 조상에 대한 관점은 어느 면을 보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리 나온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 죽게 만든 이유에 관한 가설도 그렇다. 사도세자는 왜 ‘뒤주의 왕’이 되어야만 했을까?

 

학계에선 그동안 사도세자가 미쳐서 영조가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광증설'과 사도세자가 우수한 자질을 가졌지만 집권층인 노론 세력에 맞서다 억울하게 죽었다는 '당쟁희생설'(이덕일)이 제기됐다. 하지만 두 가지 가설 모두 확고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정병설 교수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역사서와 개인 문집 등 사료를 바탕으로 ‘광증설’과 ‘당쟁희생설’ 모두 반박한다. 사도세자가 자신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영조로서도 아들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칼을 차고 영조를 죽이려고 하다 역모에 걸렸다는 가설에 힘을 실었다.

 


 Scene #2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영조는 맏아들이 죽은 뒤 7년 만에 사도세자가 태어나자 곧바로 원자(元子)에 책봉했다. 그리고 제왕 교육을 하기 위해 그를 멀리 떼어놓고 신하에게 맡긴 채 별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결국 부모와 자식은 낯선 관계가 됐다. 그렇다 보니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가 늘 무서웠다. 영조는 쭈뼛쭈뼛하는 아들을 심하게 혼냈다. 아버지에 대한 사도세자의 두려움은 정신질환으로 이어졌다. 영조의 질책을 받으면 사도세자는 사람들을 때리거나 죽임으로써 스트레스를 풀었다. 영조는 더욱 분노했고 이것이 사도세자의 목숨을 빼앗는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결국 어린 시절 부모의 무관심이 사도세자의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13일부터 21일까지 꼬박 8일 동안 뒤주에 갇힌 28살의 피 끓는 청춘, 사도세자는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하고 그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 영조와 생모 선희궁 영빈 이씨에 대한 끝없는 한과 원망에 속 깊이 소리 없이 울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미움에 대한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야했던 사도세자는 비극 그 자체였다. 성실하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영조의 성격과 반대로 사도세자는 밥 먹기는 좋아하고 책을 싫어한 예술가형 기질이었다. 이들의 관계는 절대로 섞일 수가 없는 물과 기름이었다. 영조는 아들의 태도를 고치기 위해 세자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세자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하들 앞에서 세자를 꾸짖고 조롱하기 일쑤였다. 세자의 광증이 깊어질수록 부자의 갈등 골도 깊어져만 갔다. 세자에 대한 영조의 믿음은 점점 잃어가고 오히려 세자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다. 대못을 박아놓은 뒤주에 갇히기 전에 영조는 이미 어린 사도세자를 더욱 외롭게 했고, 거대한 궁궐 안에 갇히게 만들었다.

 


 Scene #3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심화가 나면 견디지 못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닭 짐승이라도 죽이거나 해야 마음이 낫나이다.”
 “어찌 그러하니?”
 “마음이 상하여 그러하나이다.”
 “어찌하여 상하였니?”
 “사랑치 않으시니 서럽고, 꾸중하시기에 무서워, 화가 되어 그러하오이다.”
 “내 이제는 그리 않으리라.”

 

 

(혜경궁 홍씨  『한중록』 재인용, 정병설 『권력과 인간』중에서, 150쪽)

 


사도세자는 왕이 될 수 없었다. 왕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조 다음으로 궁궐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에게 궁궐은 그저 서러움이 쌓여 있는 땅이었다. 절대 권력의 왕이 아닌, 이 세상 모든 슬픔과 서러움을 자신의 것으로 껴안은 눈물의 왕이었다.

 

사도세자는 참으로 비운의 주인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조선시대에서 가장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생전 그런 취급을 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조가 뜻을 펼쳐줬다 하지만 승자를 중시하는 역사의 속성 때문에 정신이상자로 역사 속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결코 화해할 수 없었던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 사이의 불신과 두려움, 거기에 더하여 최고 권력을 둘러싼 갈등까지 겹쳤으니 무슨 일이든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마흔 둘에 얻었다. 늦게 얻은 아들인지라 기쁨은 남달랐다. 그러나 그 기쁨은 피붙이를 얻었다는 데서 온 게 아니라 나라를 맡길 후계자를 얻었다는 데서 온 것이었다. 권력이 친자식에 대한 부정(夫情)을 억누른 셈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믿지 못하고 권력을 위해 아들을 죽이는 기이한 역사. 그만큼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 홍사용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 구절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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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는 영리한 동물입니다.
아프리카 토인들이 이 영리한 원숭이를 생포할 때
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원숭이가 제일 좋아하는 쌀을 넣어
나뭇가지에 단단히 매달아 놓습니다.
가죽 자루의 입구는 좁아서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얼마 동안을 기다리면 원숭이가 찾아와
맛있는 쌀이 담긴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곤 쌀을 가득 움켜쥐고는 흐뭇해합니다.
그런데 쌀을 가득 움켜쥔 원숭이는 아무리 기를 써봐도
그 자루 속에서 손을 빼낼 수가 없습니다.
놀란 원숭이는 몸부림치며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손을 펴서 놓아버리기만 하면 쉽게 손을 빼내 저 푸른 숲 속을
다시 자유롭게 누비며 살 수 있으련만, 슬프게도
원숭이는 한줌의 쌀을 움켜쥔 손을 펴지 못한 채 울부짖다가
결국 토인들에게 생포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손을 펴라.
놓아라 놓아버려라.
움켜쥔 손을 펴라.
한 번 크게 놓아 버려라.

