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가 적용되는 날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책을 팔려는 출판사와 책을 사려는 독자의 마음은 심란하다. 출판사는 창고에 남은 재고를 팔기 위해서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독자는 반값 할인의 마지막 혜택을 누리려고 지갑은 연다. 그러기 위해서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온라인 서점 혹은 출판사 이벤트 정보를 놓치지 않는다. SNS 독서 관련 커뮤니티에 간혹 책을 싸게 사는 곳을 알려달라는 글이 보인다. 지금 독자들은 책 살 돈은 없어도 이런 마지막 기회를 그냥 팔짱 낀 채 보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도입되면 낮은 할인율이 적용된 가격으로 책을 사야 하므로 지금이야말로 싸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마치 지구가 종말을 앞두는 모습 같다. 1910년에 핼리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스친다는 관측이 알려졌을 때, 전 세계는 공포와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혜성의 꼬리에 치명적인 독가스가 있다는 잘못된 소문까지 떠돌게 되었다. 종말론이 확산하자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돈을 마음껏 쓰고 다녔다. 지구가 사라진다면 돈 쓸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남은 돈으로 하고 싶은 일에 다 썼다. 그러나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스쳐 지나간 날, 지구는 어제처럼 평온했다.

 

지금 ‘도서정가제’라는 혜성이 다가온다. 벌써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독자와 출판사는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서정가제를 도입하면 책을 구매하지 않으려는 독자들의 불만이 많아졌다. 도서정가제 도입을 앞두고 출판사들의 할인 행사에 책을 사들이는 우리 독자들의 모습이 지구 종말이 두려워서 어떻게든 돈을 쓰고 보는 사람들과 같다. 그렇다고 나 또한 출판사의 할인 행사 경쟁에 관심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부터 살려고 찜을 해둔 책을 미리 사뒀다. 다만, 지름신의 유혹을 달래고 있을 뿐이다. 책을 많이 사 놓고, 안 읽은 채 서가에 그냥 방치한다면 자칫 돈 낭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다 해도 오늘은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마음으로 지름신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절제한다. 내일 도서정가제가 도입해도 오늘은 책을 읽겠다는 마음으로 예전에 사 놓은 책을 읽거나 책을 살 것이다. 아니면 좋은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헌책방에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지난주부터 반값 할인이 적용되는 책 중에 무얼 살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아직 월급을 받는 경제적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데다가 모은 적립금 액수도 많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가끔 출판사 대형 창고에 진행되는 할인 판매 행사에 무려 책을 열권씩이나 사서 인증 사진을 올리는 애서가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경제적 수준을 고려해서 분에 넘치지 않을 정도로 구매하는 것이 더 낫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의 명대사를 약간 변형해서 빌리자면 나는 오늘만 책 사는 놈이 아니다. 난 내일도 책 사는 놈이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서 책을 읽는다. 오래 두고 읽을 수 있는, 나중에 헌책방에 팔게 되는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신중하게 책을 골랐다.

 

 

 

 

 

 

출판사들의 반값 할인 판매 대열에 내가 처음으로 산 책은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 세트(새물결, 2012년)다. 책이 나올 당시에 세트 가격이 무려 99000원으로 책정되어 독자들의 원성이 빗발쳤던 문제작이다. 새물결 출판사 반값 할인 이벤트 덕분에 현재 49500원으로 살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반값 할인이 적용되었다 해도 나처럼 이 책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49500원 정도면 반값 할인이 적용된 2만 원 가격의 책을 두 권이나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이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는 책의 소식이 많아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두 권으로 된 책을 5만 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사는 것은 ‘호갱’에 가까운 구매일 것이다. 게다가 핀천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작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예전에 핀천의 명성을 독서 고수들에게서 익히 들어본 터라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특히 『중력의 무지개』는 『V.』와 『제49호 품목의 경매』(민음사, 2007년)와 함께 피터 박스올 추천도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어서 이번 기회에 핀천의 작품 세계에 겁 없이 도전(?)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독서 고수 중에 핀천의 소설을 읽은 분이 있다. 그분은 민음사에 출판되어 현재까지 고가로 거래되는 초 레어템 『V.』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핀천의 작품 세계에 익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핀천을 이해하려면 그의 작품을 연구한 학술논문도 읽어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핀천은 돈 드릴로, 코맥 매카시, 필립 로스와 함께 미국 현대문학을 이끌고 있는 4대 작가로 거론되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언급될 정도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독자가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작가다. J.D. 샐린저처럼 핀천도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꺼린다. 뉴욕에 사는 것으로 추정될 뿐 어디에 사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고, 일절 인터뷰를 하지 않고 사진 촬영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성은 이미 동료, 후배 작가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으며 (작품의 난해성으로 인해 호불호의 평가가 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했다. 『중력의 무지개』를 독일어로 번역했고, 200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엘프리데 옐리네크가 핀천도 못 받은 노벨상을 본인이 받게 된 것이 우습다고 말할 정도다. 읽기 어려운 작품으로 알려진 『중력의 무지개』가 전미도서상을 받았고, 퓰리처 상 수상자로 선정될 뻔했으니 어마어마한 이력을 가진 작품이다.

