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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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  F





 모든 작가는 믿을 만한 독자가 있어야 합니다. 작가가 작업하고 있는 것에 대해 동감하고 작품을 가능한 훌륭하게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 말입니다. 그렇지만 독자는 솔직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독자가 갖추어야 할 근본적인 자격입니다.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며 거짓으로 위로해서도 안 되며, 칭찬받을 만한 작품이 아닌 경우에는 절대로 칭찬을 해서도 안 됩니다

 

(폴 오스터, 작가란 무엇인가 1중에서, 181~182쪽)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구매한다. 가끔은 잘 만든 책인지, 아닌지를 내 눈과 머리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살 때도 있다. 이렇다 보니 지난달에 꽤 많은 책을 샀다. 3월에 주문한 책들의 목록에 감각의 박물학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어서라기보다 꼼꼼하게 평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문했다.

 

나는 절판된 감각의 박물학이 재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 다이앤 애커먼(Diane Ackerman)의 명성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저자가 쓴 다른 책 새벽의 인문학: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반비, 2015, 절판)이 좋았다. 감각의 박물학은 다이앤 애커먼에게 많은 상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글 잘 쓰는 저자로 독자들에게 각인시켜준 책이다. 이 책은 다이앤 애커먼의 대표작이다.

 

저자의 대표작이 나와서 무척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갑자기 왜 이 책이 나온 거지?” 감각의 박물학1990에 출간되었다. 이 책이 나온 지 삼십여 년이 지났다. 대부분 사람은 유명한 저자가 썼고, 연세가 지긋한 책을 고전이라 부르면서 우대한다. 이 책의 분홍색 띠지에 독보적인 고전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나는 이 문구를 떼어내고 싶다. 출판사는 감각의 박물학고전으로 과대 포장했다.

 

나는 번역서를 사기 전에 제일 먼저 원서의 출판 연도를 확인한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일수록 철 지난 낡은 지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이런 책에서 신선한 지식을 찾는 일은 시간 낭비다. 물론 과거의 지식이 무조건 틀린 건 아니다. 그렇지만 지식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지식은 다양한 관점이 혼재하는 복잡한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이구동성으로 옳다고 확신했던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류로 판명될 때도 있다.

 

출판사는 감각의 박물학개정판이라고 주장한다. 대부분 출판사는 책 표지를 싹 다 바꾸고, 책값을 조금 높게 책정해서 개정판을 낸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개정판의 의미는 겉뿐만 아니라 그 안의 내용에도 변화를 준 책이다. 사실이 아닌 내용에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책을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독자들 앞에서 감각의 박물학을 개정판이라고 홍보하는 출판사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감각의 박물학2004년에 나온 구판과 비교해서 읽어봤. 개정판에 인명 표기가 달라진 부분이 있었고, 구판에 없었던 옮긴이 주가 개정판에 추가되었다. 그런데 겨우 이것만 가지고 개정판이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

 

내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감각의 박물학을 정가로 절대로 팔지 않겠다. 책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오류와 고쳐지지 않은 역자의 오역감각의 박물학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책 내용에 변화를 준 개정판이라면 몰라도 고작 겉만 바꾼 책은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다. 저자가 책을 다시 쓰지 않는다면 역자가 그 일을 대신해야 한다. 개정판을 출간하려는 역자는 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 원서 속에 남아 있는 오류와 유통기한이 지난 지식이 있는지 확인한다. 저자가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 있으면 주석을 달아서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알려줘야 한다.




* 53~54

 

 그 잔인한 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어린 갈까마귀 한 마리를 둥지에서 꺼내 완숙 달걀을 40일 동안 먹인 다음 잡는다. 그리고 은매화 잎새와 화장 분, 아몬드 오일을 넣고 증류한다.” 더할 나위 없다. 그 악취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를 인용하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빼면, 그 향수를 뿌린 이들은 분명 영원의 처마 위에 앉은 탐욕스러운 미인이 될 것이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26]

 

 Here is the ghoulish recipe: “Take a young raven from its nest, feed it on hard-boiled eggs for forty days, kill it, then distill it with myrtle leaves, talcum powder, and almond oil.” Splendid. Except for the stench, and an overwhelming desire to quote Poe, you’ll surely be a ravenous beauty perching on the eaves of forever.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시 <The Raven> 갈까마귀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제목은 까마귀


‘raven’은 국내에 서식하지 않은 큰까마귀이며, 갈까마귀의 영문명은 ‘Daurian jackdaw’. 큰까마귀는 까마귀 중에서 가장 큰 종이라면, 갈까마귀는 가장 작은 종이다.

