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손 - 살아있지만 인격의 일부라고 말할 수 없는 인간적인 어떤 것에 대한 법적 탐구
장 피에르 보 지음, 김현경 옮김 / 이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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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개그콘서트에 방영되었던 같기도()라는 코너를 기억하시는가. ‘같기도는 무술도 아니고, 춤도 아닌 뭐라고 부르기 애매모호한 퍼포먼스다. 이 코너에 김준호가 같기도를 연마한 사부로 출연했다. 김준호가 분한 캐릭터는 이건 A도 아니고, B도 아니여라는 말을 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선보인다.

 

 

이건 내 몸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여.”

 

 

분명히 내 몸의 일부인데, 그게 물건으로 볼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말이 안 되지만, 우리는 이런 애매모호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내 몸이 물건이라는 주장 자체에 불쾌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건으로 분류되는 인간의 몸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인간의 몸은 물건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종 이식이다. 질병이나 사고로 훼손된 장기를 타인에게서 받은 장기로 대체하는 시술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를 기증받아서 이식하는 것은 생체 이식이라고 한다. 살아 있든 죽어 있든 상관없이 기증자의 장기가 수혜자(장기 이식을 받는 사람)에게 기증되면 기증자는 장기의 소유권이 사라진다. 기증자의 몸 밖으로 나온 장기는 물건이 되고, 이식 수술이 성공하면 장기의 소유권은 기증자에서 수혜자로 넘어간다.

 

1992년 프랑스에서 몸의 소유권에 대한 상식을 뒤흔드는 판결이 나왔다. A는 실수로 한쪽 손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는다. 충격을 받은 A는 기절하고, 그 사이에 A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B가 절단된 손을 가져간다. B는 절단된 손을 소각장에 버린다. 그렇다면 B는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프랑스 법에 따르면 B무죄. 그 당시 프랑스 법은 몸을 인격(사람: person)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했다. 온전한 몸은 살아있는 인간이다. 물건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잘려 나간 몸의 일부는 인격과 동일시한 몸이 아니므로 주인 없는 물건(무주물)이 된다. A는 잘려 나간 손을 소유할 권리가 없으며 B가 잘려 나간 손의 주인이 된다. 따라서 B는 절도죄도, 중상해죄도 아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도둑맞은 손인간(인격)을 동일시하게 생각하는 통념의 한계를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이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이고 궁극적 가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그 존재 가치가 있으며 그 인격을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몸은 물건으로서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앞서 언급한 동종 이식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려면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는 물건으로서의 몸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은 인간의 몸을 물건으로 간주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불편하게 생각한다.

 

저자는 몸과 인격을 동일시하는 입장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을 찾는다.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고대 로마법은 주체와 인격을 동일시했다. 그러나 노예제는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 인간의 몸을 물건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법적 효력을 발휘했다. 기독교가 막강한 권위를 떨치고 있던 시대에 죽은 성인(聖人)의 시신은 성물(聖物)이 되었다. 죽은 성인은 인격이 사라졌어도 성스러움은 여전히 유지된다. 왜냐하면 죽은 성인의 시신은 말 그대로 성물, 성스러운 물건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사례는 몸을 사람으로부터 분리하여 물건의 범주 속에 넣으려는 시도이다.

 

 

 

 

 

이 책의 역자는 도둑맞은 손》을 기발하고 엉뚱하며 심오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내가 보기에 도둑맞은 손도발적인 책이다. 저자는 몸을 물건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물건으로 간주한 몸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보는 것을 경계한다. 각자에게 자신 신체를 소유하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몸을 함부로 사고팔 수 없다. 따라서 저자가 생각하는 몸은 인격 개념과 물건의 속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물건으로 보는 몸의 법적 지위에 더 관심이 많다. 도둑맞은 손을 읽고 나면 생각할 것이 많아져서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나는 온전한 몸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까 왜 이게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 , 혼란하다, 혼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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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0-01 17:30   좋아요 0 | URL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몸을 해부하는 장면이 생각나네요. 극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설정이지만요. ^^;;

2019-09-30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0-01 17:32   좋아요 0 | URL
서양 법률과 관련된 내용이 나와서 사실 저는 조금 지루했어요. 역자 서문만 읽어도 책 내용의 80%를 이해할 수 있어요. ^^
 
