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조조와 채문희에 관한 관노트를 올렸더니 알라딘 이웃이신 잉크냄새님께서 흥미로운 댓글을 남겨주셨다. 삼국지를 새롭게 해석한 만화 《창천항로》를 추천하시면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여성 인물도 소개해 주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삼국지> 는 오랫동안 남성들의 소설처럼 여겨진 면이 많다. 조조와 유비, 손권을 중심으로 수많은 영웅호걸이 등장하고 그들의 무력과 지략, 권모술수가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나는 영웅들의 무용담 속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여인들의 이야기도 함께 있다.


유비에게는 미부인과 감부인이 있었고, 훗날 손권의 여동생인 손부인과도 정략결혼을 했다. 제갈량에게는 황월영이라는 외모는 비록 못하지만 재능이 제갈량에 버금갔다고 여겨진 부인이 있었다.

그리고 7번 잡아놓고 다시 7번을 풀어준 이야기로 유명한 남만의 맹획에게는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서는 축융부인 이라는 여인도 있다.

적벽대전의 주무대였던 강동에는 대교와 소교라는 두 미인이 있었다. 대교는 손책이, 소교는 주유가 아내로 삼았다. 조조가 100만 대군을 끌고 강동을 정벌하려는 목적이 두 미인 때문이었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건 모두 후대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이리라. 

그리고 조조에게는 노래와 음악을 생업으로 삼던, 오늘 날로 치면 연예인 출신의 변부인이 있었다. 변부인은 훗날 황제가 되는 조비와 중국 문학상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시인 조식을 낳았다.

하지만 조조는 변부인 외에 남의 아내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가 큰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항복한 장수 장수(張繡)의 숙모이자 장제의 아내를 받아들였다가 장수의 기습을 받아 장남 조앙과 맹장 전위 등을 잃었던 것이다.

이처럼 삼국지에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았던 여인들이 등장한다. 이들 중 실제 존재했던 여인도 있고, 소설과 전승을 통해 유명해진 여인도 있다.


지난번 관노트에서 초선과 채문희를 이야기했으니,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이력을 가진 여인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를 아버지로 두었고, 황제의 아내가 되었으며, 친오빠가 남편에게서 황제 자리를 이어 받았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조절(曹節)이다.

조절은 조조의 딸이자 후한의 마지막 황후였다. 그녀가 황후가 되기 전, 그녀의 남편 즉 한황실의 마지막 황제 유협을 잠시 소개해 본다. 


189년, 후한 말 십상시의 난으로 낙양은 혼란에 빠졌다. 황제 유변과 동생 유협은 환관들에게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조조와 원소의 추격 끝에 무사히 구원해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때 군사를 이끌고 그들 앞에 나타난 사람은 동탁(董卓)이었다.

<삼국지연의> 에 따르면 동탁의 살기등등한 군대를 본 어린 황제 유변은 두려움에 떨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생 유협은 달랐다.

당시 여덟 살이었던 유협은 동탁을 향해 당당하게 물었다.

“그대는 황제를 보호하러 왔느냐, 아니면 황제를 겁박하러 왔느냐?”

동탁이 황제를 보호하러 왔다고 대답하자 유협은 다시 꾸짖었다.

“황제를 보호하러 왔다면 천자가 여기 있는데 어찌 말에서 내리지 않는가?”

순간 동탁은 황급히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어 절을 했다.

이 장면은 소설의 묘사이지만, 정사 <후한서> 에도 동탁이 형 유변보다 동생 유협의 총명함을 높이 평가했다는 기록이 있다.

결국 동탁은 유변을 폐위하고 유협을 황제로 세웠다. 그가 바로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당당한 기개와 달리 황제가 된 유협에게는 실질적인 권력이 없었다.

동탁에 의해 황제가 된 유협은 자신의 이복 형이었던 유변이 동탁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직접 보았다.

그래서 조조가 결국 동탁을 토벌하고 난 후 자신의 운명은 조조에게 달렸음을 감지 했을 것이다. 

조조가 헌제를 맞아들인 뒤 황실은 안정을 찾았지만, 여전히 군사와 정치를 움직이는 사람은 조조였다.

황제는 유협이었지만 천하의 실권자는 조조였던 것이다.(196년)


당시 유협의 황후는 복수(伏壽)였다. 복황후라고 불리었는데 조조의 권세에 눌려 늘 불안 속에 살았다.

조조의 높은 권세에 불만을 품은 동승 일파는 조조를 제거하려고 모의를 했다. 

하지만 조조를 제거하려던 동승 일파의 계획이 발각되자, 동승의 딸이자 헌제의 후궁이었던 동귀인도 처형되었다. 당시 그녀는 임신 중이었고, 헌제가 조조를 향해 살려달라고 간청했지만 소용없었다.(200년)

이를 지켜본 복황후는 두려움을 느껴 아버지 복완에게 조조를 견제할 방도를 마련해 달라는 비밀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복황후의 아버지는 행동하지 못했다. 아니 행동할 수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약 14년이 흐른 그 편지가 발각되었다.(214년)


이에 분노한 조조는 복황후를 폐위하도록 했고, 군사들이 황궁에 들어와 그녀를 끌어냈다.

<후한서>에는 복황후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맨발로 끌려가면서 헌제에게 애원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제는 저를 살려주실 수 없습니까?”

헌제가 대답했다.

“나 역시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오!”

어린 시절 천하의 동탁을 꾸짖었던 유협이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황후조차 구하지 못할 정도로 황제의 위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복황후는 결국 죽음을 맞았고, 그녀가 낳은 두 황자와 복씨 일족 대다수가 희생을 치뤄야 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15년, 새로운 황후가 책봉되었다.

바로 조조의 딸 조절이었다.


조조에게는 많은 자식이 있었다.

조비는 훗날 위나라의 황제가 되었고, 조창은 무예가 뛰어났으며, 조식은 중국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시인이 되었다.

조절은 이런 쟁쟁한 오빠들과 어릴 때 부터 함께 자랐다.

그녀의 어린 시절이나 성격에 관한 기록이 남은 것은 별로 없다. 다만 당대 최고 권력자의 딸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로열 패밀리 정도가 아니라, 국가의 군사와 행정까지 움직이는 가문의 일원이었다.


조절은 본래 213년에 조조가 자신의 세 딸 조헌, 조절, 조화를 헌제의 후궁으로 들여보냈다. 이후 복황후가 죽자 세 자매중에 조절이 새로운 황후로 책봉되었던 것이다.

이 혼인은 사실상 정략적 권력관계를 만들어 낸 셈이다.

조절의 아버지는 한나라의 실권자였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 실권자에게 의존하는 황제였다.

겉으로는 황제에게 시집간 영광스러운 혼인이었지만, 정작 황제에게는 자신의 황후조차 지킬 힘이 없었다.

그렇게 조절은 조조의 딸이자 한나라의 황후로 살아가게 되었다.


