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한 성당에 에케 호모(Ecce Homo)라는 제목의 오래된 벽화가 있었다. 에케 모호는 이 사람을 보라는 뜻의 라틴어. 이 벽화에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성당 신도(그녀는 복원 작업을 해본 적이 없는 수공예 교사였다)는 벽화 복원 작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벽화를 복원하는 데 실패한다.

 

 

 

 

    

 

 

예수의 얼굴은 사라지고 원숭이처럼 생긴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남게 된 것이다. 스페인 언론은 이 벽화를 공개하면서 역사상 최악의 복원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벽화는 명성을 얻었다. 외국 네티즌들은 복원에 실패한 벽화를 이 원숭이를 보라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벽화를 보려고 성당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뜨거운 반응에도 예수를 존경하는 종교인들과 예술을 사랑하는 미술 전문가들은 예수의 얼굴이 사라진 벽화를 실패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치렁치렁한 긴 머리와 수염 없는 예수의 얼굴에 위엄이 사라졌으며 아름답지 않다고 느낀다. 머리카락 잘린 삼손(Samson)이 힘을 잃은 것처럼 수염 없는 예수는 영적인 권위를 잃어버린다.

    

 

 

 

 

 

 

 

 

 

 

 

 

 

 

 

* [절판] 다니엘라 마이어, 클라우스 마이어 (작가정신, 2004)

 

 

 

남자의 인상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 모양과 수염이다. 그러나 털의 중요성은 그 정도로 단순하지만 않다. 남성의 털은 남성성의 상징으로, 남성성은 힘의 상징으로, 그 힘은 권위의 상징으로 점점 복합된 이미지를 형성한다. ‘체모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달린 (작가정신)은 털에 얽힌 인간의 문화와 미적 가치가 시대별로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수염은 단순히 인상을 만들어주는 털에 그치지 않는다. 수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남자들의 체면과 권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수염 옹호론자면도 옹호론자는 오랜 기간 동안 서로 힘을 겨뤄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수염이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파라오(Pharaoh)만이 수염을 기를 수 있었다. 남성 종교인들은 예수의 남성성과 권위를 향상하기 위해 수염을 예찬했으며 자신들도 수염을 길렀다. 반면 면도를 지향하는 종교인들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 사제들은 털을 세속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머리카락과 눈썹을 밀었다고 한다. 그들은 신의 몸에 털 한 올이 없다고 믿었다. 학자들도 수염 대 면도의 대립에 동참했다. 수염을 지성의 상징으로 보는 학자들의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한때 수염 기르기를 거부하는 학자들의 주장도 인기를 얻었다.

    

 

 

 

 

 

 

 

 

 

 

 

 

 

 

 

* 크리스토퍼 올드스톤-모어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사일런스북, 2019)

 

 

 

은 현재 절판된 책이다. 체모에 관한 흥미로운 역사를 보여준 의 빈자리를 채운 책이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사일런스북)이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도 체모의 문화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수염과 면도에 중점을 맞춘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보다 분량이 작다. 하지만 의 공동 저자는 주류 역사가 외면한 여성의 체모, 머리카락, 대머리에 관심을 보인 옛사람들의 기록에 주목한다.

    

 

 

 

 

 

 

 

 

 

 

 

 

 

 

* [절판] 베아트리스 퐁타넬 치장의 역사(김영사, 2004)

 

 

 

남자들은 자신의 얼굴에 기른 수염을 과시했지만, 여성이 수염을 기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자들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위해 수염뿐만 아니라 체모를 기르지 않는 것을 권장했다. 이로 인해 여성은 체모를 언제나 수치스럽고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인식했다. 치장의 역사는 여성의 체모 제거가 가장 오래된 화장 문화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로마 귀부인들은 온 몸과 얼굴에 난 털은 물론 콧구멍에 난 털까지도 모조리 뽑았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부인들은 고귀함의 상징이었던 넓은 이마를 만들고자 눈썹과 두개골 상부 머리카락을 뽑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작품 <모나리자>를 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미인상을 확인할 수 있다. 여인의 입가에 띤 은은한 미소를 주목한 사람들은 여인의 얼굴에 눈썹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 쉴라 제프리스 코르셋(열다북스, 2018)

    

 

 

의 공동 저자는 모든 문화권에 나타난 여성의 제모 제거 풍습을 고문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제모는 길고 긴 여성 억압의 역사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탈 코르셋을 지향하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고 있다. 국내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선호하는 호주의 여성학자 쉴라 제프리스(Sheila Jeffreys)는 미용 관습이 여자의 순종을 표시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녀가 말한 순종은 여자가 남자를 위해 성적으로 복무하려는 의지와 성적 복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 모두를 의미한다. 대부분 남자는 여성의 매끄러운 피부를 선호한다. 그리고 털이 없는 여성 겨드랑이와 음부 페티쉬(fetish)가 있는 남자들이 있다. 쉴라 제프리스를 포함한 탈 코르셋 지지자들은 여자는 이런 남자들을 위해 제모를 하게 되고, ‘아름답고 순종적인 여성성을 실천할 것을 강요받는다고 주장한다.

 

 

 

 

 

 

 

 

 

 

 

 

 

 

 

 

 

 

 

* [품절] 키레네의 시네시오스 《대머리 예찬(21세기북스, 2005)

 

   

 

수염 대 면도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돼서 그런지 머리카락 대 대머리의 역사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 네티즌들의 키보드 배틀(온라인 언쟁)을 부추기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대머리 또는 탈모 인에 대한 차별 문제이다. 대머리와 탈모 인을 긍정하는 사람들은 탈모를 희화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머리카락 없는 사람의 심리를 위축시킨다고 주장한다. 사실 머리카락 대 대머리논쟁은 탈모 환자가 급격히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머리카락 대 대머리의 역사도 수염 대 면도의 역사만큼 오래 됐다. 고대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키레네의 시네시오스(Synesios of Cyrene)는 탈모와 대머리를 예찬한 최초의 인물이다.

