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한비자 ㅣ 낭송Q 시리즈
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힐 나레이션) 어제 마벨리 선생과의 토론에서 군주가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고 신하들을 다스릴 것인지, 한비 선생의 설명은 치밀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무리 훌륭한 통치술이라도 나라가 망해버리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오늘은 조금 잔인한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마힐: 선생님, 선생님의 조국 한나라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한비: 제가 죽은 뒤의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마힐: 선생님이 돌아가신 기원전 233년으로부터 3년 뒤, 한(韓)나라는 진나라에 멸망했습니다.


한비: 음... 짐작은 했지만 그렇게 빨리...


마힐: 네, 당시 진나라가 여섯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멸망시킨 나라였습니다.


한비 선생은 잠시 말을 잃었다.


마힐: 선생님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통치술을 고민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나라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사상은 실패한 것이라 생각하시는지요?


한비: 선생께서는 좋은 약을 먹고도 환자가 죽으면 그 약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힐: 반드시 그렇지는 않겠지요.


한비: 약을 제때에 쓰지 않았거나, 이미 너무 늦었을 수도 있습니다. 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 글이 한나라를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제 생각이 모두 틀렸다는 주장은 다릅니다.


마힐: 그렇다면 나라가 오래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 통치술이 반드시 옳았다는 뜻도 아니겠군요.


한비: 바로 그겁니다.


마힐: 그런데 선생님, 더 기묘한 일이 있습니다.


한비: 무엇입니까?


마힐: 선생님의 조국을 멸망시킨 진나라에서 오히려 법가적 통치 원리가 강력하게 활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비: 원래 진나라는 저보다 앞서 상앙의 개혁으로 강해진 나라였습니다.


마힐: 맞습니다. 선생님은 그 법가적 전통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지요. 선생의 글을 읽고 진왕이 선생을 먼저 만나보자고 한 것은 기억하시죠?


한비: 네, 그때 전 영문도 모른 채 결국 진의 감옥에서 죽었죠. 그런데 진나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힐: 선생께서 돌아가시고, 12년 뒤에 진은 기원전 221년 천하를 통일하고 왕은 스스로를 시황제라고 불렀습니다.


한비: 짧은 시간 안에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으니 그렇게 칭할 만 합니다.


마힐: 네, 하지만 진 나라도 불과 15년 뒤인 기원전 206년에 멸망하고 말았지요.


한비: 아, 천하를 얻고도 오래 지키지 못했군요.


마힐: 네, 강력한 법과 상벌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시황제 사후에는 권력투쟁과 가혹한 통치, 반란이 이어졌습니다. 어제 이야기했던 호해와 조고가 나라의 멸망을 재촉하게 한 도화선인 셈이죠. 


한비: 군주가 측근에게 휘둘렸다면 제가 경계했던 문제가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마힐: 하지만 법과 형벌에 지나치게 의존한 통치 방식 자체에도 문제도 간과할 순 없습니다.


한비: 네,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법을 세우는 것과 법을 잘못 운용하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마힐: 그런데 진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법가적 통치 방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비: 후대의 군주들도 법을 중시했습니까?


마힐: 그렇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생전에 그토록 비판 하셨던 유가가 국가의 주요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한비: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이 말입니까?


마힐: 네. 하지만 유가를 내세운 왕조들도 법률과 관료제, 인사와 상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를 설명할 때 외유내법(外儒內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한비: 겉으로는 유가, 안으로는 법가라…… 하하. 묘한 일이군요.


마힐: 다만 유가와 법가가 단순히 겉과 속으로 나뉘었던 것은 아닙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법가적 통치 방식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한비: 결국 제 조국도, 진나라도 사라졌지만 법과 제도로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는 문제는 남았군요.


마힐: 그렇습니다. 사상은 반드시 원래 모습 그대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니까요.


마힐: 이제 조선이라는 나라를 말씀드릴 차례가 되었군요.


한비: 연나라 동쪽의 그 조선입니까?


마힐: 이름은 같지만 다른 나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조선을 고조선이라 부르는데 제가 지금 말하는 조선은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약 1,600년 뒤인 1392년에 세워진 왕조입니다.


한비: 얼마나 오래 이어졌습니까?


마힐: 오백 년 넘게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지만, <경국대전>이라는 법전과 관료조직을 갖추고 나라를 운영했습니다.


한비: 그 나라 역시 유가의 이념과 법률을 함께 사용했군요.


마힐: 그렇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한가지 기묘한 모순이 있었습니다.


한비: 모순이라니요?


마힐: 신하들은 인과 덕, 충과 의를 논하면서도 서로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거나 유배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왕실에서는 삼촌이 조카를 혹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형제끼리 서로 정치적 위협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비: 정치 권력을 둘러싼 갈등으로 보면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죠. 사람은 본래 이익을 좇고, 권력이 있는 곳에 원래 다투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마힐: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왕조의 왕실과 조정은 그렇게 살벌한 권력 투쟁의 무대이지만 오백 년이 넘게 지켜졌습니다.


한비: 오백 년이면 중국의 어떤 한 왕조보다 더 길게 유지되었군요. 그렇다면 그들은 권력을 탐했을지언정, 질서 자체를 없애려 하지는 않았다는 말이겠군요.


마힐: 네, 맞습니다. 신하들은 서로 공격을 하면서도 자신들이야말로 유교적 도덕과 올바른 왕조 질서를 지킨다고 믿었습니다.


한비: 어쩌면 조선이란 나라는 인의와 도덕이 관직을 얻고 잃게 하며,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정치적 기준으로 작용한 나라였겠군요. 이름은 덕과 의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움직이는 힘이 된 거지요.


마힐: 역시 법가적 해석 답습니다.


한비: 그런데 그 나라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마힐: 1897년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었지만, 1910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강압으로 국권을 빼앗겼습니다.


한비: 오백 년의 제도도 결국 나라를 지키지 못했군요.


마힐: 그렇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멸망은 선생님 시대의 한나라 멸망과는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한비: 무엇이 다릅니까?


마힐: 한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진나라의 강력한 황제체제가 들어섰습니다. 군주는 바뀌었지만 군주 중심의 통치라는 기본 질서는 이어졌지요.


한비: 네.


마힐: 그런데 조선 왕조가 끝날 무렵에는 세계의 통치 원리 자체가 변하고 있었습니다. 헌법과 국민의 권리, 국민주권이라는 생각이 발전하고 있었지요.


한비: 국민주권이라니요?


마힐: 군주가 아니라 국민이 국가의 주권자라는 뜻입니다.


한비: 군주가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마힐: 그렇습니다. 물론 한국이 그 체제로 곧바로 전환된 것은 아닙니다. 식민지 지배와 독립운동, 해방을 거쳐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긴 과정이 있었습니다.


한비: 그렇다면 단순히 왕조가 바뀐 것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릴 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군요.


마힐: 바로 그겁니다.


한비: 그렇다면 현대에는 제 법가가 필요 없겠군요. 군주가 없으니 말입니다.


마힐: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법은 존재합니다. 다만 형태가 달라졌습니다.


한비: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마힐: 현대의 법치주의는 선생님의 법가와 다릅니다. 선생님의 법은 군주의 통치를 위한 수단이었지만, 현대의 헌법은 국가권력 자체를 제한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합니다.


한비: 목적이 달라졌군요.


마힐: 네. 하지만 국가나 기업, 어떤 조직이든 사람의 선의만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문제는 여전합니다.


