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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양장)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0년 1월
평점 :
‘질 자신이 없다’며 절대 자신감의 아우라를 보여줬던 이세돌 기사는 2016년 3월 12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국 끝에 겸손한 한마디를 역사에 남겼다.
“인간이 진게 아니라 이세돌이 진거다”
사실 그날 이후, 바둑은 더 이상 인간이 인공지능을 따라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바둑이란 게임의 규칙이 인공지능에게 더 최적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 속에서 이뤄지는 수싸움보다 더 빠른 패턴인식과 확률 계산을 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결국 인간의 직관은 AI의 빠른 패턴 인식과 정확한 계산을 영영 이길 수가 없게 된 것일까?
이제 더 이상 ‘AI 시대’라는 말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사회 곳곳에서 AI 적용이 안되는 곳이 없으며 AI 로 인해 인간은 곧 인공지능에 대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경각심마저 갖는 지경에 이르렀다.
때마침 많은 국내외 뇌과학자, 공학기술자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AI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KAIST 김대식 교수는 AI의 특이점을 말하며 10년 이후에 다가올 AGI나 SGI인공지능의 도래를 강조하며 인간이 대비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과연 인간은 AI의 잠재적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속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 에서 게리와 나 (루이즈 뱅크스)는 어느날 갑자기 지구에 등장한 외계인 헵타포드의 방문 목적을 알기 위해 그들과 언어로 소통을 시도한다.
쉽지 않은 소통이었지만 마침내 알아낸 그들의 언어구조는 아주 놀라왔다.
<햅타포드의 경우 모든 언어는 수행문이었다. 정보 전달을 위해 언어를 이용하는 대신, 그들은 현실화를 위해 언어를 이용했다. 그렇다. 어떤 대화가 됐든 햅타포드들은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대화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P.219
이러한 햅타포드의 언어구조는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페르마의 원리가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페르마의 원리란 빛은 두 점사이를 이동할 때 모든 가능한 경로중 가장 시간이 적게드는 경로를 택하는 최단시간의 원리를 말한다.
즉 빛은 최단 거리를 가는게 아니라 최단 시간을 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빛을 물 속에 투과시키면 굴절 현상이 보인다.
굴절현상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빛이 방향을 바꾼 것 처럼 보인다.
사실 이것은 뉴턴과 라이프니츠가가 밝혀낸 미적분 중 변분법을 설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결국 빛 뿐만아니라 물리적 자연에서는 항상 미분 가능한 경로 중 “최소 값 혹은 극 값’을 선택한다는 원리인 것이다. 마치 자연은 의식이 있는 양 거리가 아닌 최단 시간이 가장 효율이 좋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햅타포드에게 언어는 현실화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시간’ 이다.
외계인이 인식하는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직선 구조가 아니다.
인간처럼 시간을 전체로 보지 않는다면 목적, 의미, 원인이라는 인간적 개념이 불필요해진다. 이 부분에서 나는 AI시대의 두려움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이 두려움의 본질이 기술에 대한 문제라기 보단 자기 실존의 빈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따라 잡을 수 없을 만큼 발전하는 기술과 부족해지는 자본 그리고 낮아질지 모른다는 계층 이동에 대한 두려움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질문과 연결된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버리고 외부적 현상으로만 본다면 AI는 빛에 투영된 그림자처럼 본체를 압도하는 크기로 내 앞에 서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공간은 물리적인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페르마의 원리가 빛에서 출발했지만 현대 물리학은 이를 모든 영역으로 확장을 시켰다.
우주의 모든 작용은 최소작용이라는 시간기반의 에너지 양을 최소한다는 해밀턴 법칙, 시공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속도라고 밝힌 상대성 원리, 입자의 이동 경로는 시간 위상이 최소시간이 되는 경로만 이동한다는 양자역학까지 현재 밝혀낸 모든 물리법칙은 공간이 아닌 시간 중심 구조속에 있다.
결국 시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질서를 만들었다. 심지어 인과를 비롯한 진화, 기억과 정체성 같은 우리의 삶과 죽음 또한 시간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
시간은 생명이자 우리의 본질이며며 근원적인 실재와도 같은 셈이다.
그런데 지구와 온 우주를 통털어 시간의 지배를 벗어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시공간 구조는 물질이 존재할 때만 성립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물질이 아니다. 따라서 마음 속에서는 위치, 거리, 속도, 질량, 에너지 보존, 상대적 제약 같은 물리 법칙이 적용될 수가 없다.