 

시네시오스는 대머리였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자 경쟁자인 황금 입의 디온(golden-mouthed, ‘황금 입은 별명이고, 본명은 ‘Dio Chrysostom’이다)이 쓴 글인 <머리카락 예찬>을 보자 분노한다. <머리카락 예찬>은 말 그대로 머리카락이 풍성한 사람을 예찬한 글이다. 시네시오스는 <머리카락 예찬>에 대한 반론으로 대머리 예찬(21세기북스)을 쓴다. 그는 이 글에서 대머리가 지성의 상징인 이유를 열거한다. 그런데 그가 내세운 몇 가지 이유를 지금 보면 억지스럽고 논리적이지 않다. 시네시오스는 일 년 내내 태양에서 나오는 빛을 쬔 대머리는 강철 같이 단단해져서 모든 질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태양 자외선 때문에 피부가 상할 수 있어서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

 

강철 대머리의 우수성을 주장한 시네시오스의 주장을 재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비록 구전된 일화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Aeschylos)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스킬로스는 하늘에 떨어진 거북 등껍질에 맞아 죽었다. 독수리는 포획한 거북의 딱딱한 등껍질을 깨기 위해 거북을 바위에 떨어뜨렸고, 하필 거북이 아이스킬로스의 머리를 명중한 것이다. 아이스킬로스는 햇볕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대머리였다고 한다. 아마도 독수리는 아이스킬로스의 대머리를 단단한 바위로 보였던 것 같다. 위대한 비극 작가답게 그는 최후의 작품인 대머리의 비극을 만들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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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20-03-1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날짜에 저도 털에 대한 페이퍼를 쓴거로군요~저는 머리털^^
그런데 성당 벽화는 종교를 떠나서 봐도 복원 너무 못 한 거 아닌가요? ㅎㅎ
복원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켜 버렸네요..화풍은 앤서니 브라운 풍?

cyrus 2020-03-17 18:06   좋아요 0 | URL
저는 예수를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의 존재로 묘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남성 종교인들은 예수가 남성이라는 근거를 내세워 권위를 획득했어요. 물론 기독교인들은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 ^^;;
 
괴기X-파일
이반 투르게네프 외 / 문학수첩 / 1995년 7월
평점 :
절판


 

 

 

공포 X파일괴기 X파일1995년에 나온 책이다. 부제는 세계의 대작가가 쓴 공포 · 괴기 걸작선이다. 두 권의 책 모두 부제가 같다. 1995년에 나는 국민 학생이었다. 미국 드라마 <The X File>199410월부터 KBS에서 방영되었다.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부터 방송, 언론, 출판 모든 업계에 ‘X 파일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괴기 X파일이다. 짝을 맞추려면 공포 X파일도 있어야 하겠지만, 공포 X파일에 있는 작품 대부분은 다른 번역본에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공포 X파일을 당장 구매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내가 처음 보는 단편소설 서너 편이 공포 X파일에 포함되어 있어서 사지 않을 수가 없다.

 

 

 

 

 

 

대작가다운 기상천외한 발상, 치밀한 구성

세계 전통 호로물(...)의 진수!

 

 

 

    

 

괴기 X파일에 총 열두 편의 이야기가 있다. 이 중에서 한 편은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괴담(‘유령의 구두’)이다. 괴기 X파일수록작 중에 새로 번역되어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다.

 

    

 

* 탑 속의 방(Room in the tower, 1912)

에드워드 프레더릭 벤슨(Edward Frederic Benson)

탑 실 (뱀파이어 걸작선)

 

 

* 저주받은 일가(The Old Nurse’s Story, 1852)

엘리자베스 개스켈(Elizabeth Gaskell)

늙은 보모 이야기 (세계 호러 걸작선 2)

 

 

* 복수의 불(The Cone, 1895)

원뿔 (허버트 조지 웰스: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

솔방울 (세계 호러 걸작선 2

 

 

* 이상한 인형(The Dancing Partner, 1928)

제롬 K. 제롬(Jerome Klapka Jerome)

댄싱 파트너 (세계 호러 단편 100)

 

 

* 보이지 않는 지배자 호를라(Le Horla, 1885)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오를라 (기 드 모파상: 비곗덩어리 외 62)

 

 

 

괴기 X파일의 번역자는 작품 원제와 발표 연도를 표기하지 않았다. 이러면 공포 소설을 수집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특히 우리말 제목만 보고 이 작품이 국내 초역인지 아닌지 단번에 확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제와 다른 우리말 제목이 붙여진 번역작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나는 새벽에 구글(Google)을 이용해서 작품 원제와 발표 연도를 확인했다. 하지만 영국 괴담 유령의 구두출처는 확인하지 못했다.

 

 

 

 

 

 

 

악마의 유혹

러시아어 원제: Pokhozhdeniya podporuchika Bubnova (1842)

The Adventures of Second Lieutenant Bubnov

Bubnoff and the Devil

이반 투르게네프(Ivan Sergeevich Turgenev)

 

 

 

국내 초역. 투르게네프의 초기 작품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악마는 무섭다기보다는 오히려 익살스럽다.

 

이반 안드레비치 부브노프 중위(번역본에는 소위라고 적혀 있는데, 오역이다)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기 없는 평범한 인물이다. 어느 날 부브노프는 악마를 만난다. 악마는 생긴 건 무서워도 성격이 유쾌하다. 악마는 부브노프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그 집에 악마의 할머니와 악마의 손녀가 살고 있다. 손녀의 이름은 바베비보부. 손녀는 부브노프에게 사랑한다면서 고백한다. 하지만 부브노프는 손녀의 고백을 거부한다.