 

핀천이 비밀로 가득한 은둔 작가라서 대중의 이목이 쏠리는 노벨상을 받을 확률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적중률 높은 세계의 도박사들도 100% 맞추기 어려워하는 것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다. 수상 유력 확률이 너무 낮은 핀천이 절대로 노벨상을 받지 못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파트릭 모다이노처럼 깜짝 수상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력의 무지개』를 구입했으니 핀천의 문학 세계를 믿고 독서를 할 생각이다.

 

핀천의 작품을 발표 연도순으로 읽고 있다. 핀천의 초기작을 모은 단편집 『느리게 배우는 사람』(창비, 2014년)으로 시작해서 『제49호 품목의 경매』『중력의 무지개』 순으로 읽을 예정이다.  『V.』는 핀천의 첫 번째 장편인데 몇 년 전부터 민음사에서 다시 번역 출간한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현재 깜깜무소식이다. 『V.』는 학원사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는데 두 책 다 비싼 가격으로 온라인 중고샵에 나오고 있다. 『V.』 재출간 소식을 믿고 레어템을 사지 않았는데 좀 더 기다려야 봐야 할 것 같다.

 

 

 

 

 

 

 

 

 

 

 

 

 

 

 

 

 

 

 

 

 

 

 

 

 

(장편)
V. (1963년)
제49호 품목의 경매 ※ The Crying of Lot 49 (1966년)
중력의 무지개 ※ Gravity's Rainbow (1973년)

 

 

 

 

 

 

 

 

 

 

 

 

 

 

(단편)
이슬비 ※ The Small Rain (1959년)
로우 랜드 ※ Low-lands (1960년)
엔트로피 ※ Entropy (1960년)
언더 더 로즈 ※ Under the Rose (1961년)
은밀한 통합 ※ The Secret Integration (1964년)

 

 

출판사는 『중력의 무지개』 번역 기간과 비용에 상당액이 투자되었고, 작가 지명도에 비해 대중성이 적다고 판단해 700부만 인쇄했다고 밝혔다. 700부 한정판으로 나왔는데 아마도 구매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가격이 아니었다면 한정 인쇄본이 동났을지도 모른다. 핀천이 국내에 인지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명성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마니아 독자는 꽤 있다. 많은 노력을 들어간 책을 대중성이 낮다고 자인하는 출판사의 변은 ‘이 책은 많이 팔지 못할 것이다’라고 책을 팔기 전부터 백기를 드는 꼴이다. 책을 많이 팔아서 생기는 수익도 중요하지만, 책의 가치를 독자에게 널리 알리려는 도전 정신이 없다면 출판사의 진정한 역할을 잊은 것과 같다. 출판사는 책을 수익이 되는 돈을 발굴하듯이 만들면 안 된다. 출판 여건이 어렵더라도 독자에게 떳떳하게 인정받을 가치가 있는 작가와 작품을 골라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독자에게 사랑받는 좋은 책’이 될 수 있다. 나 같은 내일도 책을 사는 놈을 위해서 출판사들은 도서정가제에 크게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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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6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0-01 16:23   좋아요 0 | URL
잘 안 읽혀도 천천히 읽어보세요. 서평 작성 기간이 짧은 게 흠이지만, 철학을 이해하려면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어요. ^^
 
고독한 미식가 - 솔로 미식가의 도쿄 맛집 산책, 증보판 고독한 미식가 1
구스미 마사유키 원작,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정임 옮김 / 이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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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나 한 끼 하자!”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나이 들게 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아닐까.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사회생활은 인간관계의 연속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대개 할 이야기가 있을 때 사람들은 식사자리를 잡는다. “식사나 한 끼 하시죠?”라는 말은 “우리 친밀감을 갖자”라는 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 그래서 한편 고마운 일이다. 좋은 사람들과 한 식탁 위의 같은 음식을 먹으며 쌓아가는 인간관계. 그 속에서 인간은 나 혼자만이 아닌 따스한 ‘우리’가 되어간다.

 

하지만 모든 식사가 그렇게 즐겁기만 할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다 보면 피치 못하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가 생겨난다. 본인이 해야 할 때도 때론 타인의 은밀한 청탁을 받아야 할 경우도 있다. 그때 밥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다. 그 자체로의 맛과 향을 잃은, 만남의 부속물이다.

 

현대인에게 주어지는 식사 시간의 소중함이야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조직과 여러 인과관계에서 놓여나는 유일한 자유 시간. 하지만 자기 뜻과는 무관하게 희생을 당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때의 식사는 잘 차려진 정찬인 경우가 많다.