한비: 규칙과 책임, 권한과 상벌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마힐: 그리고 신하가 말한 것과 실제로 해낸 일을 비교했던 선생님의 형명(刑名)처럼, 오늘날에도 약속과 성과를 검증해야 합니다.


한비: 그렇다면 제 사상이 그대로 살아남은 것은 아니지만, 제가 고민했던 문제들은 여전히 존재하는군요.


마힐: 네. 다만 현대에는 한 가지 질문이 더해집니다.


한비: 무엇입니까?


마힐: 그 법을 집행하는 권력자 자신은 누가 통제하는가?


한비: 군주를 통제한다니요? 그 통제권은 누가 갖나요? 


마힐: 네, 한 사람에게만 권력을 맡기지 않고 헌법과 제도로 권력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는 겁니다.


한비: 권력을 나누면 분명 다툼이 생길 텐데, 그 다툼은 누가 통제 하나요?


마힐: 맞습니다. 바로 그 문제 때문에 현대의 제도 역시 끊임없이 수정되고 있는 중입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권력자라도 현대에는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한비: 결국 시대가 바뀌면 법의 주인도 달라지는군요.


마힐: 네, 그렇게 볼 수 있죠. 법의 주인도 이제는 법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변한 것이죠. 


한비: 그럼 저도 궁금한 것이 생겼어요. 아까 나라가 망하면 통치술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으셨지요?


마힐: 네.


한비: 아시다시피 저는 제 조국 한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막고 싶었습니다. 후대에 제 글이 읽힌다고 해서 한나라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마힐: 네.


한비: 그러나 제 나라가 사라진 뒤에도 제가 고민했던 문제들이 남아 있다면, 제 글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겠지요?


마힐: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비: 그럼, 조선이라는 나라가 멸망했을 때, 그 나라의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힐: 나라를 잃었지만 사람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습니다.


한비: 군주도 나라를 지키지 못했는데, 백성들이 나라를 되찾으려 했다는 겁니까?


마힐: 그렇습니다.


한비: 무엇을 위해서였습니까? 자신들을 지키지 못한 군주를 위해서입니까?


마힐: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선생님께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비: 누구입니까?


마힐: 군주에게 버림받았지만 나라를 버리지 않았던 장수의 이야기 입니다.


한비: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까?


마힐: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순신입니다.


(마힐 나레이션) 한비의 한나라는 멸망했다. 그 한나라를 멸망시킨 진나라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법가적 통치 원리는 유가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후대의 제도 속에 남았다.

오백 년을 이어온 조선 왕조도 결국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에는 군주가 아닌 국민이 국가의 주권자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국가의 수명과 사상의 수명은 같지 않았다.

한비의 법가와 현대 법치주의는 다르다. 그러나 명확한 규칙, 권한과 책임, 말과 성과의 검증이라는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나라는 멸망하고 제도는 바뀐다. 사상 또한 변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시간을 초월하며 살아남는다. 

그래서 어떤 질문은 이천 년을 건너 살아남았다.


내일은 한비 선생에게 이순신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한다.

군주가 나라를 지키지 못할 때, 누가 나라를 지키는가?


6일차 마침.

군주의 화는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을 믿으면 그에게 이용당하게 된다. 신하는 군주와 혈육으로 맺어진 자가 아니라, 군주의 위세에 얽매여 섬기지 않을 수 없는 자이다. 그 때문에 신하는 군주의 마음을 엿보고 살피느라 잠시도 쉬지 않는다. - P116

유학자는 선왕의 도를 칭송하고 인의를 빙자하여 용모와 옷차림을 성대하게 하고, 변설을 꾸며 당대의 법을 의혹하게 만들어 군주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합종 연횡의 담론을 만드는 자는 거짓을 늘어놓고, 외세의 힘을 빌려 사욕을 성취하며 나라의 이익을 저버린다.
- P1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낭송 한비자 ㅣ 낭송Q 시리즈
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힐 나레이션) 오늘도 어제에 이어 토론은 계속된다. 한비 선생의 마지막 의미심장한 미소에서 마키아벨리 선생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차례다.

그런데 마벨리 선생이 오늘 먼저 의견을 꺼낸다.


마벨리: 한비 선생, 어제 토론을 마치고 제 <군주론> 의 실제 모델 이었던 '체사레 보르자' 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비: 아, 선생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그 체사레 보르자 말이죠? 음. 제 눈에는 패왕의 길을 걷다가 멈춘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마벨리: 패왕이라니요?


한비: 제가 살던 시대보다 앞선 춘추시대에는 여러 제후국을 이끌며 패권을 다투던 군주들이 있었습니다. 제환공, 진문공, 초장왕, 송양공, 진목공 이라는 제후들이 있었죠. 후세에는 이들을 춘추오패(春秋五霸)라 불렀지요.


(마힐 나레이션) 그렇다. 춘추오패는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약해진 시대에 패권을 추구하거나 행사했던 다섯 제후를 가리킨다. 


마벨리: 한비 선생이 보시기에 체사레는 그 정도의 업적도 이루지 못했다는 말씀이군요.


한비: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환공처럼 패업을 이룬 사람도 죽은 뒤 나라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군주 한 사람의 재능만으로는 나라를 오래 지탱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마벨리: 그렇다면 어제의 마지막 질문을 다시 드려야 겠군요. 군주가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나라가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호해의 무능한 방임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주시지요.


한비: 그 답은 무위(無爲)에 있습니다.


마힐: 무위라니요? 노장 사상에 나오는 무위를 말하는 겁니까? 


마벨리: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 아닙니까?


한비: 노장사상의 무위가 맞습니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마힐: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되 하지 않는 어떤 경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한비: 쉽게 말하면 이렇죠. 군주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한다면 신하는 자신의 책임을 잃습니다. 그러나 일을 맡겨놓고 확인하지 않는다면 신하는 군주의 통제에서 벗어나겠지요.


마벨리: 결국 일을 맡기면서도 통제해야 한다는 말씀인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한비: 법(法)·술(術)·세(勢)가 필요합니다. 법은 통치의 기준이고, 술은 신하의 말과 성과를 검증하는 방법이며, 세는 군주가 가진 권위입니다.


마힐: 세 가지가 서로 맞물려 움직이는 것이군요.


한비: 그렇습니다. 여기에 군주가 반드시 놓지 말아야 할 두 손잡이가 있습니다.


마벨리: 그게 무엇입니까?


한비: 상과 벌입니다. 이병(二柄)이라 하지요. 상벌의 권한을 신하에게 빼앗기면 군주는 이름뿐인 군주가 됩니다.


마벨리: 하지만 군주가 신하의 보고에 속고 있다면, 누구에게 상을 주고 벌을 내려야 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한비: 신하가 맡은 직분과 실제 성과를 대조해야 합니다. 말과 실적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지요.


마벨리: 그렇다면 다시 조고의 문제입니다. 호해는 자신이 황제라고 믿었지만, 조고가 그의 눈과 귀를 장악했습니다. 군주가 속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선생의 법과 술은 누가 작동시킵니까?


(마힐 나레이션) 다시 한번 조고의 문제를 꺼낸 마벨리 선생의 물음에 한비 선생은 잠시 말을 멈췄다.


한비: 이거는 제가 쓴 글 주도(主道)의 한 구절입니다. 

