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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41230

오늘의정진:  五陰浮雲空去來(오음부운공거래) 오음의 뜬 구름은 부질없이 가고 오며


- 100일 정진5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네번째 구절은

法身一物 (법신각료무일물) 법신을 깨닫고 보니 한 물건이라고 할 것도 없도다. 

本源自性天 (본원자성천지불) (왜냐하면) 본래 내 근원이 천진불 이였기 때문이다.

이였다.

깨닫기 전에는 한 물건(一物) 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본래 그 한 물건도 없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이였음을 깨닫고 난 후 비로소야 알게 되었다.

내 본래가 천진불이요, 곧 자성이 부처였음을 여실히 알았다.

자성본래불(自性本來佛)을 자각(自覺) 하게 된 것이다.


오늘은 다섯 번째 구절

五陰浮雲空去來 (다섯 오, 그늘 음, 뜰 부, 구름 운, 빌 공, 갈 거, 올 래)

오음부운공거래

오음의 뜬 구름은 부질없이 가고 오며

三毒水泡虛出沒 (석 삼, 독 독, 물 수, 거품 포, 빌 허, 날 출, 잠길 몰) 

삼독수포허출몰

삼독의 물거품은 헛되이 출몰 한다.


증도가의 첫 번째 구절에서 네 번째 구절까지는 깨달음의 세계를 노래 했다.

그런데 오늘 다섯 번째 구절에서는 갑자기 논조가 바뀐다.

깨닫기 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오음(五陰)반야심경(若心經) 구절의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의 오온(五蘊)을 뜻한다

반야심경의 가장 핵심 구절이 바로 '조견오온개공' 이라고 한다.

반야심경은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께서 부처님의 수제자 지혜제일의 사리불에게 설하는 깨달음의 경지를 260자의 글 안에 함축적으로 표현한 경이다.

조견오온개공이란 오온(五蘊)이 모두 공함(皆空)을 비추어 본다(照見)는 뜻이다.

즉 오온은 색, , , , 이 모두 공하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을 보고, 머리로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는 모든 의식 작용이 바로 오온이다. 바로 우리가 움직이고 살아 있다고 느끼는 이 모든 감각과 의식작용이 모두 공하다는 것이다. 이걸 알지 못하니까 우리는 몸과 마음의 작용에 집착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야심경은 오온이 공함을 설하고 있다.

곧 무아(無我) 임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삼독(三毒) 은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탐진치(嗔痴) 삼독을 일컫는다.

탐내는 마음, 화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바로 세가지 독이다.

이 삼독 또한 물거품 처럼 출몰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깨닫기 전에는 오음과 삼독에 빠진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 위에 올라 설 것 같고, 구름 타고 손오공처럼 맘대로 오고 갈 것 같은 바램은 바로 허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물질적으로 바라는 성공과 그 성공을 위해 욕심내고, 화내고, 어리석게 짓는 모든 마음과 행위들이 다 물거품 같다는 뜻이다.


五陰浮雲空去來 오음부운공거래, 三毒水泡虛出沒 삼독수포허출몰

오음의 뜬 구름은 부질없이 가고 오며,  삼독의 물거품은 헛되이 출몰 한다.

금강경(金剛經)에도 이와 같은 뜻의 유명한 구절이 있다.


"一切有爲法  (일체유위법) 이 세상의 모든 일체 유위법은
如夢幻泡影  (여몽환포영)  꿈 같고 환상 같고 물 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如露亦如電  (여로역여전) 이슬 같고 또 번개와 같나니

應作如是觀  (응작여시관) 응당 이와 같이 (세상을) 관할 지어다."


,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유위법에 의해 살아가는 세상이다.

유위법의 세상은 꿈, 환상, 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은 성질의 것이니 세상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설한다

즉 깊이 보는 것이 관() 이니 눈 아닌 눈, 마음의 눈(心眼) 으로 유위법의 실체를 바로 보라는 뜻이다. 아니 제대로 보여져야 한다. 실상이 눈에 들어 와야 한다.

어쩌면 역대 선지식들은 모두 한 가지 진리를 계속 누누히 말씀 하고 계시는 것 같다

일체가 모두 환영이니 속지말라고. 제대로 눈을 떠서 바라 보라고.

그 순간, 심안이 떠지면 바로 깨침이 되는 것이다.

영가스님(665~713) 의 증도가(證道歌)는 아직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어서 빨리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 일일 소견

나이를 먹을 수록 세상일에 대해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는다.