 

이따금 홀로 즐기는 식사는 무엇보다 편하다. 식당에서 모처럼 외식을 하는 날이면 으레 접하는 광경 중의 하나가 바로 홀로 식사를 하러 오는 손님을 보는 것이다. 과거보다 ‘나 혼자 산다’는 사람이 확실히 많아졌다. 곧 ‘나 혼자 밥 먹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몇 달 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혼밥 레벨’이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혼밥'이란 '혼자 밥 먹기'의 줄임말이다. 총 9단계로 이루어진 ‘혼밥 레벨’은 1단계 편의점에서 혼자서 라면 먹기부터 2단계 푸드코트에서 먹기, 3단계 분식집에서 먹기 등 일상생활 도중 누구나 한 번쯤을 겪어봤을 법한 난이도에서 시작한다.

 

Level 1 - 편의점에서 혼자서 라면 먹기. 누구나 가능한 쉬운 수준
Level 2 - 3천 원짜리 선불 식당, 푸드코트에서 밥 먹기. 누구나 가능하고 테이블도 전부 다 벽보고 먹는 테이블
Level 3 - 분식집에서 먹기. 24시간 분식집에서 야간에 혼자 밥 먹기. 쉬운 수준
Level 4 - 패스트푸드점에서 먹기. 그룹․연인이 많이 와 용기를 필요로 하나 빠르게 먹고 가는 분위기라 수월
Level 5 - 중국집에서 먹기. 약간의 용기를 요하지만 아저씨들 혼자 먹는 경우 많아 쉬움
Level 6 - 전문요리집에서 먹기. 대부분 연인이나 그룹이 많아 약간의 용기를 요함
Level 7 - 피자가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먹기
Level 8 - 찜닭, 닭갈비, 고깃집, 전골집에서 먹기. 이건 애당초 그룹이 간단한 술 한 잔까지 하기 위해 가는 곳이며 약간의 조리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혼자 먹기 대단히 힘든 코스
Level 9 - 술집에서 혼자 술 먹기. 종업원이 “몇 분이세요?”라고 물었을 때 답변하기까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함

 

하지만 이어진 4단계부터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먹기, 중국집에서 혼자 먹기, 세련된 라면집에서 혼자 먹기 등 대부분 그룹으로 손님이 방문하는 식당 등을 제시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더욱이 7단계는 피자가게, 스파게티, 패밀리 레스토랑 등 100% 그룹이 찾는 곳을 제시하고 있으며, 8단계는 고깃집 등 애초에 그룹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식당을 제시해 ‘혼자 왔느냐고 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마지막 9단계는 술집에서 혼자서 술 마시기로 혼자서 안주를 맛있게 먹으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 ‘상식에 벗어난 용기’를 요구하고 있다.

 

‘백지장마저도 맞들면 낫다’는 세계관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판국에 식사를 혼자 해결하러 오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혼자 먹되 남들 특히 아는 사람들 눈에 뜨일까 봐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바빠서, 혹은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할 때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게 사회성 부족이나 성격 이상 등으로 여겨질까 겁낸다.

 

이웃 나라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심하다. 일본 대학생들 가운데 화장실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의 나 홀로 식사 자체는 딱히 뉴스랄 것도 없다. 점심시간에 혼자 산책하면서 빵을 먹거나 칸막이가 쳐진 식당에서 식사하는 ‘런치메이트(점심동료) 증후군’이 거론된 게 10년 전인 까닭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에 신경 쓰지 않고 어디서든 식사를 하는 대범한 용기를 가졌다. 심지어 음식의 맛을 음미하면서도 식당 안에 있는 손님들의 대화를 몰래 엿듣기도 한다. 그 사람은 바로 독신주의자 이노가시라 고로.

 

 

 

 

 

일 때문에 끼니 놓치는 게 다반사인 고로는 공복을 못 참는다. 늘 일 때문에 끼니를 놓친다. 허기진 배를 안고 주변의 식당을 찾는다. 무얼 먹고 싶은 기분인지, 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맛집을 찾는 데 어떤 ‘촉’이 작동한다. 적당히 마음에 드는 식당에 들어가 이것저것 주문한다.

 

 

 

 

 

 

혼자 먹지만 뭘 먹어도 많이 먹는다. 결과는 언제나 대체로 만족한다. 가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만나기도 하지만, 주인공은 일단 먹기 시작한 음식은 절대로 남기지 않는다. 만화는 뭘 많이 먹지도 않고 해설보다는 먹는 행위에 집중하는데 그 자체로 식욕을 자극한다. 이것저것 빼고 먹는 것 자체를 담백하게 묘사했다.