 




* 56


 동물들에게 사냥꾼의 냄새는 경고가 된다. 사냥꾼에게 동물의 냄새는 유혹적이다. 일종의 자기방어로 냄새를 흘려보내는 동물도 있다. 얼룩 스컹크는 앞다리로 서서 지독한 악취를 공격적으로 쏘아 보낸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27]


 For an animal who is prey, the odor of its hunter will warn it; for the hunter, the odor of its prey will lure it. Of course, some animals exude an odor as a form of defense. Spotted skunks do a handstand and squirt would-be attackers with a horrible stench.

 

스컹크는 악취를 내뿜지 않는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분비물을 내뿜는다.




* 107


 피라미드 모양의 바벨탑은 죽음이 예정된 존재가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이, 신들 가까이로 뻗어 올라갔고, 사제들은 그 꼭대기에 향을 지폈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56]


 Atop the famous ziggurat-shaped Tower of Babel, which stretched closer to the gods than mortals could reach, priests lit pyres of incense.

 


지구라트(Ziggurat)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세워진 신전이다. 지구라트는 높이 솟은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 아카드어에서 유래되었다. 하늘에 있는 신을 지상과 연결하기 위해 탑과 같은 형태의 지구라트가 만들어졌는데, 구약성서》 「창세기에 묘사된 바벨 탑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이라크에 있는 우르의 지구라트(Ziggurat at Ur)’는 보존 상태가 아주 좋은 유명한 지구라트다. 역자는 지구라트를 피라미드와 비슷한 형태의 건축물로 착각했다.




* 140

 

 자이레의 피그미족 아기는 적어도 하루의 절반은 다른 사람과 신체적 접촉을 한다.

 

자이르(Zaire)1971년부터 1997년까지 존재했던 국가로, 콩고민주공화국의 옛 국명이다.




* 151


 옛날 남자 지도자들은 남성다움의 상징으로 머리를 길게 길러 늘어뜨렸다(사실 카이저차르긴 머리를 의미한다).

 

 

저자는 카이저(kaiser)차르(tsar)의 어원을 긴 머리라고 주장한다. 그 견해의 출처가 궁금하다. 그런데 이 책에 저자가 글을 쓰면서 참고한 문헌 목록이 없다


카이저와 차르의 어원은 로마의 지도자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카이사르는 대머리로 유명하다. 따라서 카이저와 차르의 의미가 정말로 긴 머리와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이 남성 군주의 강인한 남성성을 상징하는 신체적 기호인 건 확실하다. 유럽의 귀족과 군주들은 치렁치렁한 가발을 착용했다독일의 황제 빌헬름 2(Wilhelm II)의 수염카이저라는 용어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했다. 당대 남성들과 지도자들은 빌헬름 2세처럼 수염을 길렀다.



* 160


 공상과학소설에서는 우주비행사의 체온을 떨어뜨려, 유리집 속에서 잠자는 벌거숭이 곰처럼 장기간 수면 상태에 들게 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가족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죽은 후 사체를 동결시켰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떠돌고 있다. 월트 디즈니는 마법의 얼음 왕국에 누워 재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저온학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트랜스타임주식회사에서는 사망 직후의 사체를 동결 처리하는 일을 한다.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리고 병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미래가 오면, 그때 생명을 되찾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90]


 Science-fiction stories often involve an astronaut whose body temperature has been lowered, sleeping in suspended animation like a naked bear in a glass den. Walt Disney’s family swears it isn’t true, but a popular folk myth for some time now has it that Walt arranged to be frozen when he died and is lying in a magic kingdom of ice, awaiting his rebirth. Trans Time, Inc., a member of the American Cryogenics Society, does freeze people right after death, promising to bring them back to life in a later era, when the mysteries of death are scrutable and the carnage of their diseases.

 


자신을 냉동으로 보존해달라는 디즈니의 유언은 낭설이다.




* 229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짜낸 젖은 은하수가 되었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131]


 A mythic Gaia poured milk from her breasts and they became the galaxies.