 

 

(박노해, ‘손을 펴라’)

 


아프리카 원숭이는 한줌의 쌀과 생명을 너무나 허무하게 맞바꿔 버렸다. 생소한 덫이 쌀을 움켜쥔 손을 결박해버리는 바람에 원숭이는 크게 당황하여 쉽게 빠져나오는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원숭이를 노리는 덫은 생각한 것보다 특별하게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덫은 원숭이의 마음에 자리 잡은 ‘욕심’이다. 자신이 만든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한 편의 우화가 연상되는 박노해의 시 ‘손을 펴라’는 욕심을 움켜쥔 채 손을 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원숭이로 비유했다.

 

 

 

 

 

 

 

 

 

 

 

 

 

 

 

 

우화나 동화 속 원숭이는 꾀가 많은 영리한 동물로 등장하지만, 눈앞의 이익만 집착하는 우매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가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워낙 오랫동안 원숭이를 길렀으므로 그는 원숭이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으며 원숭이 또한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원숭이들의 숫자가 많았던 데다 식욕까지 워낙 왕성하다 보니 먹이를 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저공은 원숭이들의 양식을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원숭이들이 불평할 것이 두려워 먼저 원숭이들과 상의하기로 했다. 그는 집안의 모든 원숭이들을 불러 놓고는 말했다. 처음에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로 주기로 제안하자 원숭이들은 그렇게 먹어도 배고프다고 불평했다. 원숭이들의 항의에 저공이 “이제부터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겠다”고 대답하자 원숭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세 개에서 네 개로 늘어났다고 여긴 원숭이들은 그 제서야 뛸 듯이 기쁜 것이다. 실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는데 원숭이는 저공의 꾀에 속아 넘어갔다.

 

‘조삼모사’에 나오는 원숭이들은 저공에게 농락당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쉽게 길들여지고 마는 수동적인 모습 또한 보인다. 영원히 우리 안에 갇혀서 아침, 저녁으로 저공이 주는 도토리 7개를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로 식사하는 것이 자신들이 살아가는데 최상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피터르 브뤼헐  「두 마리 원숭이」  1562년

 

어리석은 원숭이 이미지는 플랑드르 출신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언뜻 보면 두 마리 원숭이를 묘사한 평범한 그림이다. 원숭이들은 좁은 창의 난간 위에 쇠사슬로 묶인 채 지내고 있다. 창밖으로 시야가 탁 트인 항구가 보인다. 오른쪽 원숭이 등 뒤에 속살을 먹고 버린 호두 껍데기가 흩어져 있다.

 

 

 

 

 

 

 

 

 

 

 

 

 

 

 

 

브뤼헐은 쇠사슬에 묶인 원숭이들을 그린 이유가 무엇일까? 어느 부유한 사람이 기르는 애완용 원숭이를 그렸던 것일까? 브뤼헐의 그림은 우화나 속담을 그림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 화가가 전달하려는 어떤 특정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원숭이 그림에 관한 해석 중 가장 설득력이 높은 것이 플랑드르 속담을 그렸다는 설명이다. “개암나무 열매 한 개 때문에 재판소에 간다”라는 속담은 별 것 아닌 열매 때문에 죄를 짓고 마는 어리석은 태도를 조롱하고 있다. 속담의 의미를 브뤼헐의 그림에 대입하면 우리는 두 마리 원숭이가 쇠사슬에 묶인 채 살게 된 배경을 상상해볼 수 있다.