 

 

 

 

 

 

 

최근 외식문화의 보급과 서구식 식습관의 확산 등으로 여러 사람과 함께 그리고 빠르게 먹는 식습관이 자리 잡았다. 이렇다 보니 음식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오히려 잊어버린다. 우리는 모든 맛을 잊어버린 채 음식을 먹으면서 살았다.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 음식을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 식사의 즐거움은 크게 좌우된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때때로 나 자신만을 위한 식사를 즐기는 것도 좋다. 적어도 식사시간만큼은 세상사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부담스러운 대화에서 벗어나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조금은 불편할 때도 있다. 4명씩 앉게 되어 있는 대부분 식당들, 바쁜 시간이면 합석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1인분을 주문하면 안 되는 메뉴를 먹고 싶지만, 선택 자체를 거부당하는 것은 슬프다. 그렇지만 요즘은 싱글족을 위한 테이블이나 메뉴를 준비하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어 다행이다.

 

그래도 왠지 이상하거나 남의 눈치가 보인다고? 혹시 자신에게 쓸데없는 주술을 거는 것은 아닐까. ‘혼자 식사하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야. 그래서 나는 외로운 사람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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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1-14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혼자 밥 먹는거 전혀 거리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5단계까지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은 생각 좀 해 봐야겠네요 ㅎㅎㅎ
근데 맛있는 것들은 주로 2인분 이상 시켜야 하더라구요. 장사하시는 분 입장에선 이해가 가나 그럴땐 참 아쉽죠. 혼자 밥 한 번 먹는다고 이상할 것도 없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이 문제네요~

cyrus 2014-11-15 00:21   좋아요 0 | URL
저는 6단계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혼자 먹어야 할 상황이면 장소나 주위 사람들 눈치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데나 먹는 편입니다. 요즘은 싱글족이 늘어나서 1인용 메뉴나 식당이 생겼는데, 제가 사는 지역에는 그런 곳이 많지 않더군요.

조선인 2014-11-1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레벨9까지 클리어네요. 히죽.

cyrus 2014-11-15 00:23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은 혼밥 고수였군요. ㅎㅎㅎ 만화 주인공 고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성격이라서 술을 혼자 마시지 않거든요. 저도 마음이 적적할 때 식당에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펭귄클래식 6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1001-302] 성

 

 

 

 

‘내가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어쩌다 이곳에 서 있는 거라면 약간 절망적인 경우가 되겠지.’ 문득 이런 생각이 K에게 떠올랐다. (프란츠 카프카 『성』, 26쪽)

 

 

 

카프카가 구축한 ‘성’의 세계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근거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무력한 인간들을 지배하고 고립과 단절, 절망이 퍼져 있다. 주인공인 K는 정부의 측량기사로 일하게 되어 성 아랫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성에 들어가는 것도, 마을에 머무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곤경에 빠진다. 이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K는 결국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다. 환상적인 성의 풍경 이면에는 이 같은 악몽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이처럼 상징으로 가득한 작품을 한 가지 주제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스럽지만, K의 상황이 당시 사회의 심각한 관료주의와 그 폐해를 풍자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요행히 성에 들어간 K가 우연히 민원서류들이 무너질 정도로 높이 쌓인 채 방치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야말로 한 인간의 생사가 달린 절실한 문제들조차 서류철 속에 사장되고 있는 끔찍한 광경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좌절시킨다.

 

작품에서 주인공이 단지 K라고만 불린다. 그것은 K가 맞서는 관료조직 속에서 그가 어떤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닌 하나의 의미 없는 단순한 기호 K로서 존재할 뿐이다. K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성에서는 절박한 개인의 사정은 행정 처리에 있어 고려의 요소가 되지 않았다.

 

이것이 비단 작가가 경험한 현실만은 아니라는 것이 '성'의 핵심 주제일 것이다. 근대국가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관료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법과 절차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모든 일에 서류가 필요한 것도 어쩔 수 없다. 관료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K의 운명은 모든 시민의 운명이 될 수 있다는 데 그 끔찍함이 있다.

 

관료제는 대단히 합리적이고 체계적이지만, 그 조직 속의 각 개인은 거대조직 내에서 급격히 무의미해지고, 단순히 비인격적인 기계의 톱니바퀴로 전락하게 된다. 막스 베버는 개인의 삶이 규제와 관리적 억압이라는 철창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러한 관료조직 속에서 인간 삶의 무의미함을 잘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작가가 바로 카프카다. 베버가 당시 관료제의 모습을 이론적으로 고찰했다면 카프카는 관료제의 모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카프카의 작품은 그 시대 점증하는 관료화에 대한 불안을 극적으로 표현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이것으로 다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압축적이고 따라서 폭넓게 해석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미로와 같다. 카프카 작품의 주인공들은 미로와 같은 세계를 헤맨다. 『소송』의 주인공 요제프 K는 자신의 서른 살 생일 아침 돌연 죄명도 모른 채 낯모르는 사나이들에게 체포되어 무언지도 모르는 소송 때문에 1년 동안 동분서주 고민하다가 서른한 번째 생일 전날 밤에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느닷없는 사건 속에 던져져 당황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 속을 맴돌다가 영문도 모르고 사라져 간다. 그들에게는 탈출구가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카프카의 소설 자체도 뭐가 뭔지 제대로 모르겠고, 이해를 돕기 위해 읽어본 해설서도 알듯 모를 듯하다. 카프카의 장편소설, 특히 ‘고독 3부작’(『소송』, 『성』, 『소송』)을 도전하려면 따분함을 참고 끝까지 읽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얻은 것은 있다.카프카는 ‘절망과 불안의 기운이 감도는 미로를 만든 고독의 작가’ 라는 점이다.

