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년4월1일
오늘의정진: 不思議解脫力/불사의해탈력/불가사의한 해탈의 힘은
- 100일 정진, 97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백 스물 한 번째와 백
스물 두 번째 구절은
<有二比丘犯淫殺/유이비구범음살/어떤 두 비구 음행과 살생을 범하니
波離螢光增罪結/바리형광증죄결/우바리의 반딧불은 죄의 매듭 더하였고
維摩大士頓除疑/유마대사돈제의/유마대사 단박에 의심을 없애 줌이여
還同赫日消霜雪/환동혁일소상설/빛나는 해가 서리, 눈 녹음과 같았다.> 였다.
우바리 존자는 음계와 살생을 범한 두 비구의 죄가 너무 중해
결국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유마거사는 우리의 참 마음은 본래 청정하며 모든 법이
무상하고 공함을 바로 아는 것이 진정한 계율을 지키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는 곧 두 비구가 죄를 지었다는
고뇌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대로 자신의 참된 성품을 깨닫게 해 주었던 것이다.
오늘은 백 스물 세 번째와 백 스물 네 번째 구절
不思議解脫力/불사의해탈력/부사의한 해탈의 힘은
妙用恒沙也無極/묘용항사야무극/묘한 작용 항하사 같아 다함이 없고
四事供養敢辭勞/사사공양감사로/네 가지 공양을 감히 수고롭다 사양하랴
萬兩黃金亦銷得/만량황금역소득/만냥의 황금이라도 녹일 수 있다.
유마거사의 이러한 견해는 점진적으로 마음을 닦아서 깨달음을 얻는 점수(漸修)가 아닌 마음을 단박에 깨닫는
돈오(頓悟)의 경지이다. 돈오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 불교의 경지이기도 하다. 소승(小乘) 같은 작은 수레보다 대승(大乘)이란 큰 수레에 모든 중생이 타고 깨달음에 도달하는 힘이 강력하다. 돈오에는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들 까지도 구제하여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게 하려는 보살의 원력(願力)이 담겨 있다. 바로 이러한 원력이 불가사의한 해탈(解脫)의 힘이다.
네 가지 공양(供養)이란 수행하는 스님들의 편의를 위해서 재가 신도들이 제공하는 음식, 의복, 거처, 약 등을
일컫는다. 사실 공양물을 제공하는 시주자들의 마음에는 수행자가 큰 탈없이 수행을 잘해 달라는 마음도
있지만 자신의 복을 비는 마음도 함께 있다. 공양을 주는 자가 있어야 공양을 받는 자도 있다. 반대로 공양을 받는 자가 있어야 공양을
주는 자도 있다. 그러니 공양을 하는 사람과 공양을 받는 사람은 서로 둘이 아니다. 대승의 마음도 이와 같다.
공양을 줘도 준 사이가 없고 공양을
받아도 받은 사이가 없다는 뜻이 된다.
아무리 억만금 같은 재물을 갖다
주어도 준 사이가 없고 받은 사이도 없다.
이것이 바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되는 것이다.
결국 유마대사의 한 마디는 죄도
없애 버리고, 황금도 녹여 버리는 해탈의 힘을 지녔다.
<일일 소견>
본래 해탈이란 고뇌(苦惱)에서 벗어나는 걸 뜻한다. 괴로움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나 괴로움에 메이지 않으면 그것 또한 해탈이다. 선(禪)에서는 번뇌를 지닌 채 그대로
부처를 이룬다고 했다. 요즘세상에 번뇌가 없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부처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따지면 부처 되기 참 쉽지 않나? 맞다. 부처 되기는 쉬운데 부처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그래서 불교가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