 

두 마리 원숭이는 길에 떨어진 호두를 발견한다. 그런데 호두는 한 마리 원숭이만 먹을 수 있다. 원숭이들은 호두를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싸운다. 서로 뒤엉키면서 싸우는 사이에 마침 지나가는 사냥꾼이 손쉽게 그들을 포획한다. 새와 조개의 싸움으로 제3자인 어부가 덕을 보는 ‘어부지리’(漁父之利) 고사와 유사하지만, 어쨌든 호두 한 개를 둘러싼 원숭이들의 욕심은 그들에게 덫이 되어 인간에 잡히고 만다. 이제 예전처럼 자유로운 야생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부지리’ 고사를 따온 그림에 대한 해석은 개인적인 상상으로 꾸민 것이다. 지금도 브뤼헬의 원숭이 그림을 설명할 수 있는 확실한 해석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딱 이 그림만 봐도 원숭이들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두 마리가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창의 난간이 감금된 상황을, 이것과 대조적으로 창 밖에 펼쳐진 항구 풍경은 두 마리 원숭이의 과거, 즉 자유로웠던 삶과 세계를 상징한다. 하필이면 하늘 위에 두 마리 새가 훨훨 날아다닌다. 영원히 난간 위에 살아야하는 원숭이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왼쪽 원숭이의 표정은 예전처럼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가지 못한 마음에 자포자기한 심정이 드러나 있다. 오른쪽 원숭이도 마찬가지다. 그는 항구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차마 하늘 위로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지 못한다. 오히려 회피하는 듯하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가 부럽다. 이제야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호두 한 개 때문에 욕심으로 눈이 먼 어리석음을 후회한다.

 

그러나 자유의 의미가 상실되거나 박탈된 존재는 끊임없이 고통 받는 것이 아니다. 저공의 원숭이처럼 현실을 그대로 순응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자유를 찾기 위한 어떠한 해결책도 생각하지 않은 채 말이다. 오히려 탈출을 시도하다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출한 죄로 예전보다 먹이를 적게 주거나 더 좋지 않은 곳에 살 수도 있다. 최악의 결과는 죽음이다. 그만큼 생존을 위한 탈출 시도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오랫동안 쇠사슬로 결박된 채 좁은 감옥 생활에 적응하면 어느새 탈출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다. 탈출하고 싶고, 살아서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무모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탈출 실패가 초래하는 끔찍한 결과를 원하지 않는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 나오는 원숭이 ‘빨간 피터’는 철창을 벗어나기 위해 원숭이의 본성을 벗어던진다.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처음에 피터는 좁은 철장에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탈출이 불가능하게 되자 원숭이의 정체성을 포기한다.  인간이 된다면 자유를 되찾을 수 없더라도, 우리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악수하는 법과 술·담배를 배우고 말하는 법을 배우면 됐다. 간단히 말해 쇼무대에서 인간흉내를 내어 그나마 우리 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 인간의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점점 더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진 피터는 서커스단의 일원으로 대성공을 거둔다. 피터는 학술원 회원에게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과정을 보고하는 내내 구원의 길을 모색하는 자신의 모습에 한껏 자부심에 고취되어 있다.  

 

그러나 작품의 이면을 살짝 들여다보면 피터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는 여전히 원숭이일 뿐임을 알 수 있다. 그가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피터는 여전히 원숭이의 상태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관객 앞에서 묘기를 부리는 공연하는 것은 인간에게 조련당하는 원숭이의 모습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원숭이 피터는 인간으로 거듭난 행복한 원숭이가 아니라 인간에게 사로잡혀 자유분방한 정체성을 상실한 가련한 원숭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피터는 ‘하겐벡 증기선의 중간 갑판에 있는 우리 안에’ 갇히게 되는데 여기서 ‘하겐벡’은 그 당시 유명한 동물원을 세운 회사이다. 독일 출신 회사 설립자의 이름을 딴 하겐벡은 육식, 초식동물의 구분 없이 공존하는 파노라마 형태의 동물원을 만들었다. 피터가 제아무리 인간처럼 흉내를 내도 그는 하겐벡 소속의 동물일 뿐이다.

 

피터는 억압적인 현실에 순응하면서 참된 자아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탈출구를 스스로 포기했다. 철창의 자물쇠를 물어뜯을 수 있는 이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시도를 하지 않는다. 인간이 먹이로 가져다주는 호두 껍데기를 원활하게 부수는데 사용한다.

 