 

독자도 K처럼 카프카가 만든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의미한 미로의 세계에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심지어 ‘고독의 미로’를 만든 카프카는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미궁을 탈출할 수 있도록 몸에다 실을 매준 아리아드네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미로의 설계자 다이달로스와 같은 상황이 되고 만다. 카프카는 자신이 설치한 'Kafkaeask'(카프카적인) 미로에 갇혀 버린 채 세기말의 문명으로부터 고립된 현대인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탈출을 시도해보지만, 구원의 날개가 상실된 이카루스의 비극적 운명처럼 카프카는 쓸쓸히 최후를 맞이한다. 날개가 위축된 한 마리의 까마귀(Kafka)에 불과했다. (카프카는 자신과의 대화를 책으로 펴낸 구스타브 야누흐에게 날개가 잘린 까마귀라고 말했다)

 

K가 머무는 마을은 미로로 이루어진 거대한 감옥이다. 마을에서 성으로 통하는 길은 없다. 성으로 통하는 것 같은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서 언제나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성 안에서 헤매는 K를 도와주는 자도 없다. 그가 가까이 오면 마을 사람들은 두려워하거나 철저하게 외면하거나 회피한다. 그의 측량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서 찾아온 조수 또한 K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조수 예레미아스는 K의 유일한 믿음이자 한때 성의 권력자 클람의 애인이었던 프리다를 호시탐탐 노린다. 그는 K와 프리다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행동도 한다. 그렇지만, 프리다 역시 아리아드네 같은 존재가 되지 못했다. K와 프리다를 연결해준 사랑이라는 이름의 실은 마을을 탈출하고 성으로 향할 수 있는 희망의 실이 될 수 없었다. 프리다는 점점 성으로 가기 위한 욕망이 강해지는 K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정작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한다. 성의 실체를 알고 싶은 K의 외로운 투쟁이 처량하다. K는 자신이 거대한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묶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을 끊지 못한다.

 

“예컨대 나는 지금 집에 가죠. 그렇지만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에요. 실제로는 특별히 나를 위해 설치된 감옥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이 감옥은 정말 보통 시민의 집과 유사하고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감옥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견고하죠. 그 때문에 탈출 시도는 차츰 줄어들죠. 눈에 보이는 사슬이 없다면, 사슬이 끊어질 수 없는 법이에요. 따라서 감금은 아주 평범한 일상의 존재, 지나치게 안락하지는 않은 일상의 존재로 체계화되어 있어요. 모든 것이 튼튼한 재료로 만들어지고 견고한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그것은 지옥으로 추락하는 승강기예요. 사람들은 승강기를 보지 못하죠. 그러나 눈을 감으면, 사람들은 승강기가 자신들 앞에 굉음을 내고 솨솨 소리를 내는 것을 듣게 되죠.” (구스타브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 문학과지성사 / 129~130쪽)

 

마을 사람들은 성을 알고 싶은 K의 욕망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성은 함부로 범접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권력의 세계다. 마을과 전혀 다른 미지의 세계다. 성의 관리가 내린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권력자를 모독하는 것과 같다. 권력자를 복종하지 않는 자는 살아 있어도 공동체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단절된 망자가 된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활이 평범하게 보일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권력자가 만든 사슬로 영원히 자유를 속박한다. 그러나 견고하게 만들어진 사슬이 끊어지더라도, 마을 사람들 그리고 K도 이곳에서 절대로 자유를 쟁취할 수 없다. 그곳은 ‘지옥으로 향하는 승강기’와 같다. 권력의 사슬을 풀고 자유를 갈망하는 자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나 다름없는 무서운 고독과 절망이다. 지금쯤 성으로 향하는 마을 입구에 가면 이런 글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 『신곡: 지옥 편』제3곡,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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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포콩  「첫번째 사랑의 방」

 

 

 

그것은 일생에 세 번 또는 네 번 이상 오지 않으리라. 눈을 뜨면, 행복이 지나간 통로인양 완강히 남아 있는 한 꿈의 추억. 행위는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빛살처럼 느껴지는 인상뿐이다. 그의 곁에 있었고, 그의 존재가 줄 수 있는 모든 은혜를 다 받았다는 무한한 향수가 이어지는 아침나절을 술렁이게 한다. 천사의 그림자, 전부(全部)의 옆을 지나가는 느낌.

