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찍힌 몸 -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염운옥 지음 / 돌베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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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를 차별하는 것을 인종주의라고 한다면, 문화 · 종교 등을 이유로 삼아 타자를 차별하는 것은 변형된 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역사적 뿌리가 깊은 현안이다. 낙인찍힌 몸인간의 몸에 대한 위계적인 해석에서 시작된 인종주의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우생학 운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우생학은 열등한 인종의 몸을 분리해내고 낙인찍는 학문이다. 우생학 열풍은 영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우생학은 제국주의 바람을 타고 미국으로 전파되었고, 흑인을 배제하는 인종주의는 지금도 백인들의 의식에 잠재되어 있다. 히틀러(Hitler)와 나치 독일(Nazi-Deutschland)이 자행한 유대인 학살은 난데없이 툭 튀어나온 사건이 아니다. 유대인 학살은 유럽의 오랜 반유대주의 전통에 기반을 둔 우생학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다. 뾰족한 코를 가진 유대인은 열등 인종의 전형으로 정의되었고, 아리안인(Aryan)의 뛰어난 내적 자질은 출중한 외모를 통해 증명된다는 학설이 전파됐다.

 

과학적인 이론으로 뭉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생학은 타자의 몸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 인종 차별과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 및 지배를 정당화해왔다. 인종주의는 외모, 피부색, 골격 등의 생물학적 속성을 기준으로 타자에게 우열을 매긴다. 저자는 인종주의를 인종적 타자의 몸을 먹고 자란 히드라(Hydra)로 비유한다. 히드라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물뱀이다. 히드라는 아홉 개의 머리를 가졌는데, 이 목을 잘라내면 베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목이 생긴다. 히드라 같은 인종주의는 여전히 강력하다.

 

인종(raza)이라는 단어는 원래 동물의 품종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이 단어는 유럽으로 확산하면서 우리가 익숙한 인종(race)이 만들어졌다. 분류학이 발전하면서 동물의 품종을 의미하던 인종(raza)은 인간을 분류하는 개념(race)으로 자리 잡았다. 스위스의 박물학자 린네(Linne)는 동물과 식물의 범주를 나누고 속과 종을 분류하면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이명법을 도입했다. 그는 인류의 피부색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린네의 분류법에 따르면 유럽인은 백색, 아메리카인은 홍색, 아시아인은 갈색, 아프리카인은 흑색이다. 린네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종을 공식적으로 정의한 학자이다. 고대 그리스 문화를 떠받들던 독일의 미술사학자 빙켈만(Winckelmann)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을 아름다움의 척도로 삼았다. 저자는 린네의 분류학과 빙켈만의 미학을 인종주의 발전의 시작점으로 본다.

 

낙인찍힌 몸은 인종주의의 역사는 서양에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흑인과 유대인, 무슬림 차별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서양의 인종주의 문제만을 분석하지 않는다. 저자는 히드라 같은 인종주의가 신인종주의(new racism)또는 문화적 인종주의(cultural racism)라는 이름으로 계속 자라고 있다고 말한다. 백인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가 생물학적 인종주의라면, 오늘날의 인종주의는 신인종주의다. 신인종주의는 타자의 정치적 성향, 종교, 문화에 우열을 매길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편견을 부여한다. 새로운 히드라의 머리는 다문화를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 자라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인은 생물학적 인종주의가 주목하는 실험 대상이었다. 외국에 있는 한국인도 종종 인종 차별을 당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타자를 낙인찍고 배제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 외국인노동자, 난민, 무슬림들에 가해지는 인종 차별은 새롭게 자라나고 있는 히드라의 머리다. 이제는 문화적 지표가 인종주의의 표적이 되고 있다. 생물학적 인종주의라는 이름이 붙여진 히드라의 머리를 자르면 그 자리에 신인종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머리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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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0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21 11:29   좋아요 0 | URL
저랑 같은 책을 읽는 분을 만나니 정말 반갑네요. 책에 제가 몰랐던 내용과 사례들이 많이 있어요. 책을 읽으면 생각거리가 많아질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