보통이 아닌 몸 - 미국 문화에서 장애는 어떻게 재현되었는가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4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 지음, 손홍일 옮김 / 그린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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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기형(畸形)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에서 나는 기이한 몸을 떠올리는 기형대신 이형(異形)이라는 단어를 쓸려고 했다. 이형은 완전한 몸’, ‘건강한 몸’, ‘정상적인 몸을 뜻하는 전형(全形)의 반대말이다. 이형은 말 그대로 (전형과) 다른 몸이다. 그러나 이 단어도 만족스럽지 않다. 차이(다름)다양성이 아닌 차별과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면 이형도 비정상적인 몸을 떠올리게 하는 기형의 의미로 수렴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형을 대체할만한 단어는 과연 있을까? 새로운 대안 언어에 한계가 있더라도 그 단어를 찾아내거나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 기형이형을 대신할 만한 단어를 발견했다. 장애학 이론으로 미국 문학을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한 영문학과 교수 로즈마리 갈런드 톰슨(Rosemarie Garland Thomson)보통이 아닌 몸(extraordinary bodies)이다. 그녀가 쓴 보통이 아닌 몸장애학에 여성주의 이론을 접목한 책이다.

 

extraordinary’기이한’, ‘놀라운’, ‘보기 드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extra’‘ordinary’의 합성어인데 ‘ordinary’보통’, ‘평범한을 뜻한다. ‘ordinary’평범하고 건강한 몸을 가진 비장애인을 지칭하는 개념이라면, extraordinary’는 기이한 몸을 가진 장애인을 지칭하는 개념이 된다. 그런데 ‘ordinary’의 반대말은 ‘unordinary’. 톰슨은 왜 ‘unordinary’ 대신에 ‘extraordinary’에 썼을까. 보통이 아닌 몸의 역자는 톰슨이 평범하지 않은(unordinary) 장애인의 몸에 함축된 부정적 의미를 극복하고, 장애인의 몸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단어‘extraordinary’을 선택했다고 추측한다. 그래서 역자는 저자의 의도가 독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extraordinary’보통이 아닌 몸으로 의역했다. 보통이 아닌 몸기형의 몸’, ‘불구’, ‘결핍된 몸으로 보이고 설명되는 타자화된 몸이 아니다.

 

보통이 아닌 몸은 비장애인의 몸과 비교당하는 장애인의 몸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책이다. 프릭 쇼(freak show)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기형 인간 쇼는 1800년대부터 시작해서 20세기까지 이어져 왔다. 저자는 프릭 쇼를 장애인의 몸을 구경거리로 만든 문화 사업이라고 지적한다. 프릭 쇼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몸을 열등한 상태 그리고 개인적인 불행으로 간주하면서도 그것을 신기한 몸으로 의식한다.

 

저자는 미국 문학작품 텍스트 속에 장애인의 몸과 삶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분석한다. 그녀가 언급한 미국 문학작품에서 장애인은 주로 주변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이 역할 안에서 기이하면서도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타자로 그려졌다. 장애인을 문화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내러티브(narrative)는 그들을 있지만 없는 존재로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인식을 생산한다. 노예제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의 대표작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의 비장애인 여성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주체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만, 장애 여성은 무력하고 절망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특정한 정체성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형적인 그림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합리적이지 못한 인간은 그 정체성에 대한 매우 제한된 정보만으로 그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이 편견으로 굳어져 버리면 차별과 배제를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장애인은 건강하지 못해서 불행하다라든가 장애인은 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장애인의 삶을 축소하게 만드는 오래된 고정관념이다. 보통이 아닌 몸은 장애인의 몸과 삶에 투과되는 여러 가지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작업을 시도하면서 다양한 장애인들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긍정적인 장애 정체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장애를 재현하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의 시선, 그리고 장애를 간과해온 비장애인 중심의 여성주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Trivia

 

수용의 논리는 장애란 그저 사람들 사이의 많은 다름 중의 하나일 뿐라고, 사회는 이 점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환경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89)

 

뿐이라고의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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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9-09-2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코가 말했듯 모든 것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 잘못된 에피스테메를 다시 심도있게 포스팅 해주셔서 배우고 갑니다^^

cyrus 2019-09-22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통이 아닌 몸」에 푸코의 이론이 나와요. 제가 리뷰에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쿠키님이 잘 파악하셨어요. 엄지 척 👍입니다! ^^
 