 

(베르나르 포콩  『사랑의 방』에서, 32쪽)

 

 

 

 

 

 

 

 

 

 

 

 

 

 

 

 

 

 

 

내 언젠가 히스나무 이 가녀린 가지를 꺾어 두었지
가을도 가버렸으나 잊지는 말아라
우리는 이 땅에서 다시 보지 못할 거야
시간의 이 향기 히스나무의 이 가녀린 가지
그래 내 너를 기다리니 잊지는 말아라

 

(아폴리네르, '고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소유할 수도 없고,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나 잊히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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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는 맛, 색, 향이 중요하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좋아야 최고급 포도주로 인정받는다. 포도주를 맛보기 전에 가장 먼저 색깔을 확인한 후 코로 향을 느껴본다. 그다음에 포도주 한 모금을 입안 전체와 혀 주위를 약간 적셔 맛을 본다. 포도주가 상해 식초가 되었는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맛인지를 확인한다. 레스토랑에서 가서 포도주를 마시다가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에 다른 것으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한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를 포도주로 비교하자면,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다. 몽테뉴는 보르도 출신이다. 그가 쓴 『수상록』(Les essais)은 몽테뉴가 남긴 철저한 자기탐구의 결과물이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몽테뉴의 사색은 그가 살았던 성 안에서 오랫동안 숙성되었다. 『수상록』은 몽테뉴가 살면서 깨닫게 된 인생의 진리들이 함축되어 있다. 우린 오래된 포도주 같은 『수상록』을 읽으면서 몽테뉴의 철학을 음미한다.

 

 

 

 

 

 

 

 

 

 

 

 

 

 

 

 

 

 

앙투안 콩파뇽의 『인생의 맛』(책세상, 2014년)은 우리가 『수상록』을 어떻게 음미해야 하는지 살짝 간을 볼 수 있는 샘플이다. 내용을 읽기 전에 먼저 겉표지를 본다.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색깔을 확인하는 것처럼. 『인생의 맛』은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다. 무게가 가벼워서 휴대하기가 편하다. 겉표지를 확인했으면 프롤로그를 읽는다. 『수상록』에서 발췌한 문장을 중심으로 몽테뉴의 생각을 소개하는 저자의 시도가 좋다. 프롤로그는 포도주의 맛을 돋우는 향과 같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 입안에 포도주 한 모금을 머금으면서 천천히 맛을 보듯이 4~5쪽 정도 분량에 채워진 짧은 글을 천천히 읽어나간다. 그런데 계속 읽을수록 맛이 별로다. 톡 쏘는 식초 맛처럼 어설픈 문장과 오타가 몽테뉴 철학의 깊은 맛을 내는 데 방해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서거한 왕 앙리 2세의 왕비이자 발루아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앙리 3세의 어머니로서 아들을 대신해 섭정한 이 카트린 드 메디치에게 헌정된 것이다. (‘참여’, 13쪽)

 

13쪽에서 인용한 문장은 몽테뉴의 정직성과 마키아벨리의 기만과 위선을 비교하는 내용이다. 책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앙리 3세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치에게 헌정되었다고 적혀 있다. 문장만 놓고 보면, 독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카트린 드 메디치는 우르비노의 공작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1492~1519, ‘소(小) 로렌초’ 또는 ‘로렌초 2세’라고 부름)의 딸이다. ‘위대한 로렌초’(Lorenzo Il Magnifico, 로렌초 일 마니피코)로 알려진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1449~1492)의 증손녀이기도 하다.

 

 

 

 

 

 

 

 

 

 

 

 

 

 

 

 

 

 

메디치 가와 마키아벨리와의 관계는 복잡하다. 마키아벨리는 반(反) 메디치 모의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겪고, 투옥되었다. 메디치 가의 세력이 급부상하면서 마키아벨리는 모든 공직에서 쫓겨나고 만다. 특사로 풀려 난 그는 공직에 복귀하기 위해서 자신이 집필한 『군주론』을 느무르의 공작 줄리아노 디 로렌초 데 메디치(1479~1516)에게 헌정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느무르의 공작이 사망하는 바람에 『군주론』은 우르비노의 공작에게 바치게 되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으로 메디치 가가 분열된 이탈리아를 통일할 수 있는 조건을 알려줬고, 이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명예를 회복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우르비노의 공작은 『군주론』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공직 복귀도 실패했다.

 

그렇다고 『군주론』의 운명이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힌 채 메디치 가의 도서관에서 잠들어 있던 『군주론』은 우르비노 공작의 딸 카트린에 의해 빛을 보게 된다. 정적의 칼바람이 부는 정치적 격변기에 성장했던 카트린은 『군주론』을 탐독하면서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다.

 

카트린은 『군주론』의 진면목을 발견했고, 마키아벨리즘을 실천했다. 그렇지만, 마키아벨리가 애초에 카트린에게 헌정된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로 보면 그녀의 아버지에게 헌정되었다.

 

 

 

 

 

 

 

 

수상록』 제1권 30장을 인용한 문장에 오타가 있다. “파멸을 맞게 되리라는 것은 까많게 모른 채...” (25쪽) ‘까많게’가 아니라 ‘까맣게’로 고쳐야 한다.