明君無爲於上, 群臣竦懼乎下(명군무위어상, 군신송구호하)

밝은 군주는 위에서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신하들은 아래에서 두려워하며 경계한다는 뜻 이죠. 


마힐: 송구라면 혹시 사극에서 신하들이 “송구하옵나이다”라고 할 때, 그 말인가요?


한비: 비슷하지만 여기서는 죄송하다는 뜻보다 군주의 권위와 상벌을 두려워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마벨리: 군주는 가만히 있는데 신하들은 긴장하고 있다니, 생각보다 무서운 무위군요.


한비: 군주의 무위는 신하들의 방종을 허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말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 경로로 사실을 확인하고, 상벌의 권한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마벨리: 그러려면 결국 군주가 끊임없이 판단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어떻게 무위입니까?


한비: 신하의 일을 대신하는 것과 신하가 제 일을 하는지 살피는 것은 다릅니다.


마벨리: 그렇다면 무위란 군주의 판단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군요.


한비: 물론입니다. 군주는 직접 실무를 처리하지 않되 통치의 주도권은 놓지 않아야 합니다. 그 주도권이 바로 중심을 잡는 겁니다. 군주가 제대로 중심을 잡고 있으면 신하는 함부로 전횡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마힐: 듣고 보니 무위는 편안한 통치가 아니라 오히려 어려운 통치 같습니다.


마벨리: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만약에 군주가 자신의 무능을 무위라고 착각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비: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그것은 무위가 아니라 방임입니다.


마벨리: 하지만 정작 군주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한비: 그렇기 때문에 군주의 무위는 참으로 어려운 경지가 되는 겁니다.


마벨리: 오호, 무위를 모르는 군주는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려 할 것이고, 무위를 안다고 착각한 군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어느 쪽이든 나라가 위험해지는 것 아닙니까?


한비: 맞습니다. 그래서 무위는 군주가 스스로 도달했다고 선언하는 순간 완성되는 경지가 아닙니다.


마힐: 그렇다면 군주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비: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신하에게 맡겨야 할 일을 구별해야 합니다. 법과 상벌의 권한을 지키면서도 신하의 직분을 침범하지 않아야 하지요.


마벨리: 결국 선생의 무위에도 군주의 역량이 필요하군요.


한비: 그렇습니다. 다만 저는 군주가 자신의 재능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마벨리: 그렇다면 우리 두 사람의 차이는 조금 더 분명해졌군요. 저는 변화하는 현실에서 군주가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선생께서는 군주가 직접 행동하지 않아도 나라가 움직이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셨습니다.


한비: 그러나 어느 쪽이든 군주가 잘못 판단한다면 위험하겠지요.


마힐: 결국 완벽한 통치술은 없다는 말씀이군요.


한비: 적어도 군주가 자신의 통치술을 완벽하다고 믿는 순간부터 위험해질 수는 있습니다.


(마힐 나레이션) 이제야 한비가 말하는 무위가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법으로 기준을 세우고, 술로 신하를 검증하며, 세로 통치의 권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상과 벌이라는 두 손잡이를 놓지 않으면서도 신하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설이 숨어 있었다.

무위를 모르면 권력을 잃고, 무위를 안다고 착각해도 권력을 잃는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비르투가 필요하다고 했고, 한비는 군주 개인의 재능에만 나라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런와중에 군주의 무위를 언급했다. 군주의 무위라니...  법가와 무위라... 쉽지 않다.

어쨌든 군주가 중심을 잃는 순간 그 군주의 모든 권세는 측근에게 옮겨가고야 만다.

이제 두 사람의 닮은 것 같지만 확실히 서로 다른 통치 방법이란 것은 알겠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마힐: 그런데 두 분께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습니다. 애초에 왜 이런 책을 쓰셨습니까?


마벨리: 원래 저는 피렌체 공화국에서 외교와 행정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이 돌아오면서 관직을 잃었지요. 체포와 고문까지 겪은 뒤 정치에서 멀어졌습니다.


마힐: 그래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 <군주론> 을 쓰신 거군요.


마벨리: 그렇습니다. 혼란에 빠진 이탈리아에서 권력을 얻고 유지하려는 군주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시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요.


한비: 그래서 체사레 보르자를 중요하게 보신 거군요.


마벨리: 네. 그는 권력을 획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성공과 실패 모두 배울 만한 것이 있었지요.


마힐: 그렇다면 한비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한비: 저는 본래 한나라 왕실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가 태어난 한나라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점점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왕실에서 자랐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저의 조국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늘 고민했지요.


마힐: 그래서 법과 술과 세를 말씀하셨군요.


한비: 군주 한 사람의 어짊이나 재능만 믿어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고, 법과 상벌을 통해 국가의 힘을 유지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마벨리: 결국 우리는 모두 위태로운 나라를 바라보며 글을 썼군요.


한비: 그런것 같군요. 하지만 선생께서는 혼란 속에서 군주가 어떻게 권력을 얻고 지킬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셨고, 저는 군주가 어떻게 신하를 다스리고 국가의 통치 질서를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마벨리: 물론 저 역시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군주론>만으로 저의 모든 생각을 판단하지는 말아주십시오.


마힐: 하하, 또 <로마사 논고>를 읽으라는 말씀이시군요.


마벨리: 읽어보시면 손해는 없을 겁니다.


마힐: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두 분의 토론 잘 들었습니다. 오늘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다시 다음 기회에 두 분을 모시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마힐 나레이션) 두 사람은 이제 사유의 공간에서 사라진다.


사유 속에서 문득 다시 생각난 의문.

왜 한비를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부르는가?

두 사람은 분명 닮았다. 권력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았고, 인간의 선의만으로 국가를 다스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출발한 자리와 도달하려 했던 곳은 달랐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 밀려난 피렌체의 외교관으로서, 혼란 속에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군주의 역량을 탐구했다.

한비는 약해져 가는 한나라의 왕실 사람으로서,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고 국가를 유지하는 통치의 원리를 탐구했다.

마키아벨리의 비르투와 포르투나, 한비의 법·술·세와 무위, 그것들은 서로 닮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대답이었다.

이제 나는 한비선생에 대한 수식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한비는 ‘동양의 마키아벨리’가 아니다. 그렇게 불러져서는 안된다.

한비는 한비다.


그렇다면 한비가 고민했던 통치의 원리는 실제 역사 속에서 얼마나 유효했을까?

군주가 바뀌고 왕조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그 원리는 작동할 수 있었을까?

내일은 그 질문을 조선의 역사 속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5일차 마침.

작은 지혜를 가진 사람과 더불어 국정을 계획할 수 없고, 작은 충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법을 주관하도록 할 수 없습니다. - P46

군주는 지혜를 버림으로써 도리어 밝게 보고, 재주를 버림으로써 도리어 공을 세우며, 용기를 버림으로써 도리어 강해진다. - P53

군주의 권한을 해치는 다섯 가지 막힘이 있다. 첫째는 신하가 군주의 눈과 귀를 막는 것이요, 둘째는 신하가 나라의 재정을 장악하고 관장하는 것이요. 셋째는 신하가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넷째는 신하가 제멋대로 상과 벌을 주는 것이요. 다섯째는 신하가 사사로이 무리를 짓는 것이다. - P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낭송 한비자 ㅣ 낭송Q 시리즈
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중에게 한비자를 소개하는 글에는 심심찮게 등장하는 수식어가 있다.

‘동양의 마키아벨리.’