낙인찍힌 몸 -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염운옥 지음 / 돌베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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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를 차별하는 것을 인종주의라고 한다면, 문화 · 종교 등을 이유로 삼아 타자를 차별하는 것은 변형된 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역사적 뿌리가 깊은 현안이다. 낙인찍힌 몸인간의 몸에 대한 위계적인 해석에서 시작된 인종주의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우생학 운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우생학은 열등한 인종의 몸을 분리해내고 낙인찍는 학문이다. 우생학 열풍은 영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우생학은 제국주의 바람을 타고 미국으로 전파되었고, 흑인을 배제하는 인종주의는 지금도 백인들의 의식에 잠재되어 있다. 히틀러(Hitler)와 나치 독일(Nazi-Deutschland)이 자행한 유대인 학살은 난데없이 툭 튀어나온 사건이 아니다. 유대인 학살은 유럽의 오랜 반유대주의 전통에 기반을 둔 우생학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다. 뾰족한 코를 가진 유대인은 열등 인종의 전형으로 정의되었고, 아리안인(Aryan)의 뛰어난 내적 자질은 출중한 외모를 통해 증명된다는 학설이 전파됐다.

 

과학적인 이론으로 뭉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생학은 타자의 몸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 인종 차별과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 및 지배를 정당화해왔다. 인종주의는 외모, 피부색, 골격 등의 생물학적 속성을 기준으로 타자에게 우열을 매긴다. 저자는 인종주의를 인종적 타자의 몸을 먹고 자란 히드라(Hydra)로 비유한다. 히드라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물뱀이다. 히드라는 아홉 개의 머리를 가졌는데, 이 목을 잘라내면 베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목이 생긴다. 히드라 같은 인종주의는 여전히 강력하다.

 

인종(raza)이라는 단어는 원래 동물의 품종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이 단어는 유럽으로 확산하면서 우리가 익숙한 인종(race)이 만들어졌다. 분류학이 발전하면서 동물의 품종을 의미하던 인종(raza)은 인간을 분류하는 개념(race)으로 자리 잡았다. 스위스의 박물학자 린네(Linne)는 동물과 식물의 범주를 나누고 속과 종을 분류하면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이명법을 도입했다. 그는 인류의 피부색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린네의 분류법에 따르면 유럽인은 백색, 아메리카인은 홍색, 아시아인은 갈색, 아프리카인은 흑색이다. 린네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종을 공식적으로 정의한 학자이다. 고대 그리스 문화를 떠받들던 독일의 미술사학자 빙켈만(Winckelmann)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을 아름다움의 척도로 삼았다. 저자는 린네의 분류학과 빙켈만의 미학을 인종주의 발전의 시작점으로 본다.

 

낙인찍힌 몸은 인종주의의 역사는 서양에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흑인과 유대인, 무슬림 차별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서양의 인종주의 문제만을 분석하지 않는다. 저자는 히드라 같은 인종주의가 신인종주의(new racism)또는 문화적 인종주의(cultural racism)라는 이름으로 계속 자라고 있다고 말한다. 백인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가 생물학적 인종주의라면, 오늘날의 인종주의는 신인종주의다. 신인종주의는 타자의 정치적 성향, 종교, 문화에 우열을 매길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편견을 부여한다. 새로운 히드라의 머리는 다문화를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 자라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인은 생물학적 인종주의가 주목하는 실험 대상이었다. 외국에 있는 한국인도 종종 인종 차별을 당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타자를 낙인찍고 배제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 외국인노동자, 난민, 무슬림들에 가해지는 인종 차별은 새롭게 자라나고 있는 히드라의 머리다. 이제는 문화적 지표가 인종주의의 표적이 되고 있다. 생물학적 인종주의라는 이름이 붙여진 히드라의 머리를 자르면 그 자리에 신인종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머리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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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0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21 11:29   좋아요 0 | URL
저랑 같은 책을 읽는 분을 만나니 정말 반갑네요. 책에 제가 몰랐던 내용과 사례들이 많이 있어요. 책을 읽으면 생각거리가 많아질 거예요. ^^
 

 

 