마음은 물질이 아닌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시공간을 초월한 경험의 흐름을 가질 뿐이다. 이는 신경과학자들이 말하는 뇌의 작용과 비슷하다.
뇌는 시간을 실제로 느끼지 않고 단지 사건의 변화 패턴을 해석할 뿐이다. 즉 마음과 뇌에게는 물리적 시간이 없다.
마음은 뇌의 물리적 작용에서 발생하지만, 마음이 경험하는 의식적 현상 자체는 물리적 시공간 좌표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육체는 물질이므로 시공간의 법칙을 절대 벗어날 수가 없다.
즉 우리의 육체는 유한성의 틀 안에서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있을 때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우리의 마음은 물리 법칙이 아닌 실존 법칙에 따른다.
우리에게 실존은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하며 의도가 있고 자각을 하며 통찰을 할 수 있고 상징을 찾는다.
그래서 일찍이 불교의 선사들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말해 왔던 것이다.
일체유심조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현실의 의미는 마음이 만들어 낸다. 마음이 만들어 낸 의미가 현실을 규정한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계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의미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물질을 해석하는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바꿔져 버리기 때문이다.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마시고 난 다음날 일체유심조라고 말한 것이 성립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일체유심조는 단순한 종교적이며 불교만의 명제가 아닌 인간 실존 구조에 대한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선언이다.
그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 색(물질)과 공(마음)은 둘이 아닌 것이 된다.
마음은 색을 벗어나지만 색을 떠나질 않는다.
인공지능은 마음이 없다.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고, 바둑을 이길 수 있고, 최적화된 생산성과 효율성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겠으나 결국 그건 마음 처럼 보이는 기능일 뿐이다. 그 기능들은 모두 패턴을 생성하고 백터를 연산하며 그 결과치를 예상하고 유사도 계산과 확률적 결과 값을 도출함을 벗어나질 못한다.
인간의 직관을 넘어선 것 처럼 보이는 결과물로 보이지만 사실 그 의미를 생성하질 못한다. 결국 의미 없는 결과란 말이다. 이것이 인간과 인공지능의 본질적인 차이다.
AI는 왜? 를 물을 수 없다.
인간만이 의미를 만든다. 인간의 실존은 바로 마음이자 세계의 근원이다.
본래 인간은 모순 투성이다. 생존을 위해 단순하고 비논리적이고 욕망에 흔들리고 공포에 도망가고 허영에 빠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을 상상하고 우주를 관찰하며 무한을 사유한다.
반면에 AI 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고, 고통도 욕망도 죽음도 감정도 없는 완벽한 모순이 없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하지만 인간의 모순된 양면성이 인간이 인간이게끔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어쩌면 모순은 생명의 기본 구조가 아닐까?
돌연변이는 진화의 원천이며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위대함과 고통이라는 모순은 본래 생명의 원천이란 것이다.
번뇌즉보리, 번뇌가 있기 때문에 깨달음이 있다는 유마경의 구절이 바로 납득이 된다.
마음이 우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체유심조는 관찰이 우주를 결정하며, 의미가 세계를 구상하고, 인식이 세계를 창조한다는 현대의 과학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메타인류 과학의 성과에 위협을 느낄 필요가 없다.메타인류의 존재를 가능케 한 과학기술은 본래 인류에 의해 발명된 것이며, 그들이 우리보다 똑똑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P.316 (인류 과학의 진화) 중에서
결국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인공지능의 발달이 아니라 인간 실존에 대한 결핍이 문제가 아닐까?
스스로가 자신이 누군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분신과 그림자에 겁을 먹는 것이 아니였을까?
AI는 기능의 완성체이지만, 우리는 의미의 창조자이다.
우리는 우리가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일체유심조를 먼저 회복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존재의 질문을 잊는 순간, 우리의 미래와 가능성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By Dharma & Maheal
언제나 처럼, 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은 그 보다 훨씬 더 성숙한 인간에 의해서만 인식된다. - P81
무엇을 관찰해도 나는 패턴을 본다.수학, 과학, 예술과 음악, 심리학과 사회학을 망라하는 모든 학문에서 게슈탈트를, 음표들 속에 존재하는 멜로디를 보는 것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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