220년, 아버지 조조가 세상을 떠났다.

조조의 뒤를 이은 아들 조비는 야심이 아버지 조조와 달랐다.

조조는 끝내 황제가 되지 않았지만 조비는 아버지가 죽자 바로 그 해, 220년 헌제에게서 황위를 넘겨받아 위나라의 황제가 되려 했다.

이를 선양(禪讓)이라 한다. 선양은 피를 부르지 않는 명목상으론 평화적인 정권이양에 가깝지만 사실상 정치적 압박에 의한 권력이양이다.  

조비에게는 새로운 왕조의 탄생이었지만,  하지만 여동생 조절에게는 남편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었던 것이다. 

당시 황위의 이양을 위해서는 한나라 황제의 옥새와 인수(印綬)가 필요했다.

조비는 사신들을 보내 이를 요구했다.

그러나 조절은 화를 내며 내주지 않으며 끝까지 저항했다.

사신들이 거듭 찾아오자 조절은 그들을 불러 꾸짖었다. 그리고 마침내 옥새를 아래로 내던지며 눈물을 흘렸다.

“天不祚爾!”천부조이!

“하늘이 너희를 보우하지 않을 것이다!”

<후한서> 에는 곁에 있던 사람들마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녀의 저항은 모순에 가깝다. 자신의 오빠가 황제가 되려는 순간, 자신의 남편은 이제 황제가 아니게 된다.

옥새를 던진 그 행동은 과연 남편을 위한 행동이었을까? 한나라 황후로서의 책임감이었을까?

그녀의 속마음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조절이 옥새를 내주지 않고 저항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물론 그녀의 저항으로 역사가 바뀌지는 않았다.

조비는 결국 황제가 되었고, 그렇게 유방이 세웠던 약 400년의 역사를 지닌 한나라 왕조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사실 유협의 목숨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유협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비는 그에게 산양공(山陽公)의 작위를 주었고, 유협은 자신의 마지막 황후인 조절과 함께 14년 동안 더 살았다. 

이후 234년 남편 유협이 세상을 떠지만, 조절은 그보다 오래 생존했다.

그 사이 오빠 조비가 세운 위나라에서도 권력의 주인이 바뀌기 시작했다.

249년 사마의는 고평릉 사변으로 조씨 황실의 실권을 장악했다. 

이후 사마씨의 권력은 더욱 강해졌고, 260년에는 위나라 황제 조모가 사마씨 세력에 맞서다가 살해되었다. 

그리고 265년 위나라는 사마염에게 나라를 바쳤다. 두번째 선양을 이룬 것이다. 유씨에서 조씨로 그리고 사마씨로 나라가 바뀐 것이다. 

자신의 오빠를 저주했던  天不祚爾(천부조이, 하늘이 너희를 보우하지 않을 것이다) 의 말 대로 위나라는 고작 50여년 만에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에 의해 나라의 주인이 바뀌었다. 조절의 말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후한서>에 따르면 260년 아직 사마염에 의해 나라의 주인이 바뀌기전 그녀는 수명이 다했다고 한다. 그녀가 죽은 뒤 남편 유협과 합장되었으며, 장례는 한나라의 예법에 따라 치러졌다고 기록한다. 한나라가 사라진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마지막 황후의 장례에는 여전히 한나라의 예법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던 영웅들의 이야기에 비하면 지극히 피동적이며 아무런 실권도 없던 황제 유협과 그의 황후 이야기에 불과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그러한 운명을 받아들였던 인물이 아니였을까 싶다. 

역설적이게도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등장했던 수 많은 영웅들의 흥망성쇠를 그녀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지켜 보았다.

언제 어디서 죽을 수도 있는 불안한 시대 속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 자의 운명.

이런 삶은 비극이었을까? 아니면 축복이었을까?


한나라의 마지막 황후, 조절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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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11-02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덕화 주연의 <삼국지:용의 부활>에서 백발노장 조운과 싸운 조조 손녀 조영은 실존 인물일까요?

페이퍼 속의 이미지는 중국 기준의 삼국지 일러스트인가 보네요. 매력적이네요. 한국은 일본 게임사 KOEI의 삼국지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사용하는지라 이제는 좀 식상해요.
 


<治世之能臣(치세지능신),亂世之奸雄(난세지간웅) 치세에는 유능한 신하요, 난세에는 간웅이다.> 

이것은 후한 말 인물평론가 허소(許劭)라는 사람이 젊은 조조를 두고 평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삼국지를 알고 있는 우리는 오랫동안 이 한마디로 조조를 기억해 왔다.

평화로운 시대라면 유능한 신하가 될 수도 있었지만, 혼란의 시대엔 간웅이 되어버린 사람,  '차오차오(曹操)' 그가 바로 조조다. 


요즘 나의 백수 생활의 즐거움은 낮 시간에 나 홀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재미난 영화가 개봉할 때 마다 극장으로 달려가 영화를 관람한다.  이렇게 보게된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 《삼국, 제1부: 쟁낙양(三国第一部:争洛阳)》, 영어 제목으로 Three Kingdoms: The Beginning을 보면서 나는 이전에 알았던 조조가 아닌 새로운 조조를 만나게 되었다.


영화는 삼국이 정립되기 훨씬 이전, 후한 말 십상시의 난에서 시작한다.

젊은 조조와 원소는 한나라의 혼란을 걱정하던 젊은 관료이자 정치적 동지였다. 명문가 출신의 원소는 원칙과 명분을 중시했고, 조조는 자유분방하면서도 현실의 변화를 읽는 인물로 그려진다.

두 사람은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원흉으로 십상시로 여기지만 환관 세력을 제거하는 문제에서는 생각이 달랐다. 원소는 만악의 근원인 환관들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조조는 그들을 제거한 뒤의 정국을 걱정했다.

권력의 공백을 과연 누가 통제할 것인가? 

결국 대장군 하진이 환관들에게 무참히 살해되고, 낙양의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으로 동탁이 낙양에 들어왔다.

환관들의 전횡을 끝내려다가 오히려 동탁이라는 또 다른 늑대를 집안으로 불러들인 셈이 되었다. 


동탁의 전횡에 환멸을 느낀 원소가 낙양을 떠난 뒤, 조조는 동탁의 곁에서 환심을 산 후 동탁의 암살을 시도한다.

바로 <삼국지연의> 의 유명한 칠성보도(七星寶刀) 이야기다.

왕윤(王允)이 건넨 보검을 품고 동탁에게 접근했지만 조조는 암살에 실패하고 낙양을 탈출한다.

물론 이 장면은 정사에서 확인되는 사건이 아니라 후대 소설의 이야기다. 실제 역사에서 조조는 동탁의 관직 제안을 거절하고 낙양을 떠나 병력을 모았다.

젊은 시절 조조는 무너져 가는 한나라를 바로잡으려는 유능한 관료에 가까웠다.