산부인과 분만실에 곧 출산을 앞둔 산모가 있는데 전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서 들락날락한다면 이게 과연 병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식적인 일일까? 작년에 예비 산모들을 위한 ‘분만실 투어’를 실시한 산부인과가 있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주1] 이 문제의 산부인과는 외부 사람 출입이 제한된 수술실까지 공개했다고 한다. 분만실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의 손 소독을 포함한 위생 절차는 생략되었다. 해당 병원에 있는 산모와 그 가족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병원 측은 위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어제 복지부는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 안’을 입법 예고했다.[주2] 이 개정안에 따르면 수술실과 분만실에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는 동안 출입이 허용된 환자나 의료인, 간호조무사 등을 제외한 외부 사람은 출입할 수 없다. 만약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수술실과 분만실에 출입하려면 의료기관장의 승인과 위생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의료기관장은 외부인 제한 구역에 출입한 사람의 이름, 출입 목적, 승인 사항 등을 기록하고 일 년간 보관해야 한다.

 

 

 

 

 

 

 

 

 

 

 

 

 

 

 

 

 

 

 

* 리 골드먼 《진화의 배신》 (부키, 2019)

* 웬다 트레바탄 《여성의 진화》 (에이도스, 2019)

 

 

 

 

의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도 안다.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외부 사람이 수술실과 분만실 근처에 지나가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 일이다. 의학 기술과 의료 기관이 더 좋아지고 있는 지금도 소독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수술대 위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특히 산모는 각종 위험에 노출되기 쉬웠다. 출산 중에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은 산모가 많았다. 구석기 시대 여성들은 현대 여성들보다 아이를 더 많이 낳았다. 진화의학자들은 구석기 시대 여성들이 출산 중에 일어나는 과다 출혈로 인해 사망할 확률은 현대 여성보다 높았다고 주장한다(리 골드먼, 웬다 트레바탄).

 

전설에 따르면 고대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처음으로 제왕절개술로 태어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의학 수준을 미루어 짐작할 때 실제 제왕절개를 시행하였더라면 산모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느 정도 문명이 발달한 19세기 유럽에서도 출산 도중에 사망하는 유럽의 산모가 많았다. 산모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산욕열이었다. 산욕열은 분만하는 과정에 생긴 상처에 세균이 감염되어 고열이 일어나는 병이다. 사람들은 산욕열을 ‘하와(Hawwāh)의 저주’라고 불렀다. 산욕열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예방법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 사토 겐타로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사람과나무사이, 2018)

* 예병일 《의학사 노트》 (한울아카데미, 2017)

* [절판] 헨리 지거리스트 《위대한 의사들》 (현인, 2011)

 

 

 

 

의사들도 벌벌 떨게 한 ‘하와의 저주’를 끝낸 영웅은 헝가리 출신의 의사 이그나스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였다. 그는 메스에 손이 찔린 동료 의사가 산욕열과 같은 증세를 보이다가 사망한 것을 보고, ‘소독하지 않은 의료 기구와 의사들의 손’이 산욕열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멜바이스는 산모들의 검진과 수술을 하기 전에 표백제로 손을 씻었다. 그러자 산모의 산욕열 발병률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그는 산욕열의 원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알리기 위해 각종 학술지에 실릴 글을 썼고, 여러 저명한 의학자와 의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학계와 의료계는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제멜바이스가 감염의 원인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한 점도 문제였지만, 의사들은 환자들을 살린 자신들의 손이 세균에 노출된 불결한 부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제멜바이스의 주장은 의사들의 권위와 명예를 흔들리게 할 수 있는 도전이며 반항이었다. 제멜바이스는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고, 특히 자신을 비방하는 동료 의사들을 가리켜 ‘손을 씻지 않은 살인자’라고 부르면서 맞대응했다. 외로운 투쟁은 헝가리인 의사의 정신을 지치게 했다. 결국 제멜바이스는 의료계로부터 완전히 배척당한 의사가 되었고,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냈다. 의사에서 환자가 된 그는 정신병원 직원에게 맞아서 생긴 상처가 덧나는 바람에 세상을 떠났다. 서구 의료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소독법은 영국의 외과 의사 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의 살균법이다.