 

‘낙마’ 편은 『수상록』 제2권 6장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도 어색한 문장이 있다.

 

 

 

 

말은 정신이 나간 채 고꾸라졌고, 나는 거기서 열두어 발짝 떨어진 곳에 나자빠졌다. 얼굴은 온통 멍이 들고 벗어졌고, 손에 쥐고 있던 검은 열 발짝쯤 앞에 떨어지고 허리띠는 조각조각이 났다. (『수상록』 제2권 6장에서, 31쪽)

 

 

나는 이 문장만 여러 번 읽었다. 특히 ‘멍이 들고 벗어졌고’라는 부분이 자꾸 눈에 걸렸다. 왜냐하면 얼굴의 피부(살갗)가 다쳤으면, ‘멍이 들고 (피부가/살갗이) 벗겨졌고’라고 쓰는 것이 맞다. ‘벗어지다’와 ‘벗겨지다’를 서로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혼동돼 쓰인다.

 

‘덮이거나 씌워진 물건이 저절로 흘러내리거나 떨어져 나가다.'의 뜻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벗어지다'를, ‘덮이거나 씌워진 물건이 외부의 힘에 의하여 떼어지거나 떨어지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벗겨지다’를 쓴다. 따라서 신발은 힘을 주면 ‘벗겨지고’, 발 크기가 맞지 않아 헐렁하면 신발이 ‘벗어진다’. 머리는 벗겨지지 않고 벗어진다. 몽테뉴는 발정 난 말의 힘을 이기지 못해 땅바닥으로 넘어지다가 그만 얼굴에 멍이 들고, 피부가 상처가 났다. 아니면, 옷이 벗겨질 수도 있다.

 

『수상록』과 『인생의 맛』을 읽어 보면 대체적으로 문장이 긴 편이다. 아마도 종속절과 반점으로 길게 이어진 프랑스 특유의 문장을 번역자가 그대로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문장은 짧고 간결할수록 읽기가 쉽다. 또 지나치게 반점이 많은 문장은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다.

 

 

 

 

맡은 역을 의식하며 행동해야 하고, 의무를 수행해야 하고, 우리의 행위와 존재를 혼동하지 말아야 하고, 내면의 양심과... (99쪽)

 

 

 

 

그러다가 우리는 깨닫게 된다. 권력자라면 스스로를 과도하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자신의 직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 어느 정도 유머 감각을 갖추고 비아냥거림을 수용할 줄 아는 것이 낫다는 것을. (100쪽)

 

 

 

 

갈레노스으로부터 (120쪽) → 갈레노스로부터

 

그들은 정자의 생식 기능에 가장 중요한 능력을 연결시킨 이들이었다. (120쪽)
→ 그들은 정자의 생식 기능에 가장 중요한 능력을 연결한 장본인이다.

 

'~시키다'는 '남에게 어떤 일을 하게 하다'의 뜻이다. 정자의 생식 기능에 가장 중요한 능력을 그들이 직접 한 것이지, 남에게 시킨 것은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죽음을 맞을 준비를 준비하는 것이다. (140쪽)
→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죽음을 맞을 준비한다.

 

삶은 삶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140쪽)
→ 삶 자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밖에 교정해야 할 문장으로는 22쪽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든 모든 것은 흐른다.’50쪽의 ‘그는 이를 인간은 우주의 축도라는 원리에 입각해 신체에 비유해 세계는 한쪽 다리는 튼튼하고 다른 쪽은 불구인 기형이 될 것이며, 한쪽 다리가 흰 비뚜름한 몸으로 절룩거릴 것이라고 말한다’가 있다.

 

이 부분은 다락방님이 먼저 지적했다. 『인생의 맛』 책임 편집자께서 50쪽의 문장을 다음 쇄에 수정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책에 교정할 내용이 너무 많다. 아무리 책이 좋은 내용이라도 2% 부족한 편집은 독서의 몰입을 방해한다. 또 책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에밀 파게의 『단단한 독서』(유유출판사, 2014년)가 아니었으면, 잘못된 문장을 발견하지 못했다. 천천히 읽고, 거듭하여 읽기. 원래 몽테뉴의 글은 천천히 읽고 음미해야 한다. 그렇지만, 파게는 느리게 읽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주장한다. 천천히 책을 읽으면, 비로소 불명확한 문장과 단어가 보인다.

 

조금 유별나기는 해도 문헌학자들은 이 세계에서 가능한 최상의 감정을 느끼려는 일종의 집착을 보인다. 우리도 이러한 집착을 우리의 원칙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텍스트가 정확할까?' 천천히 책을 읽고, 대상을 봤을 때 처음으로 파악한 의미를 경계하며, 무턱대고 책에 빠져들지 않으면서도 책을 읽을 때 나태함에 젖지 않게 해 준다. (『단단한 독서』에서, 18쪽)

 

책을 읽다가 어색한 문장이나 오자를 발견하고 지적하는 일을 유별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냥 지나치게 되면 오독할 위험이 있다. 문장을 여러 번 읽었는데 이해가 되지 않으면 맞는지 틀렸는지 점검해야 한다. 독해 능력이 달린 우리를 자책할 필요가 없다. 독자를 읽기 어렵게 만드는 문장이 있다면 저자나 번역자의 능력을 의심해야 한다.