우리에게 각인된 간웅으로 불리게 되는 조조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동탁토벌이라는 명분으로 조조를 비롯한 원소, 원술, 공손찬, 손견 그리고 도원결의 삼형제가 등장하며 여포랑 맞짱뜨는 장면을 끝으로 엔딩을 맞는다. 그래서 제목이 삼국 더 비기닝이기도 한 것 같다. 아직 삼국이 안된 시기의 이야기니까. 


그런데 이들 무력을 가진 삼국지 영웅들과 달리 조용히 동탁을 제거하려고 했던 또 다른 인물 왕윤이 등장한다. 그에게는 삼국지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여인을 키우고 있었다.

바로 초선(貂蟬)이다.

<삼국지연의> 에서 왕윤은 자신의 집에서 자란 초선을 이용해 동탁과 여포 사이를 갈라놓는다.

이른바 연환계(連環計)다.

조조가 보검을 들고 실패했던 암살은 결국 초선의 연환계로 인해 여포의 손으로 성공한다. 

역사적으로도 192년 왕윤과 여포가 동탁을 제거한 것은 사실이지만, 초선을 이용한 연환계는 문학적 전승이다.

그런데 동탁의 죽음이 곧 혼란이 종식되고 왕조가 안정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죽음으로 역사는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되었다.


동탁이 낙양에 들어와 등용했던 관리중에 채옹(蔡邕)이라는 대학자가 있었다.

132년에 태어난 채옹은 경학과 역사, 문장과 서예, 음악에 뛰어났던 후한 말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다.

155년에 태어난 조조보다 스물세 살이나 연상이었다.

두 사람의 친분은 <후한서> 에도 기록되어 있다. 

조조와 채옹은 아마도 단순한 동년배 친구가 아닌, 한 세대 앞선 대학자와 젊은 관료 사이에 맺어진 오랜 인연으로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동탁은 채옹의 재능을 알아보고 중용했다.

그러나 채옹이 동탁의 모든 행위를 지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독단적인 정치를 걱정하며 충고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동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채옹이 한숨을 내쉬었다는 이유로 왕윤은 그를 체포했다.

채옹은 자신의 역사서 저술을 마칠 수 있도록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간청했지만 왕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채옹은 192년, 예순의 나이로 옥중에서 생을 마쳤다.

그리고 왕윤 자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동탁의 옛 부하들이 장안을 함락하면서 살해되었다.

동탁도, 왕윤도, 채옹도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권력자들은 서로를 제거했지만, 그들의 죽음으로 어지러운 세상이 바로잡힌 것은 아니었다.


원래 채옹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채염(蔡琰). 훗날 채문희(蔡文姬)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여인이었다.

여기서 잠시 초선을 다시 떠올려 본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초선을 모르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그녀는 경국지색의 미모와 기지로 동탁과 여포를 갈라놓은 여인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정사에서 그 실존이 확인되지 않는 문학적 인물이다.

그럼에도 초선이라는 이름은 수많은 소설과 연극, 드라마 속에서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

반면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던 채문희는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삼국지를 여러 번 읽은 사람에게도 그녀의 이름은 생소할 것이다.

초선은 소설 속에서 너무나 유명해졌지만, 채문희는 분명한 역사적 기록을 남겼으면서도 한국의 대중적인 삼국지 이야기에서는 거의 존재감이 없다시피 하다.

사실 그녀의 삶을 살펴보면 오히려 초선 못지않게 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채문희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채옹의 학문과 예술을 가까이에서 익혔다.

<후한서> 에는 그녀가 박학다식하고 문장과 음률에 뛰어났다고 기록한다.

아버지가 연주하는 거문고의 줄이 끊어지는 소리만 듣고 어느 줄이 끊어졌는지 알아맞혔다는 일화가 있다.

그녀는 18세에 하동의 위중도(衛仲道)와 혼인했으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자식 없이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후 아버지 채옹마저 정치적 사건으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곧 이어진 전란은 그녀에게서 고향마저 빼앗았다.

이 시기 남편도 아버지도 잃은 채문희는 전란의 틈에서 흉노 기병에게 사로잡혀 남흉노의 좌현왕에게 속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열두 해를 보내게 된다.

그 사이 그녀는 두 아들을 낳게되었다.

그녀가 자신의 뜻으로 흉노 땅에 간 것은 아니었다. 누구와 살아갈 것인지, 어디에서 생을 마칠 것인지 선택할 자유도 없었다.

그녀가 흉노의 땅에서 보낸 그 열두 해는 생존이었다.

학자 집안에서 규수로 자란 여인이 황폐한 초원에서 말과 양을 몰며 억세게 버티고 또 버틴 삶을 산 것이다.

2000년 전 당시 여성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조차 어려웠다. 하물며 전쟁 포로가 된 여인에게 어떤 선택권이 있었겠는가?

그렇게 채문희의 삶이 낯선 땅에서 끝나는 듯했을 때, 갑자기 조조가 사람을 보내 그녀를 찾았다.


조조는 죽은 채옹과의 오랜 인연을 잊지 않고 있었다.

<후한서> 에는 그가 채옹의 후사가 끊긴 것을 안타까워하여 흉노 땅에 사신을 보내 금과 옥으로 채문희를 속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이 전하는 것은 조조가 그녀를 다시 한나라 땅으로 돌아오게 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채문희는 남흉노에 두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했다.

이때의 감정을 그녀의 작품 〈비분시(悲憤詩)〉에는 고향으로 돌아갈 기쁨과 자식을 두고 떠나는 고통이 함께 담겨 있다.

그곳에서 낳은 두 아들에 대한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우리가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자식에 대한 마음과 그곳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마음이 반드시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올 기회를 얻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이야기는 조조에게 구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조조는 돌아온 채문희가 동사(董祀)라는 젊은 관리와 다시 혼인을 시켜줬다.

남편 동사는 본인 보다도 나이 많고 흉노 땅에 아이까지 있는 늙은 여인인 채문희를 늘 무시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동사가 법을 어겨 사형에 처할 위기에 놓였다.

채문희는 직접 조조를 찾아갔다.

당시 조조의 주변에는 고관과 명사, 외국 사절들이 모여 있었다.

그 자리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로 나타난 채문희는 남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조조는 아무리 자신이 채문희의 후견인이 되었지만 이미 형 집행 명령이 내려졌다며 난처해했다.

그러자 채문희는 되물었다.

"공께서는 그토록 많은 말과 용맹한 병사를 거느리고 계시면서, 어찌 빠른 말 한 필을 아껴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 못하십니까"

조조는 그녀의 이 말에 마음을 움직여 동사의 죄를 사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또 다른 그녀의 일화는 어느 날, 조조가 그녀를 찾았다.

조조는 그녀에게 아버지 채옹이 남긴 많은 문헌을 기억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채문희는 아버지의 집에 약 4천 권의 책이 있었지만 전란으로 모두 사라졌고, 자신이 기억하는 것은 400여 편뿐이라고 답했다.