한비와 니콜라 마키아벨리 두 인물 모두 권력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인간의 선의보다는 이해관계를 중시했으며, 군주가 어떻게 권력을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러니 그럴듯한 소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비자>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과연 두 사람이 정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과 한비가 바라 보는 이상적 군주는 닮은 듯하지만 어딘가 다르다. 

그래서 두 사람을 직접 만나서 토론을 가져봐야겠다.  


물론 이것은 내 상상 속의 대담이다. 

한비는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 사람이고, 마키아벨리는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사람이다. 

토론에 앞서 두 사람에게 서로의 책을 미리 읽어보도록 부탁했다는 설정까지 덧붙였다.


이제 곧 상상 속의 지상 최고의 끝장 토론회로 들어간다.


마힐: 오늘은 동양의 마키아벨리로 불리는 한비 선생과 니콜라 마키아벨리 선생을 모셨습니다. 마키아벨리 선생님 호칭이 길어 편의상 '마벨리' 라 부르도록 할테니 양해해 주십시오. 


한비: 잠깐만요. 제가 왜 마키아벨리 선생의 동양판입니까?


마힐: 두 분의 정치사상이 비슷해서 그렇게 부릅니다.


한비: 제가 먼저 태어났는데요?


마벨리: 하하. 그 점은 인정해야겠습니다.


한비: 그렇다면 마키아벨리 선생을 서양의 한비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벨리: 그 점에 대해서는 곤란합니다. 저에게도 제 생각이 있으니까요.


마힐: 아, 시작부터 두 분의 소개로 부딪히시는군요.


한비: 아니, 비교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비교한다고 해서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죠.


마벨리: 동의합니다. 우리가 왜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지부터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마힐 나레이션)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비의 전국시대는 강대국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였다. 마키아벨리의 이탈리아 역시 여러 국가가 경쟁하고 외세가 개입하던 혼란의 시대였다.


마벨리: 도덕적으로 훌륭하다는 말만으로 나라를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한비: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군주가 어질다는 소문이 국경을 지켜주지는 않았으니까요.


마힐: 그럼 두 분은 역시 같은 사상이군요!


한비: 잠깐 그렇게 속단하지 마세요. 같은 병을 보았다고 처방까지 같을 필요는 없지요.


마벨리: 게다가 저는 군주만 연구한 사람이 아닙니다. 공화국의 제도와 시민의 역할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마힐: 그 부분은 <군주론>만 읽으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군요.


마벨리: 저의 다른 책 <로마사 논고>도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힐: 이틈에 책을 홍보 하실 줄이야.... 아무튼 읽어야 할 책이 또 늘었습니다.


한비: 저는 사실 오늘 두 분이 제 책을 끝까지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마힐: 오늘은 제가 심문받는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마힐 나레이션) 토론장 분위기는 웃음이 번지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곧 오래가지 않았다.


마힐: 먼저 제가 마벨리 선생님에게 여쭙겠습니다. 선생의  <군주론> 에는 유명한 사자와 여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군주는 사자처럼 강하고 여우처럼 영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마벨리: 정확히 말하면 사자는 함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여우는 늑대를 쫓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군주는 함정을 알아채는 여우이면서 늑대를 물리치는 사자여야 합니다.


한비: 결국 군주 개인에게 상당한 능력을 요구하시는군요.


마벨리: 네, 현실은 무능한 군주에게 관대하지 않습니다.


한비: 그렇다면 군주가 사자처럼 강하지도, 여우처럼 영리하지도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벨리: 음... 군주로서 고민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군주의 판단과 결단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한비: 나라의 운명을 군주 한 사람의 재능에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마벨리: 그렇다고 군주의 재능이 필요 없다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한비: 물론입니다. 다만 군주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해야 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아도 운영되는 나라는 다릅니다.


마힐: 방금 두 분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마벨리 선생은 뛰어난 군주를, 한비 선생은 뛰어난 통치 체계를 더 중시하시는군요.


마벨리: 제가 볼 땐 그렇게 단순하게 나눌 수는 없다고 봅니다. 저 역시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비: 저도 군주의 판단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마힐: 두 분, 싸우시다가도 너무 쉽게 합의하시는 것 아닙니까?


마벨리: 당연하죠. 상대의 말이 맞는 부분은 인정해야지요.


한비: 하지만 그렇다고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힐 나레이션) 그렇다. 두 사람의 차이는 개인의 능력과 제도 중 하나만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더 중요하게 여긴 질문은 여기에서 서로 달라진다.



마힐: 마벨리 선생의 <군주론>에 나오는 '비르투'와 '포르투나' 가 어쩌면 그 차이를 보여주는 개념이겠군요.


마벨리: 보통은 각각 '역량'과 '운' 이라 번역하더군요. 그러나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비르투(virtù)는 상황을 판단하고 기회를 활용하는 정치적 역량입니다. 포르투나(fortuna)는 인간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운명과 우연이지요. 


한비: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운이 따라주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마벨리: 그렇습니다. 그래서 변화에 대응할 능력이 필요합니다. 체사레 보르자가 그런 사례입니다. 상당한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었지만, 교황이었던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의 병환 등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물론 판단의 잘못도 있었지요.


한비: 그렇다면 더욱 한 사람의 능력에 의존해서는 안 되겠군요.


마벨리: 그럼 제가 선생께 반대로 묻겠습니다. 아무리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도 위기가 닥쳤을 때 결단할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비: 물론 군주의 결단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모든 문제를 군주 개인의 지략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마벨리: 저는 군주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훌륭한 신하를 알아보고 활용하는 능력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한비: 그렇다면 그 신하가 군주를 속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벨리: 그 정도는 군주는 사람을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비: 사람을 판단하는 군주 자신이 속고 있다면요?


마벨리: 그래서 군주에게 비르투가 필요한 것입니다.


한비: 그래서 저는 바로 그 위험을 개인의 능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힐: 이제야 두 분이 제대로 부딪히시는군요.


마벨리: 하지만 한비 선생, 제도나 규칙 역시 사람이 운영합니다. 그 사람의 판단이 잘못된다면 제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겠지요.


한비: 역시 그 문제는 피할 수 없어 보이는군요.


(마힐 나레이션) 마벨은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군주가 발휘해야 할 역량을 강조했다. 한비는 인간의 욕망과 이해관계를 전제로 통치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이 차이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마벨도 제도를 중시했고, 한비도 군주의 능력을 필요로 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어디에서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것일까?


마힐: 한비 선생님, 선생님이 주창하시는 法·術·勢를 군주가 가진다면 군주가 모든 일을 직접 하지 않고도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셨지요? 


한비: 그렇습니다. 신하에게 직분을 맡기고, 그들이 말한 것과 실제 성과가 일치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마벨리: 그런데 신하가 군주의 눈과 귀를 장악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비: 군주가 한 사람의 말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 경로로 사실을 확인하고, 권한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마벨리: 그런데 진나라의 조고는 어떠했습니까?


(마힐 나레이션) 순간 한비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비: 조고라면…


마벨리: 그렇습니다. 진시황이 죽은 뒤 호해를 황제로 세우는 데 관여하고, 결국 이사마저 제거한 그 조고 말입니다.


마힐: 네, 조고는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르켜 말이라 부른다) 라는 고사성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일본 사람들이 흔히 쓰는 '바카야로(馬鹿野郎)'라는 욕도 이 지록위마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답니다.


한비: 그렇습니까? 조고가 일본의 욕설에까지 등장하는군요.