 

 

그리스 신화에 묘사된 은하수의 유래는 헤라(Hera)의 가슴에서 나온 모유로 알려져 있다. 제우스(Zeus)는 자기가 바람을 피워서 태어난 헤라클레스(Heracles)에게 젖을 주기 위해 자고 있던 헤라 몰래 젖을 물렸다. 헤라클레스가 젖을 빠는 순간, 그의 강력한 힘을 느낀 헤라가 잠에서 깨어났다. 헤라의 가슴에 뿜어져 나온 모유가 하늘에 퍼지면서 은하수가 되었다고 한다.




* 245


 어떤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나면 향기로운 소변을 보고(프루스트가 지나간 것들의 기억에서 묘사한 대로), 아티초크를 먹으면 심지어 물도 달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궁금증이 생겼다. 프루스트가 쓴 소설 중에 저런 제목이 있었어? 아니면 프루스트의 단편소설 제목일까? 지나간 것들의 기억으로 번역된 원문은 ‘Remembrance of Things Past’. ‘Remembrance of Things Past’최초로 출간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의 영문판 제목이다.  




* 249


 입은 육체라는 감옥을 단단히 봉하고 있다. 입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도움을 주거나 해를 끼치지 못하고, 그래서 진화 과정에서 입이 제일 먼저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굼벵이, 곤충 등 모든 하등동물에게도 입이 있다.

 


하루살이, 누에나방, 깔따구 등과 같이 입이 퇴화한 곤충들도 있다.




* 322






 

아서 클라크의 2001 오디세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344





 수컷 두꺼비고기(조기어류의 하나옮긴이) 저음의 소리를 지른다.



구판(293)에 없는 옮긴이 주가 개정판에 추가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자가 생겼다.




* 390

 

 예술가들은 예술의 유기적 형식을 항상 자연에서 구해왔으므로 펄서’(규칙적으로 전파를 방출하는 천체의 하나. 빠르게 자전하는 중성자별로 추측된다옮긴이)라는 폭발음의 곡조를 발견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펄서가 중성자별이라는 사실이 수많은 연구와 관측을 통해 밝혀졌다.




* 487~488

 

 태양계의 행성 중 절반 정도가 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발견은 얼마나 즐거운 충격이었던가. 토성뿐 아니라 목성, 천왕성, 해왕성, 어쩌면 명왕성에도 고리가 있다. 그리고 그 고리들은 서로 다르다.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은 명왕성을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이 아닌 왜행성으로 분류했다.


전문 용어에 대중에게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의미가 반영되었다면 바뀔 수가 있다. 그런데 개정판에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전문 용어가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 75

정신분열증 환자들 조현병 환자들

 

* 161

온혈동물 정온동물 또는 항온동물

냉혈동물 변온동물

 

* 313

간질 뇌전증


* 434쪽 

할로윈[비표준어] 핼러윈

 



책에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이 더 있지만, 글의 분량이 길어져서 따로 쓰려고 한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 책을 비판한 내 견해가 틀릴 수 있다. 틀린 견해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댓글로 꼭 알려주시라. 내 글에 대한 정오표를 남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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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연 2023-05-05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인상깊은 후기는 처음봐요!
혹시 블로그는 안하시나요? 블로그를 하신다면 구독해 보고 싶을만큼 좋은 분석이네요

cyrus 2023-05-05 09:05   좋아요 0 | URL
예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도 서평을 등록하려고 생각은 했었어요. 그런데 알라딘 블로그에 글을 등록하는 일이 너무 익숙해져서 네이버 블로그에 눈길을 주지 못하고 있어요. ^^;;

다은이즈 2023-08-1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정판 나왔다길레 살려다가 이 글보고 그냥 구판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cyrus 2023-08-15 15:27   좋아요 0 | URL
다행입니다.. ^^