“지금의 제 이빨로는 이미 일상적인 호두까기에도 조심해야만 합니다만, 그 당시에는 틀림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문의 자물쇠를 물어뜯는 데 성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들 무엇이 얻어졌겠습니까? 제가 머리를 내밀자마자, 사람들은 저를 다시 잡아서 더 고약한 우리 안에 가두었겠지요.” (카프카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중에서, 도서출판 솔, 263쪽)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피터는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어려운 현실 속에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이 생기게 마련이다. 우습게도 피터는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를 사람이 주는 호두를 부수는 용도로 사용했다. 호두 때문에 탈출 시도를 쉽게 체념하고 만다. 그 호두가 피터의 탈출 시도를 방해하는 덫이 되었다. 자물쇠를 물어뜯어보는 시도를 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피터는 인간 흉내 내는 어리석은 원숭이가 되었다. 피터는 철창 우리 생활을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절망 속에 갇힌 상태에서 희망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서성거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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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맬서스의 영혼은 지금도 배회하고 있다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은 인구 증가에 대한 강한 경고와 함께 매우 부정적이고 어두운 예측으로 유명하다. 인구 증가에 따른 생활조건의 악화와 지구상의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 국가 간의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자’와 ‘없는 자’간의 차이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낙관적인 주장도 있다. 당시 인구 증가율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인간의 극복능력과 지적능력의 향상, 새로운 기술의 발달 등으로 언젠가는 사회가 공평해 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범죄도 없으며 질병도 없는 그리고 심지어는 전쟁도 없는 세상으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낙관적 전망이 비교적 옳았다고 할 수 있으나 세계는 이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볼 수 있다.세계경제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선진국들의 경우 인구의 노령화와 산아제한에 따른 인구 감소가 새로운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UN은 1990년대 초 16억 명이던 세계 인구는 현재 60억 명을 넘었고 2050년에는 100억 명에 이를 전망이다. 의학의 발달과 생활환경의 향상 등으로 평균 연령이 높아져 노령화 추세가 확연한 반면 인구 증가율은 현 인구 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젠 맞지 않는 것으로 굳어진 맬서스식 인구론이 아니더라도 ‘인구 폭발’은 많은 사람에게 악몽이었다. 산림 황폐화와 수질 오염 등 환경 파괴, 인명 경시, 도시화에 따른 빈민층의 증가와 범죄 만연을 포함해 수많은 인위적 재해의 근본 원인이 인구 증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인구가 많다는 것은 경제 발전의 주요 장애 요인일 뿐 아니라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도 불리함으로 작용한다. 비관론자들은 인구 100억 명을 넘기 이전에 엄청난 대재난이 발생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낙관론과 비관론 모두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갖고 있지만 논의의 초점은 지구의 ‘생물학적 수용능력’에 모아진다. 낙관론자들은 품종개량과 농지개간을 통한 과거의 눈부신 식량증산 경험을 예로 들면서 끊임없는 과학기술 발전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다. 지속적인 기술개발이 미래 인구가 먹고 남길만한 식량증산을 가져올 것이란 예측이다. 지난 수십 년간 식량증산 분야에서 이룬 녹색혁명의 성과를 전망의 근거로 제시한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지구의 부양 가능 인구수는 최대 90억∼100억 명 수준으로 본다. 지금 추세라면 언젠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하리라는 예상이 된다. 환경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비관론자들은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부작용과 과학기술의 한계로 지금의 두 배나 되는 미래 인구는 필연적으로 기아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경작지 감소, 개간할 땅의 부족, 농토의 황폐화와 수자원의 고갈은 지구의 수용능력을 한계에 달하게 할 것이란 전망이다.

 

 

 

 Scene #2  100억 명 인구가 사는 지구의 위기  

 

인간의 삶은 무기물 자원과 에너지에 의존한다. 처음 인간은 식량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었다. 이후 물과 바람 그리고 동물의 에너지를 이용했다. 필요성이 떨어지면 점차 다른 자원으로 대체해가기 시작했다. 결국엔 화석연료를 이용하기에 이르렀고, 지구 온난화라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대규모 기근과 식량 부족은 사회 붕괴로까지 치닫고 있다.

 

특히 세계 도처에서 인구 증가에 따른 물 부족 현상은 큰 문제를 낳는다. 20세기의 국가 간 분쟁 원인이 석유였다고 한다면 21세기는 물로 인한 분쟁 시대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세계 인구의 약 20% 정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체 식수원을 찾지 못해 갈증에 시달리고 있다. 수자원 부족 현상이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매년 수백만 명이 제대로 된 안전 식수를 공급받지 못해 수인성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100억  명』은 쓴 대니 톨링은 인구 80억 명에 도달한 시점에서 지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은 식량, 광물, 석유가 아니라 ‘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생수 회사들이 지하수를 대량으로 뽑아낸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물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다. 미국 텍사스 주와 5대호 부근, 인도 남부의 플라치마다 마을이 대표 사례이다. 코카콜라사가 플라치마다 마을에서 지하 관정 여덟 개를 뚫어 지하수를 마구 퍼 올린 결과, 땅이 황폐해지면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논밭이 갈라지고, 푸른 잎의 야자수는 시들어가고, 마실 물은 부족하다. 주민들은 “코카콜라 공장이 날마다 100만ℓ나 되는 지하수를 훔쳐가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100만ℓ면 2만 명이 하루 동안 생활할 수 있는 양이다. 알래스카 빙하수를 선박에 실어 중국에 수출한다는 이야기나 에베레스트 만년설을 녹여 병에 담아 파는 것을 가벼운 이야깃거리로만 받아들일 일이 아닌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은 시장을 통해 물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돈이 없는 사람들이 목마름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밖에도 100억 명 인구 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우려되는 것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앞으로는 이런 이상 기후 현상이 빈발해지고 그 정도도 격화되리라는 점이다. 산업문명의 무절제한 사용에 대해 지구생태계가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후환경을 변화시키는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태양의 흑점 활동 등의 자연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등 인위적인 요인도 있다.