 

 

 

 

 

 

 

 

 

 

 

 

 

 

 

 

 

 

 

* 프랑스 카르프, 카트린 조르주와이오 《완경기, 그게 뭐가 어때서?》 (온, 2019)

 

 

 

 

분만실 투어는 산모의 감염 위험률을 높이는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는데, 출산을 앞둔 산모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출산 과정을 공개하는 것은 산모의 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다. 산모는 아이가 자궁 밖으로 나오는 상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통으로만 느껴야 한다. 그런데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진통을 견디면서 아이를 낳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고 상상해보라. 너무나도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상황이다. 예비 산모도 곧 경험하게 될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오히려 예비 산모에게 아이가 나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분만실 투어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예비 산모에게 출산의 고통을 일찍 알려주는 교육 방식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예비 엄마에게 자신의 몸과 생리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비 엄마가 겪는 모든 사소한 고통에 대한 호소에 응답해주고, 옆에서 도움을 주면서 자신감 있게 ‘출산 전의 몸’에 정착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저는 산모들에게 출산에 관한 방송을 보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출산을 링거 주사와 기계, 고통과 연결 지으면서 역설적이게도 산모들에게 자신의 몸과 감정에 귀 기울이라고 하는 그런 방송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산모들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기를 바라는 걸까요? 여성은 대체로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수 세기 동안 우리는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새 생명을 낳았으니까요. 이 행위는 우리가 따져보거나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저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3.5킬로그램 무게의 아기가 우리 몸을 통과해서 나간다는 엄청난 생각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지요.

 

 

(《완경기, 그게 뭐가 어때서?》 중에서, 89~90쪽, 밑줄은 글쓴이가 강조하기 위해 표시해둔 것임.)

 

 

 

대부분 사람은 산모들이 건강하게 아기를 낳으려면 출산 경험이 어떤지 간접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선행 학습을 해보라는 셈이다. 분만실 투어는 처음에 그러한 의도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예비 산모에게 출산의 고통을 미리 느껴보라고 권하는 것은 대단히 몰상식한 생각이다. 고통은 구경거리가 될 수 없다. 고통이 누군가에 의해 관찰당하고 감시당하는 것도 고통을 겪는 자의 정신을 짓밟는 폭력이다. 특히 아이를 낳을 일이 없는 남자, 특히 남성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실 투어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그들은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런 의사는 의료인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주1] <수술 중 제한구역 공개한 병원 “투어 중단” … 정부 규제 강화>, SBS, 2018년 5월 17일.

 

[주2] <비상식적 산부인과 투어 막는다 … 수술실 · 분만실 비 의료인 ‘출입 금지’>, 중앙일보, 2019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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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19-11-0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격적이고 몰상식한 행동이네요. 산모와 예비산모 모두에게 불편한 이런 투어가 공짜는 아닐테고 이것 역시 자본주의의 산물인가요? 희생양 역시 여성이구요.