어제 무안 참사는 참으로 안타깝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관한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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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12-30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명복을 빕니다

모나리자 2024-12-30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에겐 어려운 공부 같은데 대단하십니다.^^
작년에 반야심경 공부한 적이 있어서 낯익은 부분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요즘 제가 불경에 관심이 많아서 잠들 때마다 금강경을 들으며 잠이 듭니다.
아직 아무 뜻도 모르지만 영인 스님의 아름다운(?) 염불 소리에 감탄하곤 합니다.

12월은 우리 국민에게 시련의 달인가 봅니다. 그분들의 명복을 빌며 어서 안정된 나라가
되길 빌어 봅니다.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마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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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4년 1229

오늘의정진法身觉了无一物 법신각료무일물 (법신을 깨달음에 한 물건도 없으니)


u  100일 정진,  4일차


어제 살펴 본 증도가 구절은 

無明實性卽佛性 무명실성즉불성,  幻化空身卽法身 환화공신즉법신

<무명의 실제 성품이 그대로 부처님 성품이요환영 같은 허망한 육신이 그대로 법신이네였다.

이는 곧 본래 부처의 성품은 무명에 차별을 두지 않으며 유한한 육체 또한 부처의 몸이라는 뜻이다세상 유위법의 이해를 뛰어 넘어 분별하지 않는 불이의 문 (不二으로 들어간다무위법의 세계로 입장이다


오늘 살펴 볼 증도가 네 번째 구절은

法身觉了无一物 (법 법몸 신깨달을 각마칠 료없을 무한 일물건 물법신각료무일물

법신을 깨달음에 한 물건도 없으니

本源自性天真佛 (근본 본근원 원스스로 자성품 성,하늘 천참 진부처 불본원자성천진불

본래 근원의 자성이 천진불이라


선에서 자주 쓰는 용어 중의 하나가 ‘一物일물’ 이다일물은 하나의 물건’ , 즉  한 물건’, 혹은 어떤 물건’ 이라고 부른다.

서산대사(西山休 15201604)의 선가귀감(禅家龟鉴)의 첫 구절은 여기 어떤 물건이 있다 (有一物于此)‘ 로 시작한다.

어떤 물건이라 함은 곧 나의 본질적인 근원이며 본래자리참나불성참 성품을 뜻한다.  

물건이라 하면 어떤 실체가 있는 물질적이고 고정적인 무언가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일물은 실체가 있고 형상이 있는 고정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이는 도덕경의 첫 구절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도를 도라고 말하면 도가 아니요이름을 이름 지어 말한다고 이름이 아니다와 같은 의미이다 

일물은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말과 글로 즉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서선가에서는 단지 어떤 물건한 물건이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일물이란 표현은 단지 문자로 지어낸 것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一物(무일물)’ 이란 일물이라 할 것도 없다는 뜻이 된다.

육조 혜능선사(六祖慧能禅师638~713)가 오조 홍인대사(五祖弘忍 601674) 문하에서 행자 생활을 할 당시에 혜능 행자가 지은 시에 바로 “本一物 본래무일물” 이란 구절이 등장한다

그 당시 홍인은 자신의 법과 의발을 전수하기 위해 문하의 승려들에게 각자 깨달은 바를 시로 표현하라고 했다

이때 홍인 문하의 상좌 중 법을 이을 만한 가장 유력한 수제자 신수(神秀606~707)는 아래와 같은 시를 지었다


 身是菩提树(신시보리수)心如明镜台(심여명경대)

时时勤拂拭(시시근불식)勿使惹尘埃(물사야진애) 

<몸은 보리수요마음은 명경대(거울대)

부지런히 털어내고먼지가 앉지 않도록 해야 함이다.> 라고 시를 써 붙혔다.


이때 행자였던 혜능은 일자 무식하여 글을 몰랐다그래서 신수의 시도 읽지 못했다.

혜능은 어느 날홍인대사의 제자들이 모두 신수의 시를 외우고 다니는 것을 듣게 된다

그제서야 혜능도  바로 시를 짓고 그 시를 남에게 써달라고 부탁했다.


菩提本无树(보리본무수) 明镜亦非台(명경역비대)

 一物 (본래무일물) , 何处惹尘埃(하처약진애)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거울 또한 대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어디에 티끌이 일어나리까?> 


혜능의 一物 (본래무일물) 은 선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일물이라고 이름 지을 것도 없으니 본래 무일물이 바로 내 자성 부처라는 것이다.