조조는 서리 열 명을 보내 기록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채문희는 당시에 남여 간의 예법을 고려해 남자 서리를 직접 대면하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기록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조조에게 종이와 붓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문헌들을 직접 써서 보냈다.

<후한서> 는 그녀가 쓴 글에 빠짐이나 오류가 없었다고 기록한다.

난세의 시기, 권력자들은 서로의 목숨을 빼앗았으며, 전란은 수많은 서적을 불태워 사라지게 했다.

하지만 한 여인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학문이 그대로 살아 있었던 것이다.

조조가 되찾아온 것은 단지 채옹의 딸만이 아니었다.

사라질 뻔했던 한 시대의 학문 또한 그녀의 머리속 기억을 통해 다시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조조는 과연 간웅이었을까? 

그는 난세에 군대를 일으켜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때로는 냉혹한 결정을 내렸으며, 정치적으로도 가혹한 수단을 사용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와 음악을 사랑했고, 뛰어난 학자를 존중했으며, 죽은 선배와의 인연을 잊지 않았다.

그 오래된 인연이 비참한 인생의 끝 자락에 있던 여인을 돌아오게 했고, 그 여인의 지식은 다시 문헌으로 남았다.

물론 이런 일화 하나로 조조의 모든 행위가 정당했다고 할 순 없다. 대표적으로 그의 서주대학살이란 오명은 영원히 지우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삶을 간웅이라는 한마디로만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설계된 조조를 기억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분명히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시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우리나라에서도 고우영 작가나 이문열 작가등이 저마다의 시대적 관점으로 다시 조조를 해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너머에는 실제 역사 속에서 훨씬 복잡한 삶을 살았던 조조가 있다.


초선이 <삼국지연의> 라는 문학의 힘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면, 채문희는 자신의 삶과 학문을 통해 실제 역사에 흔적을 남긴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소설 속에서 유명해졌고, 다른 한 사람은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으면서도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낯설게 남아 있다.

오래된 삼국지의 이야기 속에서 오늘 나는 조조를 다시 보게 되었고, 그 곁에서 '채문희' 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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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30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30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6-10-31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조의 재해석은 아마 <창천항로>라는 만화만큼 극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은 없을 듯 합니다. 아시리라 짐작되지만 모르신다면 바로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삼국 혼돈의 시기를 적어 내려간 <삼국지>라 아무래도 여성 인물에 대한 서술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오히려 각종 삼국지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여성 케릭을 만들기 위해 소설 속에서 등한시 되었던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말씀하신 채문희, 제갈량 부인 황월영, 유비 부인 손상향, 맹획 부인 축융, 관우 딸 관은병 심지어 미부인, 감부인까지 무기 들고 나타납니다. ㅎㅎ

마힐 2026-11-01 21:43   좋아요 0 | URL
《苍天航路》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길이란 제목이 황건적 구호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苍天已死,黄天当立 (창천이사 황천당립, 푸른 하늘이 이미 죽었으니, 누런 하늘이 마땅이 일어난다.)
삼국지의 시작을 알리는 황건적의 난을 진압했던 조조는 창천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 같네요.
오히려 그 창천의 길을 날아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제목이 되는 군요.
조조가 주인공인 이 만화를 사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짧막한 소개로만 봤습니다. ㅎㅎ
나중에 조사해 보니 이 만화 스토리는 재일 교포 작가가, 그림은 대만계 화교 출신 일본인이 그렸다고 하더군요. 스토리 작가는 결말이 나기 전에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림 작가가 완성시킨 만화로 알려졌다고 하네요. 조조에 대한 재해석은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얼마전에 본 영화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조조에 대한 인기가 도원결의 삼형제보다 월등히 높더라구요. 이제는 나관중이 설계한 전통적 선악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시기가 된 걸로 보입니다. 창천항로는 애니메이션으로 보도록 할께요. ㅎㅎ

삼국지 게임을 한 번도 해 본적 없지만 흥미롭네요.
그러고보니 생각보다 등장하는 여성들이 많네요.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성인물에 대한 인물 분석 한 번해보고 싶네요.
 
낭송 한비자 ㅣ 낭송Q 시리즈
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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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가 살았던 전국 시대의 군주국가는 이미 사라졌다.

이제 내가 사는 현대는 황제도 제후도 없고, 신하가 군주의 눈과 귀를 가려 나라를 빼앗는 시대도 아니다.

하지만 <한비자> 를 읽다 보면 2천 년도 더 지난 그의 이야기가 현시대에도 전혀 낯설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특히 회사를 오래 다녀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라 본다.

회사에는 규정이 있고, 직급과 권한이 있다. 사람을 평가하고 성과에 따라 보상하며, 잘못에는 책임을 묻는다. 

누군가는 일을 맡기고 누군가는 결과를 보고한다.

한비가 말한 법(法)과 술(術), 세(勢)가 떠오른다.

물론 현대 기업이 법가 사상을 계승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사람이 모여 조직을 이루면 시대가 달라도 비슷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권한과 책임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보고와 실제 성과가 일치하는지는 누가 확인할 것인가.

한비가 군주에게 던졌던 질문은 오늘날 기업의 경영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난세의 시대에 당신은 어떠한 군주가 되어야 하는가?


얼마 전 구직 사이트 커뮤니티에서 어느 한 사람의 사연을 읽었다.

그는 회사 사장과 직접 면접을 보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던 주말, 회사에서 전화가 왔단다.

미안하지만 채용을 취소하겠다는 통보였다.

그의 울분 섞인 글에는 수 많은 위로의 댓글이 이어졌다. 차라리 그런 회사에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에 그런 회사에 기대를 걸기보다 스스로를 계발해 사장이 모셔갈 만한 인재가 되라는 뼈 때리는 충고도 있었다. 그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구직자가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일과 기업이 신의를 지키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나 역시 얼마 전 비슷한 허탈함을 경험했다.

한 회사의 면접을 마치고 난 후, 회사 직원을 통해 최고경영자와의 마지막 면담이 있다고 했다.

연락을 기다리라며 대기하라고 했다. 난 직원분의 말에 회사 최고 경영자의 만남을 기대하며 일주일 넘게 면접 준비를 했다. 회사를 공부하며 회사의 향후 10년을 구상한 로드맵까지 만들면서, 어느새 그 조직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열흘 남짓 지나 돌아온 것은 면담 취소와 불합격 통보였다.

물론 채용을 약속받은 것은 아니었으니 앞선 구직자의 사연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의 허탈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김칫국부터 마신 자신을 탓했다. 쉰이 넘어서도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배운 셈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기업의 오너에게 최종 결정권이 있다고 해서 그 결정이 곧 원칙이 되어도 되는 것일까.