cyrus 2019-08-19 15:2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예비 산모는 산부인과에 찾아오는 예비 고객이니까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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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4년제 대학을 나왔다. 공부 좀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려고 했다. 그래야만 4년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부를 못한 학생들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철이 덜 든 아이들은 우스갯소리로 공부하기 싫어 실업계를 선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평소에 공부를 안 했던 아이들은 어떻게든 인문계에 진학하려고 용을 썼다. 중학교 성적이 고등학교 진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인문계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 합격선에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은 실업계를 선택해야 했다. 내 부모님은 내게 무조건 인문계에 진학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들은 자식이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안정적이고 번듯한 직장에 다닐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과거에는 학업 성적이 좋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실업계 고교에 진학했다. 이렇다 보니 실업계 고교생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말 못 하는 서러움을 느껴야 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고졸 출신의 부모들은 자식마저 냉대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중졸 출신, 어머니는 고졸 출신이다. 두 분 모두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학업에 계속 전념할 수 없었고 꽤 이른 나이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4년제 대학 진학률도 높아졌다. 8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4년제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실업계 고교 진학률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때 신입생 충원조차 어려울 정도로 실업계 기피 현상이 심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인문계 고등학교, 실업계 고등학교’ 대신에 ‘일반계 고등학교, 특성화 고등학교’로 부르고 있다. 2010년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 직업인을 국가 차원으로 양성하기 위해 ‘마이스터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학생들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다. 부모는 일부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를 제외하면 수준 낮은 학생들이 많아서 그 아이들과 어울리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대학에 나오지 못한 자식이 사람 구실을 못 하고 살아갈 것 같아 걱정하는 부모도 있다. 특성화고에 진학하려는 자식을 둔 부모가 제일 많이 걱정하는 것은 열악한 현장실습 환경이다. 실습 현장에서 불의를 사고를 당한 학생은 과거에도 끊이지 않았다. 2016년에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 실습생이 도어에 끼어 사망했다. 끼니 챙길 시간 없이 노동에 시달렸던 그의 가방에선 미처 먹지 못한 컵라면이 나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취업률 경쟁에 내몰린 특성화고 학생들은 ‘현장 실습생’이라는 이름 아래 장시간 노동을 하며 일터 내 폭력과 안전사고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보는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은유 작가는 인터뷰 취재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어린 노동자들이 어떻게 마음의 병을 앓고, 비극적인 사고로 죽었는지를 밝혀낸다. 김동준 군은 장시간 노동과 사내 폭력을 견디지 못해 2014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자는 동준 군이 남긴 노트와 그의 SNS 등에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의 속마음을 재구성한다. 작가는 더 나아가 동준 군의 가족, 이 사건을 담당했던 노무사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여 동준 군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준다. 작가의 취재는 계속 이어진다. 그녀는 제주 생수 제조업체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이민호 군의 아버지, 특성화고 현직 교사와 특성화고 재학생 등을 만났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은 특성화고 학생을 ‘몰라도 되는’ 부끄러운 존재로 여겼다. 편견은 우리가 특성화고 학생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투명한 눈가리개다.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편견은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 ‘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  (10쪽)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 독자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실에 너무 모르고 있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특성화고 학생들에 대한 무지는 현장 실습생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누구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알려고 하지 않은 사회적 무관심을 낳는다. 이 사회적 무관심이 지속하면 잊힌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노력한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가 같이 느끼면서 시작된다. 목숨을 담보로 불안한 일터로 향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고통이 우리 가슴에 느껴지지 않을 때 그들이 스스로 감당하고 있는 문제도 우리 기억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노동과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저항의 방식이다.

 

오늘도 특성화고 학생과 졸업생들이 사회의 편견에 맞서 하루하루를 힘들지만 주어진 일,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그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투명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묵직한 한 방이 있는 책으로 남길 바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책이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50쇄, 100쇄 찍은 스테디셀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이 계속 나온다는 것은 저자에게는 기쁜 일이다. 하지만 현장 실습생의 사망 소식이 나올 때마다 이 책이 언급되고 읽히는 상황은 우리 사회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뼈아픈 증거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자주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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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8-12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책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기를.

cyrus 2019-08-13 15:23   좋아요 0 | URL
저의 반어적 표현을 이해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나무 2019-08-12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서 이민호 학생의 사고소식과 사망소식을 접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일의 즐거움과 보람 대신 공포와 체념을 먼저 배웠을 그리고 여전히 배우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에 참담함을 느낍니다.

cyrus 2019-08-13 15:28   좋아요 1 | URL
단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현장 실습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어른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현장 실습을 담당하는 기업은 애초에 그들을 노동 현장에 투입시켰으면서도 노동 중에 다치거나 사망하면 대충 보상하면서 모른 척합니다. 학생들의 죽음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짓입니다.

2019-08-13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13 15:3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따님에게 잘 말씀하셨어요. 임금을 적게 주든 많이 주든 간에 근로 환경이 열악한 곳에 자식을 일하도록 방관해서는 안 돼요. 이 책에 나오는 사망한 학생들의 부모는 후회했어요. 몸과 마음이 힘든 곳에 일한 자식들에게 일 그만 두라고 말하지 못했다면서요. 대부분 어른은 근로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젊은 사람이 힘든 일을 못 참고 그만두면 한심하게 생각하죠.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꼰대질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이런 생각이 깊게 남아 있으면 산업재해를 남 일처럼 여겨요. 그리고 산업재해가 일어난 원인을 다치거나 죽은 노동자 탓으로 돌리죠.

2019-08-15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17 08:24   좋아요 0 | URL
오히려 저는 이 책을 만든 작가님이 고맙게 느껴져요.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 했고, 보지 못했던 무거운 사회 문제를 취재하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