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제국의 발견 - 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사회 이야기
최재천 지음 / 사이언스북스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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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지구의 진짜 주인은 개미

 

“그들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사람을 건드리면 모두가 그 손길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서 퐁텐블로 숲 땅속에 몇 달째 갇혔다가 개미의 도움으로 살아난 사람들을 보고 구조대원들이 나누는 얘기다. 햇볕도, 먹을 것도 없는 땅 속에 갇힌 사람들이 살 길은 개미처럼 되는 것뿐이었다. 전체의 생존 속에서 개인의 생존을 보장받는 개미사회의 방식을 따랐던 것이다.

 

소설 속 꾸며낸 이야기일 뿐일까. 개미는 인간사회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개미사회의 철저한 분업과 협업이 보여주는 효율성은 놀랍기만 하다. 조직을 구하기 위해 자폭하는 개미, 여왕개미를 겨냥해 역적모의를 하는 개미, 식물을 보호해주고 대가를 받는 개미 등등. 개미와 인간은 지구의 2대 지배자이지만 개미는 1억 년 이상을 살아왔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이 배워야할 게 더 많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진짜 주인은 개미라고 해도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자랑하는 인간다운 특징들을 동물이, 그것도 기어 다니는 아주 작은 동물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할 사람도 있을 듯하다. 개미가 우화 한 편의 주인공 역할을 맡는 정도라면 봐줄 만하지만, 그 이상 기어오르면 왠지 주제넘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뤄진 수많은 연구 결과는 개미 사회를 인간 사회의 모형으로 삼을 만하다고 말한다. 개미들은 인간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든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자 개미 연구로 알려진 에드워드 윌슨은 더 나아가서 인류학자들이 인간 사회의 특징이라고 열거하는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윤리적 요소들이 사실은 고도의 지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좁쌀만한 뇌를 지닌 개미에게서 인간과 유사한 것들을 발견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자랑할 것이라고는 심심찮게 자기 파괴 성향을 드러내는 고도 지능과 애매한 의사 전달로 불화를 일으키곤 하는 언어만 남은 꼴이 아닌가.

 

 

 Scene #2 인간과 개미는 '똑같다'라고 말할 수 없다

 

개미 사회의 문화를 우리네 사는 모습과 비교하기도 하고 개미 기업의 경영을 인간의 경제활동에 비춰보기도 한다. 개미 사회는 워낙 복잡하고 조직적이라 문화 경제 심지어는 정치까지 인간 사회와 비교해 분석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과 개미의 유사성은 겉으로만 닮은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의 사려 깊은 행동과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개미의 행동이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노예 제도다.

 

 

 

 

 

노예를 구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남의 개미집을 습격해 애벌레를 강탈해온 뒤 노예로 삼는 종도 있고, 아예 남의 개미집에 들어가서 여왕을 죽이고 대신 여왕 행세를 하는 종도 있다.

 

아마존개미는 스스로 생계를 꾸릴 능력을 완전히 잃고 노예 노동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노예들이 돌보지 않으면 굶어죽을 것이다. 노예들은 꿀과 죽은 곤충 같은 먹이를 구해오고, 여왕과 새끼를 돌보며, 집을 청소하고 수선하는 등 생명유지를 위한 모든 활동을 도맡는다. 그래서 아마존개미는 정기적으로 근처의 불개미 집을 습격해 여왕과 일개미들을 내쫓고 번데기들을 강탈해온다.

 

그렇다면 개미의 노예제는 인간의 노예제와 얼마나 비슷할까? 차이점이 있다면 개미 사회에서 노예들은 원래 자유생활을 하는 다른 종이며, 인간 사회는 더 이상 노예를 부리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노예 개미는 사실 가축에 가깝다. 노예에게 번식이 허용되지 않고, 노예의 사회조직이 주인의 것과 대등하거나 우월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 말이다. 개미의 노예제는 그들의 사회성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본능적 진화의 산물인지 여전히 그 비밀이 풀리지 않았지만 이러한 특징은 개미 사회가 보여주는 수많은 측면 중 하나이며, 개미 사회의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한 요인이다.