조직의 규정과 절차가 한 사람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뒤집힌다면, 제도는 존재하되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 질문은 내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으로도 이어졌다.

나는 중국에서 25년 넘게 일했고, 그중 오랜 시간을 자동차 부품회사의 관리자로 보냈다.

생산과 품질, 구매와 납기, 사람과 조직을 관리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회사를 떠나 근로관계와 권리를 놓고 법정에서 다투고 있다.

노동중재 위원회에서는 내 손을 들어올려줬지만 그 결과에 불복한 회사는 나를 상대로 1심을 청구했다.

또한 최근에는 회사가 제기한 별도의 차량 손해배상 소송에서 청구 전부 기각이라는 1심 판결을 받았다.

회사는 퇴사 이후 차량을 무단으로 점유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당시 회사 책임자의 지시와 실제 반환 경위, 손해 발생의 증거를 구분해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오래전 한비가 경계했던 문제가 떠올려졌다.


군주와 측근의 관계였다.

한비는 군주가 신하의 말에 눈과 귀를 맡기고, 판단의 중심을 잃는 일을 경계했다.

그런데 기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오너가 측근의 보고를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반대로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앞세워 측근과 제도를 움직인다면 또 어떻게 될까.

내가 겪은 사건에서 실제로 누가 누구의 판단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회사의 과거 지시와 이후 소송에서의 주장이 서로 충돌했고, 결국 법원에서 그 책임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남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순히 측근에게 있는 것일까.

아니다.

측근에게 휘둘린 군주도, 자신의 뜻대로 제도를 흔드는 군주도 결국 통치의 중심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비의 무위(無爲)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군주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거나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법과 기준에 따라 신하에게 일을 맡기며 그 결과를 살피는 통치의 방식이다.

한비에게 법은 기준이었고, 술은 신하를 살피고 검증하는 방법이었으며, 세는 군주의 지위에서 나오는 권세였다.

군주는 그 권한을 쥐고 있으되, 자신의 감정이나 측근의 말에 판단을 내맡겨서는 안 되었다.

그렇다고 한비가 오늘날의 법치주의를 말한 것은 아니다. 그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군주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기업과 경영자에게 조금 다르게 적용해 보고 싶다.

권한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이 세운 원칙을 함부로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득 마키아벨리가 떠오른다.

그가 말한 비르투(virtù, 변화하는 현실을 읽고 기회를 붙잡아 행동으로 옮기는 정치적 역량)는 군주의 판단과 결단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기업에서 오너의 카리스마는 중요하다. 오너의 카리스마는 조직 구성원 모두를 압도하며 조직을 이끄는 힘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판단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라도 제도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제도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의 판단과 제도가 서로를 지탱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나는 왜 <한비자> 를 읽어야 했을까?

한비는 군주를 위해 <한비자>를 썼다고 했다. 오직 군주만을 위해서.

그런데 나는 군주가 아니다.

한 나라를 다스릴 일도 없고, 지금은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경영자도 아니다.

오히려 지난 직장과의 분쟁을 아직 끝내지 못한 채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는 구직자다.

지난 직장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다음 직장은 어디서 시작할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 내가 왜 군주를 위해 쓰인 이 오래된 책을 붙잡고 있었을까?


돌이켜 보면 나는 오랫동안 조직을 움직이는 방법을 고민해 왔다.

사람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책임을 물을 것인가?

그러나 정작 지금 내게 필요한 질문은 조금 달라지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이끌고 있는가?


회사의 평가에 기대를 걸고, 면접 결과에 마음이 흔들리고, 법정의 승패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달라지기도 한다.

때로는 억울함이 앞서고, 때로는 조급함이 판단을 서두르게 한다.

그렇다면 나 역시 내 안의 수많은 목소리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비는 군주가 신하에게 판단의 중심을 빼앗기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도 수많은 신하가 있다.

욕심 이라는 신하도 있고, 두려움 이라는 신하도 있고, 분노라는 신하도 있고, 기대라는 신하,  조급함 이라는 신하도 있다.

그들이 내는 목소리들을 모두 안 들을 수가 없다.

다만 어느 하나가 내 삶의 주인이 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비가 말한 무위라는 것도 사실 내게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되, 내 판단의 중심은 놓치지 않는 것.

스스로 지킬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것.

물론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 고수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원칙은 어느새 기분이 되고, 중심은 고집이 되기 쉽다.


그동안 나는 <한비자>를 읽으며 한비의 법·술·세에서 시작해 진나라의 흥망을 보았고, 마키아벨리와 군주의 능력을 비교했다. 조선의 군주와 이순신을 생각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쟁의 시대를 끝내고 오랜 통치의 기틀을 세우는 과정도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권력과 통치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나 자신이었다.


생각해 보면 흔들리는 것은 언제나 나라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조직의 수장이 흔들리면,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흔들렸으며, 그 결과 조직 전체의 위기로 번진다.

그건 국가든 기업이든 그 어떠한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그 영역은 내 자신에게로 까지 확장되어 내려온다.

그리고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지난 직장과의 다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 결과들이 앞으로 내 삶 전체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한비는 군주에게 나라의 중심을 놓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나라의 군주도 아니고, 이제는 한 조직을 이끄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오래된 조언을 내 삶으로 가져올 수는 있다.

왜냐하면 '내 자신' 이라는 나라의 주인은 바로 '나' 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삶에서는 '나'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 '나' 는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독재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남의 전횡을 막기 위해 원칙이 필요하듯, 내 마음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도 원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다스려야 할 마지막 나라는 결국 나 자신이었다.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 그것이 바로 무위를 지키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비는 군주를 위해 글을 썼지만,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한비자>를 읽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하의 권세가 강하다는 것은 군주를 제멋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주를 제멋대로 조정하는 신하가 있으면 군주의 명령이 아래까지 이르지 못하고, 신하들의 실정이 군주에게까지 통하지 않는다. - P185

한비에게 정치란 세상이야기에 귀를 기울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말 그대로 심리를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법을 세우는 것이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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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fox 2026-10-29 0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 기업과의 일도 잘 해결되고 입사문제도 앞으로 더 좋은 결과가 있으실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도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2026-10-30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6-10-31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어 보니 한비자의 중국에서 관리자로 있으면서 법,술,세의 조화를, 이병의 적절함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류시화 시인의 책이 있죠. 물론 안다고 다 실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현명한 관리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살짝 됩니다. 다음 생에는 기필코! 불끈!!

