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휴는 철학 책에 달라붙어 읽으면서 지내고 있다지난달부터 철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달과 그다음 달에 철학 책을 읽는 모임 일정이 잡혔다철학 책 모임 전부 주말에 진행된다이미 지난주 토요일에 철학 책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이번 주 일요일 오후에 철학 책 독서 모임이 있다.












[카페 스몰토크 철학 공부 모임 <니체와 레비나스> 지정 도서]

* Bettina Bergo · Jill Stauffer 엮음, <Nietzsche and Levinas: “After the Death of a Certain God”> (Columbia Univ Pr, 2008)





지난주 토요일에 시작된 철학 책 독서 모임 이름은 니체와 레비나스(Nietzsche and Levinas)’. 모임 이름은 지정 도서 제목이기도 하다. <니체와 레비나스>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책이다영문으로 된 원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읽는다. AI 번역기로 한 것이라서 어색한 문장이 있지만, 그래도 읽을 만하다.





























* [품절] 프리드리히 니체, 안성찬 · 홍사현 함께 옮김, 즐거운 학문. 메시나에서의 전원시. 유고(1881년 봄-1882년 여름(책세상, 2005)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아카넷, 2025)

 

[카페 스몰토크 <니체 읽기> 모임 지정 도서 (2022)]

* 프리드리히 니체, 김인순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열린책들, 2015)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안티크리스트(아카넷, 2013)

 

* [품절] 프리드리히 니체, 백승영 옮김,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책세상, 2005)




책의 부제는 어떤 신의 죽음 이후(After the Death of a Certain God)’신의 죽음은 니체 철학의 핵심 용어다. 오랫동안 서양을 지탱해 온 철학의 두 기둥을 무너뜨리는 선언이다. 철학의 두 기둥은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시작된 형이상학적 이상주의와 그리스도교의 초월적인 신을 뜻한다. 철학의 두 기둥을 부여잡은 인간은 관념론을 쫓아다녔고, 자유와 욕망을 부정했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타락한 죄인이 되고 싶지 않다. 철학의 두 기둥 앞에 서서 자신들이 지켜야 할 도덕과 기독교 교리를 반복적으로 새겼다니체는 을 죽이려고 철학의 두 기둥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철학의 두 기둥에 해방된 인간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 줄 안다.









<니체와 레비나스> 첫 번째 시간은 레비나스 철학이 등장하기 전의 철학사를 되돌아보는 강연으로 시작했다. 강연자는 과거에 니체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철학 독서 모임을 진행했던 카페 스몰토크의 주인장 김 사장이다.

















* 플라톤, 강철웅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명(아카넷, 2020)

 

* 플라톤, 이기백 옮김, 크리톤(아카넷, 2020)





니체가 등장하기 전에 활동한 철학자들은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소크라테스(Socrates)덕에 관하여 논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훌륭한 일이라고 했다(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38a). 플라톤(Plato)의 대화편 크리톤에 묘사된 소크라테스는 사형 판결을 받은 이후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린다. 대화 상대자 크리톤(Crito)은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유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피하려고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logos)’을 내다 버릴 수 없다면서 거부한다(플라톤, 크리톤46b). 원칙을 존중하고,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일은 윤리적인 삶이다.


















*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윤리형이상학 정초(아카넷, 2018, 개정 2)

 

* 임마누엘 칸트, 김석수 · 김종국 옮김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한길사, 2019)

 

*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실천이성비판(아카넷, 2019, 개정 2)



그리스도교와 중세 기독교 철학은 금욕적인 윤리를 강조했다. 칸트(Immanuel Kant)가 지향하는 이성적인 인간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도덕 법칙을 지키면서 자율적으로 살아간다. 그 도덕 법칙은 행위의 결과와 목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실행해야 하는 정언 명령이다.



















* 에마누엘 레비나스, 강영안 · 강지하 함께 옮김, 《시간과 타자》 (문예출판사, 2024년)


* 에마누엘 레비나스, 김도형 · 문성원 · 손영창 함께 옮김,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 (그린비, 2018년)


* 에마누엘 레비나스, 서동욱 옮김, 《존재에서 존재자로》 (민음사, 2003년)




지금까지 언급된 철학자들(그리고 강연에 언급되었으나 이 글에서 언급되지 않은 철학자들)윤리적 삶을 살아가는 주체(개인)를 이타적 존재로 상정했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이들과 다르게 타자를 위해 살아가는 이타적 존재가 되자고 제안한다왜냐하면 윤리적 주체는 타자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자신의 시선과 관점으로 타인을 바라보기 때문에 주체와 타자는 동일한 존재가 된다. 아무리 개인이 이타적이라고 해도 타자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다.


