 

“인류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앞으로도 환경은 계속 변화할 것이다. 산 자의 기준이 장기적으로 실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기후학자 휴버트 램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기준은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유구한 인류 역사와 비교해 인간의 삶은 아주 짧다. 인간들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는 가장 무시무시한 요인은 날씨다. 전쟁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날씨는 해낼 수 있다.

 

지구 곳곳에서 강추위와 폭설이 계속되다가 다시 따뜻해졌다. 우리나라는 봄과 가을도 아주 짧아졌다. 여름철에는 온난화 때문인지 찜통더위가 며칠째 계속된다. 세계 각지에 지진이 나타나고,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최근 극단적인 기상 이변 횟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1970년대에 영국의 과학자 러브록은 가이아(Gaia) 이론을 주장했다. 가이아는 대지를 다스리는 그리스의 여신이다. 지구의 동물, 식물, 무생물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주장이다. 인간, 동물, 식물, 숲, 산, 강, 호수, 바다, 토양, 대기. 이 모두가 지구라는 한 생명체에 소속된 일부라는 얘기이다. 강과 호수가 혈액이라면 산이나 숲은 골격이나 관절인 셈이다. 그래서 인간 세계가 변하면 자연이나 기후도 같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인간 세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지구도 거기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론이다.

 

사람이 더우면 땀을 흘리듯 극지의 빙하는 녹아내려 지구 온난화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폭설과 폭우가 내려 더워진 지구를 식히고 있다. 급격한 기후 변화가 일어나 흐트러진 대기의 온도, 산소, 탄산가스의 구성을 유지한다. 바다의 유기질, 무기질, 염분의 농도를 유지하려 쓰나미를 일으킨다. 사람이 과로하면 비틀거리듯 지진이 일어나 지각의 균형을 유지한다.

 

대지의 여신이 일으키는 분노는 멈출 줄 모른다. 현재 지구 평균 기온은 2도 이상 증가하고 있는데 미래 기후변화에 관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2080년 지구 온도는 약 4℃ 상승할 것이라 보고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현재의 2배, 고위도에서 온도는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고지대가 해수면 보다 평균온도 상승이 클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반적으로 온도가 상승하면 지표면이나 해수면에서 증발되는 수증기의 양이 많아진다. 이렇게 물 순환이 가속화되면 물이 부족한 지역은 점점 건조해지고 더워지며, 물이 많은 지역은 강수량이 더 많아져 가뭄과 홍수가 반복된다. 지구의 물 순환이 크게 달라진다면 물의 가용성이 제약을 받아 농업생산성이 크게 저하될 것이다.

 

 

 

 

 

 

 

 

 

 

 

 

 

 

 

 

오늘날 지구상 많은 국가에서는 식량생산 혹은 생활용수와 산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지하수를 무분별하게 이용하고 있다. 기후 변화를 통제 불가능한 상황 속에 식량 및 용수 확보를 위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100억  명, 어느 날』을 쓴 과학자 스티브 에모트는 앞으로 ‘기후 이민자’가 생길 것이며 흔하게 사용될 단어로 예측했다. 물, 식량 그리고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한정된 물, 식량, 자원을 둘러싸고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Scene #3  자연과의 공존 없이는 인간도 생존할 수 없다

 

지금까지 100억 명 인구 시대에 관한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나오고 있으나 이에 관한 내용부터 시작해서 대안까지 전문가들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대니 톨링의 시선은 낙관적이다. 일단 맬서스식 인구론을 비판하고 있으며 책 제목과는 달리 100억 명이 동시에 살아갈 것이라는 예상에 회의적이다. 그는 ‘현실적 개혁주의자’에 속한다. 즉, 현실은 암울해도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집단적 해결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살기 좋은 세상이 우리가 어떻게 현재를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에모트는 전 지구적 비상사태에서 벗어나는 방법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혁신적 기술 개발, 다음은 인류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에는 회의적이다. 두 번째 방법은 지금 당장 이뤄지기 어려운 것으로 본다.