마힐: 다만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어 확실하지는 않답니다.


한비: 어원이 무엇이든, 사슴을 말이라고 말하게 만드는 권력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지요


마벨리: 조고는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며 신하들이 누구의 뜻을 따르는지 시험했습니다. 황제의 눈앞에서조차 진실이 뒤집혔지요.


한비: 그거야 말로 군주가 신하에게 판단을 빼앗겼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마벨리: 바로 그것입니다. 선생의 통치술은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군주가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그 방법은 누가 작동시킵니까?


(마힐 나레이션) 한비는 잠시 말을 멈췄다. 마벨리는 연이어 한비 선생을 몰아가는 것 같다.


마벨리: 군주가 움직이지 않는 동안 조고 같은 신하가 국가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일은 어떻게 막으시겠습니까?


한비: 군주는 신하에게 일을 맡길 수 있지만, 상벌과 임면의 권한까지 신하에게 맡겨서는 안 됩니다.


마벨리: 물론 그렇게 말씀하시겠지요. 그러나 제가 묻는 것은 원칙이 아닙니다. 군주가 권한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그 원칙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힐 나레이션) 이번에도 한비선생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마힐: 잠깐 만요. 마벨리 선생님, 살살 하십시요. 너무 한비 선생님을 몰아 붙이시는 것 같은데요? 


마벨리: 군주의 판단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제도는 어디까지 가능합니까?


한비: 제도가 군주의 판단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마벨리: 그렇다면 결국 군주는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자의 힘과 여우의 지략이 필요하다는 제 주장으로 돌아오는군요.


마힐: 한비 선생님, 이번에도 마벨리 선생의 말씀이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마힐 나레이션) 한비 선생은 이번에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비: 조고의 사례는 군주가 신하에게 통치의 주도권을 빼앗겼을 때의 위험을 보여줍니다. 그 점은 인정합니다.


마벨리: 그렇다면 선생이 말하는 이상적인 군주는 결국 어떤 사람입니까? 신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해야 합니까? 아니면 신하에게 맡기고 물러서 있어야 합니까?


한비: 두 가지가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벨리: 아니, 어떻게 그렇습니까?


한비: 군주가 직접 모든 일을 처리하지 않는 것과, 군주가 통치의 주도권을 잃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마힐: 잠깐만요. 군주가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나라를 통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한비: 그렇습니다.


마벨리: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군주가 움직이지 않아도 나라가 움직인다면, 그것은 뛰어난 통치입니까? 아니면 조고에게 권력을 빼앗긴 호해처럼 무능한 방임입니까?


(마힐 나레이션) 한비 선생은 순간,  마벨리 선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비: 마키아벨리 선생께서도 군주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셨죠?


마벨리: 네, 물론이죠. 


한비: 그렇다면 제가 선생께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마힐 나레이션) 어눌한 듯한 한비 선생의 눈에서 갑자기 빛이 나기 시작한다.


한비: 군주가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나라가 제 스스로 움직인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높은 통치의 경지가 아닐까요?


마벨리: 그런 통치가 가능하다고요? 만일 그렇다면 그 경지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셔야겠습니다. 무엇보다 그 통치가 조고의 전횡과 어떻게 다른지도 말입니다.


(마힐 나레이션) 한비는 다시 잠시 침묵했다.


한비: 그 이야기는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마힐: 아니, 한비 선생님,  이제야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요?


한비: 오늘은 이미 충분히 말씀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내일 다시 이야기하시지요.


마힐: 지금 뭔가 중요한 말씀을 하실 듯 하면서 여기서 끝내시면 어떡합니까?


마벨리: 저 역시 궁금하네요. 어떤 답을 하실지...


마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토론을 하시고요. 내일 다 같이 한비 선생님의 답을 듣도록 하시죠. 


(마힐 나레이션)  한비 선생은 희미한 웃음을 띤다. 어쩌면 그 웃음에도 무슨 뜻이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 두 사람은 권력의 냉혹함과 인간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군주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가에 이르자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물었다.

한비는 군주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도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지를 암시했다.

그러나 조고라는 이름 앞에서 한비의 설명도 잠시 멈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과연 같은 말일까?

이제 한비 선생의 답은 내일이 되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4일차 마침.

백성이란 참으로 권세에 복종하고, 권세란 진실로 사람들을 쉽게 복종시킨다. 그래서 공자는 오히려 신하가 되고, 애공은 도리어 군주가 된 것이다. 이것은 공자가 애공의 의에 감화된 것이 아니라 그의 권세에 복종한 것이다. 의로써 통치했다면 공자가 애공에게 복종하지 않았겠지만,권세에 의지했기에 애공이 공자를 신하로 삼은 것이다. - P134

현명한 군주의 나라에서는 죽간에 쓰인 글은 없고 법으로서 가르친다...중략...백성들 가운데 담론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법을 따르고, 움직여 일을 하는 자는 실제적인 공적을 목표로 삼으며, 용감한 자는 군대에서 힘을 다한다. 그러므로 전쟁이 없을 땐 나라가 부유해지고, 전쟁이 있으면 병력이 강해진다. - P1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낭송 한비자 ㅣ 낭송Q 시리즈
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는 법가와 한비자가 정확히 같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상앙은 法을 중심으로 강한 국가의 틀을 만들었고, 신불해는 術을 통해 관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고민했으며, 신도는 勢, 즉 개인의 능력보다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서 나오는 힘을 중요하게 보았다.

마지막으로 전국시대 말 한비는 이런 여러 통치사상을 보다 종합적으로 받아들여 군주와 신하, 권력과 조직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훨씬 정교하게 고민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진나라는 왜 그렇게 강해졌고, 또 왜 그렇게 빨리 무너졌을까?

진나라는 정말 법가 때문에 무너졌을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법가적 국가운영은 실패하기 전에 먼저 크게 성공했다.

진은 법가적 운영을 통해 천하을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상앙의 개혁 이후 진나라는 군공에 따른 보상, 농업과 군사의 강화, 호적과 행정체계의 정비, 엄격한 상벌과 강한 중앙집권을 통해 다른 제후국보다 강력한 국가동원력을 갖추었다.

전국시대처럼 수많은 나라가 생존 경쟁으로 싸우던 시대에는 이런 체제가 강력한 경쟁력이었다.

병력을 빠르게 동원하고, 군량을 확보하고, 명령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공을 세우면 확실하게 보상하고, 명령을 어기면 가차없이 책임을 묻는다.

이런 국가는 전쟁으로 경쟁하던 시대에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기원전 221년 진왕 영정은 여섯 나라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한다.

그는 기존의 왕이라는 칭호를 넘어 '황제'라는 칭호로 스스로를 '시황제'라 칭했다.


통일 이후 진은 거대한 천하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체제로 묶으려 했다.

문자와 도량형을 표준화하고, 중앙에서 지방을 직접 관리하는 군현제를 확대하며, 법과 행정조직을 통해 거대한 제국을 하나의 명령체계 아래 두려고 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법가적 국가운영은 분명 성공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속성이다. 어떠한 방향으로의 지속성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국가를 만드는 방법과, 통일된 천하를 오래 다스리는 방법은 과연 같은 것일까.

하지만 천하가 통일된 뒤에도 진은 여전히 강한 구속력을 사람들에게 요구했다.

대규모 토목공사가 이어지고, 군사적 동원과 부역이 계속되었으며, 엄격한 형벌과 통제 역시 유지되었다.