-두부공자 2023-11-0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서평이 더 감명이 깊습니다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Odysseus)는 고향으로 향하는 긴 항해 중에 여러 난관을 통과한다. 우리는 어려운 고비를 난관이라고 말하지만, 이 단어에 지나가기 어려운 곳이라는 뜻도 있다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도서출판 숲, 2015)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12권에 그 유명한 세이렌(Siren) 자매가 등장한다. 세이렌은 매혹적인 목소리로 사람을 유혹하는 존재다. 키르케(Kirke)는 오디세우스 일행의 귀향을 돕기 위해 세이렌의 유혹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밀랍으로 귀를 막고 재빨리 지나칠 것. 그런데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용맹함을 부추기는 듯한 말도 한다. 그대 자신은 원한다면 (세이렌의 목소리를) 들으세요.”[주] 산전수전 겪은 오디세우스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난관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그는 아내도 자식도 잊어버리게 만든다는 세이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부하들은 귀를 막고 오디세우스 자신은 돛대에 묶은 채 귀를 열어 두도록 했다.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디세우스의 무모한 행동이 지적 호기심또는 알려고 하는 본능적인 욕구에 의해서 발현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거나 낯선 존재를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리는 묘한 심리. 그것은 모험가 기질이 다분한 오디세우스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오디세우스를 신에게 사랑받는 영웅이 아닌 우리와 어느 정도 비슷한 인간으로 바라보자. 우리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마르지 않는 호기심은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을 몸과 머리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원동력이다. 호기심을 충족하려면 모든 감각을 동원하면서 경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스스로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 다이앤 애커먼, 백영미 옮김 감각의 박물학(작가정신, 2023)




감각의 박물학은 감각을 이용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일생일대의 모험을 하면서 살다 간 과거 오디세우스들, 그리고 떠나고 없는 오디세우스들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지구에서 모험을 시작한 현재 오디세우스들의 이야기다. 이 책을 쓴 이야기꾼 다이앤 애커먼(Diane Ackerman)은 인문학과 과학을 주제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감각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레이더망이다.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불확실한 세상을 향해 각자만의 레이더망을 내민 채 모험하고 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우리는 난관이 산적한 세상 한가운데에 뛰어든 오디세우스요, 모험가다


후각을 선호하는 오디세우스는 향수에 관심이 많다. 미식가 오디세우스에게 식당은 그들이 꼭 거쳐야 하는 섬이다. 미식가 오디세우스는 섬과 같은 식당을 어디든지 경유한다. 대담한 미식가 오디세우스는 잘못 먹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음식 재료를 맛보고 싶어한다. 심지어 맛있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오물처럼 보이는 괴상한 음식까지도 먹는다. 그들에게는 별미가 보물이다
















* 올리버 색스, 장호연 옮김 뮤지코필리아: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알마, 2012)




호메로스가 묘사한 오디세우스의 후예들은 좋은 노래를 듣기 위해 남들보다 귀가 더 크게 여는 모험가다. 우연히 듣게 된 멜로디를 잊지 못하면 그 멜로디가 나오는 곡을 어떻게든 찾아낸다. 더 나아가 그 곡을 부르거나 만든 가수 또는 음악가의 또 다른 곡까지 듣는다. 음악은 쉴 틈이 없는 인생 모험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수많은 오디세우스를 위로해주는 힘이 있다.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가 말한 대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음악을 사랑하는(Musicophilia) 본능이 있다.

 

감각은 지구에 거주하는 오디세우스들의 동반자다. 하지만 이 동반자에게도 약점이 있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때론 엉뚱한 결정을 하도록 유도할 때가 있다(착시, 환청, 기억 왜곡 등). 심하면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중독).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감각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오디세우스가 된 우리는 모든 감각이 열려 있어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을 즐기듯이 모험할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모험하지 않는다. 인생 모험의 궁극적 목적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성장하면서 확장하는 라는 존재를 찾기 위한 것이다. 감각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 오뒷세이아1249, 천병희 옮김,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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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거짓말 감각은 당신을 어떻게 속이는가 - 저명 신경과 의사가 감각 이상에서 발견한 삶의 진실
기 레슈차이너 지음, 양진성 옮김 / 프리렉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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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4점  ★★★★  A-







이 한세상 산다는 거 생각하기 달렸는데

무얼 그리 안타깝게 고개 숙여 앉아 있소.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오.

