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339쪽)

 

 

 


 Scene #1  눈은 멀쩡한데 아내가 모자로 보인다면... 

 

우리의 일상에서 시각 경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크다. 오죽하면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이처럼 중요한 ‘보는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우리의 신체 기관은 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눈이 멀었다’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눈과 더불어 뇌가 있기 때문이다. 눈이 하는 일은 바깥세상의 이미지를 카메라처럼 찍는 것뿐이고 그 이미지를 뇌로 보내서 해석하는 과정이 진행되지 않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어느 날 뜻밖의 사고로 뇌를 다쳤다고 가정해 보라. 손상된 부분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으로 인지 기능에 이상이 온다. 사물에 대해 인식이 안 되거나 보이는 사물에 대해 시각적으로는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무엇인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의학에서 가장 낙후한 분야가 뇌와 관련된 각종 질병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거대한 우주와도 같지만 뇌신경에 관한 한 달 착륙 수준에 도달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뇌신경은 머리와 마음이라는 분리할 수 없는 두 영역이 교차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첫 사례로 소개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시각인식 불능증 환자다. 환자의 직업은 음악교사.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기억력, 유머 감각의 소유자다. 시력은 바닥에 떨어진 바늘도 쉽게 찾아낼 만큼 좋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고 사물의 구체적인 형태를 변별하는 능력도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검사를 마친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신의 머리에 쓰려고 했다.

 

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뇌에서 시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영역에 부분적인 손상을 입은 까닭에 자신의 아내와 모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당혹스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 눈 자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므로 사물의 부분적인 특성, 예컨대 뾰족하다거나 둥글다거나 길쭉하다거나 노란색이라거나 하는 것들은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전체적으로 사람의 얼굴인지 아니면 모자인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옷을 갈아입는지 그의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늘 두는 장소에 남편의 옷을 갖다놓지요. 하지만 뭔가 방해를 받아 맥이 끊기면 완전히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해요. 그이는 입으려던 옷을 뭔지 잊어버려요. 자기 몸조차도 알아보지 못한답니다. 하지만 노래를 흥얼거릴 때 만큼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갈아입지요.”

 

이 환자의 경우, 음악이 시각을 대신하고 있었다. 처방은 의외로 간단했다. “더욱 적극적으로 음악에 기대어 사는 것이 권고됨.”

 

 

 

 Scene #2  과잉과 결핍에서 오는 새로운 삶의 활력

 

비정상은 두 가지의 모습을 가진다. 하나는 결핍이고, 또 하나는 과잉이다. 생리학과 병리학은 이를 모두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정의한다. 장애는 대부분 결핍에서 오는 것이다. 예컨대 나에겐 걷거나 뛸 수 있는 운동 신경과 감각이 결핍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적인 결핍뿐만 아니라 호르몬과 에너지의 과잉 상태로 인한 장애도 있다. 대표적으로 틱 장애로 알려진 튜렛 증후군이 이에 해당되는데, 정신 의학은 이를 “시상, 시상하부, 변연계 그리고 편도에 일어난 임상학적, 병리학적 장애”로 설명한다.

 

틱 장애를 가진 환자 레이는, 틱 장애로 인해 거칠고 돌발적이며 신경질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레이는 이 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파민 수치를 낮추는 할돌(Haldol)을 처방받는데, 이후 틱 장애는 완화되었지만 정상적인 성격을 가진 자신의 모습이 진정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는 틱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틱 증상이 치료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라며 낙담한다.

 

일반 의사라면 이쯤에서 치료가 끝났을 터. 하지만 저자는 외적 질환을 고쳤어도 레이가 마음의 병을 얻었음을 알아봤다. 사실 병은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지만 장점도 있었다.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려는 의사들은 이들이 경험하는 과잉 상태가 건강한 상태에서 발현되는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기에 약물 등을 통해 정상 상태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질병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며, 병의 산물로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레이의 사례에서 살펴보았듯 환자는 병리 상태를 행복한 상태로 경험하며, 병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튜렛 증상 충동으로 두들기던 드럼은 수준급의 재즈 연주로 발전해 인기를 모았다. 남들보다 매서운 반사신경은 탁구에서 빛을 발했다. 하지만 약물 투여 뒤 레이는 평범해졌다. 무엇보다 병을 앓는 동안 형성됐던 그의 유머와 사나이다움, 강한 정신력이 무뎌졌다. 그렇다고 회사마다 해고당하는 원인이 된 질병을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 저자와 환자의 결론은 ‘주중엔 약물 투여, 주말엔 중지’였다. 레이는 이후 평일엔 ‘진지하고 차분한 시민’으로, 휴일엔 ‘경박하고 열광적이고 영감에 가득 찬 인물’로 이중생활을 한다.

 

물론 대부분의 장애는 결핍 상태이기에 이를 행복한 상태로 경험하기도 힘들며, 장애를 긍정적으로 이용하기도 힘들다. 결핍으로 인한 장애는 다양한 물리적인 고통을 수반할 뿐 아니라, 사회적,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불쾌한 상태를 경험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의 경험틀 내에서 장애는 실존적으로 개개인마다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장애는 고통과 불쾌함을 가져다주지만, 다른 측면에서 장애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알 수 없었을 다양한 경험들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Scene #3  뇌에 대한 경이로운 시선

 

저자는 단지 필력만 뛰어난 과학자가 아니다. 환자를 인간으로 대하는 훌륭한 의사이다. 그는 환자를 볼 때 질병에만 관심 갖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주체 즉 고뇌하고 고통 받고 병과 맞서 싸우는 주체’를 보려 한다. 병의 치료보다 인간을 돕는 것이 의사의 주된 임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신경 장애 환자들이 묘사하는 세계는 불가사의하다. 그들의 인생에는 탁월한 소설적 요소가 숨어 있다. 어떤 고전에도 등장하지 않는 새로운 인간의 원형으로 이 책에 언급된 환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엄청난 재앙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적응하거나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때로는 괜찮았을 때보다 더 완전해진 삶을 살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로 끝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노력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강인한 극복의지다.

 

올리버 색스는 정신세계의 모호한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두뇌의 세계에 대한 성찰을 꾀한다. 그런 다양한 타자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많은 것들에 주의를 돌리게 된다. 신체와 정신,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해주고 있는 신체기관인 뇌에 대해서 경이로운 시선을 갖게 되는 것이다. 독자는 삶 자체에 대한 경외로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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