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는 맛, 색, 향이 중요하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좋아야 최고급 포도주로 인정받는다. 포도주를 맛보기 전에 가장 먼저 색깔을 확인한 후 코로 향을 느껴본다. 그다음에 포도주 한 모금을 입안 전체와 혀 주위를 약간 적셔 맛을 본다. 포도주가 상해 식초가 되었는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맛인지를 확인한다. 레스토랑에서 가서 포도주를 마시다가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에 다른 것으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한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를 포도주로 비교하자면,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다. 몽테뉴는 보르도 출신이다. 그가 쓴 『수상록』(Les essais)은 몽테뉴가 남긴 철저한 자기탐구의 결과물이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몽테뉴의 사색은 그가 살았던 성 안에서 오랫동안 숙성되었다. 『수상록』은 몽테뉴가 살면서 깨닫게 된 인생의 진리들이 함축되어 있다. 우린 오래된 포도주 같은 『수상록』을 읽으면서 몽테뉴의 철학을 음미한다.

 

 

 

 

 

 

 

 

 

 

 

 

 

 

 

 

 

 

앙투안 콩파뇽의 『인생의 맛』(책세상, 2014년)은 우리가 『수상록』을 어떻게 음미해야 하는지 살짝 간을 볼 수 있는 샘플이다. 내용을 읽기 전에 먼저 겉표지를 본다.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색깔을 확인하는 것처럼. 『인생의 맛』은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다. 무게가 가벼워서 휴대하기가 편하다. 겉표지를 확인했으면 프롤로그를 읽는다. 『수상록』에서 발췌한 문장을 중심으로 몽테뉴의 생각을 소개하는 저자의 시도가 좋다. 프롤로그는 포도주의 맛을 돋우는 향과 같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 입안에 포도주 한 모금을 머금으면서 천천히 맛을 보듯이 4~5쪽 정도 분량에 채워진 짧은 글을 천천히 읽어나간다. 그런데 계속 읽을수록 맛이 별로다. 톡 쏘는 식초 맛처럼 어설픈 문장과 오타가 몽테뉴 철학의 깊은 맛을 내는 데 방해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서거한 왕 앙리 2세의 왕비이자 발루아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앙리 3세의 어머니로서 아들을 대신해 섭정한 이 카트린 드 메디치에게 헌정된 것이다. (‘참여’, 13쪽)

 

13쪽에서 인용한 문장은 몽테뉴의 정직성과 마키아벨리의 기만과 위선을 비교하는 내용이다. 책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앙리 3세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치에게 헌정되었다고 적혀 있다. 문장만 놓고 보면, 독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카트린 드 메디치는 우르비노의 공작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1492~1519, ‘소(小) 로렌초’ 또는 ‘로렌초 2세’라고 부름)의 딸이다. ‘위대한 로렌초’(Lorenzo Il Magnifico, 로렌초 일 마니피코)로 알려진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1449~1492)의 증손녀이기도 하다.

 

 

 

 

 

 

 

 

 

 

 

 

 

 

 

 

 

 

메디치 가와 마키아벨리와의 관계는 복잡하다. 마키아벨리는 반(反) 메디치 모의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겪고, 투옥되었다. 메디치 가의 세력이 급부상하면서 마키아벨리는 모든 공직에서 쫓겨나고 만다. 특사로 풀려 난 그는 공직에 복귀하기 위해서 자신이 집필한 『군주론』을 느무르의 공작 줄리아노 디 로렌초 데 메디치(1479~1516)에게 헌정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느무르의 공작이 사망하는 바람에 『군주론』은 우르비노의 공작에게 바치게 되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으로 메디치 가가 분열된 이탈리아를 통일할 수 있는 조건을 알려줬고, 이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명예를 회복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우르비노의 공작은 『군주론』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공직 복귀도 실패했다.

 

그렇다고 『군주론』의 운명이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힌 채 메디치 가의 도서관에서 잠들어 있던 『군주론』은 우르비노 공작의 딸 카트린에 의해 빛을 보게 된다. 정적의 칼바람이 부는 정치적 격변기에 성장했던 카트린은 『군주론』을 탐독하면서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다.

 

카트린은 『군주론』의 진면목을 발견했고, 마키아벨리즘을 실천했다. 그렇지만, 마키아벨리가 애초에 카트린에게 헌정된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로 보면 그녀의 아버지에게 헌정되었다.

 

 

 

 

 

 

 

 

수상록』 제1권 30장을 인용한 문장에 오타가 있다. “파멸을 맞게 되리라는 것은 까많게 모른 채...” (25쪽) ‘까많게’가 아니라 ‘까맣게’로 고쳐야 한다.

 

‘낙마’ 편은 『수상록』 제2권 6장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도 어색한 문장이 있다.

