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평점 :
평점
1점 ★ F
모든 작가는 믿을 만한 독자가 있어야 합니다. 작가가 작업하고 있는 것에 대해 동감하고 작품을 가능한 훌륭하게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 말입니다. 그렇지만 독자는 솔직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독자가 갖추어야 할 근본적인 자격입니다.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며 거짓으로 위로해서도 안 되며, 칭찬받을 만한 작품이 아닌 경우에는 절대로 칭찬을 해서도 안 됩니다.
(폴 오스터, 《작가란 무엇인가 1》 중에서, 181~182쪽)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구매한다. 가끔은 잘 만든 책인지, 아닌지를 내 눈과 머리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살 때도 있다. 이렇다 보니 지난달에 꽤 많은 책을 샀다. 3월에 주문한 책들의 목록에 《감각의 박물학》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어서라기보다 꼼꼼하게 평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문했다.
나는 절판된 《감각의 박물학》이 재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 다이앤 애커먼(Diane Ackerman)의 명성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저자가 쓴 다른 책 《새벽의 인문학: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반비, 2015, 절판)이 좋았다. 《감각의 박물학》은 다이앤 애커먼에게 많은 상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글 잘 쓰는 저자’로 독자들에게 각인시켜준 책이다. 이 책은 다이앤 애커먼의 대표작이다.
저자의 대표작이 나와서 무척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갑자기 왜 이 책이 나온 거지?” 《감각의 박물학》은 1990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이 나온 지 삼십여 년이 지났다. 대부분 사람은 유명한 저자가 썼고, 연세가 지긋한 책을 ‘고전’이라 부르면서 우대한다. 이 책의 분홍색 띠지에 ‘독보적인 고전’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나는 이 문구를 떼어내고 싶다. 출판사는 《감각의 박물학》을 ‘고전’으로 과대 포장했다.
나는 번역서를 사기 전에 제일 먼저 원서의 출판 연도를 확인한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일수록 철 지난 낡은 지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이런 책에서 신선한 지식을 찾는 일은 시간 낭비다. 물론 과거의 지식이 무조건 틀린 건 아니다. 그렇지만 지식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지식은 다양한 관점이 혼재하는 복잡한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이구동성으로 옳다고 확신했던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류로 판명될 때도 있다.
출판사는 《감각의 박물학》을 ‘개정판’이라고 주장한다. 대부분 출판사는 책 표지를 싹 다 바꾸고, 책값을 조금 높게 책정해서 개정판을 낸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개정판의 의미는 겉뿐만 아니라 그 안의 내용에도 변화를 준 책이다. 사실이 아닌 내용에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책을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독자들 앞에서 《감각의 박물학》을 개정판이라고 홍보하는 출판사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감각의 박물학》을 2004년에 나온 구판과 비교해서 읽어봤다. 개정판에 인명 표기가 달라진 부분이 있었고, 구판에 없었던 옮긴이 주가 개정판에 추가되었다. 그런데 겨우 이것만 가지고 개정판이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
내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감각의 박물학》을 정가로 절대로 팔지 않겠다. 책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오류와 고쳐지지 않은 역자의 오역은 《감각의 박물학》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책 내용에 변화를 준 개정판이라면 몰라도 고작 겉만 바꾼 책은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다. 저자가 책을 다시 쓰지 않는다면 역자가 그 일을 대신해야 한다. 개정판을 출간하려는 역자는 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 원서 속에 남아 있는 오류와 유통기한이 지난 지식이 있는지 확인한다. 저자가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 있으면 주석을 달아서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알려줘야 한다.