 

- 송골매 1집 수록곡 <세상만사>(1979) 중에서 -

 


이러구러: 정해진 방법 없이 이렇게 저렇게 일이 진행되는 모양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아무리 백번 반복해서 듣는다고 해도, 실제로 눈으로 보면서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인식할 때 눈으로 보는 시각 정보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는지를 시사한다. 오감 중에 살아가는 데 절대로 없으면 안 되는 감각 하나만 떠올려보자. 아마도 대다수 사람은 시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봐도 정확하게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눈으로 보는 시각 이미지가 실제 사물의 모습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착시라고 한다. 1976년에 NASA가 공개한 화성 표면 사진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사진에 찍힌 화성 표면에 얼굴 형상이 보였기 때문이다. 외계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화성의 얼굴이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외계 생명체의 흔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고화질 사진으로 촬영한 화성 표면에는 얼굴이 없었다. 얼굴의 정체는 자연적으로 생긴 바위 또는 언덕이다. 화성에 얼굴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제대로 속았다. 그것도 자신들의 눈과 뇌에 속은 것이다. 그들은 왜 화성의 암석 덩어리에서 얼굴 형상이 보였던 것일까? 이러한 심리 현상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한다. 우리는 모호하거나 불규칙한 형상의 물체를 볼 때마다 자신에게 친숙한 형태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만 기묘한 형상이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레이돌리아가 빚어낸 형상은 허구이며 가짜에 가깝다.

 

눈으로 보는 것이 착각과 오류를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청각이 시각보다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하듯이 듣는 것만 듣고 싶어 한다. 1994년에 발표한 댄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수록곡 <교실 이데아>에 사탄의 메시지가 있다는 음모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음모론을 믿은 사람들은 <교실 이데아>를 역재생하면 피가 모자라라는 말이 들린다고 했다. 몰상식한 개신교 인사들은 <교실 이데아>를 만든 서태지가 의도적으로 사탄의 메시지를 심어 놓았다고 주장했다. <교실 이데아>는 사탄과 전혀 관련 없는 노래다. <교실 이데아> 음모론은 귀에 익은 발음을 떠올리려는 뇌와 청각 기관이 함께 일으킨 착각의 산물이다.


감각 인식 오류는 세상의 진실을 불신하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먹어보면서 맛을 느끼고, 어떤 소리를 듣고, 직접 만져보면서 주변 세상을 인식한다. 오감을 총동원하여 느낀 세상을 진짜라고 믿는다. ? 당연히 내가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했고, 먹어봤으니까. 하지만 우린 항상 크고 작은 감각에 속으면서 살아간다. 오감을 통해 인식하는 세상은 정확하지 않다. 개인의 경험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런데도 그 경험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뇌는 생소한 경험보다 친숙한 경험을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는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접하는 복잡한 정보를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세상은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가깝다.

 

감각의 거짓말: 감각은 당신을 어떻게 속이는가는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감각의 한계와 특이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신경과 전문의다. 이 책에 소개된 환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감각을 가지면서 살아간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도 통증을 느낄 수 없는 희소 질환인 선천성 무통각증을 겪는 사람, 향수 냄새가 지독한 악취로 느껴져서 괴로워하는 사람, 모든 것이 알록달록한 빛깔로 채워진 왜곡된 형태로 보이는 사람까지. 이들은 모두 이상한 감각이 만들어낸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과장되고 왜곡된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환자가 있는 반면에 갑자기 찾아온 감각 이상 반응으로 인해 예전의 일상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저자는 자신이 진찰한 환자들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남들과 다른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느꼈을 그들의 복잡한 심경까지도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서술 방식은 전문 지식과 다양한 환자들을 만난 경험으로 무장한 의사나 학자들이 선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환자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기만 하는 전문가 입장에 서서 글을 쓰지 않는다. 그는 건강하고 똑똑한 의사와 이상한 감각으로 인한 질환과 장애를 안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환자를 철저히 구분하게 만드는 경계를 무너뜨린다. 저자는 매우 솔직하다. 자신 또한 감각의 거짓말에 당한 적이 많다고 고백한다. 자기도 언젠가는 감각기관이 제 기능하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쇠약해질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는 환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 감각의 거짓말에 속는 우리는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고.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뛰어난 오감은 없다는 것. 우리는 감각이라고 믿고 있던 착각속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감각의 속임수로 만들어진 세상과 진리를 지나치게 확신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감각의 한계, 즉 인간으로 살면서 피할 수 없는 한계가 불편하더라도 외면해서 안 된다. 의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감각 이상과 오류를 무조건 고쳐야 할 비정상적인 문제로만 봐야 하는 건 아니다.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 ‘이상한 감각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건강하지 않고 불행하게 사는 장애인으로 규정할 수 없다. 어떤 환자는 감각 이상을 질병과 장애라기보다는 세상을 색다르게 보게 만드는 특별한 창()으로 여긴다. 감각의 거짓말을 피할 수 없는 우리는 똑똑하지 않지만, 살아갈 가치가 없을 정도로 무능하지 않다. 이 세상을 무기력과 자책의 늪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감으로 해석한 각자만의 경험이 녹아든 감각의 제국(諸國)’ 속에서 살아간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누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부질없다. 다른 사람이 구축한 감각의 제국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개입하고 지배하려는 사람을 감각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라고 불러야 하나. 이 한세상 산다는 건 오감으로 느끼기에 달렸다. 오감으로 만들어진 가짜 세상이라는 이유로 고개 숙여 앉아 있지 말자. 그런대로 한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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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06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간간이 자주 보이네. ㅎ
난 눈을 못 믿겠으면 청각을 믿어보라고 할 참이었는데.
사람이 죽으면 맨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게
청각이라잖아. 그런데 그것도 못 믿겠구만.
이건 딴 얘기지만, 송골매하면 배철수지만 세상만사는 구창모가 불렀지.
지난 3월말에 류이치 사카모토가 71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배철수 씨가 그와 동갑이라더군. 세월 참 빨라.
나에겐 영원한 오빠지. ㅋ