 

할머니는 부브노프와 바베비보부를 결혼시키고 싶어 한다. 여기에 악마도 껴서 결혼을 부추긴다. 그 와중에 바베이보부는 부르노프를 잡아먹고 싶어서 입맛을 다시고, 부프노프는 자신이 악마와 결혼한 이후의 일을 상상한다. 그는 한가하게 악마와 결혼해서 태어난 자녀의 사회적 신분이 어떻게 될지 생각한다. 악마에게 잡아먹을 위기가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부브노프는 속물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이제야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부브노프는 악마의 집을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덫에 걸린 먹잇감을 그냥 보내줄 악마들이 아니다. 악마들은 소위의 몸을 갈가리 찢어서 잡아먹는다.

 

다음 날 아침에 마을 사람들은 길에 누워 있는 부브노프를 발견한다. 의식을 회복한 부브노프는 악마와 만났던 일을 잊지 못한다. 그는 내가 만일 나폴레옹이라면, 악마를 모조리 없애 버리겠어!”라고 큰소리친다.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엔딩이지만, 소설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위는 장수했지만, 죽을 때까지 그의 계급은 중위였다.

 

 

 

 

 

 

 

죽은 자의 약속

Keeping His Promise (1906)

앨저넌 블랙우드(Algernon Blackwood)

    

 

 

국내 초역.

 

에든버러 대학교 만년 4학년생 마리오트(Marriott)는 졸업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열심히 공부한다. 어느 날 마리오트의 하숙집에 필드(Field)라는 친구가 불쑥 찾아온다. 필드는 마리오트와 어렸을 적에 사립학교에 같이 다닌 사이였다. 마리오트는 반가운 마음에 시험공부를 제쳐두고 필드를 위해 음식을 차린다.

 

마리오트는 먼 길 오느라 피곤한 필드를 방에 재운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그런데 팔에 통증을 느낀다. 마리오트는 피곤해서 눈 좀 붙이려고 방에 들어간다. 그 순간 마리오트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방에 자고 있어야 할 필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필드가 누운 침대에서 숨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마리오트는 방 구석구석 살펴보지만,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은 마리오트는 흥분한 기분을 가라앉히려고 잠깐 외출한다. 마리오트가 다시 하숙집에 돌아가 보니 마리오트의 대학 친구 그린(Greene)이 있었다. 그린은 통증이 있는 마리오트의 팔을 살펴보다가 팔뚝에 난 상처를 발견한다. 마리오트는 상처와 관련된 과거의 일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에 마리오트와 그린은 우정의 서약을 맺었다. 두 사람은 팔뚝에 상처를 냈고, 상처에 난 피를 서로 교환했다. 그 과정이 상당히 위험한데, 마리오트가 자기 피 한 방울을 필드의 상처에 떨어뜨리고, 필드도 자신의 피 한 방울을 마리오트의 상처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린: 도대체 그런 짓은 뭣 때문에 했지?) 두 사람은 먼저 죽는 사람이 살아 있는 친구에게 나타나기로 맹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리오트는 어린 시절의 서약을 잊고 있었다.

 

마리오트는 누이에게 편지를 보내 그린의 근황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일주일 후에 마리오트는 누이의 답장을 받았다. 답장에 있는 내용에 따르면, 필드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에게 쫓겨난다. 한순간에 무일푼 신세가 된 필드는 집을 떠나지 않고 지하실로 내려간다. 필드는 지하실에서 지내다가 굶어 죽는다. 답장을 읽은 그린은 필드가 죽은 날짜가 13일이었고, 필드가 마리오트를 만나러 온 날도 13일이었다고 말한다. (알고 보니, 13일은 금요일이었다하더라‥….)

 

 

 

 

 

 

 

노퍽에서 겪은 기이한 사건

My Adventure in Norfolk (1924)

A. J. 앨런(A. J. Alan)

    

 

 

번역본의 작가 소개에는 영국의 작가, 약력 미상이라고 달랑 아홉 글자로 된 문장이 적혀 있다.

    

본명은 레슬리 해리슨 램버트(Leslie Harrison Lambert, 1883~1941). A. J. 앨런은 필명이다. 2차 세계 대전에 해군 정보부에 근무했다. 램버트는 자신이 직접 라디오에 출연하여 완성된 단편소설을 낭독하면서 공개했다. 사후에 단편 선집 <The Best of A. J. Alan>이 출간되었으나 현재는 잊힌 작가가 되었다.

    

화자는 노퍽에 있는 별장에서 겨울 휴가를 보낸다. 별장은 너무 조용하고 외딴곳에 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밤, 자동차 한 대가 별장 근처에 선다.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시동이 멈춘 것이다. 운전자는 젊은 여자다. 그때 마침 멀리서 우유 통을 가득 실은 화물차가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화물차 운전자도 여자를 돕겠다고 나선다. 화자와 화물차 운전자는 여자의 차를 별장 차고에 넣는다. 화물차 운전자는 여자가 원한다면 화물차에 태워주겠다고 말한다.

 

날씨가 풀릴 때까지 두 남자는 별장 안에 들어가 몸을 녹이면서 위스키를 마신다. 그러나 여자는 화물차 운전사에게 얼른 가자고 재촉한다. 결국 운전사는 바깥에 나가서 시동을 건다(음주 운전을 해서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화자는 여자에게 돈이 충분한지 묻는다. 여자는 문제없다고 대꾸한다.

 

두 사람이 떠나고 난 후에 화자는 여자가 탄 차를 확인한다. 화자는 차 안에 총상을 입어 죽은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는 시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옷을 뒤져보지만, 건진 건 지갑에 있는 9파운드 지폐다.

 

다음 날 아침에 화자는 차고로 들어간다. 그런데 차고에 있어야 할 여자의 차와 시체 모두 사라졌다. 화자는 경찰에 신고하고, 여자가 손댄 유리잔은 자신이 따로 챙긴다. 그는 유리잔을 가지고 지문과에 가서 유리잔에 남아 있는 지문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한다. 3분 만에 여자의 정체가 밝혀진다.