* 53~54쪽
그 잔인한 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어린 갈까마귀 한 마리를 둥지에서 꺼내 완숙 달걀을 40일 동안 먹인 다음 잡는다. 그리고 은매화 잎새와 화장 분, 아몬드 오일을 넣고 증류한다.” 더할 나위 없다. 그 악취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를 인용하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빼면, 그 향수를 뿌린 이들은 분명 영원의 처마 위에 앉은 탐욕스러운 미인이 될 것이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26쪽]
Here is the ghoulish recipe: “Take a young raven from its nest, feed it on hard-boiled eggs for forty days, kill it, then distill it with myrtle leaves, talcum powder, and almond oil.” Splendid. Except for the stench, and an overwhelming desire to quote Poe, you’ll surely be a ravenous beauty perching on the eaves of forever.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시 <The Raven>은 ‘갈까마귀’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제목은 ‘까마귀’다.
‘raven’은 국내에 서식하지 않은 ‘큰까마귀’이며, 갈까마귀의 영문명은 ‘Daurian jackdaw’다. 큰까마귀는 까마귀 중에서 가장 큰 종이라면, 갈까마귀는 가장 작은 종이다.
* 56쪽
동물들에게 사냥꾼의 냄새는 경고가 된다. 사냥꾼에게 동물의 냄새는 유혹적이다. 일종의 자기방어로 냄새를 흘려보내는 동물도 있다. 얼룩 스컹크는 앞다리로 서서 지독한 악취를 공격적으로 쏘아 보낸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27쪽]
For an animal who is prey, the odor of its hunter will warn it; for the hunter, the odor of its prey will lure it. Of course, some animals exude an odor as a form of defense. Spotted skunks do a handstand and squirt would-be attackers with a horrible stench.
스컹크는 악취를 내뿜지 않는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분비물을 내뿜는다.
* 107쪽
피라미드 모양의 바벨탑은 죽음이 예정된 존재가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이, 신들 가까이로 뻗어 올라갔고, 사제들은 그 꼭대기에 향을 지폈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56쪽]
Atop the famous ziggurat-shaped Tower of Babel, which stretched closer to the gods than mortals could reach, priests lit pyres of incense.
지구라트(Ziggurat)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세워진 신전이다. 지구라트는 ‘높이 솟은’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 아카드어에서 유래되었다. 하늘에 있는 신을 지상과 연결하기 위해 탑과 같은 형태의 지구라트가 만들어졌는데, 《구약성서》 「창세기」에 묘사된 바벨 탑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이라크에 있는 ‘우르의 지구라트(Ziggurat at Ur)’는 보존 상태가 아주 좋은 유명한 지구라트다. 역자는 지구라트를 피라미드와 비슷한 형태의 건축물로 착각했다.
* 140쪽
자이레의 피그미족 아기는 적어도 하루의 절반은 다른 사람과 신체적 접촉을 한다.
자이르(Zaire)는 1971년부터 1997년까지 존재했던 국가로, 콩고민주공화국의 옛 국명이다.
* 151쪽
옛날 남자 지도자들은 남성다움의 상징으로 머리를 길게 길러 늘어뜨렸다(사실 ‘카이저’나 ‘차르’는 ‘긴 머리’를 의미한다).
저자는 카이저(kaiser)와 차르(tsar)의 어원을 ‘긴 머리’라고 주장한다. 그 견해의 출처가 궁금하다. 그런데 이 책에 저자가 글을 쓰면서 참고한 문헌 목록이 없다.
카이저와 차르의 어원은 로마의 지도자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카이사르는 대머리로 유명하다. 따라서 카이저와 차르의 의미가 정말로 ‘긴 머리’와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이 남성 군주의 강인한 남성성을 상징하는 신체적 기호인 건 확실하다. 유럽의 귀족과 군주들은 치렁치렁한 가발을 착용했다.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Wilhelm II)의 수염은 ‘카이저’라는 용어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했다. 당대 남성들과 지도자들은 빌헬름 2세처럼 수염을 길렀다.