 

 

 

 

말은 정신이 나간 채 고꾸라졌고, 나는 거기서 열두어 발짝 떨어진 곳에 나자빠졌다. 얼굴은 온통 멍이 들고 벗어졌고, 손에 쥐고 있던 검은 열 발짝쯤 앞에 떨어지고 허리띠는 조각조각이 났다. (『수상록』 제2권 6장에서, 31쪽)

 

 

나는 이 문장만 여러 번 읽었다. 특히 ‘멍이 들고 벗어졌고’라는 부분이 자꾸 눈에 걸렸다. 왜냐하면 얼굴의 피부(살갗)가 다쳤으면, ‘멍이 들고 (피부가/살갗이) 벗겨졌고’라고 쓰는 것이 맞다. ‘벗어지다’와 ‘벗겨지다’를 서로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혼동돼 쓰인다.

 

‘덮이거나 씌워진 물건이 저절로 흘러내리거나 떨어져 나가다.'의 뜻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벗어지다'를, ‘덮이거나 씌워진 물건이 외부의 힘에 의하여 떼어지거나 떨어지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벗겨지다’를 쓴다. 따라서 신발은 힘을 주면 ‘벗겨지고’, 발 크기가 맞지 않아 헐렁하면 신발이 ‘벗어진다’. 머리는 벗겨지지 않고 벗어진다. 몽테뉴는 발정 난 말의 힘을 이기지 못해 땅바닥으로 넘어지다가 그만 얼굴에 멍이 들고, 피부가 상처가 났다. 아니면, 옷이 벗겨질 수도 있다.

 

『수상록』과 『인생의 맛』을 읽어 보면 대체적으로 문장이 긴 편이다. 아마도 종속절과 반점으로 길게 이어진 프랑스 특유의 문장을 번역자가 그대로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문장은 짧고 간결할수록 읽기가 쉽다. 또 지나치게 반점이 많은 문장은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다.

 

 

 

 

맡은 역을 의식하며 행동해야 하고, 의무를 수행해야 하고, 우리의 행위와 존재를 혼동하지 말아야 하고, 내면의 양심과... (99쪽)

 

 

 

 

그러다가 우리는 깨닫게 된다. 권력자라면 스스로를 과도하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자신의 직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 어느 정도 유머 감각을 갖추고 비아냥거림을 수용할 줄 아는 것이 낫다는 것을. (100쪽)

 

 

 

 

갈레노스으로부터 (120쪽) → 갈레노스로부터

 

그들은 정자의 생식 기능에 가장 중요한 능력을 연결시킨 이들이었다. (120쪽)
→ 그들은 정자의 생식 기능에 가장 중요한 능력을 연결한 장본인이다.

 

'~시키다'는 '남에게 어떤 일을 하게 하다'의 뜻이다. 정자의 생식 기능에 가장 중요한 능력을 그들이 직접 한 것이지, 남에게 시킨 것은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죽음을 맞을 준비를 준비하는 것이다. (140쪽)
→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죽음을 맞을 준비한다.

 

삶은 삶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140쪽)
→ 삶 자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밖에 교정해야 할 문장으로는 22쪽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든 모든 것은 흐른다.’50쪽의 ‘그는 이를 인간은 우주의 축도라는 원리에 입각해 신체에 비유해 세계는 한쪽 다리는 튼튼하고 다른 쪽은 불구인 기형이 될 것이며, 한쪽 다리가 흰 비뚜름한 몸으로 절룩거릴 것이라고 말한다’가 있다.

 

이 부분은 다락방님이 먼저 지적했다. 『인생의 맛』 책임 편집자께서 50쪽의 문장을 다음 쇄에 수정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책에 교정할 내용이 너무 많다. 아무리 책이 좋은 내용이라도 2% 부족한 편집은 독서의 몰입을 방해한다. 또 책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에밀 파게의 『단단한 독서』(유유출판사, 2014년)가 아니었으면, 잘못된 문장을 발견하지 못했다. 천천히 읽고, 거듭하여 읽기. 원래 몽테뉴의 글은 천천히 읽고 음미해야 한다. 그렇지만, 파게는 느리게 읽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주장한다. 천천히 책을 읽으면, 비로소 불명확한 문장과 단어가 보인다.

 

조금 유별나기는 해도 문헌학자들은 이 세계에서 가능한 최상의 감정을 느끼려는 일종의 집착을 보인다. 우리도 이러한 집착을 우리의 원칙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텍스트가 정확할까?' 천천히 책을 읽고, 대상을 봤을 때 처음으로 파악한 의미를 경계하며, 무턱대고 책에 빠져들지 않으면서도 책을 읽을 때 나태함에 젖지 않게 해 준다. (『단단한 독서』에서, 18쪽)

 

책을 읽다가 어색한 문장이나 오자를 발견하고 지적하는 일을 유별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냥 지나치게 되면 오독할 위험이 있다. 문장을 여러 번 읽었는데 이해가 되지 않으면 맞는지 틀렸는지 점검해야 한다. 독해 능력이 달린 우리를 자책할 필요가 없다. 독자를 읽기 어렵게 만드는 문장이 있다면 저자나 번역자의 능력을 의심해야 한다.