 

나는 대니 톨링의 '현실적 개혁주의론'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올 수 있다. 가이아 이론대로라면 생명체들은 지구가 품은 무한한 자연의 일부로써의 존재 그 자체이며 그것으로 지구의 운명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피해가 있더라도 이 지구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이 뚜렷한 치료 없이도 조금씩 아물어 가는 것과 같이 자연 복원력을 보이며 스스로를 치유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발전은 생태계의 불균형을 이루어 심각한 생태계의 파괴와 인류의 자멸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에 따라 원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환경 친화적인 삶으로의 의식의 전환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 친화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복잡한 사회 속에서 제도나 법 질서로 이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지구라는 공간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서 다른 생명들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선행돼야 한다. 공존이란 바로 ‘생명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지금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는 건 인간 스스로의 능력 때문이 아니다. 식물, 동물과 같은 다른 생명들 덕분에 인간 또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우월하기 때문에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생명들을 착취해서 번성하고 있을 100억 명 인구 시대를 맞아 조금이라도 고민을 하고 그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는 게 옮은 지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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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199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찌 할 수 없으면 침묵을 지켜야 해요. 누구도 절망 때문에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켜서는 안 돼요. 그 때문에 내 서투른 글은 모두 없어져야 해요. 나는 빛이 아니에요. 나는 그저 내 자신의 고통의 근원으로 빠져들 뿐이에요. 나는 막다른 골목이에요." (구스타프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341~342쪽)

 

 

 


 Scene #1  멍하니 글을 읽다  

 

작가들마다 그의 이름 뒤에 붙는 꼬리표가 있다. 그러한 꼬리표는 자못 진부할 수도 있으나 그 작가의 세계를 파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된다. 프란츠 카프카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를 들춰보면 거기에 적혀있는 단어는 '불안'이다.

 

카프카는 자신이 쓴 글을 분신처럼 여겼다. 누구와도 쉽게 어울리지 못한 서투른 인생처럼 글도 서투르기 짝이 없는 내용으로 생각했다. 좀처럼 남들에게 보여주기를 거부했다. 막스 브로트 다음으로 막역한 벗이었던 구스타프 야누흐가 카프카의 소설을 옹호하면 작가 본인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단편을 모은 작품이 막스 브로트가 몰래 출판된 사실을 카프카가 뒤늦게 알았을 때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솔직히 카프카의 글은 막다른 골목과 같다. 단편소설은 대체적으로 짧은 분량이나 내용을 한 번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들마다 카프카의 글을 이해하는 반응에 차이가 있겠지만, 그의 대표작인 '변신'만 읽고 카프카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소설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사건 전개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짤막한 글은 낯설다. 어떤 글은 우화 형식을 취한 것도 있지만, 주변 일상을 목격하거나 가끔씩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단상에 가까운 것도 있다. 짧다고 쉽게 보면 안 된다. 카프카적인(Kafkaesk) 문장에서 배어나오는 분위기에 독자는 카프카의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없게 만든다. '변신'을 읽었던 느낌과 상당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라는 단상이 있다. 나는 이 글을 그저 멍하니 읽었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조르조 데 키리코 「거리와 우울의 신비」  1913년

 

지금 급히 다가오는 이 봄날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 아침 하늘을 잿빛이었다. 그런데 이제 창가에 가보면, 깜짝 놀라서 창문 손잡이에 볼을 기댄다. 아래엔 분명 벌써 지고 있는 태양빛이 주위를 둘러보며 걷고 있는 순진한 소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고, 그리고 바로 연이어 그 소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리고 나서 그 남자는 벌써 지나가버렸고, 그 어린아이의 얼굴은 아주 밝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 전문, 31쪽)

 

잿빛 하늘이 덮친 봄날에 순진한 소녀를 따라가고 있는 남자의 그림자. 카프카는 창 밖 너머 일상적인 풍경을 그대로 묘사한 걸까? 참으로 기이한 풍경이다. 아주 밝은 표정을 띤 소녀의 뒤를 밟는 남자의 모습은 위협적이다. 일상에 숨겨진 채 언제 우리를 습격할지 모르는 일상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일까? 아니면 '남자의 그림자'는 카프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불안'을 상징한 것일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카프카의 묘사는 이듬해 세상에 공개되는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 「거리와 우울의 신비」를 예언한 것처럼 느껴진다. 열주로 이어진 건물 샛길로 한 소녀가 굴렁쇠를 굴리며 접어든다. 불안함을 고조시키는 노란색 길 끝에는 지팡이를 든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비친다. 카프카가 묘사했던 소녀를 뒤쫓는 남자의 그림자와 상당히 유사하다. 이렇듯 카프카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초조함을, 꿈같은 비현실성을 환기시키는 글을 남겼다.

 

그나마 이런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이다. 그렇다면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어떤가.