 

여자는 절도 전과가 있는 조직 폭력단의 일원이었다. 두 폭력단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여자의 남자 친구가 총에 맞았다(여자의 남자 친구도 조직 폭력단의 일원인지 아니면 폭력단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 여자를 잘못 만나 억울하게 죽은 건지 소설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여자는 남자 친구의 시체를 유기하기 위해 자기 차에 실었고, 노퍽을 지나다가 엔진 고장을 일으켰다. 여자는 차와 시체를 남의 차고에 맡겨 두고는 화물차를 타고 도망쳤다. 그러나 그녀가 탄 화물차는 사고가 났고, 운전사와 여자 모두 사망했다.

 

화자는 운전수과 여자를 만난 일이 어젯밤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자 여자의 사망 소식을 알려준 친구는 반문한다.

    

 

 어젯밤 사건? 미쳤어? 19192월에 일어난 일이야. 자네가 말하는 그 사람들은 죽은 지가 벌써 수십 년은 된다고!”

  “뭐라고?”

  그럼 지갑에 들었던 9파운드 지폐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백지 명함의 비밀

 

The Most Maddening Story in the World (1920)

랠프 스트라우스(Ralph Straus)

 

    

 

 

번역본에 사망 연도가 ‘?’로 되어 있다. 랠프 스트라우스는 1882년에 태어나 1950년에 사망했다. 그는 1928년에 찰스 디킨스 전기를 발표했다.

 

 

 

 

 

 

 

 

 

야수

The Brute (1906)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

 

 

유령 우편마차

The Ghosts of the Mail (1837)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두 편 모두 국내 초역이다. 글의 분량이 길어지는 관계로 줄거리 요약을 생략한다.

 

조셉 콘래드는 항해와 창작 활동을 병행한 바다 사나이. 야수에 나오는 인물들도 항해와 관련된 일을 한다. 조셉 콘래드의 소설을 안 읽은 지 오래됐고(유일하게 읽은 그의 소설이 암흑의 핵심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잘 모른다. 나중에 콘래드의 소설을 읽는 날이 오면 좀 더 자세하게 야수를 다시 소개하겠다.

 

찰스 디킨스는 ‘GALA’에 포함될 후보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단편으로 된 디킨스의 유령 소설과 공포 소설들(국내에 번역된 것)을 한 번에 모아서 소개할 예정이다.

 

 

 

 

 

Trivia

 

작가 소개E. F. 벤슨을 캔터베리 대주교 아서 크리스토퍼 벤슨의 동생이라고 잘못 언급된 내용이 있다. 아버지 E. W. 벤슨이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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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6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16 22:01   좋아요 0 | URL
노스트라다무스... 추억의 이름이네요. 옛날에 나온 문제집 이름이 노스트라다무스였어요. ^^;;

카스피 2020-03-16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옛날에 본 기억이 나는 책인데 아마 시골집 박스 어딘가에 있을것 같군요^^;;;

cyrus 2020-03-16 22:02   좋아요 0 | URL
구하기도 힘들고, 찾기도 힘든 책이네요. ㅎㅎㅎ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러두기

    

 

* GBLA(Good Bad Literature Archive)

영국의 작가 G. K.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문학성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읽어볼 만한 재미있는 책을 가리켜 좋으면서 나쁜 책(good bad book)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세계문학(고전)의 주류에 속하지 않지만, 읽어 보면 재미있는 공포 문학좋으면서 나쁜 문학(good bad literature)이라 부르고 싶다(다만, 모든 공포 문학 작품이 다 재미있는 건 아니다). 내 목표는 국내에 번역되었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공포 문학 작품을 정리한 온라인 아카이브(Archive, 기록 보관소)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 아카이브 이름을 ‘GBLA(Good Bad Literature Archive)로 정했다.

    

 

 

* 작품 평가 기준

엘러리 퀸(Ellery Queen)은 탐정소설을 평가할 때 세 가지 기준을 사용했다. 나도 공포 소설을 평가할 때 이 평가 기준을 사용하겠다.

 

1. H: 역사적 중요성(Historical Significance)

이 작품이 문학사적으로 중요한가?, 문학사적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2. Q: 작품의 우수성(Quality)

이 작품이 문학적으로 우수한가?

 

3. R: 초판본의 희소가치(Rarity)

GBLA에서는 번역본의 희소가치를 뜻한다. 번역된 횟수가 적은 작품 또는 번역본이 절판되는 바람에 해당 작품을 보기 어려울 경우 R를 부여한다.

 

 

 

 

 

 

 

 

 

E. F. 벤슨은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 에드워드 화이트 벤슨(Edward White Benson, 1829~1896)의 아들이다. 그녀의 어머니 메리 시지윅(Mary Sidgwick, 1841~1918)은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명사였다. 영국 총리 글래드스턴(Gladstone)은 그녀를 유럽에서 가장 영리한 여성(cleverest woman in Europe)이라고 평가했다.

 

E. W. 벤슨과 메리 시지윅 사이에 6남매가 태어났다. 장남 마틴 벤슨(Martin Benson)은 6남매 중 가장 영리해서 촉망받는 인물이었으나 18세에 요절했다. 차남 아서 크리스토퍼 벤슨(Arthur Christopher Benson, 1862~1925)은 시인 겸 수필가다. 그는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가 작곡한 <Land of Hope and Glory>의 노랫말을 썼다. 지금도 이 곡은 영국의 제2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랑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알려졌다(이 곡은 총 다섯 곡으로 구성된 관현악곡집이다. 이 다섯 곡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1번 곡 선율이 바로 ‘Land of Hope and Glory’이다).