 

다만, 초판에 잘못된 사항이 너무 많아 형편이 없더라도 그것을 출판사과 번역자가 받아들이고 다음 책을 펴낼 때 바로 잡는다면 잃어버린 독자의 신뢰는 다시 형성될 수 있다. 초판의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 버젓이 출판되어 유통된다면 독자에게 좋은 책을 알린다는 출판사의 취지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지금도 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독자의 의견이 빗발치는데도 모르쇠 하는 출판사가 몇 군데 있다. 이제 곧 다가오는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로 출판사를 향한 독자의 원망도 날로 높아져만 가는데 가격이 싸지 않은 책이 내용마저도 엉망이라면 책을 찾는 독자의 발길이 끊어진다.

 

파게는 첫 독서는 연사의 즉흥 연설을 읽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즉흥 연설은 불완전한 형태의 문장이 많다. 그렇지만, 조금만 다듬으면 훌륭한 연설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독자는 이런 책을 거듭 읽음으로써 잘못된 문체와 언어를 바로 잡는다. 책은 저자와 편집자 그리고 출판사가 만드는 것이지만, 초판의 실수와 허점을 발견하고 고치려는 독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런 독자의 목소리를 출판사와 저자는 따끔하게 느껴지는 비판 정도로 여기거나 아예 무시하면 안 된다. 독자의 검토 요청은 지금보다 더 좋은 책이 나오기를 바라는 애정 어린 관심이다.

 

 


P.s 지난주에 에밀 파게의 『단단한 독서』 초판을 읽다가, 잘못 적힌 내용을 발견했다. 『법의 정신』의 저자는 몽테스키외인데, 책은 ‘몽테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유유출판사 페이스북에 알렸다. 페이스북 담당자는 다음 쇄에 바로 잡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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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eur 2014-11-1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인생의 맛》 담당 편집자입니다. 우선 책 본문의 오자와 부정확한 사실로 독서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독자님이 지적하신 부분들을 바탕으로 본문을 다시 한번 전면적으로 살펴 2쇄에 반영하겠습니다.
《군주론》이 카트린 드 메디치가 아닌 로렌초 2세에게 헌정된 사실은 간단한 검색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원문을 잘못 보아 오역이 발생했습니다. 지적해주시지 않았다면 큰 오류가 계속 남아 있을 뻔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다만, 지적해주신 문장들 중 몇 가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맞을 준비를 준비하는 것이다”는 원문대로 번역된 것이 맞습니다. 앞선 문장을 보면 몽테뉴는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못하는 15분간의 고통(죽음의 고통)에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치 않다”고 했습니다. 지적하신 문장은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데, 그러니까 몽테뉴가 말하려는 바는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 15분의 고통을 맞이할 준비를 근심 속에 준비하고 있는 격이다”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반점으로 연결된 긴 문장들의 경우는, 의미 전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원문의 호흡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저자인 앙투안 콩파뇽이 몽테뉴의 어조를 의식하며 쓴 글이기에 그 점을 살리고, 우리말로 기계적으로 번역한 글이 되지 않도록 한 문장 한 문장 고심했습니다. 그렇지만 섬세하게 살피지 못해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좀 더 다듬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벗어지다’의 의미에는 ‘피부, 거죽 따위가 깎이거나 일어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허물이 벗어지다’처럼 저절로 탈락하는 경우도 있으나, ‘넘어져서 무릎이 벗어지다’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 탈락하는 경우도 이에 포함됩니다.
지적해주신 부분들 중 명백한 오류들을 바로잡고, 더 부드럽게 읽힐 수 있도록 다듬어 2쇄를 찍을 때는 더 나아진 책을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성웅 2014-11-12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꼼꼼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에는 사실 저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한국어 독자를 위한다며 자연스럽게 몽테뉴라고 착각해 버렸네요. 재쇄가 생각보다 빨리 될 거 같아 저도 다시 읽고는 있는데, 혹여나 위에서 말씀해주신 부분 외에도 어색한 문장이나 의구심이 드는 부분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마운 마음 전하며,

최성웅 드림.

czarny.tistory.com

cyrus 2014-11-12 23: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성웅님. 며칠 전에 유유출판사 관계자분에게 오자를 발견한 사실을 알렸습니다. 글을 옮기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 책을 평소처럼 속독했다면, 세세한 실수를 그냥 지나쳐버렸을 겁니다.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원문을 새로운 번역으로 책을 펴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밀 파게가 강조한 것처럼 천천히, 거듭하여 읽을수록 정말 좋은 책입니다. 앞으로도 독자를 위한 좋은 책을 번역하고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