 

다만, 초판에 잘못된 사항이 너무 많아 형편이 없더라도 그것을 출판사과 번역자가 받아들이고 다음 책을 펴낼 때 바로 잡는다면 잃어버린 독자의 신뢰는 다시 형성될 수 있다. 초판의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 버젓이 출판되어 유통된다면 독자에게 좋은 책을 알린다는 출판사의 취지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지금도 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독자의 의견이 빗발치는데도 모르쇠 하는 출판사가 몇 군데 있다. 이제 곧 다가오는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로 출판사를 향한 독자의 원망도 날로 높아져만 가는데 가격이 싸지 않은 책이 내용마저도 엉망이라면 책을 찾는 독자의 발길이 끊어진다.

 

파게는 첫 독서는 연사의 즉흥 연설을 읽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즉흥 연설은 불완전한 형태의 문장이 많다. 그렇지만, 조금만 다듬으면 훌륭한 연설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독자는 이런 책을 거듭 읽음으로써 잘못된 문체와 언어를 바로 잡는다. 책은 저자와 편집자 그리고 출판사가 만드는 것이지만, 초판의 실수와 허점을 발견하고 고치려는 독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런 독자의 목소리를 출판사와 저자는 따끔하게 느껴지는 비판 정도로 여기거나 아예 무시하면 안 된다. 독자의 검토 요청은 지금보다 더 좋은 책이 나오기를 바라는 애정 어린 관심이다.

 

 


P.s 지난주에 에밀 파게의 『단단한 독서』 초판을 읽다가, 잘못 적힌 내용을 발견했다. 『법의 정신』의 저자는 몽테스키외인데, 책은 ‘몽테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유유출판사 페이스북에 알렸다. 페이스북 담당자는 다음 쇄에 바로 잡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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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eur 2014-11-1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인생의 맛》 담당 편집자입니다. 우선 책 본문의 오자와 부정확한 사실로 독서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독자님이 지적하신 부분들을 바탕으로 본문을 다시 한번 전면적으로 살펴 2쇄에 반영하겠습니다.
《군주론》이 카트린 드 메디치가 아닌 로렌초 2세에게 헌정된 사실은 간단한 검색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원문을 잘못 보아 오역이 발생했습니다. 지적해주시지 않았다면 큰 오류가 계속 남아 있을 뻔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다만, 지적해주신 문장들 중 몇 가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맞을 준비를 준비하는 것이다”는 원문대로 번역된 것이 맞습니다. 앞선 문장을 보면 몽테뉴는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못하는 15분간의 고통(죽음의 고통)에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치 않다”고 했습니다. 지적하신 문장은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데, 그러니까 몽테뉴가 말하려는 바는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 15분의 고통을 맞이할 준비를 근심 속에 준비하고 있는 격이다”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반점으로 연결된 긴 문장들의 경우는, 의미 전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원문의 호흡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저자인 앙투안 콩파뇽이 몽테뉴의 어조를 의식하며 쓴 글이기에 그 점을 살리고, 우리말로 기계적으로 번역한 글이 되지 않도록 한 문장 한 문장 고심했습니다. 그렇지만 섬세하게 살피지 못해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좀 더 다듬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벗어지다’의 의미에는 ‘피부, 거죽 따위가 깎이거나 일어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허물이 벗어지다’처럼 저절로 탈락하는 경우도 있으나, ‘넘어져서 무릎이 벗어지다’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 탈락하는 경우도 이에 포함됩니다.
지적해주신 부분들 중 명백한 오류들을 바로잡고, 더 부드럽게 읽힐 수 있도록 다듬어 2쇄를 찍을 때는 더 나아진 책을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성웅 2014-11-12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꼼꼼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에는 사실 저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한국어 독자를 위한다며 자연스럽게 몽테뉴라고 착각해 버렸네요. 재쇄가 생각보다 빨리 될 거 같아 저도 다시 읽고는 있는데, 혹여나 위에서 말씀해주신 부분 외에도 어색한 문장이나 의구심이 드는 부분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마운 마음 전하며,

최성웅 드림.

czarny.tistory.com

cyrus 2014-11-12 23: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성웅님. 며칠 전에 유유출판사 관계자분에게 오자를 발견한 사실을 알렸습니다. 글을 옮기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 책을 평소처럼 속독했다면, 세세한 실수를 그냥 지나쳐버렸을 겁니다.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원문을 새로운 번역으로 책을 펴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밀 파게가 강조한 것처럼 천천히, 거듭하여 읽을수록 정말 좋은 책입니다. 앞으로도 독자를 위한 좋은 책을 번역하고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