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5일차
<欲得現前 /욕득현전/(도가) 눈 앞에 나타나 길 바라거든
莫存順逆/막존순역/따름과 거슬림에 걸리지 말라>
이제 부터 신심명은 앞의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爱), 통연명백(洞然明白)” 의 변주에 해당된다.
앞의 구절의 핵심은 “대상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분별하지 마라” 였다.
승찬 대사는 언어로 그물을 쳐서 간택하고 증애하는 그 마음을 걸러내려고 했다.
하지만 신심명은 단순히 “마음을 분별하지 말라”를 되풀이 하는 구절이 아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그 분별하는 마음마저도 걸리지 말라는 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다.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은 좋고 싫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진정한 자유란 그 좋고 싫음을 구별하는 분별마저도 걸림 없이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즉 쉽게 말해 우리는 분별을 해야 한다.
아니 분별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임을 감추지 말아야 한다.
분별하는 마음의 본성을 굳이 수행이란 이름에 걸려서 다시 또 분별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 바로 분별심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리석고, 못 났고, 혹은 내가 잘 났고, 위대하고, 남보다 어떠한 상태로 의식과 무의식중에 비교하고 분별하는 그 마음이 바로 본성이란 것이다.
그 본성을 부끄러워하고, 감추고자 하고, 수행을 해서 그런 분별심을 없애겠다고 하는 순간, 이미 도는 멀어진다.
도가 어려운 것이 아니란 말은 우리의 본성품이 어렵지 않다는 것과도 같다.
단지 내 참 마음을 믿지 못해서, 분별하는 그 마음을 다시 분별하기 때문에 도가 어려워진 것 이 아닐까?
그냥 내 마음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수행은 시작되지 않을까?
오늘의 구절 욕득현전(欲得現前),막존순역(莫存順逆), 또한 이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다.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하는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근심과 곤란함으로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다.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다.
수행하는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모든 마군으로서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하셨다.
일을 꾀하는데 쉽게 이루어지길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데 두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하셨다.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하셨다.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길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내 뜻과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원림을 삼으라 하셨다.
공덕을 베풀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덕을 베푼 것을 헌신처럼 버려라 하셨다.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적은 이익으로서 부자가 되라 하셨다.
억울함을 당해서 누명을 벗고자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중에서.
<보왕삼매론>은 수행 중에 마주하는10가지 장애를 극복하는 가르침이다.
이 내용을 보면 기존의 우리가 가진 좋고 나쁘고의 관념을 완전히 뒤 바꿔 놓는다.
본래 우리의 마음은 좋으면 따르게 되고, 싫으면 거스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그러나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좋다 나쁘다는 관념 자체는 고정되지 않는다.
신심명은 이러한 보왕삼매론의 부연 설명을 확실한 종지부를 찍고 있다.
욕득현전(欲得現前), 즉 바로 눈 앞에 도가 나타나 보이길 바라는가?
막존순역(莫存順逆) 이란 좋아서 따른 것이든 싫어서 거스리는 것이든 모두 다 고정되지 않았다.
좋다 나쁘다는 것이 사실 없는 것인데 우리 마음이 짓는 것임을 철저히 알라는 것이다.
결국 수행이란 뭔 가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어떠한 상태 인지를 철저히 확인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원림속에서 있는 반응하는 나를 지켜 보는 것이다.
주:欲得: 바랄 욕, 얻을 득: 얻고자 바란다면, 즉 오를 혹은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現前: 나타날 현, 앞 전: 앞에 나타나다. 즉 (눈) 앞에 나타나고자
莫存: 없을 막, 있을 존: 막은 부정사로 ~하지 마라, 즉 있게 하지 마라.
順逆: 따를 순, 거스릴 역: 따르고 거스리는 것.
*원림(怨林:원망할 원, 수풀 림):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을 뜻함. 원망, 불편, 억울함 같은 감정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관계와 상황 전체를 뜻함.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괜히 마음 상하고 화가 날 때, 바로 그 자리가 원림이다.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