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는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대표작이다. 이 책에 레비나스 철학의 코어(Core, 핵심)’가 들어 있다그래서 레비나스 철학을 공부하려면 반드시 전체성과 무한를 만나야 한다문제는 철학이 단순한 코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레비나스 철학은 하드코어(hardcore)’. 책을 펼치자마자 이해하기 어려운(hard) 문장들이 튀어나온다.  눈빛은 당혹스러워서 굳어진다(hard). 문장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페이지를 좀처럼 넘기지 못한다. 책을 잠깐 덮고 나는 자책한다. 내 머리는 철학과 친하게 지낼 수 없는 딱딱한(hard) 돌머리인가 봐.’









 








[레비나스 철학 읽기 모임]

* 에마뉘엘 레비나스, 김도형 · 문성원 · 손영창 함께 옮김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그린비, 2018)





전체성과 무한은 난해한 책이다. 하지만 이런 책을 못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무지함을 꾸짖지 말자. 전체성과 무한독자에게 불친절한 책이다. 전체성과 무한을 우리말로 번역한 역자는 세 명이다. 그들은 전체성과 무한철학 전공자도 힘겹게 읽는 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그러므로 번역자는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좀 더 친절하게 글을 써야 한다. 레비나스 철학과 관련된 용어가 어떤 뜻인지 알려줘야 한다. 레비나스가 왜 이런 문장을 썼는지도 주석을 통해 설명해야 한다.








지금까지 전체성과 무한1(‘동일자와 타자’, ~149)를 읽었는데, 주석이 있어야 할 단어와 인명이 있다서문에 레비나스는 프란츠 로렌츠바이크(Franz Rosenzweig)라는 학자가 쓴 책을 자주 참고하면서 전체성과 무한》을 썼다고 언급한다. 어떻게 보면 프란츠 로렌츠바이크는 이 책을 태어나도록 도움을 준 철학의 산파이며 레비나스는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프란츠 로젠츠바이크가 구원의 별에서 전체성 관념에 반대하는 데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 저작은 이 책에 자주 인용되어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빌린 발상들을 제시하고 발전시키는 데는 모두 현상학적 방법이 사용되었다. 지향적 분석은 구체적인 것에 대한 탐색이다. 자신을 정의하는 사유의 직접적 시선에 포획된 개념은, 그 순진한 사유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사유가 생각지도 못했던 지평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임이 드러난다. 이 지평들이 그 개념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 바로 후설(Edmund Husserl)의 본질적인 가르침이다.

 

(서문, 18)



독자는 로렌츠바이크가 누군지 모른다. 나도 모른다. 우리는 책을 읽다가 낯선 용어나 사람 이름이 만나면 스치듯이 보면서 지나간다. 그래도 된다. 하지만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을 눈앞에 보고도 놓칠 수 있다.















* [절판] 마리 안느 레스쿠레, 변광배 · 김모세 함께 옮김 레비나스 평전(살림, 2006)




로렌츠바이크는 독일의 유대인 철학자다. 그는 헤겔(Hegel)을 전공했으며 첫 번째로 쓴 책이 <헤겔과 국가>. 로렌츠바이크는 1916년부터 <구원의 별>을 쓰기 시작한다. ‘구원의 별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을 뜻한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 , 세계의 관계성을 다윗의 별기호를 가지고 설명한다. 레비나스는 로렌츠바이크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썼다. 로렌츠바이크는 레비나스가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철학자다. 레비나스는 <구원의 별>이 헤겔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서 반전체주의를 주장한 책으로 평가한다레비나스 철학은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한다. 따라서 레비나스 철학과 로렌츠바이크의 연관성을 아무런 설명 없이 지나간다는 것은 레비나스와 블랑쇼의 철학적 교감을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관점과 같다.


레비나스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헤겔 철학(존재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래서 전체성과 무한에 헤겔이 심심찮게 언급된다.



 결국 행복과 욕망을 분리하는 거리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 정치는 상호 인정을, 즉 동등성을 향한다. 정치는 행복을 약속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법은 인정 투쟁을 완성하고 신성화한다. 종교는 욕망이지 결코 인정 투쟁이 아니다. 종교는 동등한 자들이 이루는 사회에서의 가능한 잉여다. 즉 영광스러운 비참함의, 책임의, 희생의 잉여다. 이것은 동등성 자체의 조건이다.

 

(79~80)

 


인정 투쟁(Anerkennungskampf)은 헤겔 철학의 핵심 용어다헤겔은 인간이 서로 사랑하면서 인정하는 행동을 철학적으로 접근했다. 헤겔이 바라보는 자아는 그 타자가 자기 자신을 자립적인 가치로 인정해 주길 원한다. 그것은 인정에 대한 욕구. 헤겔은 상호 인정 행위를 정신현상학에서 주인과 노예로 비유하면서 설명한다
















* 헤겔, 임석진 옮김 정신현상학(한길사, 2005)


* 스티븐 홀게이트, 이종철 옮김 헤겔의 정신현상학입문(서광사, 2019)




주인은 노예에게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주인은 불안하다. 노예가 나를 제대로 주인으로 대접해 주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복종하는 노예의 태도는 과연 진심일까. 그래서 주인은 노예를 따뜻하게 대하면서 그에게 자유로운 생활을 하도록 허용해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주인은 또 불안감을 느낀다. 자유민이나 다름없는 생활에 익숙한 노예가 나를 섬기지 않으면 어쩌지? 자유민이 된 노예는 주인으로부터 해방되는 동시에 자립적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자기의식을 발견한다. 노예는 예전처럼 주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노예가 아닌 내가 주인인나답게 살려고 한다. 그런데 과거에 노예로 살았던 그가 막상 주인이 돼서 살아보니, 자신을 인정해 주는 노예, 즉 타자가 없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결국 모든 사람은 타자를 만나면 내가 주인이요!’라고 외치면서 생사를 건 투쟁(Kampf auf Leben und Tod)’을 벌인다.

















* 악셀 호네트, 이현재 · 문성훈 옮김 인정 투쟁: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사월의책, 2011)

 

* 악셀 호네트, 강병호 옮김 인정: 하나의 유럽 사상사(나남출판, 2021)

 

* 이현재 악셀 호네트(커뮤니케이션북스, 2019)





레비나스가 언급한 인정 투쟁은 헤겔 철학 용어다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헤겔의 용어를 좀 더 확장해서 논의한다.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면 생사를 건 인정 투쟁을 한다. 그들의 인정 투쟁은 자기 존엄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주목하게 만든다. 기득권층과 사회적 약자 간의 갈등 관계를 단순히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것은 사회적인 약자가 해야만 하는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한 저항이며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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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08-22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비나스를 공공정책 개발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것이 제 주요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책만 들입다 읽는다고 세상이 나아지진 않으니까요. 오히려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지요.

cyrus 2024-08-26 06:48   좋아요 1 | URL
오장원님이 레비나스 독서 모임에 오시면 좋겠어요. 오장원님의 견해가 궁금해요. ^^

yamoo 2024-08-21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레비나스 책은 정신현상학보다 10배는 쉬워요~~ㅎㅎ 지젝 보다 훨씬 읽기 수월합니다. 읽어서 이해가 안되는 건 역자들이 깜양이 안되어도 마구 번역하여 한국어 문법규정을 초월한 문장을 사용해서 그래요. 전혀 자책할 필요가 없어요~~ 현상학을 이해하고 보면 좀더 수월합니다..

cyrus 2024-08-26 06:49   좋아요 0 | URL
시간이 지나니까 적응됐어요.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헤겔의 <정신현상학> 읽는 것보다 낫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