[카페 스몰토크 <에마뉘엘 레비나스 × 주디스 버틀러 읽기세 번째 지정 도서]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 16번째 도서 (2019)]

주디스 버틀러윤조원 옮김 위태로운 삶애도의 힘과 폭력》 (필로소픽, 2018)




일요일에 있는 철학 모임도 정확히 일 년 전 카페 스몰토크에서 했던 <레비나스 읽기> 모임의 연장선이다. 그리고 레비나스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를 겹쳐 읽는 모임이기도 하다. 일요일 모임은 총 5회로 구성되어 있다모임 진행자는 작년 여름에 <레비나스 읽기> 모임을 만든 창현 씨창현 씨는 헤겔(Hegel), 칸트,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라캉(Jacques Lacan) 등의 철학자들을 독학으로 공부했고, 학식이 깊은 분이다모임 참석자 중에 철학을 처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분들이 있다. 창현 씨는 이분들을 위해 지정 도서의 핵심 내용을 글로 요약해서 정리한다.


곧 다가오는 첫 번째 모임의 지정 도서는 작년에 완독한 시간과 타자. 두 번째 지정 도서는 존재에서 존재자로, 마지막으로 11월과 12월에 진행될 예정인 모임 지정 도서는 주디스 버틀러의 위태로운 삶이다. 이 책은 예전에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 지정 도서로 만나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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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10-09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니체 철학에서 ‘신은 죽었다‘ 는 명제가 가장 대중적이며 유명하죠. 사람들은 니체하면 니체의 그 말만 회자 시키는데 신의 죽음. 그럼 신은 왜 죽은 것일까? 무엇 때문에 죽었는 가로 바로 이어지지 못 하는 것 같아 보여요. 그저 기독교 적인 사고에서 벗어났다 라는 의미로만 보는 것 같더라구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보면 신이 죽었다는 명제 뒤에 나중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왔어요. ˝신이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 때문에 죽었다˝ 고 밝혀요. ˝신에게도 지옥이 있는데 인간에 대한 사랑이 신에게는 지옥이란 거지요. 즉 신의 죽음은 결국 인간 때문이란 것이지요. 기독교의 폐단을 말 하기 보단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신은 죽고 인간은 위버맨쉬 즉 초인으로 변해야 된다고 역설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낙타에서 사자의 변신 끝에 어린아이가 되는 것 그것은 동심이며 그 동심이 바로 신임을 밝히는 거지요. 즉 신은 죽되 죽지 않고 변화 한 것이 아닐까요?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신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그 죽음이 바로 초인을 탄생 한 게 아닐까요? cyrus님의 신은 죽었다라는 해석이 궁금해 지네요. ㅎㅎ

cyrus 2025-10-09 16:07   좋아요 1 | URL
니체가 ‘신의 죽음’ 선언 이전에 기독교 교부 철학자와 종교인들은 성경 속 교리를 철저히 지키면서 살아가라고 강조했어요. 원죄론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죄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목사들은 신도들에게 천국에 가려면 매일 기도하고, 성경 교리를 지키고, 도덕을 지키면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니체가 보기에는 기독교에 강조하는 도덕이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고 비판해요. 니체가 죽었다고 말한 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경을 자의대로 읽고 해석하면서 신의 대리인으로 행동하는 기독교 성직자들을 가리킨다고 생각해요. 성직자들은 매일 사랑을 언급하고 강조하는데, 신도들은 그들의 가르침은 맹목적으로 따릅니다. 신도들은 성경과 믿고 따르는 성직자들의 말속에 갇혀서 살아가요. 이것이 니체가 비유하는 ‘노예’이자 기독교 교리는 ‘노예도덕’이에요.

낙타, 사자, 어린아이 비유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정답은 없어요. 저도 어린아이가 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니체는 자신을 디오니소스의 제자라고 표현한 글을 썼는데, 어린아이는 디오니소스와 닮은 신으로 해석하고 싶어요. 지금 이번에 나온 <차라투스트라>를 읽는 중인데, 마힐 님이 언급한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야겠어요. 생각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은빛 2025-10-10 0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는 저도 철학을 공부해보고 싶어서 철학책들을 사곤 했었죠. 대학시절 교양 수업도 몇 차례 들었었고. 깊게 공부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도중에 길을 잃기 참 좋은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면에 제가 공부했던 사회학은 상대적으로 길을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학문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길이 과연 내가 가야할 곳으로 잘 데려다주는 길이었느냐가 문제겠지만요. 아, 그건 철학도 마찬가지겠네요. 역시 학부 전공만 했기 때문에 깊게 공부하지 않았지만, 사회학은 사회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라 살아가면서 겪는 현상들을 지켜보고, 기록해두고, 정리하는 일도 학문을 이어가는 일이라 여겨요. 저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제 평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있으니, 여전히 제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럼 철학은 살아가는 일에 대한 학문이니,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나름의 방식으로 철학을 하는 것이 되는 걸까요? ㅎㅎㅎㅎ

철학책 읽기 모임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시간과 공간이 허락한다면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늘 시루스님 글을 읽으면 질투심이 드는데, 오늘 유독 더 그렇네요. ㅎㅎㅎㅎ

cyrus 2025-10-10 06:48   좋아요 0 | URL
저보다 철학 책을 즐겨 읽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공부하는 분들을 알게 돼서 이제야 철학의 맛을 알게 되었어요. 여러 철학자의 사상을 만나서 앞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설정해 보고, 지나간 삶의 흔적들을 되짚어보면서 반성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