 

 

 

 

 

 

'개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근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개미는 근면함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로 세뇌를 받으며 자랐다. 솔로몬왕은 잠언에서 우리더러 개미의 근면함을 배우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개미는 우리 인간만큼 부지런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베짱이만큼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아니다. 일개미는 하루에 평균 5시간 정도밖에 일하지 않으며 나머지 시간은 휴식을 취하면서 에너지를 비축한다. 부지런하지 않은 일개미가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빈둥거리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일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도 일하지 않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앞을 내다보며 좀 더 큰일을 위해서 활동을 멈추는 것이다. 쉬는 일개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출동 명령을 기다리는 이른바 대기조라고 보면 된다. 언제 침입할지 모르는 외부 개미와 맞설 수 있고, 개미집에 있는 여왕개미와 알을 보호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고도의 효율성을 이끌어낸 일하지 않는 일개미의 현상을 통해, 고도로 조율된 조직 원리를 읽을 수 있다.

 

 

 Scene #3 일개미와 관료의 차이점

 

요즘 우리 사회는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인적 재난으로 인해 절뚝거릴 때가 많다. 최근에 발생한 세월 호 침몰 사건은 재난 사고에 대한 정부의 부실한 사후조치를 보여줬다. 그동안 수차례 인명 피해의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관리 매뉴얼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매번 최악의 결과만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는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책임자 엄벌과 철저한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효성 없는 사후약방문에 그쳤다. 과연 꼼꼼하게 매뉴얼을 다시 점검하고 책임자를 문책한다고 해서 제2의 세월 호 침몰 사건이 발생할 때 시민의 안전을 보호 할 수 있을까.

 

훨씬 더 엄중한 책임이 공직 조직에 있다.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은 두 달 전 세월 호에 대한 특별 안전점검에서 선내 침수방지 장치 등 5개 문제점을 적발했지만, "조치했다"는 선사 측의 말만 믿고 재점검을 실시하지 않았다. 사후 대응조치도 무능하고 혼란스러웠다. 일을 대충하려는 관료주의의 병폐는 '일을 하되 일을 하지 않는' 일개미와 무척 비교가 된다. 우리나라 관료는 일을 하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다. 일개미는 미래의 일을 위해서 휴식을 취한다면, 관료는 업무 연관성도 없는 상황에서 그냥 시간을 보낸다.

 

 

 

 

나는 이 시점에서 개미의 위기관리체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미 사회에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엄청난 노동력을 대기상태에 묶어두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볼 때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개미 사회는 전체 노동력의 무려 4분의 3을 위기관리에 할당하고 나머지 4분의 1로만 사회를 운영하게 되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엄청난 양의 관료의 노동력을 비축할 수는 없지만 효율적으로 현장에 적절하게 투입되고 이에 맞춰 대응할 수 있는 관료가 필요하다. 혼자서 죽어라고 일하는 것과 남들 일하는데 혼자서 빈둥거리는 것은 개미의 덕목이 아니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개미사회에서 보는 뛰어난 협업과 분업의 효율성이다. 그러면 사회 안정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심각한 사태에 대비하여 언제든지 어떤 일이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며 인간 이외의 동물을 자신보다 낮은 존재로 간주한다. 특히 ‘벌레 보듯이’라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듯 동물 중에서도 곤충을 더욱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개미를 관찰하는 저자의 시선은 다분히 인간 중심적 관점이기도 한데, 그 때문에 결국 개미의 생태는 우리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게 된다. 개미가 인간보다 먼저 농사를 지은 지구 최초의 농사꾼임을 아는 순간 자신을 최초의 경작자로 꼽는 인간의 오만이 떠오른다. 또 인간에 필적할 정도로 자원을 끌어 모아 사용하기는 하기만 과시적으로 소모하지 않는 개미의 습성은 악착같이 희소한 것에 집착하는 인간의 탐욕과 대조된다. 특히 개미가 베짱이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사실을 알고 나면 보이는 그대로 믿었던 무지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개미가 작다고 얕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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