전쟁에서는 장점이었던 국가의 힘이 평화로운 천하를 오래 유지하는 데에도 똑같이 좋은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백성은 통일 후의 평화가 아니라 계속 되는 통제로 인한 부역과 세금에 지쳤다. 

통제가 지나치면 사회에는 두려움이 쌓인다. 두려움이 공포가 되는 것이다. 그 공포는 이제 반작용을 불러 일으킨다.

법이 만든 질서가 어느 순간 처벌로만 느껴지게 되면 질서는 이미 불안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기원전 210년 진시황은 자신의 천하를 유람하던 중 죽는다.

이때부터 진나라는 예상치도 못한 문제에 부딪힌다.

후계와 정보의 문제다.


한비는 군주가 세상의 모든 일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통찰을 통해 간파했다.

군주는 결국 신하의 보고를 통해 세상을 본다.

군주 자신의 눈과 귀가 아닌 옆에 가까운 신하의 입을 통해 세상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비는 군주의 눈과 귀가 특정 신하에게 장악되는 것을 매우 위험하게 보았다.

진시황이 죽은 뒤 한비가 우려했던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진시황이 총애했던 환관 출신 조고(趙高)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사기》의 전승에 따르면 조고와 이사는 진시황 사후의 후계 과정에 개입했고, 결국 호해(胡亥)가 진 2세 황제로 즉위한다.

그리고 이후 조고는 황제 가까이에서 점점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누가 황제에게 접근하는가.

어떤 상소가 황제에게 올라가는가.

누구의 말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는가.

황제에게 통하는 모든 정보를 조고가 먼저 얻게 되는 것이다.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권력이 되는 것이다.

군주가 세상을 직접 볼 수 없다면, 군주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사람이 사실상 군주의 판단을 움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기》 〈이사열전〉을 읽다가 나는 예상치 못한 장면을 읽게 된다.

이 시기 한비는 이미 죽었지만, 그의 사상은 진나라 권력의 중심에서 여전히 살아 있었다.

더구나 한비를 죽이는 데 관여했던 이사가 바로 한비를 언급하는 것이다.

진승·오광의 반란 이후 이사의 아들 이유가 다스리던 삼천 지역까지 혼란에 빠지고, 이사는 자신의 지위마저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했다.

사마천은 이사가 2세 황제 호해의 뜻에 영합해 자신의 개인 영달을 보전하려 했다고 기록한다.

이사가 호해에게 올린 글 속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申韓之明術(신한지명술), 신불해와 한비의 뛰어난 통치술 ”

심지어 이사는 “韓子曰(한자왈)”, 즉 “한비가 말하기를”이라며 한비의 말을 직접 인용한다.


"어진 군주는 신하를 철저하게 감독하고 책임을 추궁해야 하며, 처벌은 반드시 집행되어야 하고, 군주는 신하에게 제어당하지 않아야 하며, 권력은 군주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는 논리였다.

《사기》의 이 대목에서 이사는 ‘독책(督責:엄격히 감독하는 책임을 추궁함)’을 강하게 주장하며 신불해와 한비의 통치술, 상앙의 법을 함께 끌어들인다. 사마천은 그런 이사의 상소가 호해의 뜻에 영합하려는 것이었다고 서술한다. 


한비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이사가, 한비가 죽은 뒤에는 다시 한비를 인용하여 황제를 설득하는 것이다.

어떻게 한비의 사상이 이미 진나라 정치권력 속에서 강력한 언어가 되어 있었던 것일까?


사실 이사가 호해에게 전달한 한비가 가지고 있던 본래 사상을 자신의 처지에 맞게 강압적 요소들을 선택하여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것에 가깝다.

군주가 자신의 욕망과 취향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경계보다는, 독책과 처벌, 감시와 군주의 독단이 훨씬 강조되어 있었다.

즉 이사는 한비에게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에 좋은 부분을 끌어냈다.

신하를 더욱 철저하게 감시하고, 작은 잘못도 엄격하게 책임을 묻고,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간언을 멀리하며,

황제가 누구에게도 제어받지 않는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상소에는 실제로 ‘독단(獨斷)’, 엄격한 ‘독책’, ‘申韓之術’과 상앙의 법을 함께 등장시켜 자신의 논리를 강화했다. 

호해는 그 말을 좋아했다.

결국  이사의 상소 이후 진나라 관리들의 독책은 더욱 심해지고, 백성에게 거두는 세금이 더욱 무거워졌으며, 형벌과 처형이 극심해졌다고 <사기>는 기록한다. 


한비는 죽었지만 한비가 했던 말은 죽지 않았다.

그런데 살아남은 한비의 말은, 한비가 처음 고민했던 정교한 통치의 체계라기보다, 권력을 강화하고 처벌을 확대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法보다 형벌이 앞서고, 術보다 감시가 앞서며, 形名보다 독책과 독단이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것을 모두 이사의 고의적인 ‘왜곡’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엄격한 상벌과 강한 처벌은 분명 한비 자신의 사상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한비의 사상에서 가장 강압적으로 활용하기 쉬운 부분만 떼어내 권력자의 욕망과 결합시키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비 사상의 가장 어려운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한비는 무엇보다 신하의 전횡을 두려워했다.

유능한 신하가 군주의 눈과 귀를 장악한 후, 인사권과 상벌권을 빼앗아, 결국 군주보다 더 큰 힘을 가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래서 그는 군주의 勢를 강화하고, 術로 신하를 통제하고, 形名으로 말과 실제를 검증하며, 二柄이라는 상과 벌의 손잡이를 군주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논리적으로 보면 매우 정교하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그 군주가 무능하다면 어떻게 되는가?

군주가 신하를 감시하도록 만들어놓았는데, 정작 군주 자신이 현실을 판단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군주의 눈과 귀를 특정 신하가 장악했다는 것을 군주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에도 한비가 군주에게 집중시켜 놓은 강력한 권력장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법도 남아 있고, 처벌권도 남아 있고, 감시조직도 남아 있고, 황제라는 절대적인 권위도 남아 있다.

다만 그것을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이 황제에서 신하로 바뀌는 것이다.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여 신하의 전횡을 막으려 했는데, 군주가 무능해지는 순간 그 강력한 권력장치가 오히려 측근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진시황 사후 2대 호해 시대의 조고가 바로 그 역설을 보여줬다.

형식적으로 천하의 최고 권력자는 호해였다.

그러나 조고가 황제에게 전달되는 정보와 사람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실제 권력의 무게는 점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결국 진나라 말기의 모습은 한비의 말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법가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었는데, 정작 현실에서는 한비가 가장 경계했던 신하의 권력장악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역설은 결국 이사에게까지 돌아오게 된다.

이사는 결코 평범한 정치가가 아니었다.

진시황의 통일과 중앙집권적 제국 건설에 참여했던 당대 최고의 정치가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한비를 잘 알고 있었고, 한비의 말을 직접 인용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이사조차 자신이 참여하여 강화한 권력구조를 통제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조고와의 권력투쟁에서 패하고 아주 비참하게 처형되었다.(*<사기>에 따르면 오형에다 요참형을 당했다고 한다. 이후 삼족이 멸했다고 전한다.)


한비를 죽인 이사가 한비의 말을 이용해 권력을 강화했고, 그 강화된 권력구조가 다시 이사를 죽였다.