cyrus 2023-04-06 19:49   좋아요 1 | URL
계속 글을 써서 남기다가 또 갑자기 조용히 사라질 수 있어요. 이제는 정말 예전처럼 책 읽고 꾸준히 글을 쓰고 싶어요. 세월이 지나니까 체력과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네요. 시력은 정말 안 떨어졌으면 좋겠어요.. ^^;;
 




전망 좋은 []

 

EP. 18


환상문학







<환상문학>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genre.fiction/





애서가는 책방지기와 친하게 지낼수록 좋다. 책방지기는 동종업계 소식에 관심이 많다. 전국의 특색 있는 책방뿐만 아니라 생긴 지 얼마 안 된 아가 책방까지 알고 있다. 작년 말에 나의 주말 친구인 <직립보행> 책방지기는 방천시장 안에 있는 책방 <북셀러>를 소개해줬다(한 번 방문한 적 있다. 방문 후기는 다음에 공개하겠다). <일글책> 책방지기는 동성로에 새롭게 문을 연 <환상 문학>을 알려줬다.

 

<환상문학>장르문학 전문 서점이다. 장르문학의 범주는 정해진 건 없지만, 대체로 추리(미스터리), SF, 판타지, 스릴러, 로맨스, 호러(공포문학), 그래픽노블, 라이트노벨 등이 포함된다. 장르문학 도서만 만날 수 있는 대구 책방은 <환상문학>이 처음이다. 올해 213일에 연 아가 책방이다.

 

대부분 책방은 가 오픈(임시 개장)’ 기간 동안 문을 열어 손님들을 맞이한다. 책방지기는 책방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임시 개장 사실을 알리는데, 완전하지 않은 형태의 책방 내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책방의 임시 개장은 예행연습(리허설) 또는 스포츠의 시범 경기로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환상문학>은 임시 개장 없이 212일에 정식 개장 사실을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공지했다. 책방지기가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거의 완벽하게 갖춰진 책방을 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직접 가보니 신생 책방에서만 볼 수 있는 미비한 점들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미 <환상문학>에 다녀간 몇몇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엽기부족이라는 닉네임의 장르문학 전문 파워블로거가 <환상문학>에 다녀갔고, 그분이 <환 문학> 큐레이션을 좋게 평가한 후기를 남기셨으니 내가 책방의 좋은 점을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일단 너무 좋다. 대구에도 장르문학 마니아를 위한 책방이 생겨서.