 

진짜 인디언이라면, 달리는 말에 서슴없이 올라타고, 비스듬히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땅 위에서 이따금씩 짧게 전율을 느낄 수 있다면, 마침내는 박차도 없는 박차를 내던질 때까지, 마침내는 고삐 없는 말고삐를 내던질 때까지, 그리하여 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다듬어진 광야뿐일 때까지, 벌써 말 목덜미도 말머리도 없이.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 전문, 41쪽)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와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은 1913년에 출판된 <관찰>에 수록되었다. 그 당시 유럽의 독자들은 이런 글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뜬금없이 카프카는 인디언이 되고 싶어 한다. 폐결핵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카프카는 호전적 성격에 건강한 체력을 지닌 인디언을 향한 무한한 동경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가까운 해석이다. 카프카가 인디언을 동경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구스타프 야누흐가 카프카의 목소리를 기록한 『카프카와의 대화』에 인디언에 관한 카프카의 증언을 찾아볼 수 없다.

 

 


 Scene #2  고독하고 예민한 영혼의 독백    

 

단편과 단상 그리고 우화는 장편소설 집필을 염두하고 쓴 다분히 카프카 개인을 위한 소묘처럼 느껴진다. '법 앞에서'는 『소송』후반부에 인용했고, '화부'는 『실종자(아메리카)』의 1장에 재등장한다. 미완성이나 다름없는 은밀한 소묘를 카프카가 발표를 불편하게 여긴 이유가 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막다른 골목의 벽을 조금씩 뚫어서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만들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 세계는 바로 카프카 월드, Kafkaeask, 카프카이스크. 비록 본인은 자신이 쓴 글을 서투른 문장으로 여겼고, 미완성으로 남게 되지만 글쓰기는 고독하고 불행한 삶을 지탱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병마의 고통과 고독, 불안감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의 시간이었다. '굴'이라는 단편소설에 나오는 미지의 짐승이 굴을 파고 안락하게 살고 싶은 것처럼 Kafkaeask는 카프카의 문학적 안식처다. 

 

카프카의 글은 해석의 다의성으로 유명하다. 기괴하고 수수께끼 같은 작품으로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곤 하는 카프카의 문학 세계는 세기를 달리한 지금도 여전히 끊임없는 분석과 연구의 대상이다. 하지만 함축적 비유로 헝클어진 카프카 언어의 신비한 밀림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그것이 바로 다름 아닌 '불안'이라는 핵심적 요소이다.

 

카프카는 자신의 글을 기피하는 또 다른 이유로 개인적인 약점이 기록된 글이기에 발표할 생각이 없다고 야누흐에게 고백했다. 그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카프카적', 'Kafkaeask'라는 수식어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 Kafkaeask는 한 마디로 정리하면, '고독', '불안', '공포', '좌절'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런 단어는 카프카의 삶과 무척 연관성이 깊다. 카프카는 모태 고독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고독감을 느껴야 했다. 한 마리의 불행한 유대인 까마귀(그의 이름은 '까마귀'를 의미하기도 함)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는 평생 실패를 반복했다. 직장생활을 너무나 싫어했지만 평범한 월급쟁이로 생을 마쳤다. 결혼을 원했지만 독신을 벗어나지 못했다. 허약했고 불면증까지 있었다. 가족과도 사이가 나빴고, 특히 ’이기적이고 거만한 사업가’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며 살았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버리는 ’변신’ 속 그레고르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글은 섬뜩할 만큼 부정적인, 고독하고 예민한 영혼의 독백처럼 느껴진다.

 

나는 전차 승강장 위에 서 있다. 이 세계에서, 이 도시에서, 나의 가족에게서 나의 처지를 되돌아볼 때 나는 정말 불확실하다. 더군다나 내가 어떤 방향에서든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요구에 어떤 것들이 있을지, 나는 임시로라도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승객’ 중에서, 34쪽)

 

글을 써도 불행한 삶과 지병이 완전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독의 그림자가 카프카의 마음을 지배할수록 글은 앞으로 쭉 나갈 수 있는 길이 되지 못한 채 꽉 막힌 벽이 되고 말았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희망의 단서마저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카프카의 절규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벽에 부딪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모르겠다”하고 나는 소리 없이 부르짖었다. “정말 모르겠다. 만약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그러면 물론 아무도 안 오는 것이지.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산으로의 소풍’ 중에서, 26쪽)

 

또 다른 짧은 글 속에 고독, 불안 앞에서 패배한 카프카의 무기력한 한숨이 들려온다. 