누구보다 권력 구조의 위험을 간파한 한비도, 법가를 이용해 진의 통일을 주도 했던 이사도 결국 법가적 역설 구조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알고 있는 것과, 그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비의 사상이 왜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지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한비는 신하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집요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한비의 체계에서도 최종 판단자는 결국 군주다.

결국 새로운 질문 하나가 생긴다.

신하를 군주가 감시한다면, 그 군주는 누가 감시하는가.


이것은 현대의 법치주의가 한비의 法과 갈라지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현대의 법치가 지향하는 것은 단순히 권력자가 법을 이용해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권력자 자신도 법과 절차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권한을 나누고, 법을 만드는 사람과 집행하는 사람, 판단하는 사람을 구분하며,

서로 견제하게 한다.

왜 그래야 할까?

법은 권력을 제한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지만, 권력이 법의 해석과 집행을 독점하는 순간 법은 권력의 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이 권력에 종속되면, 공정한 기준이 되어야 할 법이 정적을 제거하거나 보복하는 수단으로 바뀔 수도 있다.

2천 년도 더 전 진나라의 권력투쟁을 읽고 있지만 현대사회에서도 전혀 낯설지 않은 상황에 기시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나라가 단순히 법가와 한비의 사상 때문에 망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진의 몰락에는 여러 문제가 겹쳐 있었다.

기원전 209년 진승과 오광의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통일제국 진은 급속하게 무너져 갔다.

기원전 221년 천하를 통일했던 진은 불과 15년 남짓 만에 사수의 정장 출신인 유방에게 항복했고 이후 항우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다. 물론 최후의 승자는 알다시피 유방이다.

그리고 진나라 뒤를 이은 유방의 한나라는 흥미로운 선택을 한다.

우리는 흔히 진은 법가, 한은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했다고 배운다.

진이 강한 법가 때문에 망했기 때문에, 한은 유교를 받아들여 오래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나라는 진이 만들어놓은 국가의 뼈대를 상당 부분 이어받았다.

관료제도 남았고, 법과 행정조직도 남았으며, 중앙에서 지방을 관리하는 국가체제도 상당부분 유지했다.

유방은 진나라를 무너뜨렸지만 진이 만들어놓은 국가운영의 기술까지 모두 버리지는 않았다.

다만 진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지 않았을 뿐이다.

초기 한나라는 오랜 전쟁과 강한 국가동원으로 지친 사회의 부담을 줄이고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황로적 통치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훨씬 뒤 한 무제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유학이 국가의 중요한 정치이념으로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다고 법과 관료제와 상벌의 행정기술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한나라는 법가를 버린 것이 아니라, 법가만으로 국가를 운영하지 않기로 한 것에 가까웠다.

진이 남긴 국가의 뼈대는 이용하되, 그 위에 다른 사상을 더한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유교는 정치의 명분과 윤리를 제공했고, 황로사상은 지나친 개입을 줄이는 여백을 제공했으며, 법가적 행정기술은 실제 국가를 운영하는 도구로 계속 사용되었다.


그러고 보면 한비의 사상은 진나라와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비가 던진 질문은 계속 살아남았다.

사람의 선의를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권한과 책임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보고되는 정보가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상벌의 권한은 누가 가져야 하는가.

측근이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권력은 누가 견제할 것인가.


2천 년 전의 질문인데, 오히려 오늘 날의 국가와 회사와 조직에서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질문이며 답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한비가 생각했던 가장 좋은 군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한비를 두고 흔히들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린다.

서양에서도 한비처럼 도덕적 이상보다 권력의 현실을 바라본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어떻게 군주를 봤을까?

두 사람 다 군주와 권력을 말하고 있지만 과연 같은 이야기를 했을까?

먼저 짚고 넘어가자. 한비는 마키아벨리보다 약 1,700년 먼저 살았다.

그럼에도 왜 한비자를 두고 '동양의 마키아벨리' 라고 부르는 것일까?

이제는 그 호칭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내일은 두 사람을 직접 마주 앉혀보기로 하겠다.


3일차 마침.

진실을 아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아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 P91

대국의 우환은 중신의 권력이 지나치게 큰 것이고, 소국의 우환은 좌우의 측근들이 지나치게 신임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군주의 공통된 근심이다. - P101

망국의 군주란 나라를 소유하지 못한 자가 아니라 가지고 있음에도 그 나라가 실제로는 그의 것이 아닌 자이다. 만약 신하들이 외세를 이용하여 국내 상황을 제어하면 이는 바로 군주가 망한 것과 다름없다.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낭송 한비자 ㅣ 낭송Q 시리즈
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 글의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남겼다.

춘추전국의 오랜 분열을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왜 그렇게 빨리 무너졌을까?

그리고 2천 년도 더 지난 지금 나는 왜 다시 《한비자》를 읽고 있는 것일까?

그 질문에 답하려고 하다 보니 먼저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나는 그동안 법가와 한비자를 거의 같은 의미로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법가와 한비자는 같은 사상이었을까?  그런데 사실 둘은 정확히 같은 것이 아니었다.


넓게 보면 오늘날 우리는 한비를 법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분류한다. 하지만 법가적 사상의 흐름은 한비보다 훨씬 앞서 이미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상앙(商鞅)이다.

이후 신불해, 신도등이 서로 다른 문제를 고민했고 전국시대 말 한비에 이르러 법가는 종합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당시에는 이들이 하나의 학파를 이루어 서로 같은 생각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후대에 여러 사상적 흐름이 하나의 범주로 정리되면서 '법가'라는 이름으로 묶여 부르게 된 것이다.

사실 법가 안에서도 인물에 따라 강조점은 서로 달랐다.


한비의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법가의 시조나 다름 없는 상앙(商鞅)은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상앙은 한비보다 약 100년 전 앞선 사람이며  후에 진이 천하통일 할 수 있도록 내부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그는 당시에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가 특히 중요하게 본 것은 法, 즉 법과 제도였다.

사마천의 <사기> <상군열전>에는 상앙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나온다.


상앙이 새로운 법을 시행하기 전, 그는 수도의 남문에 큰 나무 하나를 세워놓고 말했다고 한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쉬운 일에 큰돈을 준다고 하니 백성들이 오히려 믿지 않았던 것이다.

상앙은 상금을 더 올렸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무를 옮겼다.

상앙은 약속대로 정말 상금을 지급했다.

그 뒤 새로운 법을 비로소 공포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상앙이 법을 따랐기 때문에 돈을 많이 주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먼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국가는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 한번 정한 상과 벌은 실제로 집행한다.

새로운 법을 발표하기 전에 먼저 국가의 명령에 대한 신뢰부터 만든 것이다. 

<사기>에서는 이를 두고  “以明不欺(이명불기)” 즉 '속이지 않음을 밝힌다 '고 표현했다.


법이 아무리 훌륭해도 사람들이 “어차피 권력자 마음대로 바뀔 텐데.” 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런 힘이 없다.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이 실제로 집행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사람도 움직인다.

상앙이 진나라에서 시행한 개혁은 훨씬 광범위했다.

군공을 세우면 그에 따라 신분과 보상을 얻게 하고, 농업과 군사를 장려하며, 호적과 행정체계를 정비하고, 중앙정부가 백성과 지방을 더 직접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귀족의 혈통보다는 국가에 어떤 공을 세웠는지가 중요해졌다.