 

<환상문학>나만 아는 공간이 아니라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모든 독자를 위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기적으로 자주 가야겠다. 대낮보다는 저녁에 찍힌 책방 사진이 확실히 멋져 보인다. 밤에 꼭 가보길 추천한다. 밤에 열린 책방은 사진보다 직접 보는 게 훨씬 매력적이다. <환상문학>은 정기 휴무일인 목요일을 제외한 평일과 주말에 밤 9시까지 연다


재미있게도 내가 자주 가는 이자카야가 <환상문학>에서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런, 카드값이 확 올라가는 지점이 또 생겼다. 여기에 한 번 오면 책에 취하고, 술에 취하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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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4-03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구에 좋은 책방이 많은거 같아요. 장르문학서점이라니 궁금하네요~!!

cyrus 2023-04-05 21:22   좋아요 1 | URL
다른 지역에 비하면 책방 수가 적은 편이지만, 일 년마다 새로운 책방이 하나둘씩 생겼어요. 제가 아직 안 가본 대구 책방이 몇 곳 있어요. ^^

바람돌이 2023-04-0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cyrus님덕분에 또 좋은 서점을 알았네요.
장르문학 전문서점이라니, 이렇게 장르별로도 특화된 서점이 생기는거 너무 좋은거 같아요. 저런 서점들이 곳곳에 많이 생기고 장사도 잘되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저는 우리 동네 서점으로 일단 갑니다. ^^

cyrus 2023-04-05 21:26   좋아요 0 | URL
<환상 문학>은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환상 문학>은 책만 파는 곳인데 커피를 팔지 않고서 책 팔기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환상 문학>이 생긴 덕분에 최근에 장르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소설을 안 읽은 지 꽤 오래됐는데 책방이 제 독서 욕구를 부추기네요. ^^
 
이교도 미술 - 신과 여신, 자연을 숭배하는 자들을 위한 시각 자료집
이선 도일 화이트 지음, 서경주 옮김 / 미술문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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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4점  ★★★★  A-





기독교그리스·로마 신화는 서양 문명이라는 유서 깊은 나무를 풍성하게 만들어준 두 개의 뿌리다.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거대한 나무에 흘러나오는 양분을 이용할 줄 알았다. 그 양분은 각각 미술과 음악, 그리고 문학을 탄생시킨 원천이 되었다. 예술가와 작가들은 성서와 신화에 묘사된 인물과 사건을 작품의 소재로 다뤘다. 따라서 서양 문화를 이해하려면 기독교와 신화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와 대조적으로 그리스·로마 신화는 다신교적 문화의 색채가 짙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각양각색 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신화를 창조했고, 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신전을 세웠다. 시민들은 그곳에 가서 공물을 바쳐 신의 축복을 빌었다. 다신교를 근간으로 한 그리스·로마 신화는 일신교인 기독교 정신과 반대되는 이교도(pagan) 또는 이교 신앙(paganism)이다. 전 세계에 현존하는 대다수 다신교는 수많은 신의 존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나무, , 바위 같은 자연물에도 신성(神性)이 있다고 믿는다. 기독교인들은 자연을 숭배 대상이 아닌 신의 창조물로 여겼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는 자연 숭배를 이교도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이교도는 기독교 중심주의적 용어다. 과거 기독교인들은 유일신교인 이슬람마저도 이교로 분류했다. 그런 다음 다신교 신자들 앞에 칼과 성경을 내밀면서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했다. 서구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가 유행하면서 ‘pagan’은 잘 쓰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생소한 종교 및 신앙을 이교도로 분류하려는 편견은 여전히 살아 있다. 특정 지역에만 전해 내려오고 있는 전통 신앙 및 종교를 소재로 한 공포 영화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이교도를 생산한다. 공포 영화 속 이교도는 외부와 오랫동안 단절된 채 생활하는 폐쇄적인 공동체다. 그들은 종교적 전통을 지키기 위해 산 자를 희생 제물로 바친다. 소름 끼칠 정도로 집단 광기에 빠진 이교도를 묘사한 대표적인 영화가 <위커 맨>(The Wicker Man, 1973)<미드소마>(Midsommar, 2019). 광신도에 가까운 이교도가 등장하는 영화는 이교도의 부정적인 면만 과도하게 부각한다.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 무관심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무신론자들은 사실과 다른 영화 속 이교도를 그대로 믿을 가능성이 크다.