따라서 혜능의 일숙각(一宿) 이었던 영가스님은 혜능 대사의 ‘무일물’ 을 너무나도 잘 알았을 것이다

다시 증도가로 돌아와 

法身觉了无一物 (법신각료무일물법신을 깨닫고 보니 일물이라고 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本源自性天 (본원자성천지불 본래 내 근원이 천진불 이였기 때문이다.


여지껏 한 물건이 곧 불성이라 생각 했는데 정작 깨닫고 보니 모두가 법신을 지닌 부처였고  한 물건이란 것도 본래 없더라왜냐하면 본래 근원인 나의 성품이 바로 천진불이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래 성품바로 자성이 본래불이라는 뜻 이였던 것이다.

자성본래불(自性本来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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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4년 1228

오늘의정진 無明實性卽佛性 (무명실성즉불성무명의 참 성품이 바로 불성이요 


u  100일 정진,  3일차


어제 증도가와 신심명의 가장 핵심 구절을 살폈다,

學無爲閑道除妄想不求眞

절학무위휴도인 , 부제망상불구진 

배움이 끊어진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을 버리지도 않고 진심을 구하지도 않네(증도가)

至道無難 唯嫌揀擇 지도무난유혐간택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나니오직 간택하는 마음만 꺼리면 된다.(신심명)

깨달음의 경지는 분별이 끊어진 자리를 뜻 한다고 했다

이는 즉 분별의 사라짐은 곧 불이(不二이다분별하지 않는 마음이 바로 둘이 아닌 도리를 얻는 것이다

분별이 사라지는 불이문(不二门에 들어서는 것이야 말로 깨달음의 세계로 입장하는 셈이다.


오늘은  

無明實性卽佛性 (없을 무밝을 명참 실성품 성바로 즉부처 불성품 성)

(무명실성즉불성

무명의 실제 성품이 그대로 부처님 성품이요

幻化空身卽法身 (환영 환변할 화빌 공몸 신바로 즉법 법몸 신)

(환화공신즉법신

환영 같은 허망한 육신이 그대로 법신이네.

無明무명이란 업식으로 인해 가리워지고 어두운 상태를 뜻한다

즉 마음 자리가 밝지 않는 상태’ 인 것이다

유교에서 대학의 첫 구절이 明明德(명명덕)이다

‘밝은 덕을 밝힌다’ 는 뜻으로 풀이한다유교의 도는 덕을 최고로 친다

德덕은 불교의 佛性불성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대학에서 덕을 본래 밝은 상태로 보고 있다하지만 증도가에서는 무명의 상태즉 어두운 상태 또한 우리의 본성이요부처의 성품이란 것이다.

밝은 성품만이 부처님 성품이 아니고 어둡다밝다 하는 분별 없이 마음 그대로가 부처의 성품이란 뜻이다.

또한 우리의 육체는 유한하다그래서 생노병사를 피할 수 없는 육체를 두고 허망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태어나면 늙고 병들어 죽는 이 육신 그대로가 바로 법신즉 부처의 몸이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바로 부처의 마음이고 우리의 몸이 곧 부처의 법신이라는 것이다따라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부처라는 뜻과 다름 없다.


일반적으로 불교를 공부하면 무아라는 개념을 접하게 된다.

무아는 말 그대로 내가 없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서 우리의 本性본성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참나真我진아의 개념이 있다.

이 무아의 개념과 참나의 개념은 불교를 教学교학으로 공부하다 보면 항상 상충하는 부분이 생긴다

내가 없는데 어찌 참나가 있냐’ 고 불교를 공부하면서 서로 모순 되는 도리에 도무지 납득이 안 가게 된다.

이는 나 역시 참구 중이며 얼핏 이해는 가지만 아직은 확연하지 않다.

다만 부처님 법은 고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진리임은 안다.

진리는 어느 한가지 고정된 법은 없다는 것이다

무아와 참나는 근기에 따라 고정되지 않는 진리의 한 모습이다.

그래서 불법은 팔만사천 법문이 천차만별 사람의 근기에 따라 방편으로 설해진다고 했다.


증도가에서는 이러한 참 진리의 오케스트라를 들려주고 있다

오직 깨달음의 눈으로 보여져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아직 들리지 않는다고 속상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선을 깊이 공부하신 선지식의 지도가 필요하다.

교학으로만 아는 것은 지혜가 아닌 지식이고 알음알이에 가깝다.. 

무아든 진아든 모두 단박에 깨고 들어가는 선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이 또한 분별 없는 마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다

심즉시불心即是佛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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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책하다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서평모음집 1
정화섭 외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1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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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을 책()하다

지은이:  정화섭 외

 : 리뷰와 서평의 차이.... ?



