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Homeros)는 물음표가 많은 음유시인이다. 그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언제 태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알려진 정보는 호메로스가 시력을 잃은 걸인이었다는 점이다.


















* [개정판 절판] 알베르토 망겔, 김헌 옮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 세계적인 인문학자가 밝히는 서구문화의 근원(세종서적, 2015)

 

* [구판 절판] 알베르토 망겔, 김헌 옮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세계적인 인문학자가 밝히는 서구문화의 근원(세종서적, 2012)

 

* 새뮤얼 버틀러, 한은경 옮김, 이인식 해제 에레혼(김영사, 2018)





호메로스는 어떤 사람인가, 실제로 존재했을까?정답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이 질문을 호메로스 문제(Homeric Question)’라고 한다사람들은 호메로스의 정체에 대해 갖가지의 가설을 제시했다. 에레혼이라는 유토피아적 소설을 쓴 영국의 작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호메로스의 성별을 의심했다. 그는 호메로스가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대구 책방 <일글책서양 인문 고전 읽기 2023년 첫 번째 선정 도서]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도서 출판 숲, 2015)


[대구 책방 <일글책서양 인문 고전 읽기 2023년 두 번째 선정 도서]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도서 출판 숲, 2015)





그가 내세운 증거는 오뒷세이아에 있는 사소한 오류들이다. 예컨대 배의 내부 구조와 그리스 국가의 지리와 관련한 묘사가 정확하지 않은 점이다. 여러 개의 오류를 발견한 버틀러는 남성이라면 하지 않는 실수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뒷세이아의 작가가 여성이라서 오디세우스(Odysseus)의 궁전 내부를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버틀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호메로스의 정체는 시칠리아 출신의 젊은 미혼 여성이다. 그녀는 일리아스를 마음대로 인용하면서 오뒷세이아를 썼다.


몇몇 독자는 여전히 호메로스가 여성이라는 가설에 끌린다(나도 한때 이 견해에 흥미를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버틀러의 견해는 억측이다. 호메로스를 둘러싼 성별 논란은 재고할 가치가 없다. 여성의 창작 능력을 깎아내리는 성차별적 인식에서 비롯된 남성들만의 문제. 버틀러는 가부장의 권위가 식민지로 뻗어나가고 있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다. 이 시대에 살았던 여성 작가들은 남성 중심 문단이라는 커다란 장벽을 마주쳐야 했다. 이들은 작품들이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남성 작가로 보일 수 있는 필명을 썼다.


버틀러는 여성의 글솜씨가 서투르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호메로스를 여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남성 지식인들은 버틀러의 허무맹랑한 주장에 분개했다. 그들은 유구한 서양 지성사의 시작을 알린 아버지와 같은 호메로스가 절대로 여성일 리 없다고 믿었다. 버틀러를 비판한 지식인들은 두려워했다. 호메로스가 여성이라고 알려지게 되면, ‘남성의, 남성이 만든, 남성을 위한 지성사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남성의남성이 만든남성을 위한 지성사’를 거룩하게 묘사한 그림이 앵그르(Ingres)의 호메로스 예찬(The Apotheosis of Homer, 1827)이다. 앵그르는 이 그림에서 호메로스를 고전의 전당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묘사했다.


















* [절판] 정금희 엮음 앵그르(재원, 2015)


* 아르킬리코스 & 사포 외, 김남우 옮김 고대 그리스 서성시(민음사, 2018)

 

* 아르킬리코스 외, 오자성 옮김 고대 그리스 서성시선: 서정시는 어떻게 쓰여지는가(청개구리아카데미, 2011)





승리의 여신이 권좌에 앉아 있는 호메로스에게 월계관을 씌워주고 있다. 권좌 아래에 있는 두 여자는 일리아스오뒷세이아를 상징한다호메로스 이후에 활동한 남성 작가와 예술가들이 아버지를 숭배하기 위해 모여들었다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등장한 여성 문인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sappho).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은 버틀러의 기이한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면서도, 고전을 대담하게 해석한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고전은 예나 지금이나 독자를 지배한다. 고전의 위압감에 눌린 독자는 고전이 알려주는 모든 내용을 순순히 따른다. 그러나 버틀러는 고전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고전을 해석했다. 망겔은 버틀러처럼 유쾌한 뻔뻔함이 있어야 고전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265).


논리적으로 맞지 않더라도 고전을 읽고 느낀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고전 해석에 정답은 없다. 완벽한 해석은 없다. 그러나 버틀러는 자신의 해석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버틀러의 해석은 편파적이다. 이런 해석은 재미가 없고 불쾌하다. 버틀러의 불쾌한 뻔뻔함은 고전뿐만 아니라 고전을 읽은 타인의 해석마저 망가뜨리려고 했다. 고전을 자기 마음대로 뒤집으려면, 고전을 대하는 자신의 해석도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고전 해석은 고전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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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1-25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오늘부터 연휴 시작인데,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월요일이 임시공휴일이 되면서 이번 연휴가 많이 길어졌어요.
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25-01-27 09:18   좋아요 1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님. 연휴 전 2주 동안 잔업을 연속으로 해서 책을 제대로 못 읽었어요. 토요일부터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서 집과 카페에서만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

그레이스 2025-01-27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망구엘의 이 책 저는 왜 몰랐죠?
장바구니에 넣어갑니다~♡
절판이네요 ㅠ
아! 이펙트! 이 책으로 갖고 있어요 ㅋㅋ

cyrus 2025-01-27 09:34   좋아요 1 | URL
구판, 개정판 모두 절판됐어요. 이중에 한 권만 있으면 됩니다 ㅎㅎㅎ
망겔이 쓴 책도 그렇고 , 그레이트 이펙트 시리즈가 읽어볼만한 고전 개론서인데 전부 다 절판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