진나라가 훗날 전국의 다른 나라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국가체제의 뼈대는 한비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상앙은 法을 통해 강한 국가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했고 실제로 법으로 나라를 강하게 만든 결정적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인생 마지막에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


상앙이 권력을 잃고 도망치던 중 여관에 묵으려고 했지만, 여관 주인은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을 받아주면 법에 따라 처벌받는다며 그를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자신이 만들고 강화했던 법의 세계가 도망치는 자신에게도 예외를 허락하지 않았던 셈이다.

상앙은 법으로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마지막에는 자신 역시 그 법의 바깥에 있을 수 없었다.

법은 그를 설계한 사람마저 가둬버리는 역설인 셈이다.


상앙이 진이 법가적 국가운영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면 비슷한 시대의 신불해는 법이 집행되도록 하는 술(術)을 강조했다. 

즉 그 법을 집행하는 관료는 누가 관리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술이다.

술은 관료를 관리하는 방법이다. 

법을 강조한 상앙과 달리 술을 특히 강조한 신불해(申不害).

이름이 조금 헷갈리기 쉬운데, 진시황의 정치적 후견인이었고 한때 친부설까지 따라붙었던 진나라 재상 여불위(呂不韋)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신불해는 한비가 태어났던 한나라에서 활동했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법 그 자체보다 군주가 관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누구에게 어떤 일을 맡길 것인가.

권한을 어디까지 줄 것인가.

보고가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신하가 자기 권한을 넘어서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오늘날 현대 조직으로 옮겨보면 인사, 감사, 보고체계, 권한분장, 성과검증과 비슷하다.

쉽게 말하면, 法이 조직의 규칙이라면, 術은 그 조직의 사람을 운영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신도(慎到)라는 인물은 세(勢)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勢는 어제 이미 이야기한 대로 높은 산 위의 작은 나무가 골짜기의 큰 나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은 그 나무가 더 훌륭해서가 아니라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군주도 반드시 모든 신하보다 지혜롭거나 유능해서 명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군주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명령하고 상벌을 내릴 수 있다.

사람의 능력보다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서 나오는 힘.

그것이 勢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비가 등장하며 법가는 앞 전보다 더욱 종합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한비의 중요한 점은 法 하나만 강조한 데 있지 않았다.

그는 앞선 여러 통치사상을 받아들이면서 군주가 국가와 관료조직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훨씬 정교하게 고민했다.

그래서 오늘날 한비자의 정치사상을 흔히 法·術·勢라는 세 축으로 정리한다.

다만 이것을 한비가 직접 교과서처럼 세 항목으로 분류했다고 보기보다는, 후대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틀이라고 보는 편이 좋다.

法은 기준이고, 術은 사람을 다루는 방법이며, 勢는 그것을 실행할 수 있게 만드는 자리의 힘이다.


그런데 한비는 여기서 좀 더 깊게 파헤친다.

사람에게 일을 맡겼다면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서 형명(形名)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말은 어렵지만 뜻은 의외로 간단하다.

말한 것과 실제로 한 것이 서로 맞는가.

예를 들어 어떤 신하가 “제가 이 일을 해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 사람이 맡은 직책과 약속, 말한 내용이 名이라면 실제로 해낸 결과가 形이다.

군주는 둘을 맞춰보아야 한다.

말은 거창한데 실제 결과가 없다면 책임을 묻는다.

반대로 맡은 일을 제대로 해냈다면 그에 맞게 평가한다.

오늘날 회사에서 업무목표와 실제 성과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단순한 KPI보다는 조금 더 넓은 개념이다.

그 사람의 직책과 말과 실제 행동이 서로 일치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평가만으로는 조직을 움직일 수 없다.

평가한 결과에 따라 실제 상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한비는 군주가 놓쳐서는 안 되는 두 개의 손잡이를 들고 나온다.

그게 바로 이병(二柄) 이다.

한자 병의 뜻이 손잡이란 말이다.

그 두 가지는 형(刑)과 덕(德)이란 손잡이를 뜻한다.

이때 사용한 德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적인 덕이라기보다 보상과 혜택을 베푸는 의미에 가깝다.

쉽게 말하면 벌과 상이다.

누가 승진을 결정하고 누가 보상을 주는가.

누가 책임을 묻고 누가 사람을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가.

그 권한을 가진 사람이 결국 조직의 사람을 움직인다.

그래서 한비는 군주가 이 두 개의 손잡이를 다른 신하에게 절대로 넘겨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결국 한비자의 정치사상은 하나의 구조로 완성되어졌다.


勢는 군주가 가진 자리의 힘이고, 法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이며, 術은 사람과 조직을 다루는 기술이다.

形名은 말과 실제를 비교하는 검증방식이고, 二柄은 그 결과에 따라 상과 벌을 행사하는 최종 권한이다.

形名을 통해 신하를 확인하고, 二柄을 통해 상벌을 행사하며, 그 모든 것을 운영하는 방식이 術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힘이 勢다.


이렇게 정리하면 법가와 한비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처음에 법가라고 하면 강한 법, 엄격한 형벌, 냉혹한 통치를 먼저 떠올렸다.

그것은 상앙이 강조했던 초기의 법중심 개혁에 가깝다.

그러나 한비의 관심은 그보다 훨씬 넓었다.

법을 만든 다음 그 법을 운용하는 사람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보고되는 정보가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유능한 신하가 오히려 군주의 권력을 잠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상과 벌은 누가 쥐고 있어야 하는가.

결국 한비가 고민한 것은 단순한 법률이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움직이고 통제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상앙과 한비의 차이를 정리해 본다면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국가체제의 중심에는 한비보다 훨씬 앞선 상앙의 개혁이 있었다.

그리고 한비는 그보다 뒤에 法뿐 아니라 術과 勢, 그리고 관료통제의 문제까지 더 깊게 고민했다.

물론 이렇게 둘을 완전히 나눌 수는 없다.

상앙에게도 권력과 통치의 문제가 있었고, 한비에게도 法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이 정도의 구분이 도움이 된다.


오늘날 우리는 진은 법가를 바탕으로 천하를 통일했지만 곧 무너졌고,  뒤를 이은 한나라는 유학을 국가통치의 중요한 이념으로 받아들였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는 과연 진나라의 법가를 전부 버렸을까?

법가는 정말 통일 이후에는 쓸모가 없어진 것일까?


내일은 바로 그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한다.

천하를 얻은 법가, 천하를 잃은 진.

진나라는 왜 그렇게 빨리 무너졌을까?

질문은 다시 이어진다.


2일차 마침.

현명한 군주가 신하를 거느리는 방법은 두 개의 권병(권력으로 사람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힘) 뿐이다. 두 개의 권병이란 형과 덕이다. 무엇을 일컬어 형과 덕이라고 하는가. 벌하여 죽이는 것을 형이라 하고 상을 내려 칭찬하는 것을 덕이라 한다. - P60

군주가 싫어하는 것을 겉으로 비치면 신하들은 싫어할 만한 단서를 숨긴다.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겉으로 비치면 신하들은 그에 맞춰 능력을 속인다. 군주가 하려는 바를 겉으로 드러내면 신하들은 그 행실을 꾸며낼 단서를 얻게 된다. - P66

군주가 무엇인가 특별히 좋아하면 할 일이 많아지고, 무엇인가 특별히 미워하면 원한을 사게 된다. 그러므로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버려두고 마음을 비워서 도가 깃들게 해야 한다. 군주가 함께 일을 하지 않으면 백성은 오히려 그를 존중한다. - P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