잉크냄새 2026-11-01 23:02   좋아요 1 | URL
아, 물론 저의 중국 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글이 오해의 소지가 있겠네요. ㅎㅎ

마힐 2026-11-01 23:50   좋아요 0 | URL
다음 생엔 아마 훌륭하신 오너가 되실 겁니다. ㅎㅎ
혹시 제가 직원으로 들어가게 되면 잊지 마시고 잘 좀 부탁드립니다. 헤헤(손바닥 비빕니다)
딸랑 딸랑~
 
낭송 한비자 ㅣ 낭송Q 시리즈
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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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나레이션) 16세기 일본은 수많은 영주가 서로 싸우던 전국시대였다. 그 격정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 세 사람이 차례로 등장하며 일본 통일에 다가서게 되었다. 먼저 등장한 오다 노부나가는 강력한 군사력과 과감한 개혁으로 기존 질서를 깨뜨렸지만,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신으로 혼노지에서 죽었다. 그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뛰어난 정치적 수완으로 일본을 통일했다. 그러나 조선 침략이라는 무리한 전쟁을 일으켰고, 그가 죽은 뒤 정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사람은 오늘 이야기 주인공,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그는 앞선 두 사람의 시대를 모두 살아남았고, 마침내 새로운 막부를 열었다.

그리고 그 막부는 약 260년 동안 이어졌다.

이에야스와 한비 선생의 법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뭔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비 선생에게 이 인물을 직접 만나보자고 제안했다.


이제 시공간을 넘어 마련한 작은 찻자리이다. 

한쪽에는 일본 전국시대의 끝에서 천하를 얻은 이에야스가, 다른 한쪽에는 2천여 년 전 군주의 통치술을 고민했던 한비가 앉아 있다.


마힐: 이에야스 공, 어제 저는 조선의 이순신 장군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일본 사람들(사실은 '놈들'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의  신의를 믿을 수 없다고 하셨지요. 침략과 전쟁을 겪은 우리 조선사람으로서는 당연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이에야스:  그 말에 내가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소. 히데요시가 일으킨 조선 침략은 조선에 큰 고통을 주었고, 일본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소.


마힐: 그나마 공께서는 그 전쟁에서 일본군의 주력 지휘관으로 조선에 건너가지는 않으셨죠.


이에야스: 에휴...네.  그렇다고 내가 그 시대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나는 전쟁이 끝난 뒤의 일본이 다시 전국시대 같은 혼란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랐소.


한비: 그렇다면 공께서 고민한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보다, 승리한 뒤에 전쟁을 반복하지 않는 방법이었겠군요.


이에야스: 네, 천하를 얻는 데 칼이 필요했다면, 천하를 유지하는 데에는 칼 이외의 것이 필요했소.


마힐: 두 분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일본에는 울지 않는 두견새를 두고 세 사람(앞에 설명했던 오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의 성격을 비교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히데요시는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겠다.”

이에야스 공은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물론 후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만, 세 사람의 특징을 참 재미있게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이에야스: 하하. 후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말이오?


한비: 마지막 이에야스 당신이 가장 흥미롭군요.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기다린다는 뜻입니까?


이에야스: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오. 하지만 기다림에도 때가 있는 법이지. 젊은 날에는 강한 자에게 맞서 살아남을 수 없었소.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었고, 히데요시가 천하를 장악했을 때는 그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소.

그러나 세키가하라에서는 결전을 피하지 않았소. 오사카 전투에서도 칼을 거두지 않았소.


마힐: 그렇다면 이에야스공의 기다림은 단순히 참고 견디는 일이 아니었군요.


이에야스: 사람이 원하는 것을 모두 당장 얻으려 한다면 세상에 싸움이 끊이지 않겠지. 내게 필요한 것은 오늘의 승리가 아니라 내일도 남아 있을 힘이었소.


한비: 흥미롭습니다. 당신은 욕망을 버린 것이 아니라 욕망을 다스린 것이군요.


마힐: 저는 이에야스공의 그 기다림이 한비 선생님의 무위(無爲)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한비: 그래요.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군주가 자신의 기분과 재주를 앞세워 모든 일에 개입하지 않고, 사람들이 정해진 질서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요.

다만 기다릴 때와 움직일 때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위가 아니라 무능일 것입니다.


한비: 그런데 공께 묻고 싶습니다. 천하를 얻은 뒤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에야스: 흔히들 전쟁에서 이기는 일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하지 않소. 일본의 다이묘들, 즉 영주들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소. 그들이 소유한 영지와 성, 그리고 가문의 이름이죠.

그 모든 것을 빼앗으면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싸울 것이오. 그러나 정해진 질서를 따르면 가문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면 사정이 달라지지.


마힐: 실제로 도쿠가와 막부는 영지의 재배치와 몰수, 성과 군사활동에 대한 규제를 통해 다이묘들을 통제했습니다. 후대에는 참근교대(参勤交代)로 제도화되었지요.


한비: 참근교대라니, 무슨 뜻입니까?


이에야스: 쉽게 말해 각 지방의 영주들이 자기 영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기적으로 쇼군이 있는 에도에 올라와 일정 기간 지내도록 하는 것이오.


마힐: 1635년, 3대 쇼군 이에미쓰 때 정례화되었습니다. 영주들은 대체로 에도와 자신의 영지를 오가며 번갈아 거주해야 했고, 아내와 자녀들은 에도에 머무르는 체제였습니다.


한비: 그렇다면 영주가 마음대로 군사를 일으키기 어렵겠군요. 가족도 에도에 있고, 오가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들 테니까요.


마힐: 그렇습니다. 영주들의 경제력과 행동을 제약하면서 막부에 대한 복종을 유지하는 수단이었습니다.


한비: 허허, 흥미롭군요. 칼을 들고 매일 감시하지 않아도 제도 자체가 영주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군요.


마힐: 일본 막부의 통치 방법이 한비 선생님의 법·술·세와 비슷하지 않나요?

법(法)은 영주들이 따라야 할 규칙이고, 술(術)은 그들의 이해관계와 행동을 관리하는 방법이며, 세(勢)는 그 규칙을 집행할 수 있는 쇼군의 권위와 힘입니다.


한비: 혹시 그렇다면 이에야스 공이 죽은 뒤에도 그 질서가 유지되었나요?


마힐: 네, 그렇습니다. 이에야스 공은 1616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기초를 놓고 후계자들이 발전시킨 막부체제는 19세기까지 약 26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한비: 허허, 놀랍군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마힐: 저도 선생님께서 그렇게 감탄하실 줄 알았어요. 이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고 봤거든요. 


한비: 네, 맞아요. 선생께서는 어제 제 통치술이 실제로 성공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이론이 아니냐고 물으셨지요?

그런데 한 사람의 재주로 천하를 얻는 것과,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군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죽은 뒤에는 무엇이 나라를 다스려야 하겠습니까?


마힐: 당연히 사람을 대신할 원칙과 제도겠지요.


한비: 네, 바로 그것입니다! 군주가 매번 나서지 않아도 신하들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것. 제가 고민했던 것도 그 문제였습니다. 그 일본의 군주가 제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들려주신 통치의 구조는 제가 추구했던 것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이에야스: 제가 그대의 사상을 배운 적은 없지만, 그 설명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군요.