 

“너는 왜 그렇게 한숨을 쉬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니? 다신 회복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불행이니? 우리는 정말 그것에서 회복될 수 없겠니? 정말 모든 것이 다 망쳐진 거니?” (‘국도의 아이들’ 중에서, 16쪽)

 

 


 Scene #3  고독과 함께 살다     

 

카프카는 외로운 삶을 스스로 선택했고, 고독과 불행의 쓴맛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도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그리워했다. 벽을 뚫을 수 있는 힘만 있었더라면. 하지만 카프카에게는 그런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군중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골목길로 난 창문을 하염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독신자로 남는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로 생각된다. 저녁때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에는 나이든 사람으로서 위신을 지켜가며 한데 끼어줄 것을 어렵게 청해야 하고, 몸이 아프게 되면 자신의 침대 한 구석에서 몇 주일씩이라도 텅 빈 방을 바라보아야 하고, 언제나 대부분 앞에 작별을 해야 할 뿐 한 번도 자신의 부인과 나란히 층계를 올라갈 수 없고... ('독신자의 불행' 중에서, 27쪽)

 

고독하게 혼자 살면서도 때로는 어디엔가 관계를 갖고 싶은 자, 하루 시간의 변화나 날씨의 변화, 직업 관계의 변화 또는 그와 같은 것들을 참작해서 그저 매달릴 수 있는 어떤 팔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자는 골목길로 난 창문 없이는 도저히 오래 견디어내지 못할 것이다. ('골목길로 난 창문' 중에서, 40쪽)

 

카프카는 젊은 나이에 '고독'이 만들어 낸 마음의 병 말기 환자였다. 자신이 '고독'이 만들어 낸 극심한 환자라는 것을 잘 알기에 자신의 글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자신처럼 절망에 패배한 환자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짧은 글을 읽어나가면 카프카를 따라다니던 불안의 그림자가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파편 같은 문장들은 우리는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다. 카프카 월드에 들어오기 전에 독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막다른 골목에 헤어 나오지 못한다. 카프카 월드에 갇혀버린 순간, 불안의 그림자가 당신을 급습한다. 계속 쫓아오는 불안의 그림자를 따돌렸다면 이제 자신의 세계에 숨어버린 카프카를 만난다. 카프카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카프카를 찾을수록, 그는 더 깊숙한 곳으로 숨기 때문이다.  그래도 카프카 월드에 가고 싶다면 구스타프 야누흐의 조언을 귀 담아 들을 것을 권한다. 카프카를 너무나도 잘 아는 그가 기록한 『카프카와의 대화』는 미로 같은 카프카 월드를 탈출하는데 요긴한 실타래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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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7-1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는 저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에요. ㅎ
카프카에 대해서는 박홍규 교수님이 쓰신 전기가 있어요. 한번 보시면 좋을 듯 싶어요. 우리가 여태 알았던 카프카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제시하거든요.
전 카프카가 낮에는 산재보험처리 공단 같은 곳에서 노동자를 위해서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는 사실이 참 마음에 들더라구요. 물론 그의 작품은 저 역시 여러 번 읽어도 이해 안가는 구절도 많고, 특히나 '성' 같은 경우는 '우라질 k'라고 외치며 책을 집어 던진 적도 있었죠. 푸하
뭔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말이죠.
카프타의 소설은 특히나 읽는 이의 자유를 무한하게 확장해 주는 것 같아요.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은 이것이다.라고 말을 하지 않고 그는 다만 쓰고 우리는 읽고 우리의 입장에서 해석하게 해 주니 말이에요. 그래서 그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것 같아요.
전 카프카가 불안이나 고독의 상징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
그의 책은 난해하고 그런 모습들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카프카 그에게는 어떤 현실을 파괴시키고 나가려고 하는 경건함이 보인다고 할까요?
암튼 카프카는 참으로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이달의 리뷰 되신 거 와방 축하드려요. ㅎ
학교 생활은 재밌으세요. ㅋ 저도 직장 휴직 후 도서관에서 매일 생활 중이에요. 후후후

cyrus 2014-07-12 18:3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루쉰님. 구스타프 야누흐라는 사람이 쓴 <카프카와의 대화>를 읽어보면 카프카라는 사람이 그렇게 병적으로 우울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어요. 내면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해야 될까요? 그의 대화를 보면 본인이 스스로 고독한 삶을 살고, 글이 발표되기를 원하지 않은 특이한 성격을 인정하더군요. 카프카가 발표한 단편이나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글을 읽어보면 카프카의 성격을 단적으로 규정하기가 어려워요. 어떤 글은 정말 우울하고, 난해하고 또 어떤 글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도 있어요. 그것이 루쉰님이 말씀하시는 현실을 파괴하고 싶은 경건함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카프카의 글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어서 그만큼 카프카의 삶뿐만 아니라 글이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취업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졸업했고요, 저도 거의 도서관에서 생활하는데 예전처럼 책 읽을 시간은 많지 않네요. 공부하다가 머리 식힐 때 책을 읽고 있습니다.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여름 건강 조심하세요. 에어컨 바람 너무 맞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