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평점 :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4년제 대학을 나왔다. 공부 좀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려고 했다. 그래야만 4년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부를 못한 학생들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철이 덜 든 아이들은 우스갯소리로 공부하기 싫어 실업계를 선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평소에 공부를 안 했던 아이들은 어떻게든 인문계에 진학하려고 용을 썼다. 중학교 성적이 고등학교 진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인문계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 합격선에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은 실업계를 선택해야 했다. 내 부모님은 내게 무조건 인문계에 진학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들은 자식이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안정적이고 번듯한 직장에 다닐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과거에는 학업 성적이 좋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실업계 고교에 진학했다. 이렇다 보니 실업계 고교생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말 못 하는 서러움을 느껴야 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고졸 출신의 부모들은 자식마저 냉대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중졸 출신, 어머니는 고졸 출신이다. 두 분 모두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학업에 계속 전념할 수 없었고 꽤 이른 나이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4년제 대학 진학률도 높아졌다. 8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4년제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실업계 고교 진학률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때 신입생 충원조차 어려울 정도로 실업계 기피 현상이 심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인문계 고등학교, 실업계 고등학교’ 대신에 ‘일반계 고등학교, 특성화 고등학교’로 부르고 있다. 2010년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 직업인을 국가 차원으로 양성하기 위해 ‘마이스터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학생들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다. 부모는 일부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를 제외하면 수준 낮은 학생들이 많아서 그 아이들과 어울리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대학에 나오지 못한 자식이 사람 구실을 못 하고 살아갈 것 같아 걱정하는 부모도 있다. 특성화고에 진학하려는 자식을 둔 부모가 제일 많이 걱정하는 것은 열악한 현장실습 환경이다. 실습 현장에서 불의를 사고를 당한 학생은 과거에도 끊이지 않았다. 2016년에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 실습생이 도어에 끼어 사망했다. 끼니 챙길 시간 없이 노동에 시달렸던 그의 가방에선 미처 먹지 못한 컵라면이 나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취업률 경쟁에 내몰린 특성화고 학생들은 ‘현장 실습생’이라는 이름 아래 장시간 노동을 하며 일터 내 폭력과 안전사고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보는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은유 작가는 인터뷰 취재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어린 노동자들이 어떻게 마음의 병을 앓고, 비극적인 사고로 죽었는지를 밝혀낸다. 김동준 군은 장시간 노동과 사내 폭력을 견디지 못해 2014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자는 동준 군이 남긴 노트와 그의 SNS 등에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의 속마음을 재구성한다. 작가는 더 나아가 동준 군의 가족, 이 사건을 담당했던 노무사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여 동준 군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준다. 작가의 취재는 계속 이어진다. 그녀는 제주 생수 제조업체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이민호 군의 아버지, 특성화고 현직 교사와 특성화고 재학생 등을 만났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은 특성화고 학생을 ‘몰라도 되는’ 부끄러운 존재로 여겼다. 편견은 우리가 특성화고 학생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투명한 눈가리개다.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편견은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 ‘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 (10쪽)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 독자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실에 너무 모르고 있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특성화고 학생들에 대한 무지는 현장 실습생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누구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알려고 하지 않은 사회적 무관심을 낳는다. 이 사회적 무관심이 지속하면 잊힌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노력한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가 같이 느끼면서 시작된다. 목숨을 담보로 불안한 일터로 향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고통이 우리 가슴에 느껴지지 않을 때 그들이 스스로 감당하고 있는 문제도 우리 기억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노동과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저항의 방식이다.
오늘도 특성화고 학생과 졸업생들이 사회의 편견에 맞서 하루하루를 힘들지만 주어진 일,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그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투명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묵직한 한 방이 있는 책으로 남길 바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책이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50쇄, 100쇄 찍은 스테디셀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이 계속 나온다는 것은 저자에게는 기쁜 일이다. 하지만 현장 실습생의 사망 소식이 나올 때마다 이 책이 언급되고 읽히는 상황은 우리 사회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뼈아픈 증거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자주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