한비: 물론 공께서 법가를 따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사람들의 욕망을 읽고, 권위를 세우고, 규칙을 남겼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특히 훌륭한 군주 한 사람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후계자들이 이어갈 질서를 마련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마힐: 선생님, 저는 여기서 법가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한비: 뭔가요? 말씀해 보시지요.


마힐: 선생님의 법은 국가의 규칙이지만, 그 법을 세우고 유지하는 사람은 결국 군주입니다. 군주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법을 흔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비: 제가 글에도 밝혔지만 좋아하는 신하에게는 상을 주고, 미워하는 신하에게는 벌을 내리겠지요. 그러면 신하들은 법이 아니라 군주의 기분을 따를 것입니다.


마힐: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법이란 단순히 백성과 신하를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군주 자신의 욕망에도 경계를 세우는 원칙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야스: 그 말에 동의하오. 사람이 권력을 얻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소.

하지만 법을 세우는 자가 먼저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떻겠소?


한비: 좋은 질문입니다. 군주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상벌을 뒤집는다면 신하들은 법이 아니라 군주의 기분을 살피겠지요.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마힐: 무엇인가요?


한비: 이에야스 공의 인내는 그 사람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법은 그런 능력이 없는 후계자에게도 작동해야 합니다. 저는 훌륭한 군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야스: 저도 한비 선생님의 그 말씀에 동의하오. 나 역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언젠가는 죽을 테니 말이오.


마힐: 그러고 보면 두 분은 서로 다른 길에서 같은 문제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한비 선생은 제도에서 출발해 군주의 절제를 요구했고, 이에야스 공은 자신의 인내를 통해 얻은 권력을 제도로 남기려 했습니다.


한비: 제가 공께 한 가지 묻고 싶군요. 오래 유지되는 질서가 반드시 올바른 질서이겠습니까?


이에야스: 반드시 그렇지는 않겠지. 오래 유지되었다는 것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뜻이지, 모든 사람이 만족했다는 뜻은 아니오.


마힐: 네, 말씀대로 실제로 막부시대에도 신분의 제약과 기근, 반란이 있었습니다. 결국 막부도 무너졌지요.


한비: 그렇다면 우리가 확인한 것은 영원한 통치의 비결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일정한 질서 안에 묶어두는 방법이겠군요.



(마힐 나레이션) 나는 오래전 읽었던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 을 떠올렸다.

그 소설 속 이에야스는 단순한 정복자보다,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끊임없이 다스리는 수행자에 가까웠다.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작가가 상상한 내면이었지만, 그 모습은 한비의 무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마힐: 이에야스 공,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있습니다.

공께서는 울지 않는 새를 왜 기다리셨나요?


이에야스: 음. 새를 억지로 울게 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것이 내가 원하는 울음, 혹은 새가 원하는 울음이겠소?


한비: 하하하! 공의 말씀을 듣고 보니 오래전 제가 책에 적었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마힐: 선생님께서 쓰신 책에도 새 이야기가 있습니까?


한비: 그렇습니다. 《한비자》 〈유로〉에 이런 말이 있지요.

불비불명(不飛不鳴), 비필충천(飛必沖天), 명필경인(鳴必驚人).

날지도 울지도 않던 새가 한번 날면 하늘을 찌르고, 한번 울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에야스: 허허. 선생님의 책에도 그런 새 이야기가 있었다니 이런 우연히 일치가 있다니...


한비: 그렇습니다. 다만 그 새는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날개를 기르고, 세상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지요. 공의 긴 기다림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이에야스: 음. 솔직히 나는 그저 살아남으려 했을 뿐이오.


한비: 살아남은 사람은 많소. 그러나 살아남아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자신이 죽은 뒤에도 그 질서가 이어지도록 기초를 놓은 사람은 흔치 않지요.


마힐: 그러면 한비 선생님께서는 이에야스 공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한비: 일명경인(一鳴驚人)! 한 번 울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공께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일명경세(一鳴驚世)! 한 번 울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고 칭찬하고 싶군요.


이에야스: 하하. 과찬의 말씀이오. 내가 만든 질서와 제도도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오.


한비: 물론입니다. 영원한 나라는 없지요. 그러나 한 사람의 인내가 후대의 제도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오래 생각할 만합니다.


함께 인사를 나누며 차담회를 마친다.


(마힐 나레이션) 울지 않는 새를 기다린 사람.

그리고 울지 않는 새의 뜻을 이미 2천여 년 전 자신의 책에 기록했던 사람.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던 두 사람은 뜻밖에도 한 마리의 새 앞에서 만났다.

욕망을 가진 인간이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이 다시 인간의 욕망을 다스린다.

한비는 그것을 법과 통치술의 문제로 고민했고, 이에야스는 전쟁과 권력투쟁 속에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갔다.

울지 않는 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날개를 기르고, 때를 살피고, 마침내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군주와 영주가 사라진 현대의 기업과 조직에서는 어떨까?


내일은 현대 기업과 조직 속에서 법가 사상을 찾아보고자 한다.


8일차 마침.

어린아이가 소꿉놀이를 할 때 흙을 밥이라 하고, 진흙을 국이라 하며, 나무를 고기라고 한다. 그러나 저녁 때가 되면 반드시 집에 돌아가 진짜 밥과 국을 먹는다. 이는 흙밥과 진흙국은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대의 일을 칭송하며 외는 일도 이와 같아, 말할 수는 있으나 참되다고 할 수 없다. 선왕의 인의를 말하더라도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고, 그것을 즐길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다스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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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한비자 ㅣ 낭송Q 시리즈
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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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나레이션) 오늘은 한비 선생에게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는 그가 어떤 해전에서 승리했고, 얼마나 적은 배로 싸웠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내가 궁금한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왕의 신임을 잃은 장수가 어떻게 부하들의 신뢰를 얻고, 끝내 나라를 지킬 수 있었을까?

애초에 이순신을 파격 발탁한 왕은 왜 그를 가둬버렸을까?


마힐: 선생님, 한 사람을 파격적으로 발탁한 군주가 훗날 그를 파직하고, 다시 불러들였다면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한비: 처음에는 사람을 알아보았고, 나중에는 의심했으며, 결국 다시 필요해졌다는 말씀이군요.


마힐: 조선의 선조와 이순신 장군 이야기입니다. 선조는 왜란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을 여러 관직을 뛰어넘어 전라좌수사로 발탁했습니다. 전쟁 중에는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지요.


한비: 그렇다면 처음부터 무능하거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군주는 아니었군요.


마힐: 그런셈이죠...  그런데 1597년에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파직하고 국문했습니다. 그 뒤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철저하게 참패했고, 선조는 다시 이순신을 기용했습니다.


한비: 전쟁 중 군령을 어기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군주는 명령의 타당성과 장수의 실제 판단을 함께 살펴야 하지요.


마힐: 선조의 판단 착오였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명령을 어긴 장수가 그저 괘씸했던 걸까요?