 

6남매 중에 세 번째로 태어난 마거릿 벤슨(Margaret Benson, 1865~1916)은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한 최초의 여학생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되어 이집트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이 활동으로 마거릿 벤슨은 이집트 정부로부터 유물 발굴 허가를 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그러나 말년은 좋지 못했는데 1907년부터 정신병원에서 생활했다.

 

오늘 소개할 E. F. 벤슨은 네 번째로 태어난 삼남이다. 다섯 번째로 태어난 넬리 벤슨(Nellie Benson, 성별을 확인하지 못했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넬리 벤슨의 삶을 소개한 항목이 없다. 장남 마틴도 별도의 위키피디아 항목이 없는 벤슨 가 사람이다)은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26세에 요절했다. 막내 로버트 휴 벤슨(Robert Hugh Benson, 1871~1914)은 가끔 소설을 쓰는 가톨릭 신부였다.  

 

E. F. 벤슨 역시 고고학자로 활동하여 5년 동안 그리스와 이집트에서 살았다. 고고학 발굴 작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영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지내며 글을 썼다. 그는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썼는데, 그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벤슨의 글은 공포 소설과 유령 소설이다. E. F. 벤슨은 운동 신경이 매우 뛰어나서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활동했으며 영국 대표로 세계 대회에 출전했다.

 

 

 

 

 

 

 

버스 차장

The Bus-Conductor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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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단편 100(책세상, 2005)

 

 

 

어느 날 휴 그레인저(Hugh Grainger)의 집 앞에 검은색 마차 한 대가 선다. 그는 창문으로 마차를 내려다본다. 그런데 마차꾼의 옷차림이 이상하다. 그는 검은색 외투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다. 마차꾼은 자신을 관찰하고 있던 휴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안에 딱 한 자리 남았습니다. 선생님(Just room for one inside, sir)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불쾌해진 휴는 창문 블라인드를 내린다. 정확히 한 달 후에 휴는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다. 그의 앞에 버스 한 대가 서는데, 버스 차장의 모습이 예전에 봤던 마차꾼과 닮았다. 버스 차장은 휴에게 안에 딱 한 자리 남았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그 순간 휴는 버스를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

 

이 소설이 수록된 세계 호러 단편 100(책세상) 233오역 문장이 있다.

 

 

 내 방은 삼층 정면에 있어.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방으로, 평소에는 자네가 사용하던 곳일 거라고 짐작했지.”

 

 You had put me in the front room, on the third floor, overlooking the street, a room which I thought you generally occupied yourself.

 

 

영국과 미국 층수의 개념이 다르다. 예전에 이 내용을 표로 만들어 정리한 적이 있다. 미국인들은 1층을 ‘First floor’라고 쓰지만, 영국인들은 ‘Ground Floor’로 쓴다. 미국에서 2층을 의미하는 ‘Second floor’가 영국에서 사용하면 3층에 해당한다. 미국의 ‘third floor’는 삼층이지만, 영국에서는 사층이다. 벤슨은 영국 작가이다. 그러므로 층수의 의미를 우리말로 옮길 때 영국식으로 쓰는 게 맞다.

 

 

 

 

 

 

 

쐐기벌레

Caterpillars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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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걸작선(책세상, 2004)

* [절판] 윤효송 옮김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자유문학사, 2004)

 

    

 

화자는 예전에 머물렀던 이탈리아의 카스카나 별장(Villa Cascana)이 헐린다는 소식을 접한다. 별장이 헐린 그 자리에 공장이 들어선다. 그는 사라진 별장과 관련된 불쾌한 추억을 떠올린다.

 

그는 별장에서 괴상한 형태의 벌레를 목격한다. 다음 인용문은 화자가 벌레를 묘사한 내용이다.

 

 

 방 안의 희끄무레한 빛이 침대에서,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침대 위의 어떤 것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길이가 삼십 센티미터가 넘는 거대한 쐐기벌레들이 침대를 뒤덮은 채 기어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쐐기벌레들은 희미하게 빛을 발했으며 침실 쪽으로 내 시선을 끈 것도 그 빛이었다. 보통의 쐐기벌레의 배다리 대신에 게처럼 집게발이 달려서 그것으로 표면을 움켜잡으며 움직거리다 앞쪽으로 몸을 미끄러뜨렸다. 그 오싹한 곤충은 노르스름한 회색빛에, 울퉁불퉁한 혹과 종기로 뒤덮여 있었다 (세계 호러 걸작선374)

 

 

별장에서 지내고 있던 화가 아서 잉글리스(Arthur Inglis)는 쐐기벌레에 흥미를 느낀다. 그는 집게발을 뜻하는 라틴어 ‘Cancer’와 자신의 성()을 합쳐 쐐기벌레의 이름을 지어준다. 이름은 캔서 잉글리센시스(Cancer Inglisensis).

 

쐐기벌레는 벤슨의 대표작이다. 내용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과 찝찝한 여운을 주는 매력적인 공포소설이다.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자유문학사)에도 수록되었는데 제목이 유충이다. 제목부터 오역이다‥…. ‘쐐기벌레가 맞다.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세계 호러 걸작선(책세상)2004년에 나온 책이다. 그런데 두 권 모두 오역 문장이 있다.

 

 

 이윽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일 년 전에 그 빈 방에서 치명적인 종양이 발견되었다 (세계 호러 걸작선380)

 

 

  스탠리 부인은 그때 처음으로 나에게 그 방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1년 전쯤, 그 침실을 암 환자가 잠시 사용했다고 한다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235)

 

 

  Then she told me. In the unoccupied bedroom a year before there had been a fatal case of cancer.

 

 

소설의 결말에 해당하는 문장이다. 그래도 번역 문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스포일러가 있더라도 인용하겠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라.