제목이 너무 좋았다.  <하다> ... 책을 꾸짖다니...

책하고 싸운다는 뜻인가?

이 책은 책에 대한 서평을 모아 만든 책이다.

리뷰와  서평은 다른 것인가?

내가 알라딘에 올리는 독후감은 리뷰글이라고 하는데 서평은 어떤 수준의 글일까 싶었다.

아마도 독후감보다는 차원이 높지 않을까?


讀後感독후감이 책을 읽고 난 후 감상 위주로 글을 남기는 것이라면 書評서평은 책에 대한 논평이 들어가야 되지 않을까 싶다.

책에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김훈 작가의 <현의 노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처럼 비교적 친숙한 작품들 부터 유발 하라리<사피엔스>, 홈스의 <리바이어던> 같은 사회 과학 서적까지 다양한 서평이 수록 되어있다.

모두 15명의 서평가의 글들이 수록 되어 있는데 특히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김훈 작가의 <현의 노래> 여러 서평가들이 서평을 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서평이 <현의 노래>인데. 서평가 신호철은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한 번 읽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너무나 솔직하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싶다.

보통 서평가라고 하면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두고 작품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가 싶었는데 너무 솔직히 말해서 놀랬다

서평가라고 해서 책에 대해 아는 척을 안하는 면이 신선했다.

신라에 멸망 당하면서 사라져 가는 가야의 소리를 지키려는 우륵에 대한 소설이라는데 나중에 꼭 읽어 봐야 겠다.


그런데 막상 리뷰와 서평의 차이점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 같은 아마츄어 글쓰기 보다는 수준이 높은 글쓰기. 그게 서평인가 싶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 보다는 지난주 읽었던 <나쁜 책>이 나한테는 더 맞는 서평 글인 것 같다.


<서평은

제 잘난 체 하거나

그 누굴 나무라기 위해서

또 무엇이 되어 사람을 치장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주인인 내 이름을

스스로 찾아 부르고

제 삶 속에 웅크리고 있는

행복을 끄집어내는 공부다.

책 읽어 생각을 얻고

평 쓰며 생각을 나누어

품위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공부다. > P. 192 마지막 페이지



책을 읽고 생각을 얻고 그 얻은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게 리뷰든 서평이든 다 같지 않을까 싶다.


완벽하지 않은 기억이라도 결코 아름답지 않은 기억이라도 그것이 추억이 된다면 향수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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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12-29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평 쓰는 방식을 알려주는 책을 쓴 저자들은 공통으로 서평을 이렇게 정의하더라고요. 책의 핵심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글이 서평이라면, 독후감은 글쓴이가 책을 보면서 느낀 감정들을 표현한 글이라고요. 그런데 저는 서평과 독후감을 명확히 구분하면서 쓰는 일이 어렵더라고요. 막 쓰다 보면 책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문장이 되면서 나오거든요. ^^;;

마힐 2024-12-30 11:5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감정이 문장이 된다는 cyrus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올해도 이제 내일이면 저물게 되네요.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내년에도 좋은 생각 공유해 주세요. 감사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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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41227

오늘의정진: 絶學無爲休道人(절학무위휴도인) 배움이 끊어지고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



u  100일 정진,  2일차


먼저 어제 언급했던 '보여지는' 약간의 수동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조금 깊이 보는 단계를 () 이라고 했다.

오늘 대해 깊이 보는 () 해보면 나타날 가깝다.

예를 들어보면 어두운 밤에 혼자 깜깜한 방에 들어가게 되면 눈으로 방안을 보면 어둡기 때문에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방문 전등 스위치를 켜는 순간 밝아지면서 앞에 방의 전체 모습이 전부 드러나게 된다. 이때 비로소야 드러난 방의 실체를 눈으로 똑똑히 전부를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고 깨달음이다.  

다시말해 견은 바로 나타나져() 보이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군불견, 그대 보이지 아니한가 뜻은 그대의 앞에 깨달음이 보이지 않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깨달음은 나타나져야 있는 것인데 '그대 이제는 보이는가' 로 영가(永嘉) 스님(674~713)은  구절을 시작했다.

오늘은 증도가(證道歌)의 두번째 구절이다.


絶學無爲休道人(끊길 절, 배울 학, 없을 무, 할 위, 쉴 휴, 길 도, 사람 인)

절학무위휴도인 (배움이 끊어지고 함이 없는 한가운 도인은)

不除妄想不求眞 (아닐 부, 제거할 제, 망령 망, 생각할 상, 아닐 불, 구할 구, 참 진)

불제망상불구진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고 참을 구하지도 않는다.)