 

이교도 미술: 신과 여신, 자연을 숭배하는 자들의 시각 자료집은 본격적으로 문화사적 관점에서 이교도를 다룬 책이다. 이 한 권의 책에 동서양과 고금을 아우르는 이교도의 역사와 문화가 도판과 함께 담겨 있다. 이도교와 관련된 도판이 많이 실려 있어서 미술 도서로 분류할 수 있지만, 종교 도서로 봐도 무방하다. 종교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무신론자와 비종교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도 이교도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산에 올라가 신성한 바위에 기도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갈피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집을 계속 찾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사주학이나 타로 점성술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자연물을 신성시하는 태도에서부터 점을 보는 행동까지 이교도 문화는 우리 생활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다. 이교도는 영화에 묘사한 것과 다르게 개방적이었다. 그들은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으며 여기에 맞춰 독특한 문화 유산들이 태어날 수 있었다.

 

기독교인과 비종교인들이 잘 모르는 전 세계 이교 신앙의 특징과 이교도의 문화적 산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 이교도 미술의 장점이다. 이 책은 신과 여신, 자연을 숭배하는 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교도 미술은 종이로 만든 <이교도 특별전 박물관>이다. 이곳에 종교라는 문턱이 없다. 열린 마음으로 이교도 문화를 이해하려는 비종교인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박물관이 잘 유지하려면 전시품과 관련된 내용 그리고 용어와 명칭이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이교도 특별전 박물관에 사소한 옥에 티가 있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변신 이야기 Metamorphoses[주1] 

247행 


(29)



[주1] 사실 이건 옥에 티가 아니다. 그래도 독자를 위한 부연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Lucius Apuleius)변신 이야기오비디우스(Ovidius)변신 이야기와 제목만 같을 뿐, 다른 내용의 작품이다. 아풀레이우스가 쓴 작품의 국역본 제목은 황금 당나귀(송병선 옮김, 현대지성, 2018).







4. 아폴로 → 4. 아폴론/아폴로 [주2]


(33쪽)



[주2] 33쪽에 그리스 ·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이 있다. 왼쪽 이름은 그리스식, 오른쪽 이름은 로마식 표기다. 그런데 아폴로만 유일하게 그리스식 이름이 없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폴론(Apollon)’으로 표기되며 아폴로(Apollo)’가 로마식 이름이다.





* 71







하인리인 하인라인






* 104






 고대 로마에서 베스타를 섬긴 처녀들은 여신 헤라[3]의 사제들이다. 이들은 사제로 일하는 동안 순결을 지켜야 했다.



[3] 베스타(Vesta)는 로마에서 가정과 국가의 수호자로 숭배된 화로의 신이다. 베스타는 그리스의 헤스티아(Hestia)와 같다. 헤라(Hera)와 헤스티아는 크로노스(Cronus)와 레아(Rhea) 사이에 태어난 자매이다. 따라서 베스타를 섬긴 처녀들은 여신 헤스티아의 사제들이다.





* 색인 255





테니스, 앨프리드 테니슨, 앨프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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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4-02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처음부터 이렇게 오탈자를
보게 되면 책 자체에 대한 신뢰
가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 같
습니다.

대단하시더라는.

cyrus 2023-04-03 05:04   좋아요 2 | URL
책 만드는 사람들(역자와 편집자)이 오탈자를 확인하지 못한 것을 큰 잘못이라고 여기지는 않아요. 그런데 제일 나쁜 건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검토하지 않은 점이에요.

대부분 사람은 가짜 뉴스, 편견이 반영된 개인적 견해,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 거짓 정보가 퍼트리는 원인을 유튜브나 언론에서 찾아요. 맞긴 하는데, 책 속에도 잘못된 내용이 엄청 많아요. 그런 내용을 보면 책과 책 만드는 사람(저자, 역자, 편집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요. 아무리 책의 주제나 만듦새가 좋다고 해도 그런 문제점이 노출되어 있다면 평점을 박하게 줍니다.

사람들은 왜 유튜브에서 떠도는 가짜 정보를 좋아하지 않고, 경계하면서도 정작 책 속에 버젓이 실려 있는 가짜 정보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을까요? 출판사와 책 만든 사람들은 책에 대한 비판적 서평에 침묵으로 일관해요. 어떠한 해명이나 반박 견해를 내놓지 않아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전히 대다수 출판사 관계자와 독자들은 칭찬 같지 않은 비판적 서평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도 책 속에 가짜 정보를 비판하는 서평이 많이 나와야 해요. 예전부터 그래왔고, 그런 서평을 쓰는 일이 제 목표이며 의무입니다.

korhoil 2023-10-11 0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