 

사실 원문의 ‘a fatal case of cancer’는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 표현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case’환자 또는 상자로 해석할 수 있다. ‘상자로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소설 중반부에 아서 잉그리스가 쐐기벌레를 담은 상자를 화자에게 보여준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상자가 맥거핀이 아니라면 아서가 들고 있던 상자가 쐐기벌레의 개체 수를 늘리게 한 가장 큰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환자’로 해석해도 문장이 어색하지 않다. ‘a fatal case of cancer’ 앞에 있는 ‘had been’‘have been(방문하다)의 과거형이라면 치명적인 암에 걸린 환자가 침실에 잠시 들렀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종양’인데 과연 ‘a fatal case of cancer’종양으로 해석이 가능한가. 원문과 다른 표현이긴 한데 오역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겠. ‘종양’이 개체 수가 기하학적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뭉쳐진 채 서식하는 쐐기벌레들을 묘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어쨌든 ‘a fatal case of cancer’의 의미가 모호해서 결말을 본 독자들은 찝찝한 여운을 느끼게 된다.

 

 

 

 

 

 

 

탑 실

Room in the tower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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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영 옮김 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 2006)

* [절판, No Image] 이동진 옮김 괴기 X-파일(문학수첩, 1995)

 

 

 

화자는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 꿈을 자주 꾼다. 그는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일정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꿈에 붉은 벽돌의 저택이 나오고, 저택의 정원에 친구 잭 스톤(Jack Stone)과 그의 가족들(잭 스톤의 부모와 두 누이)이 모여 있다. 스톤 부인(Mrs. Stone)은 매번 꿈에 나올 때마다 화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 “잭이 네 방을 안내해줄 거야. 탑 실을 골라두었단다.”(Jack will show you your room. I have given you the room in the tower)

 

화자는 잭의 안내를 받으면서 탑 실에 간다. 탑 실 안에 들어간 화자는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이런 악몽을 화자는 반복적으로 꾼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꿈이 되풀이될수록 꿈속의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면서 꿈속에 나타나는 잭 스톤 가족의 외형은 나이를 먹으면서 변한다.

 

꿈을 꾼 당시에 화자는 잭 스톤을 만나지 않았고, 꿈에 나온 저택과 비슷한 건물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친구 존 클린턴(John Clinton)과 함께 숲속에 있는 어느 저택에 지내게 되는데, 그곳은 화자의 꿈에 보던 저택과 흡사하다. 그리고 두 사람을 맞이하는 저택의 주인은 꿈속에서 본 스톤 부인의 모습과 닮았다. 드디어 화자는 악몽에서만 보던 탑 실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

 

탑 실은 탑과 집 실()과 합쳐진 단어다. 탑 속의 방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탑 실과 다음에 소개할 앰워스 부인뱀파이어(Vampire)가 나오는 벤슨의 소설이다. 그래서 탑 실은 뱀파이어 소설의 역사를 논할 때 꼭 언급되는 작품이다.

 

탑 실이 수록된 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정진영 씨가 번역했다. 이미 오역을 지적하면서 언급한 세계 호러 걸작선세계 호러 단편 100의 역자도 정진영 씨다. 이분 때문에 내 글의 분량이 길어졌다. 여러분, 글이 길다고 해서 나를 탓하지 마시라.

 

 

 지난주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려 이층으로 향할 때였다. 자주 그래왔듯 우편배달부의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다시 아래층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때부터 꿈에 환상이 섞여들었고, 편지를 뜯어보니 최상품 다이아몬드와 함께 아주 익숙한 필체가 나타났다. 편지 내용은 이랬다.

  “이걸 안전하게 보관해주게. 이탈리아에서 이걸 지니고 있는 건 위험하니까.”  (155~156)

 

  One night last week I dreamed that as I was going upstairs to dress for dinner I heard, as I often heard, the sound of the postman’s knock on my front door, and diverted my direction downstairs instead. There, among other correspondence, was a letter from him. Thereafter the fantastic entered, for on opening it I found inside the ace of diamonds, and scribbled across it in his well-known handwriting, “I am sending you this for safe custody, as you know it is running an unreasonable risk to keep aces in Italy.”

 

 

‘ace of diamonds’다이아몬드가 그려진 트럼프 카드를 뜻한다.

 

 

 

 

 

 

 

 

사형수의 고백

The Confession of Charles Linkworth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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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길환 옮김 영국의 괴담(명문당, 2000)

 

 

 

약간 감동을 주는 결말이 있는 유령소설이다.

 

티스데일(Dr. Teesdale)은 처형 직전의 사형수를 1주에 한두 번씩 진찰하는 의사다. 그의 취미는 심령술 연구이다. 티스데일이 만난 사형수 찰스 링크워스(Charles Linkworth)는 문방구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부채 때문에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찰스 링크워스는 돈을 차지하기 위해 어머니를 교살하고 시체를 유기한 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티스데일은 찰스 링크워스의 교수형을 참관한다. 그는 찰스가 즉사했음을 확인한다. 그 순간 티스데일은 찰스의 영혼이 자신 옆에 있는 듯한 오싹한 기분을 느낀다. 찰스가 죽은 지 한 시간 지난 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찰스를 사형할 때 사용한 밧줄이 사라진 것이다.

 

티스데일의 방에 전화기가 있다. 저녁에 전화벨이 울리고, 티스데일은 수화기를 든다. 하지만 수화기에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그는 전화 교환국에 가서 자신의 집에 전화를 건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전화번호의 위치는 교도소였다. 그러나 교도소의 당직 근무자는 티스데일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말한다. 티스데일은 교도소에 떠도는 찰스의 영혼이 자신에게 무언가 얘기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고 생각한다.

 

티스데일의 예상대로 다음 날 저녁에도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에 흐느끼는 찰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티스데일에게 교화사(敎化師)와 직접 통화하고 싶다고 말한다. 티스데일은 영혼의 요구를 들어준다.