* 160쪽
공상과학소설에서는 우주비행사의 체온을 떨어뜨려, 유리집 속에서 잠자는 벌거숭이 곰처럼 장기간 수면 상태에 들게 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가족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죽은 후 사체를 동결시켰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떠돌고 있다. 월트 디즈니는 마법의 얼음 왕국에 누워 재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저온학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트랜스타임주식회사에서는 사망 직후의 사체를 동결 처리하는 일을 한다.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리고 병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미래가 오면, 그때 생명을 되찾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90쪽]
Science-fiction stories often involve an astronaut whose body temperature has been lowered, sleeping in suspended animation like a naked bear in a glass den. Walt Disney’s family swears it isn’t true, but a popular folk myth for some time now has it that Walt arranged to be frozen when he died and is lying in a magic kingdom of ice, awaiting his rebirth. Trans Time, Inc., a member of the American Cryogenics Society, does freeze people right after death, promising to bring them back to life in a later era, when the mysteries of death are scrutable and the carnage of their diseases.
자신을 냉동으로 보존해달라는 디즈니의 유언은 낭설이다.
* 229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짜낸 젖은 은하수가 되었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131쪽]
A mythic Gaia poured milk from her breasts and they became the galaxies.
그리스 신화에 묘사된 은하수의 유래는 헤라(Hera)의 가슴에서 나온 모유로 알려져 있다. 제우스(Zeus)는 자기가 바람을 피워서 태어난 헤라클레스(Heracles)에게 젖을 주기 위해 자고 있던 헤라 몰래 젖을 물렸다. 헤라클레스가 젖을 빠는 순간, 그의 강력한 힘을 느낀 헤라가 잠에서 깨어났다. 헤라의 가슴에 뿜어져 나온 모유가 하늘에 퍼지면서 은하수가 되었다고 한다.
* 245쪽
어떤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나면 향기로운 소변을 보고(프루스트가 『지나간 것들의 기억』에서 묘사한 대로), 아티초크를 먹으면 심지어 물도 달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궁금증이 생겼다. 프루스트가 쓴 소설 중에 저런 제목이 있었어? 아니면 프루스트의 단편소설 제목일까? 『지나간 것들의 기억』으로 번역된 원문은 ‘Remembrance of Things Past’다. ‘Remembrance of Things Past’는 최초로 출간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의 영문판 제목이다.
* 249쪽
입은 육체라는 감옥을 단단히 봉하고 있다. 입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도움을 주거나 해를 끼치지 못하고, 그래서 진화 과정에서 입이 제일 먼저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굼벵이, 곤충 등 모든 하등동물에게도 입이 있다.
하루살이, 누에나방, 깔따구 등과 같이 입이 퇴화한 곤충들도 있다.
* 322쪽
아서 클라크의 『2001 오디세이』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344쪽
수컷 두꺼비고기는(조기어류의 하나―옮긴이)는 저음의 소리를 지른다.
구판(293쪽)에 없는 옮긴이 주가 개정판에 추가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자가 생겼다.
* 390쪽
예술가들은 예술의 유기적 형식을 항상 자연에서 구해왔으므로 ‘펄서’(규칙적으로 전파를 방출하는 천체의 하나. 빠르게 자전하는 중성자별로 추측된다―옮긴이)라는 폭발음의 곡조를 발견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펄서가 중성자별이라는 사실이 수많은 연구와 관측을 통해 밝혀졌다.
* 487~488쪽
태양계의 행성 중 절반 정도가 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발견은 얼마나 즐거운 충격이었던가. 토성뿐 아니라 목성, 천왕성, 해왕성, 어쩌면 명왕성에도 고리가 있다. 그리고 그 고리들은 서로 다르다.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은 명왕성을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이 아닌 ‘왜행성’으로 분류했다.
전문 용어에 대중에게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의미가 반영되었다면 바뀔 수가 있다. 그런데 개정판에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전문 용어가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 75쪽
정신분열증 환자들 → 조현병 환자들
* 161쪽
온혈동물 → 정온동물 또는 항온동물
냉혈동물 → 변온동물
* 313쪽
간질 → 뇌전증
* 434쪽
할로윈[비표준어] → 핼러윈
책에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이 더 있지만, 글의 분량이 길어져서 따로 쓰려고 한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 책을 비판한 내 견해가 틀릴 수 있다. 틀린 견해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댓글로 꼭 알려주시라. 내 글에 대한 정오표를 남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