한비: 군주의 속마음까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끝까지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지요.


마힐: 다시 이순신 장군을 불러들인 것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은 것일까요?


한비: 아니면 달리 선택할 사람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든 군주의 판단은 그 결과로 검증받아야 합니다.


(마힐 나레이션) 선조는 이순신을 발탁한 왕이자, 동시에 그를 궁지에 몰아 넣은 왕이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전장으로 돌려보낸 왕이기도했다. 한 사람의 군주 안에 안목과 의심, 권위와 현실적인 판단이 함께 존재했던 것이다. 그건 어쩌면 국가 위기 속에서도 존재하는 냉혹한 권력의 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힐: 선생님, 그런데 이순신 장군의의 진정한 위대함은 해전의 승리만이 아닙니다. 그가 사람을 다루는 방법에 있습니다.


한비: 그래요? 말씀해 보시지요.


마힐: 군율에는 엄격했고, 전투를 앞두고는 군량과 무기, 훈련을 철저히 챙겼습니다. 부하들의 공적을 살피고, 자신도 위험을 피하지 않았지요.


한비: 하하. 장군의 덕망에 대해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제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마힐: 법과 상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한비: 물론 그것만이 아닙니다. 적임자에게 일을 맡기고, 성과를 확인하며, 조직이 실제로 움직이도록 했다는 것이지요. 신뢰는 말로 얻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결과로 쌓이는 법입니다.


마힐: 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된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을 상대할 때는 또 달랐습니다. 동맹군 장수의 체면과 이해관계를 살피면서도 연합작전의 목적을 놓치지 않았지요.


한비: 부하에게 군율을 적용하는 것과 동맹군 장수를 설득하는 것은 다른 문제겠군요.


마힐: 일본 수군을 상대할 때는 지형과 해류, 진형을 활용해 적의 우세를 무너뜨렸습니다. 일본 장수들에게 두려운 상대가 되었지요.


한비: 그렇다면 그 장수는 세 가지를 알았군요. 부하에게는 기준을, 동맹에게는 이해관계를, 적에게는 두려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마힐: 그건 마치 선생님의 법, 술,세와 닮지 않았습니까?


한비: 네, 맞아요. 닮은 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군주의 통치를 논했고, 이순신은 제한된 권한으로 군대를 지휘했습니다. 둘을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마힐: 바로 그 점이 흥미롭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보다, 군주의 명령을 받는 장수가 사람을 움직이는 데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요.


한비: 그렇다면 군주가 그 장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쉽군요.


(마힐 나레이션) 이순신은 무조건 너그러운 지도자가 아니었다. 엄격한 규율과 준비, 부하에 대한 평가, 스스로 지는 책임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사람을 다루는 방법도 달랐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주목하는 이순신의 리더십이었다.


마힐: 선생님, 이순신에게는 또 하나의 질문이 남습니다. 자신을 버린 왕이 다시 싸우라고 명령했을 때, 그는 왜 돌아왔을까요?


한비: 신하로서 왕에게 충성했기 때문 아닙니까?


마힐: 물론 그 시대에는 왕과 나라를 쉽게 분리할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왕 한 사람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한비: 백성과 국토도 있었겠지요.


마힐: 임진왜란 때는 왕의 명령만 기다리지 않고 일어난 의병들도 있었습니다. 가족과 고향, 삶의 터전을 지키려 했지요.


한비: 군주가 모든 것을 지시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싸웠다는 말씀이군요.


마힐: 그렇습니다. 그런데 300여 년 뒤에는 더 극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1910년 조선의 뒤를 이은 대한제국이 국권을 빼앗기고, 왕조의 통치권마저 사라졌습니다.


한비: 그렇다면 나라를 위해 싸울 이유도 사라졌습니까?


마힐: 아니요. 오히려 독립을 되찾으려는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무장투쟁과 외교, 교육과 문화운동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독립을 추구했습니다.


한비: 왕이 없는데 누구에게 충성한 것입니까?


마힐: 더 이상 한 사람의 군주만으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나라를 스스로 되찾으려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한비: 그들은 모두 같은 나라를 꿈꾸었습니까?


마힐: 아닙니다. 왕정을 회복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공화국을 지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표는 공유했지요.


한비: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힐: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광복을 맞았습니다. 독립운동의 노력과 국제전쟁의 결과를 함께 보아야겠지요.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합니다.


한비: 왕조는 사라졌지만 나라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의지는 사라지지 않았군요.


마힐: 그렇습니다. 이순신의 시대와 독립운동가들의 시대는 분명 다릅니다. 또한 충성의 대상과 국가관도 같지 않았지요. 그러나 통치권력이 무너지거나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지키려 했다는 점은 닮았습니다.


한비: 선생님, 오늘 말씀하신 사람들은 모두 훌륭합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것이 궁금합니다.


마힐: 무엇입니까?


한비: 그토록 훌륭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어야만 나라가 유지된다면, 그 나라의 제도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마힐: 음... 제도가 사라진 것 아니지만 작동되지 못한 거죠. 


한비: 이순신 장군은 고금을 통틀어 정말 위대한 장수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수의 위대함이지, 통치의 위대함은 아닙니다.


마힐: 선생님은 사람보다 제도를 더 믿으시는군요.


한비: 저는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통치를 고민했습니다.


마힐: 사실 저는 선생님의 사상이 이론상 훌륭하지만 실제로 통치에 적용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사실상 그걸 적용해서 성공한 사례가 있었을까요? 


한비: 선생께서 후대의 역사를 아시니, 직접 다시 한번 찾아보시지요.


마힐: 음... 알겠어요. 한번 다시 한번 역사를 살펴볼께요. 


(마힐 나레이션) 선조는 이순신을 알아보았지만, 끝까지 믿지는 못했다.

이순신은 왕의 신임을 잃었지만 부하들의 신뢰까지 잃지는 않았다. 엄격한 규율과 철저한 준비, 사람을 살피는 판단력과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로 조직을 이끌었다.

그리고 왕조가 사라진 뒤에도 나라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은 있었다.

이순신 장군과 의병, 독립운동가들의 시대와 생각은 달랐다. 그러나 그들은 통치권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려 했다.

나는 한비에게 역사속 인물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비는 내게 제도의 책임을 물었다.

“영웅이 나라를 구했다면, 그 나라의 통치는 무엇을 했는가?”

그 질문의 답을 찾다가 뜻밖의 나라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 나라는 정말 의외였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일본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그곳에서는 한비의 통치술과 놀랍도록 닮은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내일은 일본의 역사 속으로 떠나보겠다.


7일차 마침.

지금 한은 작은 나라인데 대국에 기대고 있습니다. 임금께서는 느긋하게 진나라와 위나라의 명을 듣고, 제나라와 초나라에 의지하며 움직이니, 작은 나라가 점점 쇠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영토를 넓힐 수 없다는 것을 한나라는 알지 못합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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