 

원제에 있는 ‘Confession’고해성사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앰워스 부인

Mrs. Amworth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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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1(한즈미디어, 2014)

* [품절] 이수현 옮김 세계 공포문학 걸작선: 고전 편(황금가지, 2003)

 

 

 

서섹스(Sussex) 주 고지대에 있는 마을 맥슬리(Maxley).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이지만, 삼백 년 전에 뱀파이어가 창궐했던  곳이다. 심리학 교수 프랜시스 어컴브(Francis Urcombe)는 지금도 맥슬리에 뱀파이어가 있다고 주장한다. 맥슬리의 유명 인사는 미망인 앰워스 부인이다. 인도에 파견된 남편과 함께 살다가 남편이 죽자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와 맥슬리에 정착한다. 맥슬리는 부인의 조상이 살고 있던 곳이다. 부인은 마을 주민과 잘 어울리는 사교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그러나 프랜시스 어컴브는 부인의 정체를 의심한다.

    

사실 앰워스 부인은 추리소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프랜시스 어컴브는 자신이 수집한 정보와 단서들을 가지고 앰워스 부인의 정체를 밝혀낸다. 그런데 그 단서라는 것들이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만약 작가가 앰워스 부인을 쓰면서 독자를 속일 수 있는 정교한 트릭을 설정했다면 코난 도일(Conan Doyle)서섹스의 뱀파이어에 견줄 만한 추리소설이 되었을 거로 생각한다. 서섹스의 뱀파이어에서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는 뱀파이어로 잘못 알려진 부인의 이상 행동을 추리하여 부인의 억울한 오해를 풀어준다.

 

 

 

 

Trivia

 

* 세계 호러 단편 100아서 크리스토퍼 벤슨의 막힌 창로버트 휴 벤슨의 감시자가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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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그리고 죽은 자가 말했다 Mystr 컬렉션 140
에드워드 프레더릭 벤슨 / 위즈덤커넥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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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Mary Shelley)의 소설에 나오는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은 과학을 연구하는 대학생이다. 그는 창조물(creature)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얻기 위해 묘지에서 시체를 도굴한다. 자만심에 빠진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싶어서 창조물을 만든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과학을 악용하는 이런 인물을 매드 사이언티스트(Mad scientist)라 부른다.

 

영국의 작가 에드워드 프레더릭 벤슨(Edward Frederick Benson)그리고 죽은 자가 말했다(And The Dead Speak)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등장하는 공포소설이다. 제임스 호튼 경(Sir James Horton)은 매일 실험실에서 생활하는 물리학자다. 그는 인간의 두뇌에 모든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죽은 지 얼마 안 된 두뇌 조직에 축음기 바늘을 꽂아 그 뇌에 저장된 기억을 읽어내는 실험을 한다. 이 소설의 화자는 친구 호튼 경의 괴상한 실험을 지켜본 증인이다. 놀랍게도 축음기에 죽은 자의 목소리가 나온다. 호튼 경은 그 목소리가 살아있을 때 죽은 자의 뇌에 저장된 기억이라고 확신한다.

 

실험이 성공하자 호튼 경은 축음기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매진한다. 그는 다음 실험 대상으로 가정부 가브리엘 부인(Mrs. Gabriel)을 주시한다. 가브리엘 부인은 6개월 전에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한때 언론에서 주목받은 인물이었다. 호튼 경이 특이한 이력이 있는 여성을 가정부로 고용한 이유가 있다. 그는 그녀의 뇌에 남편의 죽음과 관련된 정보가 있을 거로 생각한다. 마침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온다. 가브리엘 부인은 간질을 앓고 있는데 발작 증상이 일어나는 바람에 계단에서 넘어진다. 호튼 경은 다친 부인을 병원이 아닌 실험실에 데려간다. 그는 부인의 이마에 난 상처에 축음기 바늘을 넣는다. 화자는 부인이 죽지 않았다면서 호튼 경을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인간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면, 나중에 그 오만이 인간을 찌르는 결과가 나온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최후는 늘 이렇다. 그런데 호튼 경이 최후를 맞는 과정이 허무하다.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한 결말이 무척 아쉽다.

 

그리고 죽은 자가 말했다와 비교할 수 있는 소설이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Herbert WestReanimator). 확인해 보니 두 편의 소설 모두 같은 해(1922)에 나왔다. 허버트 웨스트는 호튼 경이 오히려 점잖게 보여질 정도로 광기가 심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다. 의대생 허버트 웨스트는 죽은 생물을 되살리는 실험을 한다. 이 소설의 설정과 구성이 그리고 죽은 자가 말했다와 비슷하다. 두 소설의 화자 모두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친구다. 그들은 제정신이 아닌 친구의 실험을 목격한 증인이며 끔찍한 실험에 간접적으로 동참한다. 그렇지만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의 결말이 벤슨의 소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의 결말은 피도 눈물도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묘사되어 있다. 기회가 된다면 두 편의 소설을 꼭 읽어보시라. 그러면 내가 결말을 지적한 이유를 알 것이다.

 

 

 

 

 

 

 

Trivia

 

 

* 7

     

 

 

 I well remember his coming in to see me on the evening of the 4th of August, 1914.

  “So the war has broken out,” he said, “and the streets are impassable with excited crowds. Odd, isn’t it? Just as if each of us already was not a far more murderous battlefield than any which can be conceived between warring nations.”

  “How’s that?” said I.

 

 

거리가 흥분한 군중으로 꽉 막혀 있었다라는 문장은 화자의 말이 아니라 호튼 경이 한 말의 일부다. 그리고 내가 형광펜 색으로 줄을 친 문장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서 계속 봐도 이상하다. 오히려 내가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역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 13

    

 

 

 

작음작은의 오식이다.