증도가 전체를 들어 가장 많이 알려진 구절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이다.


이 구절은 승찬대사(僧璨510~606)신심명(心銘)의 첫 구절


<至道无难 지도무난 (이를 , , 없을 , 어려울 )

唯嫌拣择 유혐간택 (오직 , 꺼릴 , 가릴 , 가릴 )

도에 이르는것은 어렵지 않나니, 오직 가리고 택하는 마음만 꺼릴뿐이.>

더불어 선어록 중에 가장 유명하다.

어쩌면 증도가는 군불견 다음의 사실상 첫 구절인 '절학무위휴도인'과 신심명의 첫 구절 '지도무난' 은 의미로 볼 때 쌍둥이 처럼 서로 닮았다.


배움이 끊어지고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은 말 그대로 깨우친 사람을 말한다.

이것은 신심명의 도에 이르는 것 과 서로 상통한다.

그리고 그 경지는 어떻게 해야 도달하는가?

증도가에서는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고 참, 즉 진리를 따로 구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신심명은 오직 가르고 택하는 마음, 즉 분별심을 꺼린다고 했다.

결국 도에 이르고, 도인이 된 사람들은 망상을 제거하거나, 진리를 얻고자 애를 쓰는게 아니다. 분별하지  않는 사람을 바로 도인 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어서 원죄를 지은게 아니다.

선악과를 먹고서 분별을 했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다.

모든 죄의 근원은 분별심이다.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렸다

즉 옳다.그르다, 좋다, 싫다로 나누는 그 분별심 이야말로 업을 지는 것이다.

그래서 승찬대사와 영가스님은 분별하지 않는 것이 도라고 하셨다.


도인이 되고자 해서 도인이 되는게 아니다.

그러니 배움이 끊어진 絶學 절학의 경지는 배울게 더 이상 없거나 배울 필요가 없다는 뜻도 아니다.

배워야 한다는 마음 자체, 즉 분별이 끊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뭔가를 일부러 지어서 할려고 하는 마음을 有爲 유위 라고 한다.

無爲 무위는 함이 없는 것을 뜻한다. 저절로, 자연 스럽게. 그러한 경지.

이 역시 수동에 가깝다. 그런데 이 수동은 수동이 되고자 해서 되는 건 또 아니다.

저절로, 자연스럽게.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하게 되는 경지다.

분별이 사라지는 경지는 저절로 이루어 지는 경지다.

내가 분별을 하지 말아야지 해서 이루어지는 경지가 아닌 것이다.


노자(老子)의 사상을 접했다면 무위는 이해가 되는 단어다.

함이 없이 ,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닌 行행 하는 가운데 한다는 생각 없이. 그냥

쉽게 말하면 그냥이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 마르면 물 마시고, 배 아프면 화장실 가고, 졸리면 자는 행위가 바로 그냥 하는 무위이다.

그냥 하는 경지. 분별이 없는 경지 그게 바로 무위다.

신심명과 증도가는 도의 경지를 글의 맨 앞 구절에 확실히 선포를 해버렸다.

깨달음의 상태에서 바로 그대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마치 베토벤 운명 교향곡의 서곡과 같은 강한 충격과 인상을 마음 속에 새겨 놓는다.

증도가와 심신명의 첫, 두 구절뒤에 이어지는 구절들은 앞의 구절을 전부 변주하며 이어지는 것 과 같다.  깨달음의 오케스트라가 펼쳐지는 것이다.


絶學無爲休道人 절학무위휴도인 ( 배움이 끊어지고 함이 없는 한가운 도인은)

不除妄想不求眞 불제망상불구진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고 참을 구하지도 않는다.)

2000 1 7일은 내가 중국으로 처음 취업을 해서 오게 날이다.

지금이 2024 12 이니 벌써 25년이 지났다.

25년전 집을 떠날  나의 스승님께서 손수 그리시고 써주신 구절이 바로 증도가의 '絶學無爲休道人'  이였다.  

화선지에는 옛 사람이 크고 둥근 달 빛 아래 낚시대를 드려놓고 앉았고, 맞은편 멀리 초가집 한채가 옛 사람를 기다리고 있다.  

그림 아래 써 주셨던 '絶學無爲休道人'  구절은 지금도 내 마음 속에 간직되고 있다.

어쩌면 이번 100일 정진은 그 시절 , 그 마음 상태로 환본(還本)하는 정진이 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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