 

    

 

 

* 22

 

 

 

티페레리의 노래오역이다. 티페레리(Tipperary, 티퍼레리)는 아일랜드 남부에 있는 도시 지명이다. 제목과 가사에 티페레리가 들어간 노래가 여러 곡이 있는데, ‘티페레리의 노래라는 제목의 곡은 없다. 이 소설 본문에 언급된 티페레리의 노래’의 정체1907년에 나온 <Tipperary>.

 

    

 

 

*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알라딘에 그리고 죽은 자가 말했다를 검색하면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Book Lover’라는 닉네임의 아마존(Amazon) 회원이 남긴 추천평이 인용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글에 어이없는 내용이 보인다.

 

 이 작품은 샬롯 브론테를 포함한 많은 작가들과 비평가들이 자신의 수필집과 자서전 등에서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ë)19세기에 활동한 작가다. 그녀는 벤슨이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샬롯이 1922년에 나온 그리고 죽은 자가 말했다를 읽었을 리가 없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Book Lover)이 치명적인 실언을 하다니‥…. 그리고 벤슨의 소설은 고딕 공포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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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 정여울의 심리테라피
정여울 지음 / 김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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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물어보자.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나는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도 그렇다. 나는 시작하기도 전에 내 문제점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것을 고치려는 노력부터 먼저 한다. 마치 옷에 묻은 얼룩을 지우기 위해 물을 묻힌 손수건으로 벅벅 문지르듯이 나는 내 문제점을 얼른 찾아내서 고치려고 애쓴다. 손수건으로 세게 문지를수록 얼룩은 점점 더 번진다. 안 그래도 보기 싫은데 점점 뚜렷해지는 문제점을 보면 더 싫어진다. 여기서부터 내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니까 일에 진척이 없다.

 

내 속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비판하는 제2의 자아가 살고 있다. “넌 왜 이렇게 못해?”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과가 왜 이러냐?” “좀 더 잘할 수 없었니?” 주변에서 괜찮아”, “잘했어라고 말해줘도 나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내가 검열관으로 임명한 제2의 자아의 지적을 피하려고 애쓴다. 아무래도 나는 자아비판이 지나쳐서 내 장점보다는 문제점을 더 보려는 습관이 몸에 뱄다. 그래서 피곤하고 지친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떨어져 있다.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책 제목이 마치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오랜만에 에세이를 읽었다. 작가는 심리학과 정신분석 이론을 공부하면서 왜 그렇게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면서 살아왔는지 살핀다. 그러면서 독학과 글쓰기를 토대로 자기혐오의 원인과 과정을 찾아내어 더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나를 돌보는 방식을 발견한다. 작가는 심리학을 내 문제를 비춰보는 유용한 프리즘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심리학자의 분석에 의존한다. 그러나 심리학은 내면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학문이 아니다. 작가는 심리학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가 본인의 내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견한 힌트는 (Carl Gustav Jung)의 그림자 이론이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자아, 즉 인간의 어두운 면이다. 이 그림자는 자신의 일부이면서도 스스로 거부해온 콤플렉스와 정신적 외상(trauma)이다. 나를 돌보려면 내면의 그림자를 외면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인정하면서 만나야 한다.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그림자를 대면했다. 처음에 쓴 글의 주제는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썼고, 다음 주제는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이유였다.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면서 그림자를 돌보면서 어루만져준다. 이것이 작가가 강조하는 마음 챙김이다. 그러면 그림자도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라고 여기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안에 있는 검열관 이 녀석의 정체는 그림자다. 나는 그림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이 책의 1장 제목은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나는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 그림자를 사랑하지 않았다.[1] 그림자를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이 심리학은 우리의 내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림자를 따뜻하게 안아줘도 언젠가는 다시 내 포옹을 거부할 것이다. 그러면서 또다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작가는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내 안의 그림자와 상처 둘 다 없이 산다면 정말 행복한 삶일까.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의 내면은 건강할 것일까. 나는 그림자와 내면의 상처 없이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내면의 상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말로 내면의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살려면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세상과 타인을 내면을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하면서 극단적인 고독을 선택하는 삶은 고통스럽다.[2] 오히려 그런 삶이 내면을 병들게 한다. 결국 인간은 죽을 때까지 그림자를 안으면서 내면에 상처를 달고 살아야 한다. 상처 입은 치유자는 그림자의 괴롭힘에 무기력한 피해자가 아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내면에 상처 입은 사람도 다른 사람의 내면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상처 입은 치유자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차츰차츰 각자의 아픔을 치유해간다.

 

나로 살아간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살아야 할 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벌써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 남에게 사랑받지 못해, 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자책만 할 수 없다. 그냥 그럭저럭 그런 삶이어도 괜찮다. 나를 사랑하자. 젊은 나를 위하여.[주3]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나를 인정해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리라. ‘마음 챙김은 내 삶의 밝음을 확장하는 즐거운 놀이다. 이 즐거움으로부터 긍정적인 기운을 받는다면 내 안의 그림자까지 챙길 수 있다.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신문기자>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심은경은 인터뷰에서 앞으로 연기 활동에 대해 소박하면서도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저 지금처럼 즐겁게, 저 자신이 더 높은 곳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으면 싶다. 묵묵히 내 길을 가고 싶다.”

 

 

나도 그녀의 말처럼 어떤 신경도 쓰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1]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마지막에 있는 시구를 차용했다.

 

[2] 라르스 스벤젠 외로움의 철학, 청미, 2019.

 

[주3] 잼(ZAM)의 노래 <우리 모두 사랑하자>에 나오는 노랫말(우리 모두 사랑하자. 우리의 젊은 날을 위하여)을 변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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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3-1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완벽주의자시네요~

cyrus 2020-03-15 18:19   좋아요 0 | URL
칭찬인가요, 비판인가요? ㅎㅎㅎㅎ 네, 맞아